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 1 : 1954~1956
토베 얀손 지음, 김민소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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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무민 시리즈의 완전판을 만나다!

괴짜지만 사랑스러워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아름다운 동화!

 

 

  마치 하마를 닮은 듯 순둥순둥한 얼굴에 통통한 몸매를 지닌 귀여운 캐릭터 무민. 그간 소품샵에서 무민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들을 만나보곤 했지만, 사실 이 캐릭터가 어떻게 탄생한 것인지 혹은 어떤 스토리를 가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이 캐릭터가 핀란드에서 태어나 나의 부모님보다 더 오래 전에 탄생해 지금껏 전 세계의 다양한 연령층에게 사랑받아왔다는 점이 놀랍기만 했다. 한 캐릭터가 꾸준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단순한 귀여움을 넘어서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순백의 동글동글한 캐릭터 무민에게서 우리는 어떤 영감을 받고 계속해서 애정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일까,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엉망진창이지만 모든 게 즐겁기만 한 여유만만 무민 가족

 

 

   무민은 작가이자 예술가로, 핀란드의 뛰어난 젊은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던 토베 얀손에게서 탄생되었다. 그녀는 어릴 적, 바닷가의 푸른 골짜기에서 살며 꽃밭에 늘어놓을 진주 조개 껍질을 주어 모으거나, 파도 속에서 사소한 보물을 건지거나, 시냇가에서 주운 돌멩이를 마가린으로 문질러 반짝반짝 빛나게 닦곤 했다. 자연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이 그녀에게는 영감이 되었다. 그리하여 탄생한 무민 캐릭터는 한 잡지에서 일러스트 속 시그니처 캐릭터로 처음 소개되었다가 이후 그녀의 첫 동화책에서 무민 가족 전체가 등장한 것이 그 시작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 volume.1>은 1954년에서 1956년까지 연재하던 시리즈를 한 데 모은 것으로 고전 형식의 그대로인 흑백으로 출간되었다. 이 흑백의 형식은 무민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기상천외하고 독특한 무민 골짜기에 보다 상상력을 덧입히고, 현실인 듯 현실이 아닌 듯 무민 만의 새로운 세계관을 완성하는 데 일조를 한 듯하다.

 

 

 

 

 

 

   무민의 세계 속에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존재한다. '아니'라는 말을 하지 못해서 늘 곤란한 일을 겪게 되는 태평한 캐릭터 무민과 온화한 성격으로 기상천외한 일을 벌이는 가족들 사이에서 늘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무민마마, 항상 새롭고 자극적인 일이 벌어지기를 바라는 아빠가 등장한다. 모두가 지닌 한결같은 태평함 때문에 늘 별난 사건사고를 일으키고 때로는 곤란한 일을 겪곤 하지만 이들 가족은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으로 위기를 모면하곤 한다. 이들 뿐만 아니라 부자가 되거나 유명해지기를 원하는 스니프, 사랑에 빠지면 아무 것도 안 먹고 상대방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밈블, 약하거나 지는 것을 누구보다도 싫어하는 브리스크, 뭐든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강아지 핌플 등의 캐릭터들은 무민의 세계관에 현실과 삶의 이중성들을 은유적으로 꼬집는 다채로운 역할들을 한다.

 

 

 

 

 

 

   이들은 천진난만하게도 해적들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살인 용의자가 되는 상상놀이를 즐기기도 하는 등 무슨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을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벌인다. 그러면서도 애써 지은 자신의 집을 진짜로 집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선물하거나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언제나 비관적인 미자벨에게 여유와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일깨워주는 모습은 무척 사랑스럽다. 뭐, 이런 가족이 다 있어?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이들을 사랑스러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이고 소중한 가치란 구름 위를 떠다니고, 빨간 장화를 신고, 언제나 평화롭게 사는 것'임을 세상에 깨우치고 싶었던 작가 토베 얀손의 희망이 무민을 통해 탄생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겨우 그 정도의 근심일랑은 내려놓고 조금은 나를 위해 자유로워져봐, 하고 말하는 듯한 무민의 그 동글동글한 눈과 몸매가 어쩐지 위안이 된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근심을 떠안고 사는 어른들이라면 이 책이 자그마한 위로가 되고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일깨워주는 아름다운 동화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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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날개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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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달린 기린 조각상에 숨겨진 아버지의 마지막 메시지가 전하는 감동의 역작!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며 진실을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히가시노 게이고 표 미스터리!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몇 안 되는 작가들 중에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야말로 다수의 작품이 증명하는 존재감 넘치는 작가인 듯하다. 한때는 그를 단순히 '추리'라는 틀 안에 가둔 채 일본을 대표하는 장르소설 작가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비교적 최근작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라플라스의 마녀> 등을 보면 미스터리와 사회소설의 성격을 절묘하게 조직한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작품성까지 인정받는 작가임에 틀림없다는 믿음을 준다. 그래서 그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하면 흔히들 하는 말로 '믿고 보는', '믿고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린의 날개> 역시 그런 책이었다.

