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발랄 하은맘의 십팔년 책육아 지랄발랄 하은맘의 육아 시리즈
김선미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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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중심을 잡고 아이를 믿어줄 때 아이는 커간다!

사교육 없이 책으로 아이의 공부머리를 키운 하은맘의 산전수전 책유아법!

 

 

 

   해가 바뀌면 큰 아이가 6살이 된다. 그간에는 엄마표 놀이와 공부, 책읽기 중심의 교육으로 사교육을 대신해왔던 터라 앞으로는 어떻게 교육을 해야 할지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일부 주변에서는 유명 브랜드 학습지에 맨투맨 스쿨, 주말에는 문화센터와 학원을 병행하며 꽤 많은 시간을 아이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을 보고 내심 과한 것이 아닌가 싶으면서도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 엄마라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까닭이다. 글밥이 적당한 책은 혼자서 읽고, 덧셈이나 뺄셈 같은 수와 셈 영역도 좋아해서 관련 학습지도 앉아서 몇 장이나 풀 만큼 집중력도 있는 아이라 이 정도 수준만으로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곤 하지만 가끔씩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인가보다. 문제는 7살이 되면 곧 초등학생이 된다는 이유로 사교육의 유혹은 더 거세질 것이고 나는 또 어김없이 이리저리 나부낄 텐데, 중심을 잃지 않고 내가 지향하는 교육을 아이와 건강하게 실천할 수 있을까.

 

 

 

   여기, 엄마의 불안에 매질이라도 하듯 단호하게 소리치는 엄마가 있다. “아직도 돈 버리고, 삽질하고, 애 잡고 앉았냐? 지성, 감성, 인성까지 다 가진 아이로 키우는 법, 책육아(머리 독서)랑 바깥놀이(몸 독서)가 함께 가야 정답인 거야!” 바로 육아계의 불온서적이라 불릴 정도로 『불량육아』와 『닥치고 군대 육아』를 통해 거침없이 짱똘을 날렸던 ‘지랄발랄 하은맘’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사교육에 휘청거리는 엄마들의 정신줄 붙드는 멱살잡이 협박 에세이와 함께 돌아왔다. 이름마저도 어쩐지 파격적이고 마음을 후려치는 듯한 『십팔년 책육아』다. 학원, 학습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오로지 책육아와 바깥놀이로 만 16세에 연세대 정시 최초 합격을 이루어낸 하은이의 독서 교육법을 소개한 책이다. 오늘도 아이의 육아 앞에서 갈팡질팡하는 엄마들에게 뼈때리는 한 방, 거침없이 독설을 날리는 특유의 화법에 얼얼하다가도 어느새 흔들리지 않으려는 단호함이 내 안에 들어서는 것을 느끼게 된다.

 

 

 

 

 

 

공부머리를 만드는 책육아의 놀라운 힘

 

 

   시중에 나온 여러 자녀교육서를 살펴보면 그 모든 책에서 빼놓지 않는 것은 단연 ‘책읽기’다. 세계사를 불문하고 수많은 구루와 성공의 법칙을 논하는 이들도 모두 한입 모아 책이야말로 가장 명쾌하고 거스를 수 없는 교육의 답이라고 말한다. 『십팔년 책육아』의 저자 하은맘 역시 책육아 만큼 탄탄한 커리큘럼, 저렴한 비용, 깊이 있는 몰입을 제공하는 육아법은 지구상에 없다고 단언한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책육아란, 영유아 시절엔 다른 어떤 사교육도 시키지 않고 널널한 시간 속에서, 엄마 옆에서, 자연 속에서 실컷 놀면서 책과 함께 커가고, 각종 퍼포먼스와 비싼 교구, 방문 샘마저도 들이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며 노는 와중에 아이의 인성과 지성, 감성을 책으로 다져가는 것이라 정의한다.

 

 

 

근데 이거 시켜라, 저기 보내랴, 거긴 어떠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빈틈없이 시간표 짜는 사이 순식간에 돈 탈탈 털리고, 힘들다는 아이한테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있니?” 잔소리하며 억지로 밀어 넣어 엄마랑 사이 나빠지고, 엄마는 서두르는 사람, 자기 못마땅해하는 사람으로 아이 뇌리에 고스란히 문신으로 박힐 터. 근데도 사교육, 선행 지금 안 하면 남들 앞서가는데 우리 아이만 뒤처지고, 기초 안 잡혀서 고학년 올라가면 정신없이 헤매다가 그땐 이미 늦어서 따라갈 수 없다고 땅 치고 후회할 것 같다? 딱 그런 공포심을 이용하는 게 바로 이 나라 사교육 시장의 경제 원리다. / 16p

 

 

 

   책의 첫 장에서는 사교육에 매달리지 않고 책육아를 중심으로 한 특별한 교육관을 살펴본다. 여기에서는 책육아를 지도하기 앞서 일단 그녀의 교육 신조부터 퍽 인상적이다. 그녀는 하은이를 키우면서 아날로그로 사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진짜 만남, 진짜 경험, 진짜 대면, 진짜 느낌. 가상현실이나 디지털 창을 통한 허깨비 같은 관계가 아닌 진짜 현실의 삶을 온몸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뭘 더 많이 하는 것보다 쓸데없는 짓 ‘안’하는 것을 중점으로 두었고, 뻑 가는 장난감들에 물들어버리기 전에 책을 친구로 만들어줌으로써 인생의 진짜 멋진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다고. 또 고된 육아를 엄마 혼자서 끙끙 싸매느라 아이에게 감정을 소비하기보다 아이도 집안일에 참여하게 함으로써 아이 스스로 느끼고 해보고 난관에 부딪쳐보고 실수도 해봐야 진정한 자립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경험담으로 일러준다.

 

 

 

 

 

 

   이 중 나를 반성하게 한 것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계속 반복하면서 뭔가를 어지럽히고 더럽히는 것이 보기 싫어서 그렇게 닦이고, 주의를 주었던 일이다. 아이의 몰입과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엄마인 내가 나서서 방해했던 것이다. 저자 역시 시간이 지나고서야 딸의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어린 시절의 ‘뻘짓’들이 그야말로 심층 훈련이었고, 몰입 연습이었고, 스킬 향상의 지름길이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냥 뻘짓같아 보이는 저 무한 반복의 시간에 아이는 몰입하고 있었고, 절절히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집 더러워진다고, 치우기 힘들다고 그런 사소한 이유로 아이를 절대 막지 마라는 그녀의 충고는 의미 있는 교훈이 되었다.

