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뱀과 나
와이지 지음 / 벨벳루즈 / 2018년 2월
평점 :
첫눈에 반한 김경호를 놓지 못해 평생을 얽매어 사는 차연희와 그녀와 성격부터 사랑까지 닮은 차현오의 절절한 집착과 집요한 사랑이 책 분위기 전체를 무겁고 끈적하게 이끌어 가는게 취향에 맞아 좋았습니다.
어머니 김은미와 둘이 단란하게 살던 차(김)가은은, 어머니의 소원에 따라 병에 걸린 아버지 김경호에게 간을 떼어주는 조건으로 김경호의 집에 들어가 살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가은은 날이 갈수록 현실의 무게에 눌려버립니다. 그런 가은의 마음의 틈을 헤집어 놓는 차현오의 집착과 계략은 보는 재미를 주었습니다. 차현오의 집착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은밀하고 계획적이어서 앞뒤 가리지 않는 차연희의 집착과는 달라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배다른 남매이지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현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은의 심리도 남매관계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납득 가능했습니다. 차현오와 차가은 둘만 놓고 보면 나쁘지 않은 애정관계에 끈적함과 질척함이 가득한 느낌이 참 좋았어요. 제목대로 뱀과 이브와 선악과에 딱 들어 맞는달까요.
하지만 여기에 김경호가 뿌려지면서 이야기가 막장드라마로 전개되어 아쉬웠습니다. 바람처럼 흘러가는 남자를 묶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차연희가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갖지 못하는 절망, 다른 여자에게서 아이를 낳았다는 비참함, 영원히 자신에게 속하지 않을 남자를 바라는 덧없음을 차가은을 학대하는데 풀면서 자신의 추함에 상처받는다는게 안타깝기는 했지만 김경호에 집착하는 이유 자체가 이해가 안되다보니 설정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차연희는 타고나길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는데 그게 작품에 크게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습니다. 임수광 실장한테나 집착하지...
유언으로 '네 간을 떼어 주고 그 집에 들어가 살아라'라고 한 차가은의 어머니 김은미 역시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자기를 비웃으며 떠나간 남자가 뭐 그리 좋다고 딸의 간을 떼어주고 같이 살라고 하나요. 그 상황에서 자기 간도 아닌 앞날이 창창한 딸 간을 떼어 줄 만큼 신뢰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어요. 가장 이해 안되는 것은 천하의 나쁜 놈 재활용도 못할 쓰레기 김현오를 만나는 여자마다 평생 못잊고 사랑한다는 설정이었습니다. 김현오가 매력이 없다 보니 차연희의 집착도 김은미의 결정도 납득이 어려웠어요. 특히 차연희 곁을 지키는 임실장이 매력적이라 김현오는 더욱 매력 없어 보였네요. 제가 놓친 김현오의 매력이 있나 싶어 책을 두 번 읽었는데 역시 그런 건 없었습니다.
책이 단권이고 분량이 많지 않다 보니 인물간 감정선이나 인물의 성격이 자세히 묘사되지 못한 것이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트렸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기엔 김경호 김은미 차연희 차현오 모두 성격이 쎄고 평범하진 않았거든요. 인물에 대한 이해를 접어 두면 배다른 형제 + 재벌 + 집착 + 소유 + 광기로 기대할 수 있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