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초조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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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답답한 삶을 긍정으로 바꿀 둔감력의 비밀!

더 이상 무례하고 사소한 것들에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힘!

 

 

 

   ‘둔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깨침이 늦고 재주가 무디다, 동작이 느리고 굼뜨다 혹은 감각이나 느낌이 예리하지 못하다’다. 대체로 부정적인 어감이 강해서 미련하거나 아둔한 사람을 가리켜 둔하다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가까운 지인의 외모에 변화가 왔을 때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행동이 재바른 편이 아니어서 꽤 둔감한 쪽에 속한다. 둔하다기보다 크게 마음을 기울이지 않거나 무신경한 쪽에 좀 더 가깝다고나 할까. 때문에 섬세한 표현에 능한 사람들이나 사소한 부분까지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민감한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최근에 커피 만드는 일을 배우고 있는데 디테일한 표현과 맛의 차이를 잘 이끌어내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왜 저들처럼 섬세하게 반응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인지 속상해지기도 한다.

 

 

 

둔감한 마음은 신이 주신 최고의 재능이다

 

 

 

   그러던 와중에 나는 꽤 독특한 제목의 책을 마주하게 되었다.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라는 책이다. 나의 둔감함이 최고의 장점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이 책에서는 이를 ‘둔감력’이라 표현하는데, 저자는 자기 분야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사람은 그 바탕에 재능은 물론이거니와 반드시 좋은 의미의 둔감력을 지녔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둔감력은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재능을 한껏 키우고 활짝 꽃피우게 하는 가장 큰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둔감한 성향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니,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했던가. 그간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갑자기 긍정적인 장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나아가는 강인한 힘, 둔감력

 

 

   저자는 둔감력을 가리켜 긴긴 인생을 살면서 괴롭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일이나 관계에 실패해서 상심했을 때,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나아가는 그런 강한 힘이라 설명한다. 오늘날처럼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방대하고 중심을 잡기가 힘든 때일 수록 긍정적인 마음과 강력한 둔감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필요한 것만 받고 나머지는 내칠 수 있는 적당한 둔감력으로 정신을 건강하게 함으로써 이때 한쪽에 비축해놓은 에너지를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시점에 잘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둔감력이 정신 건강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건강에도 기여한다는 점이다. 정형외과 의사 출신인 저자가 설명하는 건강의 첫 번째 조건은 바로 원활한 혈액 순환을 손꼽는다. 피가 막힘없이 잘 흘러서 맑은 상태를 유지해야 다른 장기들도 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인체의 혈관은 대부분 교감 신경계와 부교감 신경계로 이루어진 자율 신경이 조절하는데, 교감 신경은 긴장, 흥분, 불안 상태에 빠지면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압을 높인다. 반면 부교감 신경은 혈관을 확장하고 이완시켜 혈압이 낮아지도록 작용한다. 결국 부교감 신경이 지배하는 상태, 즉 교감 신경이 작용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에 좋은 것이다. 이때 둔감력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좋은 의미의 둔감력은 자율 신경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지 않도록 도와주는, 그야말로 건강 유지의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남에게 안 좋은 소리를 들어도 깊이 고민하지 않고 뒤돌아서자마자 잊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모두 말입니다. 좋은 의미의 둔감함이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아가 혈액 순환도 원활하게 유지시켜주기 때문입니다. / 42p

 

 

푹 자고 상쾌하게 일어나는 수면력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능력 그 자체입니다. 제대로 자지 않으면 건강하게 생활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며, 열심히 일할 수 없죠. 잘 자는 것 역시 뛰어난 재능입니다. / 76p

 

 

 

