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의 마음공부 : 부모 편 - 부모에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 생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오소희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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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자엄마이자여성인 나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사랑과 더 나은 세상을 주고자 하는 여성들의 진솔한 이야기!

 

 

 

 

  그 날은 내가 난생 처음으로 학교에 가지 않은 날이었다아무리 떠올리고 떠올려 봐도 그 날 내가 왜 학교에 가지 않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다만엄마에게 학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고평소 떼 한 번 쓰지 않던 아이가 안쓰러웠는지 엄마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어서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그날 저녁나는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학교에 가지 않은 것을 밥상머리 앞에서 꺼내놓았나 보다당시가 초등 1학년이었으니 아마도 큰 사달이 날 것이란 예상 따윈 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아빠는 대노하셨고 나는 처음으로 엄마와 아빠가 다투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나 때문에엄마가 아빠에게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들어야 했다그것은 곧 내 안에 일종의 부채감으로 자리잡았다그렇게 학교를 결석한다는 건 우리 집이 반으로 쪼개지는 위험천만하고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이후 중학교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단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고 착실히 등교했다학교에서만이 아니었다내 안의 어떤 목소리가아니 그 날 아빠의 얼굴에서 보았던 냉정한 시선과 으르렁댔던 목소리가 내내 나를 따라다니면서 엄격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이 날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어린이집을 등원하다 또 하지 않기를 반복하던 아이가 어느 날등원복을 보더니 까무러치기 시작했다나는 애원과 윽박을 번갈아가며 아이의 옷을 입혔고겨우 옷을 입혔을 즈음 아이는 신고 있던 양말을 거의 잡아 뜯다시피 벗어던졌다이미 나의 온몸은 땀으로 흥건해졌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지만 나는 이를 꽉 깨문 채 기어코 어린이집 버스에 아이를 실어 보냈다그렇게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니 발목이 잔뜩 늘어난 아이의 양말이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양말을 주섬주섬 챙기다보니 눈물이 치솟았다너덜너덜한 양말이 꼭 내 마음 같아서였다가만 생각해보면 아이를 그렇게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아도 되었는데… 무조건 보내야할 의무도 없었는데 왜 나는 아이를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단념하지 못했을까어쩌면 그건 지난 날그 사달이 있어났던 그 날의 트라우마 때문은 아니었을까엄마인 내가 과거와 화해하지 못한 이유로 오늘의 내 아이가 상처를 입었으니 참 미안한 일이었다.

 

 

 

내 세계의 통행증은 내가 관리한다

 

 

  그러고 보니 몇 해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두 아이를 키우는 데 전념하느라 정작 나 자신은 돌볼 줄 몰라 깊은 우울감에 빠졌을 때였다그때 읽게 된 책 하나가 나를 건져 올려주었는데 그게 오소희 작가의 엄마는 20이었다오소희 작가는 세상의 엄마들에게 당신을 든든히 지켜줄 당신의 세계를 가꾸기를 독려하며 엄마라는 자리는 끝이 아닌시작임을 일깨워주었다덕분에 이 책은 줄곧 내가 손에 꼽는 에세이 중에 하나가 되었으며 주변의 많은 엄마들에게 자녀교육서보다 더 많이 권하는 책이 되었다그로부터 몇 해가 흘러 최근오소희 작가의 신작 언니들의 마음공부(부모 편)이 출간되었다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다음 세대에게 더 나은 사랑과 더 나은 세상을 주고자 하는 여성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그들의 진정한 자아찾기의 여정을 담은 책이다어릴 적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기꺼이 대면하고함께 치유하고용감하게 나아간 이들의 이야기는 비슷한 상처를 지니고 있는 여성들의 아픔까지 함께 보듬으며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모든 글에는 치유의 힘이 담겨 있습니다.

신뢰하는 사람들과

특별한 방식으로 나누기만 한다면. / 16p

 

 

 

  2019여성들의 활동 플랫폼 언니공동체를 개설한 오소희 작가는 <‘를 찾는 글쓰기 모임>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당신이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참가자들은 저마다 다른 배경에서 성장했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약 90퍼센트가 부모라고 답했단다뜻밖이지만한 사람의 성장과 인생에 있어 부모 혹은 가족만큼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또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럴 만한 결과다.

 

 

 

부모가 아들과 딸을 차별하고 키운 경우

맏이에게 어릴 때부터 어른 역할을 지운 경우

부모의 꿈을 아이가 대리 성취해주길 바란 경우

아이가 보는 데서 부모가 수시로 싸운 경우

아빠가 엄마와 아이를 때리고 강압한 경우

엄마가 아이에게 신세한탄을 하고 때린 경우

 

 

 

  작가는 우리의 부모님들은 밤낮으로 일해 자식들에게 밥을 먹이고 학교를 보내주셨지만정작 포옹과 응원위로와 지지의 말 같은 것들 혹은 그저 곁에 가만히 앉아 잠시 체온을 나눠주는 공감의 순간 같은 것들이 부모의 역할에 포함된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한다결국 그 자식들은 위장의’ 허기는 채웠을지 몰라도 정서적’ 허기를 지니게 되었으니이제라도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부모 자식 관계를 설정하기 위해서 치유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이에 각 사례마다 참가자가 직접 쓴 자전적 글작가와 참가자가 <치유의 3단계 매뉴얼>로 삶을 정리하고 재구성하는 과정그것이 다시 참가자의 삶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지 확인하는 마무리 글을 통해 상처에서 긍정을 발견하고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우리 부모님들은 자식과 대화를 할 줄 몰랐어대화를 하려면 상대방이 다섯 살 어린아이라 해도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 있는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해야 해등에 짊어진 의무이거나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잘 지내보고 싶고 그러기 위해 더 알고 싶고더 알아내기 위해 꾸준히 눈을 맞추며 소통의 노력을 하는 독립적인 인격체하지만 그 당시 시절의 부모에게 자식이란 의무나 소유물에 가까웠지.

