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 출간 30주년 기념판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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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해보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진리는 알고 보면 우리가 이미 배운 것들이다!

 

 

 

   4살이 된 아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가지고 놀 던 것 제자리에 둬야지. 친구랑 나눠 먹어야겠지? 밖에 나갔다가 와서는 손 씻고 놀아라. 밥 먹을 때는 제자리에 앉아서 먹어야 한다. 골고루 먹어야지. 항상 차 조심하고 주변을 살펴보고 횡단보도를 건너야 해. 물건을 던지거나 친구를 때려서는 안 돼!" 같은 것들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말들은 아이가 어릴 때나 하는 말인 것 같지만, "제자리에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자.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어야지. 빗길에 운전 조심해. 부당한 폭력이나 위협은 모두를 긴장하게 만들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와 같이 좀 더 세련되고 어른스러운 말로 바꿔서 사용할 뿐 성년이 되어서도 실상 어릴 때 듣던 말과 다름없는 말들을 하고, 또 듣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어떻게 살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해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나는 유치원에서 배웠다'던 로버트 풀검의 깨달음은 틀린 말이 아닌 듯하다. 의미 있는 삶을 사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은 이처럼 가장 기본적인 것들로부터 비롯되며 정작 우리가 고민해야 할 문제는 아는 것이 아니라 아는 대로 사는 것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생은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을 제대로 아는지, 실천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과정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1988년에 출간되어 무려 97주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현재까지도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는 로버트 풀검의 에세이집이다. 그의 사소한 일상, 이웃들, 낯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특유의 따뜻한 어조와 시선으로 담아낸 이 책은 아주 소소하지만 단순한 것들로부터 삶의 진리를 얻는 어느 다정한 할아버지의 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이 책은 첫 출간 이래 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번의 개정 과정을 거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사실은 우리가 어릴 때 배웠던 유치원에서의 가르침은 살아가는 내내 필요하며 그 안에 가장 중요한 삶의 지혜가 존재함을 강조한다. 강의, 백과사전, 성경, 회사규칙, 법, 설교, 참고서 등 훨씬 복잡한 모습으로 바뀌기만 할 뿐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을 계속 다시 배우는 과정을 거치며, 생은 우리가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을 제대로 아는지, 실천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는 여정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옳고 그름,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문제에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아주 어린 시절,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것을 세심하게 가르쳐주던 그 방으로 들어간다. 물론 그때 배운 것이 말 그대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때 배운 기본적인 것을 체득하지 못했다면, 개인과 사회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반대로 기본적인 것을 잘 알고 아는 대로 실천하고 있다면, 인생에서 알아야 할 나머지 것들에 튼튼한 토대가 쌓이는 셈이다. / 25p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비가 오면 부서집니다.

해님이 다시 솟아오르면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옵니다.

거미가 줄을 타고 내려옵니다.

  '거미와 인간'편에서는 이와 같은 노래가 등장한다. 4살인 나의 아들이 곧잘 부르곤 하는 동요다. 워낙 널리 알려진 탓에 이 무렵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접하게 되는 곡이기도 하다. 그나저나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왜 이 노래를 가르칠까? 이에 대해 저자는 이 노래가 삶의 모험을 분명하고 쉬운 말로 표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끊임없이 모험을 찾아다니는 이 작은 생물은 빛을 향해 가는 긴 터널, 즉 배수관을 발견하고 올라가려 하지만 그만 비가 오고 홍수가 나 재난이 닥치고 만다. 거미는 밀려 떨어져 처음에 있던 곳보다 더 먼 곳으로 쓸려 내려간다. 하지만 해가 나오고 구름이 걷히고 젖은 몸이 마르자, 다시 배수관으로 기어가서 위를 보며 저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전보다 조금 더 현명해졌기에 먼저 하늘을 살펴보고, 발을 내디딜 튼튼한 곳을 찾고, 기도를 올리고, 빛을 향해 수수께끼 같은 곳을 뚫고서 올라가려 한다.

