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이 되어
송은일 지음 / 예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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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와 전생을 믿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었다.

새벽 3시, 마지막 장을 덮으니 밤새 창문을 시끄럽게 두드렸던 바람처럼 천 개의 바람이

내마음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것 같았다.

지구 전체 인구의 100분의 1쯤이 회귀를 겪는다고 추정한다. 나는 회귀의 경험을 갖지

못했으니 1%의 회귀인은 아닌 모양이다.

살아오면서 윤회와 전생, 후생의 존재에 대해 나는 깊은 신뢰를 해온터였다.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어느 한 지점에 내가 서있다고 믿었고 과연 내게 전생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내내 궁금하여 최면요법을 생각해보기도 하였다.

전생에 사람이었는지 미물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시대 이런 모습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후생에서 어떤 모습으로 환생할지도 궁금했다.

 

 

4년 전 가을, 1896년에 태어난 세여자가 작가를 찾아왔다고 했다.

김명순, 나혜석, 김원주!

당시 신여성이라 불린 여자들의 다른 이름 '화낭년'으로 굴곡진 삶을 살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그녀들이 작가를 찾아 왔다고 표현한 것은 내가 환생을 믿기 때문이다.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때문에 풀지 못한 한 때문에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줄 사람을 찾아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재능을 지닌 예술가들중에 환인들이 많다고 한 것을 보니 혹시 작가도 환인이 아닐까.

그녀들의 이야기를 반 년만에 접고 다시 '천 개의 바람이 되어'로 우리에게 오기까지 작가는

무던히도 속을 썩였던 모양이었다.

전쟁의 기억을 가진 환인들의 이야기는 꺼내기 힘든 소재였을 것이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일으킨 천 개의 바람을

오롯이 느꼈다.

 

 

분명 미친 듯이 소설을 써서 전생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유아리와 전생에는 혜석

(이 작품에서는 유석)이었으나 지금은 남자로 환생한 재엽, 그리고 신문기자가 된 또나의 환인녀 해인!

전생에는 마음을 나누는 절친이었고 현생에서는 서로를 알아보는 환인으로 다시 만난 세 남녀가

각기 전생의 기억을 극복하고 현생에 적응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전생의 기억에 맺힌 사람과 부딪히면 극심한 회귀통을 겪으면서 과거의 기억까지 떠안고 살아야 하는

슬픈 존재들! 하지만 거듭 살아낸 지혜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환인들의 삶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환인의 아픔을 겪지 않는 평범한 삶이지만 역시 재능조차 변변히 지니지 못한 범인의

부러움이라면 용서가 될까.

비범한 예술가의 모습으로 혹은 장애를 지닌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을 지도 모를 환인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현생의 업을 소멸시켜 후생에는 죄를 짓는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해진다.

송은일 작가와는 첫만남이었지만 이렇게 심도깊고 치밀한 구성을 가진 작품을 쓴다는 것에

깊은 존경의 마음이 우러났다. 그녀 역시 전생과 현생을 잇고 환인과 속세를 이어주는 샤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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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 지옥에 가다
이서규 지음 / 다차원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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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악마의 동전'역시 아주 독특한 소재로 한국사의 과거를 돌아보게 했던 이서규작가의 신작

'스님, 지옥에가다'역시 가슴아픈 한국사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이념의 희생자였던 주인공 '휘문스님'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간신히 탈출하여 부산 범어사로

몸을 피하게 된다. 양구 황태사의 주지승인 '홍안스님'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휘문'과 '혜장 '스님은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고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게 된 한국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건의 빌미였음을 알게된다.

현세의 업을 소멸하기 위해 수행하는 수도자들의 고단한 삶과 욕망과 더러움이 드끓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야차들을 보노라면 지옥이 먼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깊은 산속의 산사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의 범인을 쫓으며 과거 살육의 현장에서 비겁하게 살아남은

'휘문'의 트라우마와 역시 전쟁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과거가 교차되면서 과연 인간의

선과 악의 경계가 어디인지 생각하게 된다.