 

 

 

기린 조각상을 향해 칼에 찔린 채 기도하는 남자, 이 의문의 살인사건이 향하는 메시지

 

 

   도쿄 한복판에 위치한 니혼바시 다리에서 중년의 남자가 가슴에 칼이 꽂힌 채 경찰에 의해 발견된다. 기이하게도 남자는 전설 속의 동물인 기린 조각상이 있는 곳에서 기도하는 자세로 쓰러져 있었다. 그는 곧 병원으로 후송되지만 이내 숨지고, 출동한 형사들이 추적한 끝에 다리로부터 한 블록 떨어진 지하도에서 핏자국을 발견하게 된다. 남자가 굳이 지하도에서부터 고통을 참아가며 기린 조각상 앞까지 걸어와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경찰이 사건 현장을 폐쇄하고 용의자를 추적하기 위해 검문을 실시하던 중 의문의 한 청년이 이들을 피해 달아나다 트럭에 치여 의식불명에 빠지고 만다. 청년의 몸에서는 사망한 남자의 운전면허증과 지갑이 발견되어 단번에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그가 남자를 살인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때부터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수사 조직이 꾸려지고, 형사들은 살해당한 중년의 남자와 용의자로 지목된 청년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조사 결과 피해자는 건축 부품 제조 회사의 본부장으로 재직 중이었고, 용의자로 지목된 청년은 그 회사에서 계약직 현장 근로자로 일하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합당한 조치 및 산재 처리도 받지 못하고 해고가 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공장에서 해고 됐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좀처럼 다른 일자리도 찾을 수 없던 때였다. 이에 경찰은 물론 각종 매스컴에서도 살인 사건을 원한에 의한, 즉 ‘산재 은폐’라는 기업의 횡포가 계약직 종업원으로 하여금 충동적인 복수심을 일으켰다는 등의 자극적인 내용으로 사건의 원인을 몰고 간다. 이로 인해 피해자의 가족들은 아버지를 잃은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산재 은폐의 책임자로 몰림으로써 사회로부터 질타를 받는 제2의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산재 은폐는 범죄입니다. 좋은 일은 결코 아니죠. 원한을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살해되어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 180p

 

 

 

   가가 교이치로 형사와 그의 사촌인 마쓰미야 형사는 이 사건이 그저 원한에 의한 살인사건이라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고 여긴다. 용의자는 용의자일 뿐, 그가 범인이라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다. 경찰 조직 내에서는 이 사건을 서둘러 종식시키고 하나의 결말로 완성 지으려는데, 그 와중에도 끈질긴 추적과 집요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가가 교이치로는 사건의 진실을 향해 차츰차츰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발견되고, 피해자가 일대 신사를 돌며 속죄와 구원을 기도해왔다는 의외의 사실이 드러난다. 사건은 원점으로 돌아가 죽음에 직면한 와중에도 기린 조각상을 향해 기도하며 전하고 싶었던 그의 간절함이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어진다. 거기에 실마리가 있다.

 

 

 

   이렇듯 추리를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작품들이 그러했듯 <기린의 날개>는 추리적인 면면보다 사회 부조리에 대응하고 미래지향적인 감동의 휴먼스토리에 보다 집중한다는 점에 특징이다. '추리'는 그저 도울 뿐. 소설의 실마리라 할 수 있는 기린 조각상은 일본에서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모든 도로가 시작되는 기점인 니혼바시 다리에 있는 것으로, 이는 번영과 희망찬 미래를 기원하는 이들을 위한 응원이자 위로의 상징물이다.

 

 

 

   용의자로 지목된 청년이 함께 사는 여인과 함께 후쿠시마에서 상경해 처음 발을 디딘 곳도 바로 이곳이다. 너무나 가난했던 그들은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쿄로 올라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애쓰지만 현실은 계약직 노동을 전전하거나 아르바이트로 먹고 살기조차 빠듯할 뿐이다. 그러던 가운데 직장에서 사고를 당해 일자리를 잃고, 불의의 사고와 함께 사건의 용의자가 되고 만다. 소설은 열심히 살아보고자 한 청년이 어쩌다 용의자로 내몰리게 되었는지 그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을 통해, 계약직 종업원들이 늘 노동 현장에서 위험에 방치되어 있고 사건이 일어나면 은폐하기에 급급한 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꼬집는다. 또한 시청률과 흥행성에 몰두해 사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매체의 문제점도 함께 지적하며 피해자 가족들에 가중시키는 고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살인 사건이란 게 암세포와 같아서 일단 생겼다 하면 그 고통이 주위로 번진단 말이지. 범인이 잡히든 수사가 종결되든, 그 고통에 의한 침식을 막기가 어려워." / 249p

 

 

 

   그간에 다양한 추리소설을 접하면서 '~ 형사' 시리즈라는 부제가 있을 때면 단순히 주인공인 형사 개인의 활약상보다 경찰 소설의 성격답게 경찰 조직의 생리와 그것에서 한 발짝 물러나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주인공 형사의 남다른 사고와 집중력에 초점을 맞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래서일까, <기린의 날개> 역시 경찰 조직 내부의 모순을 지적하는 장면들이 상당수 등장한다. 이와 달리 자의적으로 짜 맞춘 조직의 결말에서 한발 물러나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질릴 만큼 집요한 끈기를 보이는 가가 형사의 더딘 걸음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세상은 각종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하지만, 본연의 신념을 믿고 나아가는 가가 형사와 죽음을 앞두고서도 끝까지 진실로부터 도망치지 않을 것을 전하고자 했던 남자의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가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는 희망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 표 추리 소설 답다. 다작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 작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작품이 또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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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에 머물다
박다비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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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라는 시간의 아날로그 정서를 품고 사는 부부의 이야기

때로는 무모하지만 그래서 더 따뜻한 부부만의 철학이 담긴 공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다!