 

 

 

   이처럼 저자는 거미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위를 통해 역경을 헤치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생명력, 고난을 이겨내는 끈기를 들여다본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단순히 거미의 습성 혹은 올라가다와 내려가다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곡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곳에서 놀라운 생명력과 희망, 인내, 끈기를 발견해내는 저자의 상상력과 애정 가득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포용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이러한 남다른 감수성은 페이지 곳곳에서 빛을 발휘한다.

 

 

 

살아 있는 것에게 소리 지르는 일은 영혼을 죽일 수 있다.

막대기와 돌은 우리의 뼈를 부러뜨리지만, 말은 우리의 마음을 부러뜨린다. / 72p

 

 

 

 

 

 

   또 하나의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다면 바로 '인어들' 편이다. 교회에서 부모들이 모임을 하는 동안, 일곱 살에서 열 살까지의 아이들 80명을 돌보는 임무를 맡았던 때를 회고하며 쓴 글이다. 그는 아이들과 거인과 마법사와 난쟁이 놀이를 하기로 하고, 팀을 나눠 거인과 마법사와 난쟁이 가운데 어느 것을 할지 아이들에게 가위 바위 보를 통해 결정하도록 한다. 아이들이 잔뜩 흥분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가운데,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자신을 쳐다보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인어는 어디에 서요?" 하고. 이 놀이에서 인어는 존재하지도 설 곳도 없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거인이나 마법사나 난쟁이 어느 것도 자신과 비슷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자신만의 카테고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것이 인어였던 것이다. 아이는 당연히 인어가 설 자리가 있으며, 그가 그것을 안다고 믿고 있는 얼굴이다.

 

 

글쎄……. 인어는 어디에 서야 하나? 인어들, 남과 다른 사람들, 표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 이미 만들어진 상자와 비둘기집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에 서야 하나? / 127p

 

 

 

   저자는 여자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인어는 바로 여기 바다의 왕 옆에 서는 거야." 그와 여자아이는 손을 꼭 잡고 거인과 마법사와 난쟁이들이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나는 적어도 한 명의 인어를 직접 알고 있다. 손도 잡아보았다.'는 말로 이 에피소드를 마무리한다. 우리는 흔히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아웃사이더라고 규정짓는다. 남과 다르면, 기준점에서 벗어나면 이단아로 치부하고 중심에서 밀어낸다. 만약 이때 그가 "세상에 인어란 없단다. 너도 거인이나 마법사, 난쟁이 중에 하나를 고르렴." 하고 대답했다면 여자아이는 자신이 설 자리를 잃고 헤매게 되지 않았을까.

 

 

 

   이처럼 그의 책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제공하는 재미난 에피소드들로 인해 때로는 따뜻하고, 울컥하기까지 하며 유머러스한 이야기까지 만날 수 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잊었던 어린 시절의 한 페이지들을 떠올리고, 나의 이웃을 돌아보게 되기도 하며 아주 반짝이는 문장 하나와 함께 내 인생을 밝혀줄 아름다운 삶의 철학들을 깨닫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사람은 가끔 자신이 설교하는 것을 실천해야 한다. 편견 없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나방을 봐야 한다고 설교한다면, 꼬마들도 좀 더 관대한 눈길로 봐야 할 것이다. 비단을 만들 수 있는 나방이 있듯이, 사리에 맞는 말을 하고 '날아다니는 작은 테디 베어'를 알아보는 아이도 있다. / 212p

 

 

나는 로카르의 법칙을 확장해 '풀검의 교환법칙'을 만들어냈다. 이 세상에 살았다 가는 모든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남기고 무엇인가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 '무엇인가'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셀 수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남기는 것이며 다른 사람들이 우리 마음에 남기는 것, 바로 추억이다. / 270p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를 읽으며 나는 내 아이에게 정작 가르쳐야 할 것은 가나다라 한글이나 ABCD 같은 영어 따위가 아니라, 아이가 자라서 삶이 녹록하지 않음을 느낄 때마다 꺼내볼 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 하나, 이웃 한 명,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삶의 방식 같은 것들이라는 점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내 일상 곳곳에서 묻어나오는 작은 가르침에 더욱 귀 기울이는 삶이야말로 내 인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또 힘들 때일 수록, 어려운 때일 수록 내 가슴을 따듯하게 채웠던 것들을 기억하자.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자. 그러면 무거웠던 것도 좀 내려지고 늘 새로이 시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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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름은
조남주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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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들, 그 생생한 육성들!

