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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국가 - 세월호를 바라보는 작가의 눈
김애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평점 :
우리는 여전히 눈 감고 있다.
세월호 유족들이 서울에서부터 진도 팽목항으로 도보 행진을 하고 있다. 엄동설한에 걸어간다는
것이 말도 안 되는 얘기인데, 유족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나 보다. 그렇다. 아무것도 된 것이 없다. 차라리
무지렁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들이 비아냥대고 비난하고 힐난했다. 초코바를 던지고 치킨을 처먹고, 힘 있는 놈들은 입 놀리기에 바빴다.
조사위원회라고, 억울함을 들어주겠다고, 진상을 밝히겠다고 한 놈들은 이미 관심 밖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들딸을 가슴에 묻은 핏자국을
드러낸 채 걷고 있다. 당연히 그렇듯이 보도하는 언론이 없다. 그렇다. ‘전원구조’라는 역사 상 최악의 오보를 쏟아도 반성이 없다. 이제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다 된 거 아니냐는, 이제 그만하라는 먼지처럼 부유하는 떠돌이 잡탕 쓰레기들을 옮기는 것으로 처세를 다하고 있는 모양이다.
서울끝에서 남쪽 바다 끝까지 걸어가는 슬픈 무리에 대해 우리들의 관심은 전무하다. 가끔 트위터로 전해지는 소식이 전부다.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눈 먼 자들이다.
“바다는
잔잔했다.”
“그래서, 더
잔혹했다.”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중, p.49)
그렇다. 잔잔했다. 그래서, 더 잔혹했다. 오랜 시간 봐 온 동해바다와는 다른 색깔이었다.
‘시커멓다’라고 할 수는 없는 거무칙칙한 색깔이었다. 수심이 엄청 깊은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깊은 바다는 아니었단다. 그래서 오히려
더 빨리, 더 많이, 더 안정적으로 구조해 냈어야 했다. 세월호가 좌초된 곳이 반도에서 가장 물살이 센 곳이라는 말도 쏟아졌지만 실제로 거꾸로
가라앉은 곳의 물살은 세지 않았다. 작은 배, 해경의 배가 거꾸로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에 근접한다는 것이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접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특종을 잡아내기 위해 있는 카메라를 다 동원해 전국에 생중계한 당시를 떠올려보면 주변 어민들의 작은 어선은
아무런 위험 없이 선미에 접근해 사람들을 구조했다. 국가로 상징되는 해경의 작은 배는 웬일인지 선미가 아니라 선원들이 있는 선수로 갔다. 그들만
구했다. 당시 그 화면을 중계로 보고 있었다. 어? 해경이 구조하네? 싶었다. 사람들을 구했으니 다시 접근해서 구조하면 다 구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 배는 다시는 세월호 곁으로 가지 않았다.
곁을 지키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들도 그들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
4월16일. 5월16일. 6월16일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관심도 멀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자위했다. 나도, 나도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할 말은 이미 준비되어 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부족했다.
“당신들은 너무 많은
거짓말을 했다.” (박민규 <눈먼 자들의 국가> 중, p.60)
그들만의 잘못일까? 맞다. 그들의 잘못 맞다. 세월호가 가라앉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온통 거짓말로 그들의 잘못을 대체하고 있다. 그 거짓말이 입과 귀를 가려버린 언론에 의해 진실인 것처럼 포장되어 투사된다. 지속적, 반복적으로
노출된 대중은, 우리는 거짓이 이제 무엇인지도 모르는 지경이 이르렀다. 거짓을 찾아내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이야기 하고 옳은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니까. 그래서 유족들이 지금 걷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법원도, 국민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까. 도와주지 않으니까. 곁을 내주지 않으니까. 무작정 걷고 있는 것이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맞다. 그래서 슬프다. 참 슬프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내 경우 4월 16일
이후로 말이 부러지고 있습니다.” (황정은 <가까스로, 인간> 중, p.88)
소설가의 손이 부러지지 않고 말이 부러져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실소도 나오지 않는 가슴
막막한 표현이다. 황정은 작가의 책을 읽고 싶은데, 읽지 못하고 있다.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작가의 이름을 알게 되고, 방송을 통해 소개되는
작가 자신의 캐릭터와 작가의 작품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책은 두 권 사두었는데 읽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런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황정은
작가의 책을 읽으면 더 우울해지고 슬퍼지고 막막해질 거 같아서 인지, 생각보다 작품은 좋지 않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 때문인지
모르겠다. 세월호를 두고 표현한 “말이 부러지고 있습니다.”라는 표현에 가슴이 멈춘다. ‘이런 식의 표현이 넘치는 소설이라면 정말 읽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정말?
“세월은 돌이킬 수 없게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버렸다. 나 역시 그 세계에서 발을 뺄 수가 없다는 것을 자각하게 만들어버렸다. 어른들을 향해서, 당신들은 세계를 왜 이렇게
만들어버렸습니까, 라고 묻는 입장이 더는 가능하지 않게 된 것이다.” (p.93)
나도 어른이 된 걸까? 어느덧 나이가 불혹 가까이 가고 있다. 언제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직 나이 많은 사람, 기성세대를 향해 욕할 게 더 많고 비판하고 힐난한 게 더 많은데, 벌써 이렇게 되었나 보다. 그리고
황정은 작가의 표현대로 세월호를 가라앉힌 책임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나 보다. 세월호를 둘러싼 각종 의혹, 국가, 정부, 공권력, 관피아,
해피아, 각종 부패와 나는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불만이 많다. 투덜거리고 비판하는 것 좋아한다. 그런데 내가 욕하고 투덜거리고
비판하던 대상에 어느새 내가 들어갔다는 것이 암울하다. 슬프다.
이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돌이킬 수 있을까?
그런데 뭘로 바꾸는 거지? 어디로 돌이키는 거지?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데...
아직도 눈멀어 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