 

 

 

   반듯반듯하게 올라간 회색 건물들, 우리는 외부로 드러나는 수많은 창으로 나마 그곳에서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까지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 오며가며 마주치는 눈길의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는 무미건조한 관계 속에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처럼 느껴진다. 단출하게 두 사람만 살던 신혼살림이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늘어나기 시작하자 더 이상 이사를 미룰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집을 알아보던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개인적으로 고층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는 까닭에 주택이나 빌라를 찾아보고 있던 중, 신랑이 아주 오래된 한옥집 하나가 찍힌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언뜻 보아도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대공사 수준의 낡은 옛집이었다.

 

 

 

   사실 신랑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공사에 대한 두려움은 크게 없는 편이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고 어디에다 말하기에도 낯부끄러울 정도로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서 지레 포기 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아무리 단열에 공을 들인다 하여도 옛집이다보니 우풍이 있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이유를 뒤로하고 교통이나 아이의 교육환경이 안정적인 곳이었다면, 큰마음 먹고 덤벼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간 남편이 꾸민 2번의 사무실이 한옥집을 개조해서 꾸민 것이었는데 그 감성이 좋아서, 그만의 남다른 매력에 반해버려서 이 정도라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사정이 있어서일까, 줄곧 제주도에 살고 싶었던 어느 부부가 100년이 된 집을 구입해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겠다며 나선 이야기가 있어 마음이 끌렸다. 그럴 듯한 인테리어 업체에 수리를 맡긴 게 아니라 부부가 직접 자재를 사다 나르고, 미장에 단열작업에 텃밭이나 마당꾸미는 일까지 손수 하나하나 땀흘려 자신들만의 집을 완성해가는 모습이 담긴 책이었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을 하는 격인 셈이었지만 공사를 하며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작은 것들을 가치를 배운 부부의 모습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옛 것이 들려주는 이야기

 

 

   “제주에서 살고 싶어”라는 여자의 말에 “난 어디라도 상관없어. ‘어디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인지’가 더 중요하니까.”라고 말했던 남자. 그들은 그렇게 누군가가 ‘귤’이라고 부르는 섬, 제주에 살게 되었다. 100년이 된 아주 오래된 집을 찾아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이들 부부의 남다른 결심에 놀란 것도 잠시, 매일 70km를 왔다갔다하며 전문 업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이 오래된 집의 본질을 지켜가며 그들 스스로 공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기대 반 걱정 반, 부부의 마음이 충분히 짐작될 정도로 무모하다싶을 결정이었지만, 어쩐지 이 부부만의 힘찬 도전에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0년도 채 살지 못한 내가 무슨 권리로 100년을 산 이 집을 허물 수 있겠냐던 저자의 말 때문일까. 100년이라는 세월동안 켜켜이 쌓아온 시간과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 오래된 집을 마주하며 부부가 느꼈을 경외감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한옥의 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서까래의 매력을 나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고스란히 살리는 방향으로 공사를 시작한 이들 부부의 결정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나의 남편 역시 사무실을 공사할 때 서까래를 살리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했는데, 최초에 이 작업을 했던 목수가 새겨놓은 작업 날짜를 보며 그 오랜 세월의 기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제주의 이 부부가 오랜 세월동안 제주의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던 나무와 자연적으로 생긴 모든 흔적들을 최대한 살리고자한 노력들이 참 예뻐 보였다.

 

 

 

어쩌면 이 나무는 이 집이 지내온 세월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지내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오랜 세월을 그 거센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이 집을 지켜온 것이다. 가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나 상황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결정해버리곤 한다. 100년이 된 집은 너무 오래되었으니, 분명히 그 속까지도 많이 상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수고 새로 건물을 올리라고 얘기하는 것 또한 그렇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 이 오랜 보물섬 같은 집을 부숴버렸다면, 오랜 세월 견고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무들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하지만 자연은 우리 생각처럼 그리 가볍거나, 약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콘크리트나 다른 재료들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견고하고, 따뜻하고, 인내심이 있는 것이 바로 자연에서 온 것들이다. 흙이나 돌, 그리고 나무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이것이 바로 100년 된 집에서 발견한 나무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 30p

 

 

 

 

 

 

