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만나는 중국 신화 - 천지개벽부터 하나라 건국까지, 오늘의 중국을 만든 최초의 이야기 ㅣ 드디어 시리즈 10
황더하이 외 지음, 이유진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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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낯선 중국 신화를 탐구하는 즐거움!

수많은 중국인들을 융합하고 그들의 정신적 뿌리가 되어준 중국 신화를 만나는 시간!





  그리스·로마 신화와 북유럽 신화를 익숙하게 접한 이들조차도 중국 신화라 하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신화는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이야기의 조각을 그러모아 ‘역사’라는 작업에 의해 착실하게 정리된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중국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중국인들의 사고방식과 동양 사상을 이해하고, 동아시아 문명의 흐름과 질서가 어떻게 잡혀왔는지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까닭이다. 대중의 눈높이로 중국 신화를 한 권으로 아우른 이 책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반고의 몸은 해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온몸의 각 부분이 잇달아 분리되었고, 정기는 땅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왼쪽 눈은 태양이, 오른쪽 눈은 달이 되었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별이 되었지요. 팔다리와 몸통은 대지의 동서남북 사방 끝과 오방의 명산으로 변했습니다. 피는 강이, 힘줄은 길이, 근육은 논밭이 되었습니다. 피부의 털은 풀과 나무, 이와 뼈는 금속과 돌, 골수는 진주와 옥으로 변했습니다. / 25p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여와는 강가로 내려가 황토를 한 움큼 쥐었습니다. 그리고 그 진흙을 물에 개어 힘껏 반죽을 시작했지요. 황토는 차츰 형태를 갖추어 나갔습니다. 계속해서 반죽하자 황토에 오관과 칠규(사람 얼굴의 눈, 귀, 코, 입에 있는 일곱 구멍)가 생겨났는데, 그 모습이 여와와 비슷했습니다.

여와는 점점 형태를 갖춰가는 황토를 보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녀가 두 손을 더 빠르게 움직이자 황토에 상반식과 두 팔이 생겨났습니다. 하반신을 빚을 차례가 되자 자신의 뱀 꼬리를 유심히 보던 여와는 숲속에서 뛰어다니던 원숭이를 떠올리며 다리를 빚었는데, 다만 원숭이보다 조금 더 굵게 만들었습니다. / 31p

 









  신화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가장 보편적인 인간의 본성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은 아닐까. 일례로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고 겸양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야기들이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하늘사다리인 건목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띄는데, 인간들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건목이라는 세계수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자신의 분수와 한계를 잘 알고 지켰다고 한다. 그러나 건목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자 스스로 신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기며 인간들은 오만불손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고 이런 마음은 결국 악신인 치우를 불러들였다고 한다.

 



  황제를 대적할 만큼 강력해졌다는 생각이 들자 악신인 치우는 사람들을 이끌고 건목을 통해 하늘로 올라가 전쟁을 벌여 천상의 질서를 바꾸려 했다. 이에 황제가 악전고투 끝에 치우를 물리치고 마침내 건목을 찍어 쓰러뜨리게 한 뒤 하늘과 땅 사이의 통로를 모두 단절시켰다. 하늘을 더 높이고 땅을 더 낮추어 하늘로 향하는 길을 끊어버림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더 이상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사람들은 곤륜산에 들어가 양풍산에 오르기만 하면 영원히 살 수 있고, 현포에 도달하면 기이한 신통력을 지니게 되며, 더 올라가 곤륜산 꼭대기에 도달하면 신이 되어 여와와 함께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더 놓은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향상심과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이 담긴 아름다운 기대이자 간절한 기원이었지요. 그러나 그 이면에 거대한 재앙이 움트고 있었습니다. / 61p

 



