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간편식 - 귀찮지만 집밥이 먹고 싶어서
이미경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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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속 단골 재료를 이용한 한 그릇 뚝딱 요리 레시피!

최대한 간편하면서도 한 끼가 든든해지는 우리집 건강 밥상! 

 

 

   코로나19로 인해 두 아이와 딱 붙어 지낸 지 벌써 4개월째다. 처음 한 달이야 호기롭게 아침, 점심, 저녁 다른 메뉴로 영양까지 구색을 맞춰서 아이들의 삼시세끼를 챙기곤 했지만,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흘러가다보니 이제는 똑같은 메뉴를 며칠 걸러 한 번씩 밥상에 올리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게다가 요리도 썩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인터넷으로 백종원, 김수미 레시피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냉장고에 필요한 재료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금방 포기하기를 거듭하고, 몇 권 가지고 있는 요리책마저도 막상 만들려고 하면 우리 아이들 입에 맞는 요리를 마땅히 할 만한 게 없어 덮어놓기 일쑤다. 더욱이 반찬을 여러 개 미리 만들어놓고 냉장고에 재어놓기 보다 볶음밥이나 덮밥, 김밥처럼 때에 맞게 한 그릇으로, 부담 없이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선호하다보니 ‘마트의 가정간편식만큼 간단하게,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고민 없이 만드는 레시피’를 모은 『가정간편식』은 참 반갑다. 무엇보다 몇 백 가지의 요리를 소개하여도 한두 가지 만들어보고 말 요리책이 아니라 가짓수는 적더라도 실제로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를 소개한 요리책이 있었으면 했는데, 이 책은 일단 가볍게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시도해볼 만한 요리가 많아보여서 마음에 든다.

 

 

 

 

 

 

최신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냉장고 속 재료로 가볍게 도전해보기 좋은 오늘의 밥상

 

 

 

   『가정간편식』은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친근한 식재료에 다섯 가지 과정을 넘기지 않고, 갖은 양념을 배제한 심플하고 건강한 음식을 연구하는 요리연구가이자 푸드콘텐츠 전문가인 이미경 저자의 요리책이다. 책은 외식에 익숙해진 식문화와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방법보다는 맛집이나 간편식 제품을 선호하는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최대한 간편한 가정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본격적인 요리 소개에 앞서 각종 재료 계량법과 냉장·냉동 식품의 보존 기간, 요리의 완성을 담당하는 기본양념 소개, 재료별 쉬운 손질법, 써는 법 등 가장 기본이 되는 요리 정보를 일러준다. 이 중 ‘냉장·냉동 식품의 보존 기간’에 적힌 재료 보관 기간을 쭉 훑어보고선 내심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냉동실에 보관해두면 언제든 해동해서 먹으면 되는 줄 알고 쌓아두고만 있었던 재료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리가 시급해보였다. 또 ‘재료 손질법’을 통해서는 육즙이 누린내를 나게 하는 원인이 되므로 키친타월로 잘 제거한 다음 요리를 해야 한다는 정보는 좋은 팁이 될 듯하다.

 

 

 

뚝딱 집밥 차리는 기본양념_

기본양념은 요리의 완성을 담당하는 중요한 재료입니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라도 기본양념과 어우러지지 않으면 맛이 없는 요리가 됩니다. 그래서 좋은 재료만큼이나 기본양념을 잘 써야 합니다. 기본양념으로 대체 가능한 양념으로 응용할 수 있을 때 요리가 쉬워지니 먼저 기본양념에 충실한 요리를 익혀 두어야 합니다. / 16p

 

 

 

 

 

 

   챕터1에서는 일종의 냉장고 파먹기 요리로, 냉장고 속 단골 식재료를 이용한 ‘냉파요리’를 소개한다. 여기에서는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 무와 배추, 감자, 양배추와 애호박, 달걀과 콩나물 등 단골식재료를 알뜰하고 맛있고 건강하게 먹는 법을 귀띔한다. 특히 고기 요리는 부위별 요리법과 보관법, 각 부위를 그림으로 그려 소개하고 있어 활용도가 높다. 요리는 삼겹살 묵은지 밀푀유처럼 특별한 날에 밥상에 내놓기 좋은 요리에서부터 우리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닭 다리살 달콤구이, 쇠고기 컵밥, 땅콩버터 두부볶음, 쉽고 간편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어묵 김밥, 두부 김치전 등을 소개한다. 이 중 가장 먼저 만들어 본 요리는 쇠고기 컵밥인데, 보기에도 예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쇠고기에 보들보들한 스크램블 에그가 곁들어 있으니 이날 저녁 한 끼는 손쉽게 뚝딱 해결되었다.

 

 

달걀과 콩나물 이야기_

완전식품 달걀. 단백질 식품이 귀하던 시절 달걀은 집에서 먹을 수 있는 가장 친근한 단백질 식품이었어요. 냉장고 문을 열면 언제나 달걀은 지금도 완전식품이자 요알못도 요리할 수 있게 하는 말이 필요 없는 재료입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집에서 콩나물을 키워 명절에 콩나물 요리를 해 먹었어요. 시루에 담긴 콩나물은 쑥쑥 크지만 물주기를 게을리하면 잔뿌리가 많이 생기고 가느다랗게 자라기 일쑤고 더운 날씨에는 썩어버리곤 했어요. 콩에서 자란 콩나물은 비타민 C가 특히 풍부하고 아스파라긴산이 많아 숙취 해소 요리의 단골 식재료죠. 국, 찌개, 나물, 밥으로 활약을 펼치니 한 봉지는 늘 냉장고에 준비하세요. / 159p

 

 

 

 

 

 

   챕터2에서는 한 끼 해결하기도 바쁜 세상에 맛있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딱 한 그릇 요리를 소개한다. 만드는 시간도 절약되고, 메인 요리부터 브런치, 술안주까지 해결할 수 있는 요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밥상에 올리면 아이들이 좋아할 듯한 아기자기한 맛이 있는 밥 카나페, 냉동실에 굳어 있는 주꾸미를 드디어 소환할 수 있는 주꾸미 마늘종볶음밥, 항상 쇠고기만 넣어 만들어먹던 카레에 고구마를 넣어 달달한 맛과 식감을 더한 고구마 카레는 당장 도전해보기 좋을 듯하다.

