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면 힐러리처럼 - 꿈을 품은 모든 여자가 세상의 중심에 우뚝 서는 법
이지성 지음 / 다산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일단 쉽게, 금방 읽히는 책이다. 책 날개에 씌인 저자 소개에는 베스트셀러 작가 운운하는 얘기들이 있는데, 솔직히 이지성이라는 작가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고, 그가 이미 십여 권의 책을 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다만, 그 만큼 책을 많이 썼다면 그 만큼 안정된 필력을 지니게 될 터이고, 그래서 작가는 적어도 독자들에게 잘 읽히려면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비교적 명확했고, 그 서술 방식도 일목요연했다. 한 편의 깔끔한 자기계발서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별 도움을 주지 못할 것 같다. 즉, 기존의 자기계발서들에 비해 이 책만의 차별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힐러리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만으로 차별성을 확보하기에는 이 책에 인용된 힐러리의 삶이 너무나 피상적이거나 너무나 보편적인 부분들 뿐이다. 힐러리라는 이름이, 또 그녀의 성공한 삶이 이 책을 위해 상업적으로는 이용될 수 있으나, 독자들을 위해서는 큰 의미로 작용하고 못한다는 얘기다. 인생의 선로 위에서 비틀거리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진리를 깨우쳐 주거나, 새롭고 신선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결론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보편적인 진리로 귀결된다.
여자들이여 힐러리처럼 살아라.
라는 말은 언뜻 대단히 신선하면서도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그 핵심은 결국

열심히 꿈을 꾸고, 꿈을 향해 열심히 몰입하고 노력해라.

라는 평범한, 교과서적인 가르침에 불과하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봐도 기실 뻔한 소리들 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읽혔다. 새로운 감동을 느낀 부분은 거의 없다.
열심히 공부를 해라. 공부를 하되 효과적(이를테면 더 상위 지식인 그룹에 끼어서 더 고급 학문을 습득해라라고 나온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아니, 여간한 노력으로 될 일인가)으로, 또 집중적으로 해라. 공부만 해서 될 일이 아니고, 돈도 많이 벌어라. 역시 열심히, 똑똑하게(이를테면 투자를 하더라도 절대로 전재산을 다 투자하지 말고 여윳돈을 잘 굴려서 좋은 펀드 매니저의 도움을 받아서 하라는 지극히 모범답안적인 방법으로). 또 조용한 듯 하면서도 남들을 압도하는 매력을 발산하고, 어려운 일이 닥칠수록 더 많은 일들에 열중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텔레비전과 인터넷 대신에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해야하고, 등등... 누구나 다 알법 하지만 보통의 의지로는 결코 해 낼수 없는, 고도의 노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그런 일들을 죽죽, 늘어 놓는다. 그 모든 것들을 힐러리는 다 해냈으니까, 당신도 할 수 있다! 이런 얘기다.  

이런 식의 자기계발서에 담긴 이야기는 대게 두 가지로 나뉜다. 너무 쉬워서 해 봐야 실생활의 발전에 별 도움이 안 되는 이야기들과 너무 어려워서 할 엄두가 안 나는 이야기들. 긍정적으로 사고해라라는 주제로 귀결되는 이야기와 죽을동 살동 열심히 공부(노력)해라라는 주제로 귀결되는 이야기들... 공통점은 그 책을 읽든 안 읽든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라는 것이다.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홍정욱의 '7막7장'이 백만이 넘는 독자들에게 읽히며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그 백만 중에서 홍정욱처럼 하버드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은 거의(아마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유인 즉, 그렇게 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부해라, 라고 말하기는 쉬워도, 그렇게 실천하기는 여간한 의지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든 안 되든 독자들로부터 큰 공감을 받기는 어려운 법이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도 '7막7장'과 비슷하다. 즉 앞서 말한 분류 가운데 후자에 가까운 책이다.

힐러리처럼 살아라!

