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류바
박사랑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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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한 현대인의 권태로운 일상을 동반하는 고독, 그 생생한 질감들!

현실과 텍스트의 병치를 절묘하게 이끌어낸 작가의 영민함이 빛나는 단편소설들!

 

 

 

   살얼음이 붙은 스크류바를 막 입에 넣자마자 습관적으로 배배 돌렸다. 그때 악,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차가운 스크류바가 입술 안쪽 살갗에 들러 붙은지도 모르고 재미삼아 빙글 돌렸다가 찢어진 것이다. 찢겨진 살갗 위로 붉은 피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달콤한 스크류바에 배신당해버린 그 쓰라린 감각이라니. 핑크빛 스크류바에 덕지덕지 묻은 붉은 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찢겨진 살갗을 달래가며 막대에 달라붙은 달콤함을 끝까지 다 먹어치웠던 그 날. 박사랑의 소설집 「스크류바」의 표지를 마주한 순간, 그 선연한 기억이 하얀 백지 위에 흘러내리는 스크류바의 흔적처럼 끈적하게 들러붙어 다시 되살아났다. 그 와중에도 집요하게 스크류바를 먹어치웠던 내 안의 욕망이 쭈뼛 일어서는 듯한 느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그 느낌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권태가 쌓아올린 현대인의 고독한 일상

 

 

   박사랑의 「스크류바」는 총 10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소설집이다. 첫 번째 수록작인 <#권태_이상>은 이상의 「권태」를 닮은 소설로, 갑자기 얻은 보름의 휴가를 할머니가 지냈던 시골에서 친구 매앵과 주인공이 전기 없이, 자동차와 휴대폰 배터리마저 방전되어 그저 먹고 자고 마시는 것 말고 할 것이란 게 없는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며 늘 쫓기듯 살아가는 일상과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 내일을 두려워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그려놓았다. <높이에의 강요> 역시 취업에 대한 피로감, 마놀로 블라닉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구두로 대변되는 속물 근성, 타인으로부터 받는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감 등으로 끊임없이 고통 받는 오늘의 청년들을 사실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뒤에 있는 고층 건물에서는 아직도 불빛이 새어나왔다. 그 옆 건물에서도, 또 그 옆 건물에서도, 길 건너편 건물에서도 불빛은 반짝였다. 늦은 밤까지 쉬지 못하는 저 불빛 속의 누군가와 이 자리에 서서 위만 쳐다보고 있는 나, 이 중에 누가 더 나은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높이에의 강요> 중에서 58p

 

 

 

   앞선 두 작품과 유사한 궤를 달리는 <어제의 콘스탄체>는 보다 더 의미심장하다. 자신이 모차르트라며 열살 때 전생을 자각했다는 남자로부터 느닷없이 모차르트의 아내인 콘스탄체라 불리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다. 별 미친 사람 다 있다고 생각하며 넘어가려고 했지만, 우연히 그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기게 되면서 그가 속해 있는 예스터데이라는 모임에 이끌리듯 따라가게 된다. 예스터데이는 어제를 사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그곳에는 전생에 자신이 니체, 버지니아 울프,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사도라 던컨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황당무계한 사람들 사이에서 당장 내일 출근해야 할 회사를 걱정하는 주인공에게 "집에 돌아가면 아마 나는 글을 쓸 거야. 물이 새는 옥탑방에 앉아 세숫대야에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글을 쓰겠지. 하지만 그 글은 책으로 출판되지는 않을 거야. 내 컴퓨터 안에만 있다가 어느날 휴지통으로 들어가겠지. 나는 그렇게 살아. 내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뻔해. 생각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너는 우리가 돌았다고 생각하겠지. 그러는 넌 네가 제정신이라고 생각해?"라며 냉소를 던지는 버지니아의 말은 뼈아프다. 과거보다 더 이전의 전생에 갇혀버린 사람들, 그렇게 해서라도 오늘을 잊고 살고 싶은 20~30대 젊은이들의 불완전한 자아를 마주보는 것 같은 그 불편한 감정들.

