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앙스 - 성동혁 산문집
성동혁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의 언어에서는 연약한 듯하지만 뭉개지지 않는 견실한 힘이 느껴진다!

 

 

 

 

 

  성동혁 시인은 자신을 심장장애 2급 장애인이라 고백한다. 어릴 적부터 계속됐던 병원 생활과 수술로 대부분을 병원에서 지내야 했고, 가족끼리 여행을 간다거나 수학여행은커녕, 크리스마스와 새해마저 그의 몸은 자유롭지 못했다. 자유 의지라는 것을 가질 수 없는 병실,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뭘 어떡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공간 속에서 그는 나아지는 기분이 들지 않는데 애써야 할 자신의 오늘과 내일을 내내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새겨진 메스로 쓴 시덕분에 그는 십 대도 이십 대도 삼십 대도 있을 수 있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오랫동안 고통을 견디는 삶을 살았고 자신의 힘이 온통 그곳에 쓰이는 동안, 자신을 기다려주고 업고 들고 뛰었던 주변 사람들의 마음의 공간을 더 크게 감지한다. 그러다가도 끝끝내 함께 갈 수 없는 곳이 있어 쓸쓸했던 그 무엇들이 언어가 되고, 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세상의 모든 온기를 담는 커다란 그릇이 되었다. ‘울지 않는 슬픔우는 슬픔보다 더 슬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의 언어는 그래서 단단하다. 연약한 듯하지만 뭉개지지 않는 그 견실한 힘은 겨울에 핀 꽃 같다. 뉘앙스가 꼭 그렇다.

 

 

 

내일은 귀한 행복과 햇볕이 있겠죠? 내일은 오늘 심어 놓은

씨앗이 피어나는 일이겠죠. 세계가 저를 모른 척한 적은

있지만 저를 끝낸 적은 없으니까 그래도 지구는 둥그니까

걷다가 보면 제가 심은 꽃들이 피어나겠죠? 꽃들이 꼭 아는

척하면 좋겠어요. 제 손끝에서 피어난 거라고 꼭 아는 척해

줬으면 좋겠어요. 사랑하는 엄마 제가 벌써 서른이 넘었어요. / <엄마 지구는 둥글잖아요> 중에서 51p

 

 

 

  며칠 전, 뉘앙스의 출간 기념으로 열린 시인의 북토크를 라이브 방송으로 보게 되었다. 이 때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이 있다면 아마도 친구가 아니었나 싶다.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도 사람그리고 친구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북토크 장소까지 데리고 와 준 친구, “네가 시를 썼으면 좋겠어.”라고 말해준 친구, 시인이 무언가를 계획할 때 손과 발이 되어준 친구들. 그들은 선천성 난치병을 지닌 시인의 가방을 대신 들어 주고, 숨이 찬 그에게 등을 내어 주었다. 덕분에 시인은 계단과 오르막을 올랐고, 자신의 육체로는 갈 수 없는 곳을 오를 수 있었다.

 

 

 

  절대 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산을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들 덕분이었다. 시인이 한 번도 산에 올라가 보지 못했다는 말을 간직하고 있었던 친구들은 마침내 산에 오를 준비를 했다. 의료인이 된 친구, 소방관이 된 친구들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수액과 응급 처치를 할 의료용품, 산소통 등을 철저히 준비했다. 담당 의사에게 허락을 맡고, 점검 차 미리 산을 오르며 등산로를 체크했다. 그렇게 시인은 2016년 시월, 태어나 처음으로 산에 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친구들에게 업힌 채로, 그들의 등을 통해 산을 느낄 수 있었다. 갈 수 없는 곳을 가기 위해 발이 되어주고 기꺼이 수고로움을 감내한 친구들, 그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시인은 자신의 삶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안다. 많은 불가능 속에서 살고 있지만 행운처럼 친구들을 만나 많은 풍경을 보았으며 그 힘으로 여태껏 살아 있음을 감사히 여긴다. 어쩌면 나의 세상도 내 사람들로 하여큼 이만하게 넓어질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오늘은 나의 세상이 되어준 이들을 떠올리며 마음으로라도 안부를 다 전하고 싶다.

 

 

 

오랫동안 견디는 삶을 살았어. 많은 힘이 그곳에 쓰였어.

고통을 견디는 것. 나 대신 주변 사람들이 꾸준해졌어.

근육으로 나를 업고 나를 들고 나를 위해 뛰었어. 그러나

이제는 그러면 안 돼. 그러기엔 그들의 약해진 얼굴이

보이고, 약해진 근육들이 느껴져. 그럴 순 없어.

