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설레는 마음
이정현 지음, 살구 그림 / 시드앤피드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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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에 쏙 들어오는 앙증맞은 크기와 복숭아 혹은 살굿빛의 중간쯤 되는 색감에 책을 받자마자 기분이 좋았다. 한껏 더워진 날씨에 손에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지만 반들반들한 표지를 쓱 만지니 유리알처럼 미끄러져 보송보송하다는 착각이 들었다. 표지부터 '난 봄입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아 여름에 만난 게 어찌나 아쉽던지. 문득 나도 모르게 제목을 소리 내 중얼거렸다. <함부로 설레는 마음> 제목부터가 여심 저격. 기분 좋은 떨림으로 첫 장을 열고 목차를 지나자 '지금이라는 계절'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겨울도,
어떤 계절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금'이라는 것만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계절이 되는 게 아닐까요.

우리의 지금이어서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 p11


  잠시 당황. 뭘까? 봄에 만났다면 더 좋았겠다는 나의 아쉬움을 작가에게 들켜버린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다. 어쩌면 '우리'의 감성 코드가 맞을 거란 생각에 왠지 가슴 한구석이 찌릿했다.

 <함부로 설레는 마음>이라는 제목에 속아 콩닥콩닥 가슴 뛰는 사랑 이야기만을 기대했다면 아마 낭패일 거다. 이 이야기엔 꽃, 액자, 고양이, 한 끼, 외로움, 커피 그리고 사랑과 미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물론 달달한 사랑 이야기도 담겨 있지만 어쩐지 그런 사랑에 관한 글은 별책부록 같았고 책장을 넘길수록 불쑥 고개를 드는 작가의 외로움과 담담함에, 함께 커피라도 마시면서 언제까지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결핍'은 짐승 같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곁에 두며 보살피면 나와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이 될 수 있지만,
부정하고 외면하다가는 불어난 몸집에 잡아먹혀버릴 수도 있다. - p18

 

 

 현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과거로 이어지기도 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괜찮다고 토닥이며 끝나기도 하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를 하다가 어린 시절 괴롭힘을 당했던 자신의 아픔, 동생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이어져 책을 읽고 있다기보다는 '이정현'이라는 사람과 술자리에서 사담을 나누는 느낌이었다. '요즘 나는...', '옛날에 있잖아...' 이렇게 그간의 얘기를 늘어놓는 지인처럼 말이다. 전부터 커피를 배우고 싶단 생각에 생활비에 보탬이 될까 카페에서 일했다가 지금은 다른 작가들과 함께 카페를 꾸리고 글을 쓰며 종종 생각과 추억에 잠기곤 하는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날은 하필 혼자 사는 집에 혼자 있어서, 혼자 울었다. - P188

크고 작은 의자도 여럿 놓아두었습니다.
보잘것없는 마음이지만 당신이 오셨을 때
꼭 앉을 자리가 있었으면 하거든요. -P217


 

 작가의 이야기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읽다 보니 가끔 가슴에 훅하고 들어오는 구절이 있었다. 그 외로움과 설렘, 자책과 미안함, 연애 감정까지 갑자기 내 가슴에 들어온 그 여러 문장에 심장이 시큰하다가도 빙그레 미소짓곤 했다. 누군가와 얘기하고 싶지만, 사람은 만나기 싫은 날, 시원한 맥주 한 캔 마시며 노란 조명 아래서 <함부로 설레는 마음>을 읽으면 따스한 위로나 격려의 말 없이도, 스트레스와 걱정 가득했던 마음이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질 것 같다. 과하지 않아 좋았고 솔직해서 더 가슴에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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