 

 

 

'먼곳에 있는 부처를 찾지 말고 내 곁에 있는 부처를 보라'는 '혜장스님'의 말은

지옥과도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7개국어에 능통하다는 작가가 이렇듯 우리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대학시절 짝사랑하던 여인에게 걷어 차인 뒤 울적한 마음으로 나섰던 산사여행에서

만난 스님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 소설의 탄생은 한국 불교의 역사와

성찰이 없이는 쓰기 어려운 작품이다.

그런 점에서 이서규작가의 뛰어난 역량이 느껴진다. 하지만 간단히 기술된 그의 프로필만으로는

그의 지나온 시간들을 짐작하는데 아쉬움이 있다.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지나온 우리 아픈 역사를 교묘하게

조합한 이번 작품은 전작에 비해 완성도가 뛰어나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행들을 보면 우리는 어느 지옥에 떨어질 것인가

생각해본다. 아니 어쩌면 우리는 이미 지옥에 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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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버스 - 오천 년 한반도 역사 속을 달리는 한 권으로 끝내는 역사 버스 시리즈 1
박찬구 지음, 서선미 그림 / 니케주니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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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무조건 외워야 하는 어려운 공부'라고 생각하면 역사는 어려워진다.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처럼 이해하고 공감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생각하면

우리가 살아보지 못한 그 시대가 마음속에 쏙 들어오게 될 것이다.

특히 초등학생들에게 역사란 무진장 어려운 과목으로 생각되어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라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한국사 버스'에 올라타 종횡무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수천 년 한국사의

전체를 꿰뚫게 될 것이다.

 

 

오천 년 한반도 역사 속을 시원스럽게 달리는 '한국사 버스'를 타면 가장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을까에 대한 해답을 만나게 된다.

기원전 70만년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여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를 거쳐 고조선의

역사가 시작되고 그후 한반도에 수많은 이름으로 세워졌다 사라진 나라들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각 시대별로 마흔 개의 정거장을 돌게 되는 '한국사 버스'의 코스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지금의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으로 되돌아 오게 된다.

마치 마음 넉넉한 아저씨의 동화처럼 귀에 쏙쏙들어오는 설명도 쉽거니와 대화체의

문장들이 어린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다.

각 정거장마다 중요한 Tip은 친절한 설명으로 보충되어 있어 시대별 특징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왜 우리아이들이 역사를 배워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 질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거 우리 조상들의 삶의 경험과 발자취를 통해 지금의 어려움이나

고민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단다. 그러니 역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일러주는

소중한 거울 같은 것이지.- 작가의 말 중에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간도 언젠가는 '역사'가 될 것이다. 이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는 아이들이 되려면 '한국사 버스'에 올라타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멋진 역사를 후손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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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을 드세요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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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생명을 유지시키는 힘뿐만아니라 맛있는 것을 즐기는 기쁨을 준다.

경사스런 일이 있을 때에도 서로 음식을 나누는 일이 즐겁지만 삶에 지쳤거나 우울할 때 혹은

몸에 병이났을 때 문득 어머님이 해주시던 따뜻한 음식이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몹시 화가 났을 때 배가 부를 때까지 먹고 나서 포만감이 느껴지면 스스르 화가 풀린다는

친구도 있다. 심리학자들 말로는 배가 부르면 화를 유발시키는 물질이 억제된다고 하니 나처럼

화가 잦은 사람든 뚱보가 되기 십상이다.

'달팽이 식당'의 오가와 이토는 음식에 남다른 추억이나 안목이 있는 모양이다.

이 책에 소개된 음식을 글로만 접했는데도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생생하게 살아있다.

 

 

'생굴과 복숭아 콤포트에는 훈제 생선으로 풍미를 더한 무스 상태의 크림을 올렸다. 조금 올린 캐비어가

멋진 악센트가 되어 입속에서 터졌다...중략..세벤 지장에서 재배한 양파에 파타네그라종이라는 돼지로

만든 초리소를 사이에 한 장 한 장 끼워 넣어 밀푀유로 완성해 캐러멜 소스로 구운 요리는 수많은 셰프의

요리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본문  114~115p

 

이 정도로 읽는 독자들의 침샘을 자극할 정도로 그려내려면 자신이 미식가의 수준이 아니면 어려울 것이다.

음식이 인간의 몸뿐만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고 풍요롭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이다.