   그렇다면 둔감력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의외로 저자는 ‘우쭐거리는 재능’의 필요성을 손꼽는다. 달리 말하면 ‘잘난 체하며 뽐내는 능력’이다. 자신감이 없어 어떤 선택 앞에서 망설이기만 하고 생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 오히려 누군가가 해주는 가장 듣기 좋은 말, 가장 즐겁고 의욕이 샘솟게 하는 말을 믿고 한 걸음 나아가보기를 권한다. 근거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그보다는 상대방이 해주는 듣기 좋은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우쭐해 하는 단순함이 때로는 중요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재능 있는 사람은 주변에 반드시 그를 칭찬해주는 사람이 있고, 본인도 그 칭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우쭐해 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고 우쭐해 하며 자신감을 갖는 것은 경박하고 꼴사나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미래를 향해 더 크게 날갯짓할 수 있는 멋진 둔감력을 가진 것이죠. / 103p

 

 

결혼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너무 예민하게 굴면 안 된다.”, “좀 더 마음을 너그럽게 가져야 한다.”라고 조언합니다. 그들 역시 울컥하는 마음에 다투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크게 싸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둔감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둔감력이 있으면 사소한 말다툼이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막을 수 있습니다. 결정적 순간에 서로 양보하고 물러서는 것, 바로 그게 결혼 생활의 지혜입니다. / 145p

 

 

 

 

 

 

   안타깝게도 책에는 둔감력의 다양한 장점들을 열거하고 있지만 둔감력을 기르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 구체적인 실천 의지들을 다루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모든 일은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어떤 일이든 유연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고, 둔감하고 아량 있는 마음가짐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될지를 염두에 두는 유연한 사고의 필요성은 꼭 마음에 새겨볼 일이다.

 

 

 

   오늘날 만병의 근원이 스트레스라고 하지 않던가. 예민한 감정으로 나의 에너지를 쓸모없는 일에까지 소모하기보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둔감하게 살기를 자처해볼 것, 그것이 스트레스도 줄이고 결국 내 삶을 건강하게 하는 지름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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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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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이 길이 내 의지대로 가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 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살아보기!

 

 

  유년 시절, 평생토록 나를 괴롭힌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있었다. 학교란 곳을 왜 다녀야 하는 것인지, 하루 정도는 안 갈 수는 없는 것인지, 제 몸보다 더 큰 가방을 짊어지고 꽤 먼 거리를 홀로 걸어 다녀야 했던 초등학생(엄밀히 말하자면 국민학교!) 1학년인 나는 어느 날 엄마에게 유독 강하게 떼를 썼다. 평소에 부모에게 떼 한 번 쓰지 않았던 내가 그날만큼은 정말 안쓰러울 지경으로 떼를 썼나보다. 결국 엄마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어서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아버지가 난생 처음으로 나에게 크게 꾸지람을 했다. 아버지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란 나는 그날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그 뒤로 절대 결석이란 것을, 사회에 나와서도 거짓 핑계 삼아 출근을 미루거나 결근을 하는 날이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엄격한 잣대에 나를 철저하게 몰아붙이곤 했고 피곤할 정도로 나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못 견디게 힘들 때가 왕왕 있었다.

 

 

  이렇듯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그런 시대 속을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그런데 뭐라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고? 열심히 살아야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을 거부하는 삶이 가능하기는 하단 말인가? 나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이 황당한 제목의 책을 붙들고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미 시중에 나온 많은 책들이 느리게 사는 법을 강조하며 더딘 걸음을 독려하고 있지만 실상 허울에 가까운 이상적인 내용들로만 가득해서 이 책도 그런 느낌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는 것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몸소 '노력하지 않는 삶'을 실천하고자 하는 이 저자의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나도 내가 걱정돼 죽겠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인생을 건 이 놀라운 실험을 행하고자 하는 마흔 살의 그, 정말 괜찮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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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열정은 누굴 위해 쓰고 있는 걸까, 한 번쯤은 내 마음대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저자 하완은 회사가 너무 싫어졌다거나 그림을 너무 그리고 싶어서 퇴사한 것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초심을 찾으려는 건 더더욱 아니라고. 그런데 왜? 그는 그냥 한 번쯤은 승패에 상관없이 살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간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좀처럼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빈곤해지는 느낌은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고, 차라리 열심히 살지 않았더라면 덜 억울했을 거라고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열심히 달리는데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경쟁에서 진 패배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는데 고작 이 정도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서다. 분명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배웠는데, 또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고 배웠는데 이상하다. 뭔가 속은 것 같다. 잘못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도 없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지금 정도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 / 2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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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심히 사니까 자꾸 승패를 따지게 되고, 나를 위해서 쏟는 열정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쓰는 열정 따위에 억지로 열정을 써버리다 정작 써야할 때가 되어서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는 것 아니냐고. 내가 욕망하며 좇은 것들은 모두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었다고 스스로 되뇌는 저자의 말들이 날카롭게 내 가슴을 쿡쿡 찌른다. 그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남들 눈에 그럴 듯하게 보이고 싶어서 내가 가진 것을 잃지 않고 하나라도 더 가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던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 39p