 

 

‘메타인지’는 본인이 뭘 알고, 뭘 모르는지를 정확히 아는 인지 능력, 학원에서 얼추 들었던 내용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거야. ‘메타인지’가 결국 입시 공부에서 성패를 좌우해. 단시간의 수능 공부로 하은이가 높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도 바로 이 ‘메타인지’가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봐. 자기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빨리 분별해낸 덕에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공부해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있었던 거야. 고학년 오를수록 지 호기심, 의지로 공부하는 거라는 거 잊지 마. / 35p

 

 

 

  2장과 3장에서는 본격적인 책육아의 노하우를 소개한다. 그녀는 그림에 홀려서 보다 보다, 엉겁결에 옆에 있는 글씨도 보다 보다, 어영부영 한글, 영어까지 깨우치는 자연스러운 메커니즘에 따라 엄마들에게 그림책 육아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특히 아이가 부담 느낄까 봐, 엄마가 두렵다고 영어책 안 읽어주고 밍기적거리다 영어에 대한 편안하고 흥미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시기를 놓치지 말고 지금 당장 영어그림책부터 읽어줄 것을 강조한다. 또 아이가 책을 안읽는다고 푸념만 하지 말고 식탁 위, 화장실 안, 잠자리 머리맡, 차 안, 어디든 애 손 닿을 데 책을 놔두고, 여배우 뺨치는 연기력으로 오만 재주 부리고 칭찬해줘 가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꼭 읽기 독립을 할 수 있도록 엄마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왕이면 도서관에 가거나 빌려 보는 책도 좋지만 기본적으로 양질의 동화책, 소설, 단편, 문학, 인문, 과학, 역사책을 다양하게 구비해놓고 수시로 읽히고 오랜 시간 습관을 들여서 도서관을 가도 서점을 가도 좋은 책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도 중요하다.

 

 

 

하은맘이 생각하는 엄마표 영어는 엄마가 아이에게 영어를 가열 차게 가르치고, 주입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자연스럽게 영어 노출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다. ‘영어책 읽기’를 기반으로 영어 듣기 환경을 조성해야 해. 나 또한 수시로 이리저리 영어 환경 바꿔가며 실패도 해봤다. 그 과정에서 애 안울리고 주눅 들게 안 하고 부담 안주면서 픽처북 읽기→리더스북 읽기→챕터북 집중 듣기→챕터북 집중 읽기→영어 소설 읽기까지 이어져 오는데 험난했다. 휴~ / 106p

 

 

애 끼고 키워본 엄마 눈에는 보일 거다. 내 아이와 오~랜 시간을 같이 붙어서 지지고 볶으며 지내다 보면 아이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고 찾아보고 싶어 해. 그 불꽃 같은 호기심, 타오르는 탐구욕! 엄마가 아이 호기심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반응해주고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노출해준 아이 중에 ‘앎’에 대해 열광하지 않는 아이는 이 세상에 없다. 꽝꽝꽝! 그러니 책육아 안 할 이유도, 중간에 그만둘 이유도 없지 않소. / 125p

 

 

그 자연과학의 방대한 지식들이 아이의 평생을 이어갈 ‘학문의 불꽃’이 되고, 엄마와 재잘거렸던 애착 대화들은 그 아이 인생의 ‘심리적 배후’가 되어 그 어떤 시련을 만나도 ‘나한텐 엄마가 있는데 뭐 그까이꺼~!’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뚫어내고, 그 난관을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로 딛고 일어서서 쭈~욱 성장해나가는 거다. 몸으로 많이 놀고, 운동 많이 한 애들이 단연 머리도 좋아. 뇌는 생각의 근육이거든. 몸 근육의 발달이 뇌세포 발달로 이어지고, 시냅스에서 신경 전달 물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뉴런이 자라나 점점 더 머리 좋은 아이가 되는 거라고. / 136p

 

 

 

 

 

 

   책을 읽으며 책육아의 노하우만큼 인상 깊었던 것은 교육에 관한 부모의 불안한 마음을 엄한 곳에 돈으로 충족시키기보다 진짜 아이에게 필요한 곳에 쓰이는 법의 중요성을 강조한 대목이다. 그녀는 돈이 들 것도, 남 신경 쓰며 이것저것 챙겨 입히고, 들러 매게 할 것도 없다며 말하길, “내 아이 자체가 정답이고, 명품이고, 보석이라는 확신만 내 가슴에 품고 있으면 된다. 돈은 차곡차곡 강제로 모아뒀다가 물건이 아닌 ‘경험’에, 관광 여행이 아닌 ‘봉사 여행’에, 의미 없는 모임이 아닌 ‘진정한 만남’에, 주입식 학원 뺑뺑이가 아닌 ‘학습 탐사’에 쓰자고, 근사하게. 돈은 이렇게 쓰는 거다.”고 단언한다. 학습이든, 봉사든, 여행이든 뭐가 됐든 애가 두 눈을 부라리며 나 꼭 가보고 싶다고, 경험해보고 싶다고, 오래 꿈꾸고 준비했다고 할 때 “그래, 네 돈 많이 모아놨어. 이것 봐! 뭐든 해! 어디든 가봐!” 하고 훨훨 나는 애 뒤에서 팔짱 끼고 있는 ‘어깨 뽕 음흉 미소 개간지 모친’이 되어보는 것, 참 멋진 엄마 같지 않은가.

 

 

 

믿어줘. 나 자신을 믿지 못하면 애도 못 믿어. 그럼 이토록 반짝반짝 빛나는 아이 눈을 보면서도 정신이 딴 데 가버린다구. 불안하면 망해. 육아는. 알겠어? 모든 아이는 지극히 정상이야. 아이는 엄마의 거울일 뿐이고. 엄마의 불안, 긴장, 두려움을 오만 짓거리로 비춰줄 뿐이라고. ‘불안’은 애미의 후진 과거의 흔적에서 오는 거지 애한테서 오는 게 절대 아니다. 못난 놈도, 이상한 놈도, 덜 된 놈도 없어. 애미 불안이 애를 망치지 않게 세상에서 눈 돌려 아이만 봐. 분~명히 어제보다 컸어. 이제 너만 크면 돼. / 269p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직설적이고 단호한 화법에 때로는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결국엔 아이 앞에서 불안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믿어주라는 그녀의 확신에 찬 조언은 내가 보여주는 세상에 따라 아이의 세상도 달라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물론 그녀가 주장하는 것들이 모두에게 적용될 수 없고,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실컷 놀면서 엄마의 의지가 아닌, 자기 주도적으로 살며 책육아로 큰 아이는 인생에서 꼭 통과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인 입시에서도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며 엄청난 몰입의 힘을 보여준다는 것. 그러니까 초·중·고등을 지나 평~~생에 걸쳐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 이것만큼은 꼭 엄마가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독려하고 함께 풀어야 할 절대적 과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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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내 몸부터 챙깁시다
최혜미 지음 / 푸른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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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이제는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에도 관심을 보여야 할 때!