 

 

 

 

 

 

등 떠밀린, 지쳐버린 모성의 존재들

 

 

   박사랑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작품은 역시 표제작 <스크류바>다. 버스에서 잠깐 잠든 사이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이야기로, 그녀가 아연실색해진 상태에서 아이를 찾기 위해 신고를 하고 버스정류장을 되짚어가며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것이 소설의 큰 맥락이다. 이쯤하면 나 때문에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자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엄마의 모습과, 필사적으로 아이를 찾아 헤매며 상황이 긴박하게 흘러갈 것으로 예상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아이를 잃은 와중에도 스타벅스를 찾아가 지독한 더위와 갈증을 해결하며 이대로 자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남편과 들렀던 모텔 카운터에서 열다섯 살쯤 되는 여학생이 핥아먹고 있던 스크류바를 먹고픈 강렬한 충돌에 사로잡히는 등 우리가 기대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서 비켜난 행동들을 보여준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미쳤다고 자조하면서도 주인공은 이렇게 고백하기도 한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그 높은 체온에 정신이 아찔해지는 듯 했다. 때로는 숨이 막혔다. 가슴을 파고드는 아이의 머리를 밀어내고 싶기도 했다. 내 가슴을 물어뜯는 아이에게 더이상 가슴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고. 어쩌면 그녀는 아이를 찾아 헤매던 것과 동시에 억눌려왔던 자신의 욕망과 엄마로서의 의무 혹은 모성 사이에서 어지럽게 떠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글을 읽는 동안 나는 내내 모골이 송연해졌다. 엄마라는 책임의 무게에 짓눌리고, 세상이 강요하는 모성에 순응하듯 등 떠밀려 있던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들여다본 까닭이었다. 톡, 톡. 이것이 불온하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저 스크류바에게서 불안한 모성의 현주소를 들여다보게 하는 작가의 생생한 감각이 빛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녹은 스크류바가 발끝으로 톡, 떨어졌다. 분홍색 동그라미가 발끝에서 터지자 그리로 무언가 스멀스멀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톡, 톡 퍼져나가는 분홍색 동그라미, 달콤하고 끈적한 그 흔적. 나는 발끝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마치 전기가 오른 것처럼 발끝이 찌릿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점차 다리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온 정신을 모아 그 감각만을 따라갔다. 무릎을 지나 사타구니에 그 찌릿함이 전달되자 몸에 있는 모든 혈관에 빠른 속도로 피가 돌기 시작했다. / <스크류바> 중에서 79p

 

 

 

 

 

 

   <울음터>, <하우스> 역시 <스크류바>와 주제를 함께 하는데, 이 또한 버거운 모성의 무게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의지하게 되는 그것에 안부를 전한다. 31~42밀리미터에 5그램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한 생명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존재였을지도 모른다고 위로하고, 하우스에서 화투에 빠져 사는 엄마에게 속으로 '저런 건 엄마도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도 집으로 왔을 때 엄마가 있기를 바라는 소녀를 보며 모성이 머무르는 자리에서 가족의 안녕을 찾게 되는 그 큰 존재감을 쓸쓸히 어루어 만진다.

 

 

 

엄마, 지수 몸무게가 몇이야? 10.6킬로그램. 무겁네. 그럼, 무겁지. 지수의 손이 내 뺨을 만졌다. 너도 5그램이었던 때가 있었겠지. 그때는 가벼웠는지, 아니면 그때도 너는 누군가에게 무거웠던 건지. / <울음터> 중에서 198p

 

 

 

현실과 텍스트의 병치, 그 환상의 미학

 

 

  일상적 상황과 부조리한 삶의 현실을 다루는 박사랑 작가의 화법은 사실 단순하지만, '이야기' 즉 텍스트를 소설 내부로 끌어들이는 치밀하고 집요한 고민은 그녀의 남다른 성과라 자부할 만하다. <스크류바>가 이 소설집의 가장 강렬한 인상을 차지한다면 <바람의 책>과 <이야기 속으로>는 그녀만의 개성, 혹은 여느 소설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남다른 매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바람의 책>의 경우 강박신경증에 관한 책을 쓰고 있던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등장하는데, 선배의 부탁으로 한 남자를 상담하다 그로부터 보르헤스의 작품 「모래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자신 역시 그 모래의 책을 찾아 기이한 환상적 체험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이한 환상이란 책을 펼칠 때마다 페이지가 끝없이 늘어나는 것이었는데, 오로지 알 수 없는 문자로 가득 채워진 책이 불어난다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오싹하게 만든다. 종래에 이 모래의 책은 바람에 날리는 모래처럼 눈앞에서 글자가 사라지기까지 하는데, 무한한 책이 아닌 무(無)의 책이 되어가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주인공은 논문의 주제로 삼고 있던 강박 증세를 몸소 체험하며 마침내 쓰고 있던 논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어 <이야기 속으로>의 경우에는 아예 기존의 텍스트 내부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기존의 텍스트란 김승옥의 작품 「서울, 1964년 겨울」로, 술을 마시다 옆자리에서 이 소설의 내용과 똑같은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자신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내내 훔쳐보듯 소설 속 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가고만 있던 주인공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내가 자살을 하리란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결국 이를 막아보고자 마침내 인물들 사이로 끼어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야 말았고, 안과 김 그리고 사내와 1964년 서울의 거리, 그 날 주머니 속에 넣어둔 여관 열쇠가 마치 꿈이 아니었음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이후 그는 1964년의 사내와 절묘하게 닮은 구석이 많은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또다시 죽음이 재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지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남자가 풀어놓고 간 넥타이가 사실은 친구의 것이었고, 주머니에 있던 열쇠마저 아버지의 헌책방 문을 열던 열쇠였음을 깨닫게 된다. 현실인지 환상인지 모를 이 낯선 체험은 어쩌면 소설을 써야 한다는 이 등단 작가의 강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케 한다. <바람의 책>에서 신경정신과 전문의가 그랬던 것처럼.

