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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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 탕! 총소리가 울렸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보지 않는 짙은 안개 속 케이블카에서 벌어진 살인사건과 웃는 시체. 침니랜드와 뉴아일랜드를 잇는 케이블카는 이제는 쇠약해져버린 침니랜드에서 뉴아일랜드로 향하는 노동자의 것이다. 서로를 안개 속의 도시라고 부르는 그 두 땅은 너무나도 다른 곳이라서 우리는 착각할 수 있다. 매코이의 고양이 애들레이드를 찾아 들어간 침니랜드의 골목을 보면서 더욱 단단하게 굳힐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냐. 노동자, 뒷골목... 그런 곳에 악이 싹트는 법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뉴아일랜드라고 다른가? 새로운 곳, 하늘로 곧게 뻗은 마천루. 그 곳에 숨어살던 대법관 코넬리와 같은 인물 혹은 수사반장 헐리 같은 그런 인물도 존재 가능한 법이다. 그 둘을 단순히 정의하면 권력욕이라고 해야겠다. 매코이의 퍼즐을 보라! 퍼즐은 결코 뉴아일랜드와 침니랜드의 악을 얘기하고 있지 않다. 골목을 굳이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 애들레이드의 무사귀환을 비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악을 똑바로 보라. 과연 무슨 악이 그토록 우리가 알고 있는 무섭다는 악보다 더 호소하고 있는지 말이다.

 총소리가 울렸다. 안개 속 몇 방울의 액체가 그 소리를 들었을까? 외로웠을지도 모르는 죽음의 순간에 시체는 마치 죽는 것이 행복하다는 듯 웃고 있었다. 피살자는 린지 루이스. 그녀는 고급 창녀였다. 알 수 없는 시체의 표정처럼 사건은 심리분석관인 라일라 스펜서와 정직 중이지만 실력 있는 형사였던 크리스 매코이도 사건에 합류해있지만 사건의 진상은 미궁 속에 빠진다. 그리고 이어지는 손을 쓰지 않는 연쇄 살인. 린지 루이스를 버린 아버지였던 대법관 코넬리는 자살한다. 요트에서 벌어지는 두 번째 살인사건의 피살자 신시아 영과 그녀의 언니인 캐롤라인 영과의 결혼식에서 신부의 총을 맞고 사망한 마이크 베르나르. 마이크 베르나르는 신시아 영을 강간한 적이 있지만 벌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드러나는 웃음의 정체와 용의자로 지목되는 벤자민 화이트. 그런데 크리스 매코이는 여전히 자신이 죽였던 악랄한 연쇄살인범 데니스 코헨의 짓이라며 그를 쫓는다. 수사는 이미 벤자민 화이트를 범인으로 보고 있지만 그는 안개가 깊게 쌓여있는 곳으로 데니스 코헨을 찾아간다.

 총소리가 부둣가에서 울렸다. 데니스 코헨의 총알을 견뎌내고 살아낸 크리스 매코이. 그러나 기억은 잘게 흩어져 바다에 수장 되듯 사라진 후였다. 그가 되찾은 기억 때문이었을까? 형사로 복귀했지만 징계와 정직을 되풀이했다. 데니스 코헨처럼 다중나선고리형 연쇄살인을 벌이는 그는 데니스 코헨일 것이다. 매코이는 그렇게 데니스 코헨을 쫓지만 데니스 코헨을 쫓으러 달리면 달릴수록 안개 낀 그 마지막 지점에서 보이는 것은 어쩐지 매코이 자신을 닮았다. 매코이는 총을 쏘았다. 데니스 코헨을 날려버릴 한 발의 총성을 울렸다. 매코이는 쓰러졌다. 치유 받지 못한 매코이의 기억은 결국 데니스 코헨이 된 자신을 사살하는 마지막 기억으로 위안 받았을까? 악이었다. 데니스 코헨이었지만 매코이였던 그 살인은 악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울고 싶은 것일까? 그 악을 용서하고 싶다. 누구 한 번 안아준 적 없는 내 품이라도 꼭 안아주고 싶은 악이었다. 두통이 일었다. 매코이는 상처 받은 자신의 머리를 위해 약을 먹었다. 고통을 줄여줄 약을 먹었다. 그 두통이 나에게로 전이된 것처럼 아주 경미하지만 잠시 숨을 돌릴 수밖에 없는 두통이 나에게 일었다.