힐러리처럼 살면 당연히 힐러리처럼 될 수 있지. 이건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힐러리가 한 노력의 70%만 따라가도, 힐러리가 이룬 성공의 70%는 이룰 수 있다. 이 또한 당연한 소리다. 하지만, 이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이냐고... 또, 너무나 뻔한 얘기가 아니냐고...

작가는 성공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힐러리처럼 사는 삶'을 제시했지만, 문제는 '힐러리처럼 사는 삶'을 어떻게 일반인이 따라갈 수 있느냐에 대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저 힐러리처럼 사는 수 밖에(노력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즉, 작가는 성공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힐러리의 삶을 요약해서 보여주며 '이렇게 살아라', 라는 말은 홍정욱이나 빌게이츠의 삶을 요약해서 보여주며 '그들처럼 살아라'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지도 않고서 그저 힐러리가 했기 때문에, 홍정욱이 했기 때문에, 빌게이츠가 했기 때문에, 너도 할 수 있다, 똑같이 해라, 라고 말하는 것은 다분히 무책임한 소리며, 결국 하나마나 한 뻔한 소리다. 

제목이 무색할 만큼 이 책은 힐러리만의 특색이나, 힐러리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가 거의 없다. 저자가 힐러리에게서 발견한 삶의 자세, 혹은 진리들은 '힐러리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
그것은 이미 보편적으로 알려진 진리다. 특히 최근 국내에서 80만부를 돌파하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시크릿'을 읽은 독자라면 더더욱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 책에서 말하는 최고의 진리, 삶의 자세는 '열심히 꿈을 꾸면, 이루어 진다'라는 것인데, 이것은 이미 '시크릿'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주제다. 힐러리가 오늘날처럼 성공한 걸 보면 '시크릿'에서 말한 성공의 비밀을 힐러리도 이미 알고 있었을 테다. 그러니까, '간절히 바라면 그것은 우주가 반드시 이루어 준다'라는 비밀 말이다. 이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의 핵심 주제로 정리되고 있다. 그리고 기실 이 주제는 '시크릿' 이전에도 이미 많은 책들에서 다루었던 것이다. 그 대단한 '연금술사'의 주제가 무엇인가... 바로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가 너를 도와줄 것이다'라는 것 아닌가... 

이 책에서 새로이 발견한 것이라곤 '존 스튜어트 밀'식 독서법에 대한 얘기 뿐이다. 내가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 이 존 스튜어트 밀식 독서법에 대한 소개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별점을 두 개라도 준 것은 '존 스튜어트 밀'식 독서법에 대한 소개가 신선했고, 또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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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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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은 이것이 소설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서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혀지기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공지영의 속마음을 도통 알 수 없다. 정말로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혀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의도로 쓴 것 치고 이 소설은 너무나도 자전적이며, 심지어는 나르시즘까지 엿보인다. 자전적으로 읽혀지지 않기를 바랐다면, 다시 말해 보다 소설적으로 읽히기를 바랐다면 왜 작중 인물들과 자신과의 거리를 보다 객관적으로 유지하지 못 했을까. 또 하나, 이 소설에는 소설 다운 서사성이 결여되어 있다. 한 마디로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이야기는 시종 엄마와 딸이 번갈아가며 눈물을 짜다가 목청을 높이다가 웃으면서 씩씩한 척 하는 모습들을 반복해서 보여줄 뿐이다.