월경전증후군에서 부종, 자궁근종에서 난임에 이르기까지 여성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

 

 

 

   생각지도 못했던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와 달리 간호사 선생님이 추가 요금을 내면 더 정밀한 검사가 가능하다며 팜플렛 하나를 내밀었다. “이게 뭔가요? 꼭 해야 하는 거예요?”하고 물으니 “산모님 나이가 이제 고령임신에 해당되셔서 필요하시면 더 정밀하게 검사를 해드리는 거예요.”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는 내심 뜨악했다. 내 나이 서른다섯 살, 의료상으로 벌써 고령이니 노산이니 하는 말을 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후 나는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는 있지도 않았던 임신성 당뇨까지 진단을 받아 출산하기 전까지 매일 혈당검사를 하며 관리대상(?)이 되었고, 이게 다 노산의 비애가 아니겠냐는 씁쓸한 위로 아닌 위로를 해야만 했다.

 

 

 

   그러고 보니 서른다섯에서 하나를 더해 어느 덧 서른여섯이 된 나는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체력의 한계와 더딘 다이어트, 고관절 통증까지 얻은 상태라, 그 어느 때보다 내 몸 관리과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튼튼한 내 몸 하나가 큰 자산이라고 믿었던 나를 배신하듯 삐걱대는 소리가 몸 곳곳에서 들려오는 까닭이다. “이제 너 예전 같지 않다. 신경 써야 해.”라던 엄마의 말이 결코 잔소리가 아님을 내 몸이 스스로 아우성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른다섯, 내 몸부터 챙깁시다』는 나에게 있어 가장 적절한 순간에 꼭 필요한 책이 되어주었다. 30대 중반을 지난 여성들의 몸과 마음의 문제에 이토록 귀 기울인 책이 있었던가. 나이를 떠나 스스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돌보고자 하는 여성들이라면 이 책에 주목해보자.

 

 

 

 

 

 

내 몸을 알아야 하는 나이는 따로 없다

 

 

   왜 서른다섯인가. 앞서 산부인과에서 나의 나이가 서른다섯이라는 이유로 고령임신에 속한다는 말을 들었듯, 미국의 <부인과 및 부인과 국제위원회>와 한의학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황제내경』에서도 모두 서른다섯을 기점으로 여성의 건강이 쇠락하기 시작한다고 보았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는 여성의 건강에 있어서 중요한 시점이라는 뜻일 테다. 때문에 『서른다섯, 내 몸부터 챙깁시다』에서는 첫 장에서부터 서른다섯 이후의 여성이 의학적으로 겪을 수 있다고 알려진 여러 위험요인과 대처 방안을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여기에서는 난소의 기능 저하, 여성의 몸에서 일생을 거쳐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는 동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기관인 자궁 질환, 유방암, 임신과 출산에 밀접한 연관이 있는 갑상선 기능 이상이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을 소개한다. 또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수면과 바른 생활 습관을 통해 우리 몸이 스스로 성장호르몬을 분비하게 함으로써 노화를 막고, 혈이 쇠하는 것을 막기 위해 원활한 혈액 순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의학에서는 자궁을 단순한 아기집이 아니라 여자의 혈맥이 모이는 결정체로 봅니다. 맥이란 기와 혈이 흐르는 인체의 가상경로로, 인체가 생동하게 만드는 에너지의 흐름을 말합니다. 결국 여자의 맥은 자궁으로 이어진다는 얘기지요. 《동의보감》에서는 자궁을 포궁 혹은 포문이라 하여 “태아가 들어 있는 곳”이라는 해부학 인식을 포함해 여자 몸에서 여러 맥이 모이는 곳이자 인체의 안팎이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정의합니다. 자궁은 설명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더라도 여성 건강의 핵심이자 중요한 지표인 셈이지요. / 23p

 

 

조직에 혈액을 원활하게 공급하지 않으면 부분 노화가 일어납니다. 장기의 세포 기능을 정상화하는 가장 빠른 길은 혈액을 원활하게 공급하는 것이고, 혈액을 충분히 공급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대부터 이어져온 “여자는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충고에는 사실 깊은 의미가 있는 셈입니다. / 51p

 

 

 

 

 

   아마도 대부분의 여성들이 사소하게서부터 고통스럽기까지 다양한 월경전증후군을 겪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월경전증후군을 앓기 시작했는데, 한의원에서 약도 지어먹고 심지어 결혼 후에는 임신인 줄 착각도 여러 달에 걸쳐서 할 정도였다. 책에 의하면 월경전증후군이란 월경 시작 전 황체기 동안 일상을 방해할 정도로 신체와 정신, 행동 증상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즉, 가임기 여성이 대략 한 달에 한 번 월경을 하는데 출혈이 있기도 전에 몸의 변화를 예민하게 알아채고 다양한 증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월경전증후군의 증상은 매우 다양해서 정신과 신체 증상을 포함해 개별 증상이 200가지가 넘고, 가임기 여성의 75퍼센트가 이 가운데 한두 가지 이상의 증상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국제질병분류에서는 여러 증상 가운데 대표되는 일곱 가지를 선별하여 주요 증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크게 ‘경미한 심리적 불안’, ‘더부룩함’, ‘체중 증가’, ‘유방 압통’, ‘근육통’, ‘집중력 저하’, ‘식욕 변화’로 간추려진다. 극도의 더부룩함과 메스꺼움, 체중 증가, 유방 압통은 나 역시 자주 겪는 월경전증후군 중에 하나다. 책은 각각의 대표 증상에 따라 그에 걸맞은 맨투맨 해법을 제시한다. 이를 테면 경미한 심리적 불안과 집중력 저하 시 몸의 긴장을 푸는 것의 중요성을, 더부룩한 증상에 대해서는 변비를 해소하는 법을, 체중 증가와 식욕 변화의 증상에서는 붓기를 막는 식습관을, 유방 압통과 근육통의 경우에서는 생활 습관을 바꾸는 법을 살펴본다. 이 외에도 흔히 여성들이 겪는 불규칙한 월경주기와 수족냉증, 그리고 열증과 부종 등의 증세에 대한 해법도 함께 소개한다.

