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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가지 없는 진보 - 진보의 최후 집권 전략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4년 8월
평점 :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영작 <다이빙벨>을 놓고 말이 많았다. 어디까지나 예술의 영역인 영화를 가지고 정치적 편향이니, 무슨 숨은 의도가 있느니 하면서 정부와 부산시, 유관단체에서는 상영을 불허할 것을 요청했다. 조중동을 비롯한 언론들은 무슨 그리 대단한 내용이 담긴 것처럼 연일 기사와 사설에서 <다이빙벨>을 비판했다. 하지만 영화제 측은 이들의 요구와 협박, 공격에 굴하지 않고 상영을 강행했고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특히 조선일보는 <다이빙벨>을 관람하지 않고도 영화를 비판하는 독심술을 발휘해 온갖 비판을 가했다.
이런 일은 흔하다. 이 책 「싸가지 없는 진보」에 대한 반응도 그랬다. 단지 제목의 자극성 때문인지, 강준만이라는 학자가 갖는 대중적 취향의 양극성 때문인지 이 책을 두고 말이 많았다. 제대로 진보의 문제를 짚었다 에서부터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문제에 접근했다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책의 출간 전후 즈음하여 의견들이 쏟아졌다. 그 많은 의견들 중 몇 가지만 찾아봤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퍼뜩 들었던 생각은 ‘이 사람들 이 책을 읽기나 했나?’하는 의문이었다. 뭐 책이야 읽는 사람의 세계관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기 마련이고 그것이 독자가 갖는 유일한 ‘갑’질 임을 감안하더라도 전혀 이 책의 중심 방향과는 다른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는 의견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그런 의견들을 내뱉는 인사들 중 대다수는 진보-개혁 진영의 지식인들이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이 책에서 주장하는 강준만 교수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강준만 교수만큼, 이 책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을 쏟아놓은 지식인들만큼 전문적 식견이 있거나 진보-개혁 진영의 한 귀퉁이조차 자리하지 못한 일개 독자이지만,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동의하면 동의하면 그만이고. 그런데, 뭐 그렇게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나는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말만 많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코 보수-수구 진영보다 싸가지가 없거나 독선적이고 오만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 또한 나 개인의 생각이고 주장이기에 생각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진보-개혁 진영, 특히 그 쪽에서 한 자리하고 있거나 운동권 출신이거나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까대기’바쁘다. 여전히 지난 대선 패배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나꼼수 현상’이고 그것이 대중을 미혹케 하고 단순히 팬덤현상으로 폄하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꼰대질이 여실히 드러난다.
“새누리당과 보수를 숭배하거나 존경한 필요한 없지만,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여 집권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집권 후에도 성공할 수 있다.” (p.245)
강준만 교수는 책의 말미에 이런 주장을 한다.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주장의 전반부는 일부 동의한다. 새누리당과 보수, 기득권을 숭배하거나 존경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그들을 왜 존중해야 하나? 이 분이 그 어떤 성역에도 가감 없이 비판을 가하고 그 비판이 진영논리에 함몰되지 않는 것이었기에 그의 책이 많이 읽히고 많은 젊은이들이 그의 책을 통해 세상을 진단하는 안목을 길렀던 것인데, 왜 갑자기 뭉뚱그리려 하는지 모르겠다. 왜 그들을 존중해야 하나? 그들을 존중해야 민심을 읽는 눈이 제대로 트이고 집권을 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는 황당무계하다. ‘다 잘 될 거야~’라는 무책임한 자기계발서와 다를 바 없다. 미국의 보수나 유럽의 보수 정당과 기득권을 대하는 태도를 아무런 기준도 없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보수-수구, 기득권 세력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아서 진보-개혁 세력과 야당이 이 모양 이 꼴이라는 논리인가? 무슨 말 같잖은 소리인지 어이가 없다.
“강남좌파가 입으로는 보통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주변 환경이 그들에게 미치는 영향, 즉 ‘가용성 편향’이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p.80)
“싸가지가 없기 때문에 민심을 읽지 못하고 관성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p.6)
지금의 제1야당 새민련인지 민주당인지 이름을 거론하기도 짜증이 나는 정당에는 수많은 운동권 인사와 개혁-진보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저 사람이 들어가면 분명 바뀔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멍청해지고 이기적으로 변하고 정당 논리에 함몰되는 꼴을 지켜봤다. 강준만은 ‘가용성 편향’으로 이것을 해석한다. 이 부분은 동의한다. 진영논리에 흡수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강성이다, 우리끼리 뭐 하는 거냐 식의 비아냥거림과 비난이 따라 온다. 그냥 저냥 세비 받고 가는 곳마다 의원님, 의원님 소리 들으려면 적당히 비판하고 적당히 줄 서고 적당히 지역구에 얼굴 비치면 그만이다. 선거 직전에 잘만 하면 재선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겠나?
싸가지가 없어서 민심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민심을 읽을 생각이 처음부터 없는 것이다.
“진보적 지식 엘리트는 자기들에게 선거 결과가 안 좋게 나오면 ‘유권자가 욕망에 투항했다.’는 식으로 싸가지 없는 진단을 내놓는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말하는 이들의 재산을 까보면 욕망에 투항했다는 유권자들의 평균보다 훨씬 많다.” (p.83)
“‘이중개념주의자(biconceptualist)’가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진보적인 사람일지라도 강한 보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람보 영화에 공감하고 박수칠 수 있으며” (p.105)
또 하나 이 책에서 실망한 부분은 주장의 이중적 태도다.