   부부는 100년 된 집이다 보니 곳곳에 오랜 세월 이 집과 함께 해온 옛 물건들이 나타날 때마다 묘한 감동을 받았다. 그 옛날 주인 할머니가 혼수로 들고 왔을지 모를 반닫이장, 나무 문살과 창호지로 만들어진 미닫이문, 누군가 귀하게 모셔놓고 좋은 날에만 신었을 가죽 구두 한 켤레, 오래된 장식장에서 나온 꽃무늬 그릇들 등등 구멍이 나고 빛이 바랬지만 세월의 흔적을 꾹꾹 눌러 담은 그 물건들에 마음이 끌렸다. 나 역시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맡을 수 있었던 냄새, 작은 방 한 구석에 놓인 오래된 가구들, 작은 요강까지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 보니 갑자기 그것들이 그리워졌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썼던 그 옛 물건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의 우리는 버림에 익숙하다. 새로운 것들이 너무 많이 시장에 나오기 때문일까? 조금만 낡거나 혹은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버리고 있다. 과연 귀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하나라도 있을지 궁금하다. '귀하다'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어 아끼고 보살피게 되는 것이다. 낡았다는 이유로 버릴 수 없는 그 무엇, 옛것들은 또한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누군지 모를 그 누군가에게는 매우 귀한 무언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 32p

 

 

직접 만든 다른 문들도 좋지만, 가장 마음에 가는 문이다. 마치 이곳의 오랜 날들을 모두 품고 있을 것만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문이 만들어진 방식도 참 예스럽고 소중하다. 못 하나 쓰지 않고 하나하나 끼워 맞춰 만들어진 문이다. 문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튼튼하게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이 문처럼 오래되어 낡아 보이고, 조금 촌스러울지라도 만든 이의 손길이 느껴지는 소중함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 87p 

 

 

 

삐뚤빼뚤해도 괜찮아

 

 

   참 손재주가 많은 부부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해서는 덤벼들기 쉽지 않은 타일 붙이기, 보일러 선 깔기, 세면대 설치는 물론이고 목자재를 구입해 직접 멋진 데크를 만들고 판석과 자갈을 이용해 멋진 마당까지 완성해가는 그들의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그 사이 의견이 부딪치는 일이 왕왕 일어나고, 날씨가 변덕을 부릴 때도 있으며,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뒤따르기는 했지만 그들은 묵묵히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어가며 멋진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완성해갔다. 화려한 조명이 없어도, 무더위에 에어컨 하나 없이 살아야 하더라도 작은 것의 가치를 지키며 환경까지 생각하려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묻어나는 멋진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내 손으로 무언가 뚝딱뚝딱 만들 수 있다는 것. 멋지거나 근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구도 못났다고 타박하지 않는다. 직접 땀 흘리고, 손에 흙먼지 묻히며 해볼 수 있는 것, 살아볼 수 있는 삶. 이것이 나와 J가 시골에서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 130p

 

 

 

 

 

 

 

   부부는 현재도 멋진 제주 라이프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해 하나둘씩 찾아오는 손님과 애틋하고 다정한 시간을 나누고, 소소하지만 편안한 시골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접 손으로 일구어 나를 닮은 공간을 만들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누가 알든 모르든,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전해지고 영향을 준다면 우리가 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옆에서 지금처럼의 관심과 사랑으로 자유로운 하루를 살자.’고 아내에게 전하는 J의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책을 덮으며 나는 이들 부부의 삶을 응원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차에 이들 부부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한번 묵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닿으면 그들에게 찾아가 꾸며진 제주도가 아니라 본연 그대로의 제주도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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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 오은영 박사의 불안감 없는 육아 동지 솔루션
오은영 지음 / 김영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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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명쾌한 강의로 육아의 고민을 달래주는 오은영 박사의 부모 심리학!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진 엄마, 육아에는 무관심해보이는 아빠들을 위한 부모 필독서!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일까?

 

 

   오늘도 자신의 불만을 고사리 같은 손에 실어 나를 찰싹, 때리고 마는 아이를 보면 또다시 망연자실해진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훈계도 하고, 해줄 수 있는 일은 달래가며 해주고, 혹은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다른 쪽으로 관심을 유도하기도 하는 등 아이의 불만을 나름 현명하게 대처해보고는 하지만 이것이 하루 이틀 수십 번에 걸쳐 반복되다보니 웬만해선 감정 표현을 강하게 드러내지 않는 나로서도 참기 힘들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누군가라도 곁에 있어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달랠 수 있는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면 좋겠는데 독박육아인 처지이다 보니 모든 감당은 오로지 나의 몫이 되고 만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아이의 감정에 따라 감정기복의 변화가 잦아지는 이 불안한 심리상태를 달랠 길이 없고, 이는 고스란히 남편을 향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두려운 것은 나도 모르게 훈계를 핑계 삼아 아이에게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그러다 후회하기를 반복하기를 내 모습 보며 아이의 심리상태마저 나빠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토록 불안하기 짝이 없는 내 모습, 부모로서 자격미달인 것은 아닐까? 정말 이대로 두어도 괜찮은 걸까, 뭔가 해결책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불안이 된다

 

 

