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에 끝내는 세계사 - 암기하지 않아도 읽기만 해도 흐름이 잡히는
시마자키 스스무 지음, 최미숙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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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에게 제안하는 특별한 세계사 수업!

주요 키워드를 통해 접근하다보면 어느 새 세계사 전반을 통달하게 되는 책!

 

 

  미국이 지난 3일 새벽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이란군의 실세인 가셈 솔레이마니를 공습 살해하자,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이 주둔해 있던 군사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 속에 이라크가 대리 전쟁터의 형국이 되어가고 있는 양상이다. 한편, 이라크는 이라크대로 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미국은 그럴 수 없다고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 이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한 미군 철수 문제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과 같은 민감한 현안을 떠안고 있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비록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는 하나 그저 남의 나라 일처럼 눈감고 볼 일은 아닌 까닭이다.

 

 

 

   이제 우리는 좋든 싫든 세계라는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세계정세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수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이 주둔해 있던 군사기지에 미사일을 공격한 날, 휴대폰에 해당 뉴스가 속보로 도착했을 때 평소 스팸문자를 넘겨버리듯 읽지 않은 사람이 대다수였을 것이다. 어째서 이란이 미군의 군사기지에 미사일을 공격한 것인지, 왜 그것이 이라크 영토 내에서 벌어진 일인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더욱이 관심을 가지기 어려운 뉴스였을 테니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중동 내의 갈등은 워낙 복잡한 세계사가 얽히고설켜있어 감히 어디서부터 어떻게 살펴봐야 할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는다. 하물며 세계사 전체의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라고 쉬울 리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에 끝내는 세계사』는 그간 세계사를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던 이들에게 특별한 학습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역별로 구분해 시계열로 가르치던 기존의 세계사 수업 방식과는 달리 특정 주제에 맞춰 가로지르듯 세계사를 통독하는 이 책의 방식은 세계사 공략을 위한 새로운 첫걸음에 딱 걸맞은 책이 되어 줄 것이다.

 

 

 

7가지의 맥락으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읽어나가다

 

 

   『한번에 끝내는 세계사』는 지도자, 경제, 종교, 지정학, 군사, 기후, 상품과 같은 7가지테마를 선정해 각각을 ‘세계의 역사’라는 하나의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즉, 7가지 테마를 통해 시대적인 배경과 핵심을 동시에 읽어냄으로써 세계사를 한눈에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짧은 시간에 가장 효율적으로 세계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첫 장인 ‘지도자’ 편에서는 중국 사회의 기틀을 세운 고대 중국의 황제와 로마제국의 황제, 위대한 예언자인 무함마드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초창기의 지도자,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몽골의 칭기즈 칸 그리고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와 같이 대제국의 토대를 쌓은 지도자, 20세기의 독재자 등 지도자를 중심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살펴본다.

 

 

 

나폴레옹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듯 연승가도를 달렸다. 막강한 나폴레옹 군대의 저력은 나폴레옹의 뛰어난 리더십과 국민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일치단결한 징병 부대에 있었다. 전력의 과반수를 용병에 의존하던 당시 유럽 사회에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매우 특이한 존재였다.

국민이라는 개념도 국왕의 신민이나 귀족의 영주민을 대신하여 프랑스인 모두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 급작스럽게 만들어졌다. 프랑스군의 성공을 목격하고 나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잇따라 국민의 개념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 ‘지도자’ 편 중에서 35p

 

 

중국에서 새 왕조를 창건할 때나 절대주의 전성기의 서구에서는 황제나 국왕이 독재 권력을 휘두르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20세기에 등장한 독재자들의 독재 권력은 전근대의 것과 크게 달랐다. 독재자들의 공통점은 일시적이지만 대중을 열광시켰다는 것이다. 이념으로 따지자면 민족주의나 공산주의 둘 중 하나인데,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공산주의는 사상이 지지를 받았다기보다 구국의 영웅이 공산주의자였다는 우연이 촉진된 면이 더 강하다. / ‘지도자’ 편 중에서 51p

 

 

 

 

 

 

   2장의 주제는 경제다. 소금과 철의 전매를 실시해 국가 재정의 기둥이자 통치 체제로 편입시킨 한의 무제, 지폐가 화폐의 주역이 되는 과정, 인도양을 중심으로 한 서구 열강의 진출 과정, 유럽 국가들의 노예 무역과 세계 경제를 위기에 빠뜨린 세계 대공황 등에 대해 살펴본다. 얼마 전에 읽은 『이덕일의 한국통사』에 따르면 조공이 제후국이 일방적으로 물품을 바치는 관계가 아니라 황제국이 회사로 답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국가 간의 실리외교였다는 점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적지 않게 놀랐었는데, 이 책에서도 조공무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중국은 황제의 덕을 공경하며 공물을 가져온 다른 나라의 군주 내지는 사신에게 회사의 형식으로 은혜를 베풀고 작호를 수여한다. 여기에서 회사란 조공의 대가로 주는 답례품을 의미한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책봉 체제가 세계사에서 특이한 것은 덕이 관건이 되기 때문에 속국보다 중주국의 부담이 크다는 점’이었다. 공물을 받은 덕이 있는 종주국 입장에서는 받은 공물에 대한 등가 교환은 있을 수 없고, 최소한 두 배는 채워서 보내는 것이 원칙이었다고 하니, 조공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달리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네덜란드는 15세기 말 스페인으로부터 유대인 난민을 대거 받아들이기도 했는데, 유대인의 막강한 자금력이 네덜란드의 성장에 기여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연구자 중에는 네덜란드를 세계 최초의 헤게모니 국가로 평가하는 사람도 있다. ‘헤게모니’의 사전적 의미는 우두머리의 자리에서 전체를 이끌거나 주동할 수 있는 권력이나 주도권을 뜻한다. 즉 헤게모니 국가는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아 병합하는 것이 아니라, 물류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하는 방식으로 수고와 비용을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많은 국가나 지역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국가를 뜻한다. / ‘경제’ 편 중에서 78p

 

 

 

   3장의 주제는 종교다. 세계사라는 무대는 그야말로 종교에 웃고, 종교에 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여기서는 유대교의 차별과 박해가 독특한 규율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관점에서부터 우리의 역사와 의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불교와 유교 등에 대해 살펴본다. 개인적으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구체적으로 구분하기가 어려웠는데, 책에서 설명하는 것에 좀 더 보충해서 공부를 해본다면 그간 어려워했던 점을 보다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하여 큰 도움이 되었다.

 

 

 

유대교의 교리는 고기와 유제품을 함께 먹어서는 안 된다, 규정된 도살 방법에 따르지 않은 짐승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 돼지고기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등 식사 규율에 엄격한 편이다. 무엇보다 특이한 점은 안식일에 관한 규정인데, 토요일에는 절대 노동을 해서는 안 된다.