홀로 해야 하는 것들의 범위를 늘리려 노력하고 있어.

단순하고 당연한 것들의 범위를 늘리려 하고 있어. 그 누구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 / <동시를 쓰게 되었어> 중에서 99p

 

 

열심히 살고 있어. 남의 돈 빼앗으며 살지 않고 성실히

가난하게 살고 있어. 그렇지만 돈이 모이면 종종 스테이크도

먹고 좋은 커피도 마시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어.

스스로 안 부끄러우려고 노력 중이야. 엄마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 난 포엣 포엣. 시인이야. 엄마가 낳은 시인.

엄마가 낳은 어여쁜 부랑자. / <poet> 중에서 129p

 

 

 



 

 

 

 

  ‘아무 말 하지 않고도 모두를 말하는’, 뉘앙스. ‘온도, 습도, 채도까지 담고 있는 말’, 뉘앙스. ‘손이 닿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 뉘앙스. ‘말하지 않아도 들어야 하는 말. 당신이 쓰고 내가 읽는 마음’, 뉘앙스. 사실 뉘앙스를 읽고 싶었던 것은 순전히 이 단어 때문이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서 갑자기 미묘하게 뒤틀려버린 공기의 흐름 같은 것, 돌아선 발걸음 소리에 실린 아직 다 하지 못한 말의 무게 같은 것.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여기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그 모든 예민한 감각들, 말할 수 없는 것들에게서 온기를 느끼고 때로는 상처까지 감각해내고 마는 것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러한 기민한 감각으로부터 무뎌지고, 차라리 모르는 척 하는 게 편리하다는 이유로 외면할 때가 있다. 감각을 재우지 않는 삶을 살아가자 다짐하지만 살아내는 것이 중요해서, 당장의 시급한 것들로 인해 놓치고 만다. 시인은 뉘앙스에 대해 사랑할 때 커지는 말이기도 하지만 사랑할수록 작은 뉘앙스에 휘청거린다 했다. 오늘 내가 놓쳐버린 이 감각이 나와 당신 혹은 누군가와의 관계를 또 어긋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되돌아볼 일이다.

 

 

 

마음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디에 붙여도 온통 세계가

되는 이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 <무제> 21p

 

 

무언가를 정리해야 한다면, 시작해야 한다면 겨울에 해야

할까요. 겨울은 자주 멈추게 하고 자주 앓는 계절이죠.

그러나 겨울엔 새 노트를 사고, 일력을 사죠. 철새가 맘껏

쉬다가 날아갈 공간을 마련해야 하죠. 그래야 겨울은

끝나죠. 한꺼번에 여러 장의 일력을 찢는 날, 어떤 풍경이

뭉텅뭉텅 사라질 때를 알아요. 겨울이 간 걸까요. 아니면

새가 사라진 하늘이 휑한 걸까요.

무엇이든 나는 얇아지고 있어요. 하얀 구름 같은 게 뜯겨

나가는 걸 느껴요. / <일력> 중에서 44p

 

 

 




 

 

 

 

  북토크에서 어떤 사람이고 싶냐던 한 질문에 대해 시인은 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책 속에서도 나의 천성은 부디 선하길, 부디 선한 곳으로 기울길기도하던 시인의 마음처럼, 그에게서는 연약한 듯하지만 견고하고 맑은 내성이 느껴진다. 때문에 이제는 동시를 짓고 있다던 시인의 시는 또 어떠한 언어를 품고 있을지 궁금하다. 몸은 늘 위태롭고, 수많은 불가능의 말 속에서 자신에게 허락된 것은 많지 않음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포엣, 포엣, 시인이야라던 그 경쾌한 대답을 꾸준히 세상과,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 있기를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0일 완성 초등 문해력의 기적 - 7세부터 초3까지 독서·어휘·쓰기로 잡는 엄마표 문해력 수업
장재진 지음 / 북라이프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초등 문해력 발달을 좌우하는 것은 엄마의 대화법에 달려있다!

근래에 읽은 문해력 관련 도서 중 가장 실제 적용 가능하면서 유익한 책이다!

 

 

 

  최근 엄마들 사이에서 문해력이 이슈다. EBS에서 <당신의 문해력>에 이어 <문해력 유치원> 편까지 방영되기 시작하면서, 48~60개월 사이의 유아 문해력 교육법을 고민하고 있던 부모들에게도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방송이 되기 전부터 문해력은 나의 가장 높은 관심사 중에 하나였다. 첫째 아이가 그동안 단순 연산 위주의 수학 문제집만 풀다가 서술형이 등장하는 수학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는데, 혼자서 장문의 문제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제는 수학 문제를 푸는 데도 문해력이 필수인 시대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가 사교육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가정 내에서의 교육만으로도 문해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7세에서 초3까지, 엄마표 문해력 수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 있어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단계별·수준별로 매우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어 근래에 읽은 문해력 관련 책 중 가장 실제 적용 가능하면서 유익한 책이었다.