 그 두통을 위해 나는 잠시 눈을 붙였다. 벤자민 화이트의 옛 애인 소피 파웰을 죽인 것은 벌을 받지 않은 벤자민 화이트의 자살을 위해서였다. 동정살인이었다. 미약한 두통은 가라앉았지만 용서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가라앉지 않았다. 겨울 추위가 벌써 다가왔는지 밤이 너무 추운 가을이다. 그 가을을 위해 덧옷을 준비했다. 급하게 챙겨온 덧옷을 껴입지만 나에게 맞지 않는다. 그래도 꾸역꾸역 입고 보니 나의 행동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날씨가 춥다. 덧옷을 입은 채로 추운 가을을 헤쳐 나와 따스한 집에 오자마자 덧옷을 어서 벗어버린다. 매코이는 고통 속에 자신을 보호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덧옷을 오히려 데니스 코헨을 부활시켰고 고통을 줄였지만 살인을 한다. 웃는 시체를 만든다. 상처받은 그녀를 구제해준다. 하지만 결국에는 덧옷을 차갑고 안개 낀 곳에서 총성과 함께 날려버려야 했다. 데니스 코헨의 희생자였던 레이첼의 언니 라일라. 그녀의 ‘과연 크리스 매코이가 데니스 코헨이었을까?’의 한 마디는 그녀도 결국 매코이를 용서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레이첼을 지키지 못했던 그녀는 프로작을 곁에 두며 치유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 프로작이 그것을 증명하고 자신의 얼굴에서 쌍둥이 동생 레이첼을 보고 마는 그녀의 모습이 증명한다. 악은 두 개였고 그 중 하나의 악을 위해 나는 무척이나 애도한다. 또 다른 악은...상처이다. 애도해도 소용하는 상처. 매코이의 딸 애들레이드가 제발 무사히 라일라의 손을 잡아 매코이의 차가워진 품을 안아주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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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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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각또각. 계단을 내려간다.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 하이힐을 신고 아마도 잘 빼 입은 그녀는 꽉 막히는 수도고속도로를 벗어나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다. 그녀에게 그 계단을 알려준 택시 운전기사는 아주 특별한 말을 그녀에게 해준다. 겉모습에 속지 말라고 현실은 언제나 단 하나뿐이라고. 의미심장한 그 말은 처음에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도에서만 끝났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1Q84년, 이미 시작되었다.

 소설가이지만 아직 데뷔하지 못한 소설가 덴고의 이야기는 17세 소녀의 소설 ‘공기번데기’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존재하다는 듯이 생생한 표현의 ‘공기번데기’. 그 이유는 실제 존재했기 때문이다.  덴고는 뛰어나지만 문장으로서는 미숙한 ‘공기번데기’의 문장을 고쳐 세상을 놀라게 하자는 고마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물론 ‘공기번데기’의 작가는 덴고 없는 후카에리 뿐. 덴고는 후카에리를 알게 되고 후카에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빈 병상 위에서 공기번데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몽환적인 소설. 그래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한다. 몽환에 취해 600쪽의 소설 두 권도 아주 거뜬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다운 대단함을 엿볼 수 있다.

  시작은 있었으나 끝이 없다. 맨 처음에는 현실이었으나 그래도 처음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선 맨 처음 현실 그대로 현실이 되지 아니하였다. 1984년이란 현실을 새로운 현실로 개척하였다. 그게 1Q84년이다. 문제는 겉은 완벽한 덴고이지만 그 속은 물음표를 붙일 줄 모르고 난독증을 가져 긴 문장을 말하지 못하며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후카에리라는 것이다. 서로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같은 달을 보고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아오마메와 덴고처럼 소설 1Q84도 내 머릿속과 만나지 않는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나서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 책, 잘 모르겠다. 무얼 말하고 싶은지 나에게는 꽤 오래라는 시간 동안 고심해봤다. 그 결과 소설 1Q84, 그냥 존재하는 책은 아니었다.