치매로 입원한 할머니는 거의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언젠가 후지산을 닮은 모양의 빙수를 맛있게 먹던

모습을 기억해낸 손녀가 여름 한낮의 뜨거움을 이기고 기어이 배달해온 빙수를 맛있게 먹는 장면이라든지,

내일이면 결혼하는 외동딸을 혼자 남을 아버지를 위해 마지막으로 된장국을 끓이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했던 레스토랑을 찾아가 마치 살아있는 남편과 마주하여

추억의 음식을 즐기는 환영에 빠진 할머니의 모습도 감동스럽다.

누구에게나 한 두가지쯤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 있을 것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비싼 재료가 아니었어도 내 간절한 어느 시기에 나와 함께 했던 음식.

그리고 그 음식에 얽힌 사람과 기억들.

흔히 TV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맛집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나오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어려서 엄마나 할머니가 해주시던 그 맛!'

역자의 말처럼 다 읽고 "잘 읽었습니다"대신 "잘 먹었습니다"라고 인사해야만 할 것같다.

그리고 덕분에 가난해진 마음이 오랜만에 넉넉해졌습니다..라고.

일곱편의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 '따뜻함을 드세요'에 등장한 주인공들은 따뜻한 음식으로 허기지고 상처받은

마음까지 치료를 받았고 읽은 독자들 역시 넉넉함을 나누어 받은 맛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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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를 읽다 - 마광수 인생론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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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로 일탈을 꿈꾼다. 유교를 숭상하던 후예답게 효와 예를 다해야 하고

도덕과 규범을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성장했으니 대체적으로 조신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틀을 깨부수고 과감한 삶을 살고 있는 자유로운 영혼을 만나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던 생각과 행동에 대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된다.

암튼 마광수란 인물은 우리 사회에서 '파격'이라는 단어하나로 압축될 수 있는 인물이다.

우주로 로켓이 왔다갔다 하고 더 이상 성(性)이 쉬쉬하는 세상이 되지 않았지만 아주 오래전

고루한 인물들이 판을 치던 시대부터 그는 사회의 어느 것에도 얽매임이 없이 외치곤 했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에서 '나는 헤픈 여자가 좋다'로 발전하더니

'즐거운 사라'와 함께 '가자 장미여관으로'라고 신나게 외치다 결국 외설죄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20세기에서도 아주 오래전 17세기에나 있었을법한 죄명으로 그의 자유가 구속된

것이다. 물론 그 정도쯤으로 그의 파격이 멈춰지지는 않았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라 부모의 섹스로 '우연히' 태어났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효도'를 강요하거나 바란다는 것은 지극히 뻔뻔스럽고 후안무치한 심보가 아닐 수가 없다.'-24p

 

자세히 들어보면 틀린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단지 섹스의 산물도 태어난 생명이라는 것에 존재감이 급강하하는 것 같아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자살하는 이를 비웃지 마라, 그의 좌절을 비웃지 마라...그는 가장 자비로운 자 스스로의 생명을 스스로

책임 맡은 자 가장 비겁하지 않은 자...'197p

 

한창 질풍노도의 시간을 지나고 있을 때 나역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스스로 태어나고 싶은 의지가 없었으므로 죽음만큼은 내가 선택하겠다고.

죽을 힘으로 살지..하는 사람들 말처럼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인생 자체가 쉬운일이 없다.

그러나 이왕 태어났으니 재미있게 본능대로 살자고 하는게 그의 주장이다.

한편으로 그의 주장이 거짓으로 무장된 내마음을 흔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의 나이는 환갑이 넘었다. 하지만 그의 정열은 그가 죽음에 닿을 때까지 시들 여지가 없어보인다.

그를 그 답게 하는 '파격'이 싫은 사람도 꽤나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적당히 거짓으로 포장된 이 세상에 솔직하고 당당한 그의 '파격'이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가

세금 한푼 내지 않고 부를 착실히 쌓아가는 수많은 종교와 종교인에게 던지는 쓴소리도 시원하다.

지금 이 순간도 중동과 아프리카의 어딘가에서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겠다고 수 많은 생명을 죽이고

있는 저들의 '파격'보다는 그의 '파격'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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