‘이중개념주의자’라는 사회학적 용어를 분명히 언급한다. 진보-개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물론 거의 모든 사회인이 갖는 일상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국가와 국민의례의 습관화를 지독하게 싫어하면서도 야구장에서 습관적으로 국기를 향해 일어서서 손을 가슴에 얹는다거나, 아무도 관심 없을 거라 얘기하면서도 아시안게임을 찾아보는 태도는 분명 ‘이중개념주의자’라는 현상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느닷없이 강남좌파를 비판하고 그들이 갖는 이중개념, 이중태도에 대해서는 싸가지 없는 진보의 논리를 들이대는 지 이해할 수 없다.
“이 지구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도는 것도 아닌데, 왜 모든 걸 보수언론 중심으로 이해하려 드는지 안타깝다.” (p.69)
“이윤석, 「야당 망치는 ‘막말 투사들’」, 중앙일보, 2014년 8월 2일.”
“강태화, 「강경파는 기득권... 여당과 협상하면 2중대라고 공격」, 중앙일보, 2014년 8월 2일.” (p.151, 각주)
또 하나
강준만은 누구보다 조중동, 특히 조선일보에 비판적인 사람이다. 보수언론에 대해 유달리 겁을 먹는 싸가지 없고 대책 없는 진보-개혁 진영을 비판하면서도 그는 여러 번 보수언론을 인용한다. 대부분 중앙일보다. 조선일보도 있지만 중앙일보 보다 횟수는 현저히 적다. 조선일보만 아니면 되나? 맞다. 이 책 출간 후 손석희의 뉴스룸에 출연했었지. 싸가지 없는 진보-개혁 진영과 야당을 비판하는 논거나 중앙일보가 된다는 것 자체가 황당했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구호는 자기만족을 위한 마스터베이션인지라 사라지긴 쉽지 않다.” (p.200)
“야당은 2012년 총선 이후 정권 심판론만 앵무새처럼 외치고 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유권자들은 도통 알 수가 없다.” (p.135)
이 주장에는 동의한다.
적어도 진보-개혁적 가치관을 추구하고 그 방향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민주화 운동과 반독재 투쟁에 청춘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런데 어느새 부턴가 이것이 결코 뗄 수 없는 훈장이 되어 버린 듯하다. 강준만의 표현대로 자기만족을 위한 마스터베이션은 쉽게 떨쳐낼 수 없는 중독이다. 이것이 단순히 자기만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를 구분 짓는 잣대로 사용한다는 것이 문제다. 어느새 자신도 청춘의 뜨거움과 그때의 추억에서 벗어나 진영논리에 파묻힌 그렇고 그런 정치인이 되었다는 것을 자신만 모른다. 그러니 사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똑같은 정치인인데, 과거의 추억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것이다. 대중은 분명하게 안다. 어떤 정치인이 여전히 운동의 순수함을 유지한 채 정치를 하고 있는 지 말이다. 그들만 모르고 있다. 국회와 정당 바깥에서는 굽실굽실 거리는 흉내를 내지만 그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똑같아 지는 것이다. 대중은 다 알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놓고 야당에서 보인 무능과 무책임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이명박 정권 말기에서부터 지금 박근혜 정권 중반기까지 수많은 호재가 있었다. 전세를 뒤엎고 정국을 주도해나갈 동력 말이다. 보수-수구, 기득권의 헛발질에 국민은 분노로 힘을 실었다. 유일하게 야당만 이것을 받아 안지 못했다. 어차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미우나 고우나 야당에 힘을 실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뻥~! 차버렸다. 입으로만 국민 국민 떠들지만 그들에게 국민은 없었던 것이다. 매번 지고, 매번 헛발질 하고, 매번 야합이나 하고 앉아 있으니 그들이 떠드는 정권 심판은 공염불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도 더 밉고, 더 비판을 해야 할 대상은 정권과 새누리당인데 국민들은 야당을 더 싫어한다.
“이런 야당을 상대하는 여당은 국회 안에선 괴로워도 선거는 쉽다. 야당으로부터 소외된 국민에게 손만 내밀면 표가 오기 때문이다.” (p.146)
차라리 요즘은 새누리당과 보수-수구 진영이 더 감각적으로 움직인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는 척 하고 파격쇼를 하기도 한다. 선거가 늘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대 가장 비겁한 여당과 역대 가장 무능한 야당을 가진 지금이 역대 가장 불행한 국민을 만들고 있다는 말들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차라리 저들처럼 납작 엎드리는 시늉이라도 하던가.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일성이 “살려주십시오.”였다는 것은 이미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 패배한 부대의 수장이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라고 하는 비겁함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위원회를 봉사, 서비스, 교육 등 공적 기능을 하는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 당이 현장의 국민들을 도와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p.227)
싸가지의 있고 없음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야당이 혁신하는 길은 국민들, 대중들 속으로 들어가는 일밖에는 없다고 본다. 언제까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불리한 싸움 타령만 할 수는 없다. 130석에 달하는 의석을 갖고 있음에도 이토록 무능하고 무책임한 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국민이나 대중이 없기 때문이다. 이대로 영원히~ 면 그만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권교체가 아니라 본인의 재선’이라는 어이없는 날 선 비판이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하려면 바뀌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전국의 지역위원회를 통해 풀뿌리 대중정치를 시도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국민과 대중, 유권자의 마음으로 다가가겠다는 정당정치의 문턱이 지금처럼 이렇게 높아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강준만 교수의 다음책의 제목이 어떨지 궁금해진다.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책이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은 좋은 것일 테다. 그것이 고스란히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과 같은 자극적인 제목은 아니었음 싶다. 불필요한 말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 같은 일개 독자들이 책을 읽기가 버겁다.
나는 지금 진보-개혁 진영의 가장 큰 문제는 싸가지 없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예 별 생각 없음이 가장 큰 문제다.