시종 발생하는 에피소드는 재미없거나 밋밋한 것들이며, 갈등의 원인들도 모두 진부하다. 한 마디로 예측 가능한 자잘한 이야기들이 다소 과장된 눈물과 웃음으로 범벅이 되어 넋두리처럼 청승맞게 흘러가는 것이다.
소설적으로 읽히길 바랐다면 보다 소설다운 이야기가 펼쳐졌어야만 했다. 세번 이혼한 유명 여류 작가에게 인신 공격적인 험담을 퍼붓는 여자가 등장하는 식의 에피소드는 넣지 말았어야 한다. 그 험담에 작가는 당당한 척 응수하지만 속으로는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딸도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다가 결국에는 그런 엄마를 자랑스럽고 멋있게 여기고... 매사가 이런 식이다. 뻔한 설정과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말과 감정들... 모든 에피소드의 기승전결이 이렇다. 이 모든 이야기와 장치들은 소설적이라는 느낌보다 자전적이면서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으로밖에 이어지지 않는다. 소설적인 부분을 굳이 찾자면 그 작위성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위녕이라는 주인공의 모습도 어쩐지 캐릭터 구축에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겉 모습은 열여덟 소녀인지 모르겠으나 속에는 세번 이혼한 마흔다섯 살 중년 여인이 들어 앉아 있는 듯 했다. 작가는 이 아이가 톡톡 튀는 감각이 살아있는 팔팔한 십대 소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중간 중간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듯 했다. 절대로 작가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테다. 그러나 그 노력들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위녕에게서는 젊은 애 특유의 파릇파릇한 감정과 감각이 살아나지 않았다. 순간순간 중년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으며 어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친구 이름을 쪼유라는 이상한 이름(이든 별명이든)으로 설정하고, 문자 메시지를 수시로 이용하게 하는 등, 억지로 어린 척을 했으나 위녕은 어린 십대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애초에 작가가 의도한 모습이었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평범하지 않은 애늙은이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그럴 거면 굳이 주인공을 십대 소녀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또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위녕이라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면 말과 행동, 생각하는 바가 모두 아이 같아야만 하지 않을까. 가령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서도 아버지는 같으나 엄마가 다른, 서로 타인처럼 성장한 두 남매가 등장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두 주인공 소년, 소녀의 감정에 충분히 몰입될 수 있었다. 나름의 상처와 문제와 고민을 가슴에 안고 있었지만 그들은 충분히 소년 소녀 다웠다. 과연 소년 소녀 다운 생각들로 어른들의 세계에 접근하고, 소년 소녀 다운 방식으로 그들의 문제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위녕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다분히 그런 입장에 처한 중년 여인 다운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며 문제를 풀어나갔던 것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결국 공지영과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입장 차이가 아닐까 싶다. 공지영은 실제 그런 삶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온다 리쿠처럼 자신이 내세운 주인공에게 객관성을 부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세번 이혼하고 성이 각기 다른 세명의 자식들을 키우고 사는 중년의 여작가가, 세번 이혼하고 성이 각기 다른 세명의 자식들을 키우고 사는 중년의 여작가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고 했을 때, 독자들은 이미 그 이야기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된다. 이 소설은 그 일반적인 예측에서 거의 벗어남이 없는 소설이다. 내 예상을 벗어난 것이라면 내 예상보다 더 신파적이고 예측가능한 이야기였다는 것 뿐이다. 인물들의 행동과 작가의 목소리까지 모두. 그래서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작
가는 자신의 특별한 삶을 대중에게 이해받기 위한 목적으로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닐테다. 자신의 입으로 소설로 읽혀지기를 바란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더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다 신선하고 재미 있는 상상력을 왜 더 발휘하지 못 했을까 싶다. 자신의 감정은 최대한 배재하고 보다 '소설적'인 객관성을 확보하고 더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했어만 했다.

