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계간 미스터리 2025.겨울호 - 88호 계간 미스터리 88
박광규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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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에는 한계란 없다!





  다소 늦은 리뷰라 머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호의 리뷰를 꼭 쓰고 싶었던 이유는 여느 때보다 다양한 시도가 빛났기 때문이다. 계간지의 성격상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비슷한 흐름과 기획에 고착될 수밖에 없기 마련인데, 그것을 끊임없이 타파해가려는 적극적인 기획과 편집인들의 노력에 응원을 보내고픈 마음이다.

 



  88호의 포문을 여는 것은 <미스터리 장르 전문 출판사가 본 2025년과 2026년 전망>이다. 미스터리 장르 전문 출판사인 래빗홀, 북스피어, 블루홀6, 자음과모음, 황금가지, 나비클럽이 모여 자사에서 출간된 좋은 작품과 2026년에 기대되는 출간예정작과 전망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지난 해, 기대에 못 미쳐 아쉬웠던 작품까지 소홀히 하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북스피어에 출간된 찬호께이의 작품 고독한 용의자를 재미있게 읽었는데, 출판사 측에서는 아쉬웠던 작품으로 지적한 걸 보면 나름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던 게 아닐까 싶다(이유가 궁금하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 작품성이 아쉬웠던 걸까 수익성이 아쉬웠던 걸까). 독자와 출판사가 느끼는 간극의 차이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2025년의 아쉬웠던 점에 대해 완성도나 소재의 참신성은 있었으나 전개 구조와 캐릭터 호감도에서 아쉬움이 남는 작품들에 대해 언급하는데, 나 역시 설정 자체는 훌륭하고 참신하나 서사나 캐릭터의 부재에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기에 장르문학 시장에 좀 더 다양한 세계관과 캐릭터 서사가 구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고요. 안타깝지만 최순자 어머님은 코로나로 사망하신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인계해 편히 보내드리겠습니다.”

순자 언니는 코로나로 죽은 게 아니야! 살해당했어! 누가 언니를 죽였다고! 너희는 그걸 덮으려고 하는 거잖아!” / 미스 아가페, 김현철 작 중에서 38p

 



존엄을 잃고 명예에 집착하게 된 사회적 분위기, 그러나 명예를 획득하기보다는 서로에게 수치심을 먼저 안겨주기를 선호하는 명예 전쟁 속에서도, 존엄은 우리 안에 존재한다. 명예를 통해서 존엄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왔던 오랜 서사 문학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존엄성은 오히려 명예가 아닌 곳, 명예롭지 않은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순간의 행위 속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수치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치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기꺼이 앞으로 나아가는 자기 탐색의 여정이 우리에게 더 필요한 장르적 이야기일 수 있는 이유다. / 마스터플롯으로 읽는 장르문학:④」, 박인성 연재글 중에서 181p

 



미스터리 소설만 읽을 때는 내 삶과 미스터리가 무관하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며 알게 됐습니다. 내 삶의 꽤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라는 것을.” / 이정오 수상소감 중에서 229p




역사는어쩌면 우리가 아는 모든 장르 가운데 가장 장엄한 미스터리가 아닐까. / 역사라는 이름의 미스터리박소해 글 중에서 259p

 






 



  코로나 대유행의 시기를 배경 설정으로 묵직한 주제의식과 현실감 있는 클로즈드 서클을 완성한 신인상 수상작 미스 아가페, 내내 가볍게 툭툭 잽을 날리다 유쾌한 반전을 탁 내어놓는 홍선주의 로키의 후예와의 대화, 살인의 도구로 전락한 순간이동 장치와 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추리쇼가 흥미진진한 순간이동 장치는 어떠면 살인 장치일지도 모른다모두 재미있게 읽었다. 여기에 초단편 공모전 수상작 세 편과 제1회 나비클럽배 미스터리 백야장 수상작들도 분량은 짧지만 매우 짜임새 있는 작품들이라 읽는 즐거움이 컸다. 그 중 내 꿈을 앗아간 내 인생의 진짜 빌런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이정오의 에세이는 읽는 내내 머릿속이 크게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이 기획이 앞으로도 꾸준히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발견되지 못했을 뿐, 누구나 저마다 가슴에 미스터리 하나쯤은 품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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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양장)
타샤 튜더 지음, 리처드 W. 브라운 사진, 공경희 옮김 / 윌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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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할머니에게서 배우는 행복의 조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알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서 느끼는 즐거움을 잘 아는 삶이란 얼마나 행복한가!






