타샤의 돌하우스
타샤 튜더.해리 데이비스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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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아이에겐 인형, 남자아이라면 로봇이 마치 선물의 공식처럼 굳어져 어린 시절에 대부분 비슷한 선물을 받는다. 나 어렸을 적엔 미미와 쥬쥬라는 인형이 유행이라 딸 있는 집에는 다 있었던 것 같다. 당시 꽤 고가였던 '미미의 집'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선 너무 좋아 잠까지 설쳤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그 '미미의 집'은 어디로 갔을까? 분홍색 지붕을 얹은 멋스러운 이층집이었지만 엄마나 내가 가꾼 집은 아니었기에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미련 없이 버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게 우리 할머니나 엄마 혹은 아빠가 만들어준 집이었다면 지금까지도 소중히 간직하지 않았을까?

 타샤 할머니의 인형 놀이는 일곱 살 크리스마스 때, 어머니에게 인형의 집을 선물 받으며 시작됐다. 예술가였던 모친이 만들어준 실감 나는 인형의 집으로 타샤 할머니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미리 아기자기하게 꾸려 보았고, 그 후 80년 넘도록 귀한 소품을 모으고 추억을 쌓으며 지금의 인형의 집을 완성했다. 타샤 할머니의 집을 그대로 축소해놓은 작은 집, 물론 이제는 오래전 어머니가 선물해준 그 집은 아니다. 전시회를 위해 전문가들이 타샤 할머니의 집을 그대로 재현했고, 할머니가 모든 인테리어를 도맡았다고 한다.

 

 

 <타샤의 돌하우스>는 부엌, 다이닝룸, 응접실, 온실, 중앙 홀, 침실, 서재, 염소 헛간, 크리스마스 순서로 꼼꼼하게 인형의 집을 소개한다. 그냥 좀 특별한 인형의 집이겠거니 생각한다면 오산! 이 집엔 엄연히 주인도 있다. 엠마와 새디어스라는 부부인데 모두 타샤 할머니가 직접 만든 인형이다. 타샤 할머니가 쿠키를 구우면 엠마도 똑같이 생긴 작은 주방에서 쿠키를 굽고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면 엠마도 똑같이 그림을 그렸다. 내 집과 생활을 그대로 본뜬 미니어처가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볼 때마다 신기하고 새롭겠지. 누군가는 늙어서 무슨 인형 놀이냐며 혀를 찰 수도 있겠지만 타샤 할머니 인형의 집은 인형 놀이를 넘어서 어엿한 한 가정이자 할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또 다른 삶의 터전이다.

 

 

 

 할머니의 지인과 가족까지 힘을 모아 한마음으로 꾸며낸 이 인형의 집을 보고 있으면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과 따스한 정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해진다. 동그란 오너먼트와 큰 별로 장식한 트리가 반짝이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요리에서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크리스마스. 혹시 그날 방문하면 10년 전에 돌아가신 타샤 할머니가 예쁜 드레스 차림으로 환하게 맞아주시진 않을까? 아쉬운 마음에 이런저런 상상을 하다 보니 이 책의 여운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어쩌면 마음만은 여전히 이 인형의 집에 남아 엠마로 살아가고 계시진 않을지, 어딘가 멀리 떠나버린 게 아니라 그 모습 그대로 머물고 계신다면, 이별의 안타까움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할머니가 너무나 사랑하고 아꼈던 그 인형의 집을 부디 언젠가는 직접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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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설레는 마음
이정현 지음, 살구 그림 / 시드앤피드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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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크기와 복숭아 혹은 살굿빛의 중간쯤 되는 색감에 책을 받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한껏 더워진 날씨에 손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지만 반들반들한 표지를 쓱 만지니 유리알처럼 미끄러져 보송보송하다는 착각이 들었다. 표지부터 '난 봄입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아 여름에 만난 게 어찌나 아쉽던지. 문득 나도 모르게 제목을 소리 내 중얼거렸다. <함부로 설레는 마음> 제목부터가 여심 저격. 기분 좋은 떨림으로 첫 장을 열고 목차를 지나자 '지금이라는 계절'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어떤 계절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금'이라는 것만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계절이 되는 게 아닐까요.