 

 

  방전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하는 게 아니라 '덜' 하는 것이라고, 걱정도 좀 덜하고 노력도 좀 덜 하고 후회도 좀 덜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하는 저자의 말이 유독 인상에 남는다. 어른도 놀 수 있는 거라고,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라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큰 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때로는 우연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목적 없는 헛걸음, 이런 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하는 글귀를 보며 이 '더딘 삶'이야말로 보다 더 열심히 '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삶의 가장 중요한 요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얻었을 땐 얻은 것에 집중하느라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무언가를 잃었을 땐 잃은 것에 집중하느라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무언가를 얻었다고 느낄 땐 기쁨이 크니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낄 때다. 상실의 슬픔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 슬픔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만약 상실로 괴로워할 때, 상실로 반드시 무언가를 얻게 된다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슬픔을 더 잘 이겨낼 수 있을까? / 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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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부터 남편이 다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 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아깝지 않아? 우리 아이 저렇게 커 가는데 갑자기 뻥 비어버리는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장사를 한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해마다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지만 정 힘들면 말하라는 말로 대신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사실 누구나 하는 일을 당장에라도 떼려치우고 쉬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자유를 얻는 대신 돈을 잃게 될 테고 돈을 잃으면 불안을 얻을 테니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기 위해선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내가 자유를 팔아 모아뒀던 돈을 고스란히 다시 자유를 사는 데 쓰고 있는 이 아이러니라니. 그렇다고 용기를 내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고자 해도 이래저래 마음에 걸리는 게 더 많으니 그저 하릴없이 먹은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다.

 

 

그래, 난 아직 젊고 시간이 많아. 겨우 서른두 살이잖아. 실패해도 괜찮아. 그렇게 용기를 내어 이 에세이를 시작했다. 에세이 하나 쓰는 데 무슨 용기가 필요하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내 나이가 되면 이런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해야 할 이유는 한 가지인데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렇게 머릿속을 꽉 채우니 말이다. / 13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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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이 길을 내 의지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는 있는 듯하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나의 자유와 의지를 갉아먹기보다 나의 속도와 방향에 맞출 수만 있다면 좀 더디게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며 무거웠던 고민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가벼운 마음을 얻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진지한데 이 묘하게 웃기는 그림이 조금은 힐링도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해보는 거다. 뭐야,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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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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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의 서정성과 기묘한 미스터리가 어우러진 일본 문학의 거장이 낳은 신작!

무언가를 지키고자 했던 간절함, 풀꽃들이 전하는 수수께끼 같은 진실!

 

 

 

   "토마토야, 잘 자라라." 4살 된 나의 아이가 자신이 키우고 있는 토마토 모종에 물을 주며 꼭 이렇게 말을 하곤 한다. 아이는 꼭 그렇게 말해주어야만 토마토가 잘 자랄 거라고 믿는 모양이다. 이처럼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우리에겐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끊임없이 얘기해주어야만 하는 대상이 있다. 이를 테면 씨앗을 틔우고 자라는 이 땅의 모든 생명들, 나의 아이,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세상으로부터 다정한 속삭임과 눈길, 너를 언제나 지켜주겠다는 단단한 믿음과 같은 신호를 충분히 느끼고 자라야 하는 대상들이며 그래야 비로소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일본 서정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야모토 테루의 신작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는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존재를 반드시 지켜야만 했던 한 여인의 애틋한 염원과 간절한 소망이 담긴 맹세에 관한 이야기다.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마음이 있단다. 거짓말 같으면 진심으로 말을 걸어보렴. 식물들은 칭찬받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칭찬해주는 거야. 그러면 반드시 응해올 거야. / 158p

