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과 마흔 사이 인생병법
노병천 지음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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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부터 94년까지 방영한 ‘TV손자병법’을 어린나이에도 참 재미있게 봤었다. 드라마에서 ‘유비’ 역할을 한 서인석씨나 ‘장비’ 역할을 한 김희라씨보다 지금도 내 기억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사람은 만년 과장 ‘이장수’ 역할을 했었던 오현경씨다.

 

 

당시에도 백발이 성성했던 그를 과장으로 부르는 것이 이상했었다. 부서의 과장이지만 부장에게 치이고 부하 직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고 타 부서 직원들에게도 무시당하는 말 그대로 ‘동네북’이었다. 그렇다고 호기 있게 사표를 내던질만한 깜냥도 못 되는 인물이었다. 초등학생이던 내 눈에도 불쌍해 보였다. 목소리만큼이나 무게 있고 비중 있는 연기를 하던 서인석씨나 김희라씨에 비해 만년과장 오현경씨는 늘 일을 저지르고 수습도 못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정확한 기사나 정보를 찾을 수 없었지만 당시 이 드라마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다고 한다. 한창 경제개발과 성장의 정점에 있었던 시기에 거대한 빌딩 안에서 쉬지 않고 있는 일개미 같은 직장인들의 애환을 잘 드러낸 것이 주효한 인기의 비결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손자병법’하면 내게는 어린 시절 보았던 ‘TV손자병법’과 그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백발의 만년과장 ‘오현경’씨가 생각난다.

 

 

이 책 「서른과 마흔사이 인생병법」은 처세에 대한 책이다. 일의 성취와 임무의 완수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더 우선되는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고전을 찾게 된다. 첨단의 시대가 채울 수 없는 ‘사람의 일들’에 대한 조언과 지혜가 가득한 것이 고전이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서도 손자병법은 다른 동양고전에 비해 소개되는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관심이 가는 책이다.

 

“37년에 걸쳐 약 1만 번 정도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그 밑바닥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p.7)

 

한 권의 책을 1만 번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1만 번을 정독을 했는지 속독을 했는지 어떻게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나 아무튼 대단한 일이다. 손자병법을 수십 년에 걸쳐 1만 번 읽었다는 사람이 손자병법에 대해서 하는 말이니 잘 들어보는 것이 예의인 듯 싶었다.

책의 제목처럼 서른과 마흔 사이에 있는 현대인을 대상으로 쓰인 이 책의 요점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관계’이다. 서른과 마흔 사이에 있는 현대인은 나이를 가리키는 물리적 숫자만큼 수많은 관계속에 놓여져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현명함’을 가진 채 때론 이기고 때론 지기도 하면서 지혜를 얻으라고 조언한다.

 

“다스리는 군주와 통치되는 백성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도(道)’라는 얘기다. 마음이 ‘하나’가 되면 삶과 죽음을 함께할 수 있는 법이다.” (p.135)

 

대선을 앞두고 있다 보니 책의 내용 중에 군주에 대해 풀이하고 설명한 부분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저자는 손자병법을 쓴 손자는 도(道)에 대해서 공자나 맹자의 해석과는 달랐다고 한다. 병법이라는 것이 꼭 전장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군주와 백성 사이를 포함한 모든 인간관계에서 쓰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도(道)에 대해서도 군주와 백성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도(道)라고 했다. 나는 동양고전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상식선에서 도(道)에 대한 가장 참신하고 이해하기 쉬운 해석인 듯하다. 너무 어렵고 현학적으로만 풀어내는 다른 이들의 고전과는 달랐다. 병법서로 쓰여진 탓도 분명 있겠다.

 

오늘 여당 대선 후보가 정해졌고 곧 야당 대선 후보도 정해질 텐데, 당의 경선과정이나 대선 과정에서 제발 쓸데없는 논쟁만 쏟아내지 말고 손자병법이 얘기하는 도(道)를 이루기 위해 어떤 군주가 될 것인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말하는 후보가 나왔으면 좋겠다.

