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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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선 이 책, 너무 웃긴다. 이 작가, 전직이 코미디언 아냐? 싶을 정도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예상치 못한 유머들이 마구마구 튀어 올라, 시종 웃다가 책장을 덮게 된다. 그리고 웃음의 자락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경쾌한 힘이 가득가득 실려 있다.
2004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공중그네'의 주인공 이라부와 마유미 커플이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인더풀'은 2002년에 출간되었고, '공중그네'에 앞서 먼저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하지만 출간 시기 따윈 상관없다. 엽기 커플이 엮어가는 에피소드들은 제각각 독립적이라 어느 것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이라부와 마유미만 등장하면 그저 만사가 OK다!
(물론 전체적으로 '공중그네'가 '인더풀'에 비해 별 반 개 정도 더 앞선다. 보다 완성된 이라부 캐릭터를 보고 싶다면 '공중그네'를 필히 읽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세상 모든 고민과 문제들을 일순간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엽기 커플이 있다. 어린 아이 같은 대책없는 순진함과 황당한 장난끼로 똘똘뭉친 거대한 체구의 엽기 의사 이라부와 매사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사만 놓는 육감적인 몸매의 미녀 간호사 마유미가 그들이다.
환자(처음에는 분명 환자라고 인식한다)들은 그들의 지하 세계로 발을 들인 후, 차츰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끝내 멀쩡한 사람이 되어서 지상으로 걸어나간다. 그 지하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법사도, 초능력자도, 외계인도 아니다. 특별한 약물을 투여하는 것도, 거창한 수술 같은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꾸준히 주사만을 놔 줄 뿐이다. 그리고... 그냥 노는 거다. 주사 맞고, 한바탕 신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병 따위는 없다. 자신이 지극히 정상인으로 돌아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라부의 처방은 간단하다.
환자와 똑같은 위치에서 같이 노는 거다. 그렇게 해서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시킨다. 완화된 문제를 환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직시할 수 있도록 만든다. 가만히 직시하면 지금껏 심각하게 끙끙 앓아왔던 그 문제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스스로 자각한다. 자각의 순간 환자는 더이상 환자가 아니다. 환자는 유쾌한 발걸음으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라부는 환자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찰싹)달라붙어 그저 신나게 논다. 신나게 놀고 나면 환자는 사라지고, 그저 인간만 남는다.  지하 세계에서 장난꾸러기 이라부와 무뚝뚝한 섹시녀 마유미와 더불어 잘 놀고 지상으로 올라서면, 환자는 인간으로 돌아가고, 덤으로 세상을 살아갈 충천된 힘까지 얻게 된다.
 
현대인은 많은 문제와 스트레스 속에서 늘 인상을 찌푸리며 살아간다.
무엇을 하든 인상을 찌푸린다. 거지도, 부자도, 잘난 놈도, 못난 놈도, 학생도, 어른도... 그래서 찌푸리는 게 병인줄 안다. 심각하게 병원을 찾아와 자신이 얼마나 스트레스에 짓눌려 살고 있는지를 토로한다.
그러나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99%는 그저 심리적인 문제일 뿐이다. 찌푸린 인상을 그저 펴기만 하면 대부분 사라지는 문제들이다. 더구나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99%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신이 억지로 문제를 껴안고 있는 경우들이다.
이라부는 그런 사람들이 찾아오면 가슴에 안고 있는 문제들을 스스로 놓아버리게 만든다.
문제 해결은 그렇게 간단하다.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는 일면 엄청나게 심각해 보여도, 또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인더풀'에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다섯 명의 환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환자가 아니다. 환자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만일 그들이 환자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환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저마다 안고 있는 문제들은 현대인들의 99%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의 대부분이 바로 '강박증'이다. 현대인은 대부분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강박증은 따로 치료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강박에서 벗어나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도 대단히 어려울 수도 있고, 또 대단히 쉬울 수도 있다. 지상의 세계에서 본다면 어려운 일일 수 있으나, 이라부와 마유미가 사는 지하의 세계에서 본다면 이것은 대단히 쉬운 일이 된다. 그래서 이라부는 환자들의 고민을 심각하게 듣지 않는다. 이라부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고민이 전혀 심각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라부는 자신과 똑같은 심정을 환자가 느끼도록 해 준다.
즉, 네가 안고 있는 문제는 전혀 심각하지 않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 나처럼 해 봐라. 나를 따라 해봐~ 아, 그 전에 일단 주사부터 한 대 맞고~ 명색이 병원이니 주사는 맞아야지~ 더구나 엄청나게 섹시한 미녀가 놔 주는 것이니 안 맞을 수 없잖아~ 자, 한 대 맞고, 노는 거야~ 놀다보면 인생은 즐거워지고, 그 딴 고민은 인생을 즐겁게 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당신이 지금 안고 있는 문제는 어쩌면 아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지하 세계에서 이라부와 마유미를 만나보면 그것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즐겁고, 천진난만하게, 이라부처럼 말이다.
 