 나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떠올렸다. 움파룸파족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나 특유의 그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 때 한껏 취했던 몽환. 소설 1Q84에서는 리틀피플이 나온다. 움파룸파족보다 더 정체불명의 리틀피플은 열쇠였다. 몽환 속에 감쳐져 있던 열쇠를 움켜쥐고 한 문장을 떠올렸다. 나만의 사물함을 열고 나의 생각을 끄집어내었다. 덴고! 아오마메! 이들은 둘이다. 선과 악도 둘이다. 1Q84에는 달도 두 개다. 리시버와 퍼시버도 하나씩 합쳐 둘이다. 실체와 관념인 도터도 짝을 이룬다. 둘, 둘, 둘. 짝을 이루고 있는 두 개들.

 아오마메의 살인도 악은 악이되 악이지 않고 소설 ’공기번데기‘도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소설 ’공기번데기‘로서의 사기극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종교집단이라는 ’선구‘의 리더의 성폭행도 피해자의 실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리고 가해자라는 리더의 반응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고로 그 범죄는 처벌할 수 있지만 처벌할 수 없다. 이렇듯 선악은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악의 균형을 사회로 끄집어오면 사회에서도 선악의 균형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권력이 악을 누르는 것에 대한 비판 같은 것 말이다.

 편의상 리틀피플이라 불리는 그것의 대리인인 ‘받아들이는 자 리시버와 그것의 적대되는 존재 ’지각하는 자‘ 퍼시버가 있다고 한다. 리틀피플의 힘만 세지는 것이 아니라 리틀피플의 힘이 세지는 만큼 반 리틀피플의 힘도 세진다. 내가 떠올린 문장에 살을 붙이면 이렇다.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이 일어나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그 생각으로 나의 고심을 끝맺었다. 그냥 내 바람인지도 모른다. 상처 받은 이를 위한 악을 용서하고 싶은 내 마음이 그 악을 만든 세상이 오히려 더 미워서 만들어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덴고가 리시버로서 만약 그의 글대로 이루어지는 능력을 얻었다면 덴고의 힘을 빌어보고 싶다. 이왕이면 추정되는 1Q84의 입구에서 아오마메 그녀의 총성을 없애고 만날 수 없다는 둘은 저 달처럼 만나고 마는 것이다.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흐르는 곳에서 만난다. 덴고가 쓴 두 개 달의 하늘에 그 아래는 악하지 않은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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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처럼 나비처럼 1
야설록 지음 / 형설라이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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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한 기억이지만 드라마 ‘명성황후’의 뮤직비디오에서 나는 명성황후가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굉장히 감명 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그 드라마가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명성황후’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기억하는 그 장면과 타오르던 불길을 기억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국사 책에서만 짤막한 구절로만 만나왔다. 그리고 이젠 영화에 대한 기대를 대신 책으로 풀게 되었다.

 불꽃과 같다. 무명의 삶이 아주 무섭게 타오른다. 무명은 악귀로 불리면 그 검술에 있어서 뛰어나다. 그것은 무명의 어릴 적에 있다. 무명의 해가 갈수록 무술의 실력이 늘어나고 나비처럼 우연히 만난 민자영에 대한 사랑도 깊어간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역사는 바뀌지 않았다. 픽션이나마 명성황후가 죽지 않았다면 하고 바랬다. 그것은 바로 가상의 인물 무명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강렬하게 느꼈다고 말하고 싶다. 무명의 삶이 나비가 되지 못하고 불꽃으로만 타오르다 끝이 나기에 안타까워 보였다. 하지만 픽션에서도 역사는 그대로 지켜졌다.