   각종 다양한 매체에서 '육아 박사', '국민 육아 멘토'로 정평이 난 오은영 박사님의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라는 책을 접한 순간,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3살 된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상황에 따른 육아 대처법만큼이나 불안한 나의 심리를 이해하고 담담하게 다스릴 수 있는 부모심리에 관한 책이 보다 절실했던 탓이다. 이 책은 부모라면 반드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자기 안의 감정인 '불안'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우리는 아이 앞에서 매사 흔들리고 불안해지는 것일까? 불안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불안은 인간의 기본적인 방어기전으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 기본적인 수단이다. 위험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면 누구나 불안이라는 기전을 동원해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 들기 때문에 적당한 불안은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저자는 불안이야말로 오랜 본능이라고 말한다. 1만 년 전 인류가 수렵채집을 생활하던 시기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해 아이를 키우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유전자에 프로그래밍되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걱정에 몰두하며 진화해온 존재이다. 다시 말해 아이에 대한 불안은 생존에 꼭 필요한 본능으로, 불안이 있어야 자기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다음의 계획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불안 그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오히려 부모의 불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아이와 부모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마도 아기를 낳고 그 아이가 자라 학교에 들어가고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 다시 다른 아이의 부모가 될 때까지, 우리는 새롭게 맞닥뜨리는 순간순간 두려움과 불안을 계속 느낄 것이다. 하지만 겁내지 마라. 두려움과 불안은 부모를 절대 파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은 부모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아이들을 더 건강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두려움과 불안 안에는 아이를 더 잘 키울 수 있게 하는 열쇠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두려움과 불안의 실체를 알고 차근차근 풀어나가다 보면 오히려 양육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게 되고, 내 안에 숨어 있는 놀라운 능력인 모성과 부성을 발견하게 된다. / 13p

 

 

 

 

 

 

   이렇듯 불안이 인간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지나치게 됨으로써 발생하는 상황들은 아이에게 생각보다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이는 아이의 일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과잉 개입’과 지나치게 무섭고 엄격한 규칙을 만들어 아이를 통제해 ‘과잉 통제’라는 잘못된 양육 방식을 낳는다. 과잉 개입은 주로 걱정이 많은 엄마들이 많이 하는 양육 방식이고 과잉 통제는 무관심으로 표현하는 아빠들이 주로 보여는 양육 방식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아이가 진취적으로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게 하거나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율성을 발달시키지 못해 자기 의견을 쉽게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듦으로써 아이에게 불안을 전이시키는 결과를 만들고 만다. 즉, 부모의 불안이 아이의 불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저자는 부모라면, 혹은 부모가 될 것이라면, 자신의 불안에 대해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내 안의 불안이 무엇인지 찾는 연습 과정과 좋은 부모, 배우자가 되기 위해 버려야 할 다양한 심리 코드를 설명함으로써, 육아 시 발생하는 불안한 감정이 유발할 수 있는 많은 위기를 미리 대비하게 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불안한 부모, 충동 상황별 해법을 찾아라

 

 

   책은 아이의 교육부터 친구 관계, 건강, 안전 문제까지 부모의 불안한 심리가 발생시키는 다양한 문제점의 해법을 모색해본다. 나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의 교육 문제 앞에서는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다. 이에 저자는 엄마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이 아이에 대한 교육적 지원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현상을 먼저 지적한다. 자신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 각종 교재와 교구 구입에 열을 올리곤 하는데, 그 안에 나의 지나친 불안이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한다고 말이다. 저자는 만 3세 이전의 아이의 경우에는 부모와의 양자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3세 이후에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본 규칙이나 질서, 배려와 이해, 공감을 배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설명한다.

 

 

 

   부모가 대가를 바라면서 교육적 지원을 하는 상황은 좋은 교육 환경이라 보기 어렵다. 교육적 지원이란 아이를 성장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지, 그 지원으로 아이의 성적이 오를 때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부모는 조력자일 뿐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 아이의 성적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초,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학습 능력을 잘 발휘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서적인 안정이다. 교육의 기본 개념은 안정되고 건강한 부모 밑에서 부모의 삶을 모델링하고, 문제가 있을 때는 부모와 의논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지금 배우는 지식의 양이 아니라 ‘열심히 하는 태도’를 배우기 위한 것임을 유념할 것이다.

 

 

 

‘아이가 이렇게 자랐으면 좋겠다’라는 것은 아이를 그만큼 완벽하게 잘 뒷바라지하겠다는 부모의 사랑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이고 요구이다. 부모가 불안해서 아이를 자기 통제 하에 두고 자신이 원하는 아이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야 아이가 건강할 것 같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을 것 같고, 사회생활도 잘할 것 같다고 말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아이는 ‘아이 자신’이 아니라 부모의 불안이 만들어놓은 꼭두각시 인형일 뿐이다. / 247p

 

 

많은 슈퍼맘들은 자신의 슈퍼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에게 슈퍼키드가 되라고 강요하고, 결국 자신이 가진 불안보다 더 큰 슈퍼 불안을 아이에게 심어주고 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아이를 죽이는 것이다.

