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돌아오는 곳 창비청소년문학 52
존 코리 웨일리 지음, 이석연 옮김 / 창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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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열일곱 살 소년 컬런은 마약중독에 빠진 사촌형 오슬로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엄마와 동생인 가브리엘과 함께 안치소를 다녀왔다.

그 뒤 마을에서 가장 예쁘다고 알려진 에이다 테일러와 사귀었던 남자애들이 차례로 죽음을 맞이하자

죽음의 존재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컬런의 가장 가까운 친구 루커스는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알콜중독자가 된 형이 교통사고로

죽은 상처를 캐런과의 우정을 통해 극복하고 있다.

 

컬런이 살고 있는 반대편 아프리카 땅에는 선교를 하기위해 에티오피아에 온 열 여덟 살 소년 벤턴이 있었다.

폭력적인 아버지는 어린 소년 벤턴이 하느님의 종으로 살기를 원해 성경을 외우게 하고 아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선교사의 길을 걷게 한다. 하지만 선교사의 길이 맞지 않음을 알게된 벤턴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는 날 자살하고 만다.

 

 

 

벤턴의 룸메이트였던 캐벗은 룸메이트의 짐을 정리하다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고 벤턴이 남긴 성경구절의

의미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3년동안 신학공부를 하던 캐벗은 동생과 함께 영화관에 갔다가 앨마를 만나게 된다.

캐벗과 앨마는 결국 결혼하게 되었지만 앨마는 무능한 캐벗을 떠나게 된다.

 

서로 만난적이 없었던 컬런과 밴턴, 캐벗과 앨마의 연결 고리는 결국 컬런의 동생인 가브리엘의 실종으로 이어진다.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환자가 된 에이다와 사귀게 된 컬런은 에이다가 다시 예전남자친구에게로

돌아가자 앨마를 만나기 시작한다.

 

앨마가 떠나고 상심에 빠진 캐벗은 앨마를 찾아 헤매다가 컬런이 앨마의 새 남자친구가 되었음을 알게된다.

앨마에게서 떼어내기 위해 컬런을 찾아 나섰던 캐벗은 엉뚱하게도 동생인 가브리엘을 캐런으로 알고 납치하게 된다.

 

가브리엘이 실종된 후 컬런의 엄마는 정신적인 방황에 빠지고 아빠는 생업마저 포기하기에 이른다.

컬런은 가브리엘이 시체로 발견되는 상상을 하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나날을 지내게 된다.

 

누구에게나 어둠과도 같은 시간을 지날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이나 죽음은 정신적인 공황을 초래한다.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아이들에게 사랑과

이별은 온 우주를 등에 업은 것같은 무게감을 준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지나가고 빛나는 햇살아래로 나아가는 것.

 

미국의 소도시에서 그저 그렇게 성장하는 소년들의 삶을 통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게 된다.

미국이든 아프리카든 고만고만한 아픔을 겪으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있다.

이 소설은 두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결국 한 점에서 만나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한 점에서 만나 열 다섯살 소년이 실종되는 사건의 빌미가 된다.

 

 

실종되기 전 동생인 가브리엘은 형 컬런에게 이렇게 말한다.

 

"형, 우리는 아직 인간을 포기해서는 안돼. 누구한테나 새 출발의 기회가 있는 거 알아?

홍수가 난 다음의 노아처럼 다시 시작하면 돼. 인간이 아무리 악해지더라도 어떻게든 새롭게

출발할 기회는 있는거야."

 

동생의 이름이 대천사 가브리엘의 이름인 것은 결코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남루하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가브리엘의 이 말이 등대불처럼 반짝거린다.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이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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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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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저 우주에 문명을 가진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 누구든 이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심심치 않게 ufo가 나타났다는 보도가 나오고 어느 우주비행선에 지구의 정보를 담아 우주로 띄워보냈다고도 한다.

인류는 늘 우주의 세상을 동경하고 우리와 비슷한 생명체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이 소설은 우주에 대한 시선을 중국적으로 해석한 책이라고 평하고 싶다.

물론 작가가 중국인데다 중국의 역사가 스펙트럼처럼 펼쳐져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도 연구 센터의 연구원인 왕먀오에게 어느 날 경찰 두명과 군인 두명의 이상한 조합을 가진 네 사람이

찾아온다.  그 중에서도 연신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스창이란 경찰은 태도부터가 불량스럽다.

