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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 모양 상자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0
조 힐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희귀 물건 수집광인 과거의 록스타 주드는 인터넷을 통해 유령 붙은 양복을 구입한다.
그때부터 주드와 귀신과의 필사의 사투가 시작된다. 양복과 함께 하트 모양 상자에 담겨온 귀신은 엄청난 적의와 소름끼치는 집념으로 주드를 공포와 죽음의 끝으로 내몬다. 주드는 젊은 애인과 함께 귀신으로부터 도망다니는 한편, 귀신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서도 애쓴다.
귀신은 누구인가? 귀신이 주드에게 배달되어진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귀신은 왜 주드를 죽이려고 하는 것일까?
'하트 모양 상자'는 한 마디로 잘 쓰여진 공포소설이다. 이렇게만 쓴다면 모두가 입을 다물 것이다. 공포소설을 하위문학으로 취급하는 고매한 순문학 작가들도, 평론가들도 이 작품 앞에서는 입을 딱, 다물고 말 것이다. 그만큼 '하트 모양 상자'는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다. 비판의 날을 들이댈 자리가 거의 없다. 소재의 선택도 좋았고, 주제도 명확하며. 구성도, 문장도 탄탄하다. 시종 여유를 잃지 않는 작가의 태도도 마음에 들고, 유머도 훌륭했다. 젊은 나이에 브램스토커상을 수상한 작가의 빛나는 경력이 과연 믿음직스럽다.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누구나 칭찬할 수밖에 없는 작가고, 소설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포소설 매니아로서의 기대에는 조금 만족스럽지 못 하다는 것이다. 이것도 물론 시각의 차이일 것이다. 이 작품이 그저 훌륭하고, 재밌게만 읽히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마도 이 작품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나는 젊은 신예 작가 조힐이 아버지를 뛰어넘는 공포(혹은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공포)를 보여주길 기대했었다. 더 젊고, 더 감각적이고, 더 파격적인, 더 무섭고, 더 역동적인, 더 놀라운 환상과, 공포와 서사를 보여주길, 더 새로운 환상문학의 길을 열어주길, 기대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트 모양 상자'는 무난했다. 무난하다 못해, 조금 낡은 느낌까지 들었다. 조힐은 특별히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았다. 탄탄하고, 안정적인 문장으로, 탄탄하고 안정적인 소재를 택해, 탄탄하고 안정적인 이야기를 펼쳐 나갈 뿐이었다. 귀신이 나오고, 귀신의 정체를 파악하고, 귀신에 얽힌 원한의 내용을 알게 되고, 귀신과 최후의 사투를 벌인다는, 탄탄하고 안정적이지만, 조금은 낡은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젊은 감각으로 새롭게 첨가된 공포나 서사는 없었다. 너무 무난한것도 흠이라면 흠일 수 있을 것이다.
분량이 너무 길다는 것도 작은 흠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까지 길게 나갈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까지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는 소설이 아닌데, 중편 정도로 마무리를 지었다면 더욱 깔끔하고 흡인력 있는 소설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주인공의 내면과 일상을 너무 세밀하게 묘사하다 보니 사실성은 살아났으나, 메인 스토리의 진행이 느린 듯 하여 조금은 불만스러웠다.
또한 조힐은 내 기대와는 달리, 아버지의 모습와 너무 흡사했다. 이 소설은 작가를 '스티븐 킹'으로 슬쩍 바꿔도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킹의 작품 분위기와 닮아 있다. 물론 그 대단한 아버지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분위기를 닮았다는 것은 이미 작가의 역량이 아버지에 많이 근접했음을 뜻한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힐은 아직 젊은 작가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나는 그가 언젠가는 아버지의 역량을 뛰어넘어 새로운 환상문학의 길을 개척하고, 새로운 상상력으로, 새로운 공포를 창조해 낼 것임을 믿는다.
작가의 첫 장편인 '하트 모양 상자'를 읽고 나면 적어도 그런 믿음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여하튼 '하트 모양 상자'는 잘 쓰여진 훌륭한 소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