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
황교익 지음 / 지식너머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고 보지 못했던 한국음식의 판타지를 들추어내다!

음식에 관한 불편하고 낯설지만 엄정한 진실과 마주하는 시간!

 

 

 

   2019년의 대한민국은 ‘맛집 천국’의 시대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만 하더라도 ‘안지랑 곱창 골목’, ‘평화시장 똥집 골목’, ‘동인동 찜갈비 골목’ 등 특정 지역에 특정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으로만 형성된 맛집 골목이 곳곳에 들어서있다. 그 중 한 맛집 골목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나는 집집마다 식당을 다녀간 연예인 사진 및 방송 출현 정보가 노출되어 있는 현수막이나, 여행사 직원을 따라 해외 관광객들이 우르르 어느 한 식당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곤 한다. 때로 누군가가 나에게 다가와 여기 골목에서 가장 맛있는 곳을 추천해달라고 물어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나는 마음이 조금 불편해진다. 사실 이곳 골목 대부분의 식당이 한 제조사에서 공급되는 식재료를 받아서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조리 방식이나 첨가하는 재료, 소스의 차이는 있겠지만 미리 손질된 재료와 똑같은 양념에 버무려진 기본 재료를 공급받아 사용하는 만큼 기본적인 맛의 차이는 크게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속사정을 알고 보니 이 집을 가도 저 집을 가도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대답을 앞두고 나는 조금 민망해지는 것이었다.

 

 

 

   언제부턴가 TV 정보 프로그램에서는 콘텐츠의 절반 이상을 음식에 할애하고 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SNS에서도 ‘맛집’이라는 단어의 해시태그가 넘쳐나고, 음식과 관련된 이미지와 영상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맛에서 건강을 찾고, 맛에서 쾌락을 느끼며, 맛으로 민족주의에 가까운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일에까지 너무 몰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염려가 되는 요즘이다.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은 자신의 저서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를 통해서 ‘음식에 대한 추억과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곧 개인과 집단의 음식에 대한 현재적 욕망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 ‘맛집 찬양 열풍’과 ‘먹방’, ‘내가 먹은 것을 공유’하는 것으로 대표되는 음식에 관한 판타지에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어떤 욕망을 투여하고 있는 것일까. 또 우리가 열광한 음식에 감춰진 진짜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리는 그것을 꼭 짚어볼 필요가 있다.

 

 

 

불편하고 낯설지만 음식에 관한 위험한 민낯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는 <수요미식회>, <알쓸신잡>과 같은 다수의 방송과 유명 매체를 통해서 익히 알려진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책이다. 그는 책의 말머리에 이 책을 ‘한국인이 한국음식에 붙여둔 판타지를 읽어내는 작업의 결과물’이라 소개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첫 장부터 떡볶이, 치킨, 삼겹살 등을 저격하기 시작한다. 나는 물론 우리가 흔히 맛있게 먹는 음식이다 보니 여기에 딴죽을 거는 게 아무래도 불편해지기는 하지만,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그가 우리의 기호를 좌지우지하는 어떤 ‘힘’에 주목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힘이란, 음식이 거대한 자본과 정치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떤 음식에 대해 맛있다, 맛없다를 개인의 고유한 입맛에 있다고 여기는데, 그는 이를 과감하게 틀렸다고 말하며 음식에 들러붙은 판타지를 거두어들이면 나의 입맛을 교묘하게 조종하고 있는 거대 자본과 정치권력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떡볶이는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서민 음식, 학생 음식 정도의 이미지에 영양의 균형이 좋지 않은 불량식품이라는 이미지도 있었다. 그런데 2009년을 들어 이명박 정부는 이 떡볶이에 ‘세계화할 수 있는 한국 대표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붙임으로써 국민의 머릿속에 ‘우리의 서민 음식인 떡볶이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애국애족 이명박 정부’라는 이미지를 밀어 넣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명박은 음식을 가지고 우리의 의식과 미각을 조작하는 일을 하였다. 바로 여기에는 어떤 숨겨진 사실이 있다. 2000년부터 인도적 차원에서 해마다 40만 톤 정도의 쌀을 북한에 지원하던 것을 이명박 정부에 들어 중단하면서 정부 창고에 쌀이 넘치게 되었고, 쌀 재고를 감당하기 위한 비용이 부담이 되자 쌀 가공 산업에 정책을 집중한 것이 떡볶이와 막걸리였던 것이다. 정부 재고 쌀을 가공업체에 값싸게 넘겨서 떡볶이와 막걸리 제조 판매의 이익을 높이고 “외국인들도 맛있게 먹는 떡볶이와 막걸리이니 국민 여러분들도 사랑해주세요” 와 같은 전략을 펼쳤다. 덕분에 이때부터 떡볶이 관련 프랜차이즈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식 세계화 예산의 많은 부분이 국내 홍보비로 쓰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알 수 있듯이 떡볶이는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으로 대중들에게 각인을 시킨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이라면 치킨을 맛있다고 생각하고, 외국인들도 좋아한다는 한국 치킨을 우리는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도 우리의 입맛을 좌우하게 되었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계사에서는 최대한 많은 닭을 최대한 이른 시일에 잡아 판매하는데, 아직 맛이 들기 전에 잡은 것이라 여러 첨가물을 튀김옷을 입히고 이를 튀겨서 또 양념으로 범벅한 게 우리가 즐겨 먹는 이 치킨이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치킨은 닭고기 본연의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상술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고 나면 치킨을 무조건 맛있다고만은 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기존에 우리가 당연하게 느꼈던 맛에 대한 관성을 뒤흔드는 것으로, 불편하고 낯설지만 우리가 그 이면에 숨겨진 민낯을 들여다보고 엄정히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국가는 국민의 음식에 관여하게 되어 있다. 국민 소득 수준에 맞추어 경제적으로 적절하고 국민의 건강에도 좋은 음식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국가는 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때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하여 국민의 의식과 정서를 조작하지는 말아야 한다. 음식은 문화이다. 음식을 문화라고 하는 까닭은 한 집단의 기호 음식에 그 집단 구성원의 정체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을 정치적 조작 대상으로 삼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문화는 정치 위에 있다. / 21p

 

 

창고에 쌀을 쌓아두면 적어도 우리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 쌀 재고는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일단은, 쌀값이 떨어져 농민이 힘들어진다. 쌀을 창고에 쌓아놓는 데에도 돈이 든다. 국내산 쌀 10만 톤을 보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연간 300억 원 정도이다. 당장에 예전처럼 북한에 해마다 40만 톤을 지원하면 1,200억 원을 아낄 수 있다. / 23p

 

 

 

 

 

 

   1부인 ‘갑과 을의 밥상’ 편에서 길들여진 맛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들여다봤다면, 2부 ‘한식 세계화 네버다이’ 편에서는 정부 주도에 의한 한식 세계화의 모순을 살펴본다. 한국인이라면 한국음식에 대한 자존심을 다들 어느 정도씩은 가지고 있을 텐데, 이를 정책적으로 확장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나온 정책이 한식 세계화다. 정부가 한식 세계화 정책을 실행하려면, 한식에 대한 개념이 행정적으로, 나아가 법적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무엇이 한식인지 행정적, 법적으로 분명하여야 정책 지원의 대상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K팝 세계화 정책을 편다고 가정했을 때, K팝을 지원하려면 한국어 가사가 절반 이상이어야 하고, 음률에서 한국 고유의 정서가 느껴져야 한다는 등의 행정적, 법적 개념의 기준을 정한다면 이것을 과연 옳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음식 역시 문화라고 말한다. 음식을 문화라고 하는 까닭은, 음식에 그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삶의 정체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식을 세계적으로 알리면 좋지 그에 무슨 대수냐고 할 수는 있다. 또 대한민국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 그러나 한식을 법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곧 그 한식을 먹고 있는 한국인의 삶의 정체성을 법으로 규정하겠다는 뜻이다. 한반도의 한국인이 먹는 음식을 한식이라는 이름으로 법적인 정의를 하겠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가 아닐까, 저자는 이렇게 쓴소리를 내뱉는다.