특별해보이지 않지만 오늘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들의 이야기!

 

 

 

   무려 십년 전의 일이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는 일 하나가 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술기운에 얼굴이 불콰해진 한 아저씨가 올라타 빈자리를 찾는 모습이 눈에 띄게 불안해보였다. 마침 버스 가장 뒷자리에서 앉아 있던 나는 처음부터 그가 한 여중생의 뒷자리에 앉는 광경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는 혼자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주저리주저리 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듯했는데, 갑자기 맞은편에 앉아 있는 20대 청년으로 보이는 이에게 여자를 만져봤냐, 안을 때는 남자가 박력 있게 이렇게 안아야 한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면서 앞에 앉아 있는 여중생의 목을 팔로 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여자를 꼬드기는 방법에 대해 청년에게 설명하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여중생은 옴짝달싹도 못한 채 그저 바들바들 떨기만 하고 있었다. 나를 더 어이없게 만들었던 것은 백미러로 힐끔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버스를 멈추거나 제지하지 않는 기사와 맞은편에서 그저 피식 웃고 말아버리는 청년의 태도였다.

 

 

 

   사실 꽤 정의로운 성격은 아니지만 이번 일은 도저히 두고만 볼 수 없어 결국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중생에게 다가가 "그러게 언니가 여기 앉지 말랬잖아." 하고는 내가 앉았던 자리로 이끌고 갔다. 그 아저씨는 나를 힐끔힐끔 불쾌하게 쳐다보기만 할 뿐 그 뒤로 이렇다 할 행동은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여중생을 따라서 내릴까봐 나는 그녀와 함께 내려 버스가 떠나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사실 평소의 내 성격에 비하면 이 날의 일은 꽤 용감하게 행동한 일이었으나, 아직까지도 나는 왜 그렇게밖에 행동하지 못했을까 자책하는 마음이 더 크게 남아 있다. 그때 여중생의 언니인 척 하려 꺼낸 말이 도리어 왜 여기에 앉아서 이런 일을 당했느냐고 오히려 여중생을 나무라는 듯했던 것은 아닌지, 잘못을 꾸짖어야 했다면 술 취해 여중생을 추행한 그에게로 향했어야 옳았고,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던 주위 사람들과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않은 기사에게 향해야했던 것은 아닐까.

 

 

 

   만약 십년 후인 오늘에 이러한 일을 다시 겪게 된다면 나와, 버스 안의 사람들은 좀 더 다르게 행동했을까? 그때의 그 여중생도 이렇다 할 대꾸 한번 하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만 있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있을까? 이렇듯 누군가의 폭력에, 사회의 시스템이 휘두르는 권력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많다. 조남주의 소설 <그녀 이름은>은 가정과 학교, 회사, 사회 곳곳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과 그들이 받은 상처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오늘도 한 걸음씩 내딛고 있는 그녀의 용기들을 28편의 단편으로 엮은 소설집이다. 나의 이야기이자 나의 누군가가 겪고 있을지 모를 흔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특별한, 그녀들의 목소리를 담은 의미 있는 기록들이다.

