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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어라, 내 얼굴 ㅣ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제목: 웃어라, 내
얼굴
글쓴이: 김종광
펴낸 곳: 작가정신
표지를 장식한 글자가
경쾌하다. 마치 살아서 춤추는 듯 너울대며 내게 손짓하는 『웃어라, 내 얼굴』. 연한 살구빛 표지와 통통 튀는 글자에 마음을 뺏겨 멋대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책은 재치 있고 새콤달콤한 이야기로 가득할 거야!' 20년차 소설가의 위대한 생활 탐구라니, 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마음이 두근 반 세근 반. 세상에, 목차를 펼쳐보니 우후죽순처럼 짧고 긴 제목이 늘어서 있다. 이 작품은 김종광 작가가 지난 20년 동안 기고한
총 1500편의 산문 중에서 126편을 추려 한 권으로 엮은 책이라고 한다. 20년이란 세월, 쟁쟁한 다른 글을 제치고 책에 실린 126편.
숫자에서 이미 내공이 느껴진다. 짬 날 때마다 작디작은 조각천을 엮고 엮어 하나의 이불이 되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린 셈이니 귀한 선물 맞이하듯
한 꼭지마다 정성스럽게 읽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타나면 틈틈이 필사도 해가면서!
옷도 꿰매고 손도 따며 체기를 내려주던 바늘, 어느샌가 꼭 하나씩 잃어버리던 단추, 낡아서 고물로
넘긴 컴퓨터, 어쩐지 어색한 찜질방, 도무지 맞출 수 없어 한참 씨름한 큐빅까지 생활 속 갖가지 물건에서 글이 솟아오른다. 소소한 모든 것이
글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 글을 쓰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아도 막상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반짝이는 커서와 오랜 눈싸움을 벌이는 내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도 글을 풀어낼 수 있구나. 이 책에는 대한민국에서 작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가는 고충, 일단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 사소한 일로 벌이는 부부싸움, 책에 대한 집착과 열망, 선거와 국회의원 혹은 법과 식목일 등
불편한 현실에 가하는 따끔한 일침, 무심한 듯 내비치는 날카로운 비판 등등 시간과 공간, 주제와 대상을 막론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웃어라, 내 얼굴』이라는 제목 때문에 배꼽 잡고 깔깔 웃을 상황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을 만큼 이 책은 진지하고 알차다. 그래도 웃음
포인트가 없다면 아쉬운 법. 빵 터진 순간도 있었다. 청소년의 독서 실태와 그에 따른 영향에 관해 열변을 토하고서 작가가 던지는 말. "이렇게
이상한 생각을 많이 한다. 나도 내가 정상이 아닌 것 같다고 느낄 때가 많다. - p264(책을 많이 읽으면)" 분명 궁서체로 또박또박 적은
진지한 대사일 텐데, 나는 웃어버렸다. 이 순간이 유일무이하게 깔깔 웃은 순간이었지만, 책에 실린 글이 전반적으로 꽤 흥미롭다. 대학 등록금과
비교하면 유치원 비용은 싸다는 말도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책 안 읽는다는 말도 정말 다 옳은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던 시간. 적당한
무게감과 글에서 풀풀 풍기는 아재표 진솔함 덕분에 마지막까지 재밌게 읽었다. 만족!
『웃어라, 내 얼굴』을 읽으며 손으로 적어본 문장들. 1500편에서 126편으로 그리고 다시 종이 한
장에 담겨 내 마음속에 들어온 녀석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며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TV를 보고 잠시 낮잠을 청할 때마다
문득문득 떠오를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내 마음에 쏙 든 문장을 공유해본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 따로 있을 수 없다.
독서하는 그때가 그 사람의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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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28, 독서하는 때가 가을이다 中에서..."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우리에게 매일이 가을이기를!
그리고 부디 더 많은 사람이 365일 독서의 가을을 즐겨 글 쓸 맛 나는 세상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