 

 

 

   이어 비빔밥, 김밥, 남도 음식, 한정식과 같이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에 심어진 편견과 판타지를 들여다보는 내용은 특히 흥미롭다. 이 중 비빔밥의 경우, 저자는 ‘스스로 맥도날드화한 비빔밥’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전국 어디를 가도 비슷한 고착화된 구성의 비빔밥을 지적한다. 이 음식의 유래가 담긴 몇몇 고서들을 살펴보면 비빔밥이 서민 음식임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을 볼 수 있는데, 언제부턴가 문득 비빔밥이 궁중음식이라는 주장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왕족은 지금의 서울인 한양에 살았음에도 조선 왕족이 전주 이씨였다는 사실을 앞세우며 전주비빔밥을 궁중음식의 직계로 만들었다. 세계의 모든 전통음식 또는 향토음식이 대체로 전통 조작에 자유롭지 않으며, 이 정도의 조작은 마케팅 차원에서 호용되는 것이 관례이다. 문제는 이 조작을 사실로 확고하게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궁중음식 무형문화재 황혜성이 이랬다” 하며! 그러면서 비빔밥에 고착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렇게 이렇게 조리하는 것이 전통이다” 하고 고집하게 된 것이다. 여러 재료를 밥 위에 동그랗게 둘러서 내는 고착인데, 이걸 두고 오방색에 맞추니 어쩌니 하며 이 구성을 따르니 비빔밥의 계절성은 버려졌고 식당마다의 개성도 잃은 것이다. 비빔밥이란 지역과 계절에 따라 애초에 다양한 변주를 보일 수 있는 음식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궁중음식이고 전통이니 이걸 지켜야 한다고 너무 깊게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 고민해볼 문제다.

 

 

현재 한국인의 먹을거리에는 일제의 흔적이 깊게 남아 있다. 그 흔적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버겁다. 민족적 자존심을 건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프더라도, 직시할 것은 그리 보아야 한다. 일제에 대립의 각을 너무 날카롭게 세우다보면 ‘우리의 것’이 옹졸해질 수 있다. 광복한 지 두 세대를 넘기고 있다. 이즈음이면 간장과 된장에 왜와 조선이라는 접두어는 붙이지 않아도 된다. 단 한 종류의 장을 두고 조선장이라 고집하는 것은 발효 강국이라 스스로 자랑삼는 한국에 어울리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 137p

 

 

산업화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지역,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은 지역에 우리의 옛 삶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둘러보니, 전라도 지역이 그랬다. (중략)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먼저 남도를 훑었다. 남도소리, 남도춤, 남도문학, 남도문화, 남도 그 무엇을 발굴하여 중앙무대에 올렸다. 그 안에 남도음식도 묻어 들어갔다. 남도의 것은 산업화로 망가지지 않은 한국인의 원형이 담겨 있고, 이를 우리는 보존하고 향유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니 ‘남도’가 붙은 그 모든 것은 우월적 가치를 가지는 듯이 포장되어야 했다. 남도 음식이기만 하면 맛있다고 생각하는 버릇을 스스로 만들어내어야 했다. 그렇게 남도음식은 ‘생각하기에 맛있는 음식’으로 한국인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 163p

 

 

 

 

 

 

시대적 필요에 의해 음식은 정치적 그 무엇이 된다

 

 

   3부 ‘웅녀는 마늘을 먹지 않았다’ 편에서는 한민족 전통 음식에 관한 재해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간다. 이를 테면 우리가 흔히 ‘미숫가루’라고 말하는 미수를 추억하고, 단군신화 속에서 곰이 먹었다던 마늘이 실은 외래종으로 고려시대에 들어온 것이기에 달래로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새로운 해석과, 떡과 떡국을 통해 공동체의 정서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반면 향토음식의 유래와 역사를 들여다보며 오늘날 조작된 전통을 갖다 붙여 제멋대로 스토리텔링을 한 각 시도군의 정책을 비판하기도 한다. 이는 곧 마지막 4부인 ‘맛 칼럼니스트는 정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편과 연결되어 정치가 개입된 음식 문화의 불편한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나아간다. 하다못해 밥그릇 규격까지 관여하고 칼국수를 정치적인 음식으로 이용하며 한반도의 자연은 천일염 생산에 불리한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천일염 기술을 도입해 청정 갯벌을 썩게 하는 문제점 등은 씁쓸함을 남긴다. 덕분에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음식이 정치적인 성향에 의해 얼룩져있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그간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었던 것인지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입니다. 그런데 축제가 없어요. 스페인 토마토 축제 등 서양의 유명한 축제들이 오랜 전통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산업 국가로 운영되면서 노동자들이 한바탕 신나게 열정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축제가 기획된 거죠. 지금 우리 시대 노동자들이 한바탕 신나게 놀 수 있는 날이 있는지 생각해보면, 없습니다. 국가는 추석 물가를 내놓을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한바탕 놀 수 있을까’라는 궁리를 해야죠. 언제까지 집마다 차례상 음식 마련에 전전긍긍하도록, 여성들을 부엌에 가두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봐야만 합니다.” / 274p

 

 

지름 105mm에 높이 60mm의 밥그릇 규격은 박정희 유신 정부의 작품이다. 쌀이 부족하던 1970년대 절미운동을 벌이면서 강제한 밥그릇이다. 밥을 적게 먹자고 말로 계도하는 것에 한계가 있으니 아예 밥그릇을 작게 만들고, 이 밥그릇에 밥을 담아 팔지 않으면 행정 조처를 취하였다. 1976년 6월 29일 서울시가 요식협회에 통보한 바에 의하면, 이 규격의 밥그릇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1차 위반은 1개월 영업 정지, 2차 위반은 허가 취소였다. 이 밥그릇을 ‘공기’라 하였는데, 1970년대 초부터 행정 지도가 있었으며 1980년대 초까지 정부는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이 공기의 보급을 밀어붙였다. / 284p

 

 

 

 

 

 

   그러고 보면 먹을거리를 선택하는 문제가 비정치적인 일인 듯이 말하는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던 저자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이들은 대체로 지금의 먹을거리 산업과 관련하여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그들에게 이득을 주는 먹을거리 산업에 탈정치적인 포장을 한다. 오히려 “먹는데 정치 이야기하지 맙시다” 하며 변화를 막는다. 하여 맛 칼럼니스트가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에 불만을 드러내는 이들에게 저자는 “민주공화국의 정치는 시민의 일상이다. 정치를 왕이나 귀족이 하던 시대와는 다르다. 민주공화국의 시민이면 모두 정치를 해야 한다. 매일의 밥상에서 정치를 해야 한다. 내 밥상에 왜 이런저런 음식이 올랐는지 정치적으로 따져야 한다. 민주공화국의 주인이 바로 시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애석하게도 음식이 정치의 대상이 된 이상 우리도 주체적이고 정치적으로 따져 물어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뜻에서 『음식은 어떻게 신화가 되는가』는 익숙한 것에 길들여져 있던 관성을 버리고 보다 진정성 있는 음식 문화를 고찰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하는 꽤 의미 있는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주 셀프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앨리스 리 외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로맨틱한 도시의 정경과 청정 자연의 은혜로움을 가득 품은 곳, 호주!

쉽고 빠르게, 호주를 즐기는 가장 완벽한 방법!