지금도 어엿이 성인이 된 자식에게 내가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부모님들, ‘중요한 결정은 내가 내려줘야 한다며 개입하는 부모님들이 많은 건 여전히 자식에 대한 정의가 거기 머물러 있어서야. / 32p

 

 

정서적 소녀가장이 한 일은 아무도 눈치를 못 채그 오랜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노동을 혼자 하면서 낑낑댔어무심하고 둔감한 사람들 사이에서 민감한 주파수로 불행을 시시각각 감지한다는 것몹시 피곤한 일이야어린 깜냥으로 대책을 강구했다는 것무력한 일이야그 수고로움에 아무도 중요한 일을 한다라거나 고맙다거나 애썼다고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엄청난 좌절이지. / 190p

 

 

 



 

 

 

  <치유의 3단계 매뉴얼>은 대면과 이해의 과정인 1단계위로와 긍정의 과정인 2단계마지막 3단계인 퉁치기와 경계설정의 과정으로 나뉜다여기서 대면 단계즉 치유의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담대하게 맞서는’ 과정은 매우 중요한 듯하다작가는 이를 지구 위에서 보기라고 말하는데우주인이 지구를 내려다보듯 멀찍이서 상처를 받았던 당시를 내려다보는 방법이다새롭게 확보된 너른 시야로 자신이 상처를 받았던 시절의 사회적 특징을그것이 가족에게 준 영향을그 영향 안에서 각 개인들이 어떻게 다르게 반응했는가내게 상처를 준 사람의 능력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이러한 과정 속에서 벌어질 수 있었던’ 일이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를 위로하고 고통에도 긍정의 지점의 있었음을 알아봐줄 수 있게 된다.

 

 

 

실패한 건 실패한 거야.

부모 자식 관계라 해도,

애착관계조차 맺지 못한 관계,

혹은 엉성하게 맺다가 만 관계,

그런 관계도 있을 수 있는 거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또한

꼭 필요한 치유의 과정이야. / 61p

 

 

이 작업은,

하나엄마와 너에게 벌어졌던 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당시에 살아남기 위해 맺었던지금은 필요 없어진 비상시 팀워크를 해체하고,

팀워크를 유지하느라 네가 억눌렀던 맞는 감정과 감각을 뒤늦게라도 불러와 너의 내면아이를 충분히 위로하며,

감정과 감각을 억누른 대가로 얻어낸 생의 자원들로써 억울함을 퉁쳐 보내고,

다섯지금부터는 맞는 감정과 감각을 지니며 살 수 있도록 자원을 여유롭게 활용하는 동시에,

여섯엄마와 새롭게 경계설정을 하는 거야이로써 엄마와 더 바람직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부모님에 대해서 좋은 말만 해야 한다는 조선시대 억압은 변기에 쏟고 물 내려.

부모와의 관계에서 뒤죽박죽된 부분을 정리하지 않고 대충 뭉개서 사랑으로 미화하고 살면 그 잘못된 방식이 다른 소중한 관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돼연인에게배우자에게특히 자식에게 되물림되지. / 114p

 

 

 

  오소희 작가는 말한다어릴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한 감정과 감각의 이름들을 익히고 시시각각 그것을 알아봐주는 연습이 필요하다고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문제없는 척그런 척들로 나의 존재가 자신을 드러내려할 때 파묻어버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나의 감정을 바라봐주라고어린 시절 적정한 말과 스킨십으로 마음 챙김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면 지금이라도 특정한 상황에 맞는 감정과 감각은 무엇인지그에 알맞은 대처(표현)법은 무엇인지 학습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내가 당황한 거구나.’ ‘지금 난 혼란스러운 거야.’ ‘이 감정은 우울이야.’ 2외국어를 익히듯 적절한 감정과 감각의 이름들을 익히다보면비록 더듬거릴지라도 매일 꾸준히 사용하다보면 내 아이에게는 그것이 모국어가 된다고.

 

 

 

  “엄마는 사랑스러워사랑해.” 감정 표현에 서투른 엄마인지라 사랑한다는 말에 여전히 낯설어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서슴없이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온다덕분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줄 수 있게 된다. “엄마속상해미안해.” 아이가 뭔가를 엎지르거나 실수를 했을 때 나도 모르게 입술을 꾹 깨물고 있으면 아이들은 나보다 먼저 나의 감정을 읽어준다덕분에 나는 속상해하지만 괜찮아먼저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 하고 내 감정을 말할 수 있게 된다비록 나는 아이들을 통해 상황에 맞는 감정과 감각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지만오소희 작가의 말처럼 더듬거릴지라도 매일 사용하다보면 나의 언어가 되고 가족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어린 시절 부모가 준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각각의 사연들은 조금은 사정이 다를지라도 결국 우리 모두가 겪었던 상처들 중에 하나였다읽는 내내 몇 번이나 마음이 뭉클했고나의 기억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해서 울컥했다이 책으로 하여금 많은 여성들이엄마들이딸들이 를 제대로 바라봐주는 법을 배우고 보다 더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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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2 - 전2권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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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 작가의 탁월성은 이제껏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 하나하나에 고유의 서사를 불어넣으려는 시도들 속에서 빛난다!

 

 

 

내 어린 시절은 이민과 계급인종젠더 문제에 끊임없는 영향을 받았다.

이 책에는 이민 1세대와 2세대 인물들을 등장하는데,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이 미국의 이야기라는 정의에 부합한다고 믿는다.