  머릿수건을 쓰고 색 바랜 긴 드레스에 옥양목 앞치마를 두른 외양과, 마치 19세기 어느 농가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은 듯한 정원을 보고 있자니 시간이 그대로 멈춰버린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할머니. 자연주의 라이프스타일의 아이콘, 타샤 튜더. 책 속에는 일평생 그림을 그리고 정원을 가꾸며 살고자 했던 그녀의 소박하지만 정성스럽고, 다정하지만 고집스럽게 일군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생은 짧기에 오롯이 즐겨야 한다는 그녀의 말처럼, 남이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즐기며 살고자 했던 그녀의 태도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며 또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온전히 마음에 달려 있다. 난 행복이란 마음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 21p

 


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정신없이 살아요. 캐머마일차를 마시고 저녁에 현관 앞에 앉아 개똥지빠귀의 고운 노래를 듣는다면 한결 인생을 즐기게 될 텐데.” / 61p

 









  『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는 미국 버몬트주의 깊은 산골에서 30만 평에 이르는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100권에 가까운 그림책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진 타샤 튜더의 자전 에세이다. 19세기 생활 방식을 좋아해서 손수 천을 짜서 옷을 만들고, 골동품 가구와 그릇을 쓰며, 일 년 내내 씨앗과 구근을 심고 꽃을 가꾸어 자급자족하는 삶으로 부지런히 일군 시간들이 사계절 속에서 유유히 펼쳐진다. 책을 읽다 보면 타샤 튜더가 예쁨덩어리라 표현하는 강아지 코기, 오래된 질그릇에서 잠드는 눈이 하나뿐인 고양이 녀석, 눈 내린 뒤에 레이스처럼 흔적을 남긴 새들의 발자국, 고양이가 그르렁대는 소리와 비슷해서 어쩐지 위안이 되는 물레질, 크리스마스 전야에 열렸던 인형들의 파티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덕분에 그 안에서 내 마음까지 한가로운 듯 평온해진다.





카누에는 묘하게 원시적인 구석이 있다. 아비(물새의 일종-옮긴이)가 노래 부르는 소리 같다고 할까. 아주 오래전, 내 전생의 뭔가를 살살 흔드는 느낌. / 131p

 


나는 요즘도 골동품 식기를 사용한다. 상자에 넣어두고 못 보느니, 쓰다가 깨지는 편이 나으니까. 내가 1830년대 드레스를 입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의상 수집가들이 보면 하얗게 질릴 일이다. 하지만 왜 멋진 걸 갖고 있으면서 즐기지 않는담? 인생은 짧으니 오롯이 즐겨야 한다. / 142p

 


나는 다림질, 세탁, 설거지, 요리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다.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늘 가정주부라고 적는다. 찬탄할 만한 직업인데 왜들 유감으로 여기는지 모르겠다. 가정주부라서 무식한 게 아닌데.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는 것을. / 142p

 


영국에는 이런 옛말이 있다. ‘과일도 없고 꽃도 없고 나뭇잎도 없고 새도 없는 11밭과 정원 일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때다. 실내에서 가정과 난로를 즐기는 계절. 내 친구들은 11월이면 뜨개질과 퀄트를 하느라 야단이다. 난롯가와 한 잔의 차를 만끽하는 때이기도 하다.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 나오는 구절이 떠오른다. ‘애프터눈 티를 즐기려고 떼어둔 시간보다 즐거운 때는 없다.’ / 144p

 