이 소설은 대체적으로 칭찬일색이다. 대단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라고 하는 평들이 참 많다. 유난히 공지영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평을 쓰기가 심히 유감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도 공지영의 팬이라면 팬이다. 지금껏 그녀의 많은 작품들을 읽어왔고,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의 첫소설집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장편 '고등어'는 정말 좋았다. 그랬기에 더욱 이번 작품에 유감과 실망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건 아주 '개인적인' 실망이고, 감상일 뿐이다. 다수의 독자가 재밌다고 하니 일단 한번 읽어보고 평가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끝으로 공지영이 앞으로 조금은(아니, 좀 많이) 신파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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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주다
와타야 리사 지음, 양윤옥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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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이 되어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너무 일찍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속으로 상처받고, 방황하는 어린 스타의 이야기. 대중의 시선(혹은 꿈)과 개인의 욕망(혹은 꿈) 사이에서 갈등하고, 좌절하는 화려하고 잔혹한 청춘의 성장기다. 마치 와타야 리사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같아 일면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실망스러웠다. 일본 문단이나 독자는 물론이고, 국내 독자들 중에서도 와타야 리사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녀의 전작 두 편을 읽은 독자라면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런 독자들의 3년간의 기다림과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와타야 리사의 이번 신작은 다소 진부하고 그래서 실망스런 면이 없지 않다. 우선 전작들에 비해 확연히 다른 색깔과 분위기에 놀랄 수밖에 없다. 와타야 리사도 나이를 먹은 것인가. 그래서 이런 변화가 자연스런 현상인가. 하지만 그래봐야 아직 20대 초반. 너무 깊은 좌절과 어둠으로 자신을 채색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지 않은가.  

진부함. 이 장편을 읽는 내내 머리속을 따라다닌 느낌이다. 와타야 리사에게서 진부함이라니, 놀라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전작들을 읽은 독자라면 과연, 그런 느낌은 전혀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재기발랄, 톡톡 튀는 예측불허의 상상력들이 터질 듯 넘쳐났던 전작들에서는 진부함 따위는 단 한 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3년만에 돌아온 와타야 리사의 신작은 어딘지 많이 듣고, 보고, 접한 이야기 같다. 많은 이들이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수없이 많이 되풀이되고 기사화된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다시 한 번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주인공 유코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빤하게 보였다. 대략 어떤 식으로 상처받고, 어떻게 갈등하고, 좌절할 지... 제발 구태의연한 상황들에서 조금이라도 비껴갈 수 있길 바랐지만, 작가는 내 기대를 저버리고 구태의연한 길을 선택했다. 유코는 여느 어린 스타들이 그러하듯, 그런 그런 고민을 하고, 그런 그런 갈등에 빠져, 그런 그런 좌절을 경험하고, 그런 그런 인생을 살아간다.
연예계의 실상에 대해서는 굳이 이런 소설을 읽지 않아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도 많다. 인터넷만 열면 그런 소식들은 줄줄이 엮여 나온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은 웬만큼 자극적이지 않으면 진부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유코가 당한 사건과 거의 흡사한 사건을 당한 연예인들이 많고, 여러번 기사화가 된 적 있다. 그래서 연예계가 어떤 곳이라는 걸, 그 실상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하고, 때론 추악하고, 한심스런 곳인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나는 와타야 리사의 신작이 진부했던 것이다. 

