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멸종의 위기에 내몰린 야생동물의 처절한 현실을 들여다본 감동의 다큐멘터리!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향한 노력에 경종을 울릴 위대한 메시지!
얼마 전, SNS에서 한 장의 사진이 커다란 논란을 빚은 바가 있다. 경남 거제시의 한 테마파크에서 흰고래(벨루가) 체험 프로그램을 SNS에 홍보했다가 희귀보호종을 상업적 체험에 이용하고 학대했다는 이유로 시민들의 거센 비판을 받은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70분에 20만원을 받고 돌고래와 흰고래의 등에 타고 수조를 수영하며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주는 'VIP 라이드 체험‘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20살 무렵에 떠난 태국 패키지여행에서 나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 적이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거대한 코끼리가 등에 진 의자에 올라타 운동장 절반 정도 크기의 공간을 걸어 다니다보면 사진 한 장이 내게 쥐어지는데, 그것으로 이국에 다녀온 시간을 기념하려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동물 학대를 하나의 이벤트이자 추억거리로 삼아 왔다. 얼음 연못에 산천어를 가둬 놓고 집단으로 맨손 잡기 체험을 하는 축제 행사가 산천어를 학대하는 행위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듯 말이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경영난에 처한 동물원이 최후의 수단으로 일부 동물에게 다른 동물을 먹이거나, 멸종 위기종을 폐사시켜야만 했다는 안타까운 기사는, 그들이 동물 보호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자본의 힘으로 동물을 이용했다는 것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동물과의 교감이라는 그럴 듯한 변명으로 그간의 학대 행위를 애써 포장해왔던 것은 아닐까. 예상치 않은 바이러스의 위협,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 교란된 생태계와 점점 더 빨리 사라지고 있는 멸종 위기 동물들. 이 두려운 현실이 가리키는 곳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척 외면하고 있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이제, 제대로, 진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인류와 동물의 공존이 그려나갈 미래를 모색하다
『휴머니멀』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코끼리부터 짐바브웨의 사자, 태평양의 돌고래, 지구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두 마리의 북부흰코뿔소에 이르기까지, 멸종의 위기에 내몰린 야생동물의 처절한 현실을 들여다본 감동의 다큐멘터리다. 4개 대륙, 10개국, 365일 간의 여정을 통해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치열한 사투를 담아낸 2020년 MBC 창사특집 화제의 다큐멘터리 <휴머니멀>에서 방영된 내용을 포함해,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인류를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휴머니멀>을 제작한 PD이자 이 책의 저자인 김현기는 인간의 손에 죽어나가고, 포획되고, 길들여지다가 마침내 궁지에 몰린 진짜 야생동물의 모습을, 수려하게 만들어진 앵글 속의 계획된 장면이 아닌 그들의 생존을 내건 냉엄한 투쟁을 리얼하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무려 70년 동안 노예처럼 쇠사슬에 다리가 묶인 채 앙상한 몸을 하고서도 안장을 얹고 사람들을 태워야만 했던 암컷 코끼리 티키라, 상아를 얻으려는 밀렵꾼들에 의해 얼굴 없는 시체가 되어 평원에 널브러진 아프리카 코끼리들, 트로피 헌터들의 명예로운 사냥감으로 박제품이 되어버린 사자들, 돌고래 사냥으로 타이지의 앞바다가 피바다가 된 광경에서부터 고래 페스티벌이라는 명목 아래 피의 축제를 벌이는 페로제도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잔인한 포획과 모진 학대의 대상이 되어버린 멸종 위기 동물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현실, 사람과 동물이 아름다운 교감이나 공존을 이루며 살아가는 관계가 아닌 인간의 탐욕에 의해 동물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불편하고도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코끼리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인식할 정도의 자아정체성을 갖추었다고 한다. 기쁨과 분노, 연민, 슬픔 등 다양한 감정 표현도 가능하다. 가족 구성원과 그 역할을 모두 구분할 만큼의 사회성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내가 누구인지와 지금 주변에서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모두 알 수 있는 고등 생물이란 뜻이다. 이러한 코끼리를 사람의 입맛에 맞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그 야생성과 자아를 온전하게 굴복시켜야만 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모두 잊고 인간의 지시만을 따르도록 하는 ‘세뇌’ 과정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극단적이고 압축적인 충격과 학대의 투입을 의미한다. / 26p