 

 

 

내가 오늘 삼킨 말, 다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말 

 

 

   <그녀 이름은>은 <82년생 김지영>과 <현남 오빠에게>로 이어지며 우리 사회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작가 조남주의 최신작이다. 아홉 살부터 예순아홉 할머니까지 육십여 명에 이르는 여성들이 "특별히 해줄 말이 없는데" "내가 겪은 일은 별일도 아닌데"라며 덤덤하게 꺼내놓은 이야기들이 소설로 재탄생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특별하지 않고 별일도 아닌 여성들의 삶이 더 많이 드러나고 기록되면 좋겠습니다'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수많은 그녀들의 고백은 하나같이 나의 이야기 혹은 나의 엄마 혹은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낯설지 않지만 그간 별 것 아니라고 삼켰던 말들이 어느 하나 의미 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엄마는 늘 저주처럼 말하지, 나중에 꼭 너 같은 딸 낳아서 키워보라고. 근데 엄마 그거 알아? 나는 나 같은 딸로 태어난 게 아니라 나 같은 딸로 키워진 거야, 엄마에 의해서. / 51p

 

 

"형부가 눈치가 좀 없네."

"눈치 없을 수 있는 것도 권력이야."

언니 말이 맞다. 눈치가 없다는 것은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 95p

 

 

 

 

 

 

   소설은 사내에서 상사로부터 불미스러운 접촉과 만남의 요구받게 되자, 이를 회사에 문제 제기했다 도리어 자신이 악의적인 소문을 뒤집어쓰게 되고 부당한 피해를 겪게 된 소진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한다. 마치 재고품처럼 자신을 시집보내지 못해서 안달인 식구들, 버거운 일상, 불안한 미래, 하지만 계속 두근거릴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은순의 이야기, 우유부단한 남편과 꼿꼿한 시부모님 사이에서 답답해하다 결국 이혼을 선택한 정은, 서른여덟로 임신 구 개월 차에 이른 지선이 밝히는 임신부들의 고민들, 불안정한 고용환경에 대한 부당함을 밝히려한 KTX 해고 여승무원,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학교를 결석해야만 했던 진숙의 이야기 등 오늘도 가사와 육아, 직장 생활에서 자신의 이름을 잊은 채 살아가는 그녀들의 삶을 엿본다.

 

 

 

학교 행정은 비합리적인 부분도 있고 여전히 학부모들의 무료 봉사를 필요로 한다. 회사는 업무량이 너무 많고 어린아이 키우는 직원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남편은 당연히 육아가 아내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사회는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을 '극성'이라고 매도한다. 그럼에도 엄마들은 직장을 다니건 다니지 않건 서로 도우며 자기 몫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지혜는 달라져야 하는 것은 엄마들이 아니라 남편과 학교와 회사와 사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 118p

 

 

지금은 아니다. 내 복직만 생각했다면 이렇게 긴 시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불안정한 고용환경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승객의 안전을 비용과 효율로 계산하지 않고, 여성의 일을 임시와 보조 업무로 제한하지 않으려는 싸움. 나는 여전히 젊고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 153p

 

 

 

 

 

 

   현재 우리 사회는 엄마 혹은 그 이전의 세대들로부터 이어져온 부당한 관습과 쉬쉬했던 고민들로부터 더 이상 스스로의 삶이 평가절하 되는 관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저자 역시 '다시 만난 세계' 편에서 정연이 '작은 승리의 경험이 더 큰 질문과 도전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처럼 세상의 수많은 시도들이,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성과들이 더 많이 드러나고 언급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려되는 것은 조남주 작가라는 정체성이 '페미니즘'에 갇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한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슷한 주제가 나열되는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 <현남 오빠에게>, <그녀 이름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은 계속해서 자신만의 언어로 하여금 세상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치열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또 이에 많은 대중들이 공감한다는 점에서, 현 시점의 우리가 가장 크게 고민하고 있는 주제와 부합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기에 꽤 유의미한 시도의 일환임은 틀림없다. 비록 '여성'의 시선이기는 하나, 사회의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시도들을 반드시 '페미니즘'이란 틀에 가둬서 볼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드니 말이다. 시스템의 부조리에 짓눌린 채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삼키고 있는 말을, 그 누구도 대신 해 줄 수 없는 말을 들어주고 드러내주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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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붙이는 시간 - 엄지와 검지로 즐기는 감성 스티커 아트북
동글동글 연이 지음 / 다산라이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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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 스티커 놀이 하란 법 있나요?

