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주다
와타야 리사 지음, 양윤옥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부터 연예인이 되어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너무 일찍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고 속으로 상처받고, 방황하는 어린 스타의 이야기. 대중의 시선(혹은 꿈)과 개인의 욕망(혹은 꿈) 사이에서 갈등하고, 좌절하는 화려하고 잔혹한 청춘의 성장기다. 마치 와타야 리사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같아 일면 진정성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실망스러웠다. 일본 문단이나 독자는 물론이고, 국내 독자들 중에서도 와타야 리사에게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녀의 전작 두 편을 읽은 독자라면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런 독자들의 3년간의 기다림과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와타야 리사의 이번 신작은 다소 진부하고 그래서 실망스런 면이 없지 않다. 우선 전작들에 비해 확연히 다른 색깔과 분위기에 놀랄 수밖에 없다. 와타야 리사도 나이를 먹은 것인가. 그래서 이런 변화가 자연스런 현상인가. 하지만 그래봐야 아직 20대 초반. 너무 깊은 좌절과 어둠으로 자신을 채색하기에는 아직 너무 젊지 않은가.  

진부함. 이 장편을 읽는 내내 머리속을 따라다닌 느낌이다. 와타야 리사에게서 진부함이라니, 놀라는 이도 있을 수 있다. 전작들을 읽은 독자라면 과연, 그런 느낌은 전혀 떠올릴 수 없을 것이다. 재기발랄, 톡톡 튀는 예측불허의 상상력들이 터질 듯 넘쳐났던 전작들에서는 진부함 따위는 단 한 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3년만에 돌아온 와타야 리사의 신작은 어딘지 많이 듣고, 보고, 접한 이야기 같다. 많은 이들이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수없이 많이 되풀이되고 기사화된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하여 다시 한 번 읽는 듯한 기분이었다.
주인공 유코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 빤하게 보였다. 대략 어떤 식으로 상처받고, 어떻게 갈등하고, 좌절할 지... 제발 구태의연한 상황들에서 조금이라도 비껴갈 수 있길 바랐지만, 작가는 내 기대를 저버리고 구태의연한 길을 선택했다. 유코는 여느 어린 스타들이 그러하듯, 그런 그런 고민을 하고, 그런 그런 갈등에 빠져, 그런 그런 좌절을 경험하고, 그런 그런 인생을 살아간다.
연예계의 실상에 대해서는 굳이 이런 소설을 읽지 않아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너무도 많다. 인터넷만 열면 그런 소식들은 줄줄이 엮여 나온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은 웬만큼 자극적이지 않으면 진부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만 해도 유코가 당한 사건과 거의 흡사한 사건을 당한 연예인들이 많고, 여러번 기사화가 된 적 있다. 그래서 연예계가 어떤 곳이라는 걸, 그 실상이 얼마나 힘들고, 비참하고, 때론 추악하고, 한심스런 곳인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래서 나는 와타야 리사의 신작이 진부했던 것이다. 

또하나 실망스런 것은 주인공에게서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유코라는 주인공 캐릭터가 나는 참, 마음에 안 들었다. 특히 사랑 운운하면서 상처받고, 좌절하는 모습은 짜증도 났고,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안타깝거나 애처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연예인으로서의 생명이 끝장나든 말든 끝까지 해바라기 사랑을 고수하려는 모습이 보기 거북할 뿐이었다. 동정이 가지도 않았을 뿐더러, 그녀의 행동이 쿨하다는 생각는 더더욱 들지 않았다. 헤어지지 않을 거야. 마사아키를 만나지 못 하면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하는 따위의 대사들은 오히려 촌스럽고 진부했다.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응당 소설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연예계의 실상을 고발하듯 생생히 묘사하는 부분들도 별로 흥미롭지 않았고, 감동이 느껴지지도 않았다. 어쩌면 유코와 비슷한 삶을 살고, 그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비슷한 갈등과 좌절을 경험했을 와타야 리사 자신이 가장 공감하고, 감동했을 글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런 소설을 꼭 한번 쓰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서두에도 말했듯 어느 정도의 진정성은 느껴진다. 하지만 그것이 타인들에게서 얼마만큼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대중의 공감이나 판매 부수 따위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면 작가 개인적으로 만족스런 작업이었고, 결과물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기장에 써서 혼자 간직하지 않고 이렇게 책으로 펴 낸 것에는 여하튼 대중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글쎄... 전작들에 환호하고, 공감하고, 감동했던 독자들이, 이번 소설에서도 그런 반응을 보일 지...
물론 이 이야기를 꼭 연예계라는 무대로 한정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얼마든지 확장 해석은 가능하니까. 그렇게 폭넓게 해석해서 인생의 더 많은 부분들에 적용 시킨다면 더 많은 이들이 공감을 하고 감동을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역시, 공감도 감동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전작 두 편의 힘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래서 나는 와타야 리사의 다음 작품을 여전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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