또하나 실망스런 것은 주인공에게서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코라는 주인공 캐릭터가 나는 참,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사랑 운운하면서 상처받고, 좌절하는 모습은 짜증도 났고,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안타깝거나 애처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든 말든 끝까지 해바라기 사랑을 고수하려는 모습이 보기 거북할 뿐이었다. 동정이 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녀의 행동이 쿨하다는 생각는 더더욱 들지 않았다. 헤어지지 않을 거야. 마사아키를 만나지 못 하면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하는 따위의 대사들은 오히려 촌스럽고 진부했다.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응당 소설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연예계의 실상을 고발하듯 생생히 묘사하는 부분들도 별로 흥미롭지 않았고, 감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쩌면 유코와 비슷한 삶을 살고, 그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비슷한 갈등과 좌절을 경험했을 와타야 리사 자신이 가장 공감하고, 감동했을 글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런 소설을 꼭 한번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두에도 말했듯 어느 정도의 진정성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들에게서 얼마만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대중의 공감이나 판매 부수 따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면 작가 개인적으로 만족스런 작업이었고, 결과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기장에 써서 혼자 간직하지 않고 이렇게 책으로 펴 낸 것에는 여하튼 대중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글쎄... 전작들에 환호하고, 공감하고, 감동했던 독자들이, 이번 소설에서도 그런 반응을 보일 지...
물론 이 이야기를 꼭 연예계라는 무대로 한정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얼마든지 확장 해석은 가능하니까. 그렇게 폭넓게 해석해서 인생의 더 많은 부분들에 적용 시킨다면 더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하고 감동을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역시, 공감도 감동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전작 두 편의 힘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와타야 리사의 다음 작품을 여전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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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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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편소설을 쓰면서 김연수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눈에 보인다. 그리고 읽는 내내 나도 고생스러웠다. 하지만 김연수야 '프로소설가'이니 수많은 취재와 공부들이 즐거운 고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독자인 나에게는 그저 고생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다 읽었는데도, 별로 고생하지 않고 읽은 책들에 비해 특별히 더 많은 것을, 혹은 더 값진 것을 얻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 입장에서는 고생한 게 아까웠다. 김연수는 적어도 그 고생들의 대가로 원고료는 받았을 게 아닌가. 독자는 작가의 고생에 대한 대가(혹은 치하로) 책값을 지불하는 것으로 일차적인 소임은 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는 아무리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쓴다고 해도 자신의 책을 사는 독자를 위해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연수는 이 책에서 그런 배려를 하지 않았다. 한자가 나오면 옥편 뒤져가며 찾고, 이해가 안 되면 교과서를 읽듯 두세번 다시 읽고 공부하라는 것이다. 인터뷰에서 전언한 바대로 나도 고생해서 썼으니, 읽는 독자들도 고생을 좀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어불성설이다. 프로소설가의 소설을 읽으려면 프로독자라도 되어야 한다는 얘긴가? 프로소설가야 소설 쓰는 게 직업인 사람이니 소설 쓰는 일에 완벽을 기하는 게 당연하지만, 독자까지 책 읽는 일에 완벽을 기해가며 읽을 수는 없다. 독자들도 개개의 직업이 있고, 개개의 분야에서는 '프로'일 것이다. 김연수의 소설을 읽기 위해 '프로독자'로서의 자세까지 갖출 여유는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책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더욱 실망스럽다.
이 책은 다분히 김연수 개인의 만족을 위해 씌어진 소설같다. 이 소설을 가장 환호하며 읽을 독자는 아마 김연수 자신이 아닐까 싶다. 때문에 김연수의 사고나 경험, 취향들과 공통분모를 지닌 독자들이라면 김연수와 함께 열렬히 환호를 하며 이 책을 읽었을지 모르겠다. 특히 작가와 비슷한 시대를, 비슷한 경험으로 살아온 비슷한 연배의 독자라면...

그게 아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이 소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연수가 풀어놓는 '이야기들'과 그것들을 감싸고 있는 '주제 혹은 사상'에 감동할 수가 없었다. 나의 관심사와는 전혀 먼 이야기들이었던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관심을 가질 법도 한 이야기들을 김연수라는 작가가 재미없게(내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불친절하게) 풀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신문기사를 읽는 듯한 역사 속의 수많은 사건들과 구구절절 촌스런 사랑 타령이 짜증나거나 진부해서 하품이 나왔고, 심지어는 화도 났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신문기사 같은 이야기들만 주절댈 것인가, 발끈하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다 읽었다.

소설의 줄거리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대단히 간단하고, 복잡하게 말하자면 말 할 수가 없다. 역사의 거대한 홍수에 휩쓸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야 했던 개인의 고통과 탐구, 혹은 기록에 대한 이야기다. 온몸에 역사의 바퀴자국을 남긴 사람들의 절망과 고뇌와 분노와 성찰...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새롭지는 않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그동안 한국 문학이 다양하게 시도를 해 온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이런 식의 이야기를 썼고, 어떤 것은 수작이었고, 어떤 것은 태작에 불과했고, 어떤 것은 재미가 있었고, 어떤 것은 재미가 없었다. 이 소설도 여하튼 그런 것들 중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김연수라는 작가가 문학동네에 새로운 장편을 연재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장편이 이런 이야기인 줄은 몰랐다. 