 

 

 

1964년 겨울, 서울의 거리는 추웠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바람에 옷깃을 여몄다. 안은 심드렁한 말투로 그럴 줄 알았습니다, 했고 김은 약간 과정하며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했다. 김이 나에게 이형은 알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나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고 얼버무렸다. 그러자 김과 안이 동시에 나를 쳐다봤다. 당신은 소설가이지 않습니까? 하는 표정 같았다. / <이야기 속으로> 중에서 119p

 

 

 

   이는 곧 박사랑이란 소설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의 발현이며, 문학이 시대에 반응하고 가져야 할 사명 같은 것을 고민하게 하는 부분이다. 덕분에 우리는 더 이상 색다를 게 나올 것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생산과 재생산으로 무한 증식하는 듯한 문학에 여전히 기대하고, 그 존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박사랑 작가의 「스크류바」 속 단편들은 그런 기대에 부응한 훌륭한 작품들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매우 흡족했다. 흡인력 있는 스토리 전개, 생의 불가해함과 권태로운 일상이 동반하는 고독의 질감을 생생하게 전달함은 물론, 기존의 문학을 상상력으로 끌어낸 영민함까지. 앞으로도 계속 주목해서 지켜보고 싶은 작가가 생겨서 더욱 즐거운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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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세우는 단단한 힘 문사철
이지성.스토리베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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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속에 길이 있다!

문학, 역사, 철학으로 복잡한 현실을 극복하고 나아갈 인생에 해답을 찾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오히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기계 발전 중심의 산업에서 인간 중심의 기계 산업 시대로 변화하면서 기업에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들을 더욱 선호하고 있다고 한다. 타인과 공감하여 소통할 줄 알면서 회복탄력성이 높은 인재들이 곧 미래형 인재들이라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곳곳에서 인문학을 다룬 다양한 강의와 매체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알쓸신잡'을 비롯하여 '어쩌다 어른'과 같은 특강 형식의 방송을 통해 고전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와 친숙도가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서점가에도 이와 관련된 도서들이 상당수 눈에 띈다.

 

 

 

   내 아이를 위해 알아야 할 부모 인문학을 비롯하여 어린이가 읽는 인문학, 걷기, 커피, 투자자를 위한 인문학까지.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지만 우리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는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인문학에 대한 인기가 마냥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인문학을 통해 삶에 대한 고민과 상처들을 치유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혼란과 오류로 점철된 사회 현실에 답답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삶에 대한 고민과 상처들, 문사철을 통해 해답을 찾다

 

 

   <꿈꾸는 다락방>, <리딩으로 리드하라>로 익히 알려진 저자 이지성의 신간 <나를 세우는 단단한 힘 문사철> 역시 캄캄한 인생길 앞에서 헤매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인문 고전 독서로 해답 찾기를 권하는 인문학 책이자 자기계발서이다. 인문 고전 독서의 바이블로 정평이 난 <리딩으로 리드하라>가 인문 고전 독서의 힘과 그 중요성을 원론적인 입장에서 강조했다면, 이번 책의 경우에는 풀리지 않는 현실의 문제들에 고민하고 답답해하는 세 명의 주인공이 문사철을 만나 생각하고 실천함으로써 인생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극화 형식으로 풀어나간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책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들이란 우연히 직장 상사의 비리를 알게 되어 이를 바로 잡으려다 도리어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위기에 처한 제갈대로, 선배로부터 디자인을 도용당한 유명환, 손님이 점점 줄어들어 걱정인 카페 주인 한방인으로 이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30대 남성들의 애환과 말못할 속사정을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직장 생활 속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들에게 길을 알려줄 인생 멘토와 같은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던 중이었다. 그때 제갈대로가 직장 내 동기인 주리를 통해 문사철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방인의 카페에서 우연히 옛 스승인 멘토 황희 선생님을 만나게 되면서 셋은 문사철이라는 세계에 대해 알게 된다.

