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이 길이 내 의지대로
가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 때!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주 느린 걸음으로 살아보기!
유년 시절, 평생토록 나를 괴롭힌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있었다. 학교란 곳을 왜 다녀야 하는 것인지, 하루 정도는 안 갈 수는 없는 것인지, 제 몸보다 더 큰 가방을 짊어지고 꽤
먼 거리를 홀로 걸어 다녀야 했던 초등학생(엄밀히 말하자면 국민학교!) 1학년인 나는 어느 날 엄마에게 유독 강하게 떼를 썼다. 평소에 부모에게
떼 한 번 쓰지 않았던 내가 그날만큼은 정말 안쓰러울 지경으로 떼를 썼나보다. 결국 엄마는 아프다는 핑계를 대어서 나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셨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아버지가 난생 처음으로 나에게 크게 꾸지람을 했다. 아버지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란 나는 그날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그 뒤로 절대 결석이란 것을, 사회에 나와서도 거짓 핑계 삼아 출근을 미루거나 결근을 하는 날이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엄격한 잣대에 나를 철저하게 몰아붙이곤 했고 피곤할 정도로 나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이 못 견디게 힘들 때가 왕왕
있었다.
이렇듯 우리는 모두 열심히 살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그런 시대 속을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그런데
뭐라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고? 열심히 살아야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을 거부하는 삶이 가능하기는 하단 말인가? 나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이 황당한 제목의 책을 붙들고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미 시중에 나온 많은 책들이 느리게 사는
법을 강조하며 더딘 걸음을 독려하고 있지만 실상 허울에 가까운 이상적인 내용들로만 가득해서 이 책도 그런 느낌만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우려되는
것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몸소 '노력하지 않는 삶'을 실천하고자 하는 이 저자의 자세가 예사롭지 않다. 나도 내가 걱정돼 죽겠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인생을 건 이 놀라운 실험을 행하고자 하는 마흔 살의 그, 정말 괜찮은 걸까?
내
열정은 누굴 위해 쓰고 있는 걸까, 한 번쯤은 내 마음대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저자 하완은 회사가 너무 싫어졌다거나 그림을 너무 그리고 싶어서 퇴사한 것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초심을 찾으려는 건 더더욱
아니라고. 그런데 왜? 그는 그냥 한 번쯤은 승패에 상관없이 살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그간 열심히 살아왔고 지금도 열심히 살고 있는데, 좀처럼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빈곤해지는 느낌은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고, 차라리 열심히 살지 않았더라면 덜 억울했을 거라고 말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열심히 달리는데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경쟁에서 진 패배자가 되어버리고 마는 사회적 통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는데 고작 이 정도고, 누구는 아무런 노력을 안 하고도 많은 걸 가져서다. 분명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배웠는데, 또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다고 배웠는데 이상하다. 뭔가 속은 것 같다. 잘못 살아온 것만 같다. 그렇다고 노력을 멈출 수도 없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나마 지금 정도도 유지하지 못할 것 같다. 어떻게 사는 게 맞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롭다. / 21p
열심히 사니까 자꾸 승패를 따지게
되고, 나를 위해서 쏟는 열정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쓰는 열정 따위에 억지로 열정을 써버리다 정작 써야할 때가 되어서는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는
것 아니냐고. 내가 욕망하며 좇은 것들은 모두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이었다고 스스로 되뇌는 저자의 말들이 날카롭게 내 가슴을 쿡쿡 찌른다.
그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달려왔다고 생각했는데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남들 눈에 그럴 듯하게 보이고 싶어서 내가 가진 것을
잃지 않고 하나라도 더 가지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왔던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이 나이에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내 나이에 걸맞은 것들을 소유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나만의 가치나 방향을 가지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다. / 39p
방전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더' 하는 게 아니라 '덜' 하는 것이라고, 걱정도 좀 덜하고 노력도 좀 덜 하고 후회도 좀 덜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하는 저자의 말이 유독
인상에 남는다. 어른도 놀 수 있는 거라고, 무언가를 해야만 의미 있는 시간이 아니라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더 큰 의미가 있는
법이라고. 때로는 우연한 즐거움으로 가득한 목적 없는 헛걸음, 이런 게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재미가 아니겠는가 하는 글귀를 보며 이 '더딘
삶'이야말로 보다 더 열심히 '내'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삶의 가장 중요한 요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얻었을 땐 얻은 것에 집중하느라 잃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무언가를 잃었을 땐
잃은 것에 집중하느라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무언가를 얻었다고 느낄 땐 기쁨이 크니까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낄 때다. 상실의 슬픔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 슬픔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말이다. 만약 상실로 괴로워할 때,
상실로 반드시 무언가를 얻게 된다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슬픔을 더 잘 이겨낼 수 있을까? / 268p
얼마 전부터 남편이 다 때려치우고
장사나 할까? 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것이 아깝지 않아? 우리 아이 저렇게 커 가는데 갑자기 뻥 비어버리는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하려고? 장사를 한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해마다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데.' 라는 말이 목구멍에 걸렸지만
정 힘들면 말하라는 말로 대신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사실 누구나 하는 일을 당장에라도 떼려치우고 쉬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자유를 얻는
대신 돈을 잃게 될 테고 돈을 잃으면 불안을 얻을 테니 선뜻 나서기가 어렵다.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유로운 시간을 누리기 위해선
비용이 들기 마련인데, 내가 자유를 팔아 모아뒀던 돈을 고스란히 다시 자유를 사는 데 쓰고 있는 이 아이러니라니. 그렇다고 용기를 내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고자 해도 이래저래 마음에 걸리는 게 더 많으니 그저 하릴없이 먹은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다.
그래, 난 아직 젊고 시간이 많아. 겨우 서른두 살이잖아. 실패해도 괜찮아. 그렇게 용기를 내어
이 에세이를 시작했다. 에세이 하나 쓰는 데 무슨 용기가 필요하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내 나이가 되면 이런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해야 할
이유는 한 가지인데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렇게 머릿속을 꽉 채우니 말이다. / 136p
하지만 지금 내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이 길을 내 의지대로 가고 있는 게 맞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볼 필요는 있는 듯하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나의 자유와 의지를 갉아먹기보다 나의 속도와 방향에 맞출 수만 있다면 좀 더디게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며 무거웠던
고민을 내려놓고 잠시나마 가벼운 마음을 얻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진지한데 이 묘하게 웃기는 그림이 조금은 힐링도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해보는 거다. 뭐야,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