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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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문장의 서정성과 기묘한 미스터리가 어우러진 일본 문학의 거장이 낳은 신작!

무언가를 지키고자 했던 간절함, 풀꽃들이 전하는 수수께끼 같은 진실!

 

 

 

   "토마토야, 잘 자라라." 4살 된 나의 아이가 자신이 키우고 있는 토마토 모종에 물을 주며 꼭 이렇게 말을 하곤 한다. 아이는 꼭 그렇게 말해주어야만 토마토가 잘 자랄 거라고 믿는 모양이다. 이처럼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우리에겐 자신의 존재가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임을 끊임없이 얘기해주어야만 하는 대상이 있다. 이를 테면 씨앗을 틔우고 자라는 이 땅의 모든 생명들, 나의 아이, 그리고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세상으로부터 다정한 속삭임과 눈길, 너를 언제나 지켜주겠다는 단단한 믿음과 같은 신호를 충분히 느끼고 자라야 하는 대상들이며 그래야 비로소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일본 서정문학의 거장이라 불리는 미야모토 테루의 신작 <풀꽃들의 조용한 맹세>는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사랑하는 존재를 반드시 지켜야만 했던 한 여인의 애틋한 염원과 간절한 소망이 담긴 맹세에 관한 이야기다.

 

 

꽃에도, 풀에도, 나무에도 마음이 있단다. 거짓말 같으면 진심으로 말을 걸어보렴. 식물들은 칭찬받고 싶어 한단다. 그러니 마음을 담아 칭찬해주는 거야. 그러면 반드시 응해올 거야. / 158p

 

 

 

풀꽃들이 들려주는 수수께끼 같은 진실

 

 

   오바타 겐야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본으로 여행을 왔다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기쿠에 고모의 시신을 인도받게 된다. 그는 곧 기쿠에 고모의 고문 변호사인 수잔 모리로부터 약 41억 8천만 엔이라는 어마어마한 유산을 조카인 겐야에게 양도하겠다는 내용의 유언장을 접하고야 만다. 게다가 그녀가 살았던 랜초팔로스버디스의 고급저택까지 물려받게 된다. 밤에는 태평양의 파도 소리가 들리고 넓은 정원과 훌륭한 나무, 석재로 꾸민 아름다운 집이다. 이 엄청난 상속 내용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도 잠시, 수잔 모리는 유언장에서 삭제된 마지막 다섯줄의 내용을 언급하며 그를 더욱더 충격에 빠뜨린다. 죽은 줄로 알았던 고모의 딸 레일라가 여섯 살일 무렵 마트에서 행방불명이 되었으며 그녀를 찾게 된다면 70퍼센트를 레일라에게 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인 것이다.

 

 

 

   무려 27년 째 살아 있는지조차도 행방을 알 수 없던 레일라의 존재를 알게 된 이상, 겐야는 그녀를 추적해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살아 있다면 지금쯤 33살이 되었겠다고 생각하며 겐야는 사립탐정인 니콜라이 벨로셀스키에게 레일라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맡긴다. 그 사이 겐야는 겐야대로 집 안 곳곳에 남아 있는 고모의 흔적들을 살펴보며 그녀의 일생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의문의 편지들, 노트북의 비밀번호, 서른 세 개의 거베라 화분 등과 같은 곳에서 미스터리 같은 단서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마치 당신의 딸 레일라는 어딘가에 살아 있다는 것처럼, 그것을 겐야가 알아채주었으면 하는 것처럼 묘한 것이어서 겐야를 의문에 빠뜨린다.

 

 

 

   한편 사립탐정이 레일라의 행방을 찾는 동안에 겐야는 고모의 저택에서 그녀를 사랑하던 이들과 만남을 가지고, 또 아름다운 정원의 정취와 따스한 햇볕의 온기를 느끼는 일이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고모가 남긴 수프 레시피로 사업을 구상할 계획을 세우고, 고모가 생전에 만들어보고 싶어했다던 정원을 만들기 위한 계획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풀꽃 속에 담긴 고모의 바람을, 속삭이던 맹세에 응답하기 위해서.

 

 

기쿠에 씨는 레일라가 얼마나 영리하고, 마음씨가 얼마나 고우며, 모두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아이인지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해주었대요. 어른이 되면 키도 크고 다들 돌아볼 만큼 예뻐질 거야, 그렇게 되도록 이 꽃밭에게 부탁해보자, 꽃에게도 풀에게도 나무에게도 마음이 있어. 그것을 잊으면 안 돼, 레일라의 마음과 꽃, 풀, 나무의 마음은 말을 할 수 있어. 꽃도 풀도 나무도 말을 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말해줄 거야. / 393p 

 

 

 

 

 

 

   소설은 사립탐정 니콜라이 벨로셀스키가 행방불명이 된 레일라로 짐작 되는 아이의 모습이 찍힌 CCTV영상을 복원해오면서 커다란 전환을 맞이한다. 그럴 리 없다고 마음속으로 타이르고 되뇌었던 생각들이 현실로 드러나면서 소설은 놀라운 반전을 드러낸다. 기쿠에 고모가 지켜내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지, 어떠한 마음으로 이 저택에서 살았을 것인지, 평생토록 가슴앓이 하며 살았을 그녀의 일생을 떠올리며 겐야는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소설은 마냥 미스터리에 몰두하지도, 그녀의 기구한 사연에 침잠하지도 않고 내내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며 따스한 온기와 희망을 전하려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건 굉장해요. 오늘 이렇게 호화로운 저녁을 먹을 수 있다니……. 할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인생에는 살아보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행복이 무진장 흘러넘친단다, 하고 늘 말해주었어요. 주술처럼 말이에요. / 191p

 

 

어떤 인간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이지요. 그것이 불분명하면 인간은 의지해서 설 소중한 뭔가를 갖지 못한 채 생애를 마쳐야 합니다. / 385p

 

 

 

 

 

 

   평온한 일상 뒤에 우리는 저마다 기구한 사연 하나쯤은 숨긴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 설명하지 못할 홀로된 고독과 외로움을 서정문학의 거장답게 매우 섬세한 필치로 우아하게 완성해낸 작품이라 유독 기억에 남을 듯하다. 알아듣지 못할 풀꽃들조차도 진심으로 말을 걸면 반드시 응해올 거라는 소설 속의 문장처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존재들에게 늘 진심을 다해 이야기해주는 삶을 살아야겠다. 그래야 후회도 미련도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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