세상 그 어떤 나라와도 다르게 미국은 이민정책과 초기 식민지 역사라는

태생적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 원주민과 노예의 후손들을 제외하면

미국에 사는 모든 사람의 생애는

궁극적으로 이민자의 여행기와 연결된다. / 작가의 말 중에서 469p

 

 

 

  17년 전미국이 건국 200주년을 맞던 해에 케이시네 식구들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유능한 젊은 여성으로서 케이시 한은 번듯한 삶과 성공을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하지만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뉴욕 퀸스의 허름한 동네에서 자라난 한국인 이민자로서학과에서 1등을 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의 로스쿨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하더라도맨해튼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부모님의 근면하지만 힘겨운 삶과 소수민족을 향한 혐오를 동시에 뛰어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케이시의 분투는 집안에서도 예외는 없었다이곳은 뉴욕 퀸스때는 1993년이지만 케이시의 가족은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1953년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다. ‘전쟁은 잔혹한 것빈곤은 잔인한 것.’ 케이시는 아버지가 겪은 고난을 결코 무심히 여기지 않았지만이제는 정말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특히 내가 이렇게 죽을힘을 다해 너를 키우고 좋은 학교까지 다 보내줬는데 넌 왜 이것밖에 못해?’ 라고 말할 것 같은 아버지의 저 냉담한 시선 속에선자식은 부모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데서 오는 죄책감으로 늘 죄인이 되었다반드시 한국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엄격한 결혼관과 법률-경영-의대라는 안정된 선택지 외에는 다른 선택지란 없는 미래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요원해보였다자식의 기를 꺾기 위해 의식처럼 폭력을 휘둘렀던 아버지의 입장을 이제 더는 헤아릴 수 없다고그저 멍하니 서서 얻어맞지 않겠다고 집을 뛰쳐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가진 것 없는 이민자의 딸이 부모와 다른 인생을 꿈꾸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인 걸까이렇듯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한국계 미국인 여성인 케이시의 삶을 통해 미국인도한국인도 될 수 없는 이민자 2세대의 고뇌와 아픔을 생생하게 그려나간다.

 

 

 

자신만의 서사를 써나가고 싶었던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 그리고 애환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파친코로 주목받은 이민진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두 번째 장편소설인 파친코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삶을 다뤘다면 이 소설은 199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국계 이민자들의 고단한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여기에는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으로 귀결되는 미국식 낙관주의나 역경을 이겨낸 극복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이상적인 인간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아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얼마나 복잡다단한 인물인지 너무나 보여주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처럼 주인공 케이시를 비롯해 소설 속의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불완전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으며 인종과 계급이민젠더의 정치학’ 속에서 마모되는 현실을 재현한다.

 

 

 

돈을 벌고 싶으면 경영대생명을 구하고 싶다면 의대.” 법률경영의대라는 세속적인 삼위일체가 이 도시의 유일신인 것 같았다뉴욕 출신 이민자 여학생이 감히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려 하다니 오만한어쩌면 경솔한 짓이었을 것이다하지만 케이시는 설령 모호한 꿈이라도 단지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 17p

 

 

엑서터나 하치키스 같은 명문 고등학교를 나온 아이들부모님이 컨트리클럽 회원이고 아버지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뭐든지 해결되는 그런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게 어떤 건지 아세요학과에서 일등을 해도 저 애는 집안이 보잘것없으니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아이들과 친구로 지내는 것이 어떤 건지 아세요아버지가 세탁소를 한다고 했더니 제가 무슨 더러운 빨랫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물러서는 아이들도 있었어요말로는 동등하다는 사람들이 저를 마치 속에 지저분한 것을 가득 채운 유리 인형처럼 바라보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아시겠어요?” / 27p

 

 

케이시가 볼 때는 소수민족을 인종주의자라고 부르거나여자에게 성차별한다고 하거나가난한 사람에게 물질만능주의라고 한다거나성소수자에게 동성애 혐오 딱지를 붙이거나노인에게 노인을 차별한다고 비난하거나유대인에게 반유대주의자라고 하는 것은 뭔가 거꾸로 된 것 같았다학교에서는 이런 온갖 딱지들이 아무에게나 함부로 붙었다하지만 케이시는 혐오의 대상이 된 사람이 자신을 혐오하는 것도 가능하며 다른 사람을 더욱 쉽게 혐오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혐오는 자체적인 공생의 논리를 지닌다. / 61p

 

 

 




 

 

 

 

  이를 테면 케이시는 주머니 사정은 늘 빈곤하면서도 내가 아닌 다른 인생의 아름다움과 이미지에 대한 갈망을 버리지 못하고친구인 엘라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는 나머지 자신의 결혼 문제조차 케이시로부터 확신을 얻으려 한다텍사스 출신 한국계 미국인 은우는 출중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지노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대박과 쪽박이라는 확률게임에 번번이 무릎을 꿇는다계급과 인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의 엘리트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던 테드 김은 부유한 집안의 아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여성에게 시선을 돌린다케이시의 어머니 리아는 가부장적인 사고관을 지닌 남편 조셉 한이 자신의 딸을 때려도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고 도리어 남자는 화를 내도 괜찮지만여자는 곤란하다고 생각하며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긴다이렇듯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편견과 배제인종의 장벽이라는 녹록치 않은 현실과 외롭게 싸우느라 어디에도 쉽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지만서로를 보듬고 아픔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결핍을 발견하고 살아갈 동력을 얻는다.

 

 

 

난 우리 모두가 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상상했단다알고 있니난 널 정말 많이 사랑해케이시.”