그들은 뜬금없이 "최근 '과학의 경계' 회원과 접촉한 일이 있죠?"라고 물어온다.

유명한 과학자들의 모임인 '과학의 경계'의 회원인 물리학자들이 최근 두 달 사이에 순서대로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사건을 조사하는 팀들은 미국과 영국등의 정보원을 포함한 중국의 정보국과 군인들.

사건조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왕먀오는 취미인 사진을 찍다가 이상한 숫자들이 사진에 찍힌 것을 발견한다.

다른 사람들이 찍은 사진에는 찍히지 않고 왕먀오의 사진에만 보이는 이상한 숫자들은 뭔가를 향한 시간의 카운트 다운 표시였다.

 

단순 자살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운 사건뒤에는 자살한 여성 물리학자 양둥의 어머니이며 천체 물리학자 예원제가 숨어있다.

문화혁명시절 물리학자인 아버지가 제자들에게 무참하게 살해되는 현장을 목격한 예원제는 벌목현장에 투입되었다가

건너편에 세워진 레이더봉이 있는 홍안으로 차출된다. 비밀스런 기지인 홍안은 우주와의 교신을 위한 조직이다.

 

한편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시간의 카운트 다운 표시를 쫓던 왕먀오는 '과학의 경계'회원인 선위페이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하고 있던 인터넷게임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v장비 방식만을 지원한다는 이 게임이 바로 '삼체'의 존재를 밝히는 열쇠가 되는 셈이다.

어둠과 여명이 교차하는 황야에서 그는 주나라 문왕이라는 사람과 복희를 만난다.

 

삼체란 세 개의 태양이 있는 우주의 한 행성으로 항세기와 난세기가 교차되면서 삼체인들은 탈수와 입수를 반복하며 200여번의 멸망을

견디며 살아남은 별이다. 이 삼체와 지구의 관계를 연결해주는 것이 바로 예원제이다.

예원제는 비밀스런 홍안기지에서 몰래 태양을 향해 전파를 쏘아올린다. 이 전파를 수신한 삼체는 400여년 후 지구에 도달할 예정이고

삼체와 교류하면서 지구의 멸망을 부추기는 조직체인 '과학의 경계'인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삼체반군들의 모임의 최고 사령관이 바로

예원제였다.

'이곳에 오십시오. 나는 당신들이 이 세계를 얻는 것을 돕겠습니다. 우리 문명은 이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었습니다.'

석유재벌의 아들로 유조선이 좌초되면서 기름범벅이 된 새들의 죽음을 목격한 에번스란 남자가 애초에 이 조직을 결성하였으며

삼체를 향해 지구를 멸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삼체 반군을 주도한 인물이다.

삼체반군들은 인간의 본성에 철저하게 절망하여 지구 종의 대 멸종을 염원하는 강림파와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해줄 신을 기다리는

구원파로 나뉘게 된다.

 

 

삼체반군의 정체를 파악한 지구의 많은 나라에서는 공동으로 작전을 세워 반군을 저지하는 작전을 세우고 파나마 운하를

지나가는 삼체반군의 기지 '심판호'를 파괴하고 삼체에 관한 정보를 빼내기 위해 초강도 나노 소재인 비도를 이용하기로 한다.

 

먼 우주의 삼체에서는 양성자 두 개를 지구로 보내고 3차원의 형태로 지구에 도달한 양성자의 이미지가 왕먀오에게 포착된 것이다.

그 시간의 카운트다운 영상은 바로 지구의 멸망을 예고한 것이었다.

 

과연 삼체는 400여년 후 지구에 도착되고 지구를 멸한 것인가.

 

자신들이 도착할 먼 미래의 지구가 과학적인 진보가 이루어져 자신들보다 우월할 것을 염려한 삼체는 삼체반군들을 이용하여

기초과학자들을 하나 씩 없애는 작전을 편 것이었다. 그들이 '너희는 벌레다'라고 불렀던 지구인들은 빙하시대에서도 살아남은

바퀴벌레처럼 살아 남을 것이다. 벌레는 결코 미개하거나 미천하지 않은 존재임을 반드시 보여줄 것이다.