 

 

 

풀꽃들이 들려주는 수수께끼 같은 진실

 

 

   오바타 겐야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본으로 여행을 왔다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기쿠에 고모의 시신을 인도받게 된다. 그는 곧 기쿠에 고모의 고문 변호사인 수잔 모리로부터 약 41억 8천만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유산을 조카인 겐야에게 양도하겠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접하고야 만다. 게다가 그녀가 살았던 랜초팔로스버디스의 고급저택까지 물려받게 된다. 밤에는 태평양의 파도 소리가 들리고 넓은 정원과 훌륭한 나무, 석재로 꾸민 아름다운 집이다. 이 엄청난 상속 내용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도 잠시, 수잔 모리는 유언장에서 삭제된 마지막 다섯줄의 내용을 언급하며 그를 더욱더 충격에 빠뜨린다. 죽은 줄로 알았던 고모의 딸 레일라가 여섯 살일 무렵 마트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으며 그녀를 찾게 된다면 70퍼센트를 레일라에게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인 것이다.

 

 

 

   무려 27년 째 살아 있는지조차도 행방을 알 수 없던 레일라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겐야는 그녀를 추적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살아 있다면 지금쯤 33살이 되었겠다고 생각하며 겐야는 사립탐정인 니콜라이 벨로셀스키에게 레일라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맡긴다. 그 사이 겐야는 겐야대로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는 고모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그녀의 일생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의문의 편지들, 노트북의 비밀번호, 서른 세 개의 거베라 화분 등과 같은 곳에서 미스터리 같은 단서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마치 당신의 딸 레일라는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처럼, 그것을 겐야가 알아채주었으면 하는 것처럼 묘한 것이어서 겐야를 의문에 빠뜨린다.

 

 

 

   한편 사립탐정이 레일라의 행방을 찾는 동안에 겐야는 고모의 저택에서 그녀를 사랑하던 이들과 만남을 가지고, 또 아름다운 정원의 정취와 따스한 햇볕의 온기를 느끼는 일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고모가 남긴 수프 레시피로 사업을 구상할 계획을 세우고, 고모가 생전에 만들어보고 싶어했다던 정원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풀꽃 속에 담긴 고모의 바람을, 속삭이던 맹세에 응답하기 위해서.

 

 

기쿠에 씨는 레일라가 얼마나 영리하고, 마음씨가 얼마나 고우며, 모두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아이인지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해주었대요. 어른이 되면 키도 크고 다들 돌아볼 만큼 예뻐질 거야, 그렇게 되도록 이 꽃밭에게 부탁해보자, 꽃에게도 풀에게도 나무에게도 마음이 있어.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레일라의 마음과 꽃, 풀, 나무의 마음은 말을 할 수 있어. 꽃도 풀도 나무도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말해줄 거야. / 393p 

 

 

 

 

 

 

   소설은 사립탐정 니콜라이 벨로셀스키가 행방불명이 된 레일라로 짐작 되는 아이의 모습이 찍힌 CCTV영상을 복원해오면서 커다란 전환을 맞이한다. 그럴 리 없다고 마음속으로 타이르고 되뇌었던 생각들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소설은 놀라운 반전을 드러낸다. 기쿠에 고모가 지켜내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지, 어떠한 마음으로 이 저택에서 살았을 것인지, 평생토록 가슴앓이 하며 살았을 그녀의 일생을 떠올리며 겐야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소설은 마냥 미스터리에 몰두하지도, 그녀의 기구한 사연에 침잠하지도 않고 내내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며 따스한 온기와 희망을 전하려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건 굉장해요. 오늘 이렇게 호화로운 저녁을 먹을 수 있다니…….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인생에는 살아보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행복이 무진장 흘러넘친단다, 하고 늘 말해주었어요. 주술처럼 말이에요. / 191p