케이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침만 삼켰다그녀의 부모님은 평생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어머니와 아버지 같은 한국인들은 사랑에 대해감정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케이시와 티나는 자기들이 듣고 싶은 말들을 듣지 못하는 것이 그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136p

 

 

이런 피부색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백인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었지만굳건한 미국식 낙관주의로 무장한 제이는 케이시가 좋은 의도와 분명한 대화로 모든 상처를 덮을 수 없는 문화권에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어쨌든 그녀의 부모님에게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그들은 한(많은 한국인이었다제이의 잘못은 아니지만그가 어떻게 그들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까케이시에게 부모님의 슬픔은 너무나 오래된 것이었다. / 264p

 

 

“1분 1초가 소중해텔레비전을 켜고극장에 가고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살 때마다한국 여자 머리는 예쁘다는 둥 헛소리를 주절거리는 남자와 같인 술집에 앉아 있을 때마다잘못된 남자와 자고 그의 전화를 기다릴 때마다넌 그 모든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네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네 인생은 소중해케이시. 1분 1초가내 나이쯤 되면매일매 순간나는 선택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돼내가 갖고 있었던 시간내게 주어졌던 시간을 낭비했다는 걸 깨닫게 되지그 순간은 사라졌어단 한순간도 다시 돌아오지 않아.” / 288p

 

 

 




 

 

 

 

  성공과 기회자유가 보장된 듯한 이 땅에도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더 고군분투해야 했던 이민자들의 냉혹한 삶이 존재했다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한국계 이민자들의 삶 하나하나에 고유의 서사를 불어넣으려는 이민진 작가의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실제 이민 2세대로서 누구보다도 가깝게 느꼈던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이를 긴 호흡으로 끌고나가는 힘에서만큼은 탁월하다는 느낌이다다만불륜이나 외도를 통해 타인에게서 끊임없이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캐릭터가 상당히 일관되게 나타나는 점남성과 여성의 관계 설정이 대부분 육체적인 관계로 귀결된다는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그것이 아무리 미국적인 정서를 반영한 것이라 하더라도 진짜 사랑과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에 늘 육체적인 관계가 끼어든다는 설정 자체가 불편함을 준다물론 이런 흠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민진 작가가 지닌 코리안 디아스포라라는 정체성은 계속해서 차기작을 기대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상징성이 있다현재 마지막 3부작을 집필하고 있는 중이라 하니 이 또한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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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는 CEO - 일상에 행복을 입히는 브랜드 리슬의 성장 철학
황이슬 지음 / 가디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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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가 없다는 말은 결국 실천하는 자의 몫이다!

도전과 좌절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내실을 다져가는 젊은 창작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는 책!

 

 

 

  365일 한복 입는 CEO, 방탄소년단 한복을 만든 사람전 세계 모던한복 판매 1모던한복으로 밀라노 패션쇼에 오른 브랜드이 모두가 모던한복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선두 브랜드 리슬과 디자이너 황이슬 대표를 가리키는 수식어다무엇보다 전통한복을 재해석하여 21세기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일상에서 패션처럼’ 입는 옷으로 재탄생시킨 리슬의 슬로건이야말로 단연 인상적이다. ‘한복한 인생.’ 어쩐지 엉뚱해 보이지만 유쾌하고소박한 듯하지만 한복을 대중화하는 데 앞장서고 싶은 황이슬 대표와 리슬의 포부가 느껴지는 슬로건이다.

 

 

 

  실제 그녀가 쓴 한복 입는 CEO와 SNS, 리슬의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유머러스함과 남다른 호기심거침없는 실행력 그리고 자신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발견할 줄 아는 황이슬 대표만의 번뜩이는 창의력이 눈에 띤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해 전통을 파괴시킨다는 각종 오해를 돌파해가며 한복을 향한 자신의 애정과 소신을 잃지 않은 그녀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물이다덕분에 나는 그녀와 브랜드의 발전을 응원하는 팬이 되었다.

 

 

 

상상하는 크기가 내 실현의 크기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만화 동아리에 가입한 황이슬 대표는 좋아하는 만화책 을 보고 한복을 코스튬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복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비전공자에 옷감 구매처도 제대로 모르는 한복 무경험자였지만어깨너머로 미싱을 보고 배운 19년 경력의 이불집 딸내미답게 첫 작품에서 친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그 일을 계기로 한복을 또 입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아예 한복을 만들어 팔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 그녀는 도서관을 찾아 창업서를 몇 권 읽고는 그 길로 구청에 방문해 덜컥 손짱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판매 사업자 등록을 했다첫 한복을 만든 지 3개월 만의 일이었다산림자원학과에 입학한 대학생이 뜻밖에도 한복 디자이너의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책 속에는 6개월간의 사투 끝에 더듬더듬 첫 브랜드 손짱의 영문 홈페이지가 탄생하고비전공자에 독학으로 내놓은 근본 없는 한복이란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전주와 서울을 오가며 의류학과 대학원 과정을 밟는 등 순탄치 않았던 리슬의 탄생 과정이 쓰여 있다. ‘작업지시서’ 작성 시 거듭되었던 착오와 수정 작업으로 작업 자체가 공중분해 되기도 하고코로나19가 터지면서 여행 앤 리슬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마련한 한복과 여행이라는 콘셉트까지 모두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등 위기 속에서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왔는지도 생생하게 담겨 있다그 중에서도 대량 생산 체제의 컬래버레이션플라스틱을 이용한 친환경 소재 마련한복의 유니폼화, 5m 크기의 대형 한복메타버스 등 다양한 도전 앞에서 망설이지 않는 황이슬 대표의 모습은 그 자체가 리슬의 비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계를 두지 말 것상상하는 크기가 내 실현의 크기라는 말 역시 결국은 실천하는 자의 몫임을 그녀를 통해 여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매일 조금씩 버튼을 바꾸고 디자인을 입혀가며 6개월간의 사투를 이어갔다비전문가가 더듬더듬 홈페이지를 만들다 보니 완성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고 주변에서는 우려를 표했다. “한국인도 안 입는 한복을 외국인이 사겠어?”, “한국에서 배송 보내려면 비쌀 텐데배송비가 비싸서 경쟁력이 없지 않을까?”, “한복은 너무 시장이 작아서 수요가 없을 것 같은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가장 혼란에 빠뜨린 말은 이것이었다.

