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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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아들이 초등학생 소녀를 살해한다. 남자(아버지)와 아내는 아들의 죄를 감추려고 한다. 그들은 시체를 유기하고, 음모를 꾸민다. 살인사건에서 아들을 완전히 분리시켜 놓을 수 있는 잔인한 음모를.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붉은 손가락'의 도입부는 전작인 '용의자 X의 헌신'과 닮아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헌신'적인 노력이 두 소설 모두에 들어 있다. 한 번 펼치면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도 여전하다. 그러나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다. 당연히 라스트에서 반전이 주는 감동과 충격도 다르다. 다시 말해 '붉은 손가락'은 '용의자 X의 헌신'과 비슷하게 시작하면서도 모든 면에서 '용의자 X의 헌신'에 비해 조금씩 떨어진다. 반전이 주는 충격과 감동은 물론이고, 추리소설이 주는 긴장감과 밀도도 전작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듯 하다. '용의자 X의 헌신'을 너무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어쩌면, 조금은, 실망을 할 지도 모르겠다. 특히 반전의 강도에서.

그러나 '용의자 X의 헌신'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용의자 X의 헌신'은 히가시노 게이고 최고의 작품라고 생각한다. 전작을 잊고 그저 '붉은 손가락'만 들여다본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우수한 작품임에 틀림없다. 전작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붉은 손가락'이 주는 반전과 감동에 충분히 놀라고 감탄할 것이다.

'붉은 손가락'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드라마틱한 감동이 드러나는 마지막 반전의 순간이 아니라, 그런 반전을 이끌어 내는 가가 교이치로라는 형사 캐릭터에 있다. 히가시노 게이코는 기존의 유명한 탐정 캐릭터들에 뒤지지 않는 멋진 형사 캐릭터를 탄생시킨다. 가가 교이치로 형사는 탁월한 직관과 냉철한 이성을 겸비한 멋진 수사관이다. 그는 자칫 답답하게 뒤틀리고 구겨진채 꼴사나운 모습으로 일단락 될 뻔한 사건을 멋지게 풀어낸다. 진실을 가린 자가 스스로 그 장막을 걷도록 만드는 솜씨가 엘러리 퀸이나 셜록 홈즈 뺨칠 정도로 눈부시다. 가가 형사를 등장시켜 시리즈를 만들어도 좋을 듯 싶다.
분량도 길지 않고, 두세번 읽어야만 이해가 되는 골치 아픈 트릭도 없고, 전문 지식이나 배경에 대한 장황한 설명도 없으며, 등장인물도 많지 않다. 멋진 형사와 초짜 형사가 짝을 이뤄 진실을 가린 장막을 확 걷어치우는 과정이 빠르게 전개된다. 한마디로 단숨에 읽을 수 있는 깔끔한 추리소설이다.

추리소설 매니아, 히가시노 게이고를 사랑하는 팬들, 그리고 지리멸렬한 순문학에 질려버려 책읽기를 중단한, '재미'있는 소설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재미'를 걸고 자신있게 권할 수 있는 소설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온전하게 책읽기의 '재미'에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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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윤성희 지음 / 창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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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의 세번째 소설집이다.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을 거쳐 <감기>에 이르기까지 윤성희의 소설은 점점 더 유머러스 하고, 점점 더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윤성희가 다루고자 하는 대상이나 주제는 늘 비슷하다. 다만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더 따뜻하고 환하면서, 더 세심하고 다정한 느낌이 든다. 음지에서 피어나는 이름 모를 식물들을 애정을 가지고 관찰하는 듯한 그녀의 따뜻한 시선은 변함이 없다. 다만 관찰에서 끝나지 않고, 관찰의 대상에게 친구들을 만들어 준다. 식물은 여전히 태양빛이 닿지 않는 음지에서 피어나지만, 이제 많이 외롭지는 않다. 소곤소곤 말을 걸어오는 친구가 있고, 무작정 말을 건넬 수 있는 친구가 있고, 함께 소리 죽여 웃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 때로는 보지 않아도 그 상처가 보이고, 듣지 않아도 그 슬픔이 들리고, 상처와 슬픔을 애써 위로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가족 같은 친구들... <감기>에 실린 소설들에는 이런 친구들이, 사람들이 조용조용 숨을 쉬며 살아간다.