 

 

 

체중 증가와 식욕 변화는 가장 흔한 월경전증후군 증상 중 하나입니다. 평소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시기가 오면 각종 디저트나 군것질거리 같은 단맛이 당기는 경우가 흔한데, 이는 월경 전 몸이 받는 스트레스에 보상하는 작용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입니다. 몸에 들어온 단당류는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를 일시적으로 돕거든요. 하지만 단당류를 많이 먹을수록 몸은 수분을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부종이 심해집니다.

더구나 몸속에 염분과 수분을 저장하는 경향이 있는 에스트로겐의 농도가 높아지면서 세포 사이사이에 수분을 붙잡아두는데 이 때문에 부종이 더 심해집니다. 월경 전에 식욕이 좋아져 실제 살이 찌는 경우도 있지만 일시적으로 체중이 늘어나는 건 몸에서 채 빠져나가지 못한 수분 때문이지요. / 87p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개수의 난자를 차례차례 준비해서 내놓는 것이 난소의 일이니 35년간 긴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지치는 것은 당연합니다. 더구나 난소 기능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 요인만큼 후천 요인도 커서 참견하고 훈수를 두는 ‘환경’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점점 심해지는 스트레스, 일 때문에 흐트러진 생활 리듬,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생기는 영향 불균형, 반복된 다이어트와 비만 사이에서 깨져버린 체지방 균형까지 다양하지요. / 109p

 

 

내 나이를 가장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과거의 내 체력을 맹신하지 않는 겁니다. 30대는 30대에 맞게, 40대는 40대에 맞게 하루하루 생활 리듬을 조정해야 합니다.

여자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규칙한 월경은 지금 당신의 생활에 무리가 있다고 경고하는 신호입니다. / 116p

 

 

 

 

 

 

   책에서 언급하길 2015년 <SBS 스페셜> ‘병원의 고백1부: 너무나 친절한 의사들’ 편에서 “자궁은 없어도 그만인 쓸모없는 기관이니 절제해버리자는 권유를 많이 한다”거나 “혹 열 개를 떼는 건 수술이 오래 걸리니 자궁 하나 뚝딱 잘라버리는 게 더 효율적이다”라고 말한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고백은 그것이 의료상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문득 나는 엄마가 자궁암을 앓아 자궁적출술을 시행했던 일이 떠올랐는데, 당시에는 자궁이며 암이며 너무나 무지했던 탓에 엄마가 자궁을 몸에서 드러내는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해보지 못했던 게 이제 와서 많이 죄송스러워진 것이다. 부끄럽게도 나도 그것이 당연한 선택이라는 듯 자궁을 드러내는 일에 쉽게 동조했고, 그 이후에 엄마가 느꼈을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상처들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게 참 후회가 된다. 여성을 상징하는 장기를 잃었다는 심리적 상실감을 엄마는 어떻게 극복했을까. 덕분에 저자의 이 말이 마음에 내내 남는다. ‘기억해주세요. 자궁은 그저 임신과 출산이 아니면 더 이상 필요 없는 장기가 아니라는 것을요. 치명적이지 않다면 내 장기를 최대한 보존하겠다는 선택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의학적 결정을 할 수 있으려면 내 몸에 관한 의학 정보는 누구도 아닌 내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이처럼 『서른다섯, 내 몸부터 챙깁시다』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겪을지도 모르는 각종 증상이나 질환에서부터, 서른다섯 이후에 마주하게 될 신체적·정서적 노화의 과정을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을 살펴본 건강 서적이다. 앞서 설명한 내용들 외에도 주변에서 많이들 고민하고 있는 난임 문제와 임신에 관련된 온갖 속설과 진실, 또 건강한 산후조리법과 나아가 완경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에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한정을 둘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에게도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진짜 중요한 것은 질환이 아니라 내 몸을 알아가는 과정이며 그 속에서 모든 여성들이 자신을 더 사랑해줄 수 있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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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연예인 출산 3개월 만에 OOkg 감량!”, “OOO, 두 아이 엄마 몸매 맞아?”

   출산 후 여자 연예인이 연예 뉴스 면에 나올 때면 꼭 이런 헤드라인이 등장한다. 출산한 지 불과 몇 개월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아랫배가 쏙 들어가고 예전과 별반 다르지 않는 날씬한 몸매를 하고서. 올해 둘째 아이를 출산한 나로서는 이런 기사가 썩 달갑지 않다. 내 몸 관리에 투자를 할 여력이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부족한 나는 나름 합당한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처럼 되지 못하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출산을 하고서도 날씬해야 하고, 아이 엄마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탄탄하고 관리된 몸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나만 불편한 것일까.

 

 

 

   그러면서도 미련해보이고 싶지 않아서, 관리 안하고 늘어져있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홈트레이닝을 시작했다. 먹는 양을 절반씩 줄이고 틈틈이 훌라후프와 세라밴드를 이용하고, 유튜브에 올라오는 각종 ‘홈트’ 영상을 따라하면서 그렇게 감량한 지 3개월 만에 나는 딱 임신 전의 몸무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기띠를 하고 석 달 내내 하루에 만 걸음 이상을 걸었던 게 무리였는지 고관절 통증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저 내 몸 하나 믿고, 빠지는 몸무게를 보니 즐거워서, 출산 후라는 것도 잊었다가 결국 지금은 운동 중단 사태로 이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다시 몸무게는 오르고, 그렇게 오르는 몸무게를 보며 자괴감과 불안을 느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육아를 하는 데 필요한 체력을 얻고, 출산 후에 기초 체력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었더라면 체중계에 수시로 오르락내리락하며 몸무게에 집착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고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죄책감이라도 느끼듯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라면서 운동을 단순히 ‘지방을 태우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지금 나의 몸을 어서 벗어나고 바꾸어야 할 수치스러운 ‘나쁜 몸매’로 해석하고, 미용 목적 혹은 나의 몸을 성적 대상의 맥락-남자친구가 싫어한다, 남편이 좋아한다-에서 접근하지는 않았는지. 각종 미디어나 SNS를 통해 자기 관리와 운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오늘날, 내가 생각하는 운동이란 무엇이고 나에게 맞는 운동이란 무엇인지부터 우선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일확천근의 꿈, 금메달 따려고 운동하는 거 아니니까요

 

 