'남쪽으로 튀어', '공중그네'에 이어서 세번째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으며 새삼 감탄한다.
이 작가, 정말 프로다! 작가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이 정도 유머에, 이 정도 스토리는 만들어 낼 줄 알아야 작가지! 그 참, 이야기 같지도 않은 구태의연하고 싱거운 이야기를 들고 작가랍시고 폼 잡는 짝퉁 작가들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오쿠다 히데오 같은 출중한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은 필시 행운이다. 고민남녀가 이라부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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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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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두번째 소설집은 대체적으로 붕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무 이상 없이 견고하게 지켜왔다고 믿어온 당신의 오늘이, 가치관이, 어느 순간 금이 가거나 무너져 내린다면, 벌어진 틈새 사이로, 무너진 조각들 사이로 당신이 전혀 짐작하지 못 하고 있던 진실이, 혹은 생의 이면이 드러난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당신의 오늘은 과연 안전한가?
이런 물음을 던지는 이야기들이다. 
이런 주제를 대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 현대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삼풍백화점'이다. 고도로 성장한 자본주의의 표상과도 같았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면서 '나'의 마음 한 켠도 무너진다. 그 한 켠에는 20년 가까이 제도교육의 장에서 길들여 진 나의 가치관과 그 가치관에 종속되어 구태의연하게 지내왔던 지난 24년의 삶이 담겨 있었다. 그것들이 무너지면서 기성세대가 이룩한 사회 가치관에 편입되어 어정어정 걸어왔던 나의 삶에도 변화가 생긴다. 24년을 지배해 온 무료하고 무력했지만, 무탈했던 세계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 다른 세계로의 진입을 시도할 수 있게 된다. 즉, '나'는 그 이후, 글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분히 작가의 자전 소설로 읽힐 수 있는 '삼풍백화점'은 이 소설집을 대표할 수 있을 만큼의 재미와 감동을 담고 있음은 물론, 전작인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실린 소설들과는 시선과 주제와 분위기가 확연히 차이 나는 소설이기도 하다. 첫번째 소설집 이후 4년만에 정이현의 시야는 더욱 먼곳까지 틔였으며, 말하고자 하는 주제 또한 보다 보편적인 공감과, 대중적인 감동을 아우를 수 있는 쪽으로 변했다.
정이현은 확실히 변했다. 첫번째 장편인 '달콤한 나의 도시'는 다분히 '낭만적 사랑과 사회'의 연장선 상에 있는 듯 했으나, 두번째 소설집인 '오늘의 거짓말'은 앞서의 두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정이현 특유의 순발력과 감각은 여전히 살아있으나, 시선은 더욱 섬세하면서도 날카로워졌으며, 다루는 이야기와 주제는 보다 넓고, 깊어졌다.
 
또한 번득이는 상상력도 전작들에 비해 훨씬 좋아졌는데, 그래서 이번 소설집에서 그야말로, '소설적 재미'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기발한 상상력이 이야기를 풍요롭게 만든다. 현실을 뒤흔드는 생각(상상)지도 못한 난감한 사건(균열)이 발생하고, 이야기는 위태롭게 약동하며 결말을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이혼한 전처가 키우던 개가 어느날 택배로 배달되어 지고, 마흔아홉번째 생일날 아들이 저지른 기막힌 사고 소식을 접하게 되고, 아파트 위층에서 이미 죽은 전직 대통령을 만나고, 담배를 사러 나왔다가 아파트 문이 잠겨 거리를 배회하고 몸에서 이상한 악취가 나기 시작하고, 2022년 미래의 한 연구원이 2004년 과거 한 여고생의 죽음의 진상을 파헤치게 되고, 정신상태가 스물다섯살에서 멈춰버린 친구를 만나게 되고, 유아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남편을 의심하게 되고, 흠 잡을 것이 없어 보이던 유능한 남자친구의 기이한 성적 취향을 알게 되고...
때론 우스꽝스럽고, 때론 섬뜩한 현대인의 초상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신선한 문장들로 속도감있게 그려진다. 가슴을 졸이며 정신없이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을 서늘하게 쓸어내리는 감동을 느낄 수 있다.
 