시장조사 해봤어?” “구글에 쳐보니까 해외로 배송되는 한복 쇼핑몰이 하나도 없던데?” “하나도 없다고아무도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 안 해봤어?” / 24p

 

 

그것 하나가 뭐 그리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는 얇은 선 하나가 있고 없고에 따라 주름 치마가 플레어 치마가 되기도 하는 것이 생산 현장이었다.

메모 하나숫자 하나선 하나만 잘못 기록하거나 누락해서 사고가 난 옷도 부지기수다손해로 따지면 몇천만 원 이상은 까먹었을 것이다그 경험이 나에겐 수업료였다사고가 나면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한편으로 이런 손품발품이 곧 나의 실력이 된다고 생각하면 고생 역시 자처하게 된다내가 이토록 한복을 사랑하지 않았다면이런 고생 2년 하고 진즉 그만뒀을 것이다. / 37p

 

 

집에서 입기 좋은 한복실내에서 입을 수 있는 한복 상품을 늘려갔다코로나를 기회 삼아 한복 홈웨어라는 새로운 아이템이 생긴 것이다만약 기존에 준비한 여행용 한복을 고집하고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면 어땠을까아찔하다아마 고정운영비를 줄이기 위해 홍대점은 물론이고 전주 본점까지 강제로 문을 닫았을 것이다. 3년이 넘도록 코로나는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 54p

 

 

 



 

 

 

 

  “저게 한복이라고?” “한복이 한복 같지 않잖아.” 모던 한복이 세상 힙한 패션으로 성장하기 전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복의 과감한 변신에 다소 뚱한 반응을 보였다나만 하더라도 TV에서 연예인들이 한복을 개량해서 입고 나올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어딘지 한복스럽지 않다는 것왠지 전통을 훼손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전통은 전통 그대로 이어나가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황이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전통은 소중한 것이지만책과 박물관 안에서만 보이게 된다면 옷으로서의 수명은 끝나는 일이다전통한복을 만드는 장인명인분들의 역할이 따로 있고 한편에서는 창의성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시대와 소통하는 한복을 만드는 역할을 할 때 한복의 저변이 더 넓어질 것이다후자의 역할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애니메이션대중문화관광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일본의 복식을 친숙한 대상으로 만든 것처럼전통을 그대로 보존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한복도 일상 속에서 대중과 친해지는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한복을 둘러싼 중국의 동북공정작업이 심화되고 있는 요즘과연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도 입지 않으면서 그저 한복의 옛 전통방식만 고집하고 있는 것은 과연 옳은 일일까 물어볼 일이다그런 의미에서 있는 그대로를 답습하는 전통이 아닌리슬로 하여금 젊은 전통을 세워나고자 하는 그녀의 소신을 응원해주고 싶어졌다.

 

 

 

전통한복과 모던한복은 서로 상생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전통 양식 그대로는 오늘날 우리가 입을 수 없다대신 친숙하게 형태를 변화시켜 당장 입을 수 있는 패션으로 만들자는 취지다전통은 소중한 것이지만책과 박물관 안에서만 보이게 된다면 옷으로서의 수명은 끝나는 일일 테니 말이다전통한복을 만드는 장인명인분들의 역할이 따로 있고 한편에서는 창의성을 가진 디자이너들이 시대와 소통하는 한복을 만드는 역할을 할 때 한복의 저변이 더 넓어질 것이다후자의 역할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은 변화하는 것이다. ‘한복은 ○○해서는 안 된다라는 틀을 깨고 넘어설 때 비로소 우리 생활에 섞일 수 있다고 믿는다리슬은 있는 그대로를 답습하는 전통이 아닌 젊은 전통’ 만들어가는 중이다. / 65p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번져간 한복 사진 한 장이 나에게는 천군만마와 같다왜곡된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을 향해 반박하고 글로 싸우는 것보다도 어쩌면 한복을 한 번 더 입는 것이 훨씬 더 강력히 한복을 지키고 알리는 일이다. / 106p

 

 

SNS에 개인의 생각과 가치를 꾸준히 올리면 퍼스털 브랜딩이 되고브랜드가 그렇게 되면 브랜딩이 된다브랜딩을 한마디로 목표를 말하고 끊임없이 증명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리슬은 한복을 글로벌 패션 브랜드로 만들겠다라는 목표를 세웠고 이것을 증명해내는 과정을 사진으로 또는 영상으로 기록하고 남기는 중이다우리 목표가 이거야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단번에 그것을 공감하거나 믿어주지 않는다소비자는 그 말이 진심인지포장된 환심인지 그 의도를 오랜 시간 지켜본다. (한두 번 기록한 것으로 사람들이 왜 날 알아주지 않을까 초조해하지 말자묵묵히 한 길을 걷고 또 걷다 보면 무성히 잡초로 덮여 있던 숲길이 반듯하게 닦여진 길이 되어 있을 것이다. / 197p

 

 



 

 

 

  주제는 한복이지만 소규모 브랜드 창업자 혹은 1인 기업이 참고하기에 좋은 책이다자신의 성공 법칙을 나열한 여느 CEO들의 저서와 달리도전과 좌절을 거듭하며 자신만의 내실을 다져가는 젊은 창작자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 있는 책이다브랜드의 진정성은 내가 만드는 대상을 깊이 사랑하는가에서부터 출발한다는 황이슬 대표의 말처럼 나를 포함해 많은 창작자들이 나만이 가진 특별한 스토리를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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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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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야기하다보니 오히려 나의 삶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엿보다!

