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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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었다. 김애란이 2005년에 발표했던 단편이다.
나는 정말 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같은 기분으로 김애란의 두 번째 소설집을 기다렸다. 그녀는 첫 소설집을 낸 지 채 2년도 안 되어서 두 번째 소설집을 상재했다. 비교적 빨리 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시간이 너무 더디게 흐르는 것 같았다. <달려라 아비>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내 안에 머물러 있던 까닭이다. 첫번째 소설집을 봤기 때문에 두번째 소설집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하튼 그녀는 다시 왔다. 상상 속에서 아버지를 끊임없이 달리게 만들었던 것처럼 그녀 자신도 힘차게 달려서 왔다. 지난 2년간 김애란은 꾸준히 질주하고 있었다. 매 계절 끊이지 않고 작품이 발표되었다. 그 결과 여러 문학상 후보로 이름을 내밀었고, 이렇게 빠르게 두번째 소설집을 묶을 수 있었던 것이다. 운 좋고, 인기가 좋은 작가지만, 기본적으로 부지런하고 할 얘기가 많은 열정적인 작가다.  

김애란의 시선은 더욱 낮아졌고, 더욱 깊어졌으며, 더욱 밝아졌다.
한 층 몸을 구부리고, 자신보다 더 낮은 곳의 풍경을 응시하고, 더 낮은 곳에서 흘러드는 풍문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낮은 곳의 사람들을 향해 말을 건넨다.

남루한 젊음의 초상들. 그러나 겉모양이 남루하다고 꿈까지 남루할 수는 없다. 낮고 그늘진 그 곳에서도 애드벌룬처럼 꿈은 파란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바람이 불고, 물이 넘쳐나고, 복작대는 인파에 치여 이리저리 흔들리며 상처받아도 그들의 꿈은 맹렬히 부풀어 오른다. 솟아오르는 꿈의 끈자락을 사람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쓴다. 언젠가는 거대하게 부풀어진 꿈의 풍선이 자신을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는 정겹고 기분 좋은 곳, 재수생이 아닌 대학생이 될 수 있는 곳, 백수가 아닌 직장인이 될 수 있는 곳,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맘껏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유롭고 아늑한 곳, 엄마와 아버지가 부재하지 않는 곳, 결핍이 없는 행복과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곳,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자신만의 방 한 칸을 원한다. 자신만의 네모난 자리를 원한다. 자신의 미래는 더없이 밝고 아늑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 믿음만으로 사람들의 입에는 침이 고인다. 살아갈 힘과 용기가 생겨난다. 그렇게 하루하루 부풀어가는 꿈을 바라보며, 남루한 현실 속의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저마다의 방을 꿈꾸며...
저마다의 별자리를 그리며...

여덟 편 가운데 가장 좋았던 작품은 표제작이기도 한 '침이 고인다'였다. 이 단편에는 김애란이라는 작가가 현재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장점들이 다 들어가 있는 듯 했다. '도도한 생활', '자오선을 지나갈 때', '칼자국', '성탄특선', '기도' 등도 좋았다. 수록작들의 재미가 모두 평균을 넘어섰다.
<달려라 아비>에 비해 템포는 조금 느려졌지만, 호흡은 더 안정된 것 같다. 다시말해 이제 더 긴 코스를 질주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김애란은 곧 장편 집필에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그녀의 장편을 기다린다. 벌써부터 그대 언제 오시려나 저 바다 건너서, 같은 기분으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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