(중략) 이런 독특한 규율 때문에 유대교는 주위로부터 차가운 시선을 받고 차별이나 박해를 당하는 일도 일상다반사였다. 그 때문에 중세에는 교회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서, 또 근대 이후에는 내셔널리즘 고양을 위한 희생물로 이용되는 일이 많았다. 특히 나치 정권에 의한 홀로코스트 대학살은 그 극치였다. / ‘종교’ 편 중에서 96p

 

 

유교는 가부장제 사회를 유지하는 데 적합했고, 이런 유교가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있으면 정부 입장에서도 국민을 통치하기에 용이했다. 명나라 태조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연장자를 공경하라’ 등 농민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가르침을 유교 사상에서 골라 ‘육론’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장려했다. 한편 도교의 교리는 현세 이익적인 특징이 있다. 특히 재물이나 소중한 자식을 갖도록 도와 주거나 병을 낫게 해주는 신이 인기가 많았는데, 돈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고 큰 병 없이 많은 자손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삼는 당대의 가치관이 잘 드러난다. / ‘종교’ 편 중에서 104p

 

 

앞에서 서술했듯이 구교, 신교라는 번역 용어를 보면, 자칫 프로테스탄트가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느끼기 쉬운데 프로테스탄트의 ‘성서 중심주의’, ‘만인 사제론(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도움으로 하느님께 직접 예배하고 교통할 수 있다는 그리스도교의 교리로, 개신교의 신학 개념이다-옮긴이)’ 원리에는 위험한 함정이 따라 붙는다. 성서의 해석이 개인에게 맡겨지고 누구나 사제가 될 수 있다는 상황이 컬트 교단(유사 종교 혹은 사이비 종교)을 낳는 토양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교황과 공회의를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인 조직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일탈이 심한 세력은 이단으로 배제 내지는 파문 선고를 받게 된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에는 그러한 제동 장치가 없다. / ‘종교’ 편 중에서 122p

 

 

 

 

 

 

   4장인 지정학 편에서는 세계 4대강을 중심으로 문명이 어떻게 발달했는지를 살펴보고, 세계의 주요 산맥 그리고 해협, 운하 등과 같은 지정학적 요소들이 세계사에 어떠한 기능으로 작용했는지를 훑어본다. 이어 5장 군사 편에서는 기마전술이나 화약 같은 무기 등이 전쟁에서 어떻게 이용되고 변용되어 왔는지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백년 전쟁이나 제1차 세계 대전, 걸프 전쟁과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무엇으로 비롯되었으며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소개하기도 한다. 비록 백년전쟁은 프랑스군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그 과정 속에서 귀족의 자존심 때문에 패배를 답습한 프랑스군의 귀족의식에 얽힌 이야기 등은 또 다른 이야기적인 요소로 재미있게 읽혔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만을 쭉 나열하는 게 아니라 책 곳곳에는 우리가 그동안 잘 몰랐던 역사 속의 이야기들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보다 쉽고 재미있게 세계사에 접근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노력이 담겨 있다.

 

 

 

영국은 처음에 수에즈운하가 갖는 의미를 중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개통하고 보니 이용하는 선박의 과반수가 영국 국적임을 깨닫자 입장을 180도 전환했다.

영국은 때마침 재정난에 허덕이던 이집트가 수에즈운하 주식의 매각을 검토 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의 영국 수상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의회에 상의하고 절차를 밟다 보면 기회를 놓칠 수 있겠다고 판단, 일단 유대계 재벌인 로스차일드 가문에게서 긴급 융자를 받아 그 돈으로 수에즈운하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 / ‘지정학’ 편 중에서 156p

 

 

  그 어떤 노력도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순리를 생각하게 하는 6장 기후 편은 특히 인상적이다. 자연재해와 이상기후가 역사상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자세와 미래의 자연환경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대목이라 큰 의미가 있다. 끝으로 마지막 장에서는 비단, 차, 도자기, 향신료, 금 등의 상품이 어떤 방식으로 동서양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또 하나로 연결하기도 하는지 살펴본다.

 

 

 

마야 문명의 쇠퇴 원인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가 복합적일 가능성도 있다. 대규모 파괴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기후 변동을 축으로 한 복합적 요인이 가장 타당성이 있다. 8세기 후반부터 40년간 서서히 건조화가 진행되다가, 810년 무렵을 경계로 상황이 급변하여 9년간 여섯 차례나 심한 가뭄이 덮쳤다. 그 후 비교적 평온한 시기가 42년간 이어지다가 3년 동안 비가 적게 내렸다. 다시 별 탈 없는 시기가 47년간 이어졌고, 이후 910년부터 6년간 세 차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다가 고전기 마야 문명은 종언을 맞는다. / ‘기후’ 편 중에서 213p

 

 

영국은 인도의 면직물, 중국의 차와 도자기 등을 계속 수입해야 했는데, 여기에서 수출할 만한 자국 상품이 없다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였다.

모직물 제품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기후가 다른 인도나 중국에서는 수요가 전혀 없어서, 영국은 어쩔 수 없이 은을 대금으로 치러야 했다.

하지만 은의 일방적인 유출이 계속된다면 국고의 파산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영국은 인도를 식민지화하고 중국에 아편을 밀매하기 시작했다. / ‘상품’ 편 중에서 256p

 

 

 

 

 

 

   이렇듯 7가지 테마를 통해 세계사를 가로지르듯 살펴본 책은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사소한 실수에서 비롯되었고 또 거대한 흐름 앞에서 흥하고 무너져갔는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시도였다. 다만 현미경 보듯 세밀한 부분까지 설명하지 않는 비어진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가 채워나가야 할 숙제로 보인다. 사전 지식이 없다면 어렵게 읽혀질 만한 부분도 다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대한 세계사를 이렇게도 공부할 수 있구나, 새로운 접근법에 따른 방향성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는 분명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특히 책의 앞장에 부록으로 수록된 간추린 연표는 동시대에 지역별로 어떤 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졌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으니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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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천천히, 북유럽 - 손으로 그린 하얀 밤의 도시들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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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작가 리모의 손끝에서 생생하게 살아난 북유럽의 풍경과 정취들!

북유럽과 드로잉 여행이 만나 더욱 특별해진 마법 같은 여행에세이! 

 

 

   신랑이 울상인 얼굴을 하고서 한숨을 토해낸다. 어찌된 영문인지 지난달에 다녀온 강원도 여행의 동영상이 죄다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 거기에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해의 마지막 순간과 새해 설산의 풍경이 담겨 있었는데. 마치 기억에서 사라져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 두 사람은 허무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여행은 찰나와도 같아서 무엇으로든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무심코 흘러가버린다. 너무나 기억해야 할 것도, 기억하고 싶은 것도 많은 우리는 그래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린다.

 

 

 

   여행 드로잉 작가 리모의 책 『혼자, 천천히, 북유럽』에는 북유럽의 풍경이, 정취가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 페이지 곳곳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국의 거리 위에서, 대자연의 거대한 시간 앞에서, 낯선 이의 작은 미소와 사소한 눈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손끝으로 기록해둔 그의 여행은 유난히 더 특별해 보인다. 그의 펜 끝에서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오늘의 이 새로운 순간과 마주함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그래서 그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무척이나 행복한 일인 듯하다. 덕분에 독자로서는 사진이었다면 무심코 흘려버렸을지도 모를 장면들까지도 그 생생함에, 섬세함에 집중하게 된다. 아주 특별한 여행을 그와 함께 한 것처럼.