 

 

 

초등 문해력 발달을 위한 엄마표 기적의 한 마디

 

 

  책에 따르면 문해력이란, 단순히 읽는 능력뿐만 아니라 다양한 내용의 글과 출판물을 사용해 정의, 이해, 해석, 창작, 의사소통 등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넓게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같은 언어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는 것으로, 문해력이 좋다고 하면 언어를 다루고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학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문해력이 바탕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학습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7세부터 초등학교 3학년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야말로 문해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적기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 아이의 문해력을 높일 수 있을까.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앞서 내 아이의 문해력이 어느 수준인지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아이가 어느 정도 수준의 어휘를 이해할 수 있는가, 어느 정도 길이의 글을 이해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어야 출발점과 방향을 명확하게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수준별·단계별 구체적인 방법을 중심으로, 엄마가 어떤 질문으로 어떻게 대화를 이끌어가야 하는지 책에 제안하는 학습 로드맵을 따라가 볼 것을 권장한다. 읽기, 어휘, 쓰기에 이르기까지 적정한 분량으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아이와 함께 소화해 나가다보면 어느 새 평생이 든든할 엄마표 문해력 학습법이 완성되리라 생각한다.

 

 

 

어린 시기에 책을 접한다는 것은 그림책 내용을 세밀하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책과 엄마의 목소리에 친숙해지는 것이다. 이 시기에 엄마는 아이가 정보에 집중할 수 있게 마들어야 한다. 아이의 반응을 살피며 그림책을 읽어주고, 흉내도 내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엄마의 목소리와 그림에 집중하면서 아이는 책을 통해 일상생활과 관련된 어휘를 늘려나간다. / 46p

 

 

아이를 책에 집중하도록 이끌려면 일단 아이와의 지속적인 소통이 필요하다. 아이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해당 주제의 책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아이의 관심사를 따라가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유튜브에서 슬라임 만들기를 자주 본다면 슬라임에 관련된 책을 건네고, 특정 아이돌을 좋아한다면 매니저 등 직업에 관련된 책을 제시해보는 것도 좋다. 아이가 관심을 전혀 두지 않는다면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이어도 좋다. 일단 영상 매체에서 눈을 떼고 책으로 관심이 옮겨간다는 것이 정말 중요한 시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83p

 

 

 

  일단 문해력에 있어 읽기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책을 즐겁게 읽는 것은 초등학교 시기에 가장 중요한 과제다. 엄마가 읽어주는 것에서 혼자 읽기로 넘어가는, 책 읽기에서 독립하는 시기이며 그림책에서 문고판 등 글자가 많은 책으로 넘어가는 단계라는 점에서 그러하지만, 수많은 읽기 과제 경험을 통해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이때 결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튜브, 게임 등 각종 영상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책 읽기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기가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저자는 아이에게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기보다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책을 읽었을 때 좋은 점을 이야기해주면서 충분히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책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로 확대해나가는 것이 아이가 책에서 멀어지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고른 책과 읽는 시간을 존중하는 것이다. 아이가 책을 얼마나 읽었는지, 제대로 읽었는지 매번 확인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아이가 책을 읽다가도 얼마나 읽었냐’, ‘주인공 이름이 뭐냐와 같은 확인을 받으면 읽기가 싫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책을 읽을 때 기억력 테스트를 받는 느낌이 들지 않고 네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대견하고 기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었을 때 아이는 책 읽기를 더욱 즐거운 활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유념해야겠다. 또 아이가 책을 그만 읽고 싶어 할 때는 그래, 좀 쉬었다 읽을까?” 하고 그 마음을 이해해줄 필요도 있다. 처음 독서를 시작한 아이가 무조건 책 끝까지 읽기가 목표가 되지 않도록, 지금까지 읽은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뜻을 전달해주자는 것이다. ‘끝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독서는 해치워야 할 숙제가 될 뿐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와 함께 책 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느낌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책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 수 있다. 책 내용을 종합적으로 암시하는 제목이나 소제목 등을 통해 책에 대한 정보를 얻고 글 내용을 예측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때 동일한 제목과 표지 레이아웃,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 등으로 구성된 전집류보다는 단행본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 58p

 

 

중요한 장면은 어디 있어? 그 장면이 왜 중요하지?”