 

 

   대학교 재학 시절,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해 떠나는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이 보내주는 사진 속의 시드니는 항상 푸른 하늘과 온화한 날씨로 도시 자체에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 중 페리를 타고 배경으로 찍은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는 나를 단숨에 호주 앓이에 빠져들게 했다. 특히 숨 막힐 정도로 맑고 푸른 하늘과 로맨틱한 도시의 아름다움은 물론 광활한 자연의 청명한 매력까지 갖춘 호주는 보면 볼수록 살아보고 싶은 여행의 로망을 실현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후회되는 것은 그때 친구들이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을 때 나서지 못한 일이다. 『호주 셀프트래블』을 읽으면서 문득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기회가 생긴다면 동남아에서의 휴양도 좋지만 가족 여행에 손색이 없다는 시드니와 골드코스트 핵심 코스를 돌아보는 건 어떨까,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완전 정복, 호주를 여행하는 아주 특별한 방법

 

 

   호주는 대륙이 하나의 나라로 이루어진 유일한 나라로, 면적은 세계 6위지만 인구 밀도가 낮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해안을 따라 발달한 도시에 살고 있다. 수도인 캔버라를 기준으로 한국과 1시간의 시차(섬머 타임에는 2시간)가 있고, 호주 내에서도 시차가 있어 캔버라와 퍼그 간에도 시간이 다르다. 남반구에 위치하고 있어 계절은 한국과 반대이고,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 1년 내내 여행하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또 어디를 가도 저마다의 개성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이 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한 번 방문하면 다시 찾고 싶어지는 매력적인 나라라고 거듭 강조한다고 한다. 이에 『호주 셀프트래블』은 호주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시드니를 중심으로 멜버른,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케언스, 애들레이드, 다윈, 앨리스 스프링스&울룰루, 퍼스, 태즈메이니아 등 크게 10곳은 물론 인접한 근교 지역까지 다양하게 다룸으로써 호주의 매력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책은 ‘호주에 가기 전 가장 많이 묻는 질문 7가지’를 통해 호주 여행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또 셀프트래블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는 ‘추천 일정과 핵심 코스’를 통해 각자의 기호에 맞는 일정과 여행지를 선택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시드니의 별을 찾아 떠나는 여행, 퍼스 고대 지층 자연탐사, 캠핑 카&랜터카 셀프 드라이브 여행과 같이 개성 있고 테마가 있는 여행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추천 일정도 수록되어 있어 마음에 든다. 이어 ‘호주에서 꼭 해봐야 할 모든 것’에서는 호주의 베스트 10과 호주를 더욱 짜릿하게 즐길 수 있는 액티비티, 세계의 다양한 음식들이 공존해있는 호주의 음식, 호주에서 꼭 사와야 하는 쇼핑 리스트도 만나볼 수 있다. 여기에 특별히 많은 관광객들로부터 사랑받는 호주의 귀여운 동물과 다양한 맥주의 맛을 즐길 수 있는 호주의 맥주, 신세계 와인 생산지의 대표적인 곳으로 꼽히는 만큼 호주의 와인과 와이너리를 소개하는 내용도 다루고 있으니 볼거리가 풍부하다.

 

 

 

Q1. 호주는 언제 여행하는 게 좋은가요?

A1. 호주는 1년 평균 강우량이 600mm 미만으로 가장 건조한 대륙이자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어서 1년 내내 여행하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남반구에 있는 나라로 북반구의 한국과는 계절이 정반대이며, 크게 9~11월이 봄, 12~2월은 여름, 3~5월은 가을, 6~8월은 겨울로 나눌 수 있다. 하나의 나라이지만 가장 작은 대륙이기도 해서 각 지역마다 기후 차이가 크다. 북반구가 겨울인 12~2월을 성수기로 꼽히지만, 햇볕은 따뜻하고 바람은 선선한 봄과 가을을 더 추천하기도 한다. 여름에는 울룰루 쪽 사막의 경우 너무 뜨겁고, 호주 서북쪽(브룸~다윈)은 우기로 길이 끊겨 이동이 어려우니 여행 준비 시 각 지역의 날씨를 확인해야 한다. / 20p

 

 

 

 

 

 

호주의 랜드 마크 시드니

호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도시.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가 있는 곳. 시드니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 도시로 손꼽힌다.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드니는 대도시이지만 아름다운 자연이 잘 어우러져 있다.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항구 서큘러 키, 로맨틱한 분위기의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있는 달링 하버, 색색깔의 꽃이 만개하는 시드니 로얄 보타닉 가든, 도심 속 쉼터가 되어주는 하이드 공원, 아름다운 시드니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시드니 타워 전망대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또한 야생 돌고래 크루즈, 사막에서의 모래 썰매, 세상에서 가장 가파른 궤도열차 등 시드니의 근교에서는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 53p

 

 

 

   시드니는 많은 사람들이 호주의 수도를 캔버라가 아니라 이곳을 연상할 만큼 호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도시다. 그중에서도 시내 중심 지역은 시청, 세인트 메리 대성당 등 앤티크한 아름다움이 있는 역사적인 건물과 항구 옆으로 멋진 스카이라인을 만드는 모던한 빌딩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그러면서도 푸르른 항만과 도심 속 초록빛 가득한 정원이 갖춰져 있어 여유와 낭만을 잃지 않는다. 특히 시드니의 랜드 마크인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있는 곳이자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는 서큘러 키&록스 지역이 인상적이다. 여기에서는 단연 페리를 추천! 우리가 꿈꾸던 시드니의 모습이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는 잔잔한 항구를 배경으로 따뜻한 커피나 시원한 맥주 한잔을 기울이며 힐링을 할 수 있을 듯한 달링 하버&센트럴 지역도 눈에 띈다. 여기에서는 시 라이프 시드니 수족관, 와일드라이프 시드니 동물원, 호주 국립 해양 박물관이 있어 아이들이 있다면 이곳 일정을 절대 빼놓지 마시라 추천한다. 이 외에도 시드니의 가장 힙한 곳이라 할 수 있는 브로드웨이 시드니&글리브, 커피 부심이 가득한 호주의 매력적인 아포카토를 즐길 수 있는 뉴타운, 짧은 일정 속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시드니 해변도 잊지 말자.

 

 

 

 

 

 

황금빛 해변의 휴양도시 골드코스트

골드코스트는 전 세계의 여행객들뿐 아니라 호주 현지인들도 휴식과 여가를 위해 즐겨 찾는 휴양도시이다. 브리즈번과 마찬가지로 연중 따뜻한 날씨를 보이며, 황금빛 해변, 서핑을 비롯한 다양한 액티비티로 많은 여행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골드코스트의 해변은 전체 길이가 약 70km에 달하며 그 중심에는 세련된 고층 빌딩들, 밤이 되면 화려하게 변신하는 카빌 애비튜, 그리고 서퍼들에게 최고의 파도를 선사하는 서퍼스 파라다이스 비치가 있다. 골드코스트가 가족 여행지로 잘 알려진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시 월드, 무비월드 등 아이들을 위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넘친다는 점이다. 게다가 호주 최대 규모의 아울렛인 하버 타운과 새롭게 단장한 대형 쇼핑몰인 퍼시픽 페어는 어른들을 끌어들이기에도 충분하다. / 207p

 

 

 

   사실 시드니만큼이나 호주 여행에 있어서 가장 매력적인 곳은 골드코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빛 해변과 해안도로가 시원하게 늘어서있어 셔터만 눌러도 그림엽서가 되는 아름다운 곳이다. 책에서는 서퍼스 파라다이스 비치에서 서핑하기와 골드코스트의 다양한 액티비티 즐기기, 스카이 포인트 전망대에서 골드코스트의 전경 360도로 감상하기를 추천하는데, 아이가 있는 만큼 골드코스트 근교에서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는 커럼빈 와일드라이프 보호구역, 울창한 숲이 펼쳐진 스프링브룩 국립공원 등 장엄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나러 가보고 싶다. 거기다 호주에서 가장 큰 테마파크인 드림월드와 영화 속 히어로들을 만날 수 있는 워너 브라더스 무비월드, 물속의 해양동물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 월드 등 특별하고도 다양한 테마파크가 바로 여기에 다 모여 있으니 절대 놓칠 수 없다.