   여러 운동을 전전하며 오랜 세월 운동 센터의 ‘회원님’으로 살아온 작가 이진송의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란 에세이가 이목을 끈다. 스스로를 운동 유목민이라 자처할 만큼 그녀는 ‘체험판에 가까운 수준으로 이 운동, 저 운동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헬스, 복싱, 수영, 댄스, 요가, 스쿼시, 아쿠아로빅, 승마 등등 줄을 잇는 그녀의 운동 경험담을 보면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야말로 ‘운동 센터 기부 천사’라고 할 만하다. 그러다보니 매번 운동의 재미에 푹 빠지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심정과, 여러 운동을 전전하는 가운데 겪게 되는 불편한 현실과 사회적 시선을 기록한 그녀의 글은 마치 내 이야기처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다정도 체력이라는 말이 있던가. 둘째 아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나면 첫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하원을 하고, 그때부터 저녁 준비에 틈틈이 첫째 아이와 놀아주고, 그 사이에 둘째 아이가 울면 달래주고 그러다보면 저녁 식사 시간이고, 설거지와 정리로 마무리를 하고 나면 곧바로 아이를 씻기고 재워야 한다. 자장자장, 토닥여주다 내가 까무룩 잠이 들기 일쑤고 얼마 자지 않았던 것 같은데 둘째 아이가 새벽에 자지러지게 운다. 이런 일상이 몇 달째 지속되고 있다 보니 간혹 너무 지친다 싶으면 아이의 사소한 짜증에도 울컥 화가 치민다. 저자 역시 마법의 단어 ‘스트레스’에 몸과 마음이 갉아 먹히는 기분을 수시로 마주하는 모양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사소한 실수에도 지나치게 엄격해지고, 퇴근하고 만나는 가족에게 짜증이 난다고 고백한다. 아, 이러다 나는 결국 짓무르고 터지겠구나. 일터가 나를 빨아먹는 대로 내버려뒀다가는 애먼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겠구나, 하고 점점 실감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운동하고 체력을 단련하는 일은 단순히 나 혼자 잘 살려는 목적만이 아니라, 공정한 마음을 기르고 타인을 정확하게 사랑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이 간다. 언제나 다정하고 너그러울 수는 없겠지만, 그런 순간을 늘려가겠다는 마음으로, 체력을 키우고 운동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보니 몸의 변화는 내가 가장 뚜렷하게 느끼고 있었다. 복근과 등근육이 발달하면서 구부정하던 자세가 많이 좋아졌고, 통증이 사라졌다. 예전보다 근육이 더 단단해졌고 아침에 일어나기도 훨씬 수월했다. 변수가 있는 검사 기기보다 나의 24시간을 운영하는 동력에 집중하자 성과에 대한 집착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도 황의 말처럼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무언가를 조금씩 적립하는 중이 아닐까? 그랬으면 좋겠다. / 66p

 

 

 

 

 

 

   『모두 거짓말을 한다』라는 책에 의하면 ‘어린 자녀에 관련된 질문’에서 ‘내 딸이 과체중인가요?’라는 질문이 아들의 과체중을 묻는 질문보다 두 배 가까이 더 많았다고 한다. 딸의 체중은 전 세계 양육자, 특히 유전자를 나눈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인가 보다. 여성복의 사이즈는 44, 55, 66으로만 삼분할되고 이 중 어디에 속하는지가 여자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굳게 믿는 세상에서, ‘표준’이라고 제멋대로 설정한 사이즈보다 몸이 크면 별의별 차별과 혐오 발언을 듣는다. 운동에서라고 예외는 없다. 운동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항상 날씬하고 날렵하다. 가늘고 탄탄한 몸은 여성 운동의 궁극적 목적이나 결과로 제시된다. 오히려 건강한 몸이 아니라 마른 몸을 추구하고, 표준 체중이 아니라 근거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를 미용체중에 몸의 무게를 맞춰 그것을 이상적인 몸매라고 부추긴다. 많은 운동이 남자의 몸은 ‘키우고’ 여자의 몸은 ‘줄이는’ 데 치중한다는 사실에서도 성별의 격차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처럼 저자는 운동 열풍이 부는 한편으로는 ‘마르고 탄탄’한 몸을 관리 능력, 운동 내공으로 환산하는 기묘한 공기에 우려를 표현하며 자신의 경험담과 이것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함께 고민해본다. 그 과정에서 몸매 타령밖에 못 하는 빈약한 상상력은 뭇매나 맞으시라, 이 통쾌한 한 마디가 가슴을 뚫는다.

 

 

 

남학생의 운동장과 여학생의 운동장은 신체 활동과 운동의 기회 여부에 따라 다르게 구획되는 ‘장소’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 운동장이 남학생들에게 전유되는 현상을 지적했다가 ‘운동장 여교사’로 불리며 온갖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내’가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에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좀 받아들여야 할 텐데. 운동장의 성별 불균형은 페미니즘뿐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도 중요한 의제다. 운동장은 여학생을 밀어낸다. 동시에, 학교의 교육과 우리 사회의 규범을 체화한 여학생도 운동장을 밀어낸다. 이는 결국 운동장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운동 그 자체와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 41p

 

 

여자의 물리적 힘 행사를 괴상하고 기이한 것, 특별한 폭력성의 표출 정도로 만들어버리는 관습 안에서 복싱과 주짓수는 황에게 자신의 힘을 긍정하고 정확하게 행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도, 황은 운도 따랐다. 좋은 관장님과 선생님을 만나, ‘운동하는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라보는 나’에 구속되지 않고 운동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재미가 아니라면 아무리 당위가 충분해도 꾸준히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운동은 몸과 마음이 모두 따라야만 하는 행위다. / 67p

 

 

 

 

 

 

   이렇듯 여성으로서 운동의 공간에서 마주하는 차별과 배제, 혐오의 문제들을 마주하다보면, 그 속에서 어떠한 마음가짐과 태도로 운동을 하고 또 중심을 잡아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중요성을 보다 절실히 깨닫게 된다. 나는 그동안 내 몸을 그저 빼야 할 대상, 가꾸기의 대상으로만 인식해왔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날씬한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몸에 스트레스만 준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덕분에 이제는 스트레스 받지 않고, 부상의 위험을 줄이며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으려면 우선 내 몸에 대해서 샅샅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와 미디어에서 제시하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몸’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똑같은 운동을 하더라도 나는 다른 조건과 다른 신체를 가지고 있기에 개인차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도. 토익 학원에 등록한다고 모두가 원하는 토익 점수를 따는 게 아니듯이, 수영을 배우러 가도 모두가 같은 속도로 4주 안에 자유형을 마스터할 수 없듯이, 수치 하나하나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고, 살이 쪘다고 죄송해할 이유는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지금의 시행착오를 거쳐 생존 수영 교육이 안정적으로 안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름다운 영법이나 기록, 다이어트의 효과보다 수영의 효용이 더 부각되기를 바란다. 수영뿐만 아니라 수영에 대한 개인의 능력치나 신체 조건, 심리적 부담감이 다르다는 사실도 함께 교육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뻔히 물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하는 연예인을 억지로 물에 빠뜨리는 예능을 재미있다고 내보내는 나라에서는 이러한 감수성 교육이 필수적이다. 개인의 특성까지 고려하는 수영 교육이라니, 일견 이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성과가 더디더라도 꼭 필요한 역할을 해내는 것이 공교육의 존재 이유다. / 94p

