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 그림이 있는 옛이야기 2
김원익 지음 / 지식서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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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열광하던 판타지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최고의 신화 권위자와 컬러 그림 130점이 만나 더욱 생생한 북유럽 신화 이야기!

 

 

   한때 우리나라에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기가 대단했던 적이 있었다. 각종 문학 작품에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 역시 큰 인기를 얻어 유사 작품이 다수 출간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때여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세계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해석했다. 이와 달리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북유럽 신화는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야 대중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그것은 북유럽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오늘날 수많은 판타지 팬들을 열광시킨 <왕좌의 게임>, <반지의 제왕>, <토르>, <어벤져스> 시리즈의 기원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 <토르>와 <어벤져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영화를 볼 때마다 오딘과 토르, 로키 등의 매력적인 캐릭터와 그 속의 독특한 세계관에 금세 사로잡혔다. 신들이 사는 아스가르드, 무지개다리인 비프로스트, 이를 지키는 헤임달, 토르의 망치 묠니르를 탄생시켰고 타노스를 대적할 무기를 만들었던 손재주가 좋은 난쟁이들의 공간 니다벨리르(스바르트알프헤임), 라그나뢰크를 막기 위해 토르를 돕는 발키리까지. 이 모든 이야기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북유럽 신화를 읽는다면 좀 더 그들의 세계관을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 나는 <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를 읽기 시작했다.

 

 

 

인류의 집단 무의식은 바로 신화다.

 

 

 

   세계적인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신화는 나에게 절망의 위기 혹은 기쁨의 순간에, 실패 혹은 성공의 순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신화는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그림이 있는 북유럽 신화>의 저자 김원익 역시 “모든 것은 인간과 통한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신화도 결국 인간의 이야기다. 신화는 고대 인간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결국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재미있고도 의미 있는 방법, 바로 이것이 우리가 신화를 알아야 하는 이유다.

 

 

 

   특히 북유럽 신화의 모든 이야기는 ‘라그나뢰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고대 노르웨이어로 ‘라그나’는 ‘신’을 뜻하는 ‘레긴’의 복수형이며, ‘뢰크’는 ‘황혼’ 혹은 ‘파멸’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라그나뢰크’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신들의 황혼’이나 ‘신들의 파멸’이다. 하지만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파멸은 자신들뿐 아니라 거인들과 인간들 그리고 난쟁이들 모두의 파멸을 초래하기 때문에 라그나뢰크는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의 종말을 뜻한다. 북유럽 신화는 태초부터 신들과 거인들의 갈등에서 시작되어 그것이 계속 증폭되다가 결국 양측 사이에 총체적인 전면전이 일어나 소위 아홉 세상 전체의 파멸로 끝을 맺는다. 북유럽 신화는 마치 인간이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라그나뢰크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북유럽 신화는 세상을 갈등과 충돌의 역사로 본다는 점에서 비관적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처해 있는 비극적 현실을 아주 적확하게 대변해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책은 바로 이 비교신화학적인 관점에서 각각의 이야기가 ‘바로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세상을 창조한 거인 살해 사건부터 세상을 몰락시킨 라그나뢰크까지

 

 

  그리스 신화에서 이 세상은 ‘텅 빈 공간’이자 ‘혼돈’을 의미하는 ‘카오스’에서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나 신들이 생성된다. 북유럽 신화에서도 이 세상은 그리스 신화의 혼돈과 비슷한 ‘어둠’에서 시작된다. 어둠이라는 말은 “땅도 바다도 공기도 아직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여기에서 불의 나라를 상징하는 무스펠헤임과 얼음의 나라를 상징하는 니플헤임이 만들어진다. 북쪽 니플헤임의 얼음 절벽에서 마르지 않는 샘물이 12개의 물줄기를 이루며 계곡으로 흘러내렸고, 불의 공간에서 불어오는 열기와 얼음 공간에서 불어오는 한기에 의해 생성된 서리에서 어느 날 북유럽 신화의 최초 생명체인 이미르라는 거인 하나와 아우둠라라는 거대한 암소 한 마리가 태어난다. 암소의 젖을 먹으며 자신의 살을 불린 이미르는 잠을 자는 사이 남자와 여자 거인 하나씩과 머리가 6개 달린 거인을 만들어 낸다. 이 3명의 거인들이 북유럽 신화의 모든 거인들의 조상이 되고, 또 암소 아우둠라가 니플헤임 계곡의 얼음덩이를 핥다가 찾아낸 부리가 북유럽 신들의 조상이 된다. 이후 부리의 아들 보르에게서 오딘 삼형제가 태어나고, 그들은 거인 이미르의 시신으로 하여금 마침내 세상을 창조하기에 이른다.