 

 

 

   이쯤에서 이 책을 처음 마주하는 사람들이라면 가장 먼저 궁금해지는 것, 바로 문사철이란 무엇인가일 것이다. 문사철이란, 문학적 감수성과 역사를 통해 얻는 지혜, 깊이 있는 질문과 사유에서 나오는 철학을 아우르는 말로 쉽게 말해 '문학, 역사, 철학'의 줄임말이다. 이는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축적한 지식이자 인문학의 토대가 되는 것으로 흔히 '고전'이라 불리는 것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를 테면 리더십의 고전이자 소통과 실천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오긍의 <정관정요>, 국가와 자신이 속한 곳에 대한 애사심과 사명감을 생각하게 해주는 플라톤의 <국가>, 자본주의 속에서 삶의 여유를 찾는 방법을 느낄 수 있는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법을 깨닫게 해주는 <방법서설>, 사람은 무엇이며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장 지글러의 <인간의 길을 가다>에 이르는 비교적 최근작까지. 여기에서 황희 선생님은 세 청년들에게 이와 같은 고전을 추천하여 읽게 한 다음,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대화 방식을 통해 그 안에서 각자의 고민들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가이드 역할을 한다.

 

 

 

"스스로에게 좋은 질문을 많이 하세요.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원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하는 것을 가진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중략)… "좋은 질문은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죠. 질문의 질이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고 할까요. 질문은 잠들어 있는 우리를 깨워주지요." / 40p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하잖아요? 고전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죠. 지금 내 삶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 비추어 재조명해야 하는 것이지요. 당대 사회가 지녔던 문제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정신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모색해보는 거예요.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읽는다면 시간 낭비에 불과할 뿐이예요. 정확한 목표 없이 소일거리로 읽는다면 아마 지루해서 한 장도 읽지 못할걸요." / 51p

 

 

"좋은 글을 읽는 것도 그에 따른 행동을 하는 것도 모두 도를 닦는 방법 중에 하나일 거예요. 그것을 궁리라고 해요. 무엇인가를 행하기 전에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고 실천으로 옮기잖아요. 궁리를 많이 한다는 것은 자기 행동도 많이 살펴본다는 거예요." / 135p

 

 

 

 

 

 

   사실 고전의 좋은 점이야 말로 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만한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전이라하면 일단 막막함,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나만 하더라도 읽는 다음에 생각을 바로 정리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고전 독서에 어려움을 느끼니 말이다. 책에 등장하는 세 청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책을 전부 읽는 것조차 어려움을 토할 정도로 처음에는 막막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한 권씩, 한 권씩 읽어나가며 점차 인문 고전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하고 나아가 문제의식을 가지고 스스로의 행동에 변화를 꾀하는 과정을 보고 있노라면 시작의 두려움을 극복한 뒤에 찾아오는 깨달음이 꽤나 가치 있게 느껴진다. 고전에 대한 딱딱하고도 진지한 담론 대신 대화를 통해 자유롭게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형식의 글을 쓴 것 역시 인문학을 어렵지 않게 느끼기를 바라는 저자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행복은 가만히 있는다고 오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길인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자기를 세우고 자기가 생각한 옳은 방법을 실천하면 행복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성현들의 생각이겠지요. 중용이라고 해서 무조건 중간을 뜻하는 것은 아니에요. 중용이란 우리가 하려는 행동의 가장 참되고 변하지 않는 이치를 말해요." / 138p

 

 

윤선도가 유배지에서 쓴 시를 보면 자연에 있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도 있지요. 물론 자기 위안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신념이 있는 이들에게 장소가 그렇게 중요했을까요?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이들이라면 자리가 중요했을까요? 내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을.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은 어때요? 어쩌면 현재 우리가 사는 세상이 유배지가 아닐까요? 어떤 이에게는 한없이 힘든 곳이고 어떤 이에게는 자기를 갈고 다듬는 수양의 장이 되니 말이에요." / 238p

 

 

 

 

 

 

 

   책 속에서 '고전의 훌륭한 말도 제대로 이용하지 않으면 책 속의 갇힌 글자일 뿐'이라는 말이 유독 인상에 남는다. 저자 이지성은 <나를 세우는 단단한 힘 문사철>을 통해 독서란 읽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체화하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삼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정관정요>를 쓴 오긍 역시 아는 것이 어려운 데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그것을 끝까지 지키는 게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실천을 이끄는 힘을 지녔기에 더 큰 의미를 지닌 고전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래서 선생님께서 문사철의 마지막 과정을 봉사라고 하신 거군요. 봉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시작할 수 있는데 문사철의 기본 사상도 '사랑'이잖아요. 그리고 봉사에는 사람과의 소통이 있어요. 문사철에서 말하는 내용도 결국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지요. 우리는 봉사를 하는 동안 그들과 힘들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행복을 느낄 수 있지요.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통해 내가 성장할 수 있어요." / 310p