혹여 ‘아이가 공부를 너무 못한다. 열심히 하는 것 같지만 이 아이는 공부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고 판단되면, 그 아이 인생에 다른 몫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마라. 그것을 못 견디고 이후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걱정하면 엄마나 아빠 모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부족하면 그것은 그 아이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부모는 그저 아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 348p

 

 

 

   아이를 훈육할 때는 가르치고자 하는 말을 머릿속으로 정리한 후, 딱 그 말만 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훈계라도 여러 번 하면 잔소리가 될 뿐 더 이상 훈계가 아니다. 그저 ‘소음’일 뿐이다. 대부분 생활 습관이나 예절과 관련된 일로 훈계를 하는데, 이때는 부모가 모범적인 행동을 보임으로써 모델링이 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한 아이가 너무 몰입하고 있을 때는 그 즉시 혼내지 말 것, 분명한 원칙과 잘못된 이유만 설명할 것, 부모가 감정적인 순간에는 그 순간에 훈계하지 말 것, 혼낼 때는 반드시 사무적으로 단호하게 말할 것, 자기가 편하자고 혼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것, 중립적이고 제안적인 표현을 쓸 것, 상황을 일반화해서 표현할 것을 유념하고 교육이라는 핑계로 훈육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을 것을 권한다. 그간 부모라는 입장을 앞세워 아이에게 ‘엄마니까’, ‘부모니까’ 당연히 해도 된다고 생각했던 말과 행동들에 대해 반성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렇듯 책은 아이의 친구 관계와 인성, 건강, 안전 문제를 비롯하여 양가 어른들 문제, 맞벌이와 아빠의 육아 참여, 아이 맡기기, 아이의 경제관념,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때와 같이 생활 전반에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까지 함께 모색해 보는 기회를 갖는다. 무엇보다 부부가 각자의 입장에서 불안을 극복할 수 있는 대처법을 다각도로 분석해준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과 위로, 해법을 동시에 찾을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행복한 부모가 행복한 아이를 만든다는 점이었다. 불안을 낮추기 위한 부부의 대화법, 무관심한 듯한 남편을 이해하고 함께 육아에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끄는 현명한 방법,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상대의 불안을 공유하는 방법 등은 나와 남편이 함께 읽으면 좋은 내용이어서 더욱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우리 부부의 모습이 아이에게 모델링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고 지혜롭게 상황을 대처할 것을 다짐해본다.

 

 

 

 엄마들은 아빠들이 가사에 서툴고, 아이에 대해 잘 모르고, 또한 자기 마음을 잘 몰라주더라도, 화내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빠들이 잘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어야 하고, 아이에 대한 정보를 주어야 하고, 자신의 마음을 차분히 설명해야 한다.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면 절대 안 된다. (중략) 엄마들은 너무 불안해서 자신이 미리 알아서 다 처리해버리고, 아빠들이 그 속도를 못 쫓아온다며 화를 내기도 한다. 이럴 때 아빠들은 자기가 해야 하는 행동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양육을 아빠와 함께 하고 싶다면, 엄마들은 이 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 277p

 

 

연구기관은 초보 아빠의 62%가 산후우울증의 초기 단계인 베이비 블루스를 경험한다고 밝혔다. (중략) 아빠들이 베이비 블루스를 느끼는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인 부담 때문이다. 아빠들의 경제적인 부담감은 죄의식이 되기도 하고, 분노가 되어 아기를 낳은 아내한테 화를 내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엄마들의 산후우울증은 호르몬 탓이라 1~2개월이면 사라지지만 아빠들의 베이비 블루스는 심리적인 탓이라 가만두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아내의 관심이다. 남편의 부담감을 이해하고, 관심을 가져주고, 아이와 편안히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육아를 도와주는 시간이 아니라)을 마련해야 한다. / 332p

 

 

 

 

 

 

   그러고 보면 유독 요즘 엄마들에게서 불안의 징후가 더욱 두드러지는 듯하다. 저자는 지금 엄마들은 옛날보다 훨씬 많이 배우고, 수많은 책과 정보를 통해 더 나은 육아 기술을 알고 또 사용하고 있지만 자신의 육아 방식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불안이 더 가중된다고 말한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얄팍하고 단편적인 지식들에 의지해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체득해야 할 철학이나 개념이 부족하고, 자신의 생각을 미처 정립하지 못한 채 자아도 찾아야 하고 아이도 잘 키워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엄마가 되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수시로 불안해하며 육아와 나 자신을 위한 자아실현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이 왕왕 있기 때문에 어쩌면 나의 가장 큰 불안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어느 누구도 한 가지 정체성만 갖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장에 있을 때, 아내로 있을 때, 아이를 보살필 때의 나의 모습을 모두 편안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정체성을 통합해서 받아들이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상담, 독서, 명상을 통해 자기 자신을 자주 들여다보며 현실과 본능적인 욕구를 조절하는 자아 기능을 강화시키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짐으로써 아이를 키우는 과정 속에 도태나 상실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성장과 발전이 있다고 여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확신이 없고 불안한 육아 방식은 생각보다 아이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다양한 육아 방식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의 선택을 믿을 것, 그것이 아이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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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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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증오, 차별과 불안이 증폭된 시대를 진단하다!

우리 사회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미래의 방향성을 모색해 보기 위해 지금 당장 읽어야 할 책!  

