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집에 머물다
박다비 지음 / 상상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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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라는 시간의 아날로그 정서를 품고 사는 부부의 이야기

때로는 무모하지만 그래서 더 따뜻한 부부만의 철학이 담긴 공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다!

 

 

 

   반듯반듯하게 올라간 회색 건물들, 우리는 외부로 드러나는 수많은 창으로 나마 그곳에서 누군가가 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들의 삶까지 쉽사리 가늠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살고 있다.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 오며가며 마주치는 눈길의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는 무미건조한 관계 속에서 이웃사촌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처럼 느껴진다. 단출하게 두 사람만 살던 신혼살림이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늘어나기 시작하자 더 이상 이사를 미룰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집을 알아보던 게 불과 몇 달 전이었다. 개인적으로 고층 아파트를 선호하지 않는 까닭에 주택이나 빌라를 찾아보고 있던 중, 신랑이 아주 오래된 한옥집 하나가 찍힌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언뜻 보아도 수리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은 대공사 수준의 낡은 옛집이었다.

 

 

 

   사실 신랑이 인테리어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공사에 대한 두려움은 크게 없는 편이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고 어디에다 말하기에도 낯부끄러울 정도로 손이 많이 갈 것 같아서 지레 포기 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아직은 아이가 어려서 아무리 단열에 공을 들인다 하여도 옛집이다보니 우풍이 있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이 모든 이유를 뒤로하고 교통이나 아이의 교육환경이 안정적인 곳이었다면, 큰마음 먹고 덤벼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간 남편이 꾸민 2번의 사무실이 한옥집을 개조해서 꾸민 것이었는데 그 감성이 좋아서, 그만의 남다른 매력에 반해버려서 이 정도라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사정이 있어서일까, 줄곧 제주도에 살고 싶었던 어느 부부가 100년이 된 집을 구입해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겠다며 나선 이야기가 있어 마음이 끌렸다. 그럴 듯한 인테리어 업체에 수리를 맡긴 게 아니라 부부가 직접 자재를 사다 나르고, 미장에 단열작업에 텃밭이나 마당꾸미는 일까지 손수 하나하나 땀흘려 자신들만의 집을 완성해가는 모습이 담긴 책이었다. 그야말로 '사서 고생'을 하는 격인 셈이었지만 공사를 하며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배우고, 작은 것들을 가치를 배운 부부의 모습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옛 것이 들려주는 이야기

 

 

   “제주에서 살고 싶어”라는 여자의 말에 “난 어디라도 상관없어. ‘어디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인지’가 더 중요하니까.”라고 말했던 남자. 그들은 그렇게 누군가가 ‘귤’이라고 부르는 섬, 제주에 살게 되었다. 100년이 된 아주 오래된 집을 찾아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하는 이들 부부의 남다른 결심에 놀란 것도 잠시, 매일 70km를 왔다갔다하며 전문 업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이 오래된 집의 본질을 지켜가며 그들 스스로 공사를 시작하기로 마음먹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기대 반 걱정 반, 부부의 마음이 충분히 짐작될 정도로 무모하다싶을 결정이었지만, 어쩐지 이 부부만의 힘찬 도전에 응원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30년도 채 살지 못한 내가 무슨 권리로 100년을 산 이 집을 허물 수 있겠냐던 저자의 말 때문일까. 100년이라는 세월동안 켜켜이 쌓아온 시간과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이 오래된 집을 마주하며 부부가 느꼈을 경외감이 참으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한옥의 미를 고스란히 간직한 서까래의 매력을 나 역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고스란히 살리는 방향으로 공사를 시작한 이들 부부의 결정이 아름답기까지 했다. 나의 남편 역시 사무실을 공사할 때 서까래를 살리는 방향으로 작업을 진행했는데, 최초에 이 작업을 했던 목수가 새겨놓은 작업 날짜를 보며 그 오랜 세월의 기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제주의 이 부부가 오랜 세월동안 제주의 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튼튼하게 버티고 있었던 나무와 자연적으로 생긴 모든 흔적들을 최대한 살리고자한 노력들이 참 예뻐 보였다.