 

 

 

   오딘 삼형제는 신을 공경할 인간을 만들기 위해 죽은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 가지로 각각 자신들의 모습을 본 떠 남자와 여자의 형상을 만들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다. 이들이 바로 모든 인간들의 조상 아스크와 엠블라이며 난쟁이(트롤, 코볼트, 드워프)와 요정(엘프)도 이때 생겨난다. 삼형제 중 신들의 왕이 된 오딘은 지상과 지하, 하늘의 공간을 9개로 나눈다. 신들이 거주하는 아스가르드, 반 신족이 거주하는 바나헤임, 요정들이 거주하는 알프헤임, 인간들이 거주하는 미드가르드, 손재주가 좋은 난쟁이들이 대장간을 운영하여 오딘의 창인 궁니르, 토르의 망치인 묠니르를 탄생시킨 스바르트알프헤임(니다벨리르), 거인들이 거주하는 요툰헤임, 얼음의 공간인 니플헤임, 불의 공간으로 이곳의 수장인 거인 수르트가 지키고 있는 무스펠헤임, 죽은 자들의 공간이자 이곳을 지배하는 여신의 이름을 딴 헬(헬헤임)과 마지막으로 생명의 나무 이그드라실이 9개의 공간을 아우른다.

 

 

 

   흥미롭게도 북유럽 신화의 가장 큰 특징은 이처럼 아주 독특한 공간 구조에 있다. 북유럽 신화에는 신들과 인간들의 세계뿐 아니라 제3의 공간인 거인들의 세계가 있다. 특히 거인들은 신들과 대립하면서 전체 플롯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크기에서 단연 신들을 압도한다. 변신술 등 여러 가지 능력에서도 신들과 필적하며 계속해서 그들의 세계를 위협한다. 심지어 거인들이 신들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들이 거인들의 공격을 두려워하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북유럽 신화의 거인들은 무엇을 상징할까? 그들은 우선 어둠, 죽음, 불의, 악의 세력 등을 상징할 수 있다. 거인들은 또한 자연의 거대한 힘을 상징할 수도 있다. 고대의 북유럽 사회에서 혹독한 겨울을 비롯한 거친 자연환경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데 최대 난관이었을 것이다. 당대 인간이 풀어야 할 가장 어렵고도 중요한 숙제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 신이나 대적할 수 있는 거대한 폭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에 저자는 그 폭력이 바로 북유럽 신화에서 거인들로 형상화된 것은 아닐까하고 말한다.

 

 

 

이미르나 반고나 하이누웰레 이야기는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죽음의 진정한 의미는 결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자 희망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는 누군가의 성공 뒤에는 반드시 다른 사람의 희생이 숨어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누군가 인생에서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죽음과도 같은 혹독한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같은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 12장 24절) / 26p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는 2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로, 그것은 하늘로 올라가고픈 인간의 욕망을 표현했을 수 있다. 둘째로, 그것은 인간이 신에게는 미치지 못하지만 원래는 아주 선해서 원하면 언제든지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타락하면서 그런 자격을 박탈당했던 것이다. / 46p

 

 

 

 

 

 

   그리스 신화에 제우스를 비롯한 12주신이 있는 것처럼, 북유럽 신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주요 12주신을 선별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신들의 왕 오딘으로 그는 힘이 아닌 지혜로 신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을 다스린다. 두 번째는 결혼과 모성의 여신인 오딘의 아내 프리그다. 세 번째는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천둥의 신 토르다. 대지의 여신 요르드의 아들로 신들 중 가장 힘이 세고, 허리에 차면 힘이 2배나 솟아나는 메긴교르드라는 허리띠와 던지면 표적을 반드시 명중하고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천하무적의 망치 묠니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이 강력한 무기로 아스가르드와 미드가르드의 질서를 해치려는 자는 누구든 용서하지 않았다.