우리의 지금이어서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 p11


  잠시 당황. 뭘까? 봄에 만났다면 더 좋았겠다는 나의 아쉬움을 작가에게 들켜버린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어쩌면 '우리'의 감성 코드가 맞을 거란 생각에 왠지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함부로 설레는 마음>이라는 제목에 속아 콩닥콩닥 가슴 뛰는 사랑 이야기만을 기대했다면 아마 낭패일 거다. 이 이야기엔 꽃, 액자, 고양이, 한 끼, 외로움, 커피 그리고 사랑과 미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달달한 사랑 이야기도 담겨 있지만 어쩐지 그런 사랑에 관한 글은 별책부록 같았고 책장을 넘길수록 불쑥 고개를 드는 작가의 외로움과 담담함에, 함께 커피라도 마시면서 언제까지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결핍'은 짐승 같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곁에 두며 보살피면 나와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이 될 수 있지만,
부정하고 외면하다가는 불어난 몸집에 잡아먹혀버릴 수도 있다. - p18

 

 

 현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과거로 이어지기도 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괜찮다고 토닥이며 끝나기도 하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하다가 어린 시절 괴롭힘을 당했던 자신의 아픔, 동생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이어져 책을 읽고 있다기보다는 '이정현'이라는 사람과 술자리에서 사담을 나누는 느낌이었다. '요즘 나는...', '옛날에 있잖아...' 이렇게 그간의 얘기를 늘어놓는 지인처럼 말이다. 전부터 커피를 배우고 싶단 생각에 생활비에 보탬이 될까 카페에서 일했다가 지금은 다른 작가들과 함께 카페를 꾸리고 글을 쓰며 종종 생각과 추억에 잠기곤 하는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날은 하필 혼자 사는 집에 혼자 있어서, 혼자 울었다. - P188

크고 작은 의자도 여럿 놓아두었습니다.
보잘것없는 마음이지만 당신이 오셨을 때
꼭 앉을 자리가 있었으면 하거든요. -P217


 

 작가의 이야기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읽다 보니 가끔 가슴에 훅하고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그 외로움과 설렘, 자책과 미안함, 연애 감정까지 갑자기 내 가슴에 들어온 그 여러 문장에 심장이 시큰하다가도 빙그레 미소짓곤 했다.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지만, 사람은 만나기 싫은 날,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시며 노란 조명 아래서 <함부로 설레는 마음>을 읽으면 따스한 위로나 격려의 말 없이도, 스트레스와 걱정 가득했던 마음이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질 것 같다. 과하지 않아 좋았고 솔직해서 더 가슴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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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 엄마와 세상에 상처 입은 나를 일으켜줄 자존감 심리학
선안남 지음 / 글담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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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어떤 내용인지 모르던 상태에서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땐, 상처받은 '어른이들'의 치유와 위로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 예상했지만 소개 글을 읽어보니 엄마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딸이 받은 상처를 이해하고 풀어가는 이야기였다. 엄마의 다양한 성격과 행동에 상처받은 딸들의 12가지 이야기. 책을 펼치기에 앞서 살짝 겁이 났다. 엄마와 죽고 못 살 정도로 좋아하면서 다투기도 많이 다투고, 생물학적 나이와는 상관없이 마냥 어린 마음인 채로 나 역시 엄마가 되었기에 숨겨뒀던 치부와 잊으려 노력했던 상처를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들춰낼까 두려웠다. 책에서 만난 딸 12명의 이야기는 각자 달랐지만, 누구라도 겪었을 그런 흔한 이야기였다. 한데 그게 다 엄마가 준 상처 때문이라니...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엄마의 말과 태도가 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어린 시절의 딸은 엄마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엄마의 한마디에 울고 웃는 딸들. 때론 칭찬받고 싶어서 싫어도 좋다고, 엄마가 무서워서 울면서 억지로 하다가, 왜 이리 내 삶을 옭아맸냐고 뒤늦게 항의하고, 나의 섬세함을 유별남이라 치부하는 엄마를 원망하는 딸들. 정말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주변에 흔히 있을법한 이야기다.

 내 경우에 어린 시절 가장 상처받았던 말은 '정말 실망스럽다'였다. 세상 어떤 엄마가 자기 딸은 최고일 거라 기대하지 않겠냐마는 제발 기대치를 높게 가지지 말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좋았을 텐데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늘 그러셨던 건 아니지만 시험을 못 보거나 속을 썩인 날이면 엄마는 '너 정말 실망스럽다'라는 말을 하곤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날이면 난 이불 속에서 훌쩍거리다 다음날 퉁퉁 부은 눈으로 깨곤 했다. 이제는 그랬던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실망'이라는 단어는 어른이 된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욱신거리게 한다.

