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VS 80의 사회 -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 지음, 김승진 옮김 / 민음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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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계급에 대한 상위 20퍼센트 중상류층의 이중적인 태도를 지적해야 할 때!

상위 1퍼센트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췄던 불평등 담론을 과감히 부수다!

 

 

 

   공자는 “가난은 근심하지 않지만 균등하지 못한 것은 근심한다.”고 말했다. 공자가 살았던 무렵에도 가난보다 더 큰 문제는 불평등이었나 보다. 민주주의가 더욱 공고해진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는 더욱 심각해진 불평등 문제로 인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고 학력이나 자산에 따른 계급의 격차 역시 눈에 띄게 심화되었다. 드라마 <상속자들>과 <SKY 캐슬>이 단적으로 보여주듯, 이른바 대한민국의 상위 1% 집단에 속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부를 상속하고, 고소득 전문직으로 대표되는 사회적 지위를 되물림 하기 위한 욕망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애석하게도 고소득층 사람들은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소득이 높지 않은 사람들은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조건이 더 유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결코 좁혀 지지 않는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틈은 상위 집단과 하위 집단의 격차를 더욱 확대시켰고, 마침내 ‘수저론’과 ‘헬조선’로 점철된 시대에 이르고야 말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제는 전 세계에 공통적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불평등은 매우 열띤 정치 논쟁이 벌어지는 사안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에서 불평등과 상향 이동의 경직성은 이미 위험한 수준이고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라며 “이것이 열심히 노력하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중산층 미국인의 기본적인 믿음을 망가뜨리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미국 중상류층의 불평등 구조는 한국 사람들이 체감하는 현실과도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이를 단순히 상위 1%의만의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상위 20퍼센트는 어떻게 불평등을 유지하는가

 

 

   리처드 리브스의 <20 VS 80의 사회>는 너무나 자주 불평등 담론을 상위 1%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며 나머지 99%는 모두 비슷하게 불행한 처지라는 듯이 말하는 경향을 지적한다. 1퍼센트의 최상류층에만 관심을 집중하면 중상류층조차 다수 대중과 같은 배를 탔다고 믿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중상류층은 나머지 대중으로부터 확연하게 분리되고 있다. 최상류층, 슈퍼 리치, 상위 1퍼센트 등으로 불리는 맨 꼭대기에 부가 막대하게 집중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가구 소득 기준으로 통장 잔고와 월급 액수 등에서 드러나는 경제적인 분리뿐만 아니라 학력, 가족 구성, 건강과 수명, 심지어 시민 공동체 활동 등에서도 분명하게 차이가 나타난다.

 

 

 

계급은 돈으로 구분되지만 돈으로만 구분되는 것인 아니다. 계급 격차는 학력, 안전 및 안정성, 가족 구성, 건강 상태 등 삶의 모든 면에서 드러난다. 물론 각각에 나름의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돈, 교육, 부, 직업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불평등 요인들이 서로 단단히 결합해 하나만으로도 누가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때 불평등은 계급 격차가 된다. 그리고 계급적 특권과 지위가 세대를 이어 지속될 때 계급 격차는 고착된 계급 체제가 된다. 현재 미국에서 중상류층의 계급적 지위는 과거 어느 때보다, 또 다른 어느 나라에서보다 효과적으로 세습되고 있다. / 39p

 

 

 

 

 

 

   문제는 단지 계급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이 아니라 계급 분리가 세대를 거쳐 영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그 이유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시장에서 인정되는 능력’이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게 육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은 어린 시절에 시작되며 세대를 거쳐 전승된다. 이러한 계급 분리는 노동 시장에서 가치가 인정되는 ‘능력’을 발달시킬 기회가 중상류층에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이들은 같은 수준에서 배우자를 선택해 계획된 출산을 하며 높은 교육 수준에 따라 아이를 양육한다. 또 양질의 수업을 받고 고등 교육의 정원을 부유층 아이들이 더 많이 차지함으로써 자연히 이후에 부유층이 될 기회도 늘어나는 셈이다. 빈곤한 주거지에 살면 삶의 기회가 축소된다는 현실론에 따라 같은 경제 환경을 이루는 이웃끼리 모여 살고, 건강이나 여가, 레저 등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얻는다. 차마 외면하고 싶은 사실이지만 추상적인 성취나 지능에 대한 지표가 아니라 어떤 부모를 두었느냐, 부모가 얼마나 많은 사회 경제적 자본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다른 출발선에서 서게 되는 것이다. 호레이스 만의 표현에 따르면 교육은 “평등을 일구는 가장 위대한 기제이자 사회라는 기계의 평형 바퀴”여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사회는 그러한 기제가 썩 훌륭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다.

 

 

 

부유한 사람들의 자녀 교육이 전적으로 좋은 의도에서, 또 전적으로 공정한 수단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해도(뒤에서 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지위의 대물림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계급 경직성은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의 인적 자본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재능이 고숙련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시장의 역동성을 저해한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경제 성장과 번영에도 필수적이지만, 능력 본위 원칙에 따른 계층 이동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것은 시장이 보상하는 종류의 능력을 키울 기회가 모두에게 공정했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것은 ‘계층 이동성 없는 능력 본위주의’다. / 27p

 

뉴욕 대학의 플로렌시아 토치는 세대 간 소득 수준의 연계성을 조사해서 아래쪽보다 위쪽에서 경직성이 더 강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가난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동질적으로 가난한 정도보다 부유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동질적으로 부유한 정도가 더 크다.” 스탠퍼드의 파블로 미트니크와 데이비드 그러스키는 세대간 소득 탄력성을 분석했는데, 역시 꼭대기 쪽이 바닥 쪽보다 경직성이 컸다. 무엇을 지표로 잡든 동일한 양상이 발견된다. 고소득은 가난의 대물림만큼, 혹은 가난의 대물림보다 더, 경직적으로 대물림된다. / 98p