답답하고 지친 하루의 끝에 가만히 내 마음을 붙여보는 치유의 시간!

 

 

 

   고단하고 답답한 하루의 끝, 책을 읽기에는 머릿속이 복잡하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날이 있다. 텔레비전 채널만 하릴 없이 돌리는 것도 무료하고 잠도 오지 않는 밤이라 문득 책장에 꽂혀 있던 스티커북 하나가 떠올랐다. <마음을 붙이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감성 스티커 아트북이다.

 

 

 

   컬러링북을 사서 열심히 이런저런 색감을 덧붙여보는 취미도 시들해지려는 찰나에 간단한 스티커로 미완성의 공간을 채우는 재미라니. 거기다 답답하고 복잡한 마음을 스티커 하나하나에 실어 그곳에 붙박여놓고 나면 어쩐지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듯도 하달까.

 

 

 

하루 10분,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시간

 

 

 

 

 

 

   <마음을 붙이는 시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인 사계절을 주제로 하여 일상의 단면들을 따뜻한 일러스트로 구성한 아트북이다. 여기에 스티커와 나만의 그림을 더하면 손쉽게 완성된다. 잠시 누군가를 기다릴 때 차 안에서 한 번 쓱, 아이가 하원하기 전에 재미로 쓱, 엎드린 채 누워서 편하게 쓱, 하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페이지를 가리지 않고 붙이면 되니 뭔가 흥미롭다. 그간 어린 아들이 스티커북을 사달라고 조를 때마다 이게 뭐가 재미있다고 사달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막상 내가 해보니 이런 재미가 있구나, 싶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심심할 때, 휴식이 필요할 때, 새로운 취미생활을 찾을 때, 이불 밖이 위험하다고 느낄 때, 고마운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을 때, 이 책을 찾아 마음 붙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추천한다. 아직 붙여보지 않은 페이지들은 아이와 함께 붙여보는 재미도 있을 테니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좋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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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엄마
신현림 지음 / 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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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건네는 위로와 치유의 문장들!

엄마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신현림 시인의 따스한 어루만짐!

 

 

 

   이제는 나도 내 이름이 아니라 한 아이의 엄마로 불릴 때가 더 많아졌다. 일상의 모든 것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나보다는 아이를 우선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 이전과는 많이 다른 삶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기 이전에는 내 안에 이토록 다양한 감정이 존재하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좀처럼 감정 표현을 하는 법이 없던 내가 아이의 감정에 따라 나의 감정 역시 하늘을 치솟다가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경험하게 되는 것이었다. 신현림 시인도 여자일 땐 안 울었던 내가 엄마가 되고선 눈물이 많아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쩔 때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나도 모르게 펑펑 울기도 했으니 이만하면 아이를 잘 키우는 법이 적힌 육아서보다 내게 더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 글귀 하나, 다정한 문장 하나가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시와 문장들

 

 

   시인 신현림은 홀로 딸을 키우며 엄마라는 무게 앞에 흔들릴 때마다 시가 내 마음을 위로해주었노라 고백하면서, <시 읽는 엄마>를 통해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름다운 시 38편을 선물한다. 샬럿 브론테, 헤르만 헤세, 칼릴 지브란, 윤후명, 백석에 이르기까지 엄마라는 삶의 무게가 시가 되고, 또 시가 가르침이 되었던 순간들을 기록한다. 아울러 온몸으로 딸의 체온을 느끼며 가슴 뭉클한 기쁨을 누렸던 순간들, 늘 딸의 안녕을 염려하면서도 매 순간 함께 해주지 못했을 때의 미안함,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순간에 마음을 적시는 감동의 눈물들을 매우 섬세한 언어로 담아낸다.

 

 

 

포대기를 두르고 한 몸이 된다는 것,

몸속에 딸의 체온을 느끼며

혼자가 아니라는 가슴 뭉클한 기쁨을 누리는 것.