솔직히 정이현이 이런 소설들을 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첫번째 소설집을 읽었을 때만 해도...
시종 인상을 찌푸리며 정말 짜증스럽게 읽었던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 비해 '오늘의 거짓말'은 같은 작가가 쓴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며 읽었다. 흥미진진하게, 감탄을 하면서...
이런 소설들을 쓸 수 있는 작가라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분위기로 소설을 써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여성들의 쿨한(척 하는) 연애담은 이제 그만 쓰고, '삼풍백화점'이나 '오늘의 거짓말' 같은 소설들을 더 많이 써 줬으면 좋겠다.
이런 소설집이라면 책값 만 원이 전혀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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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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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롯은 한 마디로 지겨운 소설이다.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심사위원 평 중의 하나다. 김형경은 이 소설을 두고 '도박과 여자에 관한 이야기의 모든 뜨거운 통념들을 조용히 배반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조용히 묻고 싶다. 그럼 도대체 당신이 생각하는 도박과 여자에 관한 이야기의 모든 뜨거운 통념은 무엇이냐고? 이 평은 아무리 봐도 그저 생각없이 툭 던진 주례사 평에 지나지 않는다. 세번째 수상작의 면면을 살피기 위해 일년을 기다려온 독자들을 조용히 배반하는 평인 것이다. 
 
미리 얘기하는데, 나는 이 소설에 대해서 단 한 마디도 칭찬을 해 줄 것이 없다. 우선 김형경이 한 저 평을 그대로 뒤집는 것이 나의 첫번째 평이 될 것이다. 
즉, 이 소설 '슬롯'은 
'당신이 도박과 여자에 관해 생각할 수 있는 뻔하디 뻔한 통념'
바로 그 이야기들이다. 
바로 내가 생각하고 우려했던 그 뻔하디 뻔한 통념들이 조금의 배반도 없이 그대로, 오히려 짜증스러움만 더 가중되어 묵묵히 펼쳐지고 있었다.  
 
도박과 여자에 관한 이야기란다. 그건 맞다. 그러나 지리멸렬한 도박과, 지리멸렬한 여자 이야기다. 밋밋하게 시작해서, 지루하게 전개되고, 짜증나게 늘어졌다가, 다시 밋밋하게 끝난다.
 
남자가 카지노로 간다. 헤어졌던 옛 애인과 함께.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냐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카지노를 어슬렁거리면서 슬롯머신을 당기거나 재미도 없고,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지루한 인용만 늘어놓는다. 가끔씩 박식한 척도 하지만 매력적이지도 않고, 감탄스럽지도 않다. 
매력있는 캐릭터는 한 명도 없고, 서사는 대단히 빈약하다.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나긴 하지만 죄다 시답잖은 것들 뿐이다.
그리고 정말 마음에 안드는 것은 작가의 여성 판타지다. 
옛 애인이 아무 이유도 없이 남자와 카지노로 가고 한 방을 쓴다. 그 여자는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며 아직도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리고 카지노에서 젊고, 역시 아름다운 여자를 새로이 만난다. 그 여자도 어쩐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또, 일곱살짜리(도무지 일곱살짜리 같지 않은) 예쁘장한 꼬마 여자아이를 만난다. 그 여자도 어쩐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또, 꼬마 여자아이의 엄마(역시 아름다운)도 만난다. 그 여자도 어쩐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심지어는 술에 취해서 함께 호텔까지 간다.
장난하나, 지금? 
세상 여자들이 애,어른 할 것없이 죄다 자기를 좋아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남자가 대단한 미남도, 부자도 아니고, 성격이 좋거나, 유머러스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되면 이건 판타지가 아닌가? 웃기지도 않는 판타지다. 어설프게 하루키를 흉내낸 것도 같은데 하루키 소설만의 멋과 매력이 모두 빠지고, 분위기가 괴상하게 변질되면 이런 지루하고 짜증나는 판타지가 나올지 모르겠다.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여자들의 심리도 이해할 수 없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짜증날 뿐더러 여자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대사 자체도 딴에는 쿨하게 보이려 애썼는지 몰라도 식상함과 어색함이 반반일 뿐이었다. 특히 일곱살짜리 아이 명혜의 말이나 행동은 상당히 유치하고(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어색하고, 거북스러웠다. 꼬마아이를 왜 그런 식으로 만들었는지 작가의 의도가 궁금하지만, 기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여자들에게 부여되는 각자의 삶과 사연들이 너무도 뻔한 것이거나, 재미없는 것이라 굳이 소설이라는 서사장르를 통해 그것들을 구현할 필요가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뻔하거나 재미없거나... 이 소설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실에서 크게 실망했다가,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가까스로 만회가 되었는데, 슬롯에서 다시 미실 이상의 실망을 하게 된다. 단단히 실망을 했다. 실망이란 작가와 심사위원 모두에 대한 것이다.  
정녕 이 작품보다 더 뛰어난 작품이 없었단 말인가? 이 작품보다 더 재미있는 작품이 정말로 없었단 말인가? 1억 고료의 세계 문학상 응모작 수준이 그 정도 밖에 안 되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 상의 존폐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심사위원들은 가독성이라는 말로 이 소설을 칭찬하고 있다. 가독성이라는 말이, 특히 최근의 국내 문학상 심사위원들의 입에서 너무 쉽게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뽑아놓고는 무조건 한다는 소리가 가독성 있는 작품이란다. 그렇게 가독성이 뛰어난 작품인데 왜 안 팔리는 것일까? 왜 일본 소설들에 줄창 밀리고 있는 것일까?  왜 독자들의 외면을 받을까? 
가독성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않았으면 한다. 
이 소설은 근자에 읽은 가장 실망스런 한국소설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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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8-18 21:03   좋아요 0 | URL
솔직한 평가에 맘이 확~ 땡기는군요. 물론 제가 사서 읽지는 않겠지만,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기는 해야겠어요 ^*^