 

 

 

 

 

 

액티비티의 천국 케언스

케언스는 인공위성에서도 보인다는 산호 군락,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로 가는 교통적 요충지이다. 가까운 섬부터 먼 바다까지, 바닷속 산호가 연출하는 신비한 자연의 모습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장관이다.

에스플러네이드 라군은 1년 내내 따뜻한 기온을 유지해 케언스 시내 최고의 휴식처! 해변을 따라 산책하며 시원한 맥주 한잔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곳이다. 케언스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를 타고 열대우림의 다양한 자연 경관을 즐길 수 있는 곳이자 해양스포츠, 스카이다이빙, 래프팅, 승마, 열기구 등 호주에서 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모두 가능한 곳이다. / 237p

 

 

 

   『호주 셀프트래블』을 보면서 나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은 사진이 하나 있다. 바닷속 산호가 연출하는 신비한 케언스의 바다다. 저 멀리 인공위성에서도 다 보일 정도라 하니 이 청정자연이 내뿜는 푸른 색감은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든 장관임에 틀림없다. 이곳에서는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니모 찾아보기, 급류 4.5등급 배런 강에서 신나는 래프팅, 퀸즐랜드 북부의 열대우림을 정복해보기를 추천하는데, 에너지와 여유를 동시에 누리고 싶다면 케언스를 잊지 말아야겠다.

 

 

 

 

 

 

   그간 셀프트래블 시리즈로 출간되고 있는 다양한 여행 가이드북을 읽으며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새롭게 알게 된 매력적인 여행지에 특히 마음이 더 기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호주 역시 막연하게 동경하기만 했지 주요 도시 외에는 실상 잘 알지 못했던 곳이기에 그 리스트에 꼭 추가하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여행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 언젠가 부모님과 아이 모두 데리고 여행을 해보고 싶은 큰 꿈이 생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그때도 기본에 충실하면서 필요한 정보만 쏙쏙 수록된 셀프트래블을 잊지 않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의 과거
은희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같은 시간을 공유했으나 너무나 달랐던 서로의 기억들!

1970년대의 문화와 풍속들 사이에서 어제의 기억과 오늘을 넘나든 청춘들의 이야기!

 

 

 

   이따금 나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에게서 “그때의 너는 참 미웠다”는 말을 듣곤 한다. 네가 결코 나쁜 행동을 한 게 아닌데 이상하게 네가 너무도 미웠다는 이 묘한 말은 ‘흔한 질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는 것으로 갈무리 되었고, 이는 여러 번의 만남에서 몇 번이나 수다 거리로 되씹혔다. 정작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해에 나는 “착한 척 하지 마라”는 말을 주변의 여자 친구들로부터 끊임없이 들어야 했는데, 그게 다 그녀의 선동질에 의한 것이었음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우리들은 종종 너무나 다른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때가 많다. 언젠가 이 날의 기억을 복기하며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면 간혹 당황스러울 정도로 미처 보지 못했거나 서로가 왜곡했던 사실들이 존재했음을 느끼곤 한다. 스스로가 주인공으로 활약하고 있는 인생이라는 작품 안에서,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는 조연이었던 순간이 있지는 않았을까. 『빛의 과거』를 읽으며 나는 나를 할퀴고 간 상처와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흔적들을 내내 생각했다.

 

 

 

 

 

 

불완전한 우리가 마주친 ‘다름’과 ‘섞임’의 세계

 

 

   『빛의 과거』는 1977년에서 2017년에 이르기까지 한 여대 기숙사에서 만난 여성들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불완전한 청춘의 민낯을 드러내며, 한 개인의 성격 혹은 당대의 풍속과 문화적 격차를 통해 ‘다름’과 ‘섞임’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다룬 소설이다. 2017년의 김유경이 여대 재학 시절, 기숙사에서 만나 지금껏 절친하다거나 좋아하는 친구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해 온 김희진의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읽으며, 소설 속 배경이자 기숙사 생활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 데서 이야기는 출발한다.

 

 

 

   1977년은 독재 정권이 대한민국을 장악한 시대로, 이제 막 성인이 된 유경은 그간 주어진 대로 수긍해야 하는 미성년으로서 ‘다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운영되는 기숙사에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섞인다는 것의 비극 또한 당연히 알지 못했다. 국문과 1학년으로 막 입학한 그녀는 322호로 배정받아 그곳에서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와 룸메이트가 된다. 최성옥과 친한 417호의 송선미 덕분에 그곳 룸메이트인 곽주아, 김희진, 이재숙과도 자연스레 교류하기에 이른다.

 

 

 

   그녀들은 각기 다른 지점으로부터 다른 조건을 지니고 떠나왔다. 저마다 다른 지역 출신과 계층적 배경 속에서 자란 만큼 의식하든 안 하든 자기라는 존재가 다름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이를 테면 무리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조용히 발전시키는 오현수, 매사에 즉흥적이고 변덕이 심하며 자신의 욕구 충족에 충실한 양애란,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김희진, 다른 사람의 청순과 정숙까지 관리하려 드는 곽주아 등이 그렇다. 한편, 유경은 평소 말을 더듬는 게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숨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친밀한 만남에서는 과장된 사교력을 연기하며 입담과 재치를 발휘하는 데 적극적일 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는 ‘회피’에 가까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같은 생활공간에서의 다름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개별적인 ‘다름’은 앞으로 이어질 기숙사 생활에서의 여러 에피소드 등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섞임’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고 거기에는 비극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서투름과 욕망의 서사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기숙사는 거대한 깔때기처럼 이야기가 모이고 섞인 뒤 흐름을 만드는 곳이었다. 모두가 공동 관심사를 가진 청춘의 밀집 지역인 데다 저녁 9시 이후에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한 공간에 있으며 언제든지 서로 찾아가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출신지와 같은 과와 같은 고교 출신과 같은 방끼리 말이 넘나들다 보면 수많은 교집합이 생긴다. 이야기는 서로 뒤섞이고 보완되면서 빠르게 공유의 물살을 타고 흘러갔다. / 217p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약점은 연약한 부분이라 당연히 상처 입기 쉽다. 상처받는 부위가 예민해지고 거기에서 방어를 위한 촉수가 뻗어 나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약점이 어떻게 취급당하는가를 통해 세상을 읽는 영역이 있다. 약점이 세상을 정찰하기 위한 레이더가 되는 셈이다. / 112p

 

 

훈육과 세뇌에는 탈출구가 없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도 없으며, 끝없이 반복되는 그 틀의 궤적에 부딪히고 상처입고 위축되며 계속해서 눈치껏 나를 속이며 살아야 하는 걸까. / 245p

 

 

 

 

 

 

   유경의 기억에 머물러 있던 1977년의 그녀들은 훗날 희진이 쓴 소설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를 통해 익명을 가장하여 등장하는데,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들은 ‘공주’로 지칭된다. 희진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서 그 시절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 문 안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욕망과 차별의 세상이었다. 그것은 공주들의 성이었고 나는 탑의 맨 꼭대기 방에 재봉틀과 함께 내던져진 처지였다. 공주들은 내가 이제부터 시작되는 긴 경주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들을 이미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인생 전반에 드리워질 박탈의 전조’ 였다고. 심지어 유경을 ‘그녀가 얼마나 자기도취적이며 위선에 익숙한지 알 수 있다. 회피야말로 가장 비겁한 악이다. 애매함과 유보와 방관은 전 세계의 소통에 폐를 끼친다. 게다가 그녀는 적에게조차 좋은 점수를 받으려고 한다. 모두에게 맞춰주면서 우월감을 확인하는 것이다. 공주 중에서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세 번째 공주 타입’이라고 진단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경은 희진에게 소설가 중심의 시선에서 편집된 과거의 기억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것이 한때 희진이 좋아했던 남자와 유경이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에 대한 복수에 지나지 않는다 하여도, 같은 시간을 공유했으나 누군가는 보았고 누군가는 보지 못했던 어떤 사소하지만 거대한 기억들의 간극 사이에서 각자의 삶이 존재하는 거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녀를 싫어했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전도되고 돌발된 상황은 마치 단조로운 여정에 가로놓인 과속방지턱처럼 내 인생에 작은 잡음을 만들며 짧게나마 그것을 변속했다. 그러나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인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속도를 떨어뜨릴 때의 반동으로 나는 흔들렸으며 그때마다 내가 회피해왔던 것들이 그녀에게로 가서 어떤 파국을 맞이하는지 목도하는 기분이었다. 계속해서 다음 권이 출간되는 문제집 시리즈를 풀어가듯 주어진 생을 감당하며 살아왔을 뿐이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녀에게서 나의 또 다른 생의 긴 알리바이를 보았던 것이다. / 12p

