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혁명 - 우리는 누구를 위한 국가에 살고 있는가
존 미클스웨이트 외 지음, 이진원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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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경상남도 지사가 도내 무상급식을 전면 중단한다고 한다. “학교에 공부하러 가지, 밥 먹으로 가느냐”라는 논리다. 여당의 한 의원은 적극적으로 환영을 했단다. 정말 대단한 나라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무상급식이라는 복지정책은 현대 한국 정치사에서 민주·개혁·진보 진영이 들고 나온 공약 중 가장 파격적이고 설득력이 있는 제안이었다. 무상급식으로 선거에서도 이기고 이후 복지정책에 관한 아젠다를 주도하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여당에서도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교육 등 이전에는 절대로 입에 담지도 않았을 정책과 공약을 쏟아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지자체장의 의지로 없어져버리는 꼴을 보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그런다. ‘그러게 선거를 잘했어야지, 투표를 제대로 안하니 이런 꼴 난다.’라고. 맞는 말이다. 그 비꼬는 정도가 귀여운 수준이지만 뼈아프다.

복지라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수혜의 대상이나 새롭게 세수를 창출해 부담을 가진 채로 들이 붓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지난 이명박 정권에서부터 지금까지 최소한 국민의 절반 정도가 반대한 여러 가지 정책을 밀어 붙이지만 않았어도 한국 사회의 복지 수준이 현재와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된 언론이 없는 사회이다 보니, 언론에서도 복지와 관련된 이슈를 논란화시킨다. 엄청나게 어렵고 힘든 일인 것처럼 보도하다 보니, 없는 사람들, 복지의 혜택을 직접적으로 받아야 할 사람들조차 ‘에이~ 복지는 무슨 복지야’하게 된다. 웃기는 현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살아가는 한국의 현실과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유럽에서 태어난 두 저자의 눈으로 보기에 현재 서구유럽과 미국의 정치·경제체제는 명확한 한계와 문제들로 둘러싸인 골칫덩어리이다.

하지만 극동아시아, 한반도의 남쪽에 살고 있는 30대 평범한 가장인 내 눈에는 여전히 서구 유럽과 미국은 ‘드림 컴 트루?’다.

 

 

 

“뉴욕의 타블로이드판 일간지인 <뉴욕 데일리 뉴스>는 의회를 미국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의 제목을 바꿔서 ‘하우스 오브 터드House of Turds’, 즉 ‘똥통’이라고 불렀다.” (p.310)

 

 

<하우스 오브 카드>. 방영 초기부터 화제였던 드라마다. 시리즈의 전 에피소드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내용과 출연진은 더욱 관심을 끌었다. 나는 <하우스 오브 카드>의 열혈팬이 되었다. 시즌2개를 3번 정도 반복해서 봤다. 그전까지 미국 정치에 관련한 가장 훌륭한 드라마로 판단했던 <웨스트윙>과는 완전히 다른 드라마였다. 추악하고 더럽고 비겁한, 인간 본연의 본성과 본능과 탐욕을 가장 깔끔한 수트와 드레스를 차려 입은 정치인과 그 정치인을 둘러싼 인물들이 연기해 낸다. 뉴욕의 일간지가 하우스 오브 카드의 제목을 이용해 미국 의회를 ‘똥통’이라고 비난했다고 하는데, 그런 비난과 비아냥거림을 들을 만하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내용이 허구가 아니라면 말이다.

적어도 한국의 정치, 한국의 의회는 ‘똥통’보다는 더할 것이라 판단된다. 모두들 공감할 것이다. 누구도

 

 

“이야 국회의원들 참 잘해~ 저 당 참 정치 잘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2012년 기준 OECD회원국인 34개국 중 4개국의 정부만 의회에서 압도적인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그리고 마비 현상은 어느 때보다 통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p.312)

“제4의 혁명은 많은 서양인에게 이미 자명한 소유물로 폭넓게 간주되고 있는 두 가지, 즉 복지국가와 민주주의 관행을 제고해볼 수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그들이 최근 들어 자멸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그렇다. 복지국가는 무질서하게 변했고 민주주의는 방종하고, 지속하고, 종종 타락하게 변했다.” (p.367)

 

 

이 책은 철저히 서구유럽의 시각에서 기술되어 있다. 그들의 눈에 민주주의의 끝단에 가 있는 의회민주주의는 비대해 질대로 비대해져 제대로 신진대사도 하지 못하는 지구에서 최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동물로 보이는 것 같다. 미국의 그리드락과 유로존의 무능은 또 다른 혁명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은 사실 납득하기 힘들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교육받고 군대 갔다 와 사회생활하며 결혼해 아이를 낳아 기르는 평범하디 평범한 내 입장에서는 정말 ‘배부른 소리’다.