 

“손자는 이렇게 리더가 가져야 할 다섯 가지 자질로 지(智), 신(信), 인(仁), 용(勇), 엄(嚴)을 꼽았다. 이를 오덕(五德)이라 부른다.” (p.64)

 

전쟁을 이기기 위한 장수(리더)가 가져야 할 자질이라기보다는 수많은 백성을 다스릴 군주가 가져야 할 자질에 가까운 것 같다. 실제로 오덕을 갖춘 리더가 있을까 싶지만 5개 중 최소한 1∼2가지라도 갖춘 리더를 만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5개의 덕 중 엄(嚴)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에서.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에게만 엄한 것이 아니라 법·규율 아래서 모든 사람이 똑같은 처벌을 받고 죄를 벗기도 하는 ‘엄정함’이 담보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제까지 너무 엄정하지 못한(특히 힘 있고,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 일들을 봐와서 쉽게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는 사회이지만 반드시 그런 사람이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 신, 인, 용 모두를 갖추고 있어도 엄정하지 못한 리더, 내지는 지도자라면 그가 다스리는 집단·국가는 여전한 혼란 속에 허우적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감동’이라는 무기가 아닐까 싶다. 감동은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을 두드리는 것이다. 사람을 저절로 움직이게 하는 데 감동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p.75)

 

말이 쉽지. ‘감동’을 주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한 사람과 친해지는 것도 무지하게 어려운 시대에 ‘감동’을 준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웬만한 일에 쉽게 ‘감동’ 받지 않는 것도 현대인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감동이 담긴 프러포즈 계획을 짜내던 그 때의 고민과 갈등은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단순히 웃음만 주기 위해, 승낙만 받아내기 위해 프러포즈를 준비했다면 차라리 쉬웠겠지만 10년의 연애시절 동안 안 해본 이벤트가 없었기 때문에 프러포즈는 더욱 신중해야 했다.

 

그런 것처럼 리더 혹은 지도자도 그가 이끄는 구성원과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이고, 큰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과 국민들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모두가 만족하는 감동을 주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술자리 안주거리나 되고 비아냥거림거리만 되고 있는 지도자들과는 다른 사람이 좀 나왔으면 좋겠다. 실제로 어떤 국가의 지도자는 98%라는 거짓말 같은 지지를 받는 다고 한다.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은 일이다.

 

“세상에 그 어떤 가치를 지불하고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다.” (p.155)

 

앞서도 말했지만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관계’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서른과 마흔사이’에서 승진하고 성공을 이루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도 동의하는 바다. 꼭 나를 도와주고 내가 성공하는 데 힘이 될 만한 관계가 아니라 나와 함께 인생을 함께 걸어 갈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관계를 개선하는 열 가지 법칙

1. 말을 걸어라.

2. 미소를 보내라.

3. 이름을 불러주어라.

4. 친절한 마음으로 대하라.

5. 성심성의껏 대하라.

6. 칭찬하라.

7. 주변을 둘러보고 관심을 가져라.

8. 감정을 존중하라.

9. 의견을 존중하라.

10. 봉사하라.

 

 

책의 말미에는 ‘관계를 개선하는 열 가지 법칙’이 소개되고 있는데,

나는 2번이 가장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9가지도 부족한 사태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피부색이 짙은 편이라 웃고 있지 않으면 기분이 안 좋게 보인다는 얘기를 중·고등학교 때부터 수시로 들었다. 군대에 갔다 오고 결혼한 후에는 예전의 그 눈빛은 많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지만 여전히 무섭다는 얘기를 곧잘 듣는다.

사춘기 때는 좋았다. 누구라도 시비만 걸어오면 와락~! 덤벼들 때라 내 인상을 좋게 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았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나는 나름대로 환하게 웃고 있는데 나중에 왜 웃지 않느냐는 얘기를 듣고는 한다.

아직 아이가 없어서 그런가?^^;;

아이의 눈에 처음 보이는 아빠의 얼굴이 생글생글 웃음기 가득하도록 웃는 연습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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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왜? - 우리 동식물 이름에 담긴 뜻과 어휘 변천사
이주희 지음 / 자연과생태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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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지내는 몽골가족이 있는데 한국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이 뭐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산~! 한국은 산이 너무 예뻐~~”

몽골가족은 대구에서 살고 있는데 대구 시내에도 좋은 공원이 있고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산이 많아 주말에 함께 교외로 나갈 때면 환호성을 지른다.