 

 

 

 

 

 

   이어 마지막 챕터3에서는 여유로운 주말에 브런치 카페나 레스토랑에 가는 대신 느긋하게 만들어 볼 만한 가벼운 끼니로 간식 편을 소개한다. 아이들과 곧잘 만들어먹는 핫케이크에 크림과 딸기만 곁들어도 멋진 디저트가 되는 딸기 오믈렛, 모닝빵을 활용한 간식 모닝빵 샌드위치와 햄 앤 치즈 브레드 볼은 약간만 변화를 주어도 다양한 맛의 모닝빵을 즐길 수 있어 주말에 꼭 만들어볼까 한다. 더욱이 요즘 다이어트 중이라 샐러드를 자주 만들어먹곤 하는데, 책에 소개된 콥 샐러드나 보트 샐러드 등은 매일 먹는 샐러드라도 질리지 않게 즐길 수 있을 듯해서 시도해보려 한다.

 

 

 

 

 

 

   이렇듯 『가정간편식』은 요리시간이 대부분 30분 내외에 이르고, 재료도 비교적 간편하며 조리과정도 단순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또 제목처럼 한 그릇으로 뚝딱 만들기 쉬운 요리는 물론 냉장고에 특정 재료가 없어도 대체할 수 있는 재료까지 함께 소개해주고 있어 더욱 시도해볼만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집밥 해먹기가 더 만만찮아진 지금, 우리집 밥상에 간편하면서도 기분 좋은 변화를 시도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가정간편식』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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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호 인플루언서 인문 잡지 한편 2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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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언서를 통해 바라본 미디어 세태와 영향력 그리고 행동에 이르기까지!

인플루언서 현상과 그들의 진정성 그리고 방향성을 모색하다!

 

 

  언론학에서 수사학, 교육학, 역사학, 여성학, 인류학에 이르기까지 젊고 다양한 학자들을 연결하여 가장 콤팩트한 담론의 장을 연 인문잡지 《한편》이 2호를 발간했다. 1호인 ‘세대’ 편에 이어 2호 역시 우리 시대의 가장 민감한 주제를 화두로 내걸었다. 바로 ‘인플루언서’다. 이른바 ‘SNS 유명인’이라 불리는 인플루언서들은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소통할 수 있는 미디어 환경의 시대에서 자신들이 지닌 영향력이라는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유통하는 데 성공을 거둔 크리에이터이기도 하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뉴스 생산자 또는 전달자이기도 하며, 진정성을 연출해서 수익을 내는 사업자도 있는 한편 선한 영향력을 통해 사회적으로 의미와 가치가 있는 행동력을 촉구하는 등 저마다 다양한 위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인기 있는 인스타그래머가 하자 있는 상품을 판매하여 논란이 일어나고, 가짜 뉴스 혹은 각종 음모론으로 점철된 유튜브 채널이 양산되거나 키즈 유튜버를 상대로 한 아동학대가 발생하는 등 인플루언서들을 둘러싼 문제점들이 큰 우려를 낳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때문에 인플루언서를 중심으로 한 각종 현상들을 분석하고, 이들이 가진 영향력의 의미와 그 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는 현시점에서 매우 온당해 보인다. 이에 인문잡지 《한편》은 누가 영향력을 원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이 두 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영향력의 방향성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누가 영향력을 원하는가, 그리고 영향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한편》에는 총 열 편의 원고가 수록되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나고 있나요」의 이유진은 인플루언서를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치며 팔로워를 다수 보유한 셀러브리티”이면서,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을 통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로 정의한다. 즉,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문화적 의미를 생산하고 협상하는 장소인 셀러브리티 개념과, 타인에 영향을 미치는 뉴스 생산자 또는 전달자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기존 셀러브리티가 신문, 방송, 잡지 등 기성 미디어를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고 전파한다면, SNS를 통해 성장한 일종의 ‘마이크로 셀러브리티’인 인플루언서는 자신의 스피커를 통해 구/독자들과 직접 만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더욱이 “보고 듣고 말할 것이 있으면 누구나 저널리스트가 되는 세상”에서 저널리스트가 인플루언서가 되고 인플루언서가 다시 저널리스트가 되는 상호 방향성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상을 진단한다.

 

 

 

   기성 언론과 인플루언서 양자의 상호작용을 진단한 윤아랑의 「네임드 유저의 수기」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다수의 ‘공식’ 비평가가 ‘일개’ 왓챠 유저보다 흥미로운 의견이나 전문적인 관점을 제시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비평, 기존 권력을 대신할 권력으로 나서게 되는 인플루언서들 사이에서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근간을 위협하는 그 원인 덕분에 권위를 일부 회복하는 듯 보이는 기성 미디어들. 저자는 이 현상을 ‘기성’과 ‘대안’의 기괴한 꼬리 물기로 진단한다. 그도 그럴 것이 대중들이 전문 비평가와 서평가의 엄격하고 진지한 접근의 해석이 아닌, 진정성 있고 솔직하면서 거기에 필력까지 갖춘 북스타그래머들의 의견에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도, 여전히 신뢰성이나 권위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공식’적인 기성의 해석에 의지하는 양상을 보이는 까닭이다. 하지만 저널리스트와 인플루언서, 진짜 뉴스와 가짜 뉴스, 리뷰와 비평을 구분하는 경계가 점점 더 모호해지는 시점에서 기존의 미디어가, 언론인이, 뉴스가,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어떻게 하면 다양성을 추구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듯하다.