리아트리스 2007-08-20 00:15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정말 실망했지만, 또 재미있게 본 분들도 의외로 많더군요. 어차피 소설의 평가는 평론가가 아닌 독자의 몫이니, 님은 또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 지 궁금하네요^^
 
하트 모양 상자 모중석 스릴러 클럽 10
조 힐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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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 물건 수집광인 과거의 록스타 주드는 인터넷을 통해 유령 붙은 양복을 구입한다.
그때부터 주드와 귀신과의 필사의 사투가 시작된다. 양복과 함께 하트 모양 상자에 담겨온 귀신은 엄청난 적의와 소름끼치는 집념으로 주드를 공포와 죽음의 끝으로 내몬다. 주드는 젊은 애인과 함께 귀신으로부터 도망다니는 한편, 귀신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도 애쓴다.
귀신은 누구인가? 귀신이 주드에게 배달되어진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귀신은 왜 주드를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하트 모양 상자'는 한 마디로 잘 쓰여진 공포소설이다. 이렇게만 쓴다면 모두가 입을 다물 것이다. 공포소설을 하위문학으로 취급하는 고매한 순문학 작가들도, 평론가들도 이 작품 앞에서는 입을 딱, 다물고 말 것이다. 그만큼 '하트 모양 상자'는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다. 비판의 날을 들이댈 자리가 거의 없다. 소재의 선택도 좋았고, 주제도 명확하며. 구성도, 문장도 탄탄하다. 시종 여유를 잃지 않는 작가의 태도도 마음에 들고, 유머도 훌륭했다. 젊은 나이에 브램스토커상을 수상한 작가의 빛나는 경력이 과연 믿음직스럽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누구나 칭찬할 수밖에 없는 작가고, 소설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포소설 매니아로서의 기대에는 조금 만족스럽지 못 하다는 것이다. 이것도 물론 시각의 차이일 것이다. 이 작품이 그저 훌륭하고, 재밌게만 읽히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마도 이 작품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나는 젊은 신예 작가 조힐이 아버지를 뛰어넘는 공포(혹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공포)를 보여주길 기대했었다. 더 젊고, 더 감각적이고, 더 파격적인, 더 무섭고, 더 역동적인, 더 놀라운 환상과, 공포와 서사를 보여주길, 더 새로운 환상문학의 길을 열어주길, 기대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트 모양 상자'는 무난했다. 무난하다 못해, 조금 낡은 느낌까지 들었다. 조힐은 특별히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탄탄하고, 안정적인 문장으로, 탄탄하고 안정적인 소재를 택해, 탄탄하고 안정적인 이야기를 펼쳐 나갈 뿐이었다. 귀신이 나오고, 귀신의 정체를 파악하고, 귀신에 얽힌 원한의 내용을 알게 되고, 귀신과 최후의 사투를 벌인다는, 탄탄하고 안정적이지만, 조금은 낡은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젊은 감각으로 새롭게 첨가된 공포나 서사는 없었다. 너무 무난한것도 흠이라면 흠일 수 있을 것이다.
분량이 너무 길다는 것도 작은 흠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까지 길게 나갈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이 아닌데, 중편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다면 더욱 깔끔하고 흡인력 있는 소설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주인공의 내면과 일상을 너무 세밀하게 묘사하다 보니 사실성은 살아났으나, 메인 스토리의 진행이 느린 듯 하여 조금은 불만스러웠다.
또한 조힐은 내 기대와는 달리, 아버지의 모습와 너무 흡사했다. 이 소설은 작가를 '스티븐 킹'으로 슬쩍 바꿔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킹의 작품 분위기와 닮아 있다. 물론 그 대단한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분위기를 닮았다는 것은 이미 작가의 역량이 아버지에 많이 근접했음을 뜻한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힐은 아직 젊은 작가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나는 그가 언젠가는 아버지의 역량을 뛰어넘어 새로운 환상문학의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공포를 창조해 낼 것임을 믿는다.
작가의 첫 장편인 '하트 모양 상자'를 읽고 나면 적어도 그런 믿음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여하튼 '하트 모양 상자'는 잘 쓰여진 훌륭한 소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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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실로의 여행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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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 한 노인이 갇혀 있다. 노인은 고립되어 있다.
