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죽음
이아무개 (이현주) 지음 / 샨티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이현주 목사의 책은 독특하다. 나는 대학 때 그의 책을 처음 읽었다. 충격이었다. 내가 읽는 성경과 내가 가진 신앙을 전혀 다른 방향과 감각으로 해석하는 이현주 목사의 독특함에 완전히 매료됐다. 동양과 서양의 종교와 고전을 아우르는 그의 사색과 글쓰기는 새로운 영성의 세계를 알게 해주었다. 개신교 보수교단의 교회에 다니고 복음주의 기독학생회에서 동아리 활동을 한 탓에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던 내게 이현주의 책과 글은 새로운 세계였다. 내가 가진 신앙과 신앙관이 무조건 옳은 것, 아니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보수교단에서는 그를 사이비 목사라 칭하기도 하고 이단이라 칭하기도 하나보다. 그러든 말든 이현주 목사의 책은 많이 팔리지 않는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내 책장에 있는 오래된 그의 책을 검색해 봤는데 절판된 책이 태반이다. 만약 어떤 종교학자들처럼 이현주 목사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면 대단한 압박과 핍박과 공격을 받았을 텐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씁쓸하다.

 

이 책 「예수의 죽음」은 예수의 제자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는 배신에서부터 해골 골짜기 위 십자가에서 죽는 것까지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예수의 눈으로 본 사건의 흐름은 성경의 그것과 동일하지만 성경은 예수 사후 제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3인칭 시점인데 반해 이 책은 예수의 눈, 1인칭 시점이다.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정말 독특하고 신선하다. 예수의 눈으로 본다는 생각. 별다른 생각은 아니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생각이다.

 

 

“나의 교회는 논리 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치밀한 계획과 예산 위에 기초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신 앞에서 자기의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하고 쩔쩔매며 울고 있는, 그것도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울고 있는 베드로의 나약한 어깨 위에 기초한다. 왜냐하면 거기, 인간의 약함에 신은 비로소 임재하기 때문이다.” (p.28)

 

 

이 책은 증보판이다. 유신의 정점, 남발되는 죽음의 춤이던 긴급조치 한가운데 쓰인 책이라고 한다. 민중의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고 있을 무렵, 겁 많고 파리한 서른 살 젊은이가 끙끙거리며 쓴 글이라고 머리말에서 이야기한다. 30년이 훌쩍 지난 과거다. 하지만 책에서 이야기하는, 예수의 눈에 비친 교회와 사회와 사람들의 모습은 30여 년 전과 지금 별다른 차이가 없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알 텐데, 매주 일요일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이 있다. 주보라고 하는 것이다. 당일 예배 순서와 내용, 광고와 교회 소식, 교인 동정 등 깨알 같은 정보들이 있는 종이다. 예배 시간에 목사의 설교를 적기도 하고 지루한 설교 시간을 달래기 위해 낙서를 하기도 하는 종이다. 이 주보는 교회 각 부서마다 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영아부, 유치부에서부터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성인예배까지.

특히, 중등부와 고등부 주보는 만화나 캐리커처, 웹툰 같은 것을 많이 삽입하기 마련인데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중반까지 유행하던 그림이 있다. 정확한 이름이 기억나지는 않는데 전국 교회 중등부, 고등부에서 최소한 한번씩은 주보에 실었던 것이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휘황찬란한 교회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예수의 모습이 담긴 그림이었다. 매주 일요일 예배당에 몰려와 예배를 드리고 예수를 생각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교인들과 교회 건물과는 아무 상관없이 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 예수의 모습. 현대 개신교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한 컷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30년 전에도 그랬단다. 너무 약하고 너무 감정적이고 너무 변화무쌍해서 게파(반석)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는 예수의 사려 깊음이 고맙다. 감사하다. 책에서의 표현처럼 신앙은 그것에서 비롯된다. 강하고 많은 것을 가진 이들에게서 절실한 신앙은 찾아보기 어렵다. 진실한 신앙도 찾아보기 어렵다.