 

 

한 일간지 문화부 기자는 “특정 매체의 시각이 스며 있거나 기사 문법을 중시하는 기자들보다는 일반인들이 쓴 글에서 진정성이 더 많다고 느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진정성’이야말로 인플루언서들이 사랑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인데, 구/독자들로 하여금 기존 미디어의 이해관계나 지향과 관련 없이 솔직하고 사실에 가까운 정보 전달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중에서 25p

 

 

위기와는 상관없는 안전함, 그러니까 많은 이들이 외면하는 잔인한 사실은, ‘제도’의 수혜를 받은 다수의 ‘공식’ 비평가가 ‘일개’ 왓챠 유저보다 흥미로운 의견이나 전문적인 관점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경담의 지적처럼 리뷰와 비평의 구분이 모호해졌다면, 둘을 먼저 분간하지 못한 건 대중이 아니라 비평가들이 아니었을까?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인플루언서들의 자의식 앞에는 아마 이런 말이 괄호 쳐져 있을 것이다. ‘저런 사람도 하는데.’ /

‘네임드 유저의 수기’ 중에서 44p

 

 

고로 인플루언서를 무한한 자유의 장을 누비는 중간 소비자 혹은 단속해야 할 비전문가로만 따지는 것은 모두 어긋난 관점이며, 그보다는 기존의 제도로는 온전히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나날이 늘어 가고 있음을 과시적으로 보여 주는 행위자들이라 보는 게 정확할 게다. / ‘네임드 유저의 수기’ 중에서 48p

 

 

 

 

 

 

  부모인 입장에서 우리 아이들이 어떠한 미디어리터러시를 쌓아가고 있는지를 살펴야한다고 지적한 김아미의 「어린이의 유튜브 경험」은 그 어느 주제보다 가깝게 다가온다. 확실히 요즘 어린이들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을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체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린이들에게 유튜브가 “단순히 콘텐츠나 정보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면서 느끼는 감정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공간”인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나의 아이 역시 유튜브 혹은 게임 채널 속의 캐릭터 이름을 마치 자신이 이웃하고 있는 누군가와 동일시하고, 일상 속의 대화에서도 그들이 자주 쓰는 언어를 고스란히 사용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부모들은 딜레마를 겪는다. 자신의 과거와는 너무도 다른 교육 환경, 미디어 환경에 아이들을 얼마나 적절히 단속하고 또 노출시켜야 할지 경계를 구분할 수 없어 곤란해지는 것이다. 이에 김아미는 단순히 미디어 기기나 테크놀로지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디어 콘텐츠나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어 내며, ‘창의적’으로 나의 의사를 표현하고, ‘윤리적 책임감을 가지고’ 소통하며 참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어린이를 대상으로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을 할 때에도 미디어 활용 능력에 대한 교육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 공간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만들어 내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사회, 즉 공동체를 구성해 나감에 있어 미디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찰하고 상상할 수 잇도록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먼저 어린이에게 유튜브나 자신이 즐겨 이용하는 미디어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성찰할 수 있는 교육적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온라인상에서의 소통과 실천이 오프라인의 삶과 대등하게 중요한 생활의 일부로 여겨지는 지금 어린이, 청소년 세대에게 필수적인 교육이다. 더불어 어린이를 대상으로 유튜브 등 새로운 미디어와 관련된 교육적 접근을 시도할 때 이곳이 어른 사용자와는 또 다른 또래문화의 공간임을 이해하고 존중하여야 한다. 어린이들에게 유튜브 등의 온라인 공간은 교사나 기성세대에게 가시화되지 않은 문화적 코드가 존재하는 곳이다. 또한 사회화와 또래 문화에 대한 이해와 형성이 진행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 ‘어린이의 유튜브 경험’ 중에서 131p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았을 때, 유독 이목을 끌거나 자신이 가진 재능을 이용해 당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들은 어떤 식으로든 늘 존재해왔다. 저 머나먼 2500년 전, 아테네 민주정은 ‘설득’을 기반으로 한 연설가, 즉 영향력자가 있었다. 근대 전환기의 유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헌의 「2500년 전의 인플루언서들」과 정종현의 「선한 영향력 평가하기」는 어느 세대에서나 있어왔던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과 그들이 지향한 방향성을 통해 우리 시대의 인플루언서들은 자신들이 지닌 영향력이라는 힘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모색해본다. 이 외에도 음습한 온라인 커뮤니티와 정돈되지 않은 인터넷 정책, 익명성을 방패삼은 열악한 네티켓 등이 일으키는 비위생적인 정보 환경을 비판하는 박한선의 「인플루언서 vs. 슈퍼전파자」, 통제나 비난의 대상이 아닌 올바른 변화를 지향하는 ‘피드백 문화’를 강조한 이민주의 「#피드백 운동의 동역학」, 인터넷 그리고 테크놀로지 전반에 대한 차가운 각성을 촉구하는 유현주의 「팔로어에게는 힘이 없다」 역시 미디어 환경의 방향성을 타진하는 좋은 시도로 분석된다. 

 

 

 

디지털 공간 내에서 사람들은 가상의 타자를 상정하고, 가상의 타자(들)는 ‘사회’로서의 역할을 일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가상의 타자들은 ‘좋아요’나 ‘댓글’, ‘팔로우’, ‘메시지’, ‘리포스트(repost)’ 등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한편 관계성을 쌓아 간다. 따라서 디지털 공간 내에서 자의적으로 편집된 것이라고 치부되는 자기 재현은 가상의 타자라는 사회적 시선을 반영한 결과로, 즉 새로운 의미의 ‘사회적 관계’ 안에서 진정성이 발현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 ‘《일간 이슬아》의 진정성’ 중에서 65p

 

 