 

 

 

 

 

  삶의 방향은 저마다 다를지라도 우리는 죽음 앞에서만큼은 같은 꿈을 꾼다내가 평소 생활하는 침대에서사랑하는 이들이 머리맡에 앉아 손을 잡아주고고통 없이 편안하게 잠이 들 듯 세상과 작별할 수 있기를.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야 해너무 슬퍼하지는 마나는 그냥 강을 건너는 거야.” 반려견의 죽음을 담은 조원희 작가의 혼자 가야 해』 속에서 반려견이 쪽배를 타고 묵묵히 혼자서 노를 저어 강의 저편으로 떠나가는 것처럼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우리 나이가 되면 말이야사는 거랑 죽는 거랑 다 동시에 만져지는 느낌이 들어.” 언젠가 한 어르신께서 들려주신 말씀처럼 너무나 다른 두 감각이 비슷하게 매만져지는 때가 나에게도 찾아온다면나는 그때 남은 내 생에게 어떤 말을 건네줄 수 있을까석양이 아름다운 것처럼 나의 저무는 삶도 과연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삶을 더욱 또렷하게 들여다보게 하는 것그것은 바로 죽음이다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을까?” 삶에 대한 여러 질문들은 어쩌면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더욱 명확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김범석의 에세이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속에도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잘 들어보라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그조차도 종종 잊어버릴 때가 있어서 죽음이 걸어오는 말에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한다브라질의 완화의료 전문가이자 이 책 죽음이 물었다의 저자인 아나 클라우디아가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우리는 지금껏 죽음을 삶의 저 반대편에 있는혹은 알고 싶지 않은 두려운 영역처럼 의식했지만 이제는 삶의 한 부분으로써 죽음을 받아들이고 또 배워야 한다삶에 대해 이야기하듯 죽음에 대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만 삶과 죽음이 보다 명확해지며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까닭이다때문에 이 책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죽음에게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어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내가 처음부터 꼭 하고 싶은 말은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 인생의 일부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또한 누군가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지 않아도 그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우리 모두 자신의 삶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존재하며단지 육체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으로행위로도 존재한다그리고 오로지 그 존재 안에서만 죽음은 끝이 아닐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 26p

 

 

 



 

 

 

그리고 우리는

오직 죽음에 대한 인식을 통해서만

우리가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 117p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는 없는 곳죽음의 냄새가 짙게 깔린 곳굳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누자면 저쪽은 죽음의 세계일까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입원 병동과 호스피스 병동이 나뉜 병원 복도에서 숨을 죽인 채 우두커니 서있었던 적이 있다호스피스 병동은 늘 보호자들의 울음이 끊이지 않고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괴로운 음성으로 메아리치리라는 예상과 달리 그곳은 고요했다완화의료 전문의인 저자는 실제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 병동에서 진행하는 완화의료에 대해서도 많은 오해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완화의료 전문의들이 환자에게 진정제를 투여하고 죽음을 기다리거나반대로 안락사나 죽음의 촉진을 지지한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완화의료란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그리고 통증과 기타 신체적심리사회적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감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내 환자에게 신체적정서적가족적사회적영적 안락에서 오는 웰빙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건강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수단과 조치를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죽음을 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죽음이 적당한 때에 찾아올 수 있다고 믿으며 그들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돕는다고이러한 과정 속에서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도 함께 죽음의 과정을 이해하고그러다 보면 애도의 동굴에 갇히지 않고 향후 새 삶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도 얻게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죽어가는 사람의 곁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죽음의 날이 올 때까지 삶이 이어지도록

도와주는 방법을 알아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처럼 사는 삶을 택하지만

모두가 살아 있는 상태로 죽을 권리를 갖고 있다.

내 차례가 오면나는 멋지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

그날나는 살아 있고 싶다. / 152p

 

 

잃는 법을 배우려면 우선 잃었다는 사실 자체를 받아들여야 한다끝난 건 끝난 것이며영원한 연장은 없다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키워야 할 능력이다진실을 직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새로운 시작을 보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 아니라 진살을 분노하지 않고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우라는 것이다당신을 배반한 사람당신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상사삶을 더 힘들게 만드는 직업을 사랑하려면 우선 자신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그런 태도를 취하고그런 선택을 하고그런 유해한 사람과 짝을 맺기로 결심했을 때 당신은 거기까지밖에 볼 수 없는 눈을 갖고 있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 232p

 

 

 



 

 

 

 

  이 책은 끝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오히려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엿본다두려움이나 증오상처죄책감 같은 것에 얼마 남지 않은 삶을 소진하기보다는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삶과 아름답게 이별하기를 독려한다죽음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고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예외란 없다그때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나의 삶이 죽음도 만든다면지금의 나는 어떤 죽음을 만드는 삶을 살고 있는가이 책이 물어오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가 앞으로의 내 인생을 결정지으리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았으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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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5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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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사회와 그를 둘러싼 의 이중적 가치를 깊이 있게 다룬 에밀 졸라의 역작!

 

 

 

 

  프랑스 제2제정은 1848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나폴레옹 3세가 국민투표로 신임을 얻고이듬해 헌법을 제정해 황제로 즉위한 시기였다그는 크림전쟁에서 러시아를 누르고 청나라에도 출병했지만 이탈리아 통일전쟁에 관여했다가 이탈리아 용사 가리발디가 1천 명의 붉은 셔츠 부대를 이끌어 전선을 구축하자 침략을 단념했다이어 미국이 남북전쟁을 하는 동안 멕시코를 차지하려던 계획도 미국의 경고로 좌절되면서 나폴레옹 3세의 위신이 크게 실추되었다이에 떨어진 권위를 세우기 위해 1867파리에서 만국 박람회를 열면서 여러 대외 인사들이 방문하고 도시는 전에 없던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이후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면서 나폴레옹 3세는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에밀 졸라의 소설 은 바로 이 무렵인 19세기 후반프랑스 증권시장을 배경으로 탄생한 한 편의 금융?정치 드라마다프랑스 제2제정의 화려한 번영과 암울한 쇠퇴의 역사를 만국 은행의 흥망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한 역작이다. 1890년 2월 <르 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졸라는 을 쓰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돈이나 투기증권거래소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가톨릭 은행과 유대인 은행의 혈투에서 비롯된 동시대의 거대은행 위니옹 제네랄의 파산 사건이 아마도 그로 하여금 금융자본주의시장에 눈을 뜨게 한 계기가 아닐까 추측된다이는 그에게 있어 금융이라는 거대경제활동과 돈이라는 화폐가치가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음을 알려준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당대 지식인들의 대부분이 돈의 파괴성과 혐오성에 주목하는 것과 달리졸라는 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함께 돈의 이중적인 속성에 주목한다는 점이다돈이란 도처에 해독을 끼치고 파괴를 일삼으면서도 사회적 식물을 키우는 효모이자 삶에 편의를 제공하는 대역사에 필요한 부식토면서 내일의 인류가 자라나는 밑거름 역할을 해왔음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돈의 부정적인 역할에 대해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게 없어진 오늘날돈의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인간의 희로애락이 유감없이 발휘된 이 작품은 그래서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것을 다시 정복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열망그가 결코 올라보지 못한 곳까지