 

이 소설의 스케일이 너무 커서 과학을 극도로 싫어했던 내가 읽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우주에 지구의 존재를 아는 인류보다 좀 더 진화된 명체들이 살아있고 200여번의 소멸과 탄생을 겪은 그들이 좀 더

살기 좋은 지구를 향해 함대를 발진 시켰다는 상상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과연 이 소설이 완전한 허구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무한한 우주의 공간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끌어와 '삼체'를 탄생시킨 작가의 역량이

감탄스러울 뿐이다.

더불어 인간의 본질을 악(惡)으로 규정짓고 멸망으로 이끌겠다는 주장도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자연파괴와 그에 따른 수많은 재앙들이 도래하고 있는 요즘,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자성이 꼬리를 물고 있다.

삼체반군의 지도자들이 지식인들인 것은 세상의 이치를 알고 있는 그들이 지구의 미래를 어둡게 예측하고 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과연 삼체 혹은 명명되지 못한 우주의 어떤 존재가 지구를 향해 오고 있다는 가정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무수히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작가의 상상이 그저 상상으로만 끝났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더불어 중국과 인류의 역사뿐아니라 과학적인 지식의 수준이 대단한 작가의 다음 작 '어둠의 숲'에서는 인류를 구원할 희망의

메시지가 들어있기를 소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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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 가슴으로 써 내려간 아름다운 통일 이야기
이성원 지음 / 꿈결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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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60년! 여전히 전쟁중인 가슴아픈 땅 한반도에 살아가는 국민으로서 30년차 통일부 공무원의

생생한 남북 교류 현장의 이야기를 읽으니 가슴부터 저려온다.

내 어머니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한 북한을 누구보다 많이 고간 사람이기에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아내의 부모님 고향도 평양이라니 그가 바라본 평양의 거리가 남 달랐을 것이다.

왜 우리는 분단의 땅에서 살게 되었을까.

몇 시간이면 당도하는 북녘의 땅은 여전히 철책선 너머에 존재하고 이질적인 삶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동포들과의 만남은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었을 것이다.

처음 남쪽 사람들을 만났던 북한 사람들의 뚱한 모습도 이제는 많이 부드러워졌다지만 60년의 분단이

만든 이질성은 통일 후에도 분명 힘든 과제가 될 것이다.

 

 

평양시내에서 만난 아이들의 순박한 얼굴이며 소박한 도시락속에서 어린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모습이며 개성공단내에서 만난 아이들과 어울리며 좀 더 좋은 탁아소를 지어주고 싶어하는 마음들은

작가의 착하고 순수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탈북자들을 교육하는 하나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부모처럼 따뜻하게 대해주고 다시 설수 있게 해주는

모습은 앞으로 우리가 통일을 한 후 어떻게 그들을 맞고 대해야하는지 해답을 보여준다.

 

그와 같이 일을 하던 북한의 당국자들도 자존심과 사상을 잠시 접어두고 서로 손을 맞잡고 한 마음이

되는 장면들에서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게 바로 한 민족이라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영양이 부족하여 피그미족이란 말까지 들어야 하는 어린 군인들의 모습에서 북한의 절박한 실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과연 그들에게 식량이며 비료를 지원해야 옳은지 불만이 많았던 나로서는 누렇게

뜬 그들의 얼굴에서 차마 지원을 중단하라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아들과도 같았던 북한의 병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시합을 끝내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태권도선수에게 자신이 찼던 시계를 주면서 아버지에게 전해달라고 하는 장면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북한에 가기 전 미리 선물을 정성껏 준비하고 접대원들에게 후한 팁까지 주는 그의 마음은 '사랑'그 자체가

아닐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아버지같은 그런 마음.

그가 오랫동안 북한을 오가면서 나누었던 사랑은 앞으로 통일후에 우리 민족의 문제를 극복하는 해결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동안 그동안 중단 되었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되었다는 소식과 갑자기 무산되었다는

소식이 연이어 전해졌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리기에 시간이 부족한 연로한 어르신들이 얼마나 실망하셨을까.

평생 기다려온 상봉일을 기다리다 갑자기 운명하셨다는 할아버지의 소식도 가슴아프다.