 

 

 

   네 번째는 풍작의 신 프레이그이고 다섯 번째는 사랑과 미의 여신 프레이야다. 여섯 번째는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지키는 파수꾼 헤임달로 그는 신비한 탄생 일화를 가지고 있는데, 일곱 번째 주신인 바다의 신 에기르에게서 난 9명의 딸에게 반한 오딘이 그들과 번갈아 가며 사랑을 나누었다가 이들이 서로 힘을 합해 낳은 아들이 바로 그다. 여덟 번째는 시와 음악과 음유시인의 신 브라기이고, 아홉 번째는 브라기의 아내이자 청춘의 여신 이둔이다. 이둔이 매일 제공하는 황금 사과 덕에 신들은 늘 젊음과 불면을 누릴 수 있었다. 이어 열 번째 주신은 빛의 신인 발데르이고, 열한 번째 주신은 전쟁의 신 티르다. 마지막으로는 악의 화신이자 장난꾸러기의 신 로키로, 그는 교활한 꾀로 계속해서 신들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신들을 위험에서 구해 주기도 한다. 영화 <어벤져스>와 <토르>에 등장하는 바로 그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로키처럼 말이다.

 

 

 

아홉 번째 주신으로는 브라기의 아내이자 청춘의 여신인 이둔을 들 수 있다. 그녀는 난쟁이 이발디의 딸로서 청춘의 사과밭을 가꾸며 지킨다. 북유럽 신들은 신과 거인의 후손으로 순수 혈통이 아니라서 유한한 생명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청춘의 여신 이둔이 그들에게 공급해 주는 청춘의 사과 덕분이다. 특히 청춘의 신 이둔이 시의 신 브라기의 아내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혹시 시인은 영원한 젊음의 소유자란 뜻이 아닐까? / 79p

 

 

 

   책에는 다양한 신들의 모험 이야기가 등장한다. 신들에게 보물을 선사한 시프의 머리카락 도난 사건, 프레이야로 여장하고 거인 트림 일당을 처치하는 토르, 거인 티아지에게 빼앗긴 청춘의 여신 이둔과 황금 사과, 죽은 아버지를 복수하러 아스가르드에 갔다가 얼굴이 아니라 발을 보고 신랑감을 잘못 고른 스카디, 거인들의 왕 우트가르드로키와 세 가지 대결을 벌인 토르, 거인 흐룽그니르의 애마 굴팍시와 오딘의 애마 슬레이프니르의 경마 대결과 거인 여인 게르드에게 사랑에 빠진 프레이르의 중매에 나선 스키르니르, 질투심 때문에 빛의 화신 발데르를 죽음으로 내몬 로키가 신들의 분노를 사고, 아들 나르피의 시신에서 수습한 창자에 묶인 채 독사의 독을 얼굴에 맞는 형벌을 받는 일까지 매우 흥미롭다. 가만 보면 마치 인간 세상의 축소판 같다. 질투에 사로잡혀 형제를 죽음에 내몰고, 탐욕으로 빼앗은 반지 하나가 저주를 낳으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사건과 사고를 몰고 다니는 로키도 참 얄궂다. 번번이 그로 인해 신들의 세계가 위협을 받게 되니 말이다.

 

 

 

아스가르드에서 청춘의 여신이 사라지자 과연 신들은 날마다 먹던 사과를 먹지 못한 탓에 금세 노쇠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점 허리가 굽어지고 피부도 탄력 없이 쪼글쪼글해지며 머리카락은 눈처럼 하얗게 세어지기 시작했다. 기력도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다. 사과는 아마 고대부터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 같다. “하루 사과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 없다”라는 영국 속담도 있지 않은가. / 155p

 

 

우트가르드로키에 의하면 로키가 먹기 시합을 한 상대인 로기는 사실 자신이 마술을 부려 거인으로 만든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었다. 그래서 로키가 아무리 빨리 먹어 치웠어도 로기는 모든 것을 불태우는 화마처럼 고기뿐 아니라 식탁까지도 집어삼켰다는 것이다. 또한 티알피가 달리기 시합을 한 후기도 사실 자신이 마술을 부려 거인으로 만들어 낸 자신의 ‘생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티알피가 아무리 빨라도 우트가르드로키의 생각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중략)... 마지막으로 우트가르드로키에 의하면 토르가 노파라고 생각한 거인 엘리는 사실 자신이 마술을 부려 노파로 만든 ‘흐르는 세월’이었다. 그 누구도 흐르는 세월은 피할 수 없는 법. 그래서 토르 같은 천하장사라도 그 노파와의 씨름에서 절대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 198p

 

 