  이때부터는 인간들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지식과 기술을 더 이상 얻지 못하게 되었고, 자신의 지력과 지혜에 의지해 그 지식과 기술을 다시 터득해 나가야 했다. 팔괘를 만들어 인류를 윤택하게 한 복희, 농사를 발명하고 약초를 연구해 ‘신농’이라 불렸던 염제, 부엉이처럼 생긴 새가 부리로 나무를 쪼아대자 불꽃이 환히 일어나는 것을 보고 불꽃이 튀는 원리를 깨달은 수인씨, 염제와 함께 중국에서 시조로 추앙받는 황제가 만든 수레,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는 기술을 얻고 전수한 누조, 복희의 64괘에서 영감을 얻어 간단한 점과 선으로 복잡한 의미를 표현하는 방식의 문자를 발명한 창힐 등의 이야기 속에는 인간이 어떻게 그들의 문명을 일구어나가게 되었는지 그 과정들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치우와 황제가 벌인 전쟁을 통해 인류가 문명을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갈등의 역사는 물론, 재앙에 맞서 삶의 터전을 수호했던 여러 영웅들의 이야기도 책에서 만나볼 수 있다.

 




『주역』이란 복희가 창안한 팔괘를 위아래로 겹쳐 만든 64괘를 바탕으로 우주 만물을 탐구하는 철학서이자 음양의 원리를 풀이하는 점술서로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중국인들은 『주역』으로 우주의 질서를 체계화하고 도식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주역』은 변화 원리로 미래를 예측하고, 동시에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이치를 살피는 경전입니다.

『주역』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원리는 ‘만물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생성, 성장, 노쇠, 죽음을 반복합니다. 『주역』에 따르면 세계가 돌아가는 핵심 원리인 ‘변화’에는 일정한 법칙이 있으며, 이 법칙에 따라 대응이나 판단의 기준을 세울 수 있습니다. / 92p

 



수황릉_

중국 신화 속 불을 가져다준 영웅 수인씨를 기리는 유적지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불을 인간 세상에 전파했다면, 중국 신화에서는 수인씨가 나뭇가지로 불을 피워 세상에 빛과 온기를 가져왔다. / 155p

 









  태초의 천지였던 혼돈을 질서로 바꾸고 여와가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뒤, 마침내 우가 흩어져 살던 부족을 이끌고 중국 최초의 국가인 하나라를 건국하기까지. 『드디어 만나는 중국 신화』는 단순히 기묘하고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라, 수많은 중국인들을 융합하고 그들의 정신적 뿌리가 되어준 신화를 간결하면서도 완결성 있는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나간다는 점에서 매우 특별한 책이다. 여기에 중국 신화의 다채로운 기풍을 담은 아름다운 표지와 여러 예술가들이 신화로부터 영감을 받고 완성한 작품들까지 하나하나 수록한 정성이 돋보인다. 수많은 중국인들을 융합하고 그들의 정신적 뿌리가 되어준 아주 친절한 중국 신화책을 만나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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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지 다커
앨리스 피니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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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서로를 제일 잘 알기에 가장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흥미로운 캐릭터와 연이은 죽음의 릴레이가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든다!





  영국 콘월 해안의 외딴섬에 있는 100년 된 저택의 시글라스. 《데이지 다커의 작은 비밀》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할머니의 여든 번째 생일을 맞아 다커 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지난 10년간 다커 가의 사람들은 단 한 번도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을 정도로 데면데면하게 지내왔다. 그런 이들이 시글라스에 모인 이유는 할머니가 여든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땅끝마을에 사는 유명 점술가의 예언에 따라 유언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기 때문이다.