아이가 줄거리를 잘 말하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장면, 중요한 장면을 찾아내는 것은 부담이 덜하다. 중요한 장면을 찾아낸다는 것은 동화나 소설을 이해하는 핵심이 된다. 특히 아이가 생각하는 중요한 장면은 아이의 감상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다.

아이가 중요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엄마 입장에서도 중요한 장면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해주면 좋다. “너는 그 장면이 좋았구나. 엄마는 이 장면이 더 좋았어. 왜냐하면.”과 같은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는 책에서 엄마가 말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 86p

 

 

이 책에서 중요한 문장 다섯 가지만 찾아볼까?”

비문학 글은 핵심적인 문장이 가장 중요하다. 글 주제나 내용이 가장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 핵심 문장이다. 보통 중요한 문장은 단락의 가장 앞이나 뒤에 있다. 단락의 핵심 문장이 단락 중간에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렇게 단락별로 한 문장씩만 찾아도 글의 핵심을 파악하기 쉽다. / 89p

 

 

 




 

 

 

 

  “엄마, 오늘 일기는 뭘 쓰면 좋을까?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

  7살인 아들과 매일 일기 쓰기를 하고 있는데, 간혹 아이가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 특별할 것이 없는 하루에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는 것이 아이로서는 힘든 일이었나 보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하나 다 일러주면 결국 아이의 글이 아닌 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나로서는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소재 찾기라고 설명한다. 하물며 아이에게는 더더욱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때문에 저자는 아이가 글을 쓰기 전에 소재를 생각하게 만드는 엄마의 말이 매우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야?” “이거 보면 무슨 생각 나?” “본 대로 자세히 말해볼래?” “제일 자신 있는 주제로 써보면 어떨까?”와 같이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게 하는 말이나 자지가 좋아하고 자신 있는 이야기를 써보게 함으로써 쓰기를 출발하게 한다면 좀 더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덕분에 이 책을 읽고 난 뒤부터는 아이에게 이제는 그 날 있었던 일만 쓸 것이 아니라 만약 내가 ~이 된다면?”과 같이 상상글이나 관찰글 등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를 시도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아이가 그게 좋겠다며 신나해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오감을 표현해보고, 경험을 구체화해보고, 그냥 재미있었다가 아닌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유도해주는 엄마의 말, 그 말이 아이의 쓰기 문해력을 높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또 초등학교 글쓰기의 목표는 바른 문장 쓰기가 아니라는 점을 꼭 유념해 두어야겠다. 아이가 쓴 글에서 지나치게 문법적인 요소를 잡아내거나 가르치면 쓰기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글의 형식보다 글 내용에 좀 더 초점을 맞춰 쓰도록 격려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맞춤법에 너무 집중하다가 글을 쓰는 의도나 내용 같은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시기는 쓰기를 즐거워하고 자신감을 가져야 할 때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는데도 여전히 맞춤법에 문제가 있다면 체계적인 반복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 혹은 저학년의 경우는 조금 여유를 가져도 좋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겠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소재 찾는 것부터 내용 정리, 쓰기까지 모든 것을 맡기지 않도록 한다. 아이의 쓸거리를 풍부하게 하는 것은 동기부여가 되는 엄마의 말, 그리고 아이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만들어내는 엄마의 말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 261p

 

 

글이든 그림이든 일단 해볼까?”

처음에는 아이에게 편하게 무엇이든 쓸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글감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 완성된 문장이나 글보다는 어떤 내용이든 편하게 써보도록 하는 것이다. 친구들과 대화한 내용, 아이들이 즐겨 말하는 내용도 좋다. 하고 싶은 일이나 게임 용어, 좋아하는 가수 이야기라고 상관없다. 글 쓰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면 처음에는 그림을 그리게 해도 좋다. 아이가 노트를 펴고 집중하는 시간, 편하게 뭔가를 끄적이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 267p

 

 

 




 

 

 

 

  이처럼 30일 완성 초등 문해력의 기적을 읽다보면 초등 문해력 발달을 좌우하는 것은 무엇보다 엄마의 대화법에 달려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그 어떤 좋은 플랜이 있어도 엄마의 사소한 말 한 마디만큼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다. 내 아이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고 싶은 부모들, 분명 읽기는 잘 하는데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곤란함을 겪는 아이를 둔 부모들, 사교육에 의지하고 엄마표 교육을 고민하고 있는 많은 부모들이라면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 드린다.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아이의 부모로서 나 역시 이 책을 한 번 읽고 책장 꽂아만 둘 것이 아니라, 두고두고 들여다보면서 실천해보기로 다짐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 -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 행동하는 사람의 힘
이미소 지음 / 필름(Feelm)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지역 상생과 공유를 실천하는 청년 사업가의 성공 스토리!

