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말하는 하얀 고래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엄지영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래는 인간에게 무해한 존재다.
집채보다도 큰 덩치를 자랑하지만 적어도 인간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 사납다고 소문난 바다의 폭군 범고래조차도 인간에게는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다. 백상아리마저 물어 죽이는 포악한 범고래지만 인간을 물어 죽인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오히려 인간을 만나면 신기하고 즐겁다는 듯 반응하며 따라오고, 심지어 상어 같은 종의 위협에서 인간을 지켜주기까지 한다. 해표를 사냥하던 범고래가 해표가 인간의 선박 위로 뛰어 도망가자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 동영상 같은 걸 우리는 손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인간은 고래를 사냥하고 죽인다. 쉼 없이 끈질기게 오랫동안. 숱한 고래가 인간의 손에 사냥당했다. 바다에서는 적수가 없는 고래가 콩알만 한 인간들의 손에 착실히 죽어나가 어느덧 절멸 위기에 이른 것이다.

인간은 왜 고래 같은 동물을 죽이려 들까.
이 소설에서 나타난 이유는 고작 고래 몸속의 기름을 얻기 위해서다. 그 기름으로 불을 밝히기 위해서인 것이다. 참으로 이기적인 이유가 아닐 수 없다. 배고픔이나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잘난 문명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라니. 하긴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굳이 집채만 한 고래를 사냥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배고픔 외에 다른 수많은 이기적인 이유로 고래를 죽이고, 곰을 죽이고, 호랑이를 죽이고, 수많은 지구상의 동물들을 죽이는 것이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종을 이어갈 수 있는 동물은 없다. 결국은 멸종하는 것이다. 도도새처럼. 고래가 한 마리도 살지 않는 바다를 인간은 원하는 것일까.
인간의 끝없는 위협으로부터 동족을 지키기 위해, 바다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하얀 향유고래의 모습이 마치 환경 보호를 위해 헌신한 작가의 생전 모습 같아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자신의 몸이 너덜너덜해지더라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존재가 있어 세상이 이만큼 유지되는게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장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책에 대한 반감이 든다. 페이지마다 그토록 많은 여백이 왜 필요했을까. 작가는 본인이 가꾸는 정원의 식물에 대해 대단한 애정을 보였는데 어째서 낭비되는 종이, 베어지는 나무에 대해서는 애정을 가지지 않는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신의 이야기 속으로 걸어들어간 작가. 인생의 덧없음과 이야기의 효용성에 대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돌아보면 희미하게 반짝이는 몇 개의 추억으로 기억되는 게 인생이다. 가물거리는 몇 개의 추억들, 몇 개의 단상들을 이어가며 생의 모습을 드문드문 그려갈 수 있다. 기억할 수 있는 장면들로만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자신의 삶에 투영된 타인의 삶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기억과 망각은 내 의지와 상관없을 때가 많다. 기억하고 싶은 것은 기억나지 않고, 기억하고 싶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의식 어딘가에 또렷이 남아 두고두고 반추되곤 한다.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기억되지 않을지. 우리는 선택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기록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기록되지 않은 것들은 대부분 우연에 기대어 망각과 기억을 오간다.

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바움가트너가 불현듯 아내에 대한 추억에 젖어든 것도 우연 때문이었다. 우연히, 정말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을 겪다가 아내와의 일을 떠올리고, 그녀를 기억한다. 자기 안에 깃든 그녀에 대한 몇몇 추억 속에서, 그녀라는 인간의 모습을, 인생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그녀 인생 속에 깃든 자신의 모습, 자신의 인생까지 더듬어간다. 맥락 없이 떠오르는 추억의 단상 속에서 바움가트너는 자신과 아내의 인생이 속절없이 엉키고 뒤섞이는 것을 발견한다. 섞여들 것 같지 않았던 그녀의 인생이 바움가트너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순간이 너무도 덧없다. 너무도 우연적이고, 운명적이다. 그 모든 기억들은 사실 바움가트너만의 기억이고, 정확히는 바움가트너의 주관적인 기억이다. 같은 장면, 같은 사실에 대한 기억이라도 아내와 바움가트너의 기억이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내에 대한 모든 기억은 바움가트너만의 것이고, 그 자신만의 이야기다. 그것을 떠올리고, 떠올린 기억을 쓸 수 있는 이는 바움가트너뿐인 것이다.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아내도 자신만이 쓸 수 있는 많은 글을 남겼다.

바움가트너는 아내가 남긴 수많은 시를 선별하여 출간했다. 그는 종종 아내의 시 속에서 그녀의 모습을, 또 그녀의 인생을 읽는다. 그리고 그 모습, 그 인생 속에 깃든 자신의 모습을 또한 찾을 수 있다.

인생은 누구나 기억하는 대로 그 형태를 갖춰가는 것이다. 옳고 그름은 없다. 내 인생이라고 해도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인생과,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인생이 다를 수 있다. 누구도 한 사람의 인생을 자신 있게 그려갈 수 없고, 누구도 그 인생을 몇 마디 단어로 정의할 수 없다. 그 인생을 실제 살아온 장본인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폴 오스터는 자신의 유작이 되어버린 '바움가트너'를 통해 우연과 운명이 지배하는 생의 덧없음을 역설하며 동시에 이야기의 효용성에 대해서도 말한다. 몇 개의 반짝이는 추억들, 생을 비추는 몇 개의 일렁이는 불빛들에 기댄 인생의 모습이란 불확실하고 덧없다. 무엇이 기억되고 무엇이 기억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마저도 죽는 순간 사라진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남아 겨우 존재한다. 기록되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인생의 덧없음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인생은 사라져도 이야기는 남는다. 인생이 이야기를 닮은 것처럼 이야기는 인생을 닮았다. 모든 이야기에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누군가의 인생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인생은 결국 이야기로 그려져야만 할 운명인 지도 모른다. 폴 오스터 같은 소설가가 세상에 존재했던 이유일 것이다. 이야기가 없었다면 그 자체로 우리의 인생은 황폐했을 것이고, 인생을 이야기할 기회조차 많이 없었을 것이다. 인생은 이야기로 이어지고, 이야기는 인생으로 이어진다. 폴 오스터의 인생이 '바움가트너'로 이어지고, '바움가트너'가 폴 오스터의 인생으로 이어진 것처럼.

전작인 '4321'을 작업하며 폴 오스터는 이미 인생의 덧없음과 이야기의 효용성에 대해 역설한 바 있다. 유작 '바움가트너'를 통해 작가는 앞선 작업의 마침표를 찍는 동시에 자신이 만든 이야기 속으로 걸어들어가 버렸다. 그가 내 가슴에 남긴 몇 개의 반짝이는 추억들, 반짝이는 불빛들은 그의 자취인 동시에 나의 인생, 나의 이야기의 일부가 될 것이다.

폴 오스터라는 작가는 사라졌어도 그는, 그의 인생은 그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존재하고,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수많은 독자의 가슴속에서도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쇄 위픽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종 전문가 마냥 전투의 기술을 전수하는 장면들이 매우 식상하고 작위적이며 비전문적으로 보였다. 파과의 사족에 가까운 단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