  이 책은 엄마에게 상처받아 마음의 병이 생긴 딸의 사례를 중심으로 쓰였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결국 '엄마가 죄인이구나'라는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딸의 입장에서 기술했고 그 상처를 준 장본인은 엄마가 맞으니 반박할 순 없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 공격당하는 건 아닌지 마음이 불편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엄마를 딸도 이해해줘야 한다는 중립적인 메시지들이 많이 등장해서 한결 편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엄마와 딸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니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며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우리 아이는 유별난 게 아니라 섬세한 것이며, 엄마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개성이 강한 것이라는 등, 생각의 전환을 통해 비난이 아닌 소통으로 관계를 끌어가면 어떤 응어리도 다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실행하기까지 참 어렵겠지만 말이다. 엄마에게는 딸의 이런 상태를 이해해주며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로 치유해줄 것을, 딸에게는 엄마가 준 상처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엄마가 베푼 사랑과 좋은 영향도 기억할 것을 이 책은 간곡히 권한다. 12가지 사례 중 나와 너무 비슷한 부분도 있어서 더 몰입하며 읽었던 것 같다. 다 아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 흔한 상처조차 제대로 보듬지 못하는 딸들에게 가슴 따스해지는 이해와 위로를 전해주는 뜻깊은 독서였다. 부디 나는 앞으로 성장할 내 딸에게 제발 상처 주지 않기를, 아이가 언제든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든든한 엄마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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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 엄마와 세상에 상처 입은 나를 일으켜줄 자존감 심리학
선안남 지음 / 글담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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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받은 줄도 모르고 어른이 되었다> 어떤 내용인지 모르던 상태에서 이 책의 제목을 봤을 땐, 상처받은 '어른이들'의 치유와 위로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 예상했지만 소개 글을 읽어보니 엄마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딸이 받은 상처를 이해하고 풀어가는 이야기였다. 엄마의 다양한 성격과 행동에 상처받은 딸들의 12가지 이야기. 책을 펼치기에 앞서 살짝 겁이 났다. 엄마와 죽고 못 살 정도로 좋아하면서 다투기도 많이 다투고, 생물학적 나이와는 상관없이 마냥 어린 마음인 채로 나 역시 엄마가 되었기에 숨겨뒀던 치부와 잊으려 노력했던 상처를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들춰낼까 두려웠다. 책에서 만난 딸 12명의 이야기는 각자 달랐지만, 누구라도 겪었을 그런 흔한 이야기였다. 한데 그게 다 엄마가 준 상처 때문이라니...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엄마의 말과 태도가 딸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서 어린 시절의 딸은 엄마의 분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엄마의 한마디에 울고 웃는 딸들. 때론 칭찬받고 싶어서 싫어도 좋다고, 엄마가 무서워서 울면서 억지로 하다가, 왜 이리 내 삶을 옭아맸냐고 뒤늦게 항의하고, 나의 섬세함을 유별남이라 치부하는 엄마를 원망하는 딸들. 정말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주변에 흔히 있을법한 이야기다.

 내 경우에 어린 시절 가장 상처받았던 말은 '정말 실망스럽다'였다. 세상 어떤 엄마가 자기 딸은 최고일 거라 기대하지 않겠냐마는 제발 기대치를 높게 가지지 말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면 좋았을 텐데 엄마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늘 그러셨던 건 아니지만 시험을 못 보거나 속을 썩인 날이면 엄마는 '너 정말 실망스럽다'라는 말을 하곤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날이면 난 이불 속에서 훌쩍거리다 다음날 퉁퉁 부은 눈으로 깨곤 했다. 이제는 그랬던 엄마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실망'이라는 단어는 어른이 된 지금도 마음 한구석을 욱신거리게 한다.