오르고 싶은 열망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정복한 도시에

발을 올려놓고 싶은 열망이 그를 사로잡았다. / 15p

 

 

 

  주인공인 사카르는 주머니가 텅 비고 굶주림이 극에 달한 채 파리의 길모퉁이에 도착한 날을 잊지 못했다나폴레옹 3세의 쿠테타가 터진 바로 다음날형인 루공 장관의 권력을 빌어 대성할 꿈을 안고 파리에 도착했지만 형이 그를 외면했기 때문이다아내가 죽고 재혼을 통해 그도 한때는 벼락출세를 하기도 했지만 돈과 황금은 그의 손가락 사이로 순식간에 스르르 빠져나갔다아들인 막심 역시 아버지를 자기 집에 거두기를 거절했다레스토랑 샹포에서 만난 증권중개사투기꾼들재력가들 역시 그를 무심하게 대할 뿐이었다때문에 증권거래소 안팎으로 주문을 주고받는 소리한시부터 세시까지 마치 거대한 심장처럼 박동하는 열기의 도가니 속에서 다시 한번 황금의 왕국을 세우고자 하는 그의 열망은 나날이 커져만 갔다.

 

 

 




 

 

 

 

  바로 그 무렵그가 아믈랭과 카롤린 부인 남매를 만난 건 천의 행운이었을지도 모르겠다엔지니어인 아믈랭은 사카르를 흥분시키는 큰 사업의 열쇠를 쥐고 있었는데그것은 다름 아닌 동방 철도회사 사업이었다동방의 경이로운 역사즉 소아시아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끈처럼 펼쳐질 그 철도망이 사카르에게는 진정한 투자돈의 생명줄처럼 보였음이 분명했다이 계획은 사카르의 머릿속에서 카르멜 탄광대형 여객선 합동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지중해의 모든 운송회사를 하나의 신디케이트로 묶는 거대한 사업으로 부풀어 올랐음은 물론이요그들이 이 사업의 주인이 되는 날 로마에서 예루살렘으로 교황을 오게 해 찬란한 가톨릭의 시대를 여리라는 원대한 계획으로 나아가기까지 했다이 사업의 발판을 이룰 만국 은행의 출범은 그렇게 허황된 꿈으로 세워진 모래탑 위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일련의 도면을 보세요이건 대역사로서소아시아를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관통하는 철도 시스템을 건설하는 거죠…… 편리하고 빠른 교통의 부재바로 그것이 이토록 풍요로운 나라가 겪고 있는 침체의 근본 원인입니다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요여행과 운송이 언제나 노새나 낙타의 등에서 이루어지죠…… 만약 철도가 사막의 끝까지 침투한다면이거야말로 혁명이 아닐까요그땐 산업과 상업이 열 배로 늘어날 테니 문명의 승리가 아닐 수 없고바야흐로 유럽이 동방으로 가는 관문을 뚫는 셈입니다.” / 82p

 

 

봐요만국 은행과 함께 우리는 끝없는 대지아시아라는 낡은 세계 위에 진보의 곡괭이로연금술사의 몽상으로 돌파구를더없이 넓은 지평을 열 것이오물론 야망이 이토록 거대한 적은 없었고나도 동의하지만 성공과 실패의 조건 역시 이토록 모호한 적은 없었지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고단언컨대 우리의 존재가 알려지자마자 대중은 전례없이 열광할 것이오…….” / 158p

 

 

 

  사카르의 들뜬 예언은 과연 적중했다그의 계획이 시장에 소문나면서 정보를 찾아 헤매는 자한 탕을 노리는 자자리를 쫓는 자명예로운 자리에 이름을 대고 싶어 하는 자들이 그를 찾아왔다. 2500만 프랑의 자본금이 필요한 만국 은행을 설립하기 전에 우선 발행주식의 팔할즉 적어도 4만 주를 매수함으로써 사전에 주식 발행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는 자산가들은행가들유명 인사들이 이 새로운 금융회사를 후원하기로 약속하자 여기저기 청탁자들이 줄을 섰다.

 

 

 

  그 중에는 실크 사업에서 투기 열정으로 갈아타면서 자기 사업의 이윤을 소진하고 있던 세디유딸을 결혼시키기 위해 지참금을 벌 요량으로 전 재산을 주식에 쏟아 부은 드주아투기에 빠져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치마폭도 내어줄 산도르프 남작 부인귀족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몇 주일 동안 버터 없이 감자만 먹고 헌 신발을 신고 다니는 보빌리에 백작 부인 같은 이들도 있었다사카르는 이들의 손을 잡으며 기적의 번영과 성공을 약속했고그들의 부풀어 오르는 꿈과 함께 만국 은행은 모든 것을 뒤흔들고 모든 것을 파괴할 강력한 기계로서 무한질주의 궤도에 올라탔다과연 그 선로의 끝에는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결코 내릴 수 없었던 이 폭주기관차는 어떤 말로를 맞이할 것인가.