 

 

 

어쩌면 이 나무는 이 집이 지내온 세월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지내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오랜 세월을 그 거센 제주의 바람을 맞으며 이 집을 지켜온 것이다. 가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문제나 상황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거나 결정해버리곤 한다. 100년이 된 집은 너무 오래되었으니, 분명히 그 속까지도 많이 상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부수고 새로 건물을 올리라고 얘기하는 것 또한 그렇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 이 오랜 보물섬 같은 집을 부숴버렸다면, 오랜 세월 견고하게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나무들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중략) 하지만 자연은 우리 생각처럼 그리 가볍거나, 약한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콘크리트나 다른 재료들보다도 훨씬 더 강하고, 견고하고, 따뜻하고, 인내심이 있는 것이 바로 자연에서 온 것들이다. 흙이나 돌, 그리고 나무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이것이 바로 100년 된 집에서 발견한 나무가 우리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 30p

 

 

 

 

 

 

   부부는 100년 된 집이다 보니 곳곳에 오랜 세월 이 집과 함께 해온 옛 물건들이 나타날 때마다 묘한 감동을 받았다. 그 옛날 주인 할머니가 혼수로 들고 왔을지 모를 반닫이장, 나무 문살과 창호지로 만들어진 미닫이문, 누군가 귀하게 모셔놓고 좋은 날에만 신었을 가죽 구두 한 켤레, 오래된 장식장에서 나온 꽃무늬 그릇들 등등 구멍이 나고 빛이 바랬지만 세월의 흔적을 꾹꾹 눌러 담은 그 물건들에 마음이 끌렸다. 나 역시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맡을 수 있었던 냄새, 작은 방 한 구석에 놓인 오래된 가구들, 작은 요강까지 기억 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 보니 갑자기 그것들이 그리워졌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썼던 그 옛 물건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의 우리는 버림에 익숙하다. 새로운 것들이 너무 많이 시장에 나오기 때문일까? 조금만 낡거나 혹은 유행이 지났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너무 쉽게 버리고 있다. 과연 귀하게 여기는 무언가가 하나라도 있을지 궁금하다. '귀하다'는 것은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가 있어 아끼고 보살피게 되는 것이다. 낡았다는 이유로 버릴 수 없는 그 무엇, 옛것들은 또한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누군지 모를 그 누군가에게는 매우 귀한 무언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 32p

 

 

직접 만든 다른 문들도 좋지만, 가장 마음에 가는 문이다. 마치 이곳의 오랜 날들을 모두 품고 있을 것만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문이 만들어진 방식도 참 예스럽고 소중하다. 못 하나 쓰지 않고 하나하나 끼워 맞춰 만들어진 문이다. 문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튼튼하게 제 몫을 톡톡히 한다. 이 문처럼 오래되어 낡아 보이고, 조금 촌스러울지라도 만든 이의 손길이 느껴지는 소중함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 87p 

 

 

 

삐뚤빼뚤해도 괜찮아

 

 

   참 손재주가 많은 부부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지간해서는 덤벼들기 쉽지 않은 타일 붙이기, 보일러 선 깔기, 세면대 설치는 물론이고 목자재를 구입해 직접 멋진 데크를 만들고 판석과 자갈을 이용해 멋진 마당까지 완성해가는 그들의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그 사이 의견이 부딪치는 일이 왕왕 일어나고, 날씨가 변덕을 부릴 때도 있으며, 어깨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뒤따르기는 했지만 그들은 묵묵히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어가며 멋진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완성해갔다. 화려한 조명이 없어도, 무더위에 에어컨 하나 없이 살아야 하더라도 작은 것의 가치를 지키며 환경까지 생각하려는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묻어나는 멋진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시골에서 산다는 것은 이런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내 손으로 무언가 뚝딱뚝딱 만들 수 있다는 것. 멋지거나 근사하지 않아도 괜찮다. 누구도 못났다고 타박하지 않는다. 직접 땀 흘리고, 손에 흙먼지 묻히며 해볼 수 있는 것, 살아볼 수 있는 삶. 이것이 나와 J가 시골에서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 130p

 

 

 

 

 

 

 

   부부는 현재도 멋진 제주 라이프를 꿈꾸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해 하나둘씩 찾아오는 손님과 애틋하고 다정한 시간을 나누고, 소소하지만 편안한 시골 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직접 손으로 일구어 나를 닮은 공간을 만들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누가 알든 모르든,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전해지고 영향을 준다면 우리가 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옆에서 지금처럼의 관심과 사랑으로 자유로운 하루를 살자.’고 아내에게 전하는 J의 마지막 메시지를 끝으로 책을 덮으며 나는 이들 부부의 삶을 응원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차에 이들 부부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한번 묵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닿으면 그들에게 찾아가 꾸며진 제주도가 아니라 본연 그대로의 제주도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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