34개 OECD회원국 정부 전부가 의회의 과반이상을 차지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근시안적이고 순진하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정부 여당의 의회 의석 과반이상의 실재는 억지와 떼법의 날치기 통과, 혹은 국정농단이었다.

복지국가, 아... 복지국가가 뭐지? 이제는 일반화 되어 모든 지자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무상급식 조차 지자체장의 의지로 전면 중단되는 국가에서 무슨 복지인가?

 

 

 

“1970년대 중반까지 영국 국민소득의 절반 가까이가 공공지출에 쓰였는데, 그중 다수가 복지에 투입되었다.” (p.127)

 

 

담배 값이 두 배로 올라 몇 개월 만에 천억이 넘는 세금이 걷혔다고 하는데, 우리는 도무지 그 증가한 세수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 지 알 수 없다. 지금도 한국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은 내는 세금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복지국가로 생각하는 유럽의 일부 국가보다는 훨씬 적은 세금을 내고 있지만 세금을 낸 만큼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는 한국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게 소매치기 당하는 것처럼 세금을 꾸역꾸역 내고 있는 것이다. 연일 보도되는 것을 보면서 분노 게이지는 더욱 상승한다. 나보다 훨씬 월급을 많이 받고 1년 소득이 많은 사람이 나보다 훨씬 적은 건강보험료를 납부한다는 보도를 보면서 생각한다. ‘이런 도둑놈들!’

만약 내가 낸 세금이 얼마만큼 국가 세수를 증가시켰고, 그 증가된 세수가 실질적인 복지혜택으로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경험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세금이 증가해도, 당장은 힘들겠지만 내 자식을 위해 참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혹시라도 이 서평을 보고 있는 당신은 그런 것을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없습니다.

책에서는 무분별한 서구 유럽의 복지정책으로 인해 겪은 경제불황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대처리즘을 옹호한다. 이것도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녀가 처방한 쓴 약은 영국을 바꿔놓았다...(중략) 1984년에는 위대한 민영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p.133)

“중국은 또한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가난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p.202)

“첫 번째 처방은 민영화다. 복지 혜택 줄이기. 세 번째는 투명성 제고다.”

 

 

대처리즘에 대한 후한 평가. 만연한 복지지출과 경제적 무능으로 인해 장기간 계속되던 영국의 불황을 어느 정도 타개한 측면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로 인해 수많은 영국의 노동자가 겪었던 고통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

중국에 대한 언급도 빠지지 않는데, 맞다. 대규모로 가난을 줄이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지역 간 소득격차와 여전히 빈곤한 대부분의 중국 내륙의 상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마치 민영화가 가장 잘 듣는 처방전처럼 기술되는 부분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싱가포르는 특히 정부 주도적 자본주의 면에서 서양 국가들보다 더 권위적이며, 더 간섭적이고, 더 억압적이며, 염치없으리만큼 엘리트주의적이고, 심지어 조금은 왕권주의적이다.” (p.187)

 

 

동양을 향한 눈 돌리기를 시도하는 측면에서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싱가포르의 리콴유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극과 극이기도 하다. 그런데 책에서는 되도록 긍정적인 측면만 부각하고 있다. 싱가포르처럼 작고 작은 국가가 대단한 경제적 안정과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다고 당장 유럽과 미국이 싱가포르 모델을 따라갈 수 있나? 절대 그럴 일은 없다.

 

 

 

“미국과 유럽의 한 가지 공통점은 정부 지출이 젊은이들보다 노인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p.170)

“홉스가 꿈꾼 세상의 주연은 자유에 대한 갈구와 파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합리적인 개인들이다.” (p.50)

 

 

오히려 저자들이 비판하는 홉스의 주장과 철학이 제4의 혁명을 가져오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우리 언론에서도 늘 저렇게 이야기 한다. 앞으로 젊은 세대는 정말 힘들어질 거다. 젊은 세대 몇 명이 노인 몇 명을 부양하는 시대가 올 거다. 겁을 준다. 사실이라도 먼저 들으면 짜증난다. 의지가 약해진다.

국가가 더 이상 개인을 보호하지 않고, 그저 이용할 대로 이용한 후 책임지지 않는 홉스의 비유와는 또 다른 괴물(리바이어던)이 되고 있는 지금, 나와 당신이 기댈 것은 민영화도, 싱가포르 모델도 아니다. 언제 적용할지 알 길이 없는 북유럽의 선진 복지모델도 아니다. 무지막지한 폭풍우 한가운데서 손 뻗쳐 의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개인을 만드는 일이 우선이다. 그것이 제4의 혁명을 인도할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대신 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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