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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
후안 에슬라바 갈란 지음, 조영실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전쟁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 필요악(惡)이다. 객체의 적절한 보존을 위해 자연발생적인 원인으로
시작되었던 원시시대의 전쟁과는 달리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이기와 권력의 탐욕 그리고 가장
큰 원인인 종교에 의해 인류의 시작과 더불어 지금까지 전쟁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스페인내전이 6.25전쟁과 비슷한점은 민주파와 공산파간의 세력다툼이었고 같은 민족간의 전쟁이었던
데다가 주변 강대국들의 이권개입이 있었다는 점일것이다. 물론 우리처럼 둘로 나뉘는 불행만은 피했지만..
어느전쟁이든 명분이 있든 없든 환영받거나 축복받거나 아름다운 전쟁은 없다.
대체로 권력을 가진자들이 권력을 지키거나 키우고 싶을때 혹은 불손한 사상을 가진이가 반란을 꿈꿀때
더이상 물러설곳이 없는 약자가 최후의 발악으로...그리고 그들 각자가 가진 신(神)의 이름으로 인간은
너무나 많은 전쟁놀음을 해온것이 사실이다.
결국 승자든 패자이든 희생없는 결과는 없는 전쟁은 왜 꼭 일어나야만 하는가.
그와중에도 권력있고 힘있는 놈들은 전쟁의 소용돌이 뒤쪽에 멀치감치 물러앉아 목숨을 보전하고
때로는 그 상황을 이용하여 떼부자가되기도 한다. 항상 죽어나가는건 힘없고 가난한 최하층의 사람들이고
가장큰 상처를 받는것은 여자와 아이들이다.
주인공 카스트로는 후작의 하인의 아들이다. 간신히 글을 깨치긴 했으나 세상물정 모르는 시골뜨기
청년일 뿐이다.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왜 두편으로 갈려야 하는지 자신이 어느편에 서야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선량한 하층민일뿐이다. 모든것을 평등히 나누자는 공산당편에 서야 마땅해보이는 그가
반대편 국민당으로 도망친 이유는 자신이 모셨던 후작이 자신들을 굶어죽지 않을만큼은 보살펴주었다는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 였다. 그당시에 가난은 일상일뿐이고 굶는이들이 허다했으므로 자신들을 부리고
단지 굶어죽지 않을정도로는 보살펴 주었다는 것이 충성의 이유일만큼 선량한 시골뜨기 카스트로.
책의 첫장에 쓰여있던 글처럼 내전에서 편자공이자 수송병이었던 작가의 아버지가 이책을 쓰게한
모티브가 된 모양이다. 어느날 우연히 발견한 노새한마리..얼렁뚱땅 노새 수송병이 되었던 카스트로는
이 잘생긴 노새를 몰래 들여와 언젠가 전쟁이 끝나면 고향집으로 끌고갈 궁리를 한다.
이 노새는 카스트로에게 있어 전쟁을 견디는 힘이고 친구이고 자유의 상징이다.
폭탄이 빗발치는 어느날 사라져버린 노새를 찾아 상대편 진지로 갈수밖에 없었던 카스트로는
졸지에 전쟁의 영웅이 된다.
갑자기 그의 인생은 달라진다. 하인의 아들이란 것이 밝혀진후 멀어졌던 애인도 다시 꼬리를 치고
귀족의 딸이었던 여자도 전쟁영웅으로 변신한 그와의 멋진 정사를 꿈꾼다. 그래서 사람들은 목숨을
담보로 권력을 향한 전쟁을 벌이나보다. 하인으로서 감히 바라보지도 못할 귀족과의 하룻밤을 보낸
카스트로는 그의 동료에게 큰소리치며 허풍을 떤다. 매춘부와 그럴듯한 밤을 보냈노라고..
그것이 단순히 힘좋을것 같은 멍청이 영웅과의 하룻밤을 허락한 귀족여인에게 한방먹일 방법이었을테니..
결국 전쟁은 끝났지만 그의 꿈처럼 노새는 그의 고향에 가지 못한다. 전쟁이 끝난순간부터 권력자들은
그동안 손실되었던 '자신의 것'들을 챙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목숨을 버리고 얻은 전쟁의 승리는
죽은자의 것이 아니라 산자..거기에서도 그동안 움츠렸던 가진자들의 몫일뿐이다.
멋진 르포기사로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언론의 행태또한 얼마나 많은 오류와 눈가림이었는지가 실랄하다.
무식하고 단순하고 순진한 카스트로는 포장된 전쟁영웅의 영화를 찍으면서 또 한방먹인다.
멋진 독일여자의 냄새에 발정난 나귀의 거시기를 잠재우는 방법을 아시는가..
단지 예민한 나귀의 귓바퀴부분에 담뱃불을 살짝만 갖다 대면 될일이라는걸 알지만...
후방에서 군인놀음이나 하는 건달중령에게 그 비법을 이렇게 말한다.
'저 안경쓴 신사가 네 거시기를 빨아주고 싶어 할지도 몰라'라고 속삭여 주었읍죠.
뭐 그렇게 놀렸다고 아무도 카스트로를 욕할사람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놀림감이었다는것조차
알수 없었을테니....어쩌겠는가 힘없고 가난하고 순진한 시골뜨기 노새수송병이 할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는 더 있겠는가. 전쟁은 그저 목숨을 잃었느냐 안 잃었느냐의 차이일뿐 그가 건진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