  유독 마음이 어지러운 때여서일까. 타샤 튜더 할머니의 전원생활을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마음에 큰 안식을 느꼈고,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자기답게 인생을 가꾸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배울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사느라 몸과 마음이 피로할 때, 행복해지고 싶은데 내 삶이 불행하기만 한 것 같을 때, 이제껏 열심히 애쓰며 살아온 일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영혼인 타샤 튜더 할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시길 추천드린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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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6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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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페두사의 문장은 우아하고, 정교하고, 아름답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 부활)의 시대.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 아래 분열되어 있던 이탈리아에서 민족적 각성과 통일을 염원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던 때로, ‘붉은 셔츠를 입은 혁명가주세페 가리발디가 붉은 셔츠단이라 불리는 의용군들을 이끌고 통일의 대업을 완성해가던 시기였다. 바로 이 무렵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 표범18605, 가리발디가 의용군들과 함께 막 남부 이탈리아인 시칠리아에 상륙했다는 소식과 함께 시작된다.

 



  주인공인 돈 파브리초는 시칠리아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의 수장이다. 사냥을 좋아하고 일면에서는 괴팍할 정도로 권위적인 면모를 보이나, 수학과 천문학에 관심이 많고 귀족치고는 시대의 흐름을 냉철하게 파악하며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다. 한편, 돈 파브리초가 누구보다도 아끼는 조카 탄크레디 팔코네리는 변화하는 세상에 금방 적응하는 기회주의적이고 진취적인 성향으로, 가리발디가 시칠리아에 상륙했을 때는 의용군에 참가했다가 이후에는 사르데냐 왕국의 군인이 되면서 자신의 정치적 야심에 따라 부와 사랑을 적극적으로 쫓는 인물이다. 돈 파브리초의 딸인 콘첸타가 아닌, 신흥 부르주아로 떠오르는 돈 칼로제로의 딸 안젤리카 세다라와의 결혼은 격변하는 시대의 흐름과, 그에 따른 사회질서가 어떻게 재편성 되어가는지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모한 짓은 하지 않고 현상유지에 전념하는 것? 그렇다면 얼마 전 팔레르모의 황량한 광장에 울려 퍼진 것과 같은 메마른 총성들이 의미하는 행동이 필요한 것인가? 하지만 그런 총격전들 역시 무슨 쓸모가 있단 말인가? “‘! !’으로는 결론이 나지 않아! 그렇지 않니, 벤디코?” / 23p

 



늙은 여자의 빈 젖가슴을 닮은, 흐릿한 곡선을 그리는 빛바랜 돔들이 수도원들보다 훨씬 높이 서 있기는 했으나, 무엇보다 수도원들의 음울함과 독특한 성질과 위엄이 도시를 지배하여, 시칠리아의 강렬한 햇빛조차 지울 수 없는 죽음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영주가 마차를 달리던 무렵, 밤이 가까워진 시간, 도시 풍경은 수도원들이 지배했다. 실제로 산 위의 불들은 그런 수도원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수도원에서 사는 사람들과 아주 흡사한 사람들. 똑같이 광적이고 폐쇄적이고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습관처럼 무위도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산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키우고 있었다. / 30p

 



하지만 연미복을 입고 계단을 올라온 돈 칼로제로로 상징되는 시민 혁명, 자신의 딸 콘체타의 단정한 우아함을 가려 버린 안젤리카의 미모, 예상한 혁명이 초래한 변화를 재빨리 받아들이면서 관능적인 열정으로 현실적인 동기를 치장한 탄크레디. 염려스럽고 성격도 모호한 국민투표. 이 모든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앞발 하나만 들어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던 그가, 표범인 그가 받아들여야 할 수천 가지 기묘한 일들에 속했다. / 122p

 









