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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을 읽기 전에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라는 것 말고는 이 소설에 대한 사전 지식이 나에게 거의 없었다. 제목과 책 표지만 보고서는 과연 이 소설이 무슨 내용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SF 스릴러 같은 것은 절대 아닐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즉, '재미' 면에서 일단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굳이 읽은 이유는, 시도 그렇지만 소설도 결국은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인데, 나보다 어린 작가가 과연, 얼마나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인생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래서 그 시선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심사위원들이)상까지 줘가며 번듯한 작가로 입성시켜 줬는지, 한 마디로 얼마나 잘 썼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별로였다는 것이다.
역대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의 수는 이 책을 포함하여 총 11권이고, 이중에서 나는 8권을 읽었다. '달의 바다'는 역대 수상작들에 비해 상당히 밋밋한 소설이었다. 박민규나 박현욱 같은 유머(재미)나 패기도 느껴지지 않고, 김영하나 안보윤 같은 파격적인 시도도 없었다.(물론 파격에서도 또, 박민규가 최고였다) 굳이 비슷한 분위기를 찾자면 4회 수상작인 이신조의 '기대어 앉은 오후'가 떠오르지만, 역시 이신조 만큼의 새로움과 신뢰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전체적으로 작년 수상작인 '내 머릿속의 개들'보다는 나았다.
기둥 줄거리만 말하자면 간단하고, 진부하다.
취업에 번번이 실패를 하던 20대 중반의 여자가 자살을 시도하려다가 할머니의 부탁으로 미국 고모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다. 고모를 만나서 별 일 없이 밋밋하게 지내다가, 마지막에 고모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하지만 삶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 고모를 보고 주인공도 삶에 열정을 되찾는다는 70년대 신파극 혹은, 초등학교 단체관람용 영화같은 분위기로 막을 내린다.
경장편이니 기둥 줄거리는 그렇다고 치고, 그렇다면 줄기를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에는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느냐... 그렇지도 않았다. 에피소드들은 대부분이 진부했다. 물론 따뜻함 같은 것은 느껴졌으나 그 역시도 진부한 느낌이었다. 또한 이런저런 문장들에서 등장하는 비유들도, 뭐 딱히 새롭거나 좋은 게 없어, 종종 한숨만 나왔다.
특히 이 소설에서 재미와 공감을 느끼지 못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들 때문이다. 나는 도무지 캐릭터들에 동화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나는 느낄 수가 없어, 자꾸 거리감만 생겼다. 그 이유는 여러 캐릭터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자꾸 하나의 목소리만 들렸기 때문이다. 모두들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가령 민이라는 친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는 아무 거리낌없이 이 친구를 여자로만 생각했었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읽혔다. 그러니 나중에 수술, 어쩌고 하는 대목에서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작가가 일부러 의도한 부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문제는 민이 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두 그랬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엄마도, 아버지도, 고모도, 고모의 친구도, 중학생 남자 아이도... 모두 한 목소리였다. 할머니의 대사는 전혀 할머니스럽지 않았다. 나이를 대충 따져봐도 70은 넘었을 텐데, 말투는 2,30대 젊은 여자였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잦은 말다툼도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그들의 대사만을 보고 있으면 도통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런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이유는, 아니 꽤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그렇다. 심사위원들이 입을 모아 찬사를 쏟아냈던, 바로 그 편지 글들 때문이다.
나는 이 편지글들이 심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심사평까지 읽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소설의 시작, 첫 번째 편지를 읽을 때의 감동은 꽤나 컸다. 박민규에 이어서, 신인답지 않은 신인이 등장했구나, 이런 기대와 설렘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메인 스토리의 첫번째 에피소드에서 기대는 무너졌다. 주인공이 자살 리스트를 작성하는 대목에서, 역시 신인의 글이구나 싶었다.
문제는 편지 글과 메인 스토리의 문장들이 '문학적 감식안' 같은 게 미약한 나 같은 평범한 독자가 봐도 제법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한 작가가 썼다는 게 의아할 정도로, 두 부분의 문장은 확연하게 선이 그였다.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도 났다. 선 저쪽의 눈이라면 과연 신뢰할 만한 작가의 눈인데, 글쎄 선 이쪽의 눈이라면...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중간에 등장하는 작은 반전도, 나는 그래서 이미 예측을 할 수 있었다. 책장이 넘어갈수록 편지 글의 내용이 메인 스토리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이 편지들은 어쩐지 따로 놀고 있는, 잘 씌어진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편지 글은 그저 편지 글들 나름대로 참, 멋졌을 뿐이다. 그래서 만약 그 멋진 편지 글들이 빠졌다면 정말로 이 소설은 당선이 되지 못했지도 모른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편지 글에 너무 많은 신경을 쏟다보니 정작 메인 스토리를 이어나갈 때는 힘이 빠졌던 것인가... 알 수 없다.
정한아라는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작가의 역량은 다음 작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 같다.
정한아의 진짜 색깔이 무엇인지, 그녀의 시선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적어도 다음 작품까지 봐야만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그녀의 다음 작품이, '달의 바다'의 아름다운 편지 글들 같기를 기대한다.
일곱 통의 편지들은 정말 좋았다. 특히 첫번째와 마지막 편지의 몇몇 문장들은 가슴 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 편지 글을 쓸 때의 깊이 있는 시선으로 계속 인생을 응시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