온라인에서 피드백 운동을 기존의 사회 운동 방식과 비교하여 ‘진짜’ 운동이 아니라고 깎아내리거나, 여성들이 손해만 보는 장사라고 단정 짓는 것은 오히려 편리한 결론이다. 피드백 운동을 수행하는 페미니스트 집단 안에서 참여자들의 소진 또는 감정적인 갈등의 문제는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를 소비주의와 경쟁주의의 심화로 인한 문제로만 해석하거나, 또는 인터넷 기반의 젊은 페미니스트 집단 자체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해석은 젊은 세대 여성 소비자에 대한 익숙한 혐오로 흘러 들어갈 수 잇다는 점에서 낡고도 위험하다. / ‘#피드백 운동의 동역학’ 중에서 110p

 

 

모든 디지털매체와 마찬가지도 소셜미디어도 일차적으로 프로그램한 자와 단순히 프로그램의 사용자라는 권력관계에 의해,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소셜미디어 특유의 팔로어 숫자에 의해 결정되는 권력관계에 의해 움직인다. 따라서 매우 뛰어난 확산 도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상호 평등한 소통 도구는 되기 어렵다는 인식은, 언제나 그렇듯 한 박자 늦게 출현하는 중이다. 수용자를 생산자로 고무시키는 문제는 새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논의되는 화두이지만, 우리 시대의 주도 매체인 디지털 기반의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이를 온전히 실현할 것이라는 기대는 지난 세기의 경험을 무색하게 하는, 늘 되풀이되는 환상으로 보인다. / ‘팔로워에게는 힘이 없다’ 중에서 167p

 

 

 

 

 

 

   끝으로 이소크라테스의 연설 중 ‘의견들’을 폄하하는 당대의 철학자들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학자라고 말하며 건강한 미래를 상상하는 데 단서를 준 대목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듯하다. 고대 그리스 연설가들이 현실에 근거하며 주장에 논리성을 지켰으며, 사람들의 감성을 파고드는 한편 오랜 시간동안 지속적인 활동과 주장을 통해 자신들의 품성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키워 나갔던 것처럼, 우리의 인플루언서들 역시 그러한 감각을, 진정성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목소리가, 나의 사진 한 장이, 나의 글귀 한 줄이 누군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면 우리는 이미 모두 인플루언서다.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말이다.

 

 

 

 

지혜와 철학에 관하여 말씀드리자면, 다른 사람들이 철학이라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만 하며, 무엇을 말해야만 하는지를 알려 주는 그런 지식 따위도 인간의 본성상 가질 수가 없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란 시의적절한 의견들을 통해서 많은 경우에 더 좋은 결과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이며, 그와 같은 분별력을 민첩하게 취하는 능력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철학자입니다. / 1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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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 전략 - 완벽함에 목매지 말고 ‘페어링’에 집중하라!
임춘성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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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과 인문학을 접목한 초개인 시대를 위한 비즈니스 전략!

딱딱한 경영서가 아닌 발상의 전환이나 통찰의 기회로 활용하기에 좋은 책!

 

 

   코로나19가 촉발시킨 사회적 변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비즈니스 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른바 언택트 시대, 초개인의 시대로 명명되며 사회보다는 가족, 집단보다는 개인이 우선시 되는 현상이 한층 강화된 가운데, 이제 기업은 초인간적이며 초개인적인 고객을 상대하고 지속적으로 그들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듯 ‘개인’이 강조되는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 앞에서 여전히 ‘관계’야말로 비즈니스 전략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는 『베타 전략』은 의아스러우면서도 자못 흥미롭다. 근시적이고 단시적인 속성을 지닌 초개인들에게 존재 중심의 관점이 아닌, 관계에 기반한 전개, 관계 중심의 관점, 관계에 역점을 둔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살아 있는 연결을 위해 베타가 추구하는 것

 

 

 

   그리스어 알파벳의 두 번째 문자, β. 이름하여 베타. 알파의 그림자에 가려진 채 알파를 만들어가는 과정 정도로 여겨지는 베타는 제품 개발에 있어서도 완성품 알파로 가는 중간 제품, 중간 버전을 가리킨다. 『배타 전략』의 저자 임춘성은 베타를 이렇게 정의한다. “베타는 움직이는 무엇입니다. 마치 시계추처럼, 진동자처럼, 나와 너, 당신과 당신의 그대, 우리와 너희, 그리고 기업과 고객 사이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무엇입니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양편을 끊임없이, 끊김 없이 이어주는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다시 말해 ‘끊임없고 끊김 없는 관계’, ‘끊끊한 관계’를 궁극적으로 지향함으로써 끊이지 않게, 끊기지 않게, 양편의 관계를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살아 있는 연결로 만들어주는 무엇이 베타라는 것이다.

 

 

 

   기업과 고객의 살아 있는 연결을 위해 베타가 구체적으로 추구하는 목표는 3가지다. ‘쾌속’, ‘중독’, 그리고 ‘지속’이다. 책은 바로 이 3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서술되는데, 1장 ‘베타의 각성 첫 번째-완벽함을 잊자’에서는 완벽함 대신 스피드와 타이밍을 아우르는 쾌속의 가치를 설명한다. 저자는 ‘사람은 자기를 기다리게 하는 자의 결점을 계산한다’는 주요 명제를 제시하며 나의 최선이 상대에게는 최선이 아닐 확률이 훨씬 더 높을 수 있음으로, 완벽해지기 위해 고군분투 하느라 상대를 ‘기다리지 않게 할 것’을 강조한다. 이때 완벽함을 잊는 대신 기억할 것이 바로 쾌속인데, 그냥 스피드가 아니라 상대가 기꺼워하는 속도, 상대와 고객을 기다리지 않게 할 정도의 적당한 스피드를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품을 개발하고 어떻게 서비스를 설계해야 고객을 기다리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베타를 채택하고 활용해야 할까? 책에서는 새로움을 포장하는 법, 꾸준한 새로움을 제공하는 옵션들, 고객이 원하지 않을 때는 주지 마라는 단호한 방법 등을 제시한다.

