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3 - 한국고전걸작유머
김현룡 엮음 / 자유문학사 / 2008년 1월
품절


옛날부터 부모를 봉양하면서, 부모가 병들었을 때 자식의 살이나 뼈를 약으로 먹여 낫게 했다는 이야기는 더러 전해지고 있다.
조선 후기 본 「어수신화」의 편저자인 장한종이 만나본 사람 중에 이사춘(李師春)이란 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 역시 그와 같은 일을 한 효자였다.
이사춘은 연세가 많은 모친을 모시고 살면서 효도를 다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그 때 모친의 몸에 온통 창질(瘡疾), 곧 종기가 돋아서 여러 해 동안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에 백방으로 약을 구해 치료해 보았으나 별 효험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춘은 어떤 사람아게서 '사람의 살을 약으로 해 먹으면 창질이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곧 자신의 살을 베어 모친의 약으로 해드리겠다고 결심하고 물을 길어다 몸을 깨끗이 씻은 다음, 칼로 자신의 허벅지 살을 잘랐다. 이렇게 배어낸 살을 모친께 드리자, 얼마 후 종기가 조금 가라 앉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자 모친의 창질은 다시 덧나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허벅지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이사춘은 다시 그 살을 잘라 모친께 드렸으나, 병은 그래도 완전히 낫지 않았다.-126~128쪽

이사춘은 또다시 허벅지 살을 베어냈고, 이렇게 하기를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행하니, 비로소 모친의 창질은 완전히 낫게 되었다. 이후 모친은 여든 살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훗날 이사춘은 장교로 임용되어 일을 보다가, 어떤 일로 죄를 짓게 되었다. 그래서 곤장을 치려고 아랫도리를 벗기니, 허벅지에서 엉덩이에 이르기까지 칼로 자른 흔적이 역력하여 통제사가 보고서 그 까닭을 물었다.
"네 몸에 난 칼자국은 대체 언제, 무슨 일로 생긴 것인지 어서 아뢰어라."
이에 이사춘은 지난날 모친의 창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그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직접 살을 잘라낸 흔적이라고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통제사는 머리를 숙이며,
"내 사람으로서 차마 효도하기 위해 살을 잘라낸 상처에 곤장을 칠 수가 없구나. 벌을 중지하도록 하라."
라고 명령을 내려 그 죄를 용서해 주었다.
훗날 이사춘은 벼슬이 가선대부(嘉善大夫:종2품 벼슬)에 이르렀고, 섬진별장(蟾津別將)과 덕적첨사(德積僉使)를 역임했다.-126~128쪽

당시 이사춘이 감목 영내(監牧營內)에 들어올 일이 있어, 감목관으로 있던 장한종이 만나볼 기회가 있엇다고 하는데, 그의 사람 됨됨이가 매우 성실해 보이더라고 그 소감을 피력하고 있다. <어수신화>-126~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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