 

 

그것은 내가 동창회 같은 데에 나가지 않는 이유와 비슷했다. 남들에 의해 소환되는 그 시절의 나도 싫었고, 그들이 알고 있는 그 시절의 나인 척하고 있을 게 분명한 현재의 나도 싫었다. / 18p

 

 

시간이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곁을 스쳐 가며 갖가지 슬픔과 기쁨의 무늬를 새기지만 결국은 모두를 소멸로 이끄니까. / 199p

 

 

 

 

 

 

 

   작가 은희경이 무려 7년 만에 쓴 작품 속에서 1970년대의 정경을 소환해냈을 때에는 당연히 기대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언급했듯이 당대의 정치적 공기와 문화적 풍속도를 생생하게 복원해낸 점이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훈육과 세뇌, 복종과 강제력이 동원된 사회 속에서 자라난 미성년이 사감과 부사감으로 대표되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제한된 청춘의 자유를 누리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고스란히 한국 근대 여성의 정체성으로 연결되어 ‘기숙사가 미팅을 위한 일종의 물류 창고인 셈이었고 일단 필요한 물량은 채울 수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고, ‘여자들 점수 매기기가 주된 화제이며 누구는 못생겨서 얼굴에 보자기 띄우고 해야 한다는 둥 우연히 지켜진 처녀성은 가치가 없다는 둥 키득거리는 가운데 동료애가 싹트는 남자’들로 인해 여성은 여전히 제한된 가능성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한편으로는 유경이 이왕 대학 학보사 기자가 된 만큼 좀 더 밀도 있는 정치적, 사회적인 목소리가 드러났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이 역시 당시 여성이 중심이 될 수 없었던 현실, 즉 주변부에 머무르게 했던 현실을 반영한 작가의 정교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내 납득하게 된다.

 

 

 

며칠 사이 깨친 사실이지만 공동생활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고립이었다. 정보를 얻지 못하면 뒤처지고 다수에 끼지 못하면 손해를 봤다. 이곳은 숨을 곳이 없는 공동 공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고립은 차별보다 더 눈에 띄었다. / 47p

 

 

젊고 희로애락이 선명하고 새로 시작하는 일도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인생이 더 나았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욕망이나 가능성의 크기에 따라 다른 계량 도구를 들고 있었을 뿐 살아오는 동안 지녔던 고독과 가난의 수치는 비슷할지도 모른다. 일생을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해도 나에게만 유독 빛이 들지 않았다고 생각할 만큼 내 인생이 나빴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 세상이 뭔가 잘못됐다면 그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으려 했던 나의 수긍과 방관의 몫도 있다는 것을 알 나이가 되었다. / 278p

 

 

그런 식으로 자신의 사는 모습을 드러내 모이며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안 보이는 대다수는 어딘가에서 각기 다양한 모습으로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오래전 국사 강사의 말을 조금 바꿔보자면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불만스러운 세상에 적응하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나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 331p

 

 

 

 

 

 

   나에게 있어 은희경이라는 이름은 이미 그 자체로 잘 완성된 책 한 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삶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 살에 성장을 멈췄다’고 선언했던 소녀에게서 삶의 진득한 내음을 맡았던 『새의 선물』은 아직도 내 책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에 꽂혀있기 때문이다. 『빛의 과거』가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 것에 대해 ‘여러 이유를 떠나 책의 저자가 되는 일에 의욕을 잃은 것이 큰 실패’였다고 자조하는 작가의 말이 무색할 만큼, 이번 작품 역시 수많은 타자와 나의 삶을 입체적으로 투사하여 결코 말랑말랑하지 않은 인생의 더께를 실감케 한다는 점에서 깊은 여운을 준다. 무엇보다 1970년대 말 서울 어느 여자대학교 기숙사 이야기이지만, 나의 시간 속에서도 분명 존재했던 과거의 어느 시점과 또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어떤 기시감으로 인해 나를 더욱 소설로 끌어들이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역시, 은희경이라는 감탄을 또 한번 하고야 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는 계급에 대한 상위 20퍼센트 중상류층의 이중적인 태도를 지적해야 할 때!

상위 1퍼센트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췄던 불평등 담론을 과감히 부수다!

 

 

 

   공자는 “가난은 근심하지 않지만 균등하지 못한 것은 근심한다.”고 말했다. 공자가 살았던 무렵에도 가난보다 더 큰 문제는 불평등이었나 보다. 민주주의가 더욱 공고해진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는 더욱 심각해진 불평등 문제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고 학력이나 자산에 따른 계급의 격차 역시 눈에 띄게 심화되었다. 드라마 <상속자들>과 <SKY 캐슬>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이른바 대한민국의 상위 1% 집단에 속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부를 상속하고, 고소득 전문직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지위를 되물림 하기 위한 욕망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고소득층 사람들은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소득이 높지 않은 사람들은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조건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결코 좁혀 지지 않는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틈은 상위 집단과 하위 집단의 격차를 더욱 확대시켰고, 마침내 ‘수저론’과 ‘헬조선’로 점철된 시대에 이르고야 말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제는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불평등은 매우 열띤 정치 논쟁이 벌어지는 사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 불평등과 상향 이동의 경직성은 이미 위험한 수준이고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라며 “이것이 열심히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중산층 미국인의 기본적인 믿음을 망가뜨리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미국 중상류층의 불평등 구조는 한국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과도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이를 단순히 상위 1%의만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는 너무나 자주 불평등 담론을 상위 1%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며 나머지 99%는 모두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라는 듯이 말하는 경향을 지적한다. 1퍼센트의 최상류층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중상류층조차 다수 대중과 같은 배를 탔다고 믿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중상류층은 나머지 대중으로부터 확연하게 분리되고 있다. 최상류층, 슈퍼 리치, 상위 1퍼센트 등으로 불리는 맨 꼭대기에 부가 막대하게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가구 소득 기준으로 통장 잔고와 월급 액수 등에서 드러나는 경제적인 분리뿐만 아니라 학력, 가족 구성, 건강과 수명, 심지어 시민 공동체 활동 등에서도 분명하게 차이가 나타난다.