 

 

 

상대에게, 고객에게 새로움을 주어야 하는 것은 그들이 ‘기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뭔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현재 상태의 변화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며 홀로 있는 지금 상태에 변화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누군가는 늘 똑같았던 나, 늘 같았던 상품의 모습에 변화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상대와 고객을 기다리지 않게 하려면 새로움으로 포장해야 합니다.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 효율적인 새로움으로 말이죠. / 88p

 

 

제한적 다양의 베타는 옵션으로 변화 가능성을 주고, 이로써 꾸준한 새로움을 제공합니다. 포장한 새로움으로 혹은 옵션으로 무장한 새로움으로 상대와 고객이 느끼는 체감속도에 맞춰 기다리지 않게 하는 게 관건입니다. 어차피 물리적인 거리, 시간, 속도가 중요한 시대가 아니니 ‘체속’으로 ‘쾌속’을 실현해야 하니까요. / 96p

 

 

 

 

 

 

   이어 2장 ‘베타의 각성 두 번째-훌륭함도 잊자’ 편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중독’이다. 자칫 어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품는 것, 충족되지 않은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는 것, 그 욕망을 충족시키려 자발적으로 계속적으로 애쓰는 것’을 한마디로 중독이라 말한다. 즉, 충족되지 않은 욕망으로 나와 나의 기업 상품을 갈구하게 하고, 중독으로 하여금 나의 상대가 스스로 노력해서, 나에게 반응하고 나의 기업에 호응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때 필요한 태도는 훌륭함을 잊는 것이다. 모든 대상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그들의 특성도 변하며 특성의 기준과 그 기준으로 훌륭하다고 할 만큼의 수준도 변한다. 그러니 그때그때 시시각각 바뀌는 기준에 맞추느라 애쓰지 말고, 상대와 관계하고 고객을 응대하는 현실적인 방편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필요는 충족될 수 있지만 욕망은 충족될 수 없다’는 다음의 명제에 따라 한꺼번에 다 주지 않을 것, 뭔가를 계속 진행되게 할 것, 잊지 못할 순간을 제공할 것과 같은 베타 전략이 필요하다.

 

 

 

 

 

 

   3장 ‘베타의 각성 세 번째-오직 순간의 진실이다’에서는 ‘순진한 자는 순간의 진실을 영원이라 믿는다’는 명제와 함께 ‘지속’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냉정하게 말해 베타 전략의 가정은 나와 당신 사이, 나의 기업과 고객 사이의 관계는 ‘순간의 진실’이라고 말한다. 혈연으로 초월한 관계가 아닌 이상 나에게 내민 손, 열린 마음, 보여준 호의가, 모두 순간의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관계나 비즈니스 관계에서 소중한 상대와, 고객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인데, 한 번 주고 한 번 받고, 한 번 팔고 한 번 사고, 그렇게 끝내지 말고 끊임없이 끊김 없이 역동적으로 기꺼운 순간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무엇일까?

 

 

 

   저자는 여기에 베타 전략의 핵심 개념인 ‘페어링’을 강조한다. 다른 기기, 다른 핫스팟과 끊임없이, 끊김 없이 페어링하듯 연속적으로 기업과 고객은 바람직한 관계와 순간을 이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기업의 제품을 사용할 때마다,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계속 페어링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의 브랜드든, 제품의 추가 기능이든, 서비스의 후속 버전이든, 제품과 서비스의 또 다른 세부 옵션이든,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온오프믹스든 계속 고객과 페어링함으로써 순간의 진실을 지속시키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고객과 꾸준히 의논하고,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방식의 제3자를 끌어들이는 방식들이 필요하다.

 

 

 

‘순간 되지 않게 함’은 당연히 ‘지속’입니다. 어려웠던 만남을, 어려운 접점을, 어렵게 이루어진 ‘순간의 진실’을, 어렵지만 이어가고 싶은 완벽하고 훌륭한 순간을, 순간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지속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관계의 가치와 순간의 진실을 지속해야 합니다. 나와 너, 당신과 그대, 당신의 기업과 고객, 서로에게, ‘지속’입니다. / 198p

 

 

 

 

 

  이렇듯 『베타 전략』은 개인과 기업 사이에 존재하며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가리키는 베타를 통해 ‘관계와 연결’을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핵심 비즈니스 전략으로 삼은 경영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비즈니스나 기업이라는 단어를 빼놓으면 인간관계 혹은 인생전략이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을 만큼 다소 인문학적이다. 때문에 반드시 기업 경영에 관심이 없더라도 나와 우리의 삶에 대입시켜서 읽어보기에 무리가 없다. 또 바로 눈앞에서 강의를 하듯 편안하게 읽히니 누구든 한 번쯤은 베타 전략에 귀를 기울여보시길 추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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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 할 일은 끝이 없고, 삶은 복잡할 때
에린남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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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에 소소하게나마 실행해보지 않았다면 거짓말!

버림과 비움만이 목적이 아닌, 삶의 대한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책!

 

 

   자주 쓰는 에코백을 세탁하기 위해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비우려니 영수증이 한가득이다. 아이들 챙기느라 영수증은 대충 가방에 쑤셔 넣고 나중에 정리해야지 했던 것이 어느새 산더미가 되어 있었던 거다. 가위로 하나씩 잘라가며 한참 동안 정리를 한 후, 그 사이에 쓸 가방을 꺼내 물건을 담으려니…… 아뿔싸. 거기에도 영수증이 또 잔뜩 있다. 이쯤 되면 영수증이 가방 안에서 자가 증식하는 게 틀림없다. 어디 이뿐일까. 겨울 이불을 정리할 데가 없어 큰 정리함 하나를 비우고 그 안에 넣으려고 했더니 정리함 안에 웬 물병이 가득 들어 있다. 예전에 큰 아이 돌잔치 할 때 답례품으로 준비했던 것에서부터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거나 책을 사고 사은품으로 받은 굿즈, 각종 행사 기념품까지. 디자인이 예쁘다고 모으고, 아이들 크면 물통 자주 바꿔줘야지 하고 보관해두고, 저마다 기능도 다르니 유용하게 쓰이겠다 싶어 챙긴다는 게 이 정도로 쌓여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주 쓰는 물병 두 개만 줄곧 쓰고 있으면서 말이다.