 



  가족보다는 오케스트라를 거느리고 세계 각국으로 연주 여행을 다니는 아빠, 틈만 나면 세 자매를 시글라스에 있는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배우가 되기를 꿈꿨던 엄마, 수의사인 첫째 로즈, 열여덟에 딸 트릭시를 낳은 미혼모 릴리, 심장병을 앓고 있어 몇 번이고 죽음의 위기를 겪어야 했던 데이지. 여기에 알콜의존증이 심해 재활원에 입원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할머니가 가족처럼 돌봐주었던 코너 케네디까지. 하지만 늘 그러했듯, 이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한결같이 서로에게 냉담하고 이기적이다. 이들은 오직 할머니의 어마어마한 저작권료와 상속 재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예견된 운명처럼 할머니의 유언이 공개된 날 밤, 할머니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잇달아 가족이 한 명씩 차례대로 죽어가는데…. 대체 누가, 왜, 이들을 노리는 것일까. 다커 가족이 저마다 숨기고 있는 비밀이란 무엇일까. 고립된 저택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릴레이 속에서 이들의 파렴치한 가족사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데이지 다커의 가족은 몹시 어두웠네...

나이만큼 지혜롭지 못했던 데이지 다커의 할머니 비어트리스는

온 가족을 기분 나쁘게 만든 유언을 남긴 죄로 죽어야 했네... / 70p

 



  어쩌면 가족이야말로 서로를 제일 잘 알기에, 가장 두려운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이 공포스러운 것은 고립된 저택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극이 아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도리어 내 목을 조여올 때 느끼는 인간 내면의 두려움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얼마나 다정할 수도, 또 잔인해질 수도 있는가를 직시하게 하는 한편의 잔혹한 가족 동화극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이유다.

 



《데이지 다커의 작은 비밀》이라는 책은 우리 가족을 영원히 바꿔놓을 수 있는 일종의 예언서였다. 나에겐 비밀이 있고, 이제 그 비밀을 공유할 때가 되었다. / 12p



 

나처럼 가족들과 만나길 기대하는 동시에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 17p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상대방의 말뿐 아니라 침묵에도 귀기울여야 한다. 비밀은 말과 말 사이에 숨어 있으니까. / 307p



 







  추리소설처럼 치밀하고 정교한 맛은 없지만 입체적인 캐릭터와 뜻밖의 반전, 연이은 죽음의 릴레이가 쉴 새 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읽을 때는 놓치고 있었던, 말과 말 사이에 숨어 있던 비밀들을 뒤늦게 발견하는 재미도 이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요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는 스릴러 장르물을 찾으시는 독자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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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계간 미스터리 2025.겨울호 - 88호 ㅣ 계간 미스터리 88
박광규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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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에는 한계란 없다!





  다소 늦은 리뷰라 머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호의 리뷰를 꼭 쓰고 싶었던 이유는 여느 때보다 다양한 시도가 빛났기 때문이다. 계간지의 성격상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비슷한 흐름과 기획에 고착될 수밖에 없기 마련인데, 그것을 끊임없이 타파해가려는 적극적인 기획과 편집인들의 노력에 응원을 보내고픈 마음이다.

 



  88호의 포문을 여는 것은 <미스터리 장르 전문 출판사가 본 2025년과 2026년 전망>이다. 미스터리 장르 전문 출판사인 래빗홀, 북스피어, 블루홀6, 자음과모음, 황금가지, 나비클럽이 모여 자사에서 출간된 좋은 작품과 2026년에 기대되는 출간예정작과 전망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지난 해, 기대에 못 미쳐 아쉬웠던 작품까지 소홀히 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북스피어에 출간된 찬호께이의 작품 『고독한 용의자』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출판사 측에서는 아쉬웠던 작품으로 지적한 걸 보면 나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이유가 궁금하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 작품성이 아쉬웠던 걸까 수익성이 아쉬웠던 걸까). 독자와 출판사가 느끼는 간극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2025년의 아쉬웠던 점에 대해 ‘완성도나 소재의 참신성은 있었으나 전개 구조와 캐릭터 호감도에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에 대해 언급하는데, 나 역시 설정 자체는 훌륭하고 참신하나 서사나 캐릭터의 부재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장르문학 시장에 좀 더 다양한 세계관과 캐릭터 서사가 구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고요. 안타깝지만 최순자 어머님은 코로나로 사망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인계해 편히 보내드리겠습니다.”