이것이 인생 모든 것의 시작이다.

 

 

매일 다시 태어나 시작한다는 기쁨은 온전히 딸아이를 통해 느끼는 마음이다. 어차피 엄마로 산다는 게 힘들다는 거 잘 안다. 아이를 통해 배우는 놀라운 사랑의 능력, 그것이 내 몸과 감각에 따뜻한 안개처럼 젖어든다. / 48p

 

 

 

 

 

 

   <시 읽는 엄마>를 읽다보면 감히 엄마가 되어보기 전에는 몰랐던 여러 감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사시사철 새롭게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나무와 풀을 보며 삶은 매번 다시 태어나는 시간들임을 깨닫듯, 뱃속에 아이가 들어섰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마치 다시 태어난 것처럼 커다란 감동과 기쁨으로 나의 온몸이 발화되는 것을 느꼈던 그날, 그때의 감동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직은 자신의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어린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이해 가능하고 이성적인 것을 요구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내뱉고 금세 후회할 때가 있다. 내가 어쩌자고 이 어린 것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아이가 곱게 잠든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책망하던 그 숱한 밤들. '실패도 과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읊조림처럼 엄마이기에, 엄마가 아니고서야 느낄 수 없는 이 감정과 깨달음에 감사하자고 다독여본다.

 

 

아이가 친밀한 타인임을 받아들이면, 인생은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특히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몹시 낯설게 느껴진다. 여드름이 난 이마에서 매끈하고 보들보들했던 유치원 시절을 떠올릴 때가 온다. 그리고 아이를 친밀한 타인으로 생각하면 애착도 집착이 되지 않는다. 이것에 웃음이 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 / 85p

 

 

어린 날 딸이 아칫거리며 걷거나 재롱부리던 모습이 이토록 생생한데, 어느새 딸은 혼자서도 무엇이든 다 잘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모르는 딸의 시간들이 점점 늘어갈수록 홀가분한 마음만큼 걱정도 커진다.

 

내가 없는 곳에서 네가 울고 있으면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까. / 134p

 

 

 

 

 

 

   엄마가 되고 나니 새삼 엄마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언젠가 시집가면 다 하게 될 텐데 뭐 하러 벌써 손에 물 묻히느냐고 그 흔한 부엌일조차 하지 않게 했던 엄마, 두 번의 암을 얻었던 와중에도 자식에게 짐이 될까 걱정하시던 엄마, 아직까지도 작은 용돈조차 마다하며 우리 살림에 쓰라고 하시는 엄마. 엄마도 엄마의 시간을 갖고 하고 싶은 거 하며 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신경 한 번 써주지 않았던 무심함을 나는 아이를 낳고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자식이 먼저 던지는 사랑의 인사는 엄마의 인생에 큰 용기가 된다'는 저자의 말이 유독 가슴에 남는다. 지금껏 표현하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많이 표현하고 살아야지. 그게 엄마의 인생에 큰 용기가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황종권 시인의 시 <부엌은 힘이 세고>가 가슴에 몹시 와닿는 저녁이다. 부엌에서 부엌을 꺼낸다는 시인의 훌륭한 상상력은 매일 되풀이되는 엄마의 일상 속 고단함과 무료함을 의미한다. 평생 부엌 한구석에 사는 쌀독처럼, 무겁고 슬픈 엄마의 모습이 비치는 시다. 부엌을 오가는 엄마의 운명, 다시 말해 여성의 운명을 함께하고 싶은 아들의 연민이 구구절절 배어 있다. / 98p

 

 

자식이 먼저 던지는 사랑의 인사는 엄마의 인생에 큰 용기가 된다.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혹은 이웃에게 정성을 다해 마음을 전하는 일.

 

특히 엄마에게 마음을 전하는 일은

소소하지만 신비롭고 황홀한 기적이다.

