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 - 미드나잇 -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를 위해 하루 15분 차분한 글쓰기
단디 편집부 지음 / 단디(도서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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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된 하루, 치열했던 낮의 전쟁이 잠시 쉬어가는 어둑한 밤. 그 까만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나의 온전한 시간이 시작된다. 한 해에 또 한 해가 차곡차곡 쌓일수록 나만을 위한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 늘 안타까웠다. 이래서는 정말 나다운 나일 수 없겠다는 생각에 잠들기 전, 짧게라도 내 영혼을 살찌울 시간을 내기로 했다. 그 시간을 뜻깊게 채워주는 행위는 독서와 명화 감상 그리고 필사다. 몇 번의 까만 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머리를 비워내고 마음을 채우는 그 귀한 시간을 함께해줄 소울메이트가 생겼다. 우선, 첫 친구는 이번에 들인 한정판 라미 사파리 블랙 만년필이었고 두 번째 친구는 <만년필 미드나잇>이라는 책이다.

 소울메이트 덕분에 밤의 시간이 한층 완벽해지자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오늘은 어떤 음악을 들으며 필사를 해볼까 즐거운 고민을 한다. 얼마 전에 읽은 스미노 요루의 소설, <밤의 괴물>의 남자 주인공은 밤만 되면 괴물로 변하지만 난 밤만 되면 행복한 고민에 빠져 쉴 새 없이 손을 놀린다. 사실 '필사'라는 단어는 뭔가 거창한 느낌이라 '끄적거림'이라고 하는 게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만년필 미드나잇>에는 명화와 함께 다양한 글씨체의 좋은 글귀가 한글, 영문, 한문으로 나누어져 담겨있고 만년필 길들이기용 낙서가 가능한 스케치 부분도 있다. 앞에서부터 차례대로 끄적이기보다는 그날의 기분에 맞는 글씨체나 끌리는 명화를 고를 것을 추천한다. 오늘의 음악은 아이유의 밤편지, 필기구는 역시 라미 사파리 블랙이다. 

 

 손글씨를 잘 쓸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아직 글씨가 덜 영글었어도 책에 있는 회색 선을 따라 그리면 어느새 내 글씨도(사실 그림이라고 하는 게 더 옳겠지만...) 하나의 멋진 작품이 된다. 처음 책을 훑어볼 때 명화에 대한 설명은 없고 그림과 글씨만 있어 상당히 아쉬웠는데 맨 뒷장에 참고문헌과 그림 정보가 수록되어 있어 안심했다. 만년필을 쓰는 사람에게 만년필과 종이의 궁합은 무엇보다 중요한데, <만년필 미드나잇>의 종이는 도톰하고 번지지 않는 재질이라 잉크 거미줄이 생기지 않는다. 사각사각 만년필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귓가에 흐르던 음악도 세상살이의 고된 잡념도 다 사라지고 우주에 나라는 존재만이 덩그러니 떠올라 마치 행성에 홀로 살던 어린 왕자가 된 느낌이지만 그렇다고 외롭지는 않다. <만년필 미드나잇>이 권하는 하루 15분의 차분한 글쓰기는 그날의 묵은 짐을 내려놓고 마음을 깨끗이 비워 다시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기운을 준다. 나에게 보내는 짧은 응원 편지라고나 할까? 80편의 명화와 다양한 글귀가 담긴 <만년필 미드나잇>의 한 장을 또 채워 넣으며 오늘도 나는 위로받지만, 한편으로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모든 페이지가 내 글씨로 가득 차는 날,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리라! 말만 그렇지 사실은 곁에 두고 종종 펴보겠지만 말이다. 까만 밤, 이렇게 오늘도 난 내게 편지를 쓰며 영혼에 비타민 한 스푼을 살포시 털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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