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택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된 나를 위한 자기주도 선택법!
여성과 아내, 엄마라는 이름으로 강요되었던
역할에서 벗어나 진짜 나로 살아가는 법!
며칠 전에 아이와 산책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폴짝폴짝 도로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를 보며 마침
지나가던 서너 명의 아주머니들이 귀엽다며 한 마디씩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김없이 꼭 불편한 질문 하나가 뒷덜미를 잡아챈다. "애는 얘
하나인가 봐? 왜, 하나 더 낳지 않고. 혼자는 외로운데." 어 딜가나 아이가 하나라고 하면 둘째는 안 낳을 거냐는 질문은 빠지지 않기에 이제는
그러려니 해보지만, 사실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말을 하시나요?'라고 되묻고 싶은 것을 참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말고는 내가 결정할 일이고 그 아이를 키우는 것도 결국엔 나인데 왜들 그렇게 훈수를 두지 못해서 안달인 것인지 그때마다 괜히 상처를 입는 기분이
든다.
어디 이 뿐이겠는가. 육아에 전념하고 있을 때는 "집에서 놀면 뭐해? 요즘엔 맞벌이 안하고는 살기 힘든
세상이잖아.(제가 집에서 놀고 있는 것 같나요?)", 일을 하기 시작하니 "애 어린이집에 오래 두면 좋지 않아. 아이를 먼저 생각해야지.(제가
아이 엄마인데 아이를 우선으로 고려하지 않았을 리 없잖아요?)"라는 말을 듣는다. 아이 옷을 좀 얇게 입힌 날에는 "애 감기 들라. 옷을 그렇게
얇게 입히면 어쩌나."란 말을, 아이 옷을 제법 두껍게 입힌 날에는 "남자 아이는 시원하게 입혀야 몸에 열이 안돌지."라는 말을 꼭 듣곤 한다.
세상에나. 나보고 어찌하란 말인지. 그것도 생전 모르는 사람들이, 아이 좀 키워보셨다는 분들이 더 성화다.
불쑥불쑥 내 삶을 침범하는 세상의 오지라퍼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해서, 나는
오늘도 그들이 불편하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족 사이에서, 때로는 낯선 사람들에게까지 조언을 가장한 훈수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살 수 있겠느냐고,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사는 거라고 일찍이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극복의지보다
체념부터 가르치려는 사회적인 통념에 "제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기를. 적어도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선택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제가 알아서 할게요>는 바로 그러한 희망을 엮은 저자의 자기경험담과 위로의 글을 엮은 에세이다. 나를
위해서는 조금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다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누가 날 좀 미워해도 받아들이며 사는 것도 괜찮다는 그녀의 목소리가 유독
공감되고 자극이 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제 와서 지나간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 선택한 길을 휘청거리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알게 됐다. 모두가 걸어간 길이라도 내게는 맞지 않는 방향일지 모른다. 물론
세상엔 타협해야 할 일도, 양보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선택할 때는 그 이유를 내가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또 가능한 한
책임질 수 있는 선택만을 하며 살고 싶다. / 21p
욕을 좀 먹을지언정, '남들이 좀 이상하게 보면 어때?'라는 생각이 나를 홀가분하게
한다면 그걸로 됐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역할을 다하고 있다면, 굳이 내 삶의 엑스트라들에게까지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
101p
결혼은 현실이라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하는 내내 사랑하며 살겠다는데 '결혼은 현실'이란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사실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혹은 엄마를 통해 막연하게 들여다보았던 그 세계가 느닷없이 나에게 펼쳐지는
것이었다. 결혼 전에는 요리를 곧잘 하는 아버지 덕분에 엄마의 부재에도 찌개 한번 제대로 끓여본 적이 없었고, 큰집에서 열리는 제사 때도 가장
막내인데다 언니들도 많아서 굳이 나까지 나서지 않아도 되었던 까닭에 제사 준비 역시 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숱하게 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굳이
내 손을 쓰게 하지 않으셨던 부모님의 노고가 새삼 실감되었던 것은 결혼 후 맞아야했던 제사와 각종 집안일, 식사 준비, 독박 육아 같은 것들
덕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남편이 꼬박꼬박 집에서 식사를 챙겨먹어야 한다거나 제사 준비하는데 쇼파나 차지하고 도와주지 않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남편은 남편대로 가장으로써 아이와 아내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 막중한 책임감에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제가 알아서 할게요>의 저자는 '결혼은 현실이니까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버리면 관성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조금 비현실적이더라도 우리가 꿈꾸던 이상적이고 행복한 장면을 '진짜 결혼의 모습'이라는 기준으로 삼고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아가
남편이니까, 아내니까 정해진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각자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할 수 있는 방식대로 하는 방향이 옳을 것이다. '원래
결혼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무작정 따르는 대신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신들에게 가장 적절한 생활 양식을 찾아나가는 것이 결국 두
사람 모두에게 편한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까.