 

 

 

 

 

 

부지런히 기록한 그해 여름은

그저 그런 일상에 큰 위로가 되었다.

 

 

   『혼자, 천천히, 북유럽』의 리모 김현길 작가는 삼성전자 소프트웨어 연구원으로 재직하다 ‘그리는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 여행 드로잉을 강의하며 베테랑 여행 작가로 거듭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이 책은 그가 한 달 동안 북유럽의 대표 도시인 핀란드와 스웨덴, 노르웨이와 덴마크 등지를 돌아다니며 손끝으로 남긴 섬세한 기록들을 차분하게 쓰인 글과 함께 엮은 결과물이다. 여행을 하며 직접 보고 겪은 소소한 일상 같은 이야기에서부터 각 나라의 역사 혹은 문화에 얽힌 이야기까지.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실망하기도 했던 그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들은 아득하기만 했던 북유럽의 이미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여행 전과 여행 후에 인상이 달라지는 도시가 있다.” / 25p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으로 가득한 나라, 개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강력한 복지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며 국가청렴지수 또한 세계 Top3를 놓치지 않는 선진국, 질투가 날 정도로 부러운 점이 많은 나라 핀란드. 그 중에서도 수도 헬싱키 하면 세련되면서도 어쩐지 조금은 깐깐하고 새침할 것 같다. 하지만 작가는 헬싱키를 둘러보면서 상상한 것보다 훨씬 소박하고 따뜻한 곳이었다고 말한다. 어디든 깨끗한 거리와 주요 관광지인 데도 불구하고 각자의 일상을 찾아 저녁 6시에 문을 닫는 노점, 소박하지만 친근한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들. ‘런던이나 파리 같은 도시가 한껏 멋을 부린 귀부인이라면, 헬싱키는 꽃다발을 든 소녀의 순박한 웃음과 같았다’는 그의 표현이 참 어울리는 곳인 듯하다.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본 이들이라면 모두 알겠지만 헬싱키에는 영화의 실제 배경이 된 식당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영화 속 카모메 식당은 촬영 이후에 핀란드인에게 인수되었고, 그 후 ‘카빌라 수오미’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한동안 운영되었다가 현재는 일본인이 인수하여 다시 ‘카모메 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영업 중이라고 한다. 작가는 영화 속 등장인물인 사치에의 흔적을 좇아 식당을 찾아간다. 빗속을 걸어 마침내 갈매기 한 마리가 그려진 파란 간판을 발견했지만 내부는 리모델링 되어 있어 영화 속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게다가 메뉴판에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오니기리도 보이지 않았고 현실의 카모메 식당은 생각했던 모습이 아니어서 당혹스러웠다고. 아마도 많은 이들이 영화 속의 카모메 식당을 찾으러왔다가 적지 않게 실망을 안고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또한 여행의 묘미이리라. 상상했던 것과는 다를 때 혹은 달라졌을 때 다가오는 실망감을 받아들이고 현실의 이미지를 다시 나에게 덧입히는 것, 그 또한 경험을 해봤을 때만 가능한 것일 테니까.

 

 

 

저 멀리 처음에 떠나왔던 헬싱키의 구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구름이 사라진 청명한 사늘 아래로 핑크빛 석양이 비스듬히 쏟아지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몹시 차가웠지만, 갑판 위에서 헬싱키 도심의 뽀얀 풍경이 석양에 물드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황홀한 그 풍경은 마치 어린 소녀의 두 뺨에 발그레 피어난 홍조 같았다.

핀란드 사람들이 이해가 됐다. 긴 투쟁의 역사 속에서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 핀란드, 수오멘린나에서의 하루 편 중에서 48p

 

 

여행을 하면 하루의 목표는 단순해진다. 현지인에게 말 한마디를 거는 사고한 일에도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고,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아닌 이곳의 낯선 음식을 먹는 것 그 자체가 하루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숨 가쁘게 다가오는 순간들에 집중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먼 미래에 대한 염려는 잠시 설득력을 잃는다.

지금의 여정이 모두 끝나기 전까지는 너무 멀리 있는 시간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실체가 없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여행은 어쩌면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다시 배우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닐까. / 핀란드, 잘카사리의 백야 편 중에서 85p

 

 

 

   여러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유독 동상에 얽힌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 것은 왜일까. 바로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마주한 <아이언 보이>라는 미니 동상과 덴마크 코펜하겐 시청사 앞의 안데르센 동상, 게피온 분수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어공주 동상이다. 다소곳이 다리를 모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 높이가 14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작은 몸집에서 어딘가 애잔함이 느껴지는 <아이언 보이>. 오래전 스톡홀름항 부둣가에는 선박의 짐을 나르며 연명하던 고아가 있었는데, 고된 노동과 배고픔에 시달리다 감라스탄의 차갑고 허름한 골목 어딘가에서 끝내 숨졌다고 한다. 이 청동상은 그처럼 안타깝게 스러져 간 부둣가의 아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라고 하는데, 작가가 그린 그림의 필체 때문인지 자그마한 아이의 고단함과 쓸쓸함이 가슴에 더 크게 사무치는 듯하다. 세계적인 동화작가의 생애치고는 너무나 외롭게 살아갔던 안데르센의 동상도, 가녀린 외모의 동상이 사회적 의견 표출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인어공주의 동상도 다르지 않다. 마치 우리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 동상이 생각나서 그런 것일까.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검을 든 기사의 시선이었다. 그는 쓰러져 있는 용을 바라보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 너머의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는 긴박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리는 행위는 대상을 깊이 관찰하게 된다. 오랫동안 느슨히 바라보자 어느 순간 이해되는 것이 있었다. 성 조지의 어색한 시선은 눈 앞의 작은 승리에 취하지 않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의 시선은 어쩌면 더욱 멀리 뻗어 나갈 스웨덴의 미래에 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 스웨덴, 성 조지와 용 편 중에서 137p

 

 

좀 더 멀리 시선을 옮기자 올레순을 둘러싼 산맥과 바다가 보였다. 서쪽으로부터 힘차게 뻗어 오던 산맥은 바다를 만나 기나긴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고, 그 뒤에 아득하게 놓인 수평선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 서정적인 도시가 대화재로 인한 폐허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잿더미 위에 다시 피어난 아름다운 꽃. 떠나는 아쉬운 발걸음에서 올레순의 이미지는 그렇게 각인되었다. / 노르웨이, 아르누보의 도시 편 중에서 242p

 

 

이 동상은 잔인하게도 온갖 수난을 겪어야 했다. 몸체에 비키니가 그려지거나 때로는 페인트 세례를 맞기도 했고, 팔이 절단되거나 머리가 잘린 채 도난당한 적도 수차례였다. 심지어 2003년에는 폭파 당해 동상이 바다로 추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덴마크 정부는 굴하지 않고 인어공주를 매번 부활시켰다.