밀렵꾼의 주요 타깃은 큰 상아를 지닌 수컷 코끼리다. 코끼리의 수명은 약 70년 정도인데, 보통 35~45살 정도면 1m에 육박하는 큰 상아를 가지게 된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수컷 코끼리의 씨가 마르면 이제 상아가 작은 암컷 코끼리도 그들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컷 한 마리에 준하는 상아 무게를 얻기 위해서 밀렵꾼들은 서너 마리의 암컷 코끼리를 죽일 것이다. 그리고 암컷이 줄어들면 출산율도 낮아져 코끼리 개체수가 더 빠르게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 60p
코끼리는 생태적, 경제적 측면에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다. 이 거대한 초식동물은 아프리카의 식생을 유지하는 생태계 엔지니어 역할을 한다. 그들이 머무는 지역은 그 압도적인 식사량 때문에 수풀이 초토화되어 토양의 사막화와 객토를 반복하는 효과를 누린다. 그 상태로 우기를 지나면 초원은 보다 싱싱한 목초지로 다시 태어난다. 이들은 먹이를 찾아 연평균 5,500km 이상을 이동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대지는 순차적으로 그 세례를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코끼리 개체 수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아프리카의 환경 불안정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 80p



이중 트로피 헌팅은 식용이나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레저와 전시를 목적으로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로써 『휴머니멀』이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의 잔인한 본성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책에는 프로 트로피 헌터로 익히 잘 알려진 올리비아가 자랑스럽게 자신의 전리품을 소개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동물을 박제해 남기는 것이 그 동물을 영원히 기억하는 일이자 그들에 대한 예우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스스로를 ‘야생 환경보호 활동가’라고 소개하는 것처럼, 트로피 헌터들은 헌팅이 단순한 쾌락을 위한 게 아니라 야생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주된 이유는 그들이 낸 돈이 정부와 지역사회로 흘러들어가 이 나라의 자연과 동물을 보호하는 데 사용되리라는 것이다. 또한 헌팅을 위해 필요한 가이드와 운전기사 등을 고용하여 각종 일자리를 창출하게 되므로, 이들이 생계를 위해 밀렵꾼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러할까. 올리비아를 포함한 트로피 헌터들은 자신들의 총 한 발에 담긴 쾌감을 일종의 사명감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총은 정말 자연과 인간을 위해 불을 뿜는 것일까. 그들이 너무 멀리 가고 있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 거리감이 인간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는 건 더욱 두려운 일’이라던 저자의 글이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영장류 연구가이자 UN 평화대사인 제인 구달은 트로피 헌팅이 아프리카 지역사회에 기여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헌터들이 지불하는 비용의 대부분은 그들을 사파리에 데려다준 아웃피터(헌팅업체)의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또 상당한 액수가 부패한 정부 관료에게 흘러들어가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약간이라고 혜택을 보는 지역 커뮤니티가 있을 수 있지만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단 한 번도,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려는 모범적인 트로피 헌팅을 본 적이 없습니다.” / 133p
“교도소의 간수가 잘 대해준다고 죄수가 교도소에 평생 있고 싶어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포기하고 이 좁은 상자 안에 적응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만 있을 뿐이죠. 바다에서 30년 넘게 살 수 있는 돌고래가 수족관이나 가두리에서는 고작 4~5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돌고래로 돈을 버는 사람은 절대 이 숫자를 입에 올리지 않아요. 이게 바로 1년에 20,000km를 헤엄치는 이 활동적인 동물을 좁은 우리에 가둬둔 결과입니다.” / 157p
『휴머니멀』은 어느 한 개인의 탐욕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동물을 위기로 몰아가는 근본적이고도 구조적인 문제점까지 함께 들여다본다. 짐바브웨, 남아공, 에티오피아, 카메룬,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 상당수가 트로피 헌터들에게 수렵권을 판매해 막대한 수입을 거두는 실정,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이 지역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고래에게 무의미한 학살을 벌이는 그라인다드랍, 국제적인 비난을 받으면서도 돌고래 한 마리를 판매했을 때 거두어들일 수 있는 막대한 수입을 포기하지 못하는 타이지의 어부들, 사자에게 잡아먹혀 얼마 남지 않은 소 때문에 생계의 위협을 느낀 주민들이 사자의 먹이에 독을 풀어 응징 살해를 자행하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인간과 동물이 더 이상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린 지금, 이대로라면 정말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게 되는 건 아닐까 우려스럽다.