결혼했다고 즉시 가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되려고 차근차근 노력하는 중이니,
시댁에서의 융합제 역할은 남편이 맡아야 한다. 아내에게는 남편이 그런 역할을 하도록 요구할 권리가 있다. 처가댁에서는 물론 아내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 259p
언제부턴가 결혼이나 출산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내 주변에서만 하더라도 결혼은 하되
아이는 낳고 싶지 않다는 부부들이 꽤 있는 편이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저자는 결혼 후 여성은 맞벌이를 하면서도 집안을 돌봐야 하고, 시댁에
잘해야 하며, 아기를 낳으면 주 양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시선에 여성들이 부담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라 지적한다. 요즘 여성들은 결혼하면
좋은 아내, 며느리, 엄마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고, 반대로 나 자신으로 살 기회는 줄어든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모든 일을 척척 해치우는 '슈퍼우먼'만이 이상적이고, 이러한 프레임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하면, 요즘 여자들은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다거나
'페미니즘이니 뭐니 해서 남자를 귀찮게 한다'는 비난을 받는 일이 나 역시 껄끄럽기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돈을 버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고,
'가정을 돌보는 것'을 얕보는 풍조가 더할 나위 없이 불편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결혼은 왜 하나, 혼자 살면 되지 라는 생각을 결국 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 하고 싶은데 결혼이라는 것이 이렇게 불편한 속성을 지닌 것이라면,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결혼에 얹어진 부자연스러운
의무는 결국엔 바뀌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회가 떠미는 부수적인 역할로 인해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기 위한' 감정 소모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는 제도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결혼을 앞두고 우리가 정말
해야 하는 이야기는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같은 결혼 자체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해 각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거리를 재어보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을 새기고 볼 일이다. 결혼식이라는 화려한 이벤트보다 부부는 평생을 결혼이라는 제도와 현실을
현명하게 돌파해나가기 위한 동반자라는 점을 유념하고 사전에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현명하게 여러 문제들에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결혼뿐 아니라 삶의 모든 크고 작은 변화에 대처하는 보편적인 방법과 마찬가지로 우린
최대한 스트레스받지 않고 행복해지기 위해 각자의 방법대로 노력할 수밖에 없다. 결혼이라는 큰 변화에서 제도에 나를 억지로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라는 전제에서 나름의 삶의 방식을 계속해서 찾아가고 싶다. 나는 결혼과 자유를 맞바꾸지 않았다. 그게 때로는
사회의 통념과 맞지 않고, 불성실한 아내처럼 보이는 일이라 해도. / 267p
적당히 순응하고 이해하려고만 했던 나로서는 책의 어떤 부분에서는 소위 '프로불편러'라고 느낄 만큼 그녀의 생각에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에서는 나도 한 번쯤은 머릿속에 떠올렸던 불만들이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어떠한 정답 따위는 없는 거라고 생각하며 타인의 시선에, 훈수에 적어도 내 선택을 방해받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먼저 해보았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조언을 하여 그들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가장 먼저
반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