가녀린 외모의 동상이 사회적 의견 표출의 희생양이 되어 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수난의 역사를 알게 되자 동상의 움츠린 어깨와 아래로 떨어뜨린 시선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어쩌면 수년 후 코펜하겐을 다시 방문했을 때, 지금의 것이 아닌 새로운 동상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동상이 다치질 않길 바라며, 지금의 인어공주를 잊지 않기 위해 스케치북과 펜을 꺼내 들었다. / 덴마크, 풍요의 여신과 비운의 공주 편 중에서 306p

 

 

 

 

 

 

   수백 미터의 아찔한 절벽 위로 아슬하게 튀어나온 암반에서 홀로 서 있는다는 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책을 펼치다가 나도 모르게 흡, 하고 숨을 들이켠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노르웨이 트레킹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트롤퉁가다. 북유럽여행의 원탑이라고 불린다던 바로 그곳이다. 빙하가 만든 짙고 푸른 호수와 장엄한 절벽 그리고 고원지대의 만년설이 함께 펼쳐져 있는 대자연의 신비 앞에서 작가의 가슴은 얼마나 크게 방망이질 쳤을까. 트롤의 혓바닥이라는 이름답게 깎아지른 듯한 좁디좁은 암반 위에 단독자로 서본 사람이라면, 서기 전과 선 후의 나는 어쩐지 많이 달라져있을 것 같다. 아니, 잘 익은 소면처럼 다리가 흐늘거렸다던 그의 표현이야말로 웃음이 나지만 보다 더 진실에 가까울지도.

 

 

 

암반 끝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공포는 더욱 강렬해졌다. 평소에 고소공포증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극한의 상황에 처해 보지 못해서였다. 좁디좁은 암반 위에서 잘익은 소면처럼 다리가 흐늘거렸다.

인생의 고비를 넘긴 후 트롤퉁가가 잘 보이는 평평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 가방에 넣어 두었던 점심을 꺼내 먹었다. 오랜 산행으로 다리는 무거웠지만, 기분 좋게 번져 오는 성취감에 자꾸만 웃음이 났다. 가방 속에서 펜과 물감을 꺼냈다. 오래도록 잊지 못할 이날의 기억은 그렇게 소중한 한 장의 기록이 되었다. / 노르웨이, 트롤의 혓바닥 편 중에서 269p

 

 

 

 

 

 

   선 하나하나에 담긴 감각을 따라 그의 여행을 함께 쫓아가는 독서 여정은 사진보다 오히려 몰입도가 높아서 아이러니하게도 더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그래서 굳이 다시 사진으로 찾아보는 수고로움은 하지 않았다. 그냥 그의 드로잉 자체를 즐기고 그 풍경을 마음에 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또 다른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된다면 그때도 기꺼이 당신의 책을 찾아보겠노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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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한국통사 - 다시 찾는 7,000년 우리 역사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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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교과서의 오류와 역사왜곡에 대한 문제를 전면에 드러내다!

여러 번 거듭 읽어봐도 부족하지 않을 우리 역사 바로 알기를 위한 역사책!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고 일본으로 간 존 카터 코벨 교수는 무엇 때문에 한국의 학계는 그렇게 소극적인가?... 남한의 젊은 학도들이 박차고 일어나 진실을 밝혀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일본 고대미술이 모두 한국에서 건너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남한 역사학자들은 오히려 이를 거꾸로 설명하고 있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덕일의 한국통사의 저자 이덕일 역시 우리의 역사는 중화 사대주의 관점과 친일 식민사관이 혼재된 노예의 역사관이 아직도 득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특히 현재의 남한 강단사학의 역사 서술 태도의 문제점을 강조한다. 일본인과 중국인의 시각으로 한국사를 서술하면서 이를 보편성이라는 말로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조선상고사에서 단재 신채호는 지금까지 조선에 조선사라고 부를 수 있는 조선사가 있었는가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라고 했을까.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그가 안다면 지하에서도 탄식하고 있지 않을까.

 

 

 

 

 

 

이제 우리는 국사를 제대로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역사학자로서 사료에 대한 철저하고 세심한 고증, 대중과 호흡하는 집필가로서의 본능적인 감각과 날카로운 문체로 한국사에서 숨겨져 있고 뒤틀려 있는 가장 비밀한 부분을 건드려왔던 이덕일의 신작이다. 오랫동안 한국사의 통념에 정면 도전하는 역사서와 강단사학의 주류를 이루는 식민사학을 해부하는 책들을 펴낸 까닭에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반대파와 찬성파가 팽팽하게 맞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노론사학이 신민사학과 한몸이 되어 횡행하고, 중국의 역사공정에 의해 실재했던 우리 역사마저 축소되는 현실 앞에서 대중에게 우리의 역사를 바로 보는 시각을 전달하려는 그의 노력이 더욱 의미 있어 보인다. 이덕일의 한국통사는 바로 서기전 4,500년경에 성립했던 홍산문화에서 1910년 대한제국 멸망기까지 식민사관과 소중화주의에 의해 숨겨지고 뒤틀려 있던 역사를 바로잡고, 있는 그대로의 한국사를 다시 찾아내기 위한 그의 노력이 집대성된 역작이다. 오히려 한 권으로 집약된 것만으로는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고증과 서술, 300여 컷에 달하는 화려하고도 정밀한 도판으로 그간 우리가 알고 있었던 혹은 국사책 속의 역사관에 갇혀 있던 우리의 지식에 경종을 울린다.

 

 

 

   저자 이덕일이 지적하는 중화 사대주의와 친일 시민사학의 문제점은 국조단군 부인설’, ‘낙랑군=평양설’, ‘임나=가야설로 축약된다. 평양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조선 총독부의 낙랑군=평양설은 이병도·이기백이 주장한 낙랑군=대동강설과 같은 내용이다. 가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주장은 임나일본부설로서 다른 말로 임나=가야설이라고도 한다. 책은 첫 장에서부터 이와 같은 주장에 어떤 오류가 있고 어디까지 왜곡되어 있는지를 해부해봄으로써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각종 사료와 고증을 통해 이를 바로잡으려 한다. 다만,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민족 형성의 중심을 이루는 요하문명과 홍산문화를 거쳐 고조선과 열국시대에 이르기까지를 다룬 1장과 2장은 다양한 견해 속에서 가장 타당한 근거를 따라가는 과정인 까닭에 읽는 속도도 더디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다. 이는 그만큼 중화 사대주의와 친일 시민사학 중심이었던 우리의 국사 학습이 얼마나 모호하고 축소되어 있었던 것인지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겠다.