 

 

산을 오를 때 목표만 보는 사람이 있고, 눈앞의 풍경과 꽃과 풀과 흙과 나무의 냄새를 더 중시하는 사람이 있다. 운동의 궤적은 퀘스트를 깨듯 쭉쭉 나아가기만 하는 전진형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멀어진 지점을 찍고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나선형에 더 가깝다. 변화하는 몸은 ‘이미 깬 판’과 달리 ‘나’와 단절되거나 지나가지 않고, 매번 똑같은 위기나 다른 변수에 봉착하기도 한다. 그러니 얼마나 멀리 가느냐보다 얼마나 꾸준히 나가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 167p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는 그간 운동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내 몸에 대해 가졌던 죄책감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사실 이런 것 저런 것 다 차치하고 이 작가의 유쾌하고 찰진 입담 때문에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래서 운동의 재미니 건강의 중요성을 떠나 그냥 작가의 입담에 빠지는 재미라도 느껴보시라 추천하고 싶다. 나는 그간 고관절 통증으로 내려놓은 운동이 내내 마음에 쓰였는데, 살을 빼는 게 목적이 아닌 고관절 강화와 체력 키우기에 중점을 둔 운동법부터 차근차근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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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근육이 붙나 봐요
AM327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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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하고 단단한 삶을 위해, 여기 내가 있음에 집중하는 시간!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정성이 쌓이다보면 어느 새 오랜 상처와 아픔이 훌훌 사라진다!

 

 

   “엄마, 미워. 엄마랑 이제 안 놀 거야.”

   5살인 첫째 아이가 최근 들어 부쩍 하는 말이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있으면 펑펑 울면서 밉다는 말을 곧잘 하곤 한다. 그런데 그게 어쩔 때는 귀엽게 보이다가도 어쩔 때는 명치에 쿡, 하고 와 박힌다. 울컥하는 마음에 나도 “#$#^#%$%&*!!!” 하고 소리치고 싶지만 다섯 해를 아이와 함께 하다 보니 이젠 일을 키우기보다 적당히 타협하는 걸 택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가 복에 받쳐 울고 있을 때는 어떤 설득의 말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우리 잠깐만 시간을 갖자.” 하고 잠시 방에 들어가 숨고르기를 한다. 들이 마시고, 내쉬고. 오르락내리락하는 들숨과 날숨에 치솟았던 감정이 하나하나 누그러진다.

 

 

 

   아, 아니다. 솔직해지자. 사실 이건 열에 두어 번 정도? 대부분의 경우 나는 아이와 감정싸움에 치닫는다. 나에게도 이렇게 욱, 하는 면이 있었나. 차곡차곡 담아두는 일에 익숙했던 나였는데, 이게 이렇게 어이없게 터져버릴 일인가.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닌 일인데, 불쑥불쑥 그렇게 서럽기까지 할 때가 있다. 엄마로서도, 어른으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나는 아직 내공이 부족한가보다. 그래서 요즘은 문득 육아책으로 육아 기술을 늘리는 일 보다 내 마음 다독이는 일이 더 시급하게 느껴진다. 마음에도 근육이 있다면, 그래서 단단해질 수 있다면 조금은 덜 흔들리고, 덜 휘청일 수 있을까.

 

 

 

 

 

 

오늘도 나마스떼! 균형 잡힌 삶을 위해

 

 

 

들숨에 호흡으로 내 몸을 가득 채웠다가

날숨에 남김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세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그저 바라보세요. / 44p

 

 

 

   『마음에도 근육이 붙나 봐요』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AM327이 나답게 잘사는 것에 관심이 많아 미숫가루 탄 물처럼 뿌연 마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마주한 생각을 붙잡아 꾸준히 기록한 에세이다. 자주 크게 감탄하고 자주 크게 분노하는 성정을 가진 나를 잘 보듬어서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던 그녀의 소망에 살포시 지어지는 미소처럼, 소박하면서 정감 있는 그림체와 다정한 글귀가 마음을 이끈다. 여기에는 회사 생활 10년 차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마음속 깨달음으로 회사를 뛰쳐나와 버렸으나, 고정적인 수입을 포기한 대가로 이리저리 휘청이다 만난 요가를 통해 몸을 바라보는 대신 마음에 근육을 채우고, 일상에 중심을 지탱하는 법을 배운 지난 과정이 그려져 있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따라주지 않던 동작에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을 때 마음 가득 희열을 느껴요. 하지만 하나를 알았다고 좋아하면 그 앞에 또 다른 숙제가 펼쳐지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같은 동작을 해도 매일의 컨디션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어제 했던 동작이 오늘은 안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하나를 깨달을 때마다 몸짓의 깊이가 어제와는 달라진 것을 분명히 느끼죠. 요가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관찰하게 하고, 한없이 겸손해지게 만들어요. 그렇게 깨달음의 반복을 통해 요가를 하면 할수록 내 안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요. / 73p

 

 

 

 

 

 