 

 

 

계급은 돈으로 구분되지만 돈으로만 구분되는 것인 아니다. 계급 격차는 학력, 안전 및 안정성, 가족 구성, 건강 상태 등 삶의 모든 면에서 드러난다. 물론 각각에 나름의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돈, 교육, 부, 직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불평등 요인들이 서로 단단히 결합해 하나만으로도 누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때 불평등은 계급 격차가 된다. 그리고 계급적 특권과 지위가 세대를 이어 지속될 때 계급 격차는 고착된 계급 체제가 된다. 현재 미국에서 중상류층의 계급적 지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또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효과적으로 세습되고 있다. / 39p

 

 

 

 

 

 

   문제는 단지 계급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 아니라 계급 분리가 세대를 거쳐 영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시장에서 인정되는 능력’이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육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며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 이러한 계급 분리는 노동 시장에서 가치가 인정되는 ‘능력’을 발달시킬 기회가 중상류층에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이들은 같은 수준에서 배우자를 선택해 계획된 출산을 하며 높은 교육 수준에 따라 아이를 양육한다. 또 양질의 수업을 받고 고등 교육의 정원을 부유층 아이들이 더 많이 차지함으로써 자연히 이후에 부유층이 될 기회도 늘어나는 셈이다. 빈곤한 주거지에 살면 삶의 기회가 축소된다는 현실론에 따라 같은 경제 환경을 이루는 이웃끼리 모여 살고, 건강이나 여가, 레저 등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얻는다. 차마 외면하고 싶은 사실이지만 추상적인 성취나 지능에 대한 지표가 아니라 어떤 부모를 두었느냐, 부모가 얼마나 많은 사회 경제적 자본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다른 출발선에서 서게 되는 것이다. 호레이스 만의 표현에 따르면 교육은 “평등을 일구는 가장 위대한 기제이자 사회라는 기계의 평형 바퀴”여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사회는 그러한 기제가 썩 훌륭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의 자녀 교육이 전적으로 좋은 의도에서, 또 전적으로 공정한 수단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해도(뒤에서 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지위의 대물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계급 경직성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인적 자본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재능이 고숙련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시장의 역동성을 저해한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경제 성장과 번영에도 필수적이지만, 능력 본위 원칙에 따른 계층 이동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시장이 보상하는 종류의 능력을 키울 기회가 모두에게 공정했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은 ‘계층 이동성 없는 능력 본위주의’다. / 27p

 

뉴욕 대학의 플로렌시아 토치는 세대 간 소득 수준의 연계성을 조사해서 아래쪽보다 위쪽에서 경직성이 더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동질적으로 가난한 정도보다 부유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동질적으로 부유한 정도가 더 크다.” 스탠퍼드의 파블로 미트니크와 데이비드 그러스키는 세대간 소득 탄력성을 분석했는데, 역시 꼭대기 쪽이 바닥 쪽보다 경직성이 컸다. 무엇을 지표로 잡든 동일한 양상이 발견된다. 고소득은 가난의 대물림만큼, 혹은 가난의 대물림보다 더, 경직적으로 대물림된다. / 98p

 

 

 

 

 

 

   계급의 영속성에 일조하는 또 다른 요인은 중상류층이 불공정하게 기회를 사재기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중상류층에서 떨어질 경우 더 깊게 추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중상류층 부모는 자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리 바닥을 깔아 주고자 할 동기가 커지며,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도 있다. 그래서 기회 사재기를 포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서 자녀의 하향 이동 위험을 줄여 주려고 한다. 그렇다면 기회 사재기의 행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저자는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제도, 인맥과 연줄이 더 중요한 인턴 제도 등을 꼽는다.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는 비싼 집을 구매하는 것이 ‘좋은’ 동네에 거주할 기회 및 자녀를 좋은 공립 학교에 보낼 기회와 효과적으로 연결된다. 부모 중 한 명이 그 대학 출신이면 입학 사정에서 우대를 받는 제도는 이미 태생적으로 불공정하다.

 

 

 

   인턴 제도는 노동 시장 규제에서 사실상 벗어나 있기 때문에 연줄을 통해 서로 혜택을 주는 식으로 알음알음 분배된다. 실제 많은 고용주들이 채용 시에 구직자의 인턴 경험을 높이 사며 곧바로 채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부유한 학생들이 인턴 기회를 잡기에 더 유리하다면 여기에는 매우 불공정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기회 사재기가 성공적일 경우, 위쪽이 더 경직적인 계층 구조가 생겨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면 중상류층은 자녀가 계층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어 재분배 정책에 돈을 지불할 의향이 줄어든다. 그러면 불평등이 더 심화된다. 이렇듯 현 세대에서의 소득 격차가 다음 세대에서 기회의 격차가 된다면, 경제적 불평등은 영속적인 계급 격차로 고착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현재 미국의 능력 본위 시스템이 가진 문제는 시장이 인정하는 종류의 능력이 불평등하게 육성된다는 데 있다. 대체로 중상류층 아이들은 노동 시장에 진입할 무렵이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능력을 갖춘 상태여서 경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선다. 미국의 능력 본위 시스템은 계급 장벽을 부수기는커녕 유지하고 영속화하는 메커니즘으로 변질되었다. / 119p

 

 

이와 달리 기회 사재기는 타인에게서 무엇을 가져오느냐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무엇을 확보하고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 틸리에 따르면, 어떤 집단은 “가치 있고, 재생 가능하고, 독점하기 쉽고, 네트워크에 도움이 되고, 그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에 의해 강화되는 종류의 자원에 더 잘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집단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자원에 대해 계속해서 통제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신화와 제도들을 만들고 접근권을 사재기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그 자원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다. / 152p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계급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시행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조치를 제시한다. 그중 네 가지는 인적 자본 개발의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서 시장에서 인정되는 능력이 더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더 나은 피임법을 통해 의도치 않은 임신을 줄이는 것, 가정 방문 복지 프로그램을 확충해 양육 격차를 줄이는 것, 훌륭한 교사들이 가난한 학교에서 일할 수 있도록 교사 임금 체계를 개선하는 것, 대학 학비 조달의 기회를 더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머지 세 가지는 기회 사재기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보다 공정한 토지 규제를 도입해 배타적인 택지 구획을 없애는 것, 동문 자녀 우대제 폐지를 포함해 고등 교육의 기회를 넓히는 것, 인턴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조차도 이제는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난색을 표하는 입장에서 저자가 제시한 이와 같은 방법들이 현실적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스스로 중상류층임을 솔직하게 밝히며 ‘우리’ 중상류층이 약간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불평등을 평등하게 만드는 데 기꺼이 동의해주기를 바라는 점 역시 불확실성에 기대는 미약한 희망 같아 아쉬움도 남는다. 과연, 기꺼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내어놓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관행을 없애도 계급의 재생산을 막는 데 커다란 효과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동문 자녀 우대제가 없어져서 생길 ‘아주 좁은 일각’의 자리에는 역시나 비슷한 사회 경제적 배경 출신인 다른 지원자가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로 이 제도가 유지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중요한 점 하나를 놓친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이후의 삶에서 갖게 될 기회와 물질적인 성공 가능성에 크게 영향을 미치므로,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동문 자녀 우대제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 168p

 

 

 

   그럼에도 불구하고 <20 VS 80의 사회>는 상위 1퍼센트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췄던 불평등의 담론을 과감히 부수고, 불평등과 계층 이동성에 대해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책은 전적으로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현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하고 시사 하는 바도 크다. 한 때는 막연하기만 했던 주제였는데, 두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불공정한 기회와 시스템의 문제가 우리 가족은 물론 아이에게까지 되물림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돈과 권력 따위가 아닌데,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는 그것만이 살 길인 시대가 될 것 같아 막막한 기분이다. 다만 이 책이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이룬 것들이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보다는 좀 더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 그림이 있는 옛이야기 2
김원익 지음 / 지식서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열광하던 판타지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최고의 신화 권위자와 컬러 그림 130점이 만나 더욱 생생한 북유럽 신화 이야기!

 

 

   한때 우리나라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기가 대단했던 적이 있었다. 각종 문학 작품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역시 큰 인기를 얻어 유사 작품이 다수 출간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때여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세계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해석했다. 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유럽 신화는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대중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것은 북유럽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오늘날 수많은 판타지 팬들을 열광시킨 <왕좌의 게임>, <반지의 제왕>, <토르>, <어벤져스> 시리즈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 <토르>와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영화를 볼 때마다 오딘과 토르, 로키 등의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 속의 독특한 세계관에 금세 사로잡혔다. 신들이 사는 아스가르드, 무지개다리인 비프로스트, 이를 지키는 헤임달,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탄생시켰고 타노스를 대적할 무기를 만들었던 손재주가 좋은 난쟁이들의 공간 니다벨리르(스바르트알프헤임), 라그나뢰크를 막기 위해 토르를 돕는 발키리까지. 이 모든 이야기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북유럽 신화를 읽는다면 좀 더 그들의 세계관을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를 읽기 시작했다.