 

 

 

고조선은 중국의 제후국과 같은 거수국을 거느린 황제국가였다. 그래서 황제의 계승자를 태자라고 청했다. 또한 비왕 장의 경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고조선 국왕 아래 여러 왕들과 여러 재상들이 있었다. 고조선은 우수한 청동문화를 가지고 있었는데, 고조선의 다뉴세문경은 21센티미터 지름의 크기에 13,000개의 원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현대 과학기술로도 재연하기 어려운 것이다. 고조선인들의 청동제작 수준은 청동기를 사용하던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고조선인들은 우수한 청동문화를 철기 문화로 발전시켜서 서기전 5세기경에 이미 철기사용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그간 국사교과서에서 연나라에서 온 위만이 철기 문화를 가져왔다고 서술한 것은 일제가 만든 한국사 정체성론에 따라서 우리의 독자적인 철기 문화 생산능력을 부인하기 위함이다. / 61p

  

평양을 지금의 평양으로 보든, 민족사학계 일부의 견해대로 요녕성 요양으로 보든, 북한학계처럼 요녕성 봉황성으로 보든 이 명령은 공수부대가 아니면 완수할 수 없는 명령이다. 수나라 육군이 어떻게 황해도나 강원도로 먼저 왔다가 북상해서 평양이나 요양으로 간다는 말인가? 그래서 일찍이 성호 이익, 석주 이상룡, 단재 신채호 등이 모두 이 진격로를 근거로 한사군은 고대 요동에 있었다고 본 것이다. / 176p

  

 

  이 중 임나=가야설이 어불성설인 이유는 무엇보다 명확하다. 저자는 그간 임나 강역이 일본인들에 의해 계속 확대되어간 것을 예로 꼽는다. 삼국사기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장하면서 임나=가라는 지금의 김해 일대로 한정되었던 것이 총독부의 이마니시 류는 김해는 남가라라면서 임나일본부를 다스리는 치소는 경북 고령에 있었다고 하여 경북까지 확대시켰다. 또 조선총독부와 경성제대에서 근무했던 스에마츠 야스카즈는 임나가 경상남북도는 물론 충청도 일부와 전라남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확대시켰을 정도였다. 이렇듯 학자들에 따라서 임나 강역이 고무줄처럼 늘어난다는 사실은 임나가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힐 사료가 없다는 고백에 다름 아닐까.

 

 

 

   더욱이 저자는 야마토왜가 백제의 제후국이었다는 사실까지 일본서기에서 찾는다. 일본서기<서명> ‘11(639)’조에 따르면 큰 궁전은 백제궁, 그 근처를 흐르는 강은 백제천이라고 불렀고, 왜왕의 빈소를 백제대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71년 발견된 무령왕릉지석은 황제의 죽음을 뜻하는 붕으로 썼다. 또한 그 관을 짠 목재는 한반도에서는 나지 않는 일본산 적송이었다. 황제의 죽음에 제후국에서 관재를 공납한 것이다. 이는 야마토왜가 백제의 제후국이었음을 증명하는 바이다. 메이지시대 일본인들은 이를 거꾸로 뒤집어 왜를 백제의 상국으로 만드는 역사왜곡을 단행했는데, 이렇듯 명백한 근거가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남한 강단사학은 아직도 그들의 논리에 따라 역사왜곡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노릇이다.

 

 

일본 열도의 조선식 산성_

(중략) 백강 전투에서 패한 백제인들은 신당연합군이 야마토왜까지 공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대마도와 일기도(이키시마)에 조선식 산성을 축조해 결사대를 배치하고, 이 두 성이 함락당하면 규슈의 후쿠오카 등에서 다시 결전을 하고, 이 성들도 함락당하면 수도인 나라 부근에서 결전하려 했다. 패전한 백제인들이 일본 열도 각지에 성을 쌓았다는 것은 야마토왜가 백제의 제후국(담로)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신당연합군이 야마토왜까지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의 고안성 등이 701년에 폐성된 것을 비롯해 점차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일본 열도 곳곳에 남아 있는 조선식 산성과 신롱석식 산성은 본국을 빼앗긴 백제인들의 한과 집념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유적들이다. / 189p

  

 

  <이덕일의 한국통사>를 쭉 읽다보면 흥망과 성쇠의 역사적 순간을 곧잘 마주하게 된다. 특히 당나라로부터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국력을 크게 떨쳤던 발해의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서 11대 대이진부터는 왕의 시호조차 전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고구려의 후신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고구려의 옛 강역을 상당 부분 회복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등 천자의 제국으로 우뚝 서려고 노력했음에도, 신라 중신 사고에 젖어 조선 후기 유득공이 남북국 시대라는 인식으로 발해고를 쓰기 전까지는 우리 역사에 포함시키지도 못했다는 것은 더욱 통탄할 만한 일이다.

 

 

 

   세종 역시 분명 우리 역사에 있어 위대한 업적을 이룬 성군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에게도 명암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는 많이 않을 것이다. 조선의 태종이 민간에서 태어나 온갖 신선스런 경험 끝에 왕위에 오른 데 비해서 세종 이도는 태생부터 왕실의 일원이었던 까닭에 신분제를 하늘의 법칙으로 여기는 그릇된 시각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세종은 나라는 군주와 사대부가 함께 다스리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되었고, 수령고소금지법(역모와 불법살인이 아닌 한 수령을 고소할 수 없다)과 부왕의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종부법을 다시 종모법으로 되돌림으로써 시대에 역행하는 신분제를 지속하게 한 것은 참 애석한 일이다.

 

 

 

 

 

 

   이 외에도 책은 우리가 기존에 국사교과서나 다른 역사서를 통해 익히 배우고 알고 있었던 역사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 사료와 구체적인 증거를 통해 합당한 주장을 펼친다. 이를 테면 진평왕의 셋째공주이자 서동요로 잘 알려진 선화공주가 백제의 무왕에게 큰 절을 지어달라고 요청하여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익산의 미륵사가 실은 익산 지역 호족 사택씨의 딸에 의해 지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심지어 진평왕의 큰 딸 덕만이 27대 선덕여왕이고, 둘째 천명은 태종무열왕의 어머니라는 것과 달리 셋째 딸이라던 선화공주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오지도 않는다.

 

 

 

   고종 23년부터 38년까지 16년에 걸쳐 판각된 팔만대장경에 대해 우리는 그간 이규보가 <대장각판군신기고문>에 몽골의 침략을 불력으로 물리치고자 하는 염원에서 판각했다고 쓴 것 때문에 그렇게 해석해온 것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민영규 교수가 <고려대장경 신탐>에서 무신정권이 불교계를 포용하기 위해 대규모 불사를 조직한 것으로 본 것이 일리가 있다는 것이다. 현종 때 만든 초조대장경이 고종 19(1232) 몽골군의 침략 때 붙타버리자 다시 각판한 것이 팔만대장경인데, 여기에 큰 힘을 보탠 것이 집권자였던 최우였다. , 최우는 무신정권에 대한 불교계의 반발을 누그러뜨리고 불교계를 포용하기 위해 대장경을 판각했다는 저자의 말에 더욱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이이가 주장했다던 십만양병설의 경우, 김장생이 스승 이이를 임란을 예견한 충신으로 떠받들고 남인 여수 류성룡을 격하시키려는 악의에서 나온 거짓말이었다는 것 또한 그러하다.

