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에 대한 열정으로 번뜩였지만 그래서 한없이 유약했던 그
시절!
사랑과 분노, 희망과 좌절로 얼룩졌던 우리 젊은 날의
이야기!
Smells Like Teen Spirit.
‘아직 신곡이나 다름 없는 그 노래는 미국 어딘가 갈 데 없는 백인 청소년들이 체크무늬 남방을 입고 싸구려 맥주를 마신다는 후미지고
가난한 도시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노래는 가난한 노동자 자녀들, 불량 청소년들, 위기를 맞은 사회 낙오자들, 어린 미혼모들, 오토바이족,
마약쟁이들, 직업반 아이들을 중심으로 바이러스처럼 번져나갔다. (중략)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산업화가 해제되어 버린 도시마다, 가난한
마을마다, 이렇다 할 꿈 없이 살아가는 청소년들이면 누구나 시애틀 출신의 그룹 너바나가 부르는 이 노래를 들었다.’ / 80p
우리는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에서 부조리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들의 강렬하지만 변함없이 쓸쓸한
연민의 지독한 냄새를 맡는다. 후미진 틈 사이에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와 그 안에서 갈 곳을 잃은 10대들의 얄팍한 삶을, 사회가
원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부적응자로 낙인찍히는 위기의 20대들을, 그렇게 등 떠밀린 채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일을 살게 될 나날들을.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프랑스의 변두리 도시 속에서 너바나의 음악으로 대표되는 1990년대 사춘기 청소년들의 불안한 열망이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볕처럼 펼쳐진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을 때 무엇을 해도 안 된다는 것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내 젊은 날에 대한 위로가 그곳에
있었다.

사회적 위계와 소외를
맛본 첫 경험의 기억, 그 생생한 증언
19세기 산업 혁명과 더불어 유럽 철광 산업의 중심지로 부상하여 번영과 전성기를 누렸던 프랑스 북부 로렌 지방의 도시 에일랑주.
하지만 세계화의 바람을 겪으며 제조업이 쇠퇴하고 용광로가 폐쇄되면서 한때 뜨거웠던 도시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가다 마침내 흉물로 변해버렸다. 도시
곳곳은 이제 어디를 가도 고름이 쌓이다 못해 곪아서 터져버릴 지경이었고, 어설픈 이상주의와 권태가 사람들의 삶을 좀먹고 있었다.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된 앙토니는 동네를 한 바퀴 돌 때마다 살짝 열린 지붕 밑 창틈으로 새어나오는 마리화나 타는 냄새를 맡고, 그의 가족은 언제 폭발해버릴지
모를 감정을 간신히 억눌러 담아 꾸역꾸역 살아갔다. 으레 그 시절의 청소년들이라면 그러하듯 또래 사이에 유행하는 것에 민감하고 그들처럼 하지
않으면 빚쟁이가 되는 것 같았던 앙토니는 곧잘 엉뚱한 짓을 벌이곤 했다. 사촌과 함께 동네 호수 저편에 ‘누드 비치’가 있다는 소문에 카누를
훔쳐 타고, 마리화나를 나눠 피우며 소녀들과의 성적 충동에 쉽게 이끌렸다. 그것은 이 갑갑한 곳에서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유희이자 해방구였다.
탐욕스러운 공장의 몸체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버텼다. 선택의 기로에서 공장은 출퇴근길과 노동자들에게
쌓인 피로를 쥐어짜 연명했으며, 물건들이 일단 부려졌다가 무게 단위로 팔려 나간 다음에는 이 도시에 잔인한 출혈만 남긴 운송망들이 공장을 먹여
살렸다. 유령 도시처럼 변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이곳은 벽을 창백하게 뒤덮은 항의 문구, 산탄이 곰보처럼 박힌 표지판의 기억에 의지하며 잡초에게
먹힌 자갈처럼 살아갔다. / 139p
어슴푸레한 불안이 엄습하면서 더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억압, 유년, 치러야 할 대가고 뭐고
전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순간순간 기분이 너무 나쁜 나머지, 이런저런 생각이 화살처럼 빠르게 머릿속을 통과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
균형 잡힌 머릿속과 몸에 잘 맞는 옷, 자가용까지 두루 갖춘 사람들이 잘도 등장하건만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앙토니는 자책감이 들었다. 학교에선
꼴찌에 뚜벅이 신세, 여자 친구 하나 없고 별 일 없이 지내는 일조차 서툴기 짝이 없는 신세가 미워졌다. / 155p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사촌과 ‘누드 비치’에 갔다가 우연히 스테파니와 클레망스를 만난 앙토니는 스테파니에게 단숨에 빠져버렸고, 강
건너 부촌 아이들이 벌이는 파티에서 그녀와 만나기 위해 아버지가 아끼는 오토바이를 훔친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차가운
냉대와 마리화나나 환각제 같은 것을 돌려 가며 얄팍한 우정을 나누는 부촌 아이들의 허울뿐이었다. 문제는 그곳에서 환각제를 들이켜고 졸도한
앙토니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아버지의 오토바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한편, 옆 동네 아랍 이민자 밀집 구역에 사는 열여덟 살의 하신은 이 동네에서 제일 잘 나가던 약 도매상이었으나 마리화나 품귀현상으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상태였다. 하루하루가 감옥처럼 여겨져는 이곳에서의 삶을 하루빨리 청산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였다.
아버지처럼 살다가 아버지처럼 인생을 끝낼 수는 없었다.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국립 고용 센터에 거짓 이력서를 들고 가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그저 훔치고 달아나고 분노하는 일밖에 뚜렷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일단은 당장 훔친 앙토니의 오토바이를 팔아서 돈을 구할 생각이었는데,
앙토니가 엄마와 동행해 아버지를 찾아온 바람에 수치심에 따른 복수심으로 그만 오토바이에 불을 질렀다. 이때부터 그들은 절대 화해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게 되었다.
‘이민자’라는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되지 않을까? 아니면 아무도 자발적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무국적자 신세? 왜냐하면 이 아버지들은 두 개의 언어, 두 개의 강, 박봉, 존중받지 못하는 처지, 자녀들에게 물려줄 변변한 유산 하나 없는
뿌리 뽑힌 사람들이라는 균열 사이에 간신히 그리고 여전히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운명은 자녀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원통함과 경멸을
물려주었다. / 429p
소설은 오토바이 도난과 방화 사건을 시작으로 부모인 파트릭과 엘렌이 이혼하고, 중학교를 간신히 마치고 고등학생이 된 뒤 군대에
자원입대했다가 의병 제대하고도 여전히 저소득층 사회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앙토니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 사이에 하신 역시 고향 북아프리카로
돌아가 마약 거래인으로 크게 돈을 벌었지만 사기를 당하고, 결국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결혼을 하고서도 이렇다 하게 나아질 것 없는 비루하고
옹색한 삶의 연속을 사실감 있게 펼쳐 보인다. 이외에도 우울과 무기력 그리고 지독한 권태 속에서 반복된 일상을 견뎌내야 하는 앙토니의 엄마
엘렌, 맨정신에 있을 때에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그래서 알코올에 의지해 기울어진 삶을 추스를 능력이 사라진 아버지 파트릭,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엘리트 코스를 향한 독촉에 시달리는 스테파니와 클레망스의 일상들도 함께 전개된다. 특히 끊임없이 주변을
서성이는 남성의 시선들, 나머지 모두를 시시하게 만들어버리는 사회적 능력이란 권력의 힘을 스테파니의 목소리를 통해 담아낸 점은 이 소설이 남성의
서사뿐만 아니라 여성의 서사까지 입체적으로 다룬 보기 드문 수작임을 입증한다.
본래 하신은 재교육을 위해 그곳에 보내졌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더 망가졌고, 성매매 업소에
드나들었으며, 아버지가 육 개월 동안 일해서 벌던 돈을 하루 만에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사업의 세계라는 것이 우습게 여겨졌다.
수송 경로를 통해 하신이 고용한 사람, 그 사람이 먹여 살리는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이 마약 거래는 여러 면에서 옛날의 주요 산업 지도를
재생산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었다. 베드타운에 밀집한 다수의 수공업자들, 외국인이 주를 이루는 가방끈 짧은 이들이 이제 블루칼라를 대신할 금싸라기
산업인 딜러업에 종사하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의 철학은 상업학교가 아니라 계급 간의 최종 투쟁에서 나온다는 것으로 비교는 끝난다.
/ 350p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온 유산을 더욱 견고히 하는 엘리트들은 그에 걸맞게 두둑한 보상을 받고 왕조를
소생시키고 프랑스의 피라미드라는 끔찍스러운 건축물을 한층 더 튼튼하게 다져 주었다. 소위 ‘유능한 인재’들은 궁극적으로 출생과 혈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것은 또한 법률가와 사상가들, 프랑스 혁명의 악마들, 또는 공화국의 검은 경기병이 꿈꾸던 바이기도 했다. 실제로 역사에서
엄청난 분류 작업, 엄청난 응집, 계층 구조의 지속적인 교체 프로젝트가 이루어졌다. / 389p