노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며, 이곳이 어디인지, 왜 갇혀 있는 지 알지 못 한다. 처벌 받기 위해 갇힌 것인지, 보호 받기 위해 갇힌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노인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 한다. 그의 앞에는 한 묶음의 원고와 몇 장의 사진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사진 속의 인물들이 한 사람씩 노인을 찾아온다. 노인은 자신 앞에 놓인 원고와 사진과 방문객들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복원해 내야 한다.
원고와 사진과 방문객들에게서 하나씩 실마리를 찾아가며 노인은 끊어진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현실은 모호하기만 하고, 진실의 실체에 접근해 간다고 생각할수록 두려움과 혼란은 가중된다. 진실은 무엇이며, 노인의 과거는, 그리고 현재는, 또 미래는 어떤 모습이며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폴 오스터는 기발한 상상력과 감각적이고 치밀한 구성으로 시작부터 소설 속 캐릭터를 혼란에 빠뜨린다. 캐릭터가 혼란을 거듭할 수록 독자도 혼란에 빠진다. 캐릭터가 진실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뒤집히기도 한다. 진실은 언뜻언뜻 모습을 드러내보이다가도 순식간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다. 진실은 시종 숨어 있다. 아니, 어쩌면 진실따위는 애초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그것을 캐릭터에게 스스로 찾게 하거나, 혹은 스스로 만들기를 종용하는 듯 하다.
그래서 캐릭터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간다. 오로지 머리(상상) 속으로만 진행되는 운명이지만, 그것은 나름 제모습을 갖춰가며, 캐릭터에게 실존의 색깔을 입힌다. 캐릭터는 소설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재구성하고, 미래를 그려나간다. 물론 난관은 많다. 우선 몸이 자유롭지 못 하다는 게 가장 큰 장애다. 그는 어쨌거나 원고(감금된 방) 속에 갇힌 인물이니까...
결말이 어떻게 될 지는 캐릭터도 모르고, 독자도 모르고, 심지어는 소설가도 모른다.(물론 소설가는 안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끝이 나니까) 
각자의 상상으로 결말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런 것이 인생이고, 소설도 인생이니까,
소설 속의 캐릭터도 결국은 인생을 살아가는 거니까...

지금까지 읽은 폴오스터의 소설 가운데서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기록실로의 여행'은 폴 오스터의 2006년 최신작이며, 그 대단했던 '공중 곡예사'나 '뉴욕 3부작'보다 더 강한 흡인력과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참으로 독특한 소설이다.
분량은 고작 200여 페이지로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짧은 편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엄청난 것이다. 심지어 그 끝이 열려 있어, 책을 덮고도 아직 소설이 끝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독자의 머릿속에서, 일상에서, 무의식중에 끝없이 이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소설이다.  

소설 속 노인이 감금된 방 안에 홀로 갇혀 정체성을 찾고, 스스로 실존을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처럼, 폴 오스터라는 작가도 아마 그런 치열한 고뇌와 탐구를 거듭하면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할 것이다. 소설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타자는 영원한 타자일 뿐, 나의 문제에 큰 도움을 주지 못 한다. 결국 혼자만의 싸움이고, 노력이며, 고통이고, 즐거움이다. 그 지독한 과정을 열렬히 사랑하고, 즐기지 못 한다면 진정한 소설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산다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제한된 공간, 제한된 자유 안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탐구하고, 증명하고, 미래를 개척해 나가야만 하는 무모하고 고된 작업. 그러나 그 작업을 한 순간이라도 멈추게 된다면, 존재는 순식간에 공백(blank)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인생은 미완으로 남을 것이다. 쓰다 만 미완의 원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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