 비록 가상의 인물인 무명과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의 명성황후를 등장시켜 하나의 픽션을 탄생시켰지만 이 소설은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평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고스란히 이 책에서 엿볼 수 있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해서 대원군의 묵인이 있었다는 것 등의 사실들이 말이다. 역사적 사실이 픽션에서 생동감 있게 살아 시간을 움직였다. 그런 생생함이 있는 역사 위에 상상력이 겹치니 상상하는 부분마저 더욱 생동감이 넘쳐 보였다. 무너져가는 조선에서 벌어지는 칼부림의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말끝마다 머릿속으로 펼쳐지는 그것 또한 생동감이 흘렀다.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임무, 마지막 일, 마지막 대사를 위해서 무명은 악귀에 뒤덮여 세 번의 죽음에서 살아나고 만 것은 아닐까? 만약 실제로 존재했더라도 전해지지 않았을 사랑 이야기가 나를 오늘도 문득 떠올릴 때마다 설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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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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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낯빛은 가진 사나이가 윗몸을 드러낸 채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첫 기억을 남겨주었던 ‘밤은 노래한다.’는 내가 그 모습에서 이미 느꼈지만 깨닫지 못했던 느낌을 다시 한 번 나를 덮치게 한 무시무시한 책이다. 책장을 이제 고작 한 장을 넘겼는데 무언가 나를 덮쳐왔다. 그 규모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크기의 파도가 나를 향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왔다. 그 거대한 파도에 휘말려 나는 아직까지 ‘밤은 노래한다.’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 거대한 파도가 무엇이었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혹은 알지만 평생을 가더라도 결코 답이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기 때문에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느낌의 답을 지금 알아보려고 한다. 들뜬 눈꺼풀과 다르게 공허하게 뜬 그 사나이의 눈을 이제는 감겨주고 싶기 때문에.

거대한 느낌이 나를 덮쳐온 그 첫 순간을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 책을 모두 읽어낸 바로 그 때도 그랬듯이 반 년 정도가 흐른 지금 다시 돌아보았을 때도 그 첫 순간을 너무나 모호하다. 책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그 첫 순간은 한 순간에 첫 순간이 아닌 잘못된 기억이 되었다. 파도는 항상 끊임없이 나를 훝으며 너울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가 휘청거릴 정도로 강하게 쳤던 파도의 순간은 기억 한다. 그것은 책을 모두 읽고 난 후 민생단 사건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던 한홍구 교수의 해제에서 등장하는 네 글자 때문이었다. 마녀사냥. 중세 시대 서양에서 벌어졌던 마녀재판이 소름끼치게 떠올랐던 그 순간에 가장 크고 강한 파도가 나에게 철썩 거렸다.

민생단 사건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역사이자 현재이다. 서로를 믿지 못해서 적의 손에서 죽기보다 동료의 손에서 죽는 일이 더 허다했던 왠지 처음부터 끝까지 허구로 이루어진 소설에서 나올 것만 같은 그 악몽 같은 일이 바로 북간도의 역사에 있다. 사람을 혼자 살기보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동물이다. 그 수없이 얽히고 섞인 관계 속에서 불신이란 가장 무서운 적 중에 하나다. 불신하게 만드는 자신 또한 불신과 함께 하는 적이다. 우리가 이 불신 때문에 얼마나 많이 싸우는가? 그러나 불신을 만드는 나와 싸운 일은 과연 얼마나 되는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자. 다른 사람을 아무런 티끌도 없이 믿을 수 있는가? 그러지 못할 것이다. 나라고 해서 별반 다를 바 없다. 믿지 못한다. 만약 북간도의 그 곳이었다면 최소한 나는 순진하게 굴고 싶다. 서로가 눈을 마주 보며 믿는다고 말하며 서로 껴안고 싶다. 더욱 돈독해지는 믿음으로 민생단 사건은 소설 속에서의 이야기이고만 싶다. 하지만 이미 과거에 존재했던 현실인 민생단 사건은 이렇게 소설가의 주목도 받았다. 잔다르크도 마녀로 몰려 영웅은 그렇게 한 줌의 재로 타버렸다. 민생단 사건 속에서 있었던 그 무수한 사람들 중에 잔다르크와 같은 영웅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 ‘국민의 혈세’와 같은 사람과 평범한 사람이라도 섞여있었을 그 곳은 아마도 평범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은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씻겨가 버린 북간도의 이야기는 존재하고 만다. 21세기에서 사는 나라는 마을 다리 아래 하천이 얼 정도로 추운 실체가 없는 겨울 바다의 파도로 맞고 있다.