 

 

 

단재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에서 이를 조선 역사상 1,000년 내 제1대 사건이라면서 고려 전통의 낭·불 양가 대 유가의 싸움이며, 국풍파 대 한학파의 싸움이며,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라고 규정지었다. 묘청의 봉기를 고려 전통의 자주적 낭불사상 대 사대주의 유가의 싸움으로 본 것은 탁월한 해석이다. 비단 이 사건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에서 사대당이 승리한 경우가 많은데, 이는 사대주의 사상의 극심한 폐해의 뿌리를 이 싸움으로 본 것이기 때문이다. / 250p

  

조공과 회사_

우리는 고려와 조선이 명나라에 일방적인 사대를 하고 조공품을 바친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실상은 전혀 다르다. 조공이란 제후국이 황제국에게 일방적으로 바치는 진상품이 아니었다. 제후국이 조공을 제공하면 황제국은 회사로 답해야 했다. 조공은 일방적으로 물품을 바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물품을 주고받는 상호적인 관계였다. 조공이란 또 일종의 국제무역행위였다. 명 태조 주원장은 공민왕 22(1373) 고려에 국서를 보내 3년에 한 번 조빙하라는 31공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고려에서 1년에 세 번 조빙하겠다며 13공을 요구했다. 명나라는 고려의 사신들을 일종의 간자로 보아 3년에 한 번만 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고려는 조공 무역의 이득이 많았기 때문에 1년에 세 번 가겠다고 요청했던 것이다. (중략) 형식적으로는 명나라를 정점으로 하는 조공체제였지만 내용적으로 국가 간 무역의 이익을 차지했던 실리외교였다. / 309p

  

훈민정음의 이런 장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크게 퇴보했는데, 일제는 1912년에 보통학교용 언문철자법을 만들면서 아래아를 폐지하고 받침에서도 한 글자 받침 , , , , , , , 일곱 개와 두 글자 받침 ?, ?, ?세 개 등 모두 열 가지만 인정했으며, 설음 자모 , 등과 , , , 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는 등 훈민정음의 발음체계를 크게 제한했다. 1930년에는 조선총독부에서 직접 언문철자법을 만들면서 표현 가능한 발음을 대폭 제한했고, 여기에 ·이 어두에 오면 ‘o’으로 발음하게 한 두음법칙 같은 비언어적 규제가 더해지면서 우리 발음체계가 크게 퇴화했다. / 341p

 

 

 

 

  

   신채호는 역사를 아와 비아와의 투쟁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정치가이자 역사였던 양계초는 학문의 가장 크고,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며, 국민의 밝은 거울이고, 애국심의 원천이라고 했다. 연구성과가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북한 역사학자들은 1963년경까지 일제 식민사관의 주요 이론구조를 해체하고 자국의 관점으로 보는 새로운 역사관을 확립시켰다. 중국은 자국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역사 서술의 확고한 원칙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 광복 후 70여 년이 훨씬 넘도록 신민사학이 여전히 주류로 행세할 정도로 친일 카르텔은 청산되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는 순수한 고대사 논쟁이 아니라 첨예한 현대사가 되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를 견제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내내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만큼 철저히 지배층의 논리에 왜곡당하고 이용당해왔던 역사가, 백성들의 삶이 뼈아프게 느껴진 까닭이다. 처음에 이 책을 펼쳤을 때만 하더라도 마치 국사 공부를 하는 듯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보니 국사란 암기를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흐름으로 흘러왔고 또 그것이 당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또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소 두터운 감이 있어서 읽기를 주저하는 분들이 있다면 꼭 이 책만큼은 읽어보시라 추천을 드리고 싶다. 한 번이 아니라 거듭 또 거듭 읽어도 부족함이 없을 책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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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간호사 - 가벼운 마음도, 대단한 사명감도 아니지만
간호사 요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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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도, 대단한 사명감도 아니지만

오늘도 자신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생생한 이야기!

 

 

   아이를 키우다보면 평소에 잘 가지 않던 병원을 부득이하게도 자주 가게 된다. 첫째 아이가 태어난 지 1년 쯤 되었을 무렵, 모세기관지염으로 인해 병원에 사흘 동안 입원을 했다. 꼭 정확히 1년이 지난 그 다음 해에도 같은 이유로 입원을 해야 했다. 병원에 입원을 하고 있다 보면 수시로 수액을 체크하고, 주사를 놓고, 약을 가져다주며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는 건 간호사 선생님들이었다. 출산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낳는 과정 내내 옆에서 응원해주고, 아이를 수월하게 낳을 수 있게 도와주고 마지막까지 고생하셨다고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준 이들도 그들이었다. 결코 의사를 폄하하려는 의도로 하는 말이 아니다. 병원 곳곳에서 간호사 선생님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고, 환자의 상태와 안부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크하는 것도 그들인데, 생각보다 간호사에 대한 사회적인 처우와 예우가 부족한 듯해서다.

 

 

 

   나만 하더라도 주변에 간호사인 지인이 여럿 되는데, 그들은 늘 잦은 근무시간 변경과 3교대 근무, 엄격한 병원 내의 위계질서와 항상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몸에 긴장이 바짝 서있다. 그나마 개인 병원에서 근무하는 다른 친구는 일은 편한데, 함께 일하는 수간호사 선생님 때문에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라고 토로한다. 이 한 사람 때문에 간호사들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원장이 쉽게 내치지 못하는 이유는, 정말 일을 잘하기 때문이란다. 인간의 생과 사를 다투는 이 위험천만한 현장에서도 이렇게 복잡한 속내는 존재하기 마련인가보다. 겉으로 보기엔 의사나 간호사하면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하고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가치 있는 직업이지만, 이렇게 실상을 들여다보면 체력적이나 정신적으로 웬만한 멘탈로는 버티지 못할 정도로 ‘극한 직업’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간호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

 

 

   어느 덧 대학 병원 5년 차 간호사인 그녀. 왜 간호사가 되고자 했는지 뚜렷한 이유가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간호사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병원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어려운 근무 환경을 버텨낸 자신의 이야기가 신입 간호사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기를 바라며 『어쩌다 간호사』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가 쓰고 그린 간호사의 일상은 드라마나 영화 속의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이른바 ‘격공’을 불러일으킬 만큼 리얼해서 간호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산전수전 다 겪은 엄격한 선배 간호사에 수시로 콜 벨을 눌러 분노를 끓어오르게 하는 할아버지 환자는 물론, 그만 둬 버릴까 하루에도 수십 번 자괴감에 허덕이는 간호사의 시선이 실감나게 녹아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직업에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는 게 아닐까? 그냥 즐기면서 부담 없이 일하면 되지 않을까? 보람을 느끼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어.”