 

 

 

   시중에 나온 많은 인문학 책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설명에 비해 이 또한 상당히 까다롭게 읽혔던 것과 달리 <나를 세우는 단단한 힘 문사철>은 소설의 구성을 지닌 대화체 형식을 글을 통해 정말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은 책이었다. 약간의 아쉬움이 있다면 그 소설의 구성이란 게 미화적인 면이 많아서 진부한 느낌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을 문사철을 통해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혜안을 제시하며 자기 안에서 혁명을 도모할 수 있기를 응원한다는 점에서 만큼은 좋은 자기계발서의 한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이 책에 실린 많은 고전 중에 어찌 읽은 책이 10퍼센트도 되지 않는 것인지 좀 부끄러워진다. 책에 수록된 고전을 찾아 꼭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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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출판 편집부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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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 시대를 현명하게 살아가는 가계 살림 코칭북!

하루 5분, 내 손으로 직접 쓰고 살뜰하게 챙기는 가정 살림 재테크!

 

 

 

   최근에 KBS에서 가계 재테크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한 방송이 연일 화제가 되었다. 바로 김생민의 <영수증>이란 프로그램이다. 영수증 내역을 꼼꼼하게 체크해 무의미하게 소비한 품목을 체크해 새어나가는 지출을 막고 저축과 적금으로 돈 모으는 방법들을 일러주는 꽤나 유익한 방송이었다. 무조건 절약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내 꿈과 가정의 안녕에 사용되는 현명한 소비는 반드시 챙기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가계 살림 운영에도 정확한 기준과 가치관 정립이 우선임을 생각하게 했다.

 

 

 

   방송을 보고는 언제부턴가 쓰기를 중단했던 스마트폰의 가계부 앱을 다시 정리해 각종 지출과 수입 내역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카드 사용액은 문자메시지가 오면 자동으로 앱에 등록이 되고 자동 이체 내역도 마찬가지로 고정적으로 관리되고 있으니 참 편했다. 그런데 이 마저도 시간이 흐르면서 그저 습관적으로 금액만 기입할 뿐, 따로 정산을 해본다거나 소비의 문제점을 들여다보고 극복할 만한 시도 따위는 하지 않게 되었다. 이 달에 얼마를 쓴 것인지 지출액만 따져볼 뿐, 다시 달이 바뀌면 또 똑같은 수순의 소비는 계속되었다.

 

 

 

   사정이 이러고 보니 가계부란 것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스마트폰의 가계부 앱도 편리하기는 하지만 소비를 체감할 수는 없는 듯하여 차라리 아날로그적이라 할지라도 소비 패턴을 제대로 실감할 수 있게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얀 연습장을 가져다가 일단 써보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며칠을 못 가서 아니다 싶었다. 일일이 소비 유형과 결제 수단들을 손으로 쓰는 일의 번거로움이란 금세 가계부 쓰는 즐거움과 의욕을 시들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일, 월, 연 단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는 가계부 책을 마련해 작성하는 것이 보다 현명할 것 같았다.

 

 

 

꿈을 생각하며 쓰는 가계 살림 코칭북

 

 

   2018년을 대비해 서점가에 서서히 가계부 책들의 출간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 중 <하루 5분 쓰면 돈 버는 2018 가계북>이라는 조금은 독특한 제목의 책이 눈길을 끈다. 가계부도 아니고 가계북이라니? 이런 책도 있었던가, 하는 의아함을 품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첫 페이지에는 2018년에 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꿈 통장 마련을 권유한다. 이왕이면 단순 저축이 아니라 원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꿈 통장 마련을 통해 보다 저축의 실효성과 필요성을 가깝게 느끼고 즐거움도 동시에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인 듯하다. 내 통장에 꿈이라는 의미를 더하는 이 사소한 행위 하나가 뜻밖의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다음으로 한 해 동안의 주요 행사를 적는 캘린더가 실려 있는데, 가계부이자 주요 행사를 기입하면서 큰 소비를 챙길 수 있도록 하는 다이어리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굳이 2018년용 다이어리를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여기에는 한 해 동안의 목표, 예상 수입과 소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면서 월초에 이달의 예상 수입과 예상 지출을 미리 적어보는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더욱 유용하다. 더욱이 2018년 1월이 아니라 2017년 11월부터 써볼 수 있으니 당장 활용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다.

 

 

 

 

 

   중요한 가계부 공간에는 독특하게도 오늘의 날씨를 체크해볼 수도 있게 되어 있는데, 날씨에 따른 소비 패턴도 가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상기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하루의 수입과 지출을 적을 수 있는 공간에는 현금, 신용카드, 직불카드 등 나만의 지불 수단을 구분해서 표기할 수 있고 그날의 인상적이었던 일들을 적을 수 있는 작은 메모 공간도 있다. 또한 주 단위로 우리 집의 수입과 지출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 장부 대조란, 즉 소비 유형을 적을 수 있는 공간도 우측에 마련되어 있으니 이 또한 유용하게 활용해봄직하다.