  ‘우리는 표범,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은 자칼, 하이에나가 될 것이다.’ 이미 자신이 속한 귀족 계급에 불기 시작한 변화를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던 돈 파브리초는 돈이 새로운 계급을 결정하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권력과 영광 또한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수용할 수 밖에 없음을 직시한다. “저는 구시대와 신시대라는 두 마리 말 위에 걸터앉아 어느 쪽도 편치 않은 불행한 세대에 속합니다. () 우리 세대는 구석으로 물러나서 젊은이들이 이 화려하게 장식된 관대 주변에서 재주넘고 공중제비하는 모습이나 구경해야 합니다.” 이 같은 문장은 무너지는 봉건제 그 마지막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구체제의 몰락과 변화의 길에서 마주하게 되는 번민과 우울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저는 부르봉 체제와 불가피하게 타협했고, 체면 때문에 애정없이 거기에 묶여 있는 구계급의 대표자입니다. 저는 구시대와 신시대라는 두 마리 말 위에 걸터앉아 어느 쪽도 편치 않은 불행한 세대에 속합니다. () 우리 세대는 구석으로 물러나서 젊은이들이 이 화려하게 장식된 관대 주변에서 재주넘고 공중제비하는 모습이나 구경해야 합니다. 이제는 보다는 어떻게에 마음을 열고 자신의 구체적인 관심사를 모호한 정치적 이상으로 포장하는 일, 제 말은, 양자를 조화시키는 일에 능숙한, 민첩한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 230p

 



친애하는 슈발레 씨. 저는 당신에게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완벽하다고 믿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절대로 더 좋아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들의 허영심은 그들의 비참보다 더 강합니다. 낯선 사람들의 침입은, 그들이 외지인이든 독립적인 정신의 시칠리아인이든, 완벽에 도달했다는 그들의 몽상을 흔드는 사태이며,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만족감을 방해하는 위험입니다. 열 몇 개의 민족에게 짓밟혔어도 그들은 호화로운 장례식을 누릴 자격이 있는 제국의 과거가 있다고 믿고 있어요.” / 233p

 









  “이들이 사라지면 다른 색 옷을 입은 다른 이들이 올 테고, 다시 붉은색 옷을 입은 자들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끝날까요? 우리 이탈리아의 상징인 큰 별이 있다고들 하죠.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고정된 별조차 사실 고정된 게 아니란 점을 영주님은 저보다 더 잘 알잖습니까.” 소설은 19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번영과 쇠락’, ‘구체제와 신체제’, ‘전통과 변화앞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불안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 속에서 개인은 어떠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이를 고민하게 하는 표범은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무엇보다 람페두사만의 우아하고, 정교하고, 섬세한 문장이 굉장히 매력적인 작품이다.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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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 - 세상의 중심이 된 바다의 역사
찰스 킹 지음, 고광열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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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경계선이 아닌 연결 고리로 읽는 흑해의 역사!

이제껏 알지 못했던 흑해에 관한 아주 지적이고 흥미로운 탐구!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의 창세기에 담긴 대홍수 신화의 원형이 된 무대.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가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다가 헤라클레스에게 구출되었던 카프카즈 산맥과 아킬레우스의 무덤이 있다고 전해지는 다뉴브강 어귀의 바위섬이 있는 바로 그곳, 흑해. 역사적으로는 비잔티움부터 오스만제국,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전략적 목표의 중심이었고, 오늘날에는 유럽과 러시아, 중동이 교차하는 21세기 지정학의 핵심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흑해는 여전히 미지의 바다 혹은 역사의 변두리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육지 중심의 시선과 유럽이나 지중해에 치우친 역사 연구는 오랫동안 이곳에 대한 관심을 외면했다. 게다가 냉전을 거치면서 동유럽이라는 정치적·지리적 개념과 동일시되면서 굳어진 편견도 한몫 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찰스 킹의 흑해는 매우 진귀한 역사서임에 틀림없다. 2700년의 흑해 역사를 아우르는 이 책은 여러 집단과 언어, 종교가 끊임없이 뒤섞이고 지리적·정치적 경계가 요동치며, 정체성이 중첩되는 거대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흑해 연안에 고대 그리스 시대의 식민지 도시 국가들이 형성된 뒤, 천 년의 제국 비잔티움과 흑해 연안을 최초로 통합한 오스만 제국을 거쳐, 흑해의 강국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러시아와 이를 저지하려는 유럽 강대국과의 충돌에 이르기까지, 흑해를 중심으로 한 주변국들의 역사와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서술한다.