 

 

어떤 인간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이지요. 그것이 불분명하면 인간은 의지해서 설 소중한 뭔가를 갖지 못한 채 생애를 마쳐야 합니다. / 385p

 

 

 

 

 

 

   평온한 일상 뒤에 우리는 저마다 기구한 사연 하나쯤은 숨긴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설명하지 못할 홀로된 고독과 외로움을 서정문학의 거장답게 매우 섬세한 필치로 우아하게 완성해낸 작품이라 유독 기억에 남을 듯하다. 알아듣지 못할 풀꽃들조차도 진심으로 말을 걸면 반드시 응해올 거라는 소설 속의 문장처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늘 진심을 다해 이야기해주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래야 후회도 미련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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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령의 명작 산책 - 내 인생을 살찌운 행복한 책읽기
이미령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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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만 하는가?

<YTN 지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의 진행자가 들려주는 명작 이야기!

 

 

 

 

   지난해에 읽은 책들을 쭉 세어 보니 무려 백 하고도 세 권을 더 읽었더라고요. 특별히 많이 읽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 숫자에 무척 놀라고 말았습니다. 아마도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던 단조로운 일상에 책이 주는 즐거움은 남달랐던 것 같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또 상상할 수 없었던 낯선 세계로 빠져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책을 통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이겠지요. 뭐,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저는 애초에 '이야기'라는 것을 좋아해서 자연스레 책에 이끌렸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이란 그런 것 같습니다. 나에게 반드시 무언가를 주지 않아도, 내가 들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은, 그 자체로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라고요.

 

 

 

   <YTN 자식카페 라디오 북클럽>의 진행자로 무려 천 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다던 이미령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책은 '무지한 내 뒤통수를 후려갈기기도 하였고, 콘크리트보다 더 딱딱하게 굳은 가슴을 말랑말랑하게 어루만져주기도 하였고, 딱 내 눈알 크기 밖에는 보지 못하는 세상을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도록 동공을 홀짝 열어주기도' 하였다고요. 쉬지 않고 '천 권에 가까운 책을 읽어대자 그제야 사색이 일렁이고 나와 다른 자에 대한 여유 있는 관조의 틈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독서의 양이 삶의 질에 비례하는 것만은 아니겠지요. 그래서 저자는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 울림이 컸던 책들, 나의 벗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들을 고민 끝에 골라 그것으로 하여금 인생의 소중한 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저마다의 생각을 이야기 나누고 싶었나봅니다. <이미령의 명작 산책>은 그런 의미에서 내 인생의 어느 지점을 함께 해준 책에 대한 진솔한 독서 일기이자, '나는 왜 책을 읽을까?'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을 담아낸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꿈이 커지고 사색을 일렁이게 하는 지성들과의 만남

 

 

   <이미령의 명작 산책>은 총 48편의 명작을 크게 다섯 장에 걸쳐 소개하고 있습니다. 찬란하지만 서글픈 인생을 관조하고, 청춘의 시간을 더듬어가기도 하며, 자연이 들려주는 생명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는 작품들뿐만 아니라 오만한 세상에 뒤통수를 날리기도 하고 인생의 마지막에 마침표를 찍는 지점에 이르러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작품들이 실려 있습니다. 찬란하게 슬픈 생명의 법칙을 다룬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미지의 존재를 쫓는 인간의 단상을 그린 <고도를 기다리며>, 자연주의자의 삶을 다룬 <월든>과 같은 명작들은 꽤나 익숙하지만 그 외에는 읽어보지 못했던 작품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살짝 망설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간 저는 독서론에 관한 책이라 하면 약간의 편견이 있던 터였습니다. 내가 읽어보지 못한 책에는 저자의 생각에 크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입니다. 저의 생각을 비교판단하기보다 그저 저자의 생각대로 작품을 판단하게 되기 때문일까요. 그런데 이러한 저의 고민은 기우에 그쳤습니다. 마치 라디오 방송에서 사연을 들려주듯 저자가 조근조근 들려주는 책의 한 단편들은 굳이 읽어보지 않았다하더라도 쉽게 공감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으니까요.