이렇듯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번영과 성공으로부터 물러나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마을 속의 사람들을 통해 유전처럼 되물림되고,
달아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되돌아오고야 마는 끔찍한 삶의 관성들을 여러 인물의 시선에서 집요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집에 함께 사는 아이가 자식이 아니라 웬수가 되었음을 발견하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위대한 사랑 외에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을, 주간지의 페이지를
채우는 하찮은 가십, 무사안일, 열정적으로 살기, 정신 나간 듯이 성공하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 의도와 상관없이 그들 모두 벗어나고 싶어
했던 이 촌구석에서 날이면 날마다 뜨개질하듯 이어지는 삶, 아버지들과 너무나 닮은 존재가 되었다는 점, 느릿하게 찾아오는 저주까지. 순종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 삶에 대한 기나긴 수치심은 마치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생생하다.
카린을 보는 것만으로도 앙토니는 불편해졌다. 이 여자들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똑같은 기쁨, 똑같은 고통을
선사하는 자녀의 존속만을 위해 스스로 무너지며 하녀나 다름없는 신서를 자처한다. 모든 것이 앙토니에게는 심각할 정도로 우울했다. 그 소리 없는
집요함 속에서 앙토니는 자신이 속한 계급의 운명을 그려 보았다. 최악은 가스레인지 앞에서 세월을 보내는 여자들의 자각 없는 몸, 넙데데한
엉덩이, 불룩한 뱃살을 통해 영원히 지속되는 종족의 법칙이었다. 앙토니는 가족을 증오했다. 가족은 목적도 끝도 없이 연장되는 지옥이었다. 그는
길을 떠나고 기적을 만들 것이다. 다른 것을 이룰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 553p

세계 3대 문학상이라 불리는 공쿠라 상 수상작답게 『그들 뒤에 남겨진 아이들』은 묵직한 두께와 여러 인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매우
정교하고 입체적인 서사를 통해 생에 대한 열정으로 번뜩였지만 그래서 한없이 유약했던 그 시절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재현해낸 작품이다. 덕분에
소설을 읽는 내내 너바나의 사운드가, 특유의 패배주의가, 마이너적인 감성이 하나의 결을 이루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이외로 높은 가독성에
깊은 공감까지 불러일으키니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로 진입 장벽이 높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에게 꼭 이 책을 추천 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