하지만 병원은 내가 나에게 바라는 것보다 더 큰 걸 요구하고, 숨이 꼴딱 넘어가기 직전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부담 없이 일할 수는 없다. 그러니 보람, 그거라도 있어야 버틸 것 같은데…. / 43p

 

 

지켜야 할 선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고 안다고 해서 넘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순간에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 울어버린 적도 있었다. 더 냉정해져야 할 필요도 있다고 나를 채근해보지만 그게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까지 차가워져야 하나 싶어 회의감이 든다. 익숙해지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 영영 풀 수 없는 문제 같다. / 129p

 

 

 

 

 

 

 

   책 속의 갖가지 에피소드들은 간호사들의 짠내 나는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근무환경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간호사가 아니어도 직장 생활을 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이른바 기승전 혼남이라고 할 수 있는 ‘태움(직장내에서의 갈굼)’을 비롯하여 기존 업무 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일일이 병원 내 물품의 개수까지 하나하나 체크해야 하는 것하며 ‘환타(환자 탄다)’나 ‘떡 먹으면 떡친다(일이 많고 힘들다)’는 그들만의 언어까지. 덕분에 한편의 시트콤까지 재미있으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씁쓸한 그들의 사정에 간호사들의 노고를 조금 더 생각하게 된다. 아, 다음에 또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면 그때는 수액을 걸어놓는 폴대는 항상 제자리에 두고, 환타나 떡 선물은 하지 않겠노라는 다짐도 하며.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대단하고도 투철한 직업정신이 있어서라기보다 생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어쩌다 보니 일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매일 이 길이 맞는 것인지 의심하고, 또 다른 길은 없는지 둘러보기도 하고, 그러다 결국 제자리를 지키기로 마음먹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일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이 굴러가고 유지되는 것이다. 더 이상 간호사가 된 뚜렷한 계기나 이유가 떠오르지 않지만 ‘어쩌다’ 간호사가 되어 ‘어쨌든’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처럼 말이다. 비록 간호사의 일상과 환경을 다룬 이야기기는 하지만 오늘도 최선을 다해 어디에선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불태우고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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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 - '글밥' 먹은 지 10년째, 내 글을 쓰자 인생이 달라졌다
이하루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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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하게만 느껴졌던 내 일상을 글로 쓰는 순간, 쓸 만한 삶이 되었다!

글로 쓰일 인생은 따로 있다고, 글 쓰는 재주는 없다고 믿는 이들에게 권하고픈 ‘쓰는’ 삶의 즐거움!

 

 

   “이런 것도 소설이라 할 수 있나?”

   문예창작학과 선배들이 주도하는 글쓰기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발표한 나의 소설은 난사 수준의 총질을 당하고 말았다. 충격적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야금야금 팬픽을 쓰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나는 남들 공부하는 고3 때도 몰래 소설을 써 연재를 하고 마침내 연애소설이라는 장르의 책 두 권을 출간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 그건 오히려 독이 되었다. 문예창작학과에 지원하기 위해 입학한 대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전공 수업이 시작도 되기 전에 학과 선배들을 알게 되었고, 글을 써봤다는 자부심에 덜컥 동아리 입회 첫 날에 소설을 써 발표했다가 소설 같지도 않은 걸 써왔다고 대차게 까인 것이다. 여긴, 그러니까 정통 문학을 하는 곳이지 장르 소설을 쓰는 곳이 아니었던 거다. 이때의 충격으로 나는 속으로 이를 부득부득 갈며, 내가 당신들 보다 더 잘 쓴다는 걸 증명해보이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온갖 독설로 수업 시간을 겨울왕국 급으로 만들어버리는 소설가이자 소설 창작 전공 교수님에게서 “너 글 좀 써 봤지?”와 같은 칭찬을 들으며 제대로 눈도장을 찍어버린 것이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면 참 통쾌하고 지금쯤 번듯한 소설가라도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사실 나는 그 이후로 문학이라는 것을 알아 가면 알아 갈수록 글을 쓰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쓸 수 있는 글이란 게 드라마 형식의 장르소설인데, 학교에서는 최대한 정통 문학에 가까운 소설을 써야한다고 배우고 있었으니, 이내 글은 정체성과 함께 힘을 잃어갔다. 그때부터 급격히 글을 쓰는 일에 흥미를 잃어버린 나는 졸업을 한 이후로 단 한 줄의 글도 쓰지 않았다. 책이 좋아서 출판사를 다니고, 서점에서 근무하며 파는 일도 해보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마치 봉인이라도 한 것처럼 글쓰기를 철저히 외면했다.

 

 

 

   그러다 다시 나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보기 시작한 건, 첫째 아이를 낳고 3년이 지난 뒤였다. 육아 외에는 이렇다 할 취미도, 적당한 스트레스 해소법도 찾지 못하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우연히 한 출판사의 블로그에서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읽고 지원했다가 첫 시도 만에 덜컥 선정이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서평단은 소설책만 읽던 지독한 책편식가인 나를 다양한 장르의 책으로 인도해주었고, 특정 날짜까지 서평을 써야만 한다는 의무감은 오히려 어떻게든 글을 쓰게 만들었다. 거기에다 작품을 쓰듯 잘 써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책을 읽고 난 뒤의 진솔한 감상과 견해를 쓰면 되었기에 부담을 덜고 나니 뜻밖에도 글을 쓰는 게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요즘 나의 남편은 언젠가 내가 다시 자신의 글을 쓸 수 있기를, 또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겠노라는 말을 곧잘 한다. 과연 내가 예전처럼 나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상상’하고 ‘창작’하는 즐거움으로 글을 쓰던 사람이라서, 지난 시절만큼 예민한 감수성으로 글을 쓸 수 있는 나이도 지났고 이렇다 할 글감이나 영감도 떠오르지 않다보니 다시 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쉬이 들지 않는 까닭이다. 이렇다 할 일이라곤 없이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고, 집안일만 하는 반복된 이 삶에 무슨 ‘쓸 만한 일’이 있을까 해서 말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를 읽으면서 나와 같은 84년생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쭉 쓰는 일을 해왔지만 정작 자신의 글은 써본 적이 없던 저자 역시 이런 질문과 마주했다고 한다. 그녀는 이렇게 운을 뗀다. “‘쓸 만한 삶’이 어떤 삶이 궁금해졌다. 어른이 된 지 16년이 지난 지금, 나는 답을 찾았다. 쓸 만한 삶이란 쓰는 삶이다”라고. 세상 어디에도 그냥 시시한 삶은 없다고, 그저 아직 쓰지 못한 삶이 있을 뿐이라고.

 

 

 

 

 

 

 

쓰는 순간, 나의 하루는 쓸 만한 삶이 된다

 

 

   지난 해,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둘러보면 그 어느 해보다 에세이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나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에세이를 많이 읽은 해로 기억될 정도다. 그만큼 개인의 일상과 소소한 이야기로 대중과 소통하고 공감하려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때로는 뭐 이런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나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들도 많지만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내 하루도 에세이가 될까요?』의 저자 역시 자신의 책을 통해 ‘시시한 일상도 써보면 새롭다’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른이 된 후로 꾸준히 자신에게 실망해온 사람, 세상에서 내 삶이 제일 시시해 보이는 사람, 글로 쓰일 삶은 따로 있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하루도 에세이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상처를 이겨낼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내는 일이다. / 114p   

 

 

 

   그녀는 이제 ‘고민’과 ‘글쓰기’는 한 몸이라고 말한다. 요즘 많은 글쓰기 강좌에서도 ‘잘 쓰는 것’이 아닌 ‘잘 살기 위해 쓰는 것’을 목표로 하고, 과제 역시 대부분 나의 고민과 상처를 드러내게 만드는 주제를 준다고 한다. 하지만 겁먹을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저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패했던 분야가 있지 마련이고, 또 그런 경험을 하고도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가치 있는 이야기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그녀는 우리 모두에게 가감 없이 글로 옮겨보자고 제안한다. 누가 내 글을 읽겠어, 하고 단언하지 말기를.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텍스트가 될 테니 말이다.