 

 

 

 

 

 

   여러 책들 중에서 외투 한 벌에 담긴 쓸쓸한 실존을 다룬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라는 작품이 퍽 인상에 남습니다. 관청의 9등 문관 아까끼 아까끼예비치는 너무나 낡아서 걸레로도 쓰지 못할 자신의 외투가 더 이상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칼날 같은 한파를 막아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솜씨 좋은 재단사는 더 이상 수선할 수 없을 정도로 낡은 그의 외투를 보며 이참에 새로운 외투 한 벌을 마련하라고 권했어요. 외투 한 벌을 마련하는 일이란 그의 봉급을 다 털어 넣어야 할 정도로 사치와 다름없었지만, 그는 돈을 아끼고 아껴서 결국 아주 멋진 외투를 마련합니다. 포근하고 따뜻하고 고급 천을 써서 맵시가 나는 이 외투를 입는 순간 그는 자신에게 새로운 날개가 달린 것처럼 황홀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한밤중에 광장에서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기고 맙니다. 그는 곧 혈안이 되어서 외투를 찾아 나서지만 상심만이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이내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하고 혀를 찰 법도 하지만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느끼게 되는 절망감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그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쓸쓸한 실존, 그 덧없으면서도 가장 버거운 삶의 무게! 우리는 저마다 그런 무게를 짊어진 채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더욱 씁쓸하게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그 쓸쓸한 실존.

아까끼가 평생에 단 한 번 장만한 고급 외투는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신분들의 눈에는 허섭스레기로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유령이 되어버린 아까끼가 자기 몸에 딱 맞는 관리의 외투를 빼앗은 뒤 사라지고 말았다는 내용은, 인간 희로애락의 무게와 부피는 누구에게나 아주 똑같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요. 더 가지려고 머리를 굴리고 뺏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두고두고 음미할 만한 작품입니다. / '외투' 중에서 29p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며 살면 명예나 체면이 상실되는 시기에 쉽게 감정이 상하여 나약해지며", 자기를 중요하게 여기기에 어쩔 수 없이 불안감을 가지고 살게 되므로 일상이 단조롭고 권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만들어낸 그의 정체성"일 수도 있으며, 이렇게 남이 만들어낸 정체성에 휘말리다 보니 "다른 사람들에게 늘 자신을 설명해주어야 하고", 이런 삶을 반복하다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 중에서 102p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역시 단연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종교개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종교개혁에 관해 배우기를, '신과의 소통이 소수 특권층에게만 허락되었다고 고집하던 세력들에게 분연히 맞서 피로써 쟁취해낸 자유의 역사'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를 주도한 칼뱅이 사실은 구교의 교황이나 황제보다 더 무시무시한 힘으로 종교의 자유를 외치던 시민들을 자신의 권력 앞에 무릎을 꿇게 하고 사상의 자유도 빼앗았으며 그야 말로 '칼뱅이 법이요, 법이 칼뱅이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신을 반대하는 자들을 철저히 배척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요.

 

 

 

   그런데 어느 무명의 신학자 한 사람이 칼뱅의 종교적 견해에 이의를 제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막 스무 살을 넘긴 미셀 세르베투스는 참으로 맹랑하고 무모할 정도로 칼뱅에게 신학적 견해를 묻는 대범함을 보였습니다. 이에 칼뱅은 하늘 아래 '자기와 다른 의견'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를 살해하였습니다. 이를 비판한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한 인간을 불태워 죽은 일은 이념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다."라고요. 오늘날이라고 이와 다를까요. 우리는 누구나 의견을 낼 권리가 있고 다양한 견해를 포용해야 한다고 배워왔지만 때때로 다른 사람이 자신과 견해가 같지 않을 때 불쾌감을 느끼거나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를 통해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승리자들의 기념비만을 바라보는 세상을 향해서, 수백만의 존재를 망가뜨리고 그 무덤 위에 자신들의 허망한 왕국을 세운 사람들이 인류의 진짜 영웅이 아니라, 폭력을 쓰지 않고 폭력을 당한 사람들이 진짜 영웅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야 한다. / 230p

