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뭐가 이렇게 슬프고 슬픈 소설이 있나 모르겠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것은 독자가 가진 생래적 습성일 테고, 작가가 어떻게 해피엔딩으로 소설 전개를 끌고 가느냐를 궁금해 하며 책을 읽게 마련이다. 그런데 무슨 놈의 책이 해피엔딩이 없다. 하다못해 금철이와 영이와의 풋풋한 뽀뽀 하나도 없다.

어제부터 오늘 내일까지 올해 최고 한파가 몰아친다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남쪽에도 아침 기온이 영하 8도를 가리키기도 했다. 이렇게 추운 나날, 70m 공중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있다. 두 사람이다. 자신들을 해고하고 끝까지 그 해고의 부당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소송을 해왔고 종착지인 사법부마저 회사의 손을 들어 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두 사람이다. 그들이 청춘을 바치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잔업과 야근을 마다하지 않으며 일했던 평택의 공장에 있는 높은 굴뚝에 올라갔다. 며칠 전 굴뚝에 올라가 트윗을 남겼다. 이제는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고. 내가 일하던 회사, 공장,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있는 곳에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그래도 공장 안에 들어와 있으니 좋다고. 비바람, 추위 피할 방법 마련해 올라왔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무슨 이런 놈의 세상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회사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의회도 정부도, 사법부도 노동자들의 손은 기어코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이미 지난 일이 되어 버렸다. 다이나믹 코리아답게 땅콩 부사장이니 십상시니, 국정 농단이니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희한한 뉴스가 쏟아지는 곳이다 보니, 그들의 최종 판결은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다. 가진 게 몸 밖에 없는 두 사내는 결국 하늘 위로 올라갔다. 조금이라도 하늘 가까이 올라가면 하늘님이라도 이 두 사내를 굽어 살펴 주시리라 망상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아픔과 말로 다하지 못할 서글픔이 밀려온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70m 공장 굴뚝에서 영하 10도 15도 추위를 몸으로 견뎌야, 그래야 신문이라 TV에서 잠시 보도라도 해주니까? 무슨 이런 놈의 세상이 있는 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두 아이는 각자의 서러움에 복받쳐 울었다. 애초부터 계란볶음밥 같은 건 문제도 아니었다. 어린 스파이들은 회복할 수 없이 망가진 것 때문에 울었다.” (p.275)

 

은철과 원은 스파이놀이를 했다. 그 나이, 그 어린 시절에만 할 수 있는 에로틱한 장난도 해 보고, 푹푹 내질러도 어린아이 장난으로 넘겨 줄만 한 어른들의 관용이 유지되는 그런 시간. 은철과 원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삼벌레고개 중턱의 스파이가 되었다. 경찰, 검찰, 국정원, 정보요원, 특수요원을 다 합친 것이 두 아이가 만든 스파이다. 은철과 원은 은철의 집이자 원의 가족이 세 들어 살고 있는 우물집에 드나드는 계원들의 신상을 하나하나 파악한다. 임보살, 성계희, 사우디집, 큰 형님, 통장집.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마을 어귀를 내려가 뚜벅이 할배, 괴상한, 곰딴지수학자의 신상도 파악한다. 늘 그 곳, 삼벌레고개 중턱에 있었던 사람들이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그들의 이름을 알아낸다. 고도의 수사 기법이나 첨단의 과학 장비가 아니라 오로지 어린 아이 특유의 과감함으로.

“아줌마 이름이 뭐예요?”

하지만 삼벌레고개 중턱 최고의 스파이 둘은 망가진다. 완전히. 은철은 삼벌레고개 중턱 곳곳을 제 집 드나들 듯 뛰어다닐 다리를 잃어버린다. 원은 의뭉스럽지만 따뜻한 아빠를 잃고, 언니보다 더 살갑게 대해주던 엄마를 잃어버린다. 생채기가 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망가진다. 작품에서 그려내는 ‘망가짐의 과정’이 생생해서 슬픔이 더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모조리 망가질 수 있나 싶었다.

