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사람 차재성 북한에 가다
차재성 지음 / 아침이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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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총선 이후 수많은 뉴스거리가 있었지만 올림픽 이전까지 가장 뜨거운 감자는 통합진보당의 내홍이었다. 흔히 구당권파라 통칭되는 세력이 ‘종북세력’ 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내홍의 원인이었다. 70∼80년대 교조적인 운동권 조직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하지 못한 채 그 때의 그 모습으로 그대로 고착되어 버린 것이다. 북한의 3대세습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대중적 인기를 구가하던 이정희 의원도 한 방에 가버렸다.

한국전쟁 이후 6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상존하는 북한과의 분단은 한국의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종북논란’, 그리고 심심하면 튀어나오는 ‘빨갱이 발언’. 이런 것들은 한국의 특수성이 빚어낸 기형적인 정치양태라 볼 수 있다.

 

언젠가 중학생들에게 북한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라는 추상적인 질문에서 시작했는데, 나로서는 충격이 컸다. 아이들은 북한을 완전히 다른 나라로 알고 있었고, 통일의 당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학교교육의 요인도 있겠지만 60년이라는 긴 시간을 분단된 채 살아온 실제적 현실이라는 것을 체감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오랜 기간 해오던 반공교육의 끄트머리를 잠시 경험한 나와 내 이전 세대들 간의 생각도 그만큼 다를 것이다. 나와 내 이후 세대들 간의 생각이 다른 것처럼.

이 책 「남한 사람 차재성 북한에 가다」는 십여 년 전 북한의 신포 경수로 건설공사에 참여한 차재성씨의 일기 내지는 탐방기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북한과 적극적인 교류·협력을 위해 북한의 여러 지역에서 큰 건설공사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었고, 재벌기업 현대는 그것의 첨병 역할을 했었다.

IMF직후 였기 때문에 국내의 경제여건도 굉장히 좋지 않은 상태였고 경수로 건설 공사 당시 북한과의 군사적 마찰도 있었던 시기였다.

저자는 실제로 북한에서 1년 간 체류하면서 겪은 여러 가지 일들과 그곳에서 만난 여러 북한 사람들에 대한 경험과 느낌을 일기를 쓰는 것처럼 소소하게 풀어내고 있다.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도깨비 뿔을 한 시뻘건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이고 비록 오랜 분단으로 언어적·문화적 이질감이 커졌지만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몸으로 체험했다고 한다.

 

“이렇게 사소한 ‘가위 바위 보’놀이도 부르는 명칭이 달라 서로 이해하기가 어려운데, 통일이 되면 어려움이 더 많아 힘들지 않겠어요?”

 

 

대학 1학년 때 친구들과 농구를 많이 했다. 학기 초 몇 명의 친구들과 친해져 처음 농구를 하며 편을 가르기 위해 모였다. 나는 포항이 고향이다. 어릴 때부터 늘상 동네친구들, 학교친구들과 외치던 그것을 외치며 손바닥을 펼쳤다.

 

“타~안 타~안 비~!!”

그런데 거기 모여서 편을 가르려던 친구들이 외치는 소리가 모두 다 다른 것이었다.

“타~안 타~안 보~!!”

“데~인 지~시~!”

탄탄보를 외치던 친구는 안동 출신이었고, 데인지시를 외치던 친구는 대구 출신이었다. 압권은 문경에서 온 친구의 외침이었다.

“하늘~땅 별~땅~!!”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한바탕 웃고 나서 내가 외치는 게 맞네, 니가 틀렸네 하며 한참 입씨름을 했다.

 

 

그러니 60년을 다르게 살아온 북한과는 얼마나 다를까 생각해 본다.

 

“서로가 배우면 되지 않습니까?” (p.230)

 

저자의 걱정 섞인 물음에 북한 사람이 서로 배우면 되지 않냐며 대답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장에서는 서로간의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나아가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까지 생겨 금세 어울려 같이 땀을 흘렸다.” (p.13)

 

처음 북한의 경수로 건설공사를 위해 북한의 업체와 가졌던 협의과정에서부터 공사 내내 이런 사소한 ‘다름’을 경험했었지만 결국 함께 땀 흘리고 어울리다보니 서로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곱지 않은 시선에서 조금씩 서로를 배려하는 시선과 마음으로 변했다고 한다.

통일이라는 것이 언제쯤 될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히 등을 돌린 채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일에 매진한다면 통일은 요원한 일이 될 것이다.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통일은커녕 분단된 채 상존하는 위협으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어떤 미래가 될지 걱정스럽다.

 

 

 

 

 

***

“걸어가고 있는 사람을 뒤에서 치었는데 북한 사람은 30m 이상 나가 떨어졌고, 차는 크게 파손되었답니다. 가해 차량에 탄 우리 측 두 사람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였고…….” (p.136)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공사에 참여했던 한국 사람들의 술문제다. 1년 동안 2∼3차례 술에 취해 생긴 인사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북한이라는 곳에서 가족과 떨어져 매일매일 재생산되는 실제적 위험의 가능성을 잊고자 마셨는지는 몰라도 북한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사고를 쳤다고 하니 부끄러웠다.

왜 이렇게 술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마시기나 하면 모르겠는데 북한에 가서까지 사고를 쳐대는 사람들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외교적 문제로 불거질 수도 있었다고 하니 사소한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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