 

 

 

 

 

   '극혐', '여혐(여성혐오)', 성소수자 혐오 및 영호남을 가르는 지역 혐오까지 언제부턴가 '혐오'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야말로 '혐오사회'다. 성소수자와 다양한 인종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양성평등의 조건을 구조적으로 갖추려는 시도들이 계속되면서 과거에 비하면 참 살만한 세상이라고들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분법적 사고와 증오를 야기하는 갈등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만 갈 뿐이다. 물론 저마다 추구하는 성향이란 게 있고 싫으면 싫다고 감정 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집단의 감정으로 응고되어 변질되고 증폭하여 폭력과 광기를 양산하기까지 하는 것은 더 이상 간과할 수없는 사회 문제다. 우리는 왜 지속해서 증오와 혐오를 반복하는가? 증오와 혐오를 부추기는 것들은 대체 무엇인가.

 

 

 

   전 세계의 분쟁지역을 다니며 독일의 저널리스트로 활약한 카롤린 엠케는 <혐오사회>를 통해 이주민, 흑인, 성소수자, 여성들을 향한 증오와 혐오의 메커니즘을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이 무엇인지 논의하고자 한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대고발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증오와 혐오의 문제에 우리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고 책임을 나누어야 하는지 엄중하고도 신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배제의 메커니즘과 인간을 박해하는 섬뜩한 공격성

 

 

   카롤린 엠케는 혐오와 증오는 자연발생한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따라 집단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라고 말한다. 사회문제의 기원이나 원인이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 결과인 것이다. 종교가 다르거나 아예 없는 사람들, 겉모습이나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혐오와 멸시가 계속 심화되고 확대되면 결국 모든 사람이 해를 입게 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우리는 증오와 혐오를 그 이데올로기적 전제들로부터 분리해 어떤 역사적, 지역적, 문화적 맥락에서 발생해 작동하고 있는지 고찰해야 한다. 증오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근원과 증오가 날뛸 수 있게 하는 구조, 증오가 작동하는 기제를 파악해야만 그것에 대응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 1장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는 일반적인 기준과 뭔가 달라 보인다는 이유로 마치 보이지 않는 존재로 치부하는 인간 내부의 섬뜩한 공격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배제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한다.

 

 

 

   책 속에서 설명하는 클라우스니츠 동영상의 장면은 증오와 혐오가 야기하는 모순된 구조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동영상에는 버스에 타고 있는 난민들에게 집단으로 고함, 시위, 비방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담겨져 있다. 난민들을 태운 버스가 마치 한 마리의 짐승처럼 쫓기다가 결국 붙잡히는 일종의 '사냥'처럼 구성되어 있다. 그날 버스에 타고 있던 난민들은 개개인으로서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보편적인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각자 특유한 개인사와 경험, 특징을 지닌 인간 존재임을 부정당했다. 아무 힘도 없어 보이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간신히 지켜낸 비닐봉지나 배낭에 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이었지만 엄청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존재로 규정되어 증오해 마땅한 사람들로 인식된 것이다.

 

 

 

   반면 버스를 둘러싸고 있는 부류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구호를 외치고 고함치는 이들이고, 또 하나는 멀찍이서 구경꾼처럼 바라만 보고 있는 이들이며 나머지 하나는 경찰관들이다. 저자는 동영상을 반복해서 볼수록 버스 바로 앞에서 고함을 지르는 무리보다 그 구경꾼들에 더 의아해진다. 왜 이들은 아무도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가? 멀찍이서 바라만 보는 이들은 증오를 발산하는 무리의 목소리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마치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경찰관들 역시 마찬가지다. 무기력과 속수무책의 중간쯤에서 이도 저도 아닌 태도를 보이는 것은 시위자들에게 계속해도 된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복합적인 배제의 메커니즘, 즉 난민들을 증오해 마땅하다고 인지하게 하는 시각과 지각 패턴은 대체 어디서 유래하는 것일까?

 

 

 

분노에는 언제나 그것이 발생하고 표명되는 특정한 맥락이 있다. 증오의 근거로 언급되는 이유들, 어떤 집단이 증오해야 '마땅하다'며 갖다 대는 이유들은 누군가가 구체적인 역사적 문화적 틀 안에서 산출해낸 것일 수밖에 없다. (중략) 강렬하고 열렬한 증오는 오랫동안 냉철하게 벼려온, 심지어 세대를 넘어 전해온 관습과 신념의 결과물이다. "집단적인 증오와 멸시 성향이 생겨나려면 (중략) 사회적으로 증오와 멸시를 당하는 이들이 오히려 사회에 피해나 위험이나 위협을 가한다고 주장하는 이데올로기가 있어야 한다." / 76p

 

 

 