 

국도변에 펼쳐진 논과 들, 산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고 한다. 내가 몽골에 갔을 때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과 그 오묘한 황금빛에 탄성을 내지른 것처럼 몽골가족은 몽골에서는 볼 수 없었던 편안하고 따뜻한(몽골 가족의 표현이다.)초록빛에 탄성을 내지른 것이었다.

그런데 함께 교외로 나갈 때면 나와 아내는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자꾸만 나무, 꽃이름을 물어보는데 그것 참 쉽지 않았다. 나름 나무에 관심이 있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10가지를 물어보면 5가지도 대답해주지 못했다.

 

내가 나고 자란 우리 땅에서 자라는 동식물에 대해서 점점 관심이 없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아이가 나중에 몽골가족의 아이에게 가르쳐 줄 동식물이 하나도 없겠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의 부모세대는 매일 학교 가는 길에 꼴을 베러 가는 길에 보는 것이 꽃이고 나무고 동물들이었기 때문에 반 친구들 이름 하나씩 외워가는 것처럼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 「내 이름은 왜?」는 우리 동식물 이름에 담긴 뜻과 어희 변천사에 대한 소개글이다.

 

“예전 사람은 고니보다 백조(白鳥)란 말을 많이 썼다. 지금도 생물에 관심 없는 많은 사람에게는 백조란 이름이 더 익숙하다. 그런데, 이미 잘 알려졌듯 백조는 일본인이 만든 한자어다.” (p.198)

이 책을 읽다가 다급하게 아내를 불렀다.

 

“OO아~ 내 책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가. 고니가 백조라는 거 알았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몰랐나? 나는 알고 있었는데”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아내가 얄미웠다.

 

지난 주말에 만난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반 정도는 나처럼 고니가 백조인 것을 몰랐다.

저자는 생태뿐 아니라 한국의 생물 이름 유래, 생물 연구사 등에 관심이 많은데 일제 강점기가 가져 온 폐해가 생물 이름들에서도 여전한 것에 나는 많이 놀랐다. 수백 년 동안 불러 내려오던 동식물의 이름이 일본식 한자로 이상하게 표기되어 통용되는 예가 굉장히 많았다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해방 이후에도 학계의 제대로 된 반성과 성찰 없이 그냥 수십 년 동안 그대로 일본식 단어가 많이 남아있다고 했다.

하긴 반드시 해야 했을 친일파 청산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국가에 뭘 더 바라겠나 싶기도 하다

.

“우리말 생물 이름 중에 비슷한 무리에서 유난히 크기가 큰 것에 ‘말∼’이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말매미, 말벌, 말거머리, 말조개 등이 대표적이다.” (p.55)

“많은 사람이 습관적으로 개나리를 한 덩어리 말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개나리는 접두사 ‘개∼’와 백합과에 속하는 꽃들을 일컫는 우리 고유어인 ‘나리’가 합쳐진 말이다.” (p.93)

 

오랜 시간 동안 전해 내려오던 고어(古語)들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지거나 퇴색, 가치가 훼손되어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동식물의 특이한 이름의 유래를 찾기 위해 아무리 노력해도 찾을 수 없는 것이 많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말벌이나 개나리 같은 이름들도 전통의 고유어 들이라는 것도 사실 나는 몰랐다. 늘 부르는 단어이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세대가 생긴 이후 수많은 신조어가 탄생되었다. 유행처럼 일어나서 사전에 실리기도 하지만 수명은 길지 않은 것 같다. 또 다른 신조어가 곧장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고유어에 대한 관심과 흥미는 점점 없어질 것이 뻔하다. 젊은 세대가 쓰는 말 대부분이 신조어이고 노인세대가 쓰는 말과는 많이 다르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사실 이런 것들은 학계에서 논문을 발표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책을 내거나 TV에 나와서 중요성을 부각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데, 생물학계 쪽도 크게 기대할 바는 못 되는 것 같다.