 

 

 

 

 

   이 외에도 스페셜 페이지에는 가계 재테크를 현명하게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각종 팁과 정도들이 수록되어 있다. 2018년에 새롭게 재편되는 연말정산 및 절세 재테크, 카드 재테크, 건강 보험 재테크, 스마트폰뱅킹 활용법 등 알아두면 좋은 정보들이 있으니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돈을 모으기 전에 경제지도에서 우리집의 위치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현 수입과 지출을 파악하는데, 가급적이면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 본다. 그런 후에 예‧적금, 전세금 대출 잔액, 카드 할부 잔액, 자동차 대출 잔액, 보험, 펀드 등의 내역을 꼼꼼하게 체크한다. 그렇게 하면 순자산과 부채를 파악할 수 있다. 경제지도에서 우리집의 위치를 확인하면 ‘100세 인생’의 시대 빈곤하지 않은 노후를 준비함은 물론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기 위함이다. / 46p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 중학교 입학, 고등학교 입학, 대학교 입학 시기를 점 찍는다. 또 목돈이 필요한 시기를 예측하여 점찍는다. 이렇게 지출 그래프를 그려보면 어느 시기에 목돈이 필요하고 또 저축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기가 한눈에 보일 것이다. 지출 그래프를 그려보면 매달 얼마를 모아야 하는지 눈에 들어온다. 돈을 관리하고 모으는 것도 기술이다. / 46p        

 

 

 

 

 

  끝으로 마지막 스페셜 페이지에서는 한 해를 마감하며 살림 결산, 선물 결산, 추억 공간, 2019년에 꼭 이루고 싶은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2019 꿈 통장’ 코너도 마련되어 있으니 다음 한 해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다듬어보는 것도 좋겠다.

 

 

 

 

 

   사실 가계부라 해봐야 별 거 있겠나 싶지만 보다 체계적이고, 쓰기 쉬우면서, 나의 소비패턴을 한눈에 들여다보기 쉬운 책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다. 무엇보다 꿈을 응원하고 그 꿈을 위해 나의 살림을 정비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 있어서 이 책이 하나의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도 좋은 점 중에 하나가 아닐까. 2018년에는 내 영수증과 내 통장에 슈퍼그뤠잇을 마구 외쳐줄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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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 작가정신 시그림책
함민복 지음, 한성옥 그림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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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삶을 뒤흔드는 상념과 시련에 중심을 잡고 살아야했던

생의 의지에 시와 그림이 전하는 가슴 따뜻한 위로!

 

 

 

   바람이 흩날리자 내내 달려있던 나뭇잎들이 우수수 낙엽비가 되어 쏟아진다. 봄에 맞는 꽃비와는 사뭇 다르게 마음이 헛헛해진다. 그간 생을 온몸으로 움켜쥐고 있었을 나무의 고단함이 애처로워서, 오늘도 따뜻한 보금자리 단단히 떠받치려고 차가운 바람 맞아가며 바깥일을 하고 있을 남편이 떠올라서, 나무를 흔들어 겨울을 재우치는 날카로운 바람이 유독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그렇게 나는 다가올 겨울을 온몸으로 맞고 있는 나무 한 그루에게서 나의 생과 누군가의 생을 엿본다. 차가운 현실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담아내는 함민복 시인의 시 「흔들린다」에서도 참나무 한 그루에 담긴 생의 모든 사명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시인은 단단한 땅 속 살 틈을 비집고 들어가 최선을 다해 뿌리를 내려 중심을 잡고자 했던 참나무의 단단한 고집과 함께 수시로 이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무성히 가지를 내려 이파리를 틔우는 유연하고도 의연한 삶을 목도한다.

 

 

 

 

 

 

   어쩌다 시 한 편 읽어 보지 못하고 지낸 지 오래되었는데, 공원을 산책하러 나가는 길에 시그림책 <흔들린다>를 선택했더니 이렇게 절묘하게 내가 마주하고 있는 풍경과 시가 어우러진다. 책 <흔들린다>는 앞서 함민복 시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흔들린다」에 우리나라 1세대 그림책 작가로 알려진 한성옥 작가의 동양화적 감각을 더한 시그림책이다. 일종에 시화집인 셈인데 이를 시그림책으로 표현해 구성한 출판사의 의도가 사뭇 흥미롭다. 그도 그럴 것이 먹색이 지닌 탁한 질감과 강렬함, 그 안에 은은하게 번져있는 푸른 색채감이 잘 어우러져 제법 묵직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지닌 언어적 감각이 시각적 감각을 만나 페이지 한 장 한 장에 매우 진중하게 담겨져 있음은 물론, 한층 입체감 있게 전달되는 것이었다.