로키는 흐레이드마르의 불만을 듣자마자 특유의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돌려 오딘의 약지손가락을 쳐다보았다. 오딘은 하는 수 없이 아까 자기 몫으로 챙겨두었던 황금 반지를 빼어 로키에게 던져 주었다. 로키가 황금 반지로 틈새를 메우자 흐레이드마르는 그제야 만족하며 이제 가도 좋다며 오딘에게 압수해 두었던 창 궁니르도 돌려주었다. 오딘 일행을 데리고 막 흐레이드마르의 집 대문을 나서려는 순간 로키는 아까 안드바리가 했던 저주의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 몸을 돌려 흐레이드마르 삼부자에게 그 황금의 주인이었던 난쟁이 안드바리의 저주를 그대로 전했다. 앞으로 그 황금 반지를 갖게 되는 자는 반드시 파멸하고 말 것이라고 말이다(이 반지는 이후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와 영화 <반지의 제왕> 등 여러 작품의 모티프가 된다). / 227p

 

 

 

 

 

 

   끝내 라그라뇌크는 찾아온다. 그 전조는 맨 먼저 인간 세상인 미드가르드에서 나타난다. 라그나뢰크가 다가올수록 인간 세상은 윤리와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야만의 시대로 변해간다. 혹독한 겨울이 계속되고, 하늘에 떠 있던 모든 별들이 바다로 떨어져 암흑천지가 되었으며 지진이 나 늑대 펜리르가 끈에서 풀려나고 물에서 불어난 바다에서는 왕뱀 요르문간드가 서서히 몸을 풀기 시작하여 해일이 일어난다. 세계수 이그드라실 역시 고통스러운 듯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비튼다. 마침내 헬의 전용배로 헬헤임의 전사와 거인들, 로키, 요르문간드, 펜리드 등이 모여 무지개다리 비프로스트를 건넌다. 신들과 거인들을 비롯하여 그들의 적들이 모여 싸운 곳은 바로 아스가르드의 광활한 비그리드 평원이다. 평원 한쪽에서는 오딘을 총사령관으로 내세우고 아스 신족, 반 신족이 수많은 전사 영웅 에인헤랴르를 대동하고 전열을 갖춘다. 이에 맞서 다른 쪽에서는 불의 거인 수르트를 총사령관으로 내세우고 서리 거인들, 지하세계의 문을 지키는 개 가름을 비롯한 헬의 군대들, 로키와 그의 자식들인 늑대 펜리르와 왕뱀 요르문간드 등이 전열을 갖춘다. 이 싸움에서 결국 신들이나 거인들뿐 아니라 아홉 세상의 모든 것이 몰락한다.

 

 

 

   그렇게 라그나뢰크로 모든 것이 끝나는 듯했으나 다시 희망의 싹은 돋아나기 시작한다. 바다에 가라앉았던 대지가 다시 솟아오르고 모두 죽은 줄 알았던 신들과 인간들 중에서도 생존자들이 나타난다. 신들 중에서는 오딘의 아들 비다르와 발리, 그리고 토르의 아들 모디와 마그니가 살아남는다. 지하세계에서도 발데르와 호드가 살아남아 아스가르드로 올라온다. 이들은 그 밖에 살아남은 다른 신들과 함께 아스가르드의 새 주역이 되고, 이제 오딘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새 시대가 도래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결말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두 가지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신들과 거인들을 끊임없는 대결의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이 세상을 선과 악이 치열하게 싸우는 전쟁터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신들과 거인들의 최후 결전인 라그나뢰크에서 신들을 살아남게 하여 이 전쟁에서 결국 선이 승리한다고 확신한다. 특히 라그나뢰크에서 신들뿐 아니라 거인들과 난쟁이들과 인간들에게까지도 가장 사랑을 받았던 발데르가, 그것도 자신을 죽인 형제 호드와 함께 다시 살아난다는 점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는 마치 영화 <토르:라그나로크> 편에서 결국 라그나뢰크를 막지는 못하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모여 아스가르드는 어느 특정 공간이 아니라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는 점을 되새기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토르:라그나로크>를 보면 도입부에 불의 거인 수르트가 토르에게 “네 힘으로는 못 막는데 왜 싸우는 거냐?”고 질문하는 대목이 있다. 이때 토르는 “그게 영웅이 하는 일이니까.”라고 대답한다. 비록 영웅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래지만 이에 저항하고 싸우려는 의지를 지닌 자들에 의해 이 땅은 숱한 좌절 속에서도 일어서왔다. 그것이 갈등과 충돌의 역사 속에서 다시 희망을 일으켰던 북유럽 신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최근 다양한 출판사에서 북유럽 신화에 관한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최고의 신화 권위자로 손꼽히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과 원문에 충실한 컬러 삽화가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배가 되었던 책이었다. 마지막 장에는 《니벨룽의 반지》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뵐숭 가문과 니플룽 가문의 비극’ 편도 수록되어 더 많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니, 북유럽 신화에 입문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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