 

“생김새와 생태가 사람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다른 어느 곤충보다도 사마귀를 일컫는 이름은 지역별로 다양하다. 사마귀라는 이름만큼 널리 사용되는 이름이 버마재비다.” (p.309)

 

사마귀라는 곤충이 예전에는 ‘버마재비’로 더 널리 불렸으며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의 사투리가 다르듯이 지역별로 또 ‘버마재비’를 다르게 불렀다는 것이 신기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마귀는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관심이 가는 외모를 가졌기 때문인 듯싶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사마귀의 예전 이름이 ‘버마재비’였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이것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무관심과 무시가 계속 되면 아무도 모르게 우리 고유의 동식물 이름들이 하나둘씩 사라질 것이다.

이런 책도 찾아 읽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

최소한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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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내부의 적 - 자유와 민주주의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다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김지현 옮김 / 반비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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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는 어떤 식으로든 진화해 왔다. 3당 합당과 고착화된 지역주의를 분쇄하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배 세대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이미 IMF의 광풍이 이념을 휩쓸고 간 후 신자유주의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올 때였다.

 

그래서 지난 4년간의 후퇴한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불편함과 스트레스가 크다. 그전까지 당연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누려오던 것들이 4년 만에 무너져가는 꼴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레이스에 뛰어든 후보들이 너나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를 부르짖는다. ‘정치민주화’가 엄청나게 후퇴되고 퇴보했음에도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한 화두이기에 ‘일단 먹는 것부터 해결하자~!’라는 원초적인 문구가 이번에도 먹힐 듯싶다.

‘먹고 사는 문제’는 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한 이치이기는 하나 ‘먹고 사는 문제’는 아니지만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문제’들이 많은데, 그것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회피하면 지난 4년과 같은 꼴이 그대로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함께 먹고 살아야’하는데, 민주주의 사회가 심화되고 신자유주의가 팽배해지면 질수록 ‘함께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가 흔히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북유럽 선진국에서 극우주의자에 의한 테러가 일어나고 많은 유럽 국가에서 인종주의가 다시금 부활하는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 책 「민주주의 내부의 적」은 그것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데 적절한 책이다.

 

“나는 이 책에서 해결책이나 처방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더 잘 이해하도록 도우려 한다.” (p.17)

 

저자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불가리아 태생인 저자가 대학 공부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온 후 프랑스인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귀화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인생의 역사가 세계대전 후 68혁명을 기점으로 이루어낸 서유럽의 민주화 과정, 그리고 반대편 냉전 체제하에서 구소련 체제하에 있던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 형성 과정의 역사와 일맥상통한다.

 

 

1. 천사가 되려한 짐승들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는 유럽의 시각에서는 이미 수백 년이 된 개념이지만 나와 같은 한국인에게는 아직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개념이다. 유럽은 말 그대로 밑에서 부터의 혁명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충분히 성숙되고 숙성된, 그래서 국가에 소속된 국민의 의식 속에 고스란히 흐르는 잠재역량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굉장히 다르다. 근·현대사가 그 어떤 국가와 집단의 그것보다 급변했고 정치적 테제를 결정하는 주체가 늘 통치 권력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에서 미군정으로, 미군정에서 독재 권력으로 통치 권력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흔히 유럽, 특히 북유럽 하면 ‘우리보다는 성숙한 사회’, ‘엄청난 GDP를 자랑하는 복지국가’ 정도로 생각했었다.

박노자 교수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를 읽으며 우리가 가지는 북유럽에 대한 판타지가 대단히 잘못된 것임을 경고 받기는 했지만 TV나 책을 통해 노출되는 북유럽과 서유럽은 노래 가사처럼 “희망의 나라”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인인 저자의 눈에 비친 서구(유럽과 미국을 포함한)의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 상황에 봉착해 있다. 책의 제목처럼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으로 인해 그렇다는 것이다.

 

“안보리가 구현하는 국제 질서는 당위성이 아니라 힘의 지배에 기여한다.” (p.73)

“역사의 시기마다 군사 개입은 거의 도덕적인 태도를 표방했다. 이때 특히 서구의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p.85)

 

코소보 사태와 아랍의 재스민 혁명, 이라크 전쟁에서부터 아프간 전쟁까지 유럽과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일념으로 전쟁에 개입하고 또는 주도적으로 실행했다.

