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놓은지는 여러날이 되었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책을 덮지 못하고 이제껏 붙들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그녀는 무슨 마음을 먹고 이책을 쓴것일까. 자신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내 얘기일 수도 있는 이 가슴아픈 고백을 굳이 해야만 했던 이유가 있을까. 문득 혹시 그녀도 서울역은 아니더라도 이세상 어디쯤에서 엄마를 잃은것은 아닐까..하고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그녀가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는 알고 있는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엄마를...놓치면 안되는 소중한 어떤것들을 많이 잃고 살아간다는 것을.. 하지만 정작 본인은 무엇을 놓치고 살아가는지를 모른다는것을...그래서 이책의 마지막장을 덮을 때즈음이면 거의 모두가 자신의 고백서가 되리라는 것을... 아주 어려서 읽었던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처럼 딱 그마음이 되게 하는 작가의 의도가 밉지 않다. '너는 내가 낳은 첫애 아니냐. 니가 나한티 처음 해보게 한 것이 어디 이뿐이간? 너의 모든게 나한티는 새세상인디. 너는 내게 뭐든 처음 해보게 했잖어. 배가 그리 부른 것도 처음이었구 젖도 처음 물려봤구. 너를 낳았을 때 내 나이가 꼭 지금 너였다...' 그렇게 나도 내어머니의 첫애였다. 내 어머니도 고물고물한 내손을 제대로 만져보지 못하고 '이제 어째야 하나' 하고 두려움에 떨었을까...나는 어머니보다 다섯살을 더먹고서야 큰애를 낳았지만 절대 어린 어머니보다 의젓해지지 못했었다. 생애 처음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기쁨은 두려움과 함께 온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듯이 아이 하나하나에 담긴 사랑과 추억이 어찌 무게가 다르겠는가 자식입에 먹을것 넣어주는것이 가장 큰 행복이던 시절에 자신의 배는 늘 굶주렸으리라.. 가난을 덕지 덕지 엎은듯한 부엌을 좋아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쌀독이 비어가는 소리에 가슴이 덜컥거리던 그곳을 어찌 좋아할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그건 자식을 키우는 에미에게는 그저 당연한 굴레라고만 여겼지. 풀어주어도 다시 되돌아서 올수 밖에 없는 영원한 올가미였을거야. '정신을 놓아갈수록...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기대지 못하고 자신의 옷을 태우고 흔적을 없애는 장면은 정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는 길을 알았더라면 그때라도 좀 언질을 해줄일이지. 그게 남은 가족에게 대못질을 된다는걸...결국 그동안의 무관심을 이렇게 되갚아주시다니.. 새가 되었더군요. 살아생전 좋은 일 많이 한 사람은 저세상에 날개를 단 새가 된다지요. 아마 고단한 삶을 털어버리고 훨훨 날아오르라는 산자들의 위안일테지만... 그래도 난 당신이 새가 되어 어디로든 옮겨다니는것이 좋았습니다. 그래도 당신의 자식들은 어디선가 당신이 살아있을거라는 희망을 붙들고 살아가겠네요. 당신을 보내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것이 다행일까요. 이제 나는 집앞에 내려앉은 새를 볼때마다 당신을 떠올려야 하겠네요. 여자로서 평생 한사람쯤은 당신의 가슴을 덮혀주었던 수줍은 사랑이 있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다음생에서는 그사랑 꼭 붙들고 엄마로서만 살지 말고 여자로서도 행복하시길..' 꽃한송이 놓아줄 무덤도 만들지 못하고 떠나버린 그녀의 엄마에게 난 슬픈편지를 보낸다. 그래도 아직 기회가 남아있어 다행이다.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이제라도 엄마의 손을 잡고 지나온 잘못을 고백할수 있어 다행이다. 서울역앞에서 엄마를 놓치는 일은 절대 없을거라고 다짐할수 있는 기회를 주어 다행이다. 비싼 밍크코트 굽어지고 시린 어깨에 둘러주며 '엄마는 이 옷을 입을 자격이 있어'하고 말해줄 기회를 주어 다행이다. 불교신자인 엄마에게 부처가 탄생한 나라의 염주를 걸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적어도 난 이세상에서 가장 작은나라의 장미묵주를 갖고 싶다는 엄마의 말을 못알아들었던 백치딸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고 나처럼 엄마가 필요했던 딸이었음을 알게해주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책을 늦게라도 이렇게 읽을수 있어서 정말로...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