   저자는 클라우스니츠에서 증오를 일으킨 이데올로기는 클라우스니츠 안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작센 주 안에서만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난민들을 원칙적으로 자신과 동등하며 고유한 존엄을 지닌 인간으로 볼 수 없게 만드는 모든 인터넷 포럼과 토론 포럼, 출판물, 토크쇼 등의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오로지 전체를 대표하는 표상으로 모든 남녀 무슬림 또는 이주자를 테러리스트 또는 미개한 '야만인'으로만 혐오스럽게 묘사하는 매체들의 심각한 문제는 이들에 대한 다른 면모를 상상하는 일 자체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증오의 공급자들과 증오와 공포를 이용해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공포의 부당이득자들, 스스로 행동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동조적으로 용인하는 사람들 역시 증오를 가능하게 하고 확장한다. 폭력과 위협이라는 수단은 지지하지 않더라도 은밀하게 이를 묵인하고 방조하지 않았더라면 증오는 결코 그렇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해 묵인하고 방조했던 우리 모두는 ‘증오에의 공모’에 가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종교가 다르거나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거나 모습이 다른 사람들은 마치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림자도 생기지 않는 존재처럼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되고 무시되는 곳들이. 상규에 들어맞지 않는 사람은 바닥에 밀쳐 쓰러뜨리는 곳, 아무도 그가 다시 일어나도록 도와주지 않는 곳,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곳, 뭔가 다르다고 괴물 같은 존재로 취급하는 모든 곳, 바로 거기서 증오에의 공모가 일어난다. / 94p

 

 

 

   저자는 증오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보다 근본적인 메커니즘을 동질성, 본연성, 순수성에 있다고 진단한다. 동질성은 절대적인 ‘같음’ 만이 동질성으로 간주되고, 다른 모든 것은 배제하고 거부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반드시 건강을 유지해야만 하는 국가의 몸이라는 생물정치학적 환상은 아주 작은 차이 앞에서도 공포를 촉발한다. 마치 단일 국가라는 이미지에 맞추어 공동체를 동화시키고, 자신들의 동질적 국가 또는 민족이라는 관념에 어긋나는 모든 의견과 관점을 불편하게 치부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가 국정교과서에 유달리 관심을 갖는다는 저자의 견해는 어쩐지 우리를 떠올리게 해서 간담이 서늘해지기도 한다.

 

 

 

   본연성이란 신념이나 정체성은 어떤 본원적인 이데올로기나 본연의 질서에서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더 훌륭하고 중요하며 더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국가적 사회적 규제와 규율에 따라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으로 지정한 성별 역할을 본연성이라 규정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저자는 이로 인해 지정된 성별을 혼란스럽게 만든다며 배제시킨 많은 트랜스인들을 향한 왜곡된 증오와 멸시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이어서 순수성은 ‘초국가적인 우리’를 내세우며 순수함을 숭배함으로써 자신들이 가장 높은 지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IS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IS가 폭력으로써 세우고자 하는 것은 모든 해로운 열정들을 위생적으로 제거한, 엄격하게 경건한 질서다. 이 순수의 페티시즘은 모든 혼종, 모든 다원성에 극렬히 반대한다. 다양한 종교적 신념과 실천방식이 서로 공존할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집단적 폭력과 광기를 유발시킨다.

 

 

 

순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찬미

 

 

   우리가 증오와 혐오에 맞서기 위해서는 순수하지 않은 것과 다른 것을 옹호하는 자세, 즉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사회 구성원에게 안정감과 신뢰를 가져다준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가 다양한 삶의 방식과 다양한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허용하고 용인한다는 것을 느끼면, 나 자신이 상처 입기 쉬운 존재라는 느낌이 줄어들며 개인적으로 나와는 거리감이 있는 삶이나 표현 형태에도 마음의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또한 ‘진실 말하기’를 통해 현실을 협소하게 파악하는 인식의 틀과 개인들을 단지 한 집단을 대표하는 표본으로만 보는 잘못된 일반화를 해부하고 해체할 수 있는 논의들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종교와 정치와 성의 다양한 양상들이 자유롭게 번영할 수 있는 개방적이고 다원적인 사회를 수호할 의무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종교나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멸시받고 위협당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차별을 감지해내는 일, 사회적 공간이나 담론의 공간에서 추방된 이들에게 그 공간들을 열어주는 것과 같은 작은 일들이다. 어떠면 증오에 대항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는 고립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략) 자기 밖으로 나와 다른 이들을 향해 가는 움직임, 그리하여 그들과 함께 사회적 공간, 공공의 공간을 다시 열기 위한 움직임 말이다. / 27p

 

 

모두가 지켜야 할 것도 바로 그 존엄이다. 스태든 아일랜드에서든 클라우스니츠에서든 이 증오, 이 폭력은 "오늘부로 끝장나야 한다." 감정을 정치적 논증으로 끌어올리는 포퓰리즘, 명백한 인종주의를 뻔뻔하게 은폐하는 '불안'과 '걱정' 같은 수사적 가리개는 "오늘부로 끝장나야 한다." 모든 감정적 혼란과 내면의 천박함과 그릇된 음모론적 확신을 침범할 수 없고 진실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고 그럼으로써 비판적 자기반성과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공적인 담론은 "오늘부로 끝장나야 한다" / 126p

 

 

 

   이렇듯 <혐오사회>는 증오와 혐오의 메커니즘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판단함으로써 방조와 방치가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책임을 나눠야할 문제라는 점을 격려한다. 더 이상 피해자 당사자들의 문제로만 떠넘겨서는 혐오 사회를 극복할 수 없다. 난민 문제가, 성소수자들의 문제가 여성 혐오 문제가 일부 특정 개인 및 집단의 문제로 인식하고 방관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고 고민해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책은 매우 유의미하다. "오늘부로 끝장나야 한다."는 이 강렬한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변화와 자성의 목소리를 드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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