 

 

 

   사실 『단순함의 즐거움』, 『나의 최소 취향 이야기』와 같이 미니멀리스트 생활자의 책을 읽었을 당시만 하더라도 몇 번 실천하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 때뿐이라 살림은 갈수록 더 늘어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가 하나일 때는 비교적 적은 편이었다면, 이제 돌 지난 아이까지 키우고 있으려니 부피가 큰 육아용품이 만만치 않게 집안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슬슬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중고장터에 내놓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기가 터뜨린 풍선 조각까지도 버리지 못하게 하는 첫째 아들 때문에 문밖으로 가지고 나가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러고 보니 미니멀리스트는 고사하고 맥시멀리스트에 다다를 지경이니, 정말 제대로 마음을 먹지 않으면 점점 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물건은 나를 절대 대변해주지 않는다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는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초보 미니멀리스트의 도전기다. 책은 미니멀리스트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저자가 무작정 비우기에 도전하다가 몇 번을 망설이고, 그러다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차근차근 비움을 실천하는 과정들이 솔직하게 담겨있다. 남들처럼 완벽하진 않지만,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하면서 소비에 대한 가치관과 삶의 자세까지 바뀌기 시작한 그녀의 담백한 고백들을 읽다 보면 확실히 따라해 보고 싶어진다. 무엇보다 집안일하는 게 귀찮아서, 하지 않기 위해 아예 미니멀리스트가 되어보겠다고 다짐하는 모습이라니. 주부들이라면 이런 동기부여에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물건 비우는 일이 생각 이상으로 험난한 여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물병만 한가득 쌓아두고 있었던 나처럼 그녀 역시 좋아하지 않는 향의 향초, 발이 불편한 슬리퍼, 우중충한 그림이 그려진 컵 받침 같은 사소한 물건들에서부터 자신의 쓰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얻어온 물건들, 수납장, 입지도 않는 옷들로 혼란스러운 집안을 하나씩 둘러보며 비우는 데 애를 먹는다.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놈의 ‘언젠가’일지도 모른다던 그녀의 말에 어느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살 빼면 입어야지, 유행은 다시 돌고 도는 거야, 나중에… 그래 나중에, 이 말을 반복하며 고이고이 모셔두다 고대 유물이 될 지경인 것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그 중에서도 물건 비우기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것이 바로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이라던 그녀의 말처럼, 지금은 듣지도 못할 카세트테이프나 CD에는 왜 그리 미련이 남는 것이며 고장이 난 휴대폰과 연애시절에 맞춰 입은 커플티(이젠 입을 수도 없는 사이즈에 남편 것은 또 어디에 있는지도 모름)는 또 왜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심지어 이 책을 읽으면서 화장대 서랍을 정리했는데, 결혼식 부조금 봉투까지 버리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

 

 

 

긴 시간 옷을 비우며, 지금껏 옷장을 채우고 있던 게 단순히 옷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 공간은 욕심, 허영심,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물론 추억이라는 아련한 감정도 꽤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감정을 옷과 함께 비워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안 그랬다면 나는 새로운 옷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을 계속 더하기만 했을 것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옷장을 둘러봤다. 한결 깔끔해진 모습을 기대했는데… 웬걸, 놀랍게도 옷장은 여전히 옷으로 빽빽했다. / 52p

 

 

물건 비우기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것은 바로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이었다. 다른 물건은 비워낸다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새롭거나 더 좋은 것으로 구입할 수 있지만 추억의 물건은 한번 사라지면 영영 이별이었다. 다시 구한다 해도, 새로 산 물건에는 과거의 내 손길이 닿아 있지 않으므로 가지는 것에 의미조차 없었다. 그래서 추억의 물건을 비울 때만큼은 오래도록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 64p

 

 

 

 

 

 

이거, 비워도 될까? 이거, 나에게 필요한 걸까?

 

 

  처음에야 미니멀리스트가 되어 보겠다고 호기롭게 나서 보지만,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럴 때 저자는 ‘물건을 비울 때 스스로 해보면 좋은 질문들’이라는 제목으로 좋은 팁을 남겨놓았다. 첫째는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직도 많다고 느끼는가?’다. 집에서 여백을 발견하면 자꾸만 채우고 싶어지는 마음, 우리 집에 두면 포인트가 될 것 같아 필요치도 않았던 것을 사게 되는 충동 구매, 이렇게 자꾸만 무언가를 더 사고 싶고 필요로 할 때면 그 전에 한 번 더 고민해보자. 나에게 필요한 물건은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두 번째는 ‘단지 미련이 남아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해보자. 한때 순정만화책을 모으는 걸 좋아했던 나는 신혼집에 들고 올 수 없어서 친정집에 두었다가 엄마가 대학 교재와 함께 더 이상 필요 없는 책인 줄 알고 고스란히 버렸다던 눈물의 비화가 있다. 그때는 속이 많이 상했는데, 막상 그 많은 책을 놔둘 곳도 없는데 꾸역꾸역 들고 올 바에야 종이 수집하는 어르신들 용돈 벌이에 보태는 선행이라도 베풀었다면 오히려 다행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외에도 같은 아이템을 다시 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지, 나를 위한 물건인지 남을 위한 물건인지, 이 물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지를 질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여기에 물건을 집으로 들일 때 내가 물건을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인가, 충동적으로 가지고 싶은 물건이든 첫눈에 마음이 뺏겨버린 물건이든 간에 이 물건과의 마지막 순간이 어떨지 예상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유용하고 기쁘게,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하다 헤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버리지도, 가지기도 싫은 애물단지가 되어서 골치만 썩힐지, 그것도 아니면 적당히 잘 쓰다가 중고로 되팔거나 누군가에게 기쁜 마음으로 물려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본다면 물건을 사는 일에 보다 더 신중해질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물건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내 생활 패턴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평소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식생활은 어떤지, 집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해서. 내 생활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나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도 잘 알게 됐다. 물건이 전보다 줄었는데도 생활은 불편함 없이 유지됐다. 나는 이미 필요한 만큼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 72p