타인의 상상에 기대지 않고 내가 꿈꾸는 세상을 열어 보일 수 있는 삶, 그 안에 성공이 있다!

 

 

 

 

  이게 감자야, 빵이야? 백화점의 한 팝업스토어 앞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빵 모양이나 포장이 영락없이 감자와 흡사해서 나는 이게 빵이라고?” 하고 되묻기까지 했다. 다양한 식재료와 독특한 콘셉트를 활용한 음식 상품이 워낙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는 요즘이라지만, 그 중에서도 춘천 감자빵은 단숨에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아니다 다를까, 팝업 스토어 매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웃거리며 줄지어 서 있었다.

 

 

 

골칫덩이 감자를 성공의 기회로, 문제를 기회로 바꾼 청년 농업인

 

 

  『오늘도 매진되었습니다는 바로 이 감자빵을 춘천의 명소와 명물로 만들기까지 감자빵 성공 스토리의 모든 것을 담은 이미소 대표의 책이다. 무려 20대에 감자 농사에 매진해 춘천의 명소인 카페 감자밭을 세우고, 여기에 이색적인 감자빵을 개발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먹거리 명물로 만들어낸 그녀의 성공 노하우가 궁금해진다.

 

 

 

  감자빵 성공의 탄생 스토리는 감자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의 전화 한 통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올해 수확한 감자를 전부 묻어야 할 것 같아. 네가 와서 한번 팔아보면 어떨까?” 강남의 한 IT회사에 어렵게 입사한 지 겨우 6개월 밖에 되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그녀에게 무리한 부탁을 해오셨다. 적어도 3년은 꾹 참고 다니면서 배운 만큼 도움을 드리고 나오라던 아버지가 갑자기 아쉬운 소리를 하다니, 오죽하면 그랬을까 아버지의 고단함이 눈에 밟혀 결국 그녀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게 26살의 나이에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춘천으로 내려온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돈으로 따지면 1억이 웃도는 금액으로, 팔지도 못하고 묻어야 하게 생긴 감자가 무려 30톤에 이르렀던 것이다.

 

 

 

  평소 식량 주권, 감자의 보존과 존중을 위해서 다양한 품종을 개발하고 보급하는 문제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해온 그녀의 아버지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급된 감자 종자인 수미 감자의 아성에 밀려 시장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그해 감자 값은 20킬로그램 한 상자에 27,000원이었지만 아버지의 감자는 한 상자에 13,000원에 낙찰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4만 평에 달하는 땅을 임대해서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로서는 수확한 농작물을 판매하지 못했을 때 몇 억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되지 않는 골칫덩어리 감자라니. 왜 온 가족이 고생하며 이 일에 매달려야 하는 것인가. 그녀로서는 답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지만, 돈보다는 자국의 종자 다양성 확보라는 대의와 신념을 굽히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꿈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그녀는 닫혀 있었던 마음을 활짝 열고 감자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청양에서 고추 농사를 짓지만, 수십억 원의 종자 사용료를 몬샌토에 내고 있다. 또한 시금치 종자 사용료는 덴마크에, 대파 종자 사용료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키위 종자 사용료는 뉴질랜드에 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나라 국민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밥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채소는 우리 땅에서 나지만, 종자 양육에 대한 사용료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IMF 시절, 국내 대형 종자회사들은 해외에 매각되었고, 현재 우리나라 종자 시장의 반 이상은 외국 업체가 점유하고 있다. 슬프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 32p

 

 

미국의 유명한 작가이자 스탠퍼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인 짐 콜린스는 말했다.

유능한 경영인은 결정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절대 미루지 않는다. 실패한 결정 열 개 중 여덟 개는 판단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제때 결정을 못 했기 때문이다.”

