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
김나랑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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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길 위에서 나를 만드는 여정을 떠나다!

쿠바에서 콜롬비아까지, 매력적인 남미의 세계로 빠져들다!

 

 

 

   이 땅의 어딘가가 아닌 멀고도 낯선 이국으로 떠나는 여행이라면 저마다 가슴에 품고 있는 어떤 이유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싶다. 우연히 보게 된 아름다운 풍경 사진 한 장의 황홀함 때문이라든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떠나지 못할 것 같은 기분 때문이라든지, 여기만 아니면 된다는 마음으로 도피하듯 당장의 절박한 심정을 해소할 낯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든지 등등의 이유 같은 거 말이다.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의 저자 김나랑은 아마도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마치 누군가가 나의 온몸을 부여잡고 마구 흔들어대는 것처럼 중심을 잡고 서 있기 버거울 때가 있다. 일상에 짓눌리다 못해 몸과 마음이 송두리째 찢어발기는 듯한 그런 느낌말이다. 그럴 땐 어디론가 삶의 중심을 확 이동해 버리고 싶다. '여행'이라는 이름을 빌려가며. 아마도 저자 역시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13년간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유명 잡지인 《보그》 코리아의 피처에디터로 있는 그녀는 남미를 떠날 당시엔 카카오톡 대화창이 온통 절망과 험담으로 이뤄져있을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30대 중반에 이르러 회사를 퇴사하고, 병원에 다니며 심신이 지쳐 있던 그녀는 그저 쉬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왕 쉰다면 낯선 곳으로 가보자!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찾을 수 있겠지 하는 심정으로 남미 여행을 떠났다고 말한다.

 

 

 

내 여행의 목적은 분명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나를 불확실성의 세계로 밀어 넣고 싶었다. 지친 몸으로 길 위에 서고 싶었다. 현실로 닥치니 나는 나약했다. 죽음마저 느꼈다. 하지만 겪어 냈다. 한 우주비행사는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본 경험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다. 내게 우주여행은 없을 테니 다른 경험을 최대치로 하고 싶었다. 아름다움을 보는 경험. 그것이 인생을 바꿀지는 알 수 없지만, 보지 않은 나와는 1밀리미터라도 다를 것이다. / 16p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는 이렇듯 불확실성의 세계, 낯선 길 위에서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싶었던 저자가 2월에서 7월에 이르는 기간 동안 다녀온 남미여행기를 담은 여행에세이다. 69호수의 장대한 아름다움 앞에서 여행자의 마음가짐과 이 여행의 목적을 가다듬었던 첫 여행지 페루를 시작으로 하여, 황홀하지만 함부로 보여주지 않는 감동의 여행지 우유니 사막으로 익히 알려진 볼리비아를 거쳐, 젊음과 예술에 대한 욕망을 일깨워줬던 칠레, 세계 5대 미봉으로 어마어마한 절경을 자랑하는 피츠로이 봉우리가 있던 아르헨티나, 전자제품 면세 지역으로 휴대폰 구매를 위해 잠시 들렸던 파라과이, 언덕 위의 예술상으로 유명한 브라질, 너무나 아름다운 키토의 구시가지에 매료되었던 에콰도르, 아바나의 따뜻한 촉감이 인상적인 쿠바,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마음을 쏙 빼앗았던 콜롬비아까지. 남미가 아니라면 어디서도 평생 보지 못했을 법한 풍경과 낯선 길, 오다가다 만난 많은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하며 저자는 자신이 전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 투어의 일정은 콘도르 말고 아무것도 없단다! 내가 보고 싶은 것, 내가 믿는 것 하나를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기뻤다. 그간 원하지도 않고, 딱히 관심도 없는 것에 시간과 돈을 쏟지 않았던가. / 32p

 

 

 

 

 

 

   개인적으로 여행에세이라 하면 기대하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여행자 자신만이 느낀 그곳에 대한 '이미지'와 '감각' 같은 것들이다. 여행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감동 어린 찬탄이 아닌,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여행지라 하더라도 자신의 눈과 마음으로 예민하게 느껴서 새로운 감각으로 독자에게 또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 말이다. <불완전하게 완전해지다>를 읽다보면 그런 독자의 니즈를 충족시킬 만한 인상적인 문장들이 다소 엿보인다.