저자는 이것을 정치적 메시아주의라 칭한다. 스스로 메시아가 되는 것이다. 코소보에서 아랍에서 이라크에서 메시아가 되어 주기를 고대했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는 전 세계의 민주주의, 발전, 자유 시장, 자유 경제를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할 것이다.’ 보고서는 거듭하여 이러한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어떤 수단이라도 동원될 수 있다고 정당화한다. 그것이 전쟁이라도 말이다.” (p.60, 「미연방 국가 안전 전략」)

 

“고상한 이상을 내세운 이 계획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는 공산주의의 구원을 약속하고 식민 전쟁을 벌이던 과거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부활을 의미한다.” (p.60)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가하기 직전 부시 대통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TV연설을 했던 것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분명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을 ‘제2십자군전쟁’이라 칭했다.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도대체 누가 부시에서 십자군을 이끄는 메시아가 되어 달라고 했다는 말인가?

이렇게 이어져 온 서구의 민주주의에 대한 내부의 공격은 또 다른 외부의 공격을 말미암을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했다.

 

자꾸만 눈을 외부로 돌리려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냉전체제가 허물어지고 전 세계가 급격히 신자유주의의 격랑에 빠지고 나서 인류는, 아니 서구는 문명 진화의 최대치가 신자유주의가 될 것임을 기대했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완전한 믿음과 신뢰가 더 나은 세계와 문명을 견인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렸다. 너무나도 한순간에. 아무런 예고도 없이.

오일쇼크로부터 이미 징후는 계속되었으나 서구는 애써 외면했다고 봐야 한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더블딥, 나아가서는 트리플딥의 반복은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감추고 숨기며 오히려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논점을 흩트리는 것으로 과정이 진행됐다.

서구의 관점에서 그들보다 미개하고 미성숙한 아랍과 이라크, 근동지역같은 곳은 이러한 과정을 진행하기 위한 도구로 안성맞춤이었다.

 

“천사가 되려고 하다가 짐승이 된다.” (p.90)

 

「팡세」에서 파스칼이 말한 대로 그들은 메시아는커녕 그대로 짐승이 되어버렸다.

 

 

2. 데마고그와 데마고기의 놀이터

신자유주의와 자유민주주의 테제가 희미해져버린 서구의 자리에는 포비아(phobia)가 자리 잡았다. 책에서는 외국인, 특히 무슬림에 대한 포비아가 유럽 전역에 퍼져있는 현실을 진단한다. 앞서 지적한바 선진 정치국가라 인식되던 서유럽과 북유럽에서 ‘인종주의’를 내세운 정당이 제1야당이 되고 많은 젊은이들을 그 기치아래 끌어 모으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마고기(demagogy)를 일삼는 데마고그(demagogue)들이 놀이터를 점령해 버렸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이것을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위해 이용하고 활용하는 데마고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한다.

각 국가 내에서 상존하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분노의 형태로 타인(특히 외국인)에게 치환된다. 그것은 이성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의 영역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데마고그들의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선동·선전(데마고기)은 힘을 얻는다. 따르는 무리는 급속도로 늘어나고 나와 나의 국가·집단은 갑자기 모두 피해자가 된다.

 

방아쇠에 손가락을 찔러 넣은 채 총구만 ‘그들’에게 돌려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저자도 책에서 지적하지만 이것은 굉장히 위험한 러시안 룰렛이다. 지금 당장은 ‘그들’에게 총구를 들이대지만 격발되지 않은 총구는 언제든 나에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기획은 우리를 한 극단주의에서 다른 극단주의로, 즉 전체주의적인 ‘국가 우선’에서 극단적인 ‘개인 우선’으로, 자유를 죽이는 체제에서 ‘사회를 죽이는’체제로 이행시켰다.” (p.111)

“라이벌이었던 공산주의가 몰락한 후 대중들이 자신의 두려움, 불안, 적대감을 다른 집단에 투사하는 것이다.” (p.155)

 

노르웨이에서 수십 명을 살해한 브레이브크스는 이러한 극단에 몸을 실은 젊은이다. 그가 남긴 문서들에서는 자신이 적극적으로 정치적 메시아가 되기를 결단했다. 물론, 컴퓨터 게임에 빠진 채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해 내지 못한 정신병리학적 요인도 중요하지만 그가 극우세력의 데마고그들의 선전과 선동에 심취했음이 더욱 중요한 요인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아직 극단적인 데마고기가 넘치는 정치세력 내지는 집단이 집권하지는 않았지만 점점 그것으로 빨려 들어가는 젊은이가 많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가 ‘그들의 문제’로 피해의식을 덧입은 채 치환돼 버리면 이성은 상실된다.