내가 20대에 한 회사의 대표가 되고, 회사를 성장시키고,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그저 고민하는 시간을 줄이고, 좀 더 빠르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 47p

 

 

 



 

 

 

 

  감자하면 수미감자가 마치 화폐처럼 절대적 가치를 갖게 된 지금, 이미소 대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수확량과 편의성을 추구하다 사장된 다양한 품종들을 다시 가지고 오는 것을 제1 목표로 삼았다. 무늬만 유기농이 아닌 유기적으로 연결된 상생 농업을 실천하고, 나아가 농작물이 자라는 공간인 밭처럼 농촌에 살고 싶은 사람에게 성장 기회를 제공하는 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렇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단한 과정을 겪어 내면서 더 크게 깨달은 사실은, 감자를 생산하고 원물을 보급하면서 농사를 지어서 가락시장에 내놓는 것이 21세기 농부의 역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고객들과 소통하고, 플랫폼을 구축하고, 농산물을 가공해서 소비자를 만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농업을 구현하는 길이었다. 그러려면 감자로 고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감자밭의 시발점이 된 핑크세레스였다. 이때 그녀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미래를 함께할 팀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연 매출 100억이라는 감자빵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큰돈을 버는 것보다 긍정적 순환구조를 만들어 사업을 지속하고,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우수한 품종을 널리 보급하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소비가 일어나야 했다. 수확한 작물에 대한 소비가 있어야 농민들이 안심하고 작물을 심을 수 있고, 안정적인 시장이 구축되며, 농업이 유지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농사만 짓고 가락시장에 물건을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은 힘들지만 우리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비투시(Business to Consumer, B to C)로 차별화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 56p

 

 

우리 배에 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신에 관해 탐구하는 자세다. 지금 해답을 찾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찾을 사람, 나만이 디자인할 수 있는 삶을 탐구할 계획이 있고, 자신이 타려고 하는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고, 그 배에 타서 자신이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계획하고, 그 계획을 실현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 101p

 

 

 

  이처럼 책 속에는 20대 청년이었던 이미소 대표가 100억대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를 완성시키기까지 온갖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그럴 듯한 이상과 막연한 기대로 포장된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점검과 반성이 녹아 있다. 때문에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어떻게 일해야 할지 하나씩 원칙을 세워나가며 자신들만의 비전과 목표, 회사의 꿈과 룰을 세워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철저하고 소름끼치게 공부하자. 성장이 곧 힘이다’ ‘6개월 전의 정답이 지금은 아닐 수 있다. 시간, 환경 등의 조건이 변함에 따라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함으로써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려하는 자세를 보이는 모습이 눈에 띈다. 특히 타인의 상상 속에서 살지 말고, 나 자신의 상상 속에서 살자며 우리의 상상 속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하기를 꿈꾸고, 늘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나가려는 모습은 젊은 경영자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자기만의 성공을 정의해야 한다. 추상적으로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성공을 정의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할 때 내가 가장 행복한지, 어떻게 살아야 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어떤 것을 통해 내가 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등 내가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이상을 가진 사람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 166p

 

 

막연히 원하는 걸 실제로 해보면,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아. 이건 네가 경험해야 알 수 있는 것들이야. 경험하다 보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게 돼. 가짜 긍정이 아니라 진짜 긍정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지. 매장을 운영하고 싶다면 오퍼레이션부터 운영, 기획까지 전방위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해. 기본적인 것부터 경험해보는 게 좋을 거야.” / 184p

 

 

 




 

 

 

 

  그녀는 용감한 선택의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힘들더라도 어느 하나를 선택하고, 분명한 의견을 가지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럴 수도 있지가 아니라 왜 그럴까?’를 늘 생각하고, 모든 문제를 중립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판단하며 과감하기를 선택했다고. 그 선택이 옳든 그르든, 책임지는 삶을 살다보면 그 과정에서 분명히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어떤 삶을 원하는지 고민해 답을 찾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의 방식을 좋은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그녀의 마인드를 나 역시 배우고 응원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초엽, is 뭔들은 아무래도 계속 될 것 같다!

나의 우주와 당신의 우주가 교차하는 순간에 발화하는 그 모든 에너지를 민감하게 품어보는 것. 그건 아주 중요한 거야!

 

 

 

  하늘을 나는 자동차,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소형 컴퓨터, 우주 정거장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고속 레일초등학생 시절, 이따금 상상하곤 했던 미래의 모습 속에는 분명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도 있었다. 피부색도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심지어 인간과는 너무도 다른 외형을 가진 그들이지만 그림 속에서 나는 그들과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웃고 있었다. 거기엔 우리가 철저히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종이며,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했을 거라는 생각 따윈 없었다. 그래, 이 넓고 넓은 우주에 우리만 존재하고 있었던 건 아닌 거야. 이 단 하나의 믿음 앞에서 나는 우리의 우주가 보다 넓어지는 상상을 했다. 아마도 김초엽이 보여준 세계 역시 이런 그림을 상상했던 게 아닐까. ‘안녕, 하고 여기서 손을 흔들 때 저쪽에서 안녕, 인사가 되돌아오는 몇 안 되는 순간들. 그럼으로써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되돌아보게 하고 때로는 살아가게 하는 교차점들. 그 짧은 접촉의 순간들을 그려내는 일이, 나에게는 그토록 중요한 일이었다던 작가의 말처럼 완전히 하나로 포개어질 수는 없어도 나의 우주와 당신의 우주가 교차하는 순간에 발화하는 그 모든 에너지를 민감하게 품어보는 것. 그러함으로써 불가능해 보이는,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는,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어떤 힘을 믿었던 게 아닐까.