소설을 읽는 내내 떠오르는  소설들이 몇 있었다. 먼저 하루키의 여러 소설들이 떠올랐고,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가 떠올랐고, 몇몇 한국 소설들이 떠올랐다.
낡은 사진 한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낡은 책 한권으로 시작하는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와 닮았다.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서로 얽히고설키며 과거의 이야기가 복원되고, 잊혀졌던 역사가 수면위로 떠오르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사랑 이야기가 있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유사하다. 그러나 읽히는 재미를 말하자면 '바람의 그림자'가 압도적이다. 김연수의 소설은 흡인력에서 상대가 안 된다. 물론 이야기도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추측인데, 김연수는 어쩌면 '바람의 그림자' 같은 소설을 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끊이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는 방대한 이야기,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야기가 지나온 역사 속에서 서로 맞물리며 가려졌던 진실이 조금씩 복원되고, 역사의 격랑 속에서 저마다의 삶과 사랑을 깨닫고,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그 잔상이 사라지지 않는 이야기. 그러나 내 추측이 맞다면 김연수의 이번 신작은 실패작이다. '바람의 그림자'는 그 방대한 분량에도 불구하고 소설 전반을 흐르는 미스터리와 추리기법이 마지막까지 독자의 긴장과 흥미를 최고조로 유지시킨다. 그러나 김연수의 소설은 가장 중요한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가 시도하고자 한 바들이 독자에게 온전히 먹혀들지 않는다. 이야기는 맥없이 풀리고 엉켜서 가닥을 잡을 수가 없고, 캐릭터들은 매력이 없다. 시종 딱딱하거나 진부한 분위기는 몇 장 읽다보면 절로 눈을 피로하게 만든다. 언뜻 하루키의 8,90년대 소설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지만 역시 재미면에서 현격한 차이가 났다. 굳이 가장 비슷한 소설을 찾자면 내가 하루키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없게 읽은 '상실의 시대'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이 떠오른다. 한국소설 가운데서는 수많은 후일담 문학들을 제치고 최근에 읽은 김영하의 '빛의 제국'이 떠오른 이유는 뭘까. 두 소설 사이에 뭔가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둘 다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것 뿐이지만.  

하지만 나는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를 읽었을 때는 김연수라는 작가에 환호하고 감동했었다. 무엇보다 그 소설집은 '재미'가 있었다. 잘 읽혔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는 '원미동 사람들', '카스테라' 등과 함께 내가 읽은 최고의 국내 소설집 중 하나다. 새로운 작가를 발견했다는 기쁨에 들떠 그의 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사들인 책들이 책장에 다섯 권이나 꽂혀 있다. 그러나 이제 김연수는 더이상 '내가 아직 아이였을때' 같은 소설을 쓰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의 소설은 점점 그곳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비슷한듯 하면서도 달라졌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된 것 같다. 앞으로 나올 김연수의 소설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과 더 가까운 소설들일 것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내가 환호할 수도, 감동할 수도 없는 작품들을 계속 쓸 것이라는 얘기다. 그를 오래 지켜봐 온 독자의 한 사람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만큼 그를 더 좋아하게 될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히, 세상은 상대적인 것이니. 김연수의 이런 스타일에 환호하고 감동하는 독자들은 계속 그의 책을 사 읽겠지. 지금까지 올라온 리뷰들이 대부분 칭찬 일색인 것을 보면 확실히,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독자들도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이 소설이 '재미있게', '금방' 읽혔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특히 평론가들은 더욱 극찬을 할 것 같다. 무슨무슨 문학상을 받게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실망했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는 소설이라...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소설이란 생각이 들어... 다음 작품은 좀 더, 재미있게, 독자를 배려할 줄 아는 소설을 써 주었으면 싶다. 그래도 계속 자신이 힘겹게 썼으니, 독자도 힘겹게 읽어야 한다느니, 프로소설가의 작품을 이해하지 못 하거나, 프로소설의 작품에서 진정한 재미를 발견하지 못 하거나, 혹은 오로지 재미만을 추구하는 독자 따위는 필요없다고 한다면 더 할 말이 없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잘 쓰든, 나도 책을 사지 않으면 되니까.