 

매번 우리를 실망시키고 울분케하는 북한은 마치 계륵과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어쩌랴 그들도 같은 핏줄임을. 언젠가는 다시 만나 함께 살아가야 하는 핏줄임을.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다시 만나 하나가 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그들을 이해하고 만남의 광장으로 손을 잡고 이끌어야 하지 않을까.

무뚝뚝하고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그들이라도 뜨거운 사랑앞에서 어찌 무릎을 꿇지 않을까.

그들 역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우리의 핏줄임을 다시 한번 새겨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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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한국 베스트 단편소설
김동인 외 지음 / 책만드는집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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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문고판으로 읽었던 한국의 단편문학들을 다시 읽으니 절로 감동이 밀려온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주옥같은 작품속에는 그 시절의 애환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은 인력거를 끄는 김첨지가 유독 운수가 좋았던 하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집에는 병에 걸려 누워있는 아내와 빈젖을 빨고 있는 간난아이가 기다리고 있다.

아침 댓바람부터 손님이 몰려들더니 거금 삼십원을 벌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김첨지는 묘한 불안감을

느낀다. 집에 들어서면 기어이 확인할 것 같은 불행의 그림자를 알아차린 것이다.

아내가 먹고 싶어했던 설렁탕을 사들고 들어갔건만 이미 아내의 몸은 뻣뻣해지고 김첨지는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 운수가 좋더니만...'하고 오열한다.

사십에 가까운 노처녀인 b사감은 주근깨투성이 얼굴에 시들고 거칠고 마르고 누렇게 뜬 폼이 곰팡 슨

굴비를 생각나게 한다. 이 b여사가 질겁을 하고 싫어하는 '러브레터'를 들고 한밤중에 일인 이역을 하면서

"나의 천사, 나의 하늘, 나의 여왕, 나의 목숨, 나의 사랑, 나를 살려주어요. 나를 구해주어요."하는

장면은 왠지 마음을 짠하게 한다. 노처녀 사감의 꺼지지 못한 사랑의 애?음을 어찌 이리 잘 그려내었는지.

 

 

나도향의 '벙어리 삼룡이'는 어려서 영화로도 본 기억이 있다. 새로 시집온 안채의 새댁을 은근히

사모한 벙어리 삼룡이 결국 매를 맞고 쫓겨나 주인집에 불을 지르는 장면에 알수없는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늑막염으로 고생하다 요절한 김유정의 소설 '봄.봄'은 열살이나 어린 점순에게 장가들기 위해 장인을 조르는

노총각의 안달이 아스라히 피어오르는 봄 아지랑이처럼 사랑스럽다.

"점순이 키좀 키게 해줍소사."

성례를 시켜 줄 마음도 없이 종처럼 부려먹는 장인과 노총각의 치고 받는 대화가 걸작이 아닌가.

이웃에 사는 총각을 좋아하던 점순은 제마음을 몰라주는 총각집 수탉을 괴롭히며 은근 제마음을 전하려 든다.

하지만 둔감하기만 한 이웃총각은 결국 점순네 쌈닭을 죽이고 마는데...눈물까지 흘리며 걱정하는 총각에게

"닭 죽은 건 염려마라. 내 안 이를테니."하며 총각을 부여잡고 노란 동백꽃 속으로 파묻힌다.

살금살금 피어오르는 처녀 총각의 풋사랑이 싱그럽기만 하다.

 

계용묵의 '백치아다다'역시 영화와 노래로도 만들어진 작품이다.

말을 못하는 아다다의 슬픈 운명이 파도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처럼 안타깝다.

이상의 '날개'는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하는 마지막 부분이 인상깊었었다.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한 이 소설을 쓰고 얼마 후 이상은 진짜 날개를 달고 하늘로 떠났다.

 

평양이 고향인 김동인의 소설의 무대는 대동강이 흐르는 평양이다.

대동강변에서 들려오는 '배따라기'소리에 홀린듯 찾아낸 사내의 서글픈 노랫가락에는 자신의 의심으로 자살을 한

아내와 아우의 출가로 이십여년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사연이 숨어있다.

무능한 남편 대신 몸을 팔아 생계를 연명하던 복례는 단골인 왕서방이 새장가를 가던 날 기어이 쳐들어가

죽음을 맞이한다. 왕서방과 복례의 신랑, 그리고 한의사는 서로 짜고 뇌일혈로 진단한 후 공동묘지로 가져간다.