 

 

 

 

 

 

   이렇듯 <이미령의 명작 산책>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우리가 꼭 읽어야 할 명작을 엄선하여 이를 통해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스스로에게 선물해볼 것을 권합니다. 그것은 결국 '책 읽기'라는 행위를 필요로 하겠지요. <천천히 읽기를 권함> 편에서 '책 한 권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 행복하고, 천천히 읽어가는 동안 행복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책을 덮으면서 행복하면 됐지 더 바랄 것이 뭐 있을까요' 라고 하였듯 그저 책을 가까이 하고 일상처럼 여기면 되는 것으로도 충분한 것 같습니다.

 

 

 

   책장을 채우고 있는 책들을 보며 힘들 때는 위안이 되고, 행복한 상상을 하게 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그저 감동을 느낍니다. <이미령의 명작 산책> 덕분에 꽤 오랜만에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누군가에게도 이 책이 그런 소중한 계기를 선물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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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디블 가족 - 2029년~2047년의 기록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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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통화 가치가 몰락과 함께 국가적 대위기가 찾아온다면!

정부와 사회, 개인의 역할에 관한 냉엄한 고찰과 소름 끼치도록 대담한 이야기에 매혹되다!

 

 

 

   <화폐전쟁>의 저자 쑹훙빙은 21세기 이후의 세계 패권을 결정짓는 것은 '핵무기'가 아닌 '화폐'가 될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랫동안 중국의 위안, 일본의 엔, 유로, 마르크 등은 달러나 파운드와 같이 기축 통화의 대열에 합류하기 위한 치열한 전쟁을 계속해왔다. 그만큼 국력은 화폐와 운명을 같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지속적인 달러의 약세, 중국이 초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머지않아 실현된다면 미국 사회는 물론 국제 사회에 어떠한 변화가 찾아올 것인가에 대해 이미 곳곳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소설 <케빈에 대하여>로 이미 국내에서도 꽤 많이 알려진 라이오넬 슈라이버는 <맨디블 가족>을 통해 이와 같은 의문이 실현되고야 만 2029년의 미래를 연출해냈다. 너무나 정교하고 사실적이어서 소름끼치는, 이 대담하고도 기묘한 이야기가 어쩐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의 착각일까.

 

 

 

"원하는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을 해야 하는 삶, 그것이 진정 빈곤한 삶이었다." / 239p

 

 

 

   <맨디블 가족>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한 금융 쿠데타로 인해 한순간에 달러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미국 사회에 몰아닥친 전쟁 같은 공포를 그려낸 소설이다. 9.11 테러를 겪고, 글로벌 금융위기에 뒤이은 세계경기 침체를 맞아야 했던 시절을 지나 2024년에는 주요 인터넷의 인프라가 마비되는 사태를 겪었던 미국인들은 이제 겨우 과거의 공포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중국발 금융 쿠데타로 인해 가지고 있던 금을 정부에 몰수당하고 가진 재산이 휴지조각이 되는 충격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다. 미국의 중산층 가족을 대표하는 맨디블 일가 역시 이 갑작스럽고 비자발적으로 붕괴된 자신들의 일상에 끔찍한 공포가 엄습해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다.

 

 

 

"지금 일어나는 이 모든 일 말입니다. 채무 포기, 주식 시장 붕괴, 금 회수, 무자비한 대기업들의 방코르 보유 금지……. 배부른 자본가들의 연금이 날아가 버리고 갑부들의 두툼한 포트폴리오가 화형당하고……. 이 모든 게 지금까지 이 나라에 일어난 일들 가운데 최고의 일이라고요. 알아들어요? 이젠 통제할 수 없어요. 알아들어요? 잔뜩 멋을 부리고 아무나 맛볼 수 없는 고급 마티니를 홀짝거리며 아직도 부족한 게 과연 남았는지 고민하고 오늘은 또 어디에 10억 달러를 쓸까 골몰하는 지대추구자들. 누구는 이 나라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고 있고 누구는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난방을 켜지 못한 채 근근이 살아가고. 미국은 그런 나라로 건립된 게 아니었잖아요. 알아들어요?" / 145p