2017년 울산 남구에 있는 고래생태체험관이 타이지 돌고래를 수입하면서 사용한 예산이 공개된 것이다. 돌고래 2마리의 구매 비용만 9만 달러에 이송 비용을 포함한 총 액수는 무려 한화 2억 원이었다. 타이지 마을은 돌고래 한 마리를 판매하면 5,0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그토록 국제적 비난을 받으면서도 타이지의 어부들이 돌고래 사냥을 멈추지 않는 이유를 짐작해볼 만하다. / 182p
칼럼니스트 변태섭은 카이스트의 <과학향기>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의 삶은 재앙에 가깝다. 야생에서 돌고래는 하루 100km를 자유롭게 헤엄치며 살아 있는 물고기 10~12kg을 먹어 치운다. 그런 돌고래에게 10m 안팎의 수조는 운동조차 하기 힘든 ‘비좁고 외로운 감옥’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돌고래는 친인척끼리 무리 지어 살기 때문에 각지에서 포획한 돌고래를 한 수조에 몰아넣는다고 해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거나 교류하지 않는다. 설령 말을 나누려 해도 대화의 수단인 초음파가 수 미터 앞의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되돌아온다.”고 덧붙였다. / 183p


아이러니하게도 『휴머니멀』은 인간들 때문에 멸종 위기 동물들이 위협을 받고 있지만, 이들을 되살릴 실낱같은 가능성도 결국은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 가능성은 배우 박신혜와 유해진, 류승룡이 다녀온 그 여정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인간들의 유흥을 위해 학대 받고 있는 코끼리를 구조하러 나선 생드언 차일러트, 밀렵꾼으로부터 위기에 내몰린 코끼리를 보호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체이스 박사, 돌고래 보호 활동가로 타이지 마을의 돌고래 학살을 감시하며 세상에 알리고 있는 팀 번즈, 위기에 처한 곰을 돌보고 야생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벤 킬햄 박사 부부 등에서 우리는 작지만 큰 희망을 본다. 하지만 결국엔 그들 일부가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아름다운 공존을 향한 우리 마음속의 의지와 각성이 무엇보다 절실할 것이다. 이제껏 제어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인간의 탐욕을 지금부터라도 정면으로 응시하고, 멈춰내겠다는 결심. 그것이 이 기울어진 공존의 균형추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유일한 희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인간은 너무 빨리 정점에 올라 생태계가 그에 적응할 시간도, 인간이 그에 적응할 시간도 부족했다. 인간은 최근까지도 패배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먹이사슬에서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지고 말았다. 치명적인 전쟁과 생태계 파괴가 모두 너무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라고 진단했다. 동물에게 인류는 자신의 힘을 스스로 어쩔 줄 모르는 질풍노도의 폭군인 셈이다. / 198p
이 싸움 끝에 사자가 결국 사라진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최상위포식자의 부재는 초식동물의 급속한 증가를 부르고, 이는 목초지의 황폐화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프리카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인간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당장의 일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내는 게 지상과제인 궁핍함 앞에 ‘생태계’, ‘종 보존’ 같은 명분은 사치에 불과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동물과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잘못된 만남. 결국은 한쪽이 죽어야만 끝나는, 하지만 이후 다른 한쪽도 곧 죽게 될 이 치킨 게임은 그래서 더 잔인하다. / 251p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은 그의 저서 《공생 멸종 진화》를 통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좀 과도한 걱정을 하는 과학자들은 앞으로 500년 안에 생물종의 50% 이상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길어야 1만 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무리 낙관적으로 봐도 세 번째 대멸종보다 100배나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다섯 번의 대멸종마다 당시 최상위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했음을 알 수 있는데, 우리는 지금의 최상위 포식자가 바로 인류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규칙이라면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아름다운 수족관의 바다 생물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온 것일까, 우리 안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 동물들은 또 어디에서 붙잡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 마음을 아는 순간에서부터 우리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휴머니멀』이 우리 모두에게 계속해서 이 메시지를 널리 전해줄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