“순자 언니는 코로나로 죽은 게 아니야! 살해당했어! 누가 언니를 죽였다고! 너희는 그걸 덮으려고 하는 거잖아!” / 「미스 아가페」, 김현철 작 중에서 38p

 



존엄을 잃고 명예에 집착하게 된 사회적 분위기, 그러나 명예를 획득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수치심을 먼저 안겨주기를 선호하는 명예 전쟁 속에서도, 존엄은 우리 안에 존재한다. 명예를 통해서 존엄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왔던 오랜 서사 문학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존엄성은 오히려 명예가 아닌 곳, 명예롭지 않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의 행위 속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수치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치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는 자기 탐색의 여정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장르적 이야기일 수 있는 이유다. / 「마스터플롯으로 읽는 장르문학:④」, 박인성 연재글 중에서 181p

 



“미스터리 소설만 읽을 때는 내 삶과 미스터리가 무관하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며 알게 됐습니다. 내 삶의 꽤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라는 것을.” / 이정오 수상소감 중에서 229p




역사는, 어쩌면 우리가 아는 모든 장르 가운데 가장 장엄한 미스터리가 아닐까. / 「역사라는 이름의 미스터리」, 박소해 글 중에서 259p

 






 



  코로나 대유행의 시기를 배경 설정으로 묵직한 주제의식과 현실감 있는 클로즈드 서클을 완성한 신인상 수상작 「미스 아가페」, 내내 가볍게 툭툭 잽을 날리다 유쾌한 반전을 탁 내어놓는 홍선주의 「로키의 후예와의 대화」, 살인의 도구로 전락한 순간이동 장치와 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추리쇼가 흥미진진한 「순간이동 장치는 어떠면 살인 장치일지도 모른다」 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에 초단편 공모전 수상작 세 편과 제1회 나비클럽배 미스터리 백야장 수상작들도 분량은 짧지만 매우 짜임새 있는 작품들이라 읽는 즐거움이 컸다. 그 중 내 꿈을 앗아간 ‘내 인생의 진짜 빌런’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정오의 에세이는 읽는 내내 머릿속이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이 기획이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발견되지 못했을 뿐, 누구나 저마다 가슴에 미스터리 하나쯤은 품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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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양장)
타샤 튜더 지음, 리처드 W. 브라운 사진, 공경희 옮김 / 윌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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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할머니에게서 배우는 행복의 조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을 잘 아는 삶이란 얼마나 행복한가!






  머릿수건을 쓰고 색 바랜 긴 드레스에 옥양목 앞치마를 두른 외양과, 마치 19세기 어느 농가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은 듯한 정원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할머니. 자연주의 라이프스타일의 아이콘, 타샤 튜더. 책 속에는 일평생 그림을 그리고 정원을 가꾸며 살고자 했던 그녀의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고, 다정하지만 고집스럽게 일군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생은 짧기에 오롯이 즐겨야 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즐기며 살고자 했던 그녀의 태도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며 또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온전히 마음에 달려 있다. 난 행복이란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 21p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정신없이 살아요. 캐머마일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 텐데.” / 61p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는 미국 버몬트주의 깊은 산골에서 30만 평에 이르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100권에 가까운 그림책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진 타샤 튜더의 자전 에세이다. 19세기 생활 방식을 좋아해서 손수 천을 짜서 옷을 만들고,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쓰며, 일 년 내내 씨앗과 구근을 심고 꽃을 가꾸어 자급자족하는 삶으로 부지런히 일군 시간들이 사계절 속에서 유유히 펼쳐진다. 책을 읽다 보면 타샤 튜더가 예쁨덩어리라 표현하는 강아지 코기, 오래된 질그릇에서 잠드는 눈이 하나뿐인 고양이 녀석, 눈 내린 뒤에 레이스처럼 흔적을 남긴 새들의 발자국, 고양이가 그르렁대는 소리와 비슷해서 어쩐지 위안이 되는 물레질, 크리스마스 전야에 열렸던 인형들의 파티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덕분에 그 안에서 내 마음까지 한가로운 듯 평온해진다.