새로운 활기와 새로운 기쁨이 환한 날개를 달고,

엄마와 당신의 삶을 가뿐히 날아오르게 할 것이다. / 167p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시를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시 읽는 엄마> 속에 수록된 시들은 어떤 시적 기교나 함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충분히 정서적으로 느끼게 하는 바가 있어 참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날 서는 마음을 차분히 다독이고 오늘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에 감사해하며 엄마라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던 것도 시가 주는 또 다른 감동이리라. 덕분에 나 역시 아이와 함께 하는 생의 감동적인 순간에, 그것을 오롯이 기억할 수 있는 시 한 편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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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아서 할게요
박은지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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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된 나를 위한 자기주도 선택법!

여성과 아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었던 역할에서 벗어나 진짜 나로 살아가는 법!

 

 

   며칠 전에 아이와 산책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폴짝폴짝 도로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마침 지나가던 서너 명의 아주머니들이 귀엽다며 한 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김없이 꼭 불편한 질문 하나가 뒷덜미를 잡아챈다. "애는 얘 하나인가 봐? 왜, 하나 더 낳지 않고. 혼자는 외로운데." 어 딜가나 아이가 하나라고 하면 둘째는 안 낳을 거냐는 질문은 빠지지 않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해보지만, 사실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말을 하시나요?'라고 되묻고 싶은 것을 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말고는 내가 결정할 일이고 그 아이를 키우는 것도 결국엔 나인데 왜들 그렇게 훈수를 두지 못해서 안달인 것인지 그때마다 괜히 상처를 입는 기분이 든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육아에 전념하고 있을 때는 "집에서 놀면 뭐해? 요즘엔 맞벌이 안하고는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제가 집에서 놀고 있는 것 같나요?)", 일을 하기 시작하니 "애 어린이집에 오래 두면 좋지 않아. 아이를 먼저 생각해야지.(제가 아이 엄마인데 아이를 우선으로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잖아요?)"라는 말을 듣는다. 아이 옷을 좀 얇게 입힌 날에는 "애 감기 들라. 옷을 그렇게 얇게 입히면 어쩌나."란 말을, 아이 옷을 제법 두껍게 입힌 날에는 "남자 아이는 시원하게 입혀야 몸에 열이 안돌지."라는 말을 꼭 듣곤 한다. 세상에나. 나보고 어찌하란 말인지. 그것도 생전 모르는 사람들이, 아이 좀 키워보셨다는 분들이 더 성화다.

 

 

 

   불쑥불쑥 내 삶을 침범하는 세상의 오지라퍼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해서, 나는 오늘도 그들이 불편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족 사이에서, 때로는 낯선 사람들에게까지 조언을 가장한 훈수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 있겠느냐고,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라고 일찍이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극복의지보다 체념부터 가르치려는 사회적인 통념에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기를.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선택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제가 알아서 할게요>는 바로 그러한 희망을 엮은 저자의 자기경험담과 위로의 글을 엮은 에세이다. 나를 위해서는 조금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누가 날 좀 미워해도 받아들이며 사는 것도 괜찮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유독 공감되고 자극이 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제 와서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 선택한 길을 휘청거리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됐다. 모두가 걸어간 길이라도 내게는 맞지 않는 방향일지 모른다. 물론 세상엔 타협해야 할 일도, 양보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선택할 때는 그 이유를 내가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또 가능한 한 책임질 수 있는 선택만을 하며 살고 싶다. / 21p

 

 

욕을 좀 먹을지언정, '남들이 좀 이상하게 보면 어때?'라는 생각이 나를 홀가분하게 한다면 그걸로 됐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역할을 다하고 있다면, 굳이 내 삶의 엑스트라들에게까지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 101p

 

 

 

 

 

 