 

 

 

 

 

 

   이미 '흔들리는 것'들에 대한 예찬은 꽤나 익숙하다. 누군가는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하였고, 또 누군가는 흔들림으로부터 세상의 모든 관계는 시작되고 보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하나의 몸부림이라고도 하였다. 흔들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데,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는 이 삶이 왜 이리 고단한 것인지 모르겠다. 흔들리지 마라는, 흔들리는 게 인생이라는 말조차 버겁게 느껴질 정도니까. 그래서일까, 그 어떤 자기계발서의 훌륭한 조언이나 문구보다 <흔들린다>를 통해 생의 모든 순간순간이 흔들림의 연속인 나무 앞에서 우리네 삶에 대한 위안과 의지를 보다 크게 얻게 된다.

 

 

 

흔들리지 않으려

흔들렸었구나

흔들려

덜 흔들렸었구나

 

 

 

   그러므로 이 난해한 시적 표현 앞에서 우리는 정확한 해석을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고단하고 힘든 세상살이, 흔들리면서 버티고 버팀으로 또 흔들리는 이 삶에 그저 최선을 다하고 스스로를 숭고하게 여기면 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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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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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 위에서 나를 만드는 여정을 떠나다!

쿠바에서 콜롬비아까지, 매력적인 남미의 세계로 빠져들다!

 

 

 

   이 땅의 어딘가가 아닌 멀고도 낯선 이국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저마다 가슴에 품고 있는 어떤 이유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보게 된 아름다운 풍경 사진 한 장의 황홀함 때문이라든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떠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 때문이라든지, 여기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도피하듯 당장의 절박한 심정을 해소할 낯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든지 등등의 이유 같은 거 말이다.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의 저자 김나랑은 아마도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마치 누군가가 나의 온몸을 부여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것처럼 중심을 잡고 서 있기 버거울 때가 있다. 일상에 짓눌리다 못해 몸과 마음이 송두리째 찢어발기는 듯한 그런 느낌말이다. 그럴 땐 어디론가 삶의 중심을 확 이동해 버리고 싶다. '여행'이라는 이름을 빌려가며. 아마도 저자 역시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13년간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유명 잡지인 《보그》 코리아의 피처에디터로 있는 그녀는 남미를 떠날 당시엔 카카오톡 대화창이 온통 절망과 험담으로 이뤄져있을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30대 중반에 이르러 회사를 퇴사하고, 병원에 다니며 심신이 지쳐 있던 그녀는 그저 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왕 쉰다면 낯선 곳으로 가보자!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남미 여행을 떠났다고 말한다.

 

 

 

내 여행의 목적은 분명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나를 불확실성의 세계로 밀어 넣고 싶었다. 지친 몸으로 길 위에 서고 싶었다. 현실로 닥치니 나는 나약했다. 죽음마저 느꼈다. 하지만 겪어 냈다. 한 우주비행사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경험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내게 우주여행은 없을 테니 다른 경험을 최대치로 하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보는 경험. 그것이 인생을 바꿀지는 알 수 없지만, 보지 않은 나와는 1밀리미터라도 다를 것이다. / 16p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는 이렇듯 불확실성의 세계, 낯선 길 위에서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었던 저자가 2월에서 7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다녀온 남미여행기를 담은 여행에세이다. 69호수의 장대한 아름다움 앞에서 여행자의 마음가짐과 이 여행의 목적을 가다듬었던 첫 여행지 페루를 시작으로 하여, 황홀하지만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감동의 여행지 우유니 사막으로 익히 알려진 볼리비아를 거쳐, 젊음과 예술에 대한 욕망을 일깨워줬던 칠레, 세계 5대 미봉으로 어마어마한 절경을 자랑하는 피츠로이 봉우리가 있던 아르헨티나, 전자제품 면세 지역으로 휴대폰 구매를 위해 잠시 들렸던 파라과이, 언덕 위의 예술상으로 유명한 브라질, 너무나 아름다운 키토의 구시가지에 매료되었던 에콰도르, 아바나의 따뜻한 촉감이 인상적인 쿠바,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마음을 쏙 빼앗았던 콜롬비아까지. 남미가 아니라면 어디서도 평생 보지 못했을 법한 풍경과 낯선 길, 오다가다 만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하며 저자는 자신이 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 투어의 일정은 콘도르 말고 아무것도 없단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믿는 것 하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기뻤다. 그간 원하지도 않고, 딱히 관심도 없는 것에 시간과 돈을 쏟지 않았던가. / 32p

 

 

 

 

 

 

   개인적으로 여행에세이라 하면 기대하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여행자 자신만이 느낀 그곳에 대한 '이미지'와 '감각' 같은 것들이다. 여행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감동 어린 찬탄이 아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여행지라 하더라도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예민하게 느껴서 새로운 감각으로 독자에게 또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말이다.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를 읽다보면 그런 독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만한 인상적인 문장들이 다소 엿보인다.