 

 

 

 

 

 

   어쩔 수 없는 불가피한 일로 인해 파괴된 것이 아닌, 이른바 시스템의 붕괴는 자연재해보다도 치명적이고 잔혹하다. 각종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과다 통화 제작은 지독한 인플레이션을 야기시키며 대부분의 일자리를 앗아갔고, 아이들은 꿈을 잃어야했으며, 각종 약탈 및 도덕적 해이들은 세상이 눈 깜짝할 새에 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설은 97세의 나이에도 정력적으로 활동하며 부유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던 더글러스 맨디블을 통해서 재산의 대부분을 잃은 몰락한 부유층의 전형을, 시립 노숙자 보호소에서 근무하는 플로렌스를 통해서는 위기 속에서 악착같이 가족을 건사해내려는 주부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플로렌스의 제부인 로웰에게서는 현실감 없이 여전히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믿는 지식인의 허울을 그려내며 저마다 경험해서 느끼는 혼란과 공포들을 매우 입체적으로 묘사해낸다.

 

 

 

우리가 수십만 달러를 들여 그애들 머릿속에 넣어준 것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갈 거라고. 게다가 난 우리가 애들을 잘못 키우고 있는 것 같아.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방식으로 잘못 키운다는 얘기가 아니야. 그애들은 한 번도 안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하룻밤 사이에 역경과 자제와 실망을 배우라고 해야 하나." / 214p

 

 

"도덕적 해이에 대해선 아버님 말씀이 맞는 것 같다. 미국인들 가운데 가장 손해를 많이 본 사람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잖아. 미래를 위해 저축한 사람들. 미래를 믿는 사람들. 자기 자신을, 그리고 미래에 닥칠 모든 것을 책임질 생각으로 저축을 해둔 사람들이라고. 윌링, 네가 못마땅해하는 비관주의는 그런 배신감에서 나온 거야. 미래를 믿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사기당한 기분을 느끼고 있거든. 거대한 몹쓸 장난에 당한 기분이라고." / 342p

 

 

 

   소설은 국가와 정부가 자신의 기능을 잃고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세상, 즉 디스토피아를 떠도는 유목민에게 자유란 무엇인지 국가의 의미란 무엇인지를 생생하고도 철저하게 담아낸다. 이는 소설의 주축을 이루는 맨디블 가의 가장 어린 소년이었던 윌링이 자라 2047년에 이르러서도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하지만 삶은 어떤 식으로든 지속되어야 하기에 윌링은 불완전하지만 또 그대로도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가려 한다. 훗날, 윌링이 사는 세상은 또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시스템을 믿지 않고 그 시스템의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으면 해당 시스템은 영원히 파괴되어버린다. 통화정책보다 훨씬 더 인플레이션을 부추긴 요소가 무엇이었던가. 달러는 무가치하며 내일은 더 무가치해질 것이라는 사회의 자기충족적 추정이 아니었던가. 놀랍게도 세상은 우리의 상상에 따라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무법 도시에 사는 것처럼 행동하면 실제로 무법 도시가 되어버린다. / 420p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에 사는 것보다 더 지독한 상황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모두가 떠나고 싶어 하는 나라에 사는 것이었다. / 484p

 

 

 

 

 

 

   이처럼 <맨디블 가족>은 저널리스트로 활약했던 저자의 이력답게 사회 문제와 국가의 역할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토대로 완성해낸 사회소설 중 단연 역작이라고 표현할 만하다. 우리 사회에 떠도는 다양한 음모론과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이슈들을 한 데로 조직해낸 능력이 너무나 탁월해서 섬뜩할 지경에 이르니 말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공포와 비극을 일종의 블랙코미디처럼 위트 있게 표현해낸 부분들로 하여금 읽는 재미까지 선사하니, 책을 읽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문학에게 기대하는 모든 묘미를 이 책 한 권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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