결혼은 현실이라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하는 내내 사랑하며 살겠다는데 '결혼은 현실'이란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사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혹은 엄마를 통해 막연하게 들여다보았던 그 세계가 느닷없이 나에게 펼쳐지는 것이었다. 결혼 전에는 요리를 곧잘 하는 아버지 덕분에 엄마의 부재에도 찌개 한번 제대로 끓여본 적이 없었고, 큰집에서 열리는 제사 때도 가장 막내인데다 언니들도 많아서 굳이 나까지 나서지 않아도 되었던 까닭에 제사 준비 역시 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숱하게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굳이 내 손을 쓰게 하지 않으셨던 부모님의 노고가 새삼 실감되었던 것은 결혼 후 맞아야했던 제사와 각종 집안일, 식사 준비, 독박 육아 같은 것들 덕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이 꼬박꼬박 집에서 식사를 챙겨먹어야 한다거나 제사 준비하는데 쇼파나 차지하고 도와주지 않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남편은 남편대로 가장으로써 아이와 아내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 막중한 책임감에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제가 알아서 할게요>의 저자는 '결혼은 현실이니까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관성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조금 비현실적이더라도 우리가 꿈꾸던 이상적이고 행복한 장면을 '진짜 결혼의 모습'이라는 기준으로 삼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아가 남편이니까, 아내니까 정해진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할 수 있는 방식대로 하는 방향이 옳을 것이다. '원래 결혼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무작정 따르는 대신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신들에게 가장 적절한 생활 양식을 찾아나가는 것이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편한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결혼했다고 즉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되려고 차근차근 노력하는 중이니, 시댁에서의 융합제 역할은 남편이 맡아야 한다. 아내에게는 남편이 그런 역할을 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 처가댁에서는 물론 아내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 259p

 

 

 

 

 

 

 

   언제부턴가 결혼이나 출산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내 주변에서만 하더라도 결혼은 하되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는 부부들이 꽤 있는 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저자는 결혼 후 여성은 맞벌이를 하면서도 집안을 돌봐야 하고, 시댁에 잘해야 하며, 아기를 낳으면 주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시선에 여성들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라 지적한다. 요즘 여성들은 결혼하면 좋은 아내, 며느리,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고, 반대로 나 자신으로 살 기회는 줄어든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일을 척척 해치우는 '슈퍼우먼'만이 이상적이고, 이러한 프레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하면, 요즘 여자들은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다거나 '페미니즘이니 뭐니 해서 남자를 귀찮게 한다'는 비난을 받는 일이 나 역시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고, '가정을 돌보는 것'을 얕보는 풍조가 더할 나위 없이 불편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결혼은 왜 하나, 혼자 살면 되지 라는 생각을 결국 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 하고 싶은데 결혼이라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속성을 지닌 것이라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결혼에 얹어진 부자연스러운 의무는 결국엔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회가 떠미는 부수적인 역할로 인해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기 위한' 감정 소모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 제도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결혼을 앞두고 우리가 정말 해야 하는 이야기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같은 결혼 자체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각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거리를 재어보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을 새기고 볼 일이다. 결혼식이라는 화려한 이벤트보다 부부는 평생을 결혼이라는 제도와 현실을 현명하게 돌파해나가기 위한 동반자라는 점을 유념하고 사전에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현명하게 여러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혼뿐 아니라 삶의 모든 크고 작은 변화에 대처하는 보편적인 방법과 마찬가지로 우린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고 행복해지기 위해 각자의 방법대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결혼이라는 큰 변화에서 제도에 나를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전제에서 나름의 삶의 방식을 계속해서 찾아가고 싶다. 나는 결혼과 자유를 맞바꾸지 않았다. 그게 때로는 사회의 통념과 맞지 않고, 불성실한 아내처럼 보이는 일이라 해도. / 267p

 

 

 

 

 

 

   적당히 순응하고 이해하려고만 했던 나로서는 책의 어떤 부분에서는 소위 '프로불편러'라고 느낄 만큼 그녀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나도 한 번쯤은 머릿속에 떠올렸던 불만들이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어떠한 정답 따위는 없는 거라고 생각하며 타인의 시선에, 훈수에 적어도 내 선택을 방해받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먼저 해보았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조언을 하여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가장 먼저 반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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