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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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각또각. 계단을 내려간다.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 하이힐을 신고 아마도 잘 빼 입은 그녀는 꽉 막히는 수도고속도로를 벗어나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다. 그녀에게 그 계단을 알려준 택시 운전기사는 아주 특별한 말을 그녀에게 해준다. 겉모습에 속지 말라고 현실은 언제나 단 하나뿐이라고. 의미심장한 그 말은 처음에는 약간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도에서만 끝났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1Q84년, 이미 시작되었다.

 소설가이지만 아직 데뷔하지 못한 소설가 덴고의 이야기는 17세 소녀의 소설 ‘공기번데기’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존재하다는 듯이 생생한 표현의 ‘공기번데기’. 그 이유는 실제 존재했기 때문이다.  덴고는 뛰어나지만 문장으로서는 미숙한 ‘공기번데기’의 문장을 고쳐 세상을 놀라게 하자는 고마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물론 ‘공기번데기’의 작가는 덴고 없는 후카에리 뿐. 덴고는 후카에리를 알게 되고 후카에리가 알고 있는 세상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빈 병상 위에서 공기번데기를 보게 되는 것이다. 몽환적인 소설. 그래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한다. 몽환에 취해 600쪽의 소설 두 권도 아주 거뜬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다운 대단함을 엿볼 수 있다.

  시작은 있었으나 끝이 없다. 맨 처음에는 현실이었으나 그래도 처음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선 맨 처음 현실 그대로 현실이 되지 아니하였다. 1984년이란 현실을 새로운 현실로 개척하였다. 그게 1Q84년이다. 문제는 겉은 완벽한 덴고이지만 그 속은 물음표를 붙일 줄 모르고 난독증을 가져 긴 문장을 말하지 못하며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후카에리라는 것이다. 서로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같은 달을 보고 있으면서도 만나지 못하는 아오마메와 덴고처럼 소설 1Q84도 내 머릿속과 만나지 않는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나서도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 책, 잘 모르겠다. 무얼 말하고 싶은지 나에게는 꽤 오래라는 시간 동안 고심해봤다. 그 결과 소설 1Q84, 그냥 존재하는 책은 아니었다.

 나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떠올렸다. 움파룸파족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나 특유의 그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 그 때 한껏 취했던 몽환. 소설 1Q84에서는 리틀피플이 나온다. 움파룸파족보다 더 정체불명의 리틀피플은 열쇠였다. 몽환 속에 감쳐져 있던 열쇠를 움켜쥐고 한 문장을 떠올렸다. 나만의 사물함을 열고 나의 생각을 끄집어내었다. 덴고! 아오마메! 이들은 둘이다. 선과 악도 둘이다. 1Q84에는 달도 두 개다. 리시버와 퍼시버도 하나씩 합쳐 둘이다. 실체와 관념인 도터도 짝을 이룬다. 둘, 둘, 둘. 짝을 이루고 있는 두 개들.

 아오마메의 살인도 악은 악이되 악이지 않고 소설 ’공기번데기‘도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소설 ’공기번데기‘로서의 사기극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종교집단이라는 ’선구‘의 리더의 성폭행도 피해자의 실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리고 가해자라는 리더의 반응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고로 그 범죄는 처벌할 수 있지만 처벌할 수 없다. 이렇듯 선악은 나름대로 균형을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선악의 균형을 사회로 끄집어오면 사회에서도 선악의 균형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것이 아닐까? 권력이 악을 누르는 것에 대한 비판 같은 것 말이다.

 편의상 리틀피플이라 불리는 그것의 대리인인 ‘받아들이는 자 리시버와 그것의 적대되는 존재 ’지각하는 자‘ 퍼시버가 있다고 한다. 리틀피플의 힘만 세지는 것이 아니라 리틀피플의 힘이 세지는 만큼 반 리틀피플의 힘도 세진다. 내가 떠올린 문장에 살을 붙이면 이렇다.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이 일어나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그 생각으로 나의 고심을 끝맺었다. 그냥 내 바람인지도 모른다. 상처 받은 이를 위한 악을 용서하고 싶은 내 마음이 그 악을 만든 세상이 오히려 더 미워서 만들어낸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덴고가 리시버로서 만약 그의 글대로 이루어지는 능력을 얻었다면 덴고의 힘을 빌어보고 싶다. 이왕이면 추정되는 1Q84의 입구에서 아오마메 그녀의 총성을 없애고 만날 수 없다는 둘은 저 달처럼 만나고 마는 것이다.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흐르는 곳에서 만난다. 덴고가 쓴 두 개 달의 하늘에 그 아래는 악하지 않은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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