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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공지영은 이것이 소설이라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서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혀지기 않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공지영의 속마음을 도통 알 수 없다. 정말로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혀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의도로 쓴 것 치고 이 소설은 너무나도 자전적이며, 심지어는 나르시즘까지 엿보인다. 자전적으로 읽혀지지 않기를 바랐다면, 다시 말해 보다 소설적으로 읽히기를 바랐다면 왜 작중 인물들과 자신과의 거리를 보다 객관적으로 유지하지 못 했을까. 또 하나, 이 소설에는 소설 다운 서사성이 결여되어 있다. 한 마디로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이야기는 시종 엄마와 딸이 번갈아가며 눈물을 짜다가 목청을 높이다가 웃으면서 씩씩한 척 하는 모습들을 반복해서 보여줄 뿐이다.
시종 발생하는 에피소드는 재미없거나 밋밋한 것들이며, 갈등의 원인들도 모두 진부하다. 한 마디로 예측 가능한 자잘한 이야기들이 다소 과장된 눈물과 웃음으로 범벅이 되어 넋두리처럼 청승맞게 흘러가는 것이다.
소설적으로 읽히길 바랐다면 보다 소설다운 이야기가 펼쳐졌어야만 했다. 세번 이혼한 유명 여류 작가에게 인신 공격적인 험담을 퍼붓는 여자가 등장하는 식의 에피소드는 넣지 말았어야 한다. 그 험담에 작가는 당당한 척 응수하지만 속으로는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딸도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다가 결국에는 그런 엄마를 자랑스럽고 멋있게 여기고... 매사가 이런 식이다. 뻔한 설정과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말과 감정들... 모든 에피소드의 기승전결이 이렇다. 이 모든 이야기와 장치들은 소설적이라는 느낌보다 자전적이면서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느낌으로밖에 이어지지 않는다. 소설적인 부분을 굳이 찾자면 그 작위성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위녕이라는 주인공의 모습도 어쩐지 캐릭터 구축에 실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겉 모습은 열여덟 소녀인지 모르겠으나 속에는 세번 이혼한 마흔다섯 살 중년 여인이 들어 앉아 있는 듯 했다. 작가는 이 아이가 톡톡 튀는 감각이 살아있는 팔팔한 십대 소녀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 중간 중간 많은 노력을 기울인 듯 했다. 절대로 작가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을 테다. 그러나 그 노력들이 성공적이지 못했다. 위녕에게서는 젊은 애 특유의 파릇파릇한 감정과 감각이 살아나지 않았다. 순간순간 중년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으며 어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친구 이름을 쪼유라는 이상한 이름(이든 별명이든)으로 설정하고, 문자 메시지를 수시로 이용하게 하는 등, 억지로 어린 척을 했으나 위녕은 어린 십대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애초에 작가가 의도한 모습이었다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평범하지 않은 애늙은이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그럴 거면 굳이 주인공을 십대 소녀로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또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위녕이라는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으면 말과 행동, 생각하는 바가 모두 아이 같아야만 하지 않을까. 가령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서도 아버지는 같으나 엄마가 다른, 서로 타인처럼 성장한 두 남매가 등장하는데 이 소설에서는 두 주인공 소년, 소녀의 감정에 충분히 몰입될 수 있었다. 나름의 상처와 문제와 고민을 가슴에 안고 있었지만 그들은 충분히 소년 소녀 다웠다. 과연 소년 소녀 다운 생각들로 어른들의 세계에 접근하고, 소년 소녀 다운 방식으로 그들의 문제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위녕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는 다분히 그런 입장에 처한 중년 여인 다운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며 문제를 풀어나갔던 것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결국 공지영과 온다 리쿠라는 작가의 입장 차이가 아닐까 싶다. 공지영은 실제 그런 삶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온다 리쿠처럼 자신이 내세운 주인공에게 객관성을 부여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세번 이혼하고 성이 각기 다른 세명의 자식들을 키우고 사는 중년의 여작가가, 세번 이혼하고 성이 각기 다른 세명의 자식들을 키우고 사는 중년의 여작가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고 했을 때, 독자들은 이미 그 이야기를 어느 정도 예측하게 된다. 이 소설은 그 일반적인 예측에서 거의 벗어남이 없는 소설이다. 내 예상을 벗어난 것이라면 내 예상보다 더 신파적이고 예측가능한 이야기였다는 것 뿐이다. 인물들의 행동과 작가의 목소리까지 모두. 그래서 소설을 읽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작가는 자신의 특별한 삶을 대중에게 이해받기 위한 목적으로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닐테다. 자신의 입으로 소설로 읽혀지기를 바란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더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보다 신선하고 재미 있는 상상력을 왜 더 발휘하지 못 했을까 싶다. 자신의 감정은 최대한 배재하고 보다 '소설적'인 객관성을 확보하고 더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했어만 했다.
이 소설은 대체적으로 칭찬일색이다. 대단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라고 하는 평들이 참 많다. 유난히 공지영을 좋아하는 팬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평을 쓰기가 심히 유감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도 공지영의 팬이라면 팬이다. 지금껏 그녀의 많은 작품들을 읽어왔고,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을 내렸기 때문이다. 특히 그녀의 첫소설집인 '인간에 대한 예의'와 장편 '고등어'는 정말 좋았다. 그랬기에 더욱 이번 작품에 유감과 실망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건 아주 '개인적인' 실망이고, 감상일 뿐이다. 다수의 독자가 재밌다고 하니 일단 한번 읽어보고 평가를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끝으로 공지영이 앞으로 조금은(아니, 좀 많이) 신파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