 

 

 

사카르는 자기 능력의 한계 외에 다른 한계를 모르는 인간구속도 장벽도 없이 고삐 풀린 본능을 자신의 욕망만을 좇아 달려가는 인간이었다그는 아내를 자기 아들과 공유했고아들도아내도자기 수중에 ㄸ?ㄹ어진 모든 것을 팔아치웠다심지어 그는 자기 자신마저 팔았고그녀 또한 팔고 있었으며그녀의 오빠를 팔 것이었다그는 오누이의 가슴과 머리로 돈을 만들 것이었다그는 이제 사물과 사람을 녹여 돈을 주조하는 화폐 제작자일 뿐이었다정신이 번쩍 든 그녀의 눈에 만국 은행이 도처에서 돈을 발산하며 돈의 호수돈의 바다를 이루고그 돈의 바다 한가운데서 별안간 은행이 가공할 굉음과 함께 수직으로 침몰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돈이여세상을 더럽히고 아귀아귀 삼키는 끔찍한 돈이여! / 310p

 

 

사카르가 새로운 증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가볍고 어렴풋한 소문이 돌았다그는 자본을 1억 프랑에서 1억 5천 프랑으로 증식하고자 했다지금은 특별한 열광의 시간이를테면 제국의 모든 번영도시를 변형시킨 거대 공사광기 어린 돈의 유통사치를 위한 맹목적 소비가 투기의 뜨거운 열기로 수렴되는 운명적 시간이었다각자가 자기 몫을 원했고하룻밤 만에 벼락부자가 된 다른 사람들처럼 재산을 불리고 향락을 즐기기 위해 자기 돈을 투기판에 얹었다태양빛을 받으며 펄럭이는 만국박람회의 깃발샹드마르스 광장의 조명과 음악거리에 넘쳐흐르는 세계의 군중이 파리를 도취시켜 고갈되지 않는 부와 지고한 권력의 꿈속으로 몰아넣었다. / 323p

 

 

 



 

 

 

 

  소설은 투자의 열풍이 부르주아에서 노동자와 농민들한 자리 숫자의 주식을 가진 소액주주들은퇴를 앞둔 문지기들고양이와 함께 사는 노처녀들생활비가 하루에 10수에 불과한 퇴직자들적선으로 빈털터리가 된 사골 사제들증권거래소의 재앙으로 이미 파산한 최하층 금리생활자들을 휩쓸고 지나가는 광경과 그들의 일확천금을 향한 광기 어린 질주를 다양한 캐릭터를 동원해(이국 이름을 외우는 것이 곤혹스러울 정도로생생하게 보여준다이들의 욕망은 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무엇이 그들의 현실감각을 상실케 하는 것인지 매우 구체적이다 못해 치밀하게 보여준다그러는 사이 이 과열된 숫자 놀음 뒤에 은밀하게 벌어지는 불법적인 일들이를 테면 기존 주주들이 매수를 거부한 주식을 명의 대여인을 통해 사카르가 떠안음으로써 시세상승을 이어가는 장면이나 신문사를 선점해 유리한 기사를 싣는 등 여러 부도덕한 일들의 면면까지 낱낱이 까발림으로써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에 날카로운 매스를 가한다.

 

 

 

이는 너무나 빈약한 지참금그녀가 감히 말조차 꺼낼 수 없는 신혼살림 밑천기다리는 구혼자가 나타난다면 금세 바닥날 자산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절망하지 않으며 운명과 싸웠고태생의 특권을 전혀 포기하지 않았으며언제나 고고하게 합당한 재산이 있는 척했다두 발로 걸어서 외출할 수도 사교 모임 만찬에 앙트르메를 생략할 수도 없었기에그리고 딸의 영원히 불충분한 지참금에 50프랑을 더해야 했기에 그녀는 생활 경비를 삭감하고 몇 주일 동안 버터 없이 감자만을 먹지 않으면 안 되었다그것을 괴롭고 미숙한 일상의 영웅적 행동이었다그렇지만 이런 영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집은 매일 조금씩 그들의 머리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 92p

 

 

 

끝으로카롤린 부인의 가슴을 무한한 연민으로 채운 것은 미지의 사망자들이름도 사연도 알려지지 않은 희생자들이었다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런 사람들이 외딴 숲과 수풀 도랑을 가득 채웠으며나무둥치 뒤에는 어김없이 이름 모를 시체고통으로 헐떡거리는 부상자가 널브러져 있었다이 얼마나 가공할 무언극인가평생 애써 모은 돈을 오직 하나의 주식에 투자한 가난한 군소 금리 생활자와 개미 주주들의 무리은퇴한 문지기들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창백한 노처녀들편집증적인 지방 퇴직연금 수령자들적선으로 빈곤해진 시골 사제들그들은 모두 너무나 가난해서 하루하루 빵과 우유를 마련하기도 힘들었고소득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재앙을 맞이하곤 했던 최하층민들이었다. / 501p

 

 

 

  이 외에도 사카르와 군데르만의 끝 모를 적의를 통해 들여다 본 19세기 후반 프랑스 사회 속 카톨릭교와 유대교의 대립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주요 포인트다또한 자본주의자로 대표되는 사카르와 사회주의자로 대표되는 시지스몽을 통해 의 사회적 가치와 그것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대립되는지를 뚜렷이 보여주는 일련의 장면들도 이 책을 다채롭게 사유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다만많은 등장인물과 비슷한 흐름이 중첩되는 문장들로 다소 느슨한 감을 주는 면면들은 아쉬움을 남긴다작가의 목소리가 많이 개입되는 작품들이 주는 피로감 같은 것도 지울 수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사회와 그를 둘러싼 의 이중적 가치를 깊이 있게 다룬 이 작품은 역시 에밀 졸라다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그의 작품은 늘 나를 번뜩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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