 

 

 

인류의 집단 무의식은 바로 신화다.

 

 

 

   세계적인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신화는 나에게 절망의 위기 혹은 기쁨의 순간에, 실패 혹은 성공의 순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신화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의 저자 김원익 역시 “모든 것은 인간과 통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신화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신화는 고대 인간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결국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재미있고도 의미 있는 방법, 바로 이것이 우리가 신화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특히 북유럽 신화의 모든 이야기는 ‘라그나뢰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대 노르웨이어로 ‘라그나’는 ‘신’을 뜻하는 ‘레긴’의 복수형이며, ‘뢰크’는 ‘황혼’ 혹은 ‘파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라그나뢰크’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신들의 황혼’이나 ‘신들의 파멸’이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파멸은 자신들뿐 아니라 거인들과 인간들 그리고 난쟁이들 모두의 파멸을 초래하기 때문에 라그나뢰크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의 종말을 뜻한다. 북유럽 신화는 태초부터 신들과 거인들의 갈등에서 시작되어 그것이 계속 증폭되다가 결국 양측 사이에 총체적인 전면전이 일어나 소위 아홉 세상 전체의 파멸로 끝을 맺는다. 북유럽 신화는 마치 인간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라그나뢰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북유럽 신화는 세상을 갈등과 충돌의 역사로 본다는 점에서 비관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처해 있는 비극적 현실을 아주 적확하게 대변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책은 바로 이 비교신화학적인 관점에서 각각의 이야기가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세상을 창조한 거인 살해 사건부터 세상을 몰락시킨 라그나뢰크까지

 

 

  그리스 신화에서 이 세상은 ‘텅 빈 공간’이자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에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나 신들이 생성된다. 북유럽 신화에서도 이 세상은 그리스 신화의 혼돈과 비슷한 ‘어둠’에서 시작된다. 어둠이라는 말은 “땅도 바다도 공기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여기에서 불의 나라를 상징하는 무스펠헤임과 얼음의 나라를 상징하는 니플헤임이 만들어진다. 북쪽 니플헤임의 얼음 절벽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이 12개의 물줄기를 이루며 계곡으로 흘러내렸고, 불의 공간에서 불어오는 열기와 얼음 공간에서 불어오는 한기에 의해 생성된 서리에서 어느 날 북유럽 신화의 최초 생명체인 이미르라는 거인 하나와 아우둠라라는 거대한 암소 한 마리가 태어난다. 암소의 젖을 먹으며 자신의 살을 불린 이미르는 잠을 자는 사이 남자와 여자 거인 하나씩과 머리가 6개 달린 거인을 만들어 낸다. 이 3명의 거인들이 북유럽 신화의 모든 거인들의 조상이 되고, 또 암소 아우둠라가 니플헤임 계곡의 얼음덩이를 핥다가 찾아낸 부리가 북유럽 신들의 조상이 된다. 이후 부리의 아들 보르에게서 오딘 삼형제가 태어나고, 그들은 거인 이미르의 시신으로 하여금 마침내 세상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오딘 삼형제는 신을 공경할 인간을 만들기 위해 죽은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 가지로 각각 자신들의 모습을 본 떠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만들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들이 바로 모든 인간들의 조상 아스크와 엠블라이며 난쟁이(트롤, 코볼트, 드워프)와 요정(엘프)도 이때 생겨난다. 삼형제 중 신들의 왕이 된 오딘은 지상과 지하, 하늘의 공간을 9개로 나눈다. 신들이 거주하는 아스가르드, 반 신족이 거주하는 바나헤임, 요정들이 거주하는 알프헤임, 인간들이 거주하는 미드가르드, 손재주가 좋은 난쟁이들이 대장간을 운영하여 오딘의 창인 궁니르, 토르의 망치인 묠니르를 탄생시킨 스바르트알프헤임(니다벨리르), 거인들이 거주하는 요툰헤임, 얼음의 공간인 니플헤임, 불의 공간으로 이곳의 수장인 거인 수르트가 지키고 있는 무스펠헤임, 죽은 자들의 공간이자 이곳을 지배하는 여신의 이름을 딴 헬(헬헤임)과 마지막으로 생명의 나무 이그드라실이 9개의 공간을 아우른다.

 

 

 

   흥미롭게도 북유럽 신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아주 독특한 공간 구조에 있다. 북유럽 신화에는 신들과 인간들의 세계뿐 아니라 제3의 공간인 거인들의 세계가 있다. 특히 거인들은 신들과 대립하면서 전체 플롯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크기에서 단연 신들을 압도한다. 변신술 등 여러 가지 능력에서도 신들과 필적하며 계속해서 그들의 세계를 위협한다. 심지어 거인들이 신들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들이 거인들의 공격을 두려워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북유럽 신화의 거인들은 무엇을 상징할까? 그들은 우선 어둠, 죽음, 불의, 악의 세력 등을 상징할 수 있다. 거인들은 또한 자연의 거대한 힘을 상징할 수도 있다. 고대의 북유럽 사회에서 혹독한 겨울을 비롯한 거친 자연환경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최대 난관이었을 것이다. 당대 인간이 풀어야 할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숙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신이나 대적할 수 있는 거대한 폭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에 저자는 그 폭력이 바로 북유럽 신화에서 거인들로 형상화된 것은 아닐까하고 말한다.

 

 

 

이미르나 반고나 하이누웰레 이야기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죽음의 진정한 의미는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자 희망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누군가의 성공 뒤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희생이 숨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누군가 인생에서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죽음과도 같은 혹독한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장 24절) / 26p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는 2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로, 그것은 하늘로 올라가고픈 인간의 욕망을 표현했을 수 있다. 둘째로, 그것은 인간이 신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원래는 아주 선해서 원하면 언제든지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타락하면서 그런 자격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 46p

 

 

 

 

 

 

   그리스 신화에 제우스를 비롯한 12주신이 있는 것처럼, 북유럽 신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주요 12주신을 선별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신들의 왕 오딘으로 그는 힘이 아닌 지혜로 신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을 다스린다. 두 번째는 결혼과 모성의 여신인 오딘의 아내 프리그다. 세 번째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천둥의 신 토르다. 대지의 여신 요르드의 아들로 신들 중 가장 힘이 세고, 허리에 차면 힘이 2배나 솟아나는 메긴교르드라는 허리띠와 던지면 표적을 반드시 명중하고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천하무적의 망치 묠니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이 강력한 무기로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의 질서를 해치려는 자는 누구든 용서하지 않았다.

 

 

 

   네 번째는 풍작의 신 프레이그이고 다섯 번째는 사랑과 미의 여신 프레이야다. 여섯 번째는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지키는 파수꾼 헤임달로 그는 신비한 탄생 일화를 가지고 있는데, 일곱 번째 주신인 바다의 신 에기르에게서 난 9명의 딸에게 반한 오딘이 그들과 번갈아 가며 사랑을 나누었다가 이들이 서로 힘을 합해 낳은 아들이 바로 그다. 여덟 번째는 시와 음악과 음유시인의 신 브라기이고, 아홉 번째는 브라기의 아내이자 청춘의 여신 이둔이다. 이둔이 매일 제공하는 황금 사과 덕에 신들은 늘 젊음과 불면을 누릴 수 있었다. 이어 열 번째 주신은 빛의 신인 발데르이고, 열한 번째 주신은 전쟁의 신 티르다. 마지막으로는 악의 화신이자 장난꾸러기의 신 로키로, 그는 교활한 꾀로 계속해서 신들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들을 위험에서 구해 주기도 한다. 영화 <어벤져스>와 <토르>에 등장하는 바로 그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로키처럼 말이다.