 

 

헤어짐이 힘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이 물건을 중고로 판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좋아하는 물건이지만 내가 잘 관리해주지 못해서였다. 아크릴 장식장에 만들어서 전시해 두었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레고는 실제로 가지고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실용주의자다. 그런데 제 기능은커녕 생활공간에서 관심받지 못하고 다른 물건들에 둘러싸여가는 것이 마음 아팠다. 무엇이든 소유하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돌봐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방치만 해두었다. 나는 게으르고 나쁜 소유자였다. / 89p

 

 

 

 

 

 

   저자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가면서, 비움과 소비 절약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에서부터 물건을 대하는 태도 또는 삶의 태도까지 변화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지고 있는 물건이 절대 나를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것, 물건이 아닌 나 자신을 스스로 기억하고 추억해야 한다는 것,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과 즐거운 시간을 위해 필요하면 갖되 열심히 사용하고 충분히 썼다면 비우리라 다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생활이나 주변 환경보다 나 자체가 달라져야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쓰레기를 줄이는 방법’을 검색해보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제로 웨이스트 운동’을 알게 됐다. 제로 웨이스트는 쓰레기의 사용과 배출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실생활에서 발생되는 쓰레기, 특히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용기 같이 썩지 않는 소재의 사용을 줄이려는 실천을 말한다. 말만 들었을 때는 크게 어렵지 않았게 느껴지지만 내 생활반경을 조금만 둘러봐도 제로 웨이스트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된다. 수많은 일회용품에 둘러싸여 살아가던 내가 과연 플라스틱 없이 지낼 수 있을까. / 96p

 

 

확실히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니멀리스트로서뿐 아니라,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삶을 살려면.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생활이나 주변 환경보다 나 자체가 달라져야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관심을 더 가지면 내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으려나. / 120p

 

 

이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것이 있었다. 바로 내 삶이다. 불편함은 어느새 익숙함이 됐고, 과거보다는 쓰레기를 적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금 번거로워졌지만 전보다 편리하지 않을 뿐,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가벼워진 삶 덕분에 번거로움도, 불편함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 228p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몇 번이고 나의 주변을 흘끔거렸다. 아무래도 나는 게으르고 나쁜 소유자인 게 틀림없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듯하지만 가짐으로써 만족하는 습관을 이번에야말로 비워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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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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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뇌는 이야기를 원하고 있다!

뇌과학을 통해 스토리텔링의 방법론을 제시한 참신한 책!

 

 

   어느 날 문득, 우리 아이가 “엄마, OO이랑 OO가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섬에 도착했는데……”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섬을 탐험하고 그곳에서 탈출하려는 방법을 겨우 구했는데, 그곳에서 살고 있던 괴물이 깨어나 잡아 먹혔다는 뭐 그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이 어린 아이의 머릿속에 벌써 이야기라는 구조가 생성되고 있다는 것이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뛰어나거나 완벽한 것과는 별개로 저마다 이야기를 짓는 능력을 타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자이자 소설가인 윌 스토 역시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도록 태어났다고 한다. 인간은 본래 이야기와 감정을 즐기도록 타고난 존재라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는 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뇌에는 잠재적인 드라마가 장전되어 있으며 삶을 구축하는 다양한 방식을 본떠서 이야기를 창작하려 시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주장은 이야기 창작 이론가들이 서사에 관해 설명하는 몇 가지 개념이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들이 우리의 뇌와 마음에 관해 연구한 내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해 낸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지속적인 조사를 통해 뇌과학 기반의 스토리텔링에 관해 연구해 온 그는 자신의 책 『이야기의 탄생』을 통해 ‘뇌가 우리의 생각과 현실을 구축하고 왜곡하는 다양한 방식을 이해할 때, 좀 더 생생한 인물과 매력적인 이야기가 탄생’한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안나 카레니나』, 『남아 있는 나날』, 『대부』, 『라라랜드』 등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 문학과 영화, TV 드라마 작품들이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를 뇌과학을 통해 분석함으로써 과학적 스토리텔링이라는 상당히 참신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이야기의 탄생』은 우리의 뇌가 이야기에 반응하고 스토리텔링에 미치는 영향을 각기 다른 층위로 탐색한다. 1장에서는 작가와 우리의 뇌가 저마다의 생생한 세계를 어떻게 창조하는지 알아본다. 저자는 우리의 뇌는 인간의 환경을 통제하도록 진화되어 왔는데, 많은 이야기는 예기치 못한 ‘변화’의 순간에 시작된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야기 흐름에 예기치 못한 순간을 불어넣어서 주인공의 주의를 끌고, 나아가 독자나 관객의 관심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야기의 비밀을 밝히려고 시도한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변화의 의미를 알았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반전’, 곧 극적 전환점이 극에서 가장 강력한 순간이라고 주장했고, 스토리 창작 이론가이자 드라마 협회 회장인 존 요크는 “모든 TV감독이 현실이나 허구에서 항상 찾는 이미지는 클로즈업한 인간의 얼굴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정보’를 통해 정보에 대한 갈증을 자극하는 데에서도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시 말해, 주인공에게 예기치 못한 변화가 일어나거나 정보의 격차가 벌어지는 사이 우리도 같은 상황에 처하고 우리의 집중력에 불이 켜진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뇌에서 모형을 생성하게 하여 책 속의 상황이 현실인 것처럼 경험하게 하는 방법이나 인과관계의 논리가 모호한 지점을 통해서 호기심을 유발하는 법도 소개한다.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 C. S. 루이스는 1956년에 젊은 작가들에게 이렇게 강조했다. “어떤 것이 ‘끔찍하다’고 말하지 말고 독자가 끔찍하게 느끼도록 묘사하라. ‘기쁘다’고 말하지 말고 독자가 읽고 ‘기쁘다’고 말하게 만들어라.” ‘끔찍하다’나 ‘기쁘다’와 같은 형용사에 담긴 추상적 정보는 모형을 구축하는 뇌에는 묽은 귀리죽과 다르지 않다. 인물의 공포나 기쁨, 분노, 불안, 슬픔을 경험하려면 뇌에서 이런 감정 모형을 생성해야 한다. 뇌는 어떤 장면의 모형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서 책 속의 상황이 현실인 것처럼 경험하는데, 이렇게 해야만 이야기의 장면이 독자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 51p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축하는 신경계의 환각 모형은 작고 개별적인 모형으로 구성되고(공원 벤치, 공룡, 이스라엘, 아이스크림, 그리고 모든 것의 모형), 모형마다 저마다의 과거가 얽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의 대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연상시키는 모든 것을 함께 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함께 느낀다. 우리가 주목하는 모든 대상이 감각을 깨우고 대개의 감각은 의식 바로 밑에서 미묘하게 경험된다. / 65p