 

 

 

라틴아메리카 미술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엘 아테네오 서점, 에비타 페론의 묘지가 있는 레콜레타, 저녁이면 긴 줄을 서는 150년 된 카페 토르토니, 잘 빠진 상점들이 있는 팔레르모 소호만 가고 끝났다면 부에노스는 그저 '화려한 미녀'나 '남미의 파리'였을 거다. 내게 부에노스는 남미의 가난한 자들이 한 가닥의 희망을 보고 모여드는 도시이자, 그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엔 자신의 형편도 넉넉지 않아 무뚝뚝할 수밖에 없는 미녀였다. 미모는 여전하지만, 슬픔이 서린. / 193p

 

 

아바나를 연상할 때 또 하나 생생한 기억은 '따뜻한 촉감'이다. 만 건너편에는 아바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엘 모로라는 지역이 있다. 모로 요새와 산 카를로스 요새가 있는 구역이다. 이 요새를 찾아 노을 지는 아바나를 바라봤다. 신발을 벗어 맨발로 요새 근처를 거닐었다. 뜨거운 한낮에 달궈진 돌이 이제야 숨을 쉬며 조금씩 식어 가고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기까지 했다. 돌 위에 누워 노을을 보자 또 한 번 아바나를 사랑하게 됐다. 1달러, 1쿡을 외치며 혈안이 된 자본주의 총아들의 거친 눈빛이 씁쓸하나, 아바나는 낭만이다. / 247p

 

 

 

 

 

 

   책을 읽다보면 여행지의 인상을 보다 많이 좌우하는 것들이란 뜻밖에도 그녀가 머무른 게스트하우스에 속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이란 건 해당지에서 먹고, 보고, 자는 것들까지 포함한 모든 것들일 테니 특이할 만한 점은 아니겠으나, 흥미롭게도 책을 다 읽고 난 후 기억에 남는 것들이 대부분 그녀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에서 겪은 일들이란 점은 좀 남다르게 다가온다. 배낭 여행자이다 보니 아무래도 호텔과 같이 정밀한 체계를 갖춘 숙박업소에서 지낼 수가 없는 까닭에 그녀가 머무르는 곳은 대부분 에어비앤비 혹은 즉석에서 흥정으로 구한 숙소들이 대부분이었고, 운영자와 가족들의 생이 머물고 있는 곳이기에 좀 더 그들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배낭 여행자들만이 주고받을 수 있을 법한 여행자의 감성과 때로는 얼굴을 붉혀가면서까지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는 무수한 감정들 또한 여행지에 대한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하루는 조식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남미 청년이 기타를 쳤다. 치다가 노트에 필기를 하고 다시 치기를 반복했다. 작곡을 하는 듯했다. 가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익숙한 곡을 연주했다. 아름다웠다. 아침의 남는 시간에 '할 일'이 있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온전한 자신이 존재하는 것. 나도 몰두할 예술이 있길 바랐다. / 62p

 

 

남자가 리드하는 탱고에서 프로페셔널한 그의 스텝은 나를 빠져들게 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탱고에선 남자가 잘 춰야 해. 넌 따라오면 돼." 그러면서 몇 가지 스텝을 알려 주었다. 신기하게 난 탱고 동작을 자연스레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싸움을 말리던 흑인 친구, 콜롬비아에서 온 환전상,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하는 여성까지. 우린 동그랗게 모여 음악에 몸을 푸는 연습부터 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음악에 몸을 맡겨 봐." 흑인 친구는 꽤 췄는데,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저음으로 스텝을 외웠다. "우노(하나), 도스(둘), 뜨레스(셋)…" 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싸우는 친구들에게는 뭐라고 했을까. / 191p

 

 

 

   유독 마지막 에필로그의 한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한낱 여행객인 제게 베풀어 준 친절, 미소, 그 땅이 가진 아름다움으로 저는 전보다 조금 나아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생은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것들의 연속이며, 그것을 잊고자 떠난 여행조차 그러한 것들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을 내딛는 것, 그 용기와 도전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보다 완전함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가만히 있는 것보단 100배 나은 것 같다는 그녀의 이 경험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의지가 될지 자연스레 드러나게 마련일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것이 모든 여행자가 원하는 진짜 여행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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