 

 

 

살아간다는 건, 저마다의 우주를 이해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것

 

 

  인류의 이기로 인해 초래된 지구 위기, 낯설지 않은 미래의 현실을 생생하게 구현해낸 소설 지구 끝의 온실이후에 만난 김초엽 작가의 단편 소설집이다. 아주 작아 보이는 것들이 일으키는 파동을, 여린 온기가 불어넣은 생명의 힘을 희망으로 엮어낸 전작의 전율이 아직 가시지 않은 가운데서 만난 작품이라 더 특별하고 반갑다. 방금 떠나온 세계에는 <최후의 라이오니>를 비롯해 총 일곱 편의 단편작이 수록되어 있다. 전작이 지구 내부에서 일어나는 위기와 극복의 희망 연대기를 그려냈다면 이번 소설집에서는 우주 밖으로까지 외연을 확장시켜 거대하고 초월된 시공간적 세계관을 완성해나간다. 다른 시대, 다른 환경, 다른 신체 능력을 지닌 이들, 다시 말해 어울릴 수 없는 이질적인 것들이 빚어내는 마찰음에 촉각을 드리우면서도, 그 안에서 서로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서로로 하여금 각자의 세계를 보다 넓혀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설 한 편 한 편에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 등장한다. 유능한 유품정리사이자 멸망의 단서를 탐색하는 1급 수사관 로몬’(<최후의 라이오니>), 시지각 이상증을 겪는 모그’(<마리의 춤>), 신체를 변형하고 개조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인 트랜스휴먼’(<로라>), 음성 언어를 이용하지 않고 호흡 즉, 공기 중에 섞여 있는 입자를 통해 의미를 인식하는 숨그림자 사람들’(<숨그림자>), 거대한 격자 구조의 인지 공간에 자신의 기억과 정보를 저장하고 공동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인지 공간>), 불의의 사고로 인해 다른 이들과는 다른 아주 느린 시간대를 살아가는 언니(<캐빈 방정식>) 등이 그러하다.

 

 

 

그날 사건 현장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모그들이 언제부터 그 일을 기획했는지. 마리는 어떻게 그 일의 주축이 되었는지. 사람들은 사라진 마리가 언젠가 돌아오지 않을지, 다음 테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2의 마리’ ‘3의 마리가 등장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아니, 우려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마리가 돌아오기를, 또 다른 마리가 등장하기를 마음 깊은 곳에서 기대하는 듯하다. / <마리의 춤> 중에서 59p

 

 

인간은 고유의 신체 지도를 가진다. 팔과 다리를 의식하지 않을 때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몸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고유수용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긋난 고유수용 감각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잘못된 지도를 가진다. / <로라> 중에서 106p

 

 

조안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단희는 이제 조안의 음성 언어 일부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희를 제외한 사람들은 대개 조안의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다. 발성기관이 퇴화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는 낯설고 당혹스러운 진동일 뿐이었다. 반대로 조안이 입자 언어를 배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조안은 외형이 유사할 뿐, 후각 수용체와 언어 회로는 숨그림자 사람들과 공통점이 전혀 없었다. 다른 종이나 마찬가지였다. / <숨그림자> 중에서 170p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 / <숨그림자> 중에서 182p

 

 

 

  그들은 우리가 흔히 정상인이라고 간주하는 일반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모그들은 자신들이 결핍된 존재들이 아니라 변화이자 진보일 수 있음을 피력하며 정상인들에게 테러를 일으키고(<마리의 춤>), 진의 만류에도 로라는 기존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고 더 나은 신체 기능을 얻기 위해 세 번째 팔을 갖는다(<로라>). 이브는 집단 지성의 힘을 믿는 공동체 사람들의 공간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하고(<인지 공간>), 뇌에서 시간을 인지하는 회로에 문제가 생긴 언니는 자신의 감각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적극적인 치료에 매달리기를 요구하는 동생으로부터 떠나기도 한다(<캐빈 방정식>).