 

 

 

 

 

 

   계급의 영속성에 일조하는 또 다른 요인은 중상류층이 불공정하게 기회를 사재기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은 중상류층에서 떨어질 경우 더 깊게 추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중상류층 부모는 자녀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리 바닥을 깔아 주고자 할 동기가 커지며, 그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도 있다. 그래서 기회 사재기를 포함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서 자녀의 하향 이동 위험을 줄여 주려고 한다. 그렇다면 기회 사재기의 행태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저자는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 불공정한 대학 입학 제도, 인맥과 연줄이 더 중요한 인턴 제도 등을 꼽는다. 배타적인 토지 용도 규제는 비싼 집을 구매하는 것이 ‘좋은’ 동네에 거주할 기회 및 자녀를 좋은 공립 학교에 보낼 기회와 효과적으로 연결된다. 부모 중 한 명이 그 대학 출신이면 입학 사정에서 우대를 받는 제도는 이미 태생적으로 불공정하다.

 

 

 

   인턴 제도는 노동 시장 규제에서 사실상 벗어나 있기 때문에 연줄을 통해 서로 혜택을 주는 식으로 알음알음 분배된다. 실제 많은 고용주들이 채용 시에 구직자의 인턴 경험을 높이 사며 곧바로 채용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부유한 학생들이 인턴 기회를 잡기에 더 유리하다면 여기에는 매우 불공정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기회 사재기가 성공적일 경우, 위쪽이 더 경직적인 계층 구조가 생겨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면 중상류층은 자녀가 계층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어 재분배 정책에 돈을 지불할 의향이 줄어든다. 그러면 불평등이 더 심화된다. 이렇듯 현 세대에서의 소득 격차가 다음 세대에서 기회의 격차가 된다면, 경제적 불평등은 영속적인 계급 격차로 고착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현재 미국의 능력 본위 시스템이 가진 문제는 시장이 인정하는 종류의 능력이 불평등하게 육성된다는 데 있다. 대체로 중상류층 아이들은 노동 시장에 진입할 무렵이면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능력을 갖춘 상태여서 경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에 선다. 미국의 능력 본위 시스템은 계급 장벽을 부수기는커녕 유지하고 영속화하는 메커니즘으로 변질되었다. / 119p

 

 

이와 달리 기회 사재기는 타인에게서 무엇을 가져오느냐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 무엇을 확보하고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 틸리에 따르면, 어떤 집단은 “가치 있고, 재생 가능하고, 독점하기 쉽고, 네트워크에 도움이 되고, 그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에 의해 강화되는 종류의 자원에 더 잘 접근할 수 있다.” 이런 집단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자원에 대해 계속해서 통제력을 가질 수 있게 해 주는 신화와 제도들을 만들고 접근권을 사재기함으로써 다른 이들이 그 자원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다. / 152p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계급 격차를 줄이기 위해 시행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조치를 제시한다. 그중 네 가지는 인적 자본 개발의 기회를 평등하게 만들어서 시장에서 인정되는 능력이 더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더 나은 피임법을 통해 의도치 않은 임신을 줄이는 것, 가정 방문 복지 프로그램을 확충해 양육 격차를 줄이는 것, 훌륭한 교사들이 가난한 학교에서 일할 수 있도록 교사 임금 체계를 개선하는 것, 대학 학비 조달의 기회를 더 평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머지 세 가지는 기회 사재기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보다 공정한 토지 규제를 도입해 배타적인 택지 구획을 없애는 것, 동문 자녀 우대제 폐지를 포함해 고등 교육의 기회를 넓히는 것, 인턴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조차도 이제는 불평등의 문제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난색을 표하는 입장에서 저자가 제시한 이와 같은 방법들이 현실적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스스로 중상류층임을 솔직하게 밝히며 ‘우리’ 중상류층이 약간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불평등을 평등하게 만드는 데 기꺼이 동의해주기를 바라는 점 역시 불확실성에 기대는 미약한 희망 같아 아쉬움도 남는다. 과연, 기꺼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내어놓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관행을 없애도 계급의 재생산을 막는 데 커다란 효과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동문 자녀 우대제가 없어져서 생길 ‘아주 좁은 일각’의 자리에는 역시나 비슷한 사회 경제적 배경 출신인 다른 지원자가 들어올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로 이 제도가 유지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면 중요한 점 하나를 놓친 것이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이후의 삶에서 갖게 될 기회와 물질적인 성공 가능성에 크게 영향을 미치므로,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동문 자녀 우대제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 168p

 

 

 

   그럼에도 불구하고 <20 VS 80의 사회>는 상위 1퍼센트의 문제에만 초점을 맞췄던 불평등의 담론을 과감히 부수고, 불평등과 계층 이동성에 대해 가장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 사회에 경종을 울린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책이다. 책은 전적으로 미국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현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매우 시의적절하고 시사 하는 바도 크다. 한 때는 막연하기만 했던 주제였는데, 두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불공정한 기회와 시스템의 문제가 우리 가족은 물론 아이에게까지 되물림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돈과 권력 따위가 아닌데, 아이가 살아갈 미래에는 그것만이 살 길인 시대가 될 것 같아 막막한 기분이다. 다만 이 책이 그들만의 세상에 살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이룬 것들이 온전히 자신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지금보다는 좀 더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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