 

 

 

아홉 번째 주신으로는 브라기의 아내이자 청춘의 여신인 이둔을 들 수 있다. 그녀는 난쟁이 이발디의 딸로서 청춘의 사과밭을 가꾸며 지킨다. 북유럽 신들은 신과 거인의 후손으로 순수 혈통이 아니라서 유한한 생명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청춘의 여신 이둔이 그들에게 공급해 주는 청춘의 사과 덕분이다. 특히 청춘의 신 이둔이 시의 신 브라기의 아내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혹시 시인은 영원한 젊음의 소유자란 뜻이 아닐까? / 79p

 

 

 

   책에는 다양한 신들의 모험 이야기가 등장한다. 신들에게 보물을 선사한 시프의 머리카락 도난 사건, 프레이야로 여장하고 거인 트림 일당을 처치하는 토르, 거인 티아지에게 빼앗긴 청춘의 여신 이둔과 황금 사과, 죽은 아버지를 복수하러 아스가르드에 갔다가 얼굴이 아니라 발을 보고 신랑감을 잘못 고른 스카디, 거인들의 왕 우트가르드로키와 세 가지 대결을 벌인 토르, 거인 흐룽그니르의 애마 굴팍시와 오딘의 애마 슬레이프니르의 경마 대결과 거인 여인 게르드에게 사랑에 빠진 프레이르의 중매에 나선 스키르니르, 질투심 때문에 빛의 화신 발데르를 죽음으로 내몬 로키가 신들의 분노를 사고, 아들 나르피의 시신에서 수습한 창자에 묶인 채 독사의 독을 얼굴에 맞는 형벌을 받는 일까지 매우 흥미롭다. 가만 보면 마치 인간 세상의 축소판 같다. 질투에 사로잡혀 형제를 죽음에 내몰고, 탐욕으로 빼앗은 반지 하나가 저주를 낳으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사건과 사고를 몰고 다니는 로키도 참 얄궂다. 번번이 그로 인해 신들의 세계가 위협을 받게 되니 말이다.

 

 

 

아스가르드에서 청춘의 여신이 사라지자 과연 신들은 날마다 먹던 사과를 먹지 못한 탓에 금세 노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점 허리가 굽어지고 피부도 탄력 없이 쪼글쪼글해지며 머리카락은 눈처럼 하얗게 세어지기 시작했다. 기력도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사과는 아마 고대부터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 같다. “하루 사과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라는 영국 속담도 있지 않은가. / 155p

 

 

우트가르드로키에 의하면 로키가 먹기 시합을 한 상대인 로기는 사실 자신이 마술을 부려 거인으로 만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그래서 로키가 아무리 빨리 먹어 치웠어도 로기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마처럼 고기뿐 아니라 식탁까지도 집어삼켰다는 것이다. 또한 티알피가 달리기 시합을 한 후기도 사실 자신이 마술을 부려 거인으로 만들어 낸 자신의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티알피가 아무리 빨라도 우트가르드로키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중략)... 마지막으로 우트가르드로키에 의하면 토르가 노파라고 생각한 거인 엘리는 사실 자신이 마술을 부려 노파로 만든 ‘흐르는 세월’이었다. 그 누구도 흐르는 세월은 피할 수 없는 법. 그래서 토르 같은 천하장사라도 그 노파와의 씨름에서 절대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 198p

 

 

로키는 흐레이드마르의 불만을 듣자마자 특유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돌려 오딘의 약지손가락을 쳐다보았다. 오딘은 하는 수 없이 아까 자기 몫으로 챙겨두었던 황금 반지를 빼어 로키에게 던져 주었다. 로키가 황금 반지로 틈새를 메우자 흐레이드마르는 그제야 만족하며 이제 가도 좋다며 오딘에게 압수해 두었던 창 궁니르도 돌려주었다. 오딘 일행을 데리고 막 흐레이드마르의 집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로키는 아까 안드바리가 했던 저주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몸을 돌려 흐레이드마르 삼부자에게 그 황금의 주인이었던 난쟁이 안드바리의 저주를 그대로 전했다. 앞으로 그 황금 반지를 갖게 되는 자는 반드시 파멸하고 말 것이라고 말이다(이 반지는 이후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와 영화 <반지의 제왕> 등 여러 작품의 모티프가 된다). / 227p

 

 

 

 

 

 

   끝내 라그라뇌크는 찾아온다. 그 전조는 맨 먼저 인간 세상인 미드가르드에서 나타난다. 라그나뢰크가 다가올수록 인간 세상은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야만의 시대로 변해간다. 혹독한 겨울이 계속되고, 하늘에 떠 있던 모든 별들이 바다로 떨어져 암흑천지가 되었으며 지진이 나 늑대 펜리르가 끈에서 풀려나고 물에서 불어난 바다에서는 왕뱀 요르문간드가 서서히 몸을 풀기 시작하여 해일이 일어난다. 세계수 이그드라실 역시 고통스러운 듯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비튼다. 마침내 헬의 전용배로 헬헤임의 전사와 거인들, 로키, 요르문간드, 펜리드 등이 모여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건넌다. 신들과 거인들을 비롯하여 그들의 적들이 모여 싸운 곳은 바로 아스가르드의 광활한 비그리드 평원이다. 평원 한쪽에서는 오딘을 총사령관으로 내세우고 아스 신족, 반 신족이 수많은 전사 영웅 에인헤랴르를 대동하고 전열을 갖춘다. 이에 맞서 다른 쪽에서는 불의 거인 수르트를 총사령관으로 내세우고 서리 거인들, 지하세계의 문을 지키는 개 가름을 비롯한 헬의 군대들, 로키와 그의 자식들인 늑대 펜리르와 왕뱀 요르문간드 등이 전열을 갖춘다. 이 싸움에서 결국 신들이나 거인들뿐 아니라 아홉 세상의 모든 것이 몰락한다.

 

 

 

   그렇게 라그나뢰크로 모든 것이 끝나는 듯했으나 다시 희망의 싹은 돋아나기 시작한다. 바다에 가라앉았던 대지가 다시 솟아오르고 모두 죽은 줄 알았던 신들과 인간들 중에서도 생존자들이 나타난다. 신들 중에서는 오딘의 아들 비다르와 발리, 그리고 토르의 아들 모디와 마그니가 살아남는다. 지하세계에서도 발데르와 호드가 살아남아 아스가르드로 올라온다. 이들은 그 밖에 살아남은 다른 신들과 함께 아스가르드의 새 주역이 되고, 이제 오딘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새 시대가 도래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결말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두 가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신들과 거인들을 끊임없는 대결의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이 세상을 선과 악이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터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신들과 거인들의 최후 결전인 라그나뢰크에서 신들을 살아남게 하여 이 전쟁에서 결국 선이 승리한다고 확신한다. 특히 라그나뢰크에서 신들뿐 아니라 거인들과 난쟁이들과 인간들에게까지도 가장 사랑을 받았던 발데르가, 그것도 자신을 죽인 형제 호드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는 점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는 마치 영화 <토르:라그나로크> 편에서 결국 라그나뢰크를 막지는 못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 아스가르드는 어느 특정 공간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는 점을 되새기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토르:라그나로크>를 보면 도입부에 불의 거인 수르트가 토르에게 “네 힘으로는 못 막는데 왜 싸우는 거냐?”고 질문하는 대목이 있다. 이때 토르는 “그게 영웅이 하는 일이니까.”라고 대답한다. 비록 영웅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지만 이에 저항하고 싸우려는 의지를 지닌 자들에 의해 이 땅은 숱한 좌절 속에서도 일어서왔다. 그것이 갈등과 충돌의 역사 속에서 다시 희망을 일으켰던 북유럽 신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최근 다양한 출판사에서 북유럽 신화에 관한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최고의 신화 권위자로 손꼽히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원문에 충실한 컬러 삽화가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배가 되었던 책이었다. 마지막 장에는 《니벨룽의 반지》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뵐숭 가문과 니플룽 가문의 비극’ 편도 수록되어 더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니, 북유럽 신화에 입문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