윤성희는 대상을 연민하지 않고, 상처를 애써 건드리지도 않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이해했다고 섣부른 자부도 하지 않는다. 그저 친구처럼 대상의 곁에 있어 줄 뿐이다. 그리고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대화를 나눈다. 천진난만하게, 한편으로는 능청스럽게... 피식, 피식 웃음이 새어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이야기가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는 삼천포로 빠지기도 한다. 그 사이 현실의 상처를 잊기도 한다. 상처를 극복하지 않고도 떠밀리듯 자기 앞에 놓인 길을 계속 걷게 만든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비타민 약 같다. 매일 한 알씩 입안에 털어넣어도 건강에 큰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생의 활기를 느끼게 해 주는, 느꼈다고 머리가 인식하기 전에, 몸이 먼저 인식해 버리는, 그래서 몸이 머리를 이끌고 힘차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평범하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효험을 지닌 알약같다. 그저 그렇게 누군가가 함께 있어주기만 해도, 세상을 살아갈 만 하지 않겠느냐고, 작가는 말없이 말을 전하는 듯 하다. 호들갑을 떨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눈물 질질 짜고, 굳이 오만상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이다. 상처에 얽매여 인생이 하나의 상처가 되어 버려서는 안 되지 않겠느냐고, 그녀는 친구처럼, 가족처럼, 그저 곁에 지켜 서서, 전혀 엉뚱한 농담과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사실은 그런 말을 전하고자 하는 것 같다.

우울해 하지 말아라. 애써 우울해 하지 않아도, 우울은 필요하다면 필요한 만큼 니 곁에 머물러 있을 테니... 우울한 것은 우울한 것이고, 너는 또 웃으면서, 인생을 살아가야하지 않겠니, 지금 우울하다고, 인생의 전부가 우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니...