 

 

모든 작가는 어떤 독자를 타깃으로 정하든 간에 서사를 지나치게 통제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고 방치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지나치게 설명을 늘어놓는 것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는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보여줘야 하고, 설명하기보다는 암시해야 한다. 아니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식어버리고 독자나 관객을 지루해진다. 나아가 이들이 이야기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 독자나 관객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유롭게 예상하고 방금 그 일이 왜 일어났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자기만의 감정과 해석을 넣을 수 있어야 한다. / 81p

 

 

 

 

 

 

   조지프 캠벨은 “한 인간을 진실로 전달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사람의 결함을 기술하는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야기와 현실에서 만나는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하지만 현실의 삶과 달리 이야기에서는 그 인물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인간처럼 고도로 사회화되고 가축화된 존재에게는 타인의 인과관계, 곧 남들이 하는 행동의 이유를 아는 것만큼 매력적인 경험도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2장과 3장에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의 스티븐스과 같이 결함이 있는 주인공들을 만나보고, 인물의 성격이 플롯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본다. 이어 ‘이 사람은 누구인가?’ 혹은 인물의 관점에서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극적 질문이 극에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주인공의 잠재의식으로 들어가 인간의 삶을 기괴하고 복잡하게 뒤틀고, 우리의 이야기를 강렬하고 예상할 수 없고 감상적으로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기도 한다.

 

 

 

서양인들은 개인의 투쟁과 승리에 관한 이야기를 즐기는 데 반해 동양인들은 화합을 추구하는 서사에서 즐거움을 얻는다.

동양과 서양의 서사 양식에는 두 문화에서 변화를 보는 각기 다른 관점이 반영된다. 서양인에게는 현실이 개체와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위협적이고 예기치 못한 변화가 발생할 때 서양인은 이런 개체와 부분을 싸워서 길들이려고 애쓰면서 통제력을 되찾으려고 한다. 반면, 동양인들에게 현실은 서로 연결된 힘의 장이므로 위협적이고 예기치 못한 변화가 일어날 때 동양인은 요동치는 힘을 다시 조화롭게 다스려서 모든 힘이 공존할 방법을 찾아내는 식으로 통제력을 되찾으려고 한다. / 114p

 

 

우리가 인간 환경에서 보는 현실은 과거의 산물이자 자기만의 고유한 상처의 산물일 때가 많다. 우리는 뇌에서 무시하는 대상은 보지 못한다. 뇌가 우리 주위의 고통스러운 장면만 보도록 눈에 명령한다면 우리에게는 그런 것만 보일 것이다. 또 뇌에서 실제로는 무해한 사건에 대해 폭력과 위협과 편견의 인과관계를 지어내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그런 것만 경험할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경험하는 환각의 현실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경험하는 현실과 전혀 다를 수 있다. 누구나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며 그 세계가 친근한지 적대적인지는 주로 어린 시절의 경험에 달려 있다. / 226p

 

 

 

 

 

 

   마지막으로 4장에서는 이야기의 힘과 의미를 들여다보고 강렬한 플롯과 결말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살펴본다. 흥미롭게도 책을 읽다보면 나의 신경 모형이 어떤데 취약한지, 그리하여 어떤 이야기와 인물에 끌리는지 이해하게 된다. 또 뇌가 어떤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우리가 어떤 플롯에 안정감을 느끼고, 작가라면 어떻게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터득할 수 있다.

 

 

 

실제로 이야기에 빠져든 순간에 뇌를 스캔하면 자아 감각과 연관된 영역이 억제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야기가 우리를 아찔한 통제력의 롤러코스터에 태우면 우리 몸도 그에 따라 반응하면서 이야기 속 사건을 체험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혈관이 팽창하고 코르티솔과 옥시토신 같은 신경 화학물질의 활성화 수준이 변하면서 감정에 강력한 영향을 받는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 빠져들어 내릴 역을 놓치거나 잠도 못 이룰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도취’라고 말한다. / 259p

 

 

잘못된 신념이 그 인물의 현실에 대한 신경 모형을 형성한다. 인물은 그 너머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이런 잘못된 신념은 인물이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데 일조한다. 플롯의 핵심은 인물의 신념을 검증하고 깨뜨리는 데 있다. 이것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 276p

 

 

 

 

 

 

   이처럼 『이야기의 탄생』은 뇌과학과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독특한 시도로, 창작가들에게는 좋은 자극제이자 지침서가 될 만하다. 아울러 책이나 영화 등 각종 창작물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인물과 플롯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혹 뇌과학이라는 소재만 보고 이 책의 내용이 어려울 것이라 짐작하는 이들에게는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으니 일독해보시라 권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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