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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 ㅣ 새소설 1
배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평점 :

"시트콤?", 책을 받자마자 제목을 소리 내 읽어보았다. '전설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 같은 시트콤을 말하는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별생각 없이 펼쳐 든 책. '손에서 놓을 수가 없어 원고를 온갖 곳에 들고 다니며 읽었다.'라는 심사평에 살짝 기대가
샘솟기는 했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니 애써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읽기 시작했다. 세상에, 허지웅 씨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배준
작가는 1990년생이다. '어리다, 어려! 젊은 나이에 책을 냈구나' 부러운 마음도 잠시, 무심한 눈길로 '문이 열렸다.'라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이미 난 돌이킬 수 없는 이 시트콤에 휘말려 버렸다. 살려주세요!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고2 여학생, 이연아가 있다. 연아는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모범생으로 그간 엄마, 아빠 말씀에 순종하며 착하게 살아온 친구다. 방학을
앞둔 어느 날, 갑자기 기숙학원에 들어가라는 엄마의 일방적인 통보에 연아는 발끈하게 되고 김치로 얻어맞는 순간 연아의 눈이 뒤집힌다. 아마
많이들 기억하지 싶다. 드라마에 등장했던 그 두려운 김!치!싸!대!기!. 연아는 그길로 가출하여 방황의 길로 빠져들고 그런 연아를 중심으로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며 소설의 재미를 더한다. 연아가 주인공이 아닌 이야기도 결국엔 어떻게든 연아와 연결되어 역시 연아가 주인공이구나
실감했던 대서사극. 시트콤도 이런 시트콤이 또 있을까? 재미와 삼천포의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독자를 울렸다가, 웃게 했다가 한 마디로
정신을 쏙 빼놓는 소설이다. 이 작가, 위험하다!
책 내용을 너무 많이
발설하면 분명 재미가 떨어질 것이기에 이쯤에서 말을 아끼겠지만, 책을 다 읽으면 표지를 잘 살펴보길 바란다. 처음엔 그저 평범하게만
보였던 표지의 등장인물들이 <시트콤>을 끝까지 관람한 후엔 한 명, 한 명 눈에 들어오며 정말 남의 일 같지 않을 테니까. 이 소설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손오공을 상대하듯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이야기가 대체 어디로 튈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인데 때론 그 경계가 너무
위태로워 '이쯤에서 그만하지'라고 몇 번이나 마음을 졸였더랬다. 연아와 엄마의 싸움이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는 차마 계속 읽을
수가 없어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확실히 마지막은 좀 과해서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시트콤>. 거기서 한 발 더 나갔다면 아마 괜히
읽었다며 후회했을지도. '문이 닫혔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끝으로 작가의 말이 이어졌다. 배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읽는 동안 시간이 아깝지
않으셨다면 창작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트콤 한 편 잘 시청했으니 대답해 드리는 게 예의일
듯!
"작가님! 읽는 동안 시간
아깝지 않고 참 즐거웠습니다. 글 정말 재밌게 쓰시네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어요. 다만 가끔은 수위가 너무 지나쳐 심장이 쫄깃해지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근데 책을 차마 놓지 못하고 끝까지 읽었어요. 재밌으니까요! 경장편 소설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다음
작품도 기대됩니다."
<시트콤>은
무료한 일상에 지친 분, 자극적인 짜릿함을 원하는 분, 한국 소설을 사랑하는 분, 책을 읽고 싶은데 끈기가 없는 분,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읽으며 시간 보내고 싶은 분,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 분께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