   책은 요가를 처음 접하는 이들을 위해 요가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바른 자세, 호흡법, 몸과 마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한 컷 한 컷 정성을 다해 담아놓았다. 요즘처럼 다시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릴 때는 ‘비탈라사나 마르자리아사나’로 호흡기 기능을 향상시키고, 발목을 발달시키고 굳은 어깨를 풀어주기 위해서는 ‘가루다아사나’를, 고단하고 지친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아도무카 스바나아사나’를, 무너진 몸과 마음에 균형을 잡기 위해 ‘우르드바 프라사리타, 에카파다아사나’란 동작을 차근차근 실행한다. 그러는 동안에 잘 되지 않던 동작을 꾸준한 연습으로 성취해봄으로써 내 몸과 마음을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재미를 느끼고,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진짜 ‘잘’ 사는 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가끔 마음 속 검은 꽃이 자라는 느낌이 들 때 가슴을 활짝 여는 ‘푸르보타나사나’를 하며 마음까지 활짝 열어보고, 힘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이 정도면 괜찮은지, 이 정도는 어떤지 몸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어봄으로써 나와 대화하는 법을 익혀나가기도 한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소개된 동작들을 따라해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다리와 팔은 부들부들, 뭐하나 마음처럼 되는 게 하나도 없다. 나이가 들고 아이를 둘 낳고 보니 몸은 천근만근이고 뻣뻣하기는 젓가락 같아서 어느 하나 만만한 동작이 없었던 것이다. 이건 전문가가 하는 것 아닌가, 좌절하려는 찰나에 책의 어느 한 대목이 내 마음을 붙든다. 저자도 한 자세에 머무는 동안 느껴지는 떨림을 늘 속상하게 여겼는데, 강사분이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매트 위에서의 흔들림도 움직임의 일부랍니다. 그런 나를 스스로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조절이 가능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요?” 라고 말이다. 어디 매트 위에서일뿐일까. 덕분에 우리는 흔들리고 때로는 상처받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삶에서의 좌절도 인생의 일부라는 걸 받아들여야겠다는 유연한 자세를 배우게 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

이 문장을 참 좋아해요. 제 꿈은 귀여운 할머니가 되어 오래오래 그림을 그리는 거거든요. 그러려면 지금부터 세상을 세심히 바라보며 나의 이야기를 그려 나가야겠죠. 가치 있는 주름살을 만들며 깊어지고 싶어요. / 198p 

 

 

 

 

 

 

   요가란 처음부터 무리하지 말고 조금씩,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나아가는 게 중요하듯이 우리 인생도 무리하지 말고, 나를 채근하기보다 응원해주면서 천천히 나아가는 법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가장 어려운 그 깨달음에 최대한 관대해져보는 건 어떨까. 외부를 향한 눈을 잠시 가리고 내 안에 있는 눈을 뜨고 그저 여기 있음에 집중하는 시간. 그 시간이 현재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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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 - 2018년 공쿠르상 수상작
니콜라 마티외 지음, 이현희 옮김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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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대한 열정으로 번뜩였지만 그래서 한없이 유약했던 그 시절!

사랑과 분노, 희망과 좌절로 얼룩졌던 우리 젊은 날의 이야기!

 

 

Smells Like Teen Spirit.

‘아직 신곡이나 다름 없는 그 노래는 미국 어딘가 갈 데 없는 백인 청소년들이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싸구려 맥주를 마신다는 후미지고 가난한 도시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노래는 가난한 노동자 자녀들, 불량 청소년들, 위기를 맞은 사회 낙오자들, 어린 미혼모들, 오토바이족, 마약쟁이들, 직업반 아이들을 중심으로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갔다. (중략)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산업화가 해제되어 버린 도시마다, 가난한 마을마다, 이렇다 할 꿈 없이 살아가는 청소년들이면 누구나 시애틀 출신의 그룹 너바나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들었다.’ / 80p

 

 

 

   우리는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에서 부조리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의 강렬하지만 변함없이 쓸쓸한 연민의 지독한 냄새를 맡는다. 후미진 틈 사이에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와 그 안에서 갈 곳을 잃은 10대들의 얄팍한 삶을, 사회가 원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는 위기의 20대들을, 그렇게 등 떠밀린 채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일을 살게 될 나날들을.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프랑스의 변두리 도시 속에서 너바나의 음악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사춘기 청소년들의 불안한 열망이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볕처럼 펼쳐진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내 젊은 날에 대한 위로가 그곳에 있었다.

 

 

 

 

 

 

사회적 위계와 소외를 맛본 첫 경험의 기억, 그 생생한 증언

 

 

   19세기 산업 혁명과 더불어 유럽 철광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번영과 전성기를 누렸던 프랑스 북부 로렌 지방의 도시 에일랑주. 하지만 세계화의 바람을 겪으며 제조업이 쇠퇴하고 용광로가 폐쇄되면서 한때 뜨거웠던 도시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가다 마침내 흉물로 변해버렸다. 도시 곳곳은 이제 어디를 가도 고름이 쌓이다 못해 곪아서 터져버릴 지경이었고, 어설픈 이상주의와 권태가 사람들의 삶을 좀먹고 있었다.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된 앙토니는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마다 살짝 열린 지붕 밑 창틈으로 새어나오는 마리화나 타는 냄새를 맡고, 그의 가족은 언제 폭발해버릴지 모를 감정을 간신히 억눌러 담아 꾸역꾸역 살아갔다. 으레 그 시절의 청소년들이라면 그러하듯 또래 사이에 유행하는 것에 민감하고 그들처럼 하지 않으면 빚쟁이가 되는 것 같았던 앙토니는 곧잘 엉뚱한 짓을 벌이곤 했다. 사촌과 함께 동네 호수 저편에 ‘누드 비치’가 있다는 소문에 카누를 훔쳐 타고, 마리화나를 나눠 피우며 소녀들과의 성적 충동에 쉽게 이끌렸다. 그것은 이 갑갑한 곳에서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유희이자 해방구였다.

 

 

탐욕스러운 공장의 몸체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버텼다. 선택의 기로에서 공장은 출퇴근길과 노동자들에게 쌓인 피로를 쥐어짜 연명했으며, 물건들이 일단 부려졌다가 무게 단위로 팔려 나간 다음에는 이 도시에 잔인한 출혈만 남긴 운송망들이 공장을 먹여 살렸다. 유령 도시처럼 변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이곳은 벽을 창백하게 뒤덮은 항의 문구, 산탄이 곰보처럼 박힌 표지판의 기억에 의지하며 잡초에게 먹힌 자갈처럼 살아갔다. / 139p

 

 