 

데마고기(demagogy)를 일삼는 데마고그(demagogue)들이 놀이터만 점령하면 다행이다. r들이 만들 난장판은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일이다.

 

유럽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 극단세력들은 어떤 면에서는 맥이 닿는다. 디테일한 정치환경과 집단의 특성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요즘 부각되는 독도 문제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양국의 접근 방식을 보면 ‘자유를 죽이는 체제’를 벗어나 ‘사회를 죽이는 체제’로 이행하고 있지 않나 염려스럽다.

대선을 앞두고 국내에서도 난장판이 펼쳐질 것이 뻔하다. 각자 나름대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갑’이 되겠다고 뛰어들겠지만 심각한 내부의 적이 될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나와 다르면 ‘빨갱이’, ‘수구꼴통’ 이 두 단어로 상대의 주체성을 상실시켜 버린다.

 

“유럽의 장점 - 민족의 다양성, 사상의 다양성, 이러한 유럽의 특수성은 메시아주의,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같은 민주주의의 탈선을 막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저항할 수 있는 지형을 만든다.” (p.206)

 

저자는 책의 말미에 이러한 민주주의 내부의 ‘적들’을 견제하고 균형 잡힌 사회발전을 위해 유럽의 특수성과 다양성이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내게는 좀 먼 나라 얘기에 불과하지만 수백 년간 쌓아온 그들의 정치적·문화적·시민적 역량이 폭주하는 탈선을 막기에 차선이라도 된다면 주목해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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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사람 차재성 북한에 가다
차재성 지음 / 아침이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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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 이후 수많은 뉴스거리가 있었지만 올림픽 이전까지 가장 뜨거운 감자는 통합진보당의 내홍이었다. 흔히 구당권파라 통칭되는 세력이 ‘종북세력’ 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홍의 원인이었다. 70∼80년대 교조적인 운동권 조직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하지 못한 채 그 때의 그 모습으로 그대로 고착되어 버린 것이다. 북한의 3대세습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던 이정희 의원도 한 방에 가버렸다.

한국전쟁 이후 6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상존하는 북한과의 분단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종북논란’, 그리고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빨갱이 발언’. 이런 것들은 한국의 특수성이 빚어낸 기형적인 정치양태라 볼 수 있다.

 

언젠가 중학생들에게 북한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추상적인 질문에서 시작했는데, 나로서는 충격이 컸다. 아이들은 북한을 완전히 다른 나라로 알고 있었고, 통일의 당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학교교육의 요인도 있겠지만 60년이라는 긴 시간을 분단된 채 살아온 실제적 현실이라는 것을 체감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오랜 기간 해오던 반공교육의 끄트머리를 잠시 경험한 나와 내 이전 세대들 간의 생각도 그만큼 다를 것이다. 나와 내 이후 세대들 간의 생각이 다른 것처럼.

이 책 「남한 사람 차재성 북한에 가다」는 십여 년 전 북한의 신포 경수로 건설공사에 참여한 차재성씨의 일기 내지는 탐방기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북한과 적극적인 교류·협력을 위해 북한의 여러 지역에서 큰 건설공사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었고, 재벌기업 현대는 그것의 첨병 역할을 했었다.

IMF직후 였기 때문에 국내의 경제여건도 굉장히 좋지 않은 상태였고 경수로 건설 공사 당시 북한과의 군사적 마찰도 있었던 시기였다.