우리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사연 속에 스민 상처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네 삶이란 다 비슷하다. 알고보면 나와 비슷한 상처를 저 사람도 짊어지고 있었고, 나와 비슷한 슬픔을 저 사람도 느끼고 있다. 알고보면 지상에 발을 딛고 선 사람들은 다 비슷한 일로 고민하고, 아파하고, 이별한다. 그러니 조금만 알고보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위로와 도움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부담을 떠 안길 수 있는 그런 친구가 아니라, 그저 함께 걸을 수 있는 친구 말이다. 함께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친구, 일상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깔깔대면서 걸어갈 수 있는 친구, 손을 뻗으면 몸이 닿고, 그래서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해 주는 친구,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든든함을 느끼게 해 주는 그런 친구. 돌아보면, 알고보면, 그런 친구는 주위에 많이 있다. 그리고 그런 친구만 곁에 있어도 두려움은 눈 녹듯 사라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힘과, 용기가 생겨날 수 있다. 윤성희는 이 책에 실린 열한 편의 단편들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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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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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라는 것 말고는 이 소설에 대한 사전 지식이 나에게 거의 없었다. 제목과 책 표지만 보고서는 과연 이 소설이 무슨 내용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스릴러 같은 것은 절대 아닐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즉, '재미' 면에서 일단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굳이 읽은 이유는, 시도 그렇지만 소설도 결국은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인데, 나보다 어린 작가가 과연, 얼마나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래서 그 시선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심사위원들이)상까지 줘가며 번듯한 작가로 입성시켜 줬는지, 한 마디로 얼마나 잘 썼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별로였다는 것이다.
역대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의 수는 이 책을 포함하여 총 11권이고, 이중에서 나는 8권을 읽었다. '달의 바다'는 역대 수상작들에 비해 상당히 밋밋한 소설이었다. 박민규나 박현욱 같은 유머(재미)나 패기도 느껴지지 않고, 김영하나 안보윤 같은 파격적인 시도도 없었다.(물론 파격에서도 또, 박민규가 최고였다) 굳이 비슷한 분위기를 찾자면 4회 수상작인 이신조의 '기대어 앉은 오후'가 떠오르지만, 역시 이신조 만큼의 새로움과 신뢰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전체적으로 작년 수상작인 '내 머릿속의 개들'보다는 나았다.
기둥 줄거리만 말하자면 간단하고, 진부하다.
취업에 번번이 실패를 하던 20대 중반의 여자가 자살을 시도하려다가 할머니의 부탁으로 미국 고모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다. 고모를 만나서 별 일 없이 밋밋하게 지내다가, 마지막에 고모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지만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 고모를 보고 주인공도 삶에 열정을 되찾는다는 70년대 신파극 혹은, 초등학교 단체관람용 영화같은 분위기로 막을 내린다.
경장편이니 기둥 줄거리는 그렇다고 치고, 그렇다면 줄기를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에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느냐... 그렇지도 않았다. 에피소드들은 대부분이 진부했다. 물론 따뜻함 같은 것은 느껴졌으나 그 역시도 진부한 느낌이었다. 또한 이런저런 문장들에서 등장하는 비유들도, 뭐 딱히 새롭거나 좋은 게 없어, 종종 한숨만 나왔다.
특히 이 소설에서 재미와 공감을 느끼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들 때문이다. 나는 도무지 캐릭터들에 동화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나는 느낄 수가 없어, 자꾸 거리감만 생겼다. 그 이유는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하나의 목소리만 들렸기 때문이다. 모두들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가령 민이라는 친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아무 거리낌없이 이 친구를 여자로만 생각했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읽혔다. 그러니 나중에 수술, 어쩌고 하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부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문제는 민이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그랬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엄마도, 아버지도, 고모도, 고모의 친구도, 중학생 남자 아이도... 모두 한 목소리였다. 할머니의 대사는 전혀 할머니스럽지 않았다. 나이를 대충 따져봐도 70은 넘었을 텐데, 말투는 2,30대 젊은 여자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잦은 말다툼도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들의 대사만을 보고 있으면 도통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는, 아니 꽤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그렇다. 심사위원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쏟아냈던, 바로 그 편지 글들 때문이다.  
나는 이 편지글들이 심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심사평까지 읽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소설의 시작, 첫 번째 편지를 읽을 때의 감동은 꽤나 컸다. 박민규에 이어서, 신인답지 않은 신인이 등장했구나, 이런 기대와 설렘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메인 스토리의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기대는 무너졌다. 주인공이 자살 리스트를 작성하는 대목에서, 역시 신인의 글이구나 싶었다.
문제는 편지 글과 메인 스토리의 문장들이 '문학적 감식안' 같은 게 미약한 나 같은 평범한 독자가 봐도 제법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한 작가가 썼다는 게 의아할 정도로, 두 부분의 문장은 확연하게 선이 그였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도 났다. 선 저쪽의 눈이라면 과연 신뢰할 만한 작가의 눈인데, 글쎄 선 이쪽의 눈이라면...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중간에 등장하는 작은 반전도, 나는 그래서 이미 예측을 할 수 있었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편지 글의 내용이 메인 스토리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이 편지들은 어쩐지 따로 놀고 있는, 잘 씌어진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편지 글은 그저 편지 글들 나름대로 참, 멋졌을 뿐이다. 그래서 만약 그 멋진 편지 글들이 빠졌다면 정말로 이 소설은 당선이 되지 못했지도 모른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편지 글에 너무 많은 신경을 쏟다보니 정작 메인 스토리를 이어나갈 때는 힘이 빠졌던 것인가... 알 수 없다.
 
정한아라는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작가의 역량은 다음 작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 같다.
정한아의 진짜 색깔이 무엇인지, 그녀의 시선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적어도 다음 작품까지 봐야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달의 바다'의 아름다운 편지 글들 같기를 기대한다.

일곱 통의 편지들은 정말 좋았다. 특히 첫번째와 마지막 편지의 몇몇 문장들은 가슴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 편지 글을 쓸 때의 깊이 있는 시선으로 계속 인생을 응시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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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9-10 16:06   좋아요 0 | URL
저도 솔직히 별 셋 이상은 과하다 생각했지만 별 넷을 주고 말았죠.
가능성을 보려구요 ^^

리아트리스 2007-09-12 01:1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차기작에서 작가의 진가가 드러날 것 같더군요. 이번 작품은 솔직히 판단하기가 애매했죠.^^
 
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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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딸을 아내로 둔 운 좋은 남자 스기무라. 걱정도 없고, 욕심도 없는 평온한 삶을 살아가는 이 남자가 탐정으로 등장한다. 물론 탐정 신분증 같은 게 있는 정식 탐정은 아니다. 그래서 더 평범하고, 힘 없는 탐정이며, 사소한 사건을 소극적으로 풀어갈 수 밖에 없다. 미미여사는 이런 아마추어 초짜 탐정을 탄생시킨 것이다.
 