 

 

 

라틴아메리카 미술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엘 아테네오 서점, 에비타 페론의 묘지가 있는 레콜레타, 저녁이면 긴 줄을 서는 150년 된 카페 토르토니, 잘 빠진 상점들이 있는 팔레르모 소호만 가고 끝났다면 부에노스는 그저 '화려한 미녀'나 '남미의 파리'였을 거다. 내게 부에노스는 남미의 가난한 자들이 한 가닥의 희망을 보고 모여드는 도시이자, 그들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기엔 자신의 형편도 넉넉지 않아 무뚝뚝할 수밖에 없는 미녀였다. 미모는 여전하지만, 슬픔이 서린. / 193p

 

 

아바나를 연상할 때 또 하나 생생한 기억은 '따뜻한 촉감'이다. 만 건너편에는 아바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엘 모로라는 지역이 있다. 모로 요새와 산 카를로스 요새가 있는 구역이다. 이 요새를 찾아 노을 지는 아바나를 바라봤다. 신발을 벗어 맨발로 요새 근처를 거닐었다. 뜨거운 한낮에 달궈진 돌이 이제야 숨을 쉬며 조금씩 식어 가고 있었다. 따뜻하고 부드럽기까지 했다. 돌 위에 누워 노을을 보자 또 한 번 아바나를 사랑하게 됐다. 1달러, 1쿡을 외치며 혈안이 된 자본주의 총아들의 거친 눈빛이 씁쓸하나, 아바나는 낭만이다. / 247p

 

 

 

 

 

 

   책을 읽다보면 여행지의 인상을 보다 많이 좌우하는 것들이란 뜻밖에도 그녀가 머무른 게스트하우스에 속해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이란 건 해당지에서 먹고, 보고, 자는 것들까지 포함한 모든 것들일 테니 특이할 만한 점은 아니겠으나, 흥미롭게도 책을 다 읽고 난 후 기억에 남는 것들이 대부분 그녀가 머문 게스트하우스에서 겪은 일들이란 점은 좀 남다르게 다가온다. 배낭 여행자이다 보니 아무래도 호텔과 같이 정밀한 체계를 갖춘 숙박업소에서 지낼 수가 없는 까닭에 그녀가 머무르는 곳은 대부분 에어비앤비 혹은 즉석에서 흥정으로 구한 숙소들이 대부분이었고, 운영자와 가족들의 생이 머물고 있는 곳이기에 좀 더 그들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같은 배낭 여행자들만이 주고받을 수 있을 법한 여행자의 감성과 때로는 얼굴을 붉혀가면서까지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는 무수한 감정들 또한 여행지에 대한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다.

 

 

 

하루는 조식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남미 청년이 기타를 쳤다. 치다가 노트에 필기를 하고 다시 치기를 반복했다. 작곡을 하는 듯했다. 가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같은 익숙한 곡을 연주했다. 아름다웠다. 아침의 남는 시간에 '할 일'이 있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 타인의 인정과 상관없이 온전한 자신이 존재하는 것. 나도 몰두할 예술이 있길 바랐다. / 62p

 

 

남자가 리드하는 탱고에서 프로페셔널한 그의 스텝은 나를 빠져들게 했다.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탱고에선 남자가 잘 춰야 해. 넌 따라오면 돼." 그러면서 몇 가지 스텝을 알려 주었다. 신기하게 난 탱고 동작을 자연스레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싸움을 말리던 흑인 친구, 콜롬비아에서 온 환전상, 게스트하우스에서 청소하는 여성까지. 우린 동그랗게 모여 음악에 몸을 푸는 연습부터 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음악에 몸을 맡겨 봐." 흑인 친구는 꽤 췄는데, 동굴에서 울리는 듯한 저음으로 스텝을 외웠다. "우노(하나), 도스(둘), 뜨레스(셋)…" 이 매력적인 목소리로 싸우는 친구들에게는 뭐라고 했을까. / 191p

 

 

 

   유독 마지막 에필로그의 한 문장이 마음에 남는다. "한낱 여행객인 제게 베풀어 준 친절, 미소, 그 땅이 가진 아름다움으로 저는 전보다 조금 나아졌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생은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것들의 연속이며, 그것을 잊고자 떠난 여행조차 그러한 것들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을 내딛는 것, 그 용기와 도전이 우리를 성장하게 하고 보다 완전함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가만히 있는 것보단 100배 나은 것 같다는 그녀의 이 경험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의지가 될지 자연스레 드러나게 마련일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그것이 모든 여행자가 원하는 진짜 여행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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