카누에는 묘하게 원시적인 구석이 있다. 아비(물새의 일종-옮긴이)가 노래 부르는 소리 같다고 할까. 아주 오래전, 내 전생의 뭔가를 살살 흔드는 느낌. / 131p

 


나는 요즘도 골동품 식기를 사용한다. 상자에 넣어두고 못 보느니, 쓰다가 깨지는 편이 나으니까. 내가 1830년대 드레스를 입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의상 수집가들이 보면 하얗게 질릴 일이다. 하지만 왜 멋진 걸 갖고 있으면서 즐기지 않는담? 인생은 짧으니 오롯이 즐겨야 한다. / 142p

 


나는 다림질, 세탁, 설거지, 요리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다.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 142p

 


영국에는 이런 옛말이 있다. ‘과일도 없고 꽃도 없고 나뭇잎도 없고 새도 없는 11월’ 밭과 정원 일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때다. 실내에서 가정과 난로를 즐기는 계절. 내 친구들은 11월이면 뜨개질과 퀄트를 하느라 야단이다. 난롯가와 한 잔의 차를 만끽하는 때이기도 하다.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 나오는 구절이 떠오른다. ‘애프터눈 티를 즐기려고 떼어둔 시간보다 즐거운 때는 없다.’ / 144p

 










  유독 마음이 어지러운 때여서일까. 타샤 튜더 할머니의 전원생활을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마음에 큰 안식을 느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답게 인생을 가꾸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배울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사느라 몸과 마음이 피로할 때, 행복해지고 싶은데 내 삶이 불행하기만 한 것 같을 때, 이제껏 열심히 애쓰며 살아온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영혼인 타샤 튜더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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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6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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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페두사의 문장은 우아하고, 정교하고, 아름답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부활)의 시대.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 아래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에서 민족적 각성과 통일을 염원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던 때로, ‘붉은 셔츠를 입은 혁명가’ 주세페 가리발디가 붉은 셔츠단이라 불리는 의용군들을 이끌고 통일의 대업을 완성해가던 시기였다. 바로 이 무렵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표범』은 1860년 5월, 가리발디가 의용군들과 함께 막 남부 이탈리아인 시칠리아에 상륙했다는 소식과 함께 시작된다.

 



  주인공인 돈 파브리초는 시칠리아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수장이다. 사냥을 좋아하고 일면에서는 괴팍할 정도로 권위적인 면모를 보이나, 수학과 천문학에 관심이 많고 귀족치고는 시대의 흐름을 냉철하게 파악하며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다. 한편, 돈 파브리초가 누구보다도 아끼는 조카 탄크레디 팔코네리는 변화하는 세상에 금방 적응하는 기회주의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으로, 가리발디가 시칠리아에 상륙했을 때는 의용군에 참가했다가 이후에는 사르데냐 왕국의 군인이 되면서 자신의 정치적 야심에 따라 부와 사랑을 적극적으로 쫓는 인물이다. 돈 파브리초의 딸인 콘첸타가 아닌, 신흥 부르주아로 떠오르는 돈 칼로제로의 딸 안젤리카 세다라와의 결혼은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그에 따른 사회질서가 어떻게 재편성 되어가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모한 짓은 하지 않고 현상유지에 전념하는 것? 그렇다면 얼마 전 팔레르모의 황량한 광장에 울려 퍼진 것과 같은 메마른 총성들이 의미하는 행동이 필요한 것인가? 하지만 그런 총격전들 역시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팡! 팡!’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아! 그렇지 않니, 벤디코?” / 23p

 