*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읽고 워낙 큰 실망을 한 터라 주절주절 얘기가 길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써 주지 않아서 모종의 배신감 같은 게 느껴진 탓일테다. 여하튼 이렇게 또 한국 소설과 한 걸음 더 멀어지는 기분이 든다. 미미여사처럼 절대로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확실한 신뢰를 주는 작가가, 우리나라에도 좀 있었으면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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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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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었다. 김애란이 2005년에 발표했던 단편이다.
나는 정말 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같은 기분으로 김애란의 두 번째 소설집을 기다렸다. 그녀는 첫 소설집을 낸 지 채 2년도 안 되어서 두 번째 소설집을 상재했다. 비교적 빨리 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달려라 아비>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내 안에 머물러 있던 까닭이다. 첫번째 소설집을 봤기 때문에 두번째 소설집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하튼 그녀는 다시 왔다. 상상 속에서 아버지를 끊임없이 달리게 만들었던 것처럼 그녀 자신도 힘차게 달려서 왔다. 지난 2년간 김애란은 꾸준히 질주하고 있었다. 매 계절 끊이지 않고 작품이 발표되었다. 그 결과 여러 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내밀었고, 이렇게 빠르게 두번째 소설집을 묶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운 좋고, 인기가 좋은 작가지만, 기본적으로 부지런하고 할 얘기가 많은 열정적인 작가다.  

김애란의 시선은 더욱 낮아졌고, 더욱 깊어졌으며, 더욱 밝아졌다.
한 층 몸을 구부리고, 자신보다 더 낮은 곳의 풍경을 응시하고, 더 낮은 곳에서 흘러드는 풍문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낮은 곳의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건넨다.

남루한 젊음의 초상들. 그러나 겉모양이 남루하다고 꿈까지 남루할 수는 없다. 낮고 그늘진 그 곳에서도 애드벌룬처럼 꿈은 파란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바람이 불고, 물이 넘쳐나고, 복작대는 인파에 치여 이리저리 흔들리며 상처받아도 그들의 꿈은 맹렬히 부풀어 오른다. 솟아오르는 꿈의 끈자락을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쓴다. 언젠가는 거대하게 부풀어진 꿈의 풍선이 자신을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는 정겹고 기분 좋은 곳, 재수생이 아닌 대학생이 될 수 있는 곳, 백수가 아닌 직장인이 될 수 있는 곳,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유롭고 아늑한 곳, 엄마와 아버지가 부재하지 않는 곳, 결핍이 없는 행복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곳,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자신만의 방 한 칸을 원한다. 자신만의 네모난 자리를 원한다. 자신의 미래는 더없이 밝고 아늑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 믿음만으로 사람들의 입에는 침이 고인다. 살아갈 힘과 용기가 생겨난다. 그렇게 하루하루 부풀어가는 꿈을 바라보며, 남루한 현실 속의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저마다의 방을 꿈꾸며...
저마다의 별자리를 그리며...

여덟 편 가운데 가장 좋았던 작품은 표제작이기도 한 '침이 고인다'였다. 이 단편에는 김애란이라는 작가가 현재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장점들이 다 들어가 있는 듯 했다. '도도한 생활', '자오선을 지나갈 때', '칼자국', '성탄특선', '기도' 등도 좋았다. 수록작들의 재미가 모두 평균을 넘어섰다.
<달려라 아비>에 비해 템포는 조금 느려졌지만, 호흡은 더 안정된 것 같다. 다시말해 이제 더 긴 코스를 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애란은 곧 장편 집필에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장편을 기다린다. 벌써부터 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같은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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