파도를 맞고 서있으면 3.1운동 때에 나라를 잃은 한민족이라는 이름 하나로 한반도의 주인 한민족을 뜨겁게 들끓었던 모습들이 무색해지는 것 같다. 그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바이올린 소리와 시 그리고 노래다. 장님인 서금원이 토벌대가 쳐들어오는 와중에 바이올린을 키며 노래를 부른다. 여옥이도 이미 노래를 불렀고 박도만 역시 노래 한 곡 뽑는다. 노래로 대신하고 또 시로도 대신하며 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질 않을 밤에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은 밤에 들려온다. 서로 믿고 따르는 것이라는 사랑얘기도 하지만 어쩌면 사랑이 끊어져버리고 만 것일까.

나의 눈을 들여다본다. 나의 손금과 지문도 들여다본다. 거대한 그 파도가 나에게 왔던 것이 맞을까? 현실이었을까? 실체는 없고 존재 가능성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다가 그 신경이 어느 날 총성 하나로 끝이 나기도 하는 피의 곳이 되어버리는 몹쓸 곳, 중국 그 광활한 대륙 어딘가의 이야기가 과연 과거의 이야기일까? 아직도 불신이라는 무지한 본성은 세월이 가도 기미 하나 생기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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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의 집
가토 유키코 지음, 박재현 옮김 / 아우름(Aurum)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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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보다 줄이고 조금 더 편리하게 생활하기 위해서 알게모르게 갖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이 중요해진 지금에도 멈추지 않는 개발들 속에서 나와 자연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속 시원한 느낌을 받는다. 아직까지 잘 버텨주고 있는 이 자연. 그 자연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이야기들. ‘꿀벌의 집’에서는 자연 속으로 들어가 꿀벌과 바쁜 나날을 보내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리에는 텅 빈 열차에 탔다. 자신을 취직시켜준 죽은 아버지의 친구 다자키 씨와 그런 다자키 씨에게 많이 의지하는 엄마에게서 도망치듯이 떠났다. 전화에서 날카롭게 쏘아대고 뚝 끊고는 리에는 덜커덩거리는 진동에서 우연히 어떤 아주머니를 만나고 그 아주머니에게 사과 하나를 받는다. 아삭 씹힌다. 요구르트 신맛이 나는 그 사과에게 “신선하네요.”라고 말한다. 이 책도 그 말처럼 신선한 책이다. 꿀벌과 직접적으로 만날 일도 없고 꿀벌을 키우는 일은 더욱이 없는데다 꿀벌하면 생각나는 건 꿀뿐이었다. 첩첩산중의 사람 이야기도 아니고 꿀벌 키우는 이야기라면 재미없고 답답하다고 미리부터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곳은 탁 트인 시원함이 있다. 오히려 그 속으로 들고 갔던 마음이 답답하고 자연은 자신의 정화능력을 사람의 마음에까지 빌려주는 것 같다. 정화되는 녹초가 된 마음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즐기던 자연이 더 이상 눈요깃거리에서 벗어나 활기찬 생명력으로 가득 찬다. 꿀벌들의 열심인 일들을 도우며 사는 리에도 처음의 모습보다 많이 좋아져 보인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그런 것이다. 나도 모르게 ‘꿀벌의 집’을 보면서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되는 것 같고 활기찬 생명력을 몸 곳곳에서 느끼는 것만 같다. 또 서로 겹치지 않는 특징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재미도 더해지고 거기에 꿀벌과 자연까지 합세해 답답하지만은 않은 재미가 있다. 그리고 ‘꿀벌의 집’은 그렇게 긴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당연히 깊은 산골인 그 곳에도 사람들이 산다. 열차 안에서 새파란 사과를 쥐어주었던 아주머니도 만난다. 그 곳의 만남은 왠지 욕심내고 싶다. 힘들지만 흘리는 땀방울이 정말 멋있어 보이는 탓에 또 한 번 욕심이 나기도 한다. ‘꿀벌의 집’에서 한 번 꿀벌과 함께 일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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