 

 

 

   책은 가족, 직장, 관계 속에서 경험했던 소소한 일상들을 다룬 23편의 에세이와 그 에세이를 쓰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글쓰기 팁 23편이 번갈아 구성되어 있다. ‘힘 빼고 편안하게 쓰는 법’, ‘첫 문장에 쫄지 말 것’, ‘요약하는 글쓰기’, ‘초고는 밤에, 퇴고는 낮에’ 등 글쓰기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알려주려는 게 목적이 아닌, 처음으로 에세이를 써보고자 하는 이들을 독려하는 의미로 자신의 경험담에서 비롯된 팁을 알려준다. 덕분에 ‘이 정도라도 괜찮다면, 나도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지금까지 글을 써본 적은 없지만 한 번쯤 내 기록을 남겨보고 싶은 사람, 글재주를 타고나진 않았지만 어쨌든 쓰고 싶은 사람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작정 많이 읽고 쓰는 노력이 아니다. ‘내게 잘 맞는 글쓰기 방법’을 찾는 것이다.

- 나만 갖고 있는 글감

- 지치지 않고 꾸준히 쓰는 방법

- 내가 잘 쓸 수 있는 장르

내가 편안하게 쓸 수 있는 환경과 방식이 분명히 있다. / 26p

 

 

나는 글쓰기 초보자에게 ‘첫 문장’을 쓰느라 힘 빼지 말라고 권한다. 이야기가 매끄럽지 않으면 첫 문장이 아무리 좋아도 잘 읽히지 않는다. 때문에 첫 문장을 고민할 에너지로 ‘이야기를 끝내는 경험’을 늘리라고 하고 싶다. 글은 한 번에 완성되지 않는다. 퇴고를 반복할수록 글은 반듯해지고, 문장은 쓰고 지우기를 반복할수록 빛난다. / 46p

 

 

 

 

 

 

 

  도무지 특별한 일이 일어날 리 없는 이 평범한 일상에도 글감이랄 게 있다면 무엇일까, 생각하던 중 문득 그녀가 쓴 ‘친해지고 싶었어, 이 동네랑’ 편이 떠올랐다. “한겨울에 수영? 너 분명 하루 이틀 나가고 안 나간다!” 고 장담하던 남편의 말을 뒤로 하고, 그녀는 집과 5분 거리에 있는 수영장에 다니기로 결심했다. 평소 동네에 정을 붙이고 사는 일에 인색했던 그녀는 두 번째 전셋집으로 이사할 때는 꼭 먹고 자는 일 외에 다른 것을 해보리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게 수영장 등록이 될 줄은 몰랐지만. 수영 첫날, 쭈뼛쭈뼛 등록한 반에서는 또래 여자의 오지랖 섞인 뜨거운 입김에 놀라고, 늘어난 수강생으로 인해 대기 시간도 길어져서 혼잡하기도 했지만, 샤워장에서 손녀뻘 되는 젊은 아가씨와 할머님이 나누는 대화에 그만 웃음이 터져버렸다. 바로 그때, 그녀는 동네가 편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 역시 신혼 생활을 했던 집을 떠나 맞은편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참 정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워낙 상가가 많은 골목이라 뜨내기 손님들도 많고, 집 주차장에 상가 손님들이 주차를 해서 실랑이를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라, 괜히 여기로 이사를 했나 이내 후회가 들 지경이었다. 아마도 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끝내 이곳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떠나버렸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동네 산책을 좋아하는 첫째 아이가 낯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라, 어느 새부턴가 인근 상가를 비롯해 노점상 할머니들까지 죄다 알아보고 꼭 한 마디씩을 건네주셨다. 요구르트 판매원인 이모님은 저 멀리서도 아이를 알아보고 이름을 불러주시고, 과일 가게 할아버지는 꼭 귤 하나씩 쥐어주셨으며, 손에 우유를 쥐고 걸어가기만 해도 노점상 할머니들은 부러 아까운 비닐 봉투를 꺼내 넣어가라고 챙겨주시기도 하셨다. 덕분에 나는 동네를 나가기만 해도 인사를 나눌 사람이 생겼고, 안부를 건넬 어르신들이 생겼다.

 

 

 

   그러다 지난 주말, 둘째 아이가 잠든 사이에 첫째 아이가 사달라던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부랴부랴 편의점에 나섰다가 일요일인데도 나와 장사를 하고 계시던 할머니와 마주치고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그러고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어쩐지 아쉬워서 아이의 아이스크림을 계산하면서 따뜻하게 데워진 두유 한 병도 함께 사서 할머니께 건네 드렸다. 그때 민망해하면서도 연신 고마워하는 어르신의 얼굴을 보며 아, 이런 게 동네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정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간 우리 아이에게 건네주셨던 다정한 눈길과 한 마디에 대한 감사한 마음에 비하면 참 약소한 것이지만 말이다.

 

 

 

머지않아 ‘정착’이란 명사는 한 곳에 견고하게 머문 시간이 아닌 내 삶이 오간 모든 장소를 떠올릴 때 쓰일 수도 있을 것이다. / 55p

 

 

단점을 찾아내려는 시선을 유지하면 자칫 부정적인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될 만한 요소를 예민하게 느낀다는 점에서, 변화를 만드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글쓰기는 그럴듯한 문장을 나열하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가치를 깨닫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공유하는 일이다. 그 때문에 완벽한 문장이 아닌데도 사랑받는 글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가 깃든 경우가 많다. / 57p

 

 

에세이는 작가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르다. 화려한 문장으로 자신을 감추는 것보다 깨닫고 변화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편이 더 매력적이다. 일기가 아닌 ‘읽히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드러내야 한다. 진짜 나를.

글을 쓸 때는 내가 갇혀 있는 <트루먼 쇼> 속 세상에서 벗어나 하루 동안 진실만 떠들게 되는 <라이어 라이어>의 짐 캐리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남’을 의식하지 말고 ‘나’에 대해 진솔하게 써보자. 별 볼 일 없게 느껴지는 시시한 일상도 일단 그대로 옮겨보자. / 69p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하고 서평을 공유하다보면 세상에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쓴 글은 얄팍하고 초라해 보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오늘 내가 쓴 글이 초라해 보인다고 내일부턴 쓰지 않겠다고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완벽한 글이 아니어도, 하필 천재가 쓴 글이 내 글 옆에 있어도, 씩씩하게 쓰고 공유하자고 독려한다. 재능을 예단하고 포기하는 사람은 모른다고, 꾸준히 쓰는 사람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말이다. 그래, 뭐든 꾸준히 하는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다지 않는가. 글도 마찬가지다. 일기가 되었든 소설이 되었든 에세이가 되었든 짤막한 한 줄의 글이 되었든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한 거다. 나도 이렇게 뭐라도 쓰다보면 언젠가 진짜 내 글을 쓰게 될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그날을 위해 많이 연습해두자고, 그렇게 나를 응원하며 오늘도 열심히 읽고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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