 

 

“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숫자였다. 숫자의 소리였다. 숫자가 나를 심판했고, 나는 숫자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았다.” (p.35)

“‘가이사’라는 이름이 나오자 빌라도는 서둘러 나를 군중에게 내어놓았고, 나는 곧 정치범이 되어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졌다. 아직 때는 오전, 눈부신 햇살이 군중의 ‘소리’와 어울려 죽음의 춤을 추고 있었다.” (p.85)

 

 

총독 빌라도도 분 봉왕 헤롯도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 단지 당시 예루살렘의 종교적·사회적 지도자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다는 것을 두 명의 정치 지도자들은 발견한다. 그러나 결국 그들도 공모자다. 숫자의 소리와 공포에 질려 예수를 내어 준다. ‘가이사’라는 이름이 나오자 “옳다거니!”하며 죽음의 춤을 춘다. 로마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지만 지정학적으로 그렇게 중요한 속국이 아니었던 예루살렘은 작은 꼬투리 하나 잡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예수라는 자가 나타나 기적을 일으키고, 어마어마한 군중을 끌고 다니는 것은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움트고 있는 것은 기득권에게는 늘 불편한 일이다. 오랜 세월 갖춰온 틀 속에서 호의호식하고 적절한 권세와 명예를 누리던 바리사이파와 산헤드린 회원들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에게 예수는 정말 눈엣가시였다. 그들이 만들어 온 틀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모두 부정하고 전복하려는 강력한 혁명가 앞에 그들은 선동을 준비한다.

 

 

“그렇다. 나는 결국 정치범이(되)었다. 그 길밖에. 내가 죽을 다른 길이 없었다.” (p.102)

 

 

도저히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한 총독 빌라도는 흉악한 사형수 바라파를 끌어낸다. 미친 듯이 예수의 처형을 부르짖는 군중들에게 바라파를 보여주면 예수를 향했던 미친 분노가 그에게로 옮겨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진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군중 혹은 대중의 흐름은 한번 바뀌면 다시 제자리로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현실 정치를 봐도 그렇다. 한번 떠난 민심을 회복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게 또다시 그들을 압제하고 차별하고 괴롭히던 기득권의 입에 선동된 군중은 미친 상태로 예수를 못 박으라 부르짖는다.

그렇게 예수는 정치범이 되어 십자가에 달린다.

 

 

“하늘이 잠잠할 때, 먼저 그 침묵 속에서 들끓고 있는 미움과 분노를 읽을 일이다.” (p.121)

 

 

2주일에 한 번 친한 친구 가정과 성경공부를 한다. 참 좋은 시간이다. 4명 모두 서로를 잘 알고 오래 봐 오던 사이라 허물없다.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몇 주 전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왜 이렇게 악하고 잘못되고 뒤틀린 세상을 그대로 놔두시는 걸까? 사회적 정의와 공의가 대지에 흘러넘치는 것이 신의 뜻일 텐데, 왜 이렇게 부정의와 비상식과 부도덕이 판치는 세상일까? 예수를 믿는 다고 하면서 더 악하게 살고, 더 꼼수를 부리며 살고, 더 편법과 탈법과 속임수로 사는 사람들이 많을까? 또 왜 그런 사람들이 더 잘 살고 잘 나갈까?

왜 하늘이 잠잠할까?

이현주 목사의 말처럼 그 침묵 속에서 들끓고 있는 미움과 분노를 읽어야 하는데, 아직 내공과 신앙이 부족한 내게는 무척 힘든 일이다.

 

이 책은 재미있다. 이현주 목사의 책 전부가 그렇다. 물론, 내가 읽은 책에 한해서.

새로운 신앙의 영역을 발견할 수 있다. 동화에서부터 동양고전에 이르기까지 이현주 목사의 글쓰기는 다양하고 다채롭다. 기독교 내에 이 정도의 글쟁이·사상가가 있을 까 싶을 정도다. 기독교 관련 책이 언제부터 인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자기계발서처럼 주문을 외우는 것 같은 책들. ‘~기도 방법’, ‘성공하는 신앙 습관~’, ‘은혜 받는, 축복받는 ~ 방법’ 등등. 제목만 봐도 원초적이고 자극적인, 그 어떤 것보다 세속적인 책이 넘쳐난다. 그런 책이 잘 팔린다. 다행인 것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서적을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 「예수의 죽음」은 내가 이현주 목사와 그의 책을 소개해 준 후배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후배가 이현주 목사의 책을 읽고 받은 감동에 고맙다고 내게 선물해 준 책이다.

모쪼록 많은 개신교인들, 특히 교회 다니는 젊은이들이 이현주 목사의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편협한 신앙에서 벗어나 넓은 신앙의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현주 목사의 책이 절판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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