 



고대 세계에서는 그리스 도시들과 교역 거점들이 줄지어 늘어서서 바다의 모든 구석을 하나의 상업망으로 연결했다. 이 상업망은 내륙에서 일어난 세력들과 페르시아 및 로마의 진출로 흔들렸다. 비잔티움제국과 북방의 유목민들, 그리고 발칸반도와 카프카즈 지역의 기독교 왕들과 대공들 간의 관계는 처음에는 이를 강화했다가 나중에는 약화했다. 흑해 세계는 중세에 제노바와 베네치아 상인들의 진취적 정신에 의해 되살아났고, 한때는 단일 제국, 심지어 오스만 술탄이라는 한 사람의 지배 아래 놓이기도 했다. 이후 러시아의 부상으로 흑해는 남북 연안을 지배하는 세력들 간의 수 세기에 걸친 투쟁의 무대가 됐다. 이어서 19세기와 20세기의 민족 운동이 제국보다는 소규모 국가를 선호하면서, 바다와 그 연안의 일부분을 새로 형성된 국민국가들의 영역으로 편입시키는 역할을 했다. / 34p

 



노예 무역은 오스만 치하에서 더욱 활발해졌고, 오스만은 이를 규제하기 위한 과세 체계를 마련했다. 노예는 흑해 연안에서 단일 수입원으로는 단연 가장 중요했다. 16세기에 노예 판매세는 크림 항구에서 오스만 국고로 돌아오는 전체 세입의 29퍼센트를 차지했다. 평균 판매 가격은 금화 20개에서 40개 사이로, 이는 성인 한 명의 2~3년 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1500년부터 1650년까지 폴란드, 러시아 영토, 카프카즈에서 흑해를 거쳐 거래된 노예 인구는 대략 연근 1만 명이 넘었을 것이다. 서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의 강제 이주에 비하면 낮은 수치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백인노예 거래 규모로는 최대였다. / 210p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 튀르크스트림 가스관을 통한 유럽의 에너지 공급 등 흑해는 국제 정세의 바로미터가 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주목해야 할 곳이다. ‘현재의 갈등을 단순히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욕이나 서방의 확장 정책으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 지역이 품고 있는 수천 년의 역사적 복잡성을 놓치게 된다던 역자의 말처럼, 이분법적인 시각이나 진영의 논리를 넘어, 오랫동안 수많은 문명과 민족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왔던 흑해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진중한 고찰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수록된 지도를 컴퓨터 화면에 띄워놓고 검색도 해가며 공들여 읽어야 했을 만큼 쉬운 책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700년이라는 흑해의 긴 역사를 아우르는 저자의 내공과 그 안에서 역사의 의미를 읽어내는 통찰력에 감탄하며 마지막 장까지 재미있게 읽었다. 역사에 관한 새로운 영감과 지적 즐거움을 얻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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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냐고, 철학이 내게 물었다 - 30인의 철학자가 오늘 나에게 건네는 철학의 말들
임재성 지음 / 필름(Feelm)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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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완벽한 답을 찾는 시험지가 아니라, 스스로 써 내려가는 원고다!

세상에 지친 우리에게 철학하는 삶을 권하는 아주 친절한 철학 에세이!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나보다. 이 책의 제목을 본 순간, 이건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걸 보면. 최근 들어, 무작정 괜찮다고 달래거나 애써 외면해 왔던 감정들이 나도 모르게 불쑥불쑥 튀어나와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무너지는 순간들을 경험하고 나니, 지금의 내겐 막연한 위로보다는 구체적인 질문과 나와의 진지한 대화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시작한 책 읽기는 고요하고 때로는 집요하게 나를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조용히 앉아 자신을 성찰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다” - 파스칼

 



오늘의 삶과 연결하는 살아있는 철학

 



  철학서가 이렇게나 친절하고 다정할 수 있을까. 괜찮냐고, 철학이 내게 물었다는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질문들을 철학으로부터 해답을 구하는 책이다. 방황, 불안, 공허, 후회와 같은 감정들로부터 매 순간 나를 지키고, 지친 마음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삶의 기술로써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혜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삶을 살고 고민의 결 또한 다르다. 내 상황에 맞는 철학자의 사유를 나의 문제에 비춰볼 때 철학은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삶에 바로 닿는 현실적인 지혜가 된다.