저자는 실제로 북한에서 1년 간 체류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과 그곳에서 만난 여러 북한 사람들에 대한 경험과 느낌을 일기를 쓰는 것처럼 소소하게 풀어내고 있다.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도깨비 뿔을 한 시뻘건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고 비록 오랜 분단으로 언어적·문화적 이질감이 커졌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몸으로 체험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소한 ‘가위 바위 보’놀이도 부르는 명칭이 달라 서로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통일이 되면 어려움이 더 많아 힘들지 않겠어요?”

 

 

대학 1학년 때 친구들과 농구를 많이 했다. 학기 초 몇 명의 친구들과 친해져 처음 농구를 하며 편을 가르기 위해 모였다. 나는 포항이 고향이다. 어릴 때부터 늘상 동네친구들, 학교친구들과 외치던 그것을 외치며 손바닥을 펼쳤다.

 

“타~안 타~안 비~!!”

그런데 거기 모여서 편을 가르려던 친구들이 외치는 소리가 모두 다 다른 것이었다.

“타~안 타~안 보~!!”

“데~인 지~시~!”

탄탄보를 외치던 친구는 안동 출신이었고, 데인지시를 외치던 친구는 대구 출신이었다. 압권은 문경에서 온 친구의 외침이었다.

“하늘~땅 별~땅~!!”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한바탕 웃고 나서 내가 외치는 게 맞네, 니가 틀렸네 하며 한참 입씨름을 했다.

 

 

그러니 60년을 다르게 살아온 북한과는 얼마나 다를까 생각해 본다.

 

“서로가 배우면 되지 않습니까?” (p.230)

 

저자의 걱정 섞인 물음에 북한 사람이 서로 배우면 되지 않냐며 대답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에서는 서로간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나아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까지 생겨 금세 어울려 같이 땀을 흘렸다.” (p.13)

 

처음 북한의 경수로 건설공사를 위해 북한의 업체와 가졌던 협의과정에서부터 공사 내내 이런 사소한 ‘다름’을 경험했었지만 결국 함께 땀 흘리고 어울리다보니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곱지 않은 시선에서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는 시선과 마음으로 변했다고 한다.

통일이라는 것이 언제쯤 될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채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에 매진한다면 통일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통일은커녕 분단된 채 상존하는 위협으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어떤 미래가 될지 걱정스럽다.

 

 

 

 

 

***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뒤에서 치었는데 북한 사람은 30m 이상 나가 떨어졌고, 차는 크게 파손되었답니다. 가해 차량에 탄 우리 측 두 사람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였고…….” (p.136)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공사에 참여했던 한국 사람들의 술문제다. 1년 동안 2∼3차례 술에 취해 생긴 인사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북한이라는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매일매일 재생산되는 실제적 위험의 가능성을 잊고자 마셨는지는 몰라도 북한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사고를 쳤다고 하니 부끄러웠다.

왜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마시기나 하면 모르겠는데 북한에 가서까지 사고를 쳐대는 사람들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외교적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었다고 하니 사소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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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인공섬, 시토피아 - 사람이 만드는 미래의 해양 도시 미래를 꿈꾸는 해양문고 20
권오순.안희도 지음 / 지성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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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크고 작은 3350여 개의 섬, 2393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갯벌을 가지고 있다. 특히 국토 면적의 4.5배가 넘는 443제곱킬로미터의 영해(領海)를 가진 해양 국가이다.” (p.110)

 

한국에 3350여 개의 섬이 있는 지 몰랐다. 2393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넓은 갯벌이 있는 지도 몰랐다. 그리고 국토 면적의 4.5배가 넘는 영해를 가진 해양 국가인 것은 더더욱 몰랐다. 어릴 때 삼면이 바다라는 것은 많이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 수치를 확인하니 놀라웠다.

몽골 여행을 했을 때 현지인과 함께 호수에 간 적이 있었다. 내륙국가인 몽골인 들에게 호수는 바다였다. 굉장히 큰 호수여서 기상에 따라 파도도 치고는 하는 호수였다. 재작년 그 몽골인들이 한국에 와서 함께 동해안에 여행을 갔다. 진짜!! 바다를 보고 좋아하던 그들의 눈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책 「바다 위 인공섬, 시토피아」는 얇지만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재로 가득 찬 책이다. 바다와 유토피아의 합성어인 시토피아는 ‘해양개발’에 대한 함의를 담은 개념이다.