늙은 여자의 빈 젖가슴을 닮은, 흐릿한 곡선을 그리는 빛바랜 돔들이 수도원들보다 훨씬 높이 서 있기는 했으나, 무엇보다 수도원들의 음울함과 독특한 성질과 위엄이 도시를 지배하여, 시칠리아의 강렬한 햇빛조차 지울 수 없는 죽음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영주가 마차를 달리던 무렵, 밤이 가까워진 시간, 도시 풍경은 수도원들이 지배했다. 실제로 산 위의 불들은 그런 수도원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수도원에서 사는 사람들과 아주 흡사한 사람들. 똑같이 광적이고 폐쇄적이고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습관처럼 무위도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산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키우고 있었다. / 30p

 



하지만 연미복을 입고 계단을 올라온 돈 칼로제로로 상징되는 시민 혁명, 자신의 딸 콘체타의 단정한 우아함을 가려 버린 안젤리카의 미모, 예상한 혁명이 초래한 변화를 재빨리 받아들이면서 관능적인 열정으로 현실적인 동기를 치장한 탄크레디. 염려스럽고 성격도 모호한 국민투표. 이 모든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앞발 하나만 들어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던 그가, 표범인 그가 받아들여야 할 수천 가지 기묘한 일들에 속했다. / 122p

 









  ‘우리는 표범,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은 자칼, 하이에나가 될 것이다.’ 이미 자신이 속한 귀족 계급에 불기 시작한 변화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던 돈 파브리초는 돈이 새로운 계급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권력과 영광 또한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수용할 수 밖에 없음을 직시한다. “저는 구시대와 신시대라는 두 마리 말 위에 걸터앉아 어느 쪽도 편치 않은 불행한 세대에 속합니다. (…) 우리 세대는 구석으로 물러나서 젊은이들이 이 화려하게 장식된 관대 주변에서 재주넘고 공중제비하는 모습이나 구경해야 합니다.” 이 같은 문장은 무너지는 봉건제 그 마지막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구체제의 몰락과 변화의 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번민과 우울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저는 부르봉 체제와 불가피하게 타협했고, 체면 때문에 애정없이 거기에 묶여 있는 구계급의 대표자입니다. 저는 구시대와 신시대라는 두 마리 말 위에 걸터앉아 어느 쪽도 편치 않은 불행한 세대에 속합니다. (…) 우리 세대는 구석으로 물러나서 젊은이들이 이 화려하게 장식된 관대 주변에서 재주넘고 공중제비하는 모습이나 구경해야 합니다. 이제는 ‘왜’ 보다는 ‘어떻게’에 마음을 열고 자신의 구체적인 관심사를 모호한 정치적 이상으로 포장하는 일, 제 말은, 양자를 조화시키는 일에 능숙한, 민첩한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 230p

 



“친애하는 슈발레 씨. 저는 당신에게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완벽하다고 믿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절대로 더 좋아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들의 허영심은 그들의 비참보다 더 강합니다. 낯선 사람들의 침입은, 그들이 외지인이든 독립적인 정신의 시칠리아인이든, 완벽에 도달했다는 그들의 몽상을 흔드는 사태이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만족감을 방해하는 위험입니다. 열 몇 개의 민족에게 짓밟혔어도 그들은 호화로운 장례식을 누릴 자격이 있는 제국의 과거가 있다고 믿고 있어요.” / 233p

 









  “이들이 사라지면 다른 색 옷을 입은 다른 이들이 올 테고, 다시 붉은색 옷을 입은 자들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끝날까요? 우리 이탈리아의 상징인 ‘큰 별’이 있다고들 하죠.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고정된 별조차 사실 고정된 게 아니란 점을 영주님은 저보다 더 잘 알잖습니까.” 소설은 19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번영과 쇠락’, ‘구체제와 신체제’, ‘전통과 변화’ 앞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불안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를 고민하게 하는 『표범』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무엇보다 람페두사만의 우아하고, 정교하고, 섬세한 문장이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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