그러나 스쳐 지나가듯 읽은 철학자의 사유는 내 삶을 바꾸기 힘들다. 단순히 좋은 말이네!” 하고 덮어버리는 독서로는 내면의 변화를 끌어낼 수 없다. 철학은 머리로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들여 삶 속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 7p

 



깨닫지 못한 사유는 곧 잊히고, 우리는 다시 같은 고민 앞에 서게 된다.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지속이다. 사유가 생각에 머물지 않고 삶의 습관으로 이어질 때, 철학은 나를 붙잡아 준다. 일상의 선택과 태도 속에 스며든 사유만이 흔들리는 순간에도 삶의 중심을 지켜준다. / 8p

 









  삶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예측할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불안할 때, 끊임없는 경쟁과 성취에 압박감을 느낄 때 아우렐리우스, 세네카, 에픽테토스, 몽테뉴를 떠올려보자. 이들 철학자들은 외부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나의 생각과 태도를 다스리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일은 결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는 전부이다.”라고 말했던 세네카처럼, 저자는 이미 지나간 과거의 후회나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에 사로잡히기보다는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시선을 내면으로 돌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태도와 선택에만 오롯이 집중한다면 그 어떤 외부의 소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그대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보다, 그대가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지에 더 귀 기울여야 한다. / 47p

 



감정을 언어로 명확히 표현하는 것은 감정 관리의 강렬한 도구다. 막연한 불쾌감도 나는 무시당했다고 느껴 화가 났다라고 구체화하면, 감정은 더 이상 나를 흔드는 모호한 힘이 아니라 다룰 수 있는 문제로 바뀐다. 명명된 감정은 이미 절반은 다스려진 것이다.

감정을 다스린다는 것은 억압이나 회피가 아니라, ‘이해를 통한 자유에 이르는 과정이다. 외부 사건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사건이 내 안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어떤 반응으로 이어질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이 선택의 힘을 손에 쥐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감정의 노예가 아닌 삶의 주인이 된다. / 55p

 



피할 수 없는 고난이라면, 거부보다 수용이 더 큰 힘을 준다. 거부와 저항은 마음을 소진시키지만 수용은 내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한 번 고난을 겪어본 사람은 그 무게와 깊이를 알기에 다음 고난 앞에서 덜 흔들린다. 그것이 삶이 주는 면역력이다.

고난 속에는 배움이 숨어 있다. 무너뜨리는 독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스승이다. “이 고난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고통은 의미로 바뀌고 우리는 한 걸음 더 성숙해진다. / 123p

 










  이 외에도 책은 왜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면 빅터 프랭클의 철학을, 나이 듦이 아쉽고 속상할 때면 키케로의 철학을, 고난의 무게에 짓눌릴 때면 니체의 철학을, 삶이 공허하다고 느낄 때는 하이데거의 철학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내 삶과 마음이 온전치 않다고 느낄 때 이들의 철학을 빌어 나만의 생각을 펼쳐나가는 연습을 해보다 보면, 고통은 의미로 바뀌고 우리는 한 걸음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많은 것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많은 것을 기꺼이 받아들여라. / 160p

 



짐을 덜어달라 기도하지 말고, 그 짐을 감당할 강한 어깨를 달라 기도하라. / 169p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자신의 존재와 행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지 않는다면 타인의 기대와 사회의 흐름에 휩쓸린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때 자기 성찰은 거창한 의식이 아니라, 매일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작은 습관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가치를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매일의 사소한 성찰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책의 메시지를 잊지 말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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