  이 책은 엄마에게 상처받아 마음의 병이 생긴 딸의 사례를 중심으로 쓰였기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결국 '엄마가 죄인이구나'라는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는데, 아무래도 딸의 입장에서 기술했고 그 상처를 준 장본인은 엄마가 맞으니 반박할 순 없지만 그래도 뭔가 아쉬웠다.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 공격당하는 건 아닌지 마음이 불편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런 엄마를 딸도 이해해줘야 한다는 중립적인 메시지들이 많이 등장해서 한결 편한 마음으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결국 엄마와 딸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니 서로를 배려하고 사랑하며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우리 아이는 유별난 게 아니라 섬세한 것이며, 엄마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개성이 강한 것이라는 등, 생각의 전환을 통해 비난이 아닌 소통으로 관계를 끌어가면 어떤 응어리도 다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실행하기까지 참 어렵겠지만 말이다. 엄마에게는 딸의 이런 상태를 이해해주며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로 치유해줄 것을, 딸에게는 엄마가 준 상처에만 사로잡히지 말고 엄마가 베푼 사랑과 좋은 영향도 기억할 것을 이 책은 간곡히 권한다. 12가지 사례 중 나와 너무 비슷한 부분도 있어서 더 몰입하며 읽었던 것 같다. 다 아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 흔한 상처조차 제대로 보듬지 못하는 딸들에게 가슴 따스해지는 이해와 위로를 전해주는 뜻깊은 독서였다. 부디 나는 앞으로 성장할 내 딸에게 제발 상처 주지 않기를, 아이가 언제든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든든한 엄마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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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 미드나잇 -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를 위해 하루 15분 차분한 글쓰기
단디 편집부 지음 / 단디(도서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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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된 하루, 치열했던 낮의 전쟁이 잠시 쉬어가는 어둑한 밤. 그 까만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온전한 시간이 시작된다. 한 해에 또 한 해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나만을 위한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늘 안타까웠다. 이래서는 정말 나다운 나일 수 없겠다는 생각에 잠들기 전, 짧게라도 내 영혼을 살찌울 시간을 내기로 했다. 그 시간을 뜻깊게 채워주는 행위는 독서와 명화 감상 그리고 필사다. 몇 번의 까만 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머리를 비워내고 마음을 채우는 그 귀한 시간을 함께해줄 소울메이트가 생겼다. 우선, 첫 친구는 이번에 들인 한정판 라미 사파리 블랙 만년필이었고 두 번째 친구는 <만년필 미드나잇>이라는 책이다.

 소울메이트 덕분에 밤의 시간이 한층 완벽해지자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으며 필사를 해볼까 즐거운 고민을 한다. 얼마 전에 읽은 스미노 요루의 소설, <밤의 괴물>의 남자 주인공은 밤만 되면 괴물로 변하지만 난 밤만 되면 행복한 고민에 빠져 쉴 새 없이 손을 놀린다. 사실 '필사'라는 단어는 뭔가 거창한 느낌이라 '끄적거림'이라고 하는 게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만년필 미드나잇>에는 명화와 함께 다양한 글씨체의 좋은 글귀가 한글, 영문, 한문으로 나누어져 담겨있고 만년필 길들이기용 낙서가 가능한 스케치 부분도 있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끄적이기보다는 그날의 기분에 맞는 글씨체나 끌리는 명화를 고를 것을 추천한다. 오늘의 음악은 아이유의 밤편지, 필기구는 역시 라미 사파리 블랙이다. 

 

 손글씨를 잘 쓸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아직 글씨가 덜 영글었어도 책에 있는 회색 선을 따라 그리면 어느새 내 글씨도(사실 그림이라고 하는 게 더 옳겠지만...) 하나의 멋진 작품이 된다. 처음 책을 훑어볼 때 명화에 대한 설명은 없고 그림과 글씨만 있어 상당히 아쉬웠는데 맨 뒷장에 참고문헌과 그림 정보가 수록되어 있어 안심했다. 만년필을 쓰는 사람에게 만년필과 종이의 궁합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만년필 미드나잇>의 종이는 도톰하고 번지지 않는 재질이라 잉크 거미줄이 생기지 않는다. 사각사각 만년필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귓가에 흐르던 음악도 세상살이의 고된 잡념도 다 사라지고 우주에 나라는 존재만이 덩그러니 떠올라 마치 행성에 홀로 살던 어린 왕자가 된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외롭지는 않다. <만년필 미드나잇>이 권하는 하루 15분의 차분한 글쓰기는 그날의 묵은 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깨끗이 비워 다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기운을 준다. 나에게 보내는 짧은 응원 편지라고나 할까? 80편의 명화와 다양한 글귀가 담긴 <만년필 미드나잇>의 한 장을 또 채워 넣으며 오늘도 나는 위로받지만, 한편으로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모든 페이지가 내 글씨로 가득 차는 날,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리라! 말만 그렇지 사실은 곁에 두고 종종 펴보겠지만 말이다. 까만 밤, 이렇게 오늘도 난 내게 편지를 쓰며 영혼에 비타민 한 스푼을 살포시 털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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