대기업 회장인 장인의 운전기사가 자전거에 치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물론 삶을 일순간에 뒤흔들어 놓을 크고, 비극적인 사건이지만, 타인의 눈으로 본다면 대단할 것도, 매력적일(?) 것도 없는 사건이다. 사지가 절단되는 연쇄 살인사건이나 수백억씩 횡령하고 도망다니는 범법자들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이런 개인의 죽음은 차라리 소박하고 밋밋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죽은 운전기사의 두 딸들이 아버지에 대한 책을 쓰겠다며 스기무라에게 출판을 의뢰해 오면서 이 밋밋한 사건의 중심으로 스기무라는 한걸음씩 걸어가게 된다.
처음에는 아버지(운전기사)를 치고 달아난 자전거 뺑소니범은 누구인가? 에 초점이 맞춰진다. 그러나 사건을 조사해 나갈수록 초점은 점점 다른 곳을 향한다. 범인이 아니라, 아버지 그 자체로 옮겨졌다가, 다시 두 딸들에게로 옮겨진다. 처음의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또다른 의문들이 딸려 올라오고,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의 문까지 열게 된다. 스기무라가 밝혀내는 마지막 진실은 그래서 전혀 엉뚱한 것이고, 그래서 더욱 잔인한 것이 되고 만다. 차라리 이 사건을 맡지 않았다면 더 좋은 결말이 나왔을 지도 모른다. 이런 소박한 사건의 한쪽 끝에 알고 싶지도 않은 전혀 엉뚱한 진실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 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고 아름다운 도시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추악하고 무서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온전하게 양지로 둘러싸인 도시란 있을 수 없다. 어느 도시나 그늘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양지가 빛나면 빛날수록 음지는 더욱 습하고 무서울 수 있다.
진실도 그렇다. 하나의 사건에 하나의 진실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흙속에 파묻힌 반지를 찾으려 흙더미를 뒤집다보면 원하지 않던 다른 것들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흙속에서 수 많은 다른 것들을 끄집어 낸 후에야 잃어버린 줄 알았던 반지가 고스란히 자신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음을 깨닫기도 한다. 진실은 우리가 원하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나타나 주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번 소설에서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을 읽는 듯한 조금은 낯선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미미여사 특유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해부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그녀의 소설은 늘 그렇다. 타인이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사건이지만, 그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상상도 못할 끔찍한 고통과 무서운 갈등이 존재할 수 있음을, 또 그 원인은 당사자들과 멀리 동떨어진 타인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음을, 하나의 범죄 속에는 개인과 사회의 욕망과 이기심이 모두 녹아 있음을.
이유, 모방범, 화차 같은 역작에는 못미치지만 이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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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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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 너무 웃긴다. 이 작가, 전직이 코미디언 아냐? 싶을 정도로...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예상치 못한 유머들이 마구마구 튀어 올라, 시종 웃다가 책장을 덮게 된다. 그리고 웃음의 자락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경쾌한 힘이 가득가득 실려 있다.
2004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공중그네'의 주인공 이라부와 마유미 커플이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인더풀'은 2002년에 출간되었고, '공중그네'에 앞서 먼저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하지만 출간 시기 따윈 상관없다. 엽기 커플이 엮어가는 에피소드들은 제각각 독립적이라 어느 것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이라부와 마유미만 등장하면 그저 만사가 OK다!
(물론 전체적으로 '공중그네'가 '인더풀'에 비해 별 반 개 정도 더 앞선다. 보다 완성된 이라부 캐릭터를 보고 싶다면 '공중그네'를 필히 읽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세상 모든 고민과 문제들을 일순간에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엽기 커플이 있다. 어린 아이 같은 대책없는 순진함과 황당한 장난끼로 똘똘뭉친 거대한 체구의 엽기 의사 이라부와 매사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주사만 놓는 육감적인 몸매의 미녀 간호사 마유미가 그들이다.
환자(처음에는 분명 환자라고 인식한다)들은 그들의 지하 세계로 발을 들인 후, 차츰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끝내 멀쩡한 사람이 되어서 지상으로 걸어나간다. 그 지하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법사도, 초능력자도, 외계인도 아니다. 특별한 약물을 투여하는 것도, 거창한 수술 같은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꾸준히 주사만을 놔 줄 뿐이다. 그리고... 그냥 노는 거다. 주사 맞고, 한바탕 신나게 놀다 보면 어느새 병 따위는 없다. 자신이 지극히 정상인으로 돌아와 있음을 알게 된다.
이라부의 처방은 간단하다.
환자와 똑같은 위치에서 같이 노는 거다. 그렇게 해서 문제의 심각성을 완화시킨다. 완화된 문제를 환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직시할 수 있도록 만든다. 가만히 직시하면 지금껏 심각하게 끙끙 앓아왔던 그 문제가 정말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스스로 자각한다. 자각의 순간 환자는 더이상 환자가 아니다. 환자는 유쾌한 발걸음으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라부는 환자에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찰싹)달라붙어 그저 신나게 논다. 신나게 놀고 나면 환자는 사라지고, 그저 인간만 남는다.  지하 세계에서 장난꾸러기 이라부와 무뚝뚝한 섹시녀 마유미와 더불어 잘 놀고 지상으로 올라서면, 환자는 인간으로 돌아가고, 덤으로 세상을 살아갈 충천된 힘까지 얻게 된다.
 