 

 

“너도 잘했고 나도 잘했으니 사백 번 잘했다. 느이 아버지도 뭐라고는 못 하실 거다. 그런 위험한 일을 그렇게 허술한 데서들.. 그래, 이번 일 가지고 그이도 더는 뭐라고 못 하겠지. 이제 다시는 안 갈 거니까. 딱 한 번만... 딱 한 번만... 뜯어낸 거니까.” (p.111)

“과도한 고통이 황홀경을 부르듯이 쓴술을 먹은 새댁의 입에서는 거꾸로 단내가 났다. 영은 원 때문에, 원은 희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p.267)

 

 

의뭉스런 원의 아버지는 사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가장이다. 돈을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주인집 기분을 잘 맞춰 주는 것도 아니고, 딸 아이와 아내에게 살갑지도 않다. ‘저런 게 무슨 가장이랍시고’라는 말이 곧 튀어나왔다. 그런 작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도 작품 속에서는 명확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나중에 경찰인지, 보안요원인지 모를 사람들에게 끌려가는 걸로 봐서는 민주화 운동이나 노동 운동을 하는 사람인가 싶다가도. 침술을 하고 경락을 하고 뭐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로 봐서는 시답잖은 사기꾼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 가장이자 남편을 둔 원의 엄마는 오롯이 그 고통을 떠안게 된다. 좋은 집에서 잘 살고 있는 형에게 찾아가 손 하나 벌릴 줄 모르는 융통성이라고는 개밥에 쓸려고 해도 없을 위인을 대신해 어린 원의 손을 잡고 시숙의 가게를 찾아간다. “딱 한 번만 뜯어내고” 시장 통 공중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배설해 버린다. 쿨하다. 이런 쿨한 원의 엄마는 유독 남편에게는 지고지순이다. 남편이 하는 시답잖은 일이 무어 그리 대단한 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그리고 그 무어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시답잖은 일을 하는 놈팽이를 굳이 잡아가 송장을 만들어 돌려보내는 선글라스의 아저씨들도 참 희한한 작패를 하는 놈들이다.

영과 원은 끓어오르는 슬픔마저 조절할 수 있을 만큼 너무 조숙해 버렸다. 그것이 더 슬프다.

 

 

“내 소원이다. 우리 애기한테 굿 한번 해주자, 부정 타게 더는 말 마라, 새댁.” (p.209)

 

 

우물집 주인 순분이 은철에게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임보살의 굿이었다. 터줏대감처럼 삼벌레고개 중턱을 지키고 있는 임보살의 굿이라면, 혹시라도 은철이 다리에 힘이 생기고 다시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병원이라는 데가 원래 없는 사람들 등쳐먹으려고 이런 저런 검사만 하라고 하고 수술이다 뭐다 시키는 대로 다 해도 막내 놈의 다리는 도무지 낫지 않는다. 딱 봐도 자기보다는 훨씬 더 배웠고 똑똑한 거 같은 원이 엄마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 이것은 차라리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어쩌면 순분은 임보살의 굿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다만 그렇게라도 해야 평생을 다리를 절며 살아야 할 막내놈 얼굴 볼 핑계거리가 생기는 거니까. 그러니까. 굿이라도 한번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은철이가 아닌 자신에게.

 

 

“난 죽어도 착한 사람 같은 거 안 될 거야. 돈 벌면 아주 그냥 한 방에 뭉개버릴 거야. 통장집 같은 년, 우리 담임 같은 새끼, 다시는 말도 못 하게 아주 그냥 혀를 다 뽑아버릴거야.” (p.289)

 

 

남편이 죽은 후 영과 원의 엄마는 미쳐 버린다. 정신 줄을 놓는다. 간간이 돌아오는 제 정신에 주인집 순분을 찾아가 입원을 시켜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병원에 들어간다. 영과 원은 졸지에 고아가 된다. 두 아이는 다행인지 불행의 시작인지 알 수 없는 큰아버지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다. 큰아버지 집으로 가는 날, 영은 주인집 금철에게 이야기 한다. “난 죽어도 착한 사람 같은 거 안 될 거야. 돈 벌면 아주 그냥 한 방에 뭉개버릴 거야.” 저주를 퍼붓는데, 나는 오히려 영을 응원하게 된다. ‘그래 그렇게 꼭 됐으면 좋겠다.’ 아마 「토우의 집 2」가 출간된다면 으레 그렇듯 또 다른 슬픈 이야기가 즐비하겠지? 현실이 그러니까. 흐흐흐... 영은 갑자기 가장이 된 큰아버지 집에서 결코 행복하게 살지 못할 것이다. 부모 없는 자신과 어린 동생을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큰아버지의 호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맞다. 차라리 이런 스토리라면 2권은 절대로 나오지 않아야 한다. “영과 원은 큰아버지 집에서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 라는 정도의 해피엔딩은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녹록치 않다.

여전히 70m 굴뚝 위에 두 명의 사내는 올라가 있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추울 거라는 비극적인 날씨 기사는 시간대로 쏟아진다.

씨발.

 

 

 

“화창한 오월의 첫째 일요일이었다. 우물집 바깥채의 방이 하나 비고 새 식구가 이사를 오기로 한 날이었다.” (p.12)

“정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짓을 할까요? 난 믿을 수가 없어요, 여보.”

“저들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건 우리니까요.” (p.223)

 

 

화창하기는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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