어슴푸레한 불안이 엄습하면서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억압, 유년, 치러야 할 대가고 뭐고 전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순간순간 기분이 너무 나쁜 나머지, 이런저런 생각이 화살처럼 빠르게 머릿속을 통과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 균형 잡힌 머릿속과 몸에 잘 맞는 옷, 자가용까지 두루 갖춘 사람들이 잘도 등장하건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앙토니는 자책감이 들었다. 학교에선 꼴찌에 뚜벅이 신세, 여자 친구 하나 없고 별 일 없이 지내는 일조차 서툴기 짝이 없는 신세가 미워졌다. / 155p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사촌과 ‘누드 비치’에 갔다가 우연히 스테파니와 클레망스를 만난 앙토니는 스테파니에게 단숨에 빠져버렸고, 강 건너 부촌 아이들이 벌이는 파티에서 그녀와 만나기 위해 아버지가 아끼는 오토바이를 훔친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차가운 냉대와 마리화나나 환각제 같은 것을 돌려 가며 얄팍한 우정을 나누는 부촌 아이들의 허울뿐이었다. 문제는 그곳에서 환각제를 들이켜고 졸도한 앙토니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아버지의 오토바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한편, 옆 동네 아랍 이민자 밀집 구역에 사는 열여덟 살의 하신은 이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던 약 도매상이었으나 마리화나 품귀현상으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태였다. 하루하루가 감옥처럼 여겨져는 이곳에서의 삶을 하루빨리 청산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였다. 아버지처럼 살다가 아버지처럼 인생을 끝낼 수는 없었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국립 고용 센터에 거짓 이력서를 들고 가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그저 훔치고 달아나고 분노하는 일밖에 뚜렷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단은 당장 훔친 앙토니의 오토바이를 팔아서 돈을 구할 생각이었는데, 앙토니가 엄마와 동행해 아버지를 찾아온 바람에 수치심에 따른 복수심으로 그만 오토바이에 불을 질렀다. 이때부터 그들은 절대 화해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게 되었다.

 

 

 

‘이민자’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을까? 아니면 아무도 자발적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무국적자 신세? 왜냐하면 이 아버지들은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강, 박봉, 존중받지 못하는 처지, 자녀들에게 물려줄 변변한 유산 하나 없는 뿌리 뽑힌 사람들이라는 균열 사이에 간신히 그리고 여전히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운명은 자녀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원통함과 경멸을 물려주었다. / 429p

 

 

 

 

 

 

   소설은 오토바이 도난과 방화 사건을 시작으로 부모인 파트릭과 엘렌이 이혼하고, 중학교를 간신히 마치고 고등학생이 된 뒤 군대에 자원입대했다가 의병 제대하고도 여전히 저소득층 사회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앙토니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 사이에 하신 역시 고향 북아프리카로 돌아가 마약 거래인으로 크게 돈을 벌었지만 사기를 당하고, 결국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서도 이렇다 하게 나아질 것 없는 비루하고 옹색한 삶의 연속을 사실감 있게 펼쳐 보인다. 이외에도 우울과 무기력 그리고 지독한 권태 속에서 반복된 일상을 견뎌내야 하는 앙토니의 엄마 엘렌, 맨정신에 있을 때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그래서 알코올에 의지해 기울어진 삶을 추스를 능력이 사라진 아버지 파트릭,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엘리트 코스를 향한 독촉에 시달리는 스테파니와 클레망스의 일상들도 함께 전개된다. 특히 끊임없이 주변을 서성이는 남성의 시선들, 나머지 모두를 시시하게 만들어버리는 사회적 능력이란 권력의 힘을 스테파니의 목소리를 통해 담아낸 점은 이 소설이 남성의 서사뿐만 아니라 여성의 서사까지 입체적으로 다룬 보기 드문 수작임을 입증한다.

 

 

 

본래 하신은 재교육을 위해 그곳에 보내졌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더 망가졌고, 성매매 업소에 드나들었으며, 아버지가 육 개월 동안 일해서 벌던 돈을 하루 만에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사업의 세계라는 것이 우습게 여겨졌다. 수송 경로를 통해 하신이 고용한 사람, 그 사람이 먹여 살리는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이 마약 거래는 여러 면에서 옛날의 주요 산업 지도를 재생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었다. 베드타운에 밀집한 다수의 수공업자들, 외국인이 주를 이루는 가방끈 짧은 이들이 이제 블루칼라를 대신할 금싸라기 산업인 딜러업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의 철학은 상업학교가 아니라 계급 간의 최종 투쟁에서 나온다는 것으로 비교는 끝난다. / 350p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온 유산을 더욱 견고히 하는 엘리트들은 그에 걸맞게 두둑한 보상을 받고 왕조를 소생시키고 프랑스의 피라미드라는 끔찍스러운 건축물을 한층 더 튼튼하게 다져 주었다. 소위 ‘유능한 인재’들은 궁극적으로 출생과 혈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법률가와 사상가들, 프랑스 혁명의 악마들, 또는 공화국의 검은 경기병이 꿈꾸던 바이기도 했다. 실제로 역사에서 엄청난 분류 작업, 엄청난 응집, 계층 구조의 지속적인 교체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 / 389p

 

 

 

 

 

 

 

  이렇듯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번영과 성공으로부터 물러나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마을 속의 사람들을 통해 유전처럼 되물림되고,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되돌아오고야 마는 끔찍한 삶의 관성들을 여러 인물의 시선에서 집요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집에 함께 사는 아이가 자식이 아니라 웬수가 되었음을 발견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위대한 사랑 외에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을, 주간지의 페이지를 채우는 하찮은 가십, 무사안일, 열정적으로 살기, 정신 나간 듯이 성공하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 모두 벗어나고 싶어 했던 이 촌구석에서 날이면 날마다 뜨개질하듯 이어지는 삶, 아버지들과 너무나 닮은 존재가 되었다는 점, 느릿하게 찾아오는 저주까지. 순종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 삶에 대한 기나긴 수치심은 마치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카린을 보는 것만으로도 앙토니는 불편해졌다. 이 여자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똑같은 기쁨, 똑같은 고통을 선사하는 자녀의 존속만을 위해 스스로 무너지며 하녀나 다름없는 신서를 자처한다. 모든 것이 앙토니에게는 심각할 정도로 우울했다. 그 소리 없는 집요함 속에서 앙토니는 자신이 속한 계급의 운명을 그려 보았다. 최악은 가스레인지 앞에서 세월을 보내는 여자들의 자각 없는 몸, 넙데데한 엉덩이, 불룩한 뱃살을 통해 영원히 지속되는 종족의 법칙이었다. 앙토니는 가족을 증오했다. 가족은 목적도 끝도 없이 연장되는 지옥이었다. 그는 길을 떠나고 기적을 만들 것이다. 다른 것을 이룰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 553p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공쿠라 상 수상작답게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묵직한 두께와 여러 인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교하고 입체적인 서사를 통해 생에 대한 열정으로 번뜩였지만 그래서 한없이 유약했던 그 시절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재현해낸 작품이다. 덕분에 소설을 읽는 내내 너바나의 사운드가, 특유의 패배주의가, 마이너적인 감성이 하나의 결을 이루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외로 높은 가독성에 깊은 공감까지 불러일으키니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로 진입 장벽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에게 꼭 이 책을 추천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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