현대인은 많은 문제와 스트레스 속에서 늘 인상을 찌푸리며 살아간다.
무엇을 하든 인상을 찌푸린다. 거지도, 부자도, 잘난 놈도, 못난 놈도, 학생도, 어른도... 그래서 찌푸리는 게 병인줄 안다. 심각하게 병원을 찾아와 자신이 얼마나 스트레스에 짓눌려 살고 있는지를 토로한다.
그러나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의 99%는 그저 심리적인 문제일 뿐이다. 찌푸린 인상을 그저 펴기만 하면 대부분 사라지는 문제들이다. 더구나 그런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99%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신이 억지로 문제를 껴안고 있는 경우들이다.
이라부는 그런 사람들이 찾아오면 가슴에 안고 있는 문제들을 스스로 놓아버리게 만든다.
문제 해결은 그렇게 간단하다. 물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는 일면 엄청나게 심각해 보여도, 또 한편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인더풀'에는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다섯 명의 환자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환자가 아니다. 환자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다. 만일 그들이 환자라면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환자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저마다 안고 있는 문제들은 현대인들의 99%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의 대부분이 바로 '강박증'이다. 현대인은 대부분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강박증은 따로 치료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강박에서 벗어나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도 대단히 어려울 수도 있고, 또 대단히 쉬울 수도 있다. 지상의 세계에서 본다면 어려운 일일 수 있으나, 이라부와 마유미가 사는 지하의 세계에서 본다면 이것은 대단히 쉬운 일이 된다. 그래서 이라부는 환자들의 고민을 심각하게 듣지 않는다. 이라부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의 고민이 전혀 심각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라부는 자신과 똑같은 심정을 환자가 느끼도록 해 준다.
즉, 네가 안고 있는 문제는 전혀 심각하지 않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 나처럼 해 봐라. 나를 따라 해봐~ 아, 그 전에 일단 주사부터 한 대 맞고~ 명색이 병원이니 주사는 맞아야지~ 더구나 엄청나게 섹시한 미녀가 놔 주는 것이니 안 맞을 수 없잖아~ 자, 한 대 맞고, 노는 거야~ 놀다보면 인생은 즐거워지고, 그 딴 고민은 인생을 즐겁게 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당신이 지금 안고 있는 문제는 어쩌면 아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지하 세계에서 이라부와 마유미를 만나보면 그것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다.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즐겁고, 천진난만하게, 이라부처럼 말이다.
 
'남쪽으로 튀어', '공중그네'에 이어서 세번째로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을 읽으며 새삼 감탄한다.
이 작가, 정말 프로다! 작가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이 정도 유머에, 이 정도 스토리는 만들어 낼 줄 알아야 작가지! 그 참, 이야기 같지도 않은 구태의연하고 싱거운 이야기를 들고 작가랍시고 폼 잡는 짝퉁 작가들이 판을 치는 이 시대에 오쿠다 히데오 같은 출중한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은 필시 행운이다. 고민남녀가 이라부를 만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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