 

'메밀꽃 필 무렵'은 늘 보름달이 연상된다. 보름달 아래 눈을 뿌린 듯 희게 피어난 메밀꽃 사이를 지나는 허생원과

조 선달과 동이. 오래전 홀린듯 찾아간 물방앗간에서 맺은 하룻밤 인연을 잊지 못하는 허생원.

애비없이 홀로 큰 동이가 허생원과 같은 왼손잡이임을 그려 그의 아들임을 은근히 암시하면서 끝나는 장면이 압권이다.

 

우리의 단편문학은 1900년대 초기 근대화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모습이 잘 녹아져 있다.

여전히 가난한 조국과 신지식인들의 고뇌, 그리고 민중들의 고달픈 삶들이 너무도 진솔하게 그려져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작가 자신들도 가난했고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고뇌하는 신지식의 모습이 바로 그 자신들이었을

것이다. 때론 해학이 넘치고 때론 아프지만 그 시절의 언어들을 만나고 가난한 작가들을 만났던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대를 이어 아이들에게도 난 이 책을 전수해 줄 것이다. 아이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만날 수 있으므로.

아련한 기억속에 명작으로 기억되던 13편의 단편을 다시 보니 얼마나 반갑고 그립던지..읽는 내내 가슴이 뭉클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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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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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 사상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비평가이자 젊은 지식인 이라는 사사키 아타루가 책과

혁명에 대한 생각들을 자유롭게 담아낸 에세이를 읽기 전 그가 이 작품을 쓰기 전 같은 소재로

썼다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았다.

'책과 혁명에 관한 닷새 밤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역시 책과 혁명에 관한 생각을 자유롭게

쓴 에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루터를 비롯하여 마호메트, 니체, 도스토옙스키, 프로이트, 버지니아

울프같은 수많은 개혁과와 문학가, 철학가를 통해 '책이 곧 혁명'임을 주장한다.

어째서 '책'이 곧 '혁명'이 될 수 있는가.

지나온 역사속에 등장한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가들에게 책은 일종의 도화선과 다름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책은 죽은 책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깨달았다면 과감한

실행을 통해 과거를 바꿀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단지 생각하고 실행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책이 그저 '읽고 마는 것'에 그쳤지만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들에게 책은 곧 '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생각하고 실천하는 매개체가 되었기에 '책이 곧 혁명'인 셈이다.

 

 

결국 책을 구성하는 '읽고 쓰는 것이 세계를 바꾸는 변혁의 중심'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의 전작들을 둘러보지 않고는 이 책을 이해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혁명은 오직 문학으로부터 일어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힘들 것이다.

 

 

'말 또한 스스로 발화할 때는 삶을 체득하지만, 그것은 찰나일 뿐이며 찰나만이

염주 알처럼 이어져 있는 감각이랄까요?....즉 말은 정의하는 것이지만,

실은 답답한 것이 아닐겁니다.'  -37p-

 

'글은 곧 자신을 해방시키는 것이며 진솔하게 계속 써나감으로써 언어는 불가능한 것이면서도

계속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37p

 

아쿠타카와상 수상자인 작가 '아사부키 마리코'는 말과 글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글은 영속성을 지닌 존재이며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매체인 셈이다.

 

 

'여러분 철학을 공부하십시오. 하지만 창작 활동에서는 자신이 쌓아온 지식을 한순간 불꽃 속에

태워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 아까워하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완전히 잊을 정도로 그것을 제로로 해버려야 합니다. 지식은 은행의 예금계좌가 아닙니다.'

 

스스로 '철학자'임을 밝히는 사사키는 우리에게 '철학을 공부하라'고 말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철학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씨앗과도 같다는 말일 것이다.

 

작가는 작가이자 극작가 클라이스트의 '칠레의 지진'과 20세기 최대의 시인이라고 생각하며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제목에 시구를 빌려올 정도로 각별한 독일 시인 파울 첼란의 시를

읽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글쎄 이 두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다면 이 책이 좀 더 쉽게 읽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을 꼭 읽어야만 할 이 책에는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적혀있다.

특히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운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평소에 책을 읽는다고 노력했건만 읽는 내내 '치열한 무력감'을 느낀 책이 되었다.

분명 누구에겐가는 '포만감'을 주는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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