 

 

 




 

 

 

 

  때문에 이들의 행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배제되어야 마땅한 것으로 치부되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누군가는 그들을 껴안으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돌아오겠다는 인간 라이오니의 약속을 기다리며 멸망이 지연시키고 있던 기계 문명의 리더 셀의 곁에서 라이오니인 척하며 떠나지 않는 가 있고(<최후의 라이오니)>, 몸 정체성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쫓으며 그들과의 이해를 시도하는 진이 있다(<로라>). 또 과거로부터 온 조안이 숨그림자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돕는 단희가 있으며(<숨그림자>), 언니를 이해하기 위해 몇 번이나 관람차에 올라타 보기도 하는 동생이 있다(<캐빈 방정식>).

 

 

 

  이렇듯 각각의 소설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일으키는 갈등과 간극 속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인지 끊임없이 가능성을 모색하며 더 위대한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소설 <인지공간>에서 저 밤하늘에는 별이 너무 많아서 우리의 인지 공간은 저 별들을 모두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각자가 저 별들을 나누어 담는다면 총체적인 우주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침내 이 행성 바깥의 우주를 온전히 상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그곳을 향해 갈 수도 있을 것이라던 문장처럼, 각자의 소우주를 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더 큰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라이오니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라이오니는 우리의 두려움에 공감하는 유일한 복제였죠. 기계들에게도 소멸의 공포가 있다는 것을, 다른 복제들은 이해하지 못했지요. 라이오니는 남아서 기계들을 터널 밖으로 안전하게 데려갈 방법을 찾으려고 했어요. 불멸인들의 기술 라이브러리에 복제의 권한으로 접근해 보호 설계 방법을 찾겠다고 했지요.” / <최후의 라이오니> 중에서 43p

 

 

그러나 이제 단희에게도 입자들은 의미라기보다는 냄새에 가까워졌다. 둔감해진 후각기관은 한때 조안이 했던 것처럼, 공기 중에서 어떤 기억과 감정을 읽었다. 입자들이 단희를 그 시절로 데려갔다. 의미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들에게로, 추상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너무 구체적이어서,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장면으로, 조안이 말했던 그 공간들로. / <숨그림자> 중에서 188p

 

 

먼 우주에서 온 탐사선이 이 행성에 도착했을 때, 오브들은 탐사선에서 내린 작은 생물들을 면밀히 관찰했어요. 그리고 오브들은 곧 알아차렸습니다. 이 개체들은 다른 환경에 취약하고 지극히 생태 의존적인 생물이며, 심지어 폭력적이고 비도덕적이지만, 어쨌든 그들은 모두 자아를 가지고 생각하며 움직이는 존재들이라고요. 오브들에게 우리는 불청객이었지요. 그들은 우리가 단지 죽어가도록, 절망하도록, 흔적도 없이 사라지도록 내버려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연민할 줄 아는 존재였으니까요. / <오래된 협약> 중에서 222p

 

 

 




 

 

 

 

  이제 김초엽은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확실히 한국 문단 내에서 김초엽은 점점 확고부동한 자신의 위치를 찾아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자신만의 창작 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는 젊은 작가가 있다는 것이 참 반갑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를 물들이는 수채화 일력 - 오리여인의 365일 만년 달력
오리여인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장 한 장 넘기다보면 빡빡했던 내 하루에 다정함이 차오른다!

연말연시에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물하기에 좋은 만년 달력!

 

 

 

  지난 해 오리여인 님의 에세이 <나에게 시간을 주기로 했다>를 읽고 얻은 따뜻한 에너지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데, 이번에는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볼 수 있는 고운 수채화 만년 달력이 나왔다. 오리여인 님 특유의 따뜻한 그림체와 다정한 글귀가 정성스럽게 채워져있다.

 

 

 
 
 


 
 

 

 

소나무는 불안이 없는 푸름을 우리에게 보여줘요.

 

 

노을이 져야 해가 가라앉고 열매가 져야 다시 싹을 피워요.

 

 

 



 

 

 

 

작은 것에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작은 것일 뿐이에요. 더 크고 많은 것을 보세요.

 

 

나도 남도 잘 챙기는 마음. 전 이 마음이 있어서 좋은 걸요.

 

 

 



 

 

 

 

  책상에 두고 오래오래 볼 수 있는 달력이라 좋고, 우리 아이들과 동화책을 읽는 마음으로 함께 볼 수 있어 더 좋다. 덕분에 2022년은 내게 그 어느 때보다도 다정한 한 해가 될 것 같다.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랄까. 연말연시에 사랑하는 이웃들에게 전할 선물로도 딱인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