내가 태어난 곳도 바다에 위치한 지역이고 군 생활도 해안소초장을 해서인지 바다는 내게 낯설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지겨울 때가 많다. 초등학교 교실 창문으로 보이는 것이 바다였고 중·고등학교 통학버스를 타고 매일 보는 것이 바다였다. 해안소초 순찰을 밤새 다니며 매일 달라지는 밤바다의 색깔과 냄새를 보고 맡았다.

그래서 바다보다는 계곡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번 여름에도 바다로 가자는 친구들의 요구를 한방에 뿌리치고 계곡으로 갔다.

 

하지만 내가 지겨워하는 바다가 미래 인류의 무한한 가치창출의 보고(寶庫)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들은 토모공학을 전공한 후 지금은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 책에 따르면 미래에 바다는 공항·항만·산업 폐기물 매립지·발전소·자원개발·해양도시 등으로 쓰일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미 공항·항만·매립지·자원개발 분야는 일본이 선점한 분야이다. 인천공항도 바다위에 지어진 국제공항이다.

 

아직 해양도시 분야는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고 한다.

물론, 중동의 일부 부국(富國)에서는 이미 해양도시를 건설했고 일부는 전 세계를 휩쓴 불황의 여파로 건설이 중단되어 있는 상태라고 한다.

 

                                                             (두바이에서 건설 중인 해양 도시 '팜 주메이라')

 

“2003년에 가장 먼저 공개된 팜 주메이라 섬은, 세계 부동산 시장에 공개된 지 3주 만에 분양이 완료되는 기록을 세웠다.” (p.71)

 

더 이상 육지에 국한된 사고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중동의 해양도시에 입주하는 사람들은 그 값어치를 지불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는 부자들이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눈을 바다로 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지에서 처리하기 힘든 쓰레기나 폐기물을 바다에 매립하기 위해 인공섬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것은 리사이클링 아일랜드(Recycling Island)라고 한다.” (p.87)

 

 

 

 

 

쓰레기나 폐기물 매립장의 경우 더 이상 육지에서는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포화 생태라고 한다. 쓰레기 매립장은 ‘님비현상’을 일으키는 가장 분명한 시설이다. 이제 더 이상 무분별하게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다.

 

책에서는 바다를 매립해 쓰레기와 폐기물 매립장을 만든 일본·덴마크·싱가포르의 예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중국이나 미국 등 아직 개발되지 않은 육지를 가진 나라들은 먼 얘기겠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도 하지만 국토의 70%가 산이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일본은 이미 1960년대부터 해양개발에 대한 투자와 연구를 해오고 있다고 한다. 조금 늦은 듯 하지만 더 늦기 전에 한국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실제로 건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가지 해양도시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에너지, 글로벌, 리사이클링 기능을 가진 무궁화 모양의 그린 아일랜드와

 

글로벌, 에코, 에너지, 네트워크 기능을 가진 태극기 모양의 그린 아일랜드 두 가지 형태이다.

 

 

그림만 보면 참 멋있고 글로벌 랜드마크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하지만 책의 닫는 글에서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직시하고 있는 것은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바다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국가의 발전을 위해 바다를 훼손시킬 것인가? 아니면 바다 환경을 지키기 위하여 해양 개발을 멈추어야 하는 것인가?” (p.125)

하는 것이다.

 

바다를 개발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적시하지 않았지만 그 때가 도래한다면 너도나도 해양개발에 뛰어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부동산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한국 사람들 아닌가. 통일이 되면 이산가족보다 더 빨리 북쪽으로 달려갈 사람이 부동산 업자들이라고 하지 않나. 바다 입장에서는 참 피곤한 일이 될 것 같다. 장기적은 플랜을 가지고 토목공학자의 얘기만 듣는 것이 아니라 환경학자들, 환경단체들의 얘기도 충분히 듣고 합의하고 절충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만들어질 해양도시는 후손에게 물려주어 할 것

이기 때문이다.

 

‘일단 삽질하고 보자.’라는 정신은 아무짝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바다와 유토피아의 합성어인 ‘시토피아’가